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216화 (216/225)

# 216

“이런!”

홀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율법의 집행자들.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마법은 암흑 마법이 아니라 빛의 마법의 일종이다. 빛의 검법을 펼친다고 해서 마법이 파훼될 리가 없다. 당연 이스마디온 전사단 전사들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크악!”

“아악!”

“아아악!”

그 와중에도 이스마디온 전사단 대원들은 계속 죽임을 당했다.

“대원들은 물러나라!”

홀딘은 검을 들고 전방으로 내달렸다.

“이스마디온 전사단은 가주님 뒤편으로 물러나라!”

“하앗!”

“타앗!”

“으악!”

“아악!”

“타핫!”

결국 부하들이 물러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홀딘은 이야크 등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20여 미터 상공으로 솟구친 그는 전방으로 쏘아져 가며 검을 휘둘렀다.

샤르릉!

그의 검에서 수백 개의 광채가 쏘아져 나갔다.

퍽! 퍽퍽퍽! 퍽퍽!

“커억!”

“크윽!”

“컥!”

어둠 속에서 비명이 흘러나오고 로브를 걸친 자들이 풀썩풀썩 쓰러졌다.

푸스스!

그리고 잠시 후 가루로 흩어졌다.

“차앗!”

또다시 홀딘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오고, 수백 개의 광채가 쏘아져 나갔다. 무려 1천 개에 달하는 빛의 검이었다. 홀딘 전면은 온통 빛으로 가득 들어찼다.

피할 곳도 도망칠 곳도 없는 완전한 소멸의 공간이 생성되고 그 안쪽에 있던 자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가루로 흩어졌다.

“아악!”

“으악!”

“크아악!”

하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당할 수는 없었다. 홀딘이 블랙 로브 전사단 대원들을 없애는 사이에 뒤편에 있던 이스마디온 전사단 대원들이 죽임을 당했다.

“빌어먹을! 후퇴하라!”

홀딘은 이를 악물고 고함을 내질렀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서 놈들을 전부 없애 버리고 싶지만 대원들의 죽음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대원들은 물러나라! 후퇴하라!”

두두두두! 두두두두!

이스마디온 전사단 대원들은 빠르게 물러났다.

홀딘은 맨 마지막까지 남아 적의 추격을 막았다. 그리고 대원들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지자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큭큭큭!”

헬드레이크는 멀어지는 이스마디온 전사단을 바라보았다. 도망친 자들은 기껏 절반가량이다. 한 번의 전투로 5백여 명을 없앤 것이다. 부하들 또한 많이 죽기는 했지만 아직은 충분하다.

“홀딘, 너는 이곳에서 죽는다!”

헬드레이크는 확신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잔몰!”

주위를 둘러보던 헬드레이크가 소리쳤다.

“넵!”

우렁찬 외침과 함께 건장한 사내 한 명이 뒤편으로 뛰어왔다. 블랙 로브 전사단 부단장인 잔몰이었다.

“지금부터 사냥을 시작해라. 사냥감은 홀딘이다.”

“알겠습니다, 단장님!”

잔몰은 전방으로 나아갔다.

곧 블랙 로브 전사단 대원 수십 명이 선두로 나서고 홀딘의 흔적을 더듬으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적의 흔적을 더듬어 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블랙 로브 전사단 대원들이 나아가는 속도는 엄청났다.

더불어 지구력 또한 뛰어났다. 4시간을 쉬지 않고 달렸지만 블랙 로브 전사단 대원들은 숨소리조차 거칠어지지 않았다. 그랬던 그들이 처음으로 멈춰 선 것은 숲을 가득 채우고 있는 피비린내 때문이었다.

“마족의 시쳅니다, 단주님.”

전방을 살피러 갔던 잔몰이 돌아와 보고했다.

“마족?”

“너무 많아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많단 말이냐?”

“네.”

“앞장서라.”

헬드레이크는 계곡으로 몸을 날렸다. 잠시 후 헬드레이크는 계곡 안으로 들어섰다.

“으음!”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계곡 안쪽은 온통 시체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가 마족이었다.

“서로 상잔한 것 같습니다.”

“마족끼리 싸우다가 저렇게 됐다는 거냐?”

“저길 보십시오, 단장님.”

잔몰은 왼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서로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은 마족이 나란히 쓰러져 있었다.

“그렇구나.”

헬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잔의 흔적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숨을 거둔 자들의 몸에서 튀어나온 전투기갑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아마 마족들 또한 쫓고 쫓기는 상황인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족의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홀딘의 흔적은?”

헬드레이크는 홀딘에 대해 물었다.

“마족들의 흔적과 뒤섞여 있기는 하지만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쫓아라!”

“알겠습니다, 단장님!”

잔몰은 고개를 숙이고 계곡을 나갔다. 마족의 시체로 인해 잠시 멈췄던 추격이 다시 시작됐다.

* * *

“헉! 헉! 헉헉!

거대한 덩치의 마족이 숲을 내달리고 있었다.

상당히 오랫동안 달려온 듯 전투기갑을 걸친 마족 사내의 몸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연신 주위를 살피며 달려가는 이자는 마계 제2원로 쿤할이었다.

슉!

느닷없이 나무 위로부터 차가운 기운이 폭사돼 왔다. 쿤할은 급하게 검을 휘둘렀다.

푸욱!

그러나 그의 검은 헛되이 허공만 가르고, 손잡이가 없는 특이한 검 한 자루가 왼편 어깨로 파고들었다.

“크윽!”

쿤할은 비명을 내지름과 동시에 몸을 굴렸다. 추가 공격에 대비한 행동이었다. 바닥을 구른다는 건 전사로서 치욕적인 행동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푸욱!

쿤할의 예상대로였다. 조금 전 그가 서 있던 자리로 왼편 어깨로 파고든 손잡이 없는 검이 박혀 들어갔다.

“차앗!”

쿤할은 나무 위로 쏘아져 가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 끝에서 검은색 광채가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갔다.

푸아악! 푸아악!

“크윽!”

“으윽!”

나직한 비명과 함께 온몸이 갈가리 찢겨 나간 마족 두 명이 나무 아래로 추락했다.

척!

쿤할은 지면으로 내려섰다. 하지만 그는 심하게 비틀거렸다. 그는 왼편 어깨로 파고들어 간 검날을 잡았다.

특이한 검은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전투기갑도 아무렇지 않게 뚫고 들어왔다.

검을 쥐자마자 씀벅한 느낌이 손바닥에서 느껴졌다. 손바닥에 벤 것이리라.

하지만 어깨로 파고들어 간 검을 그대로 두면 남은 건 죽음뿐이다.

쿤할은 이를 악물고 검을 뽑아 냈다.

“크윽!”

손바닥과 어깨에서 동시에 고통이 밀려왔다.

검을 뽑아 던져 버린 그는 재빨리 상처에 포션을 부었다. 고통이 심하긴 했지만 상처는 서서히 아물어 갔다.

“이것도 마지막이네.”

그는 텅 빈 포션 병을 휙 던져 버렸다.

“죽일 놈들!”

쿤할의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프리메우스가 보내준 1군단의 배신은 이미 예견했고, 방비도 했다. 그런데 배신자들은 1군단뿐만이 아니었다. 무려 2천 년 동안 팔리카 가문 소속이었던 5군단, 6군단, 7군단도 배신자였다.

계곡에 진영을 구축하고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기습을 당했다.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기는 했지만, 부하들이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확인할 시간도 없이 계속 쫓겨야 했다.

놈들은 집요했다. 전력을 다해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처럼 찾아내 공격을 해 왔다. 지금까지 쿤할이 도망치면서 죽인 자들만 수백 명이 넘었다.

그러나 벌써 5일.

판단력도 흐려지고 몸의 반응도 느려졌다.

기습에 어깨를 허용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쿤할은 조금 전 뽑아 낸 특이한 무기를 보았다. 적에게 가장 놀란 점이 있다면 저 무기다. 손으로 잡을 수도 없게 만들어진 특이한 무기는 전투기갑을 우습게 파고들고 있다. 그는 허리를 숙여 특이한 무기를 주워 들었다.

검면을 쥐고 이리저리 살폈다.

“맙소사!”

쿤할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놀랍게도 검에는 불, 물, 바람, 세 가지 기운이 내포돼 있었다. 무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전투기갑을 뚫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어떻게?”

쿤할은 여전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물체에 세 가지 기운을 동시에 불어넣는 건 마족도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무기를 사용하는 자들을 발견한 것이다.

“너희가 착용하고 있는 전투기갑에 대한 기술을 전수해 준 이도 우리라면 놀라 기절하겠구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검은색의 전투기갑을 걸친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였느냐?”

쿤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모습을 드러낸 자는 5군단 군단장 실바크였던 것이다.

“그렇다.”

실바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반 족이냐?”

“드반을 알다니 놀랍구나.”

실바크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마계에 있는 자들 중 누구도 드반 족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만 년 전 종족인 드반 족을 아는 자가 나타난 것이다.

“마계는 끝장났겠구나.”

“물론이다, 쿤할. 마족은 지금쯤 우리 드반의 노예가 됐을 것이다.”

“수뇌는 누구냐?”

“우리 드반 족의 드쉬는 크라반 님이시다.”

“홀리바인 가문의 총집사 크라반이란 말이냐?”

“맞다.”

“그렇군.”

쿤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은 독에 중독돼 있는 상황인데 프리메우스까지 제압했다면 마계는 저들에게 완전히 장악된 상태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쿤할, 네가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구나.”

실바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위에서 전투기갑을 걸친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족의 수는 족히 수백 명은 될 것 같았다.

“글쎄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쿤할은 검을 불끈 틀어쥐었다.

“설사 하늘이 두 쪽 난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쿤할. 넌 여기서 죽는다!”

실바크는 단언하듯 말했다.

“내 생각과는 다르네.”

느닷없이 쿤할 뒤편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실바크의 입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지나가는 나그네.”

숲 속에서 네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김필도, 시아나, 알리토, 오디안이었다.

“응?”

인간과 마족 그리고 오드가 섞인 특이한 조합에 실바크는 영문 모를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돼. 사실 네가 드반 족이란 말만 하지 않았어도 저기 저 양반이 죽는다고 해도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김필도는 헬칸을 어깨에 둘러메고 걸음을 옮겼다.

“알리토?”

김필도 일행을 바라보던 쿤할은 깜짝 놀란 얼굴로 알리토를 보았다.

“2천 년이 넘게 지났는데 날 알아보는군요.”

“최상급 마족을 무릎 꿇린 최초의 중급 마족인데 어찌 잊겠는가?”

“그땐 혈기가 왕성했던 때라 배려라는 걸 몰랐습니다. 지금이라도 괜찮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네. 자넨 충분한 배려를 해 주었네. 내게 이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음으로 해서 명예를 지켜 주지 않았는가. 그보다 큰 배려는 없다고 생각하네.”

“말하지 않았던 게 아닙니다.”

“그럼?”

“아무도 믿지 않더군요.”

“허허허! 그랬는가?”

“그렇습니다.”

“하긴 중급 마족이 최상급 마족을 이겼다는 걸 믿어 줄 만한 마족은 거의 없겠지.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인가?”

“마스터께서 저들에게 볼일이 있다고 하셔서요.”

알리토는 실바크 일행을 가리켰다.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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