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214화 (214/225)

# 214

콰앙!

“크억!”

흙먼지 속에서 나직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일행은 긴장한 얼굴로 싸움을 주시했다.

슈캉!

“아악!”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먼지가 걷히며 싸움의 상황이 드러났다. 데메우스는 피를 철철 흘리며 물러나는 중이고, 김필도는 그를 쫓아가고 있었다.

“도망치는 거냐?”

김필도의 헬칸이 공간을 단축하고 데메우스의 심장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헬칸의 끝에서는 검은색의 오라 블레이드가 일렁거렸다.

데메우스는 급하게 검을 쳐 냈다.

차앙!

하지만 헬칸은 조금 밀렸을 뿐 데메우스의 왼팔로 파고들어 갔다.

“크윽!”

휘익!

움찔하며 비명을 지르는 순간 김필도의 왼팔이 데메우스의 어깨를 향해 뻗어 나갔다. 그의 왼팔에는 어느새 커다란 방패가 자리해 있었다. 조금 전에 비해 크기는 엄청나게 커졌지만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는 건 변함이 없었다.

슈캉!

회전하는 방패가 데메우스의 오른손을 찍었다.

“커억!”

데메우스는 황급히 물러났다. 오른팔 상박이 쩍 갈라지며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차앗!”

김필도는 고함을 내지르며 물러나는 데메우스의 머리를 향해 헬칸을 내리찍었다.

데메우스는 검을 들어 올렸다.

콰앙!

“타앗!”

검이 부딪치는 순간 이번에는 방패가 허공을 갈랐다. 방패 날이 향하는 곳은 조금 전 부상을 입혔던 부위였다.

“헉!”

데메우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조금 전에 당한 곳을 또다시 공격 받으면 팔이 잘려 나가고 말 것 같았다.

그는 얼른 검을 거둬들였다.

“늦었어, 데메우스!”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통렬한 고통이 오른팔에 느껴졌다. 그리고 검을 틀어쥔 손 하나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데메우스는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 순간 김필도는 바닥을 힘차게 찼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5미터 높이로 솟구쳐 올라갔다.

“데메우스!”

그는 헬칸을 번쩍 들어 올리며 데메우스를 불렀다.

데메우스는 김필도를 바라보았다.

“잘 가라!

김필도는 헬칸을 힘껏 내리찍었다.

퍼억!

머리로 파고들어 간 헬칸은 데메우스의 몸통을 일자로 가르고 사타구니로 빠져나왔다.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계곡 가득 울려 퍼졌다.

“이겨 버렸군.”

패릴 백작은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오.”

이어 리스콘 백작이 맞장구를 쳤다.

짝짝짝! 짝짝짝!

느닷없이 한편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세 명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오디안, 알리토, 시아나였다.

시아나는 전투기갑을 걸치고 있어 짐승처럼 네 발로 걷고 있었다.

“어? 시아나!”

김필도는 깜짝 놀라며 시아나 곁으로 뛰어갔다.

조금 전 그녀가 자주 내뱉는 특유의 울음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설마 시아나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다, 다친 데 없어요?”

시아나는 김필도를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혼자 살았던 수천 년 동안에도 외롭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난 2년은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시아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렸다.

“말도 할 줄 아네?”

김필도는 시아나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저, 저들에게 배웠어요.”

시아나는 뒤편에 서 있는 알리토와 오디안을 가리켰다.

“반갑습니다, 전하.”

“반갑습니다, 마스터.”

오디안과 알리토는 김필도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김필도는 다시 시아나를 보았다.

“보고 싶었어요.”

“나도 보고 싶었어. 정말 잘 왔어.”

김필도는 시아나를 끌어안았다.

제6장 지나가는 나그네

동로군벌 진영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인질로 잡혀 있던 가족을 구했을 뿐 아니라 주인처럼 군림하던 마족까지 없앴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동로군벌 수뇌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전하.”

디바스칸 백작은 술병을 들고 일어났다.

“나와 친분을 쌓게 되면 생활하는 데 애로 사항이 많을 텐데 그래도 상관없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직함만 대공이지 그림자이지 않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며칠 전까지는 그림자 대공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부턴 아닙니다. 전하 뒤에는 저를 비롯한 동로군벌이 있습니다.”

“총영주 말이 옳습니다, 대공 전하. 전하는 더 이상 그림자 대공이 아니십니다. 대공 전하는 우리 동로군벌의 주인이십니다.”

디바스칸 백작에 이어 패릴 백작이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그건 패릴 백작 생각일 뿐이잖소.”

“아니옵니다, 전하. 저희도 제1영주와 생각이 같습니다.”

“같습니다, 전하!”

다른 영주들 또한 일제히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정말 날 주공으로 모시겠단 말이오?”

“이미 영주들과 상의를 했습니다, 전하.”

“날 주공으로 모시면 전부 죽을 수도 있소. 그래도 따르겠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제가 실종됐다는 건 아시오?”

“들었습니다.”

“그럼 지금 발탄 제국엔 황제 자리가 공석이라는 것도 알겠구려.”

“그럼?”

디바스칸 백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말은 곧 김필도가 황제를 꿈꾸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부 죽을 수도 있다는 거요, 총영주. 나는 원래부터 빈털터리였으니까 실패한다고 해도 잃을 게 아무것도 없지만 영주들은 다르잖소.”

“그러면 대공 전하께서는 동로군벌에는 왜 오신 겁니까?”

비록 공작들에 비하면 작위가 낮다고 하지만 디바스칸 백작은 수십 년 동안 동로군벌을 이끌어 왔던 자. 그는 김필도가 굳이 동로군벌까지 온 이유를 간파했다.

“데메우스 그놈은 문 대륙에서 나와 악연을 맺었던 자요. 휴도니아 대륙으로 온 것도 나 때문이기도 하고.”

“단지 그것 때문에 이곳까지 왔단 말입니까?”

“나는 그놈뿐만 아니라 대천신군의 수장인 세이아칸 그놈과도 원한이 있소.”

“대공 전하의 적은 마족과 천족 전부란 말이군요.”

디바스칸 백작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데푸시와 이프리스가 날 돕기 위해 자기네들 부족으로 돌아갔긴 했는데, 부족장들이 허락할지는 아직 알 수가 없소.”

“데푸시와 이프리스라면 콜다 족과 샬 족의 후계자들을 말하는 거 아닙니까?”

“맞소. 문 대륙에서 녀석들과 인연을 맺었는데 날 형님으로 부르고 있소.”

“형님으로 부르고 있다고요?”

디바스칸 백작을 비롯한 영주들은 깜짝 놀랐다.

얼굴은 젊지만 그들의 실제 나이는 백 살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김필도를 형님으로 모신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소.”

“그래서 사면시켜 주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군요.”

디바스칸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내일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충분히 상의를 하시오. 결정을 내릴 때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되오. 내 승률은 1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오. 그것도 아주 후하게 쳐 줬을 때의 승률이라는 걸 명심하시오.”

김필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회의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영주들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난 대공 전하와 함께하겠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제1영주 패릴 백작이었다.

“승률 10퍼센트에 목숨을 걸겠단 말이오?”

디바스칸 백작이 물었다.

“10퍼센트는 그분이 가진 승률뿐입니다, 총영주. 내가 그분 곁으로 가면 승률은 1퍼센트 더 높아질 겁니다.”

“나도 1퍼센트를 더하겠소.”

이어 제2영주 리스콘 백작이 나섰다.

“나도 1퍼센트를 더하겠소.”

세 번째로 김필도를 따르겠다고 한 사람은 제3영주 챌린지 백작이었다.

“나도 1퍼센트를 더하겠소.”

“나도 1퍼센트를 추가하겠소.”

“나도…….”

“나도…….”

이어 모든 영주들이 소리쳤다.

“그럼 만장일치구려.”

디바스칸 백작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총영주도 대공 전하를 따를 생각이셨습니까?”

패릴 백작이 물었다.

“마법의 가문이라고 하였던 토바하크 가문의 가주이자 8클래스 마법사와 최상급 마족으로부터 마스터 소리를 듣는 분 아닙니까. 그런 분을 따르지 않으면 누굴 따르겠습니까?”

“하하하! 그렇습니다, 총영주.”

패릴 백작은 호탕하게 웃었다.

“결정이 났으니까 바로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리스콘 백작이 덩달아 웃었다.

“오랜만에 친구 분들을 만나시는 것 같은데, 우리 이야기는 내일 말씀드리기로 하지요. 오늘은 우리끼리 한잔합시다.”

“그게 낫겠군요. 영주들께 내가 한잔 따르겠습니다.”

리스콘 백작은 술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시각.

김필도는 디바스칸 백작이 마련해 준 숙소로 가는 중이었다. 일행의 숙소는 영주 성 뒤편에 있는 별채였다.

3층으로 된 별채 앞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 호수 주앙에는 갖가지 조각으로 장식된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다.

구름다리를 건너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오디안과 알리토가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어서 오십시오, 마스터.”

오디안과 알리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를 마스터라고 부르기로 한 겁니까?”

김필도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후회할 겁니다.”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스터.”

“과거의 친구들을 만나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다고요?”

“과거의 친구들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록과 히발을 비롯한 마계10군단 전전대 친위대 대원들과 이카렌이 이끌던 마계10군단 대원들을 말하는 거예요.”

“그들이 이곳에 와 있습니까?”

알리토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카렌이 이끄는 마계10군단 대원들은 모르지만 록 일행은 함께 생활했던 동기였다.

“라파에 있어요.”

“결국 그 친구들도 마계를 떠났군요.”

알리토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그들은 마계10군단을 지켜 줄 줄 알았다. 그런데 결국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만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세상은 힘 있는 자들의 의지에 따라 굴러가는 거잖아요. 그보다 어떻게 생각해요?”

“제가 창피할 거란 말씀이십니까?”

“그러지 않을까요?”

“그들은 전하를 마스터로 모신 절 부러워하게 될 겁니다.”

“그 턱도 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요?”

“제 느낌이 그렇습니다.”

“느낌에 미래를 거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닌데.”

“아무튼 앞으로도 계속 마스터로 모실 테니까 그렇게 아십시오.”

“까짓것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 이제부터 알리토는 프리우스오테르 가문의 훈련 교관이니까 그렇게 아세요.”

“프리우스오테르 가문이라고요?”

“히데우스 그 양반에게 이걸 받았거든요.”

김필도는 오른손에 끼고 있는 오테르 인장을 보여 주었다.

“오테르 인장?”

“이걸 받았다고 프리우스란 성을 버릴 수도 없고 해서 두 개를 합쳐 프리우스오테르라고 새로운 성을 만들었어요.”

“가신은…….”

“안주인은 이카렌이고, 가신은 1천여 명 정도 되요.”

“알겠습니다, 가주님! 프리우스오테르 가문을 마계 최강의 가문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알리토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잘해 봅시다, 훈련 교관. 그만 일어나시오.”

“네.”

알리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시아나는 뭐 하고 있는 거죠?”

언제부터인가 시아나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답답하다면서 산으로 가셨습니다.”

“아무튼!”

김필도는 문으로 향했다.

“잠시만 있다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전하.”

밖으로 나가는 김필도를 향해 오디안이 소리쳤다. 자칫 잘못하면 길이 엇갈릴 수도 있어 하는 말이었다.

“나도 늦을지도 모르니까 먼저 자요.”

김필도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이동 마법을 펼치며 몸을 날리길 얼마 후 카단 산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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