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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 김필도-217화 (217/225)

# 217

쿤할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김필도 일행을 보았다. 키가 3미터니까 알리토는 최상급 마족이다. 그런 그가 마스터라고 부를 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지 못했다. 더구나 알리토 주변에는 인간 두 명과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몬스터라고 하기도 힘든 특이한 종족뿐이다.

알리토를 거느릴 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쟤들 많이 화난 것 같은데 일단 화부터 풀어 주고 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떻습니까?”

김필도는 헬칸으로 실바크를 가리켰다.

“화를 어떻게 풀어 준단 말인가?”

쿤할은 직감적으로 알리토가 마스터라고 부르는 자가 인간임을 알아차렸다.

“이게 없으면 화를 낼 수가 없잖습니까.”

김필도는 자기 머리를 툭 쳤다.

“쿡! 그렇구먼. 그런데 저들이 몇 명인지,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아는가?”

“이제부터 알아봐야지요.”

김필도는 오른손을 가슴에 댔다. 그리고 헤를리온이 온몸을 감싸는 사이에 고스트 킹을 소환했다.

-요즘은 자주 보는 것 같다, 권능의 주인.

“점점 자주 보게 될 거야.”

-그런데 무슨 일인가?

“일이 좀 많아.”

-없애야 할 자들이 저자들인가?

고스트 킹은 실바크 일행을 가리켰다.

“우리 식구와 이 양반을 뺀 나머지를 전부 없애면 돼.”

-이번엔 집 지키는 개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군.

“물론이야.”

그아우우!

시아나 또한 헤를리온을 착용한 듯 표범 모습을 한 채 전면을 바라보며 살기를 흘려 댔다.

“어이, 우린 준비 끝났어.”

김필도는 실바크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네놈은 누구냐?”

실바크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앞에 있는 자들의 정체를 짐작할 수조차 없다. 놈들 또한 눈이 있으니 5백여 명의 마족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겁먹은 표정은 고사하고 싸우겠다고 전투기갑을 걸친다.

미친놈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전에도 그랬잖아. 네가 드반 족이 아니었다면 절대 나서지 않았을 거라고.”

“드반 족을 아느냐?”

실바크는 물었다.

“최강의 전사로 만들어 준 아반 족을 배신하고 드래곤에게 팔아넘긴 아주 비열한 종족이라고 알고 있어.”

“응?”

실바크는 깜짝 놀랐다. 드반 족이 아닌 다른 종족이 아반 족과 드반 족에 얽힌 비사를 알고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내가 아반 족과 드반 족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놀란 모양이지?”

“……!”

실바크는 말없이 김필도를 바라보았다. 점점 놀라움을 안겨 주는 자였다.

아반 족과 드반 족에 얽힌 이야기는 드반 족에서도 수뇌들만 알고 있는 극비 사항이었다.

“너희가 처음 정착했던 장소가 이곳이라는 것도 알고, 세스티 감옥 일대에 마나 속박 마법을 건 자들이 너희 드반 족이라는 것도 알아.”

“네놈의 정체가 점점 궁금해지는구나.”

실바크는 결코 자신들이 당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는 천족이나 마족도 잘 모르는 드반 족의 역사를 김필도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잖아. 지나가는 나그네라고.”

김필도는 왼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웅!

나직한 소성이 왼팔 손목에서 흘러나오고, 손바닥 절반 크기의 원반 세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반의 크기를 줄이고 개수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카단 산에서 데메우스가 이끄는 마족과 싸우면서였다. 다급한 상황에서 고도의 정신 집중이 이루어지자 의지에 따라 원반의 수와 크기가 변한 것이었다.

그 원반에 혼돈의 기운을 심고 다크 아이(Dark eyes)라고 이름 지었다.

검붉은 색으로 변한 다크 아이는 엄청난 속도로 돌았다. 처음엔 미약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아무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김필도는 흡족한 얼굴로 실바크를 보았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나도 궁금한 게 아주 많다, 인간.”

“그럼 이건 어때? 패한 놈이 모든 걸 털어놓기로 하는 거 말이야.”

“그거 좋은 방법이구나.”

실바크는 차갑게 말했다.

“약속했다, 드반 족. 아반 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배신하면 혼날 줄 알아. 읏차!”

김필도는 앞에서 날아다니는 파리를 쫓는 것처럼 왼팔을 휘둘렀다.

핑! 핑핑!

그러자 그의 왼손에 있던 다크 아이 세 개가 실바크를 향해 쏘아져 갔다.

“그 따위 무기…… 헉!”

실바크는 다급히 상체를 뒤로 젖혔다.

천천히 날아오던 원반 세 개가 느닷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건 속도가 그만큼 빨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실바크의 예상대로였다.

그가 상체를 뒤로 젖히는 순간 섬뜩한 기운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커억!”

“크윽!”

“으윽!”

“아악!”

그리고 뒤편에서 나직한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가자!”

이어 김필도를 비롯한 고스트 킹, 알리토, 시아나가 마족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제7장 함께 주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형체도 소리도 없는 다크 아이에 마족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놀랍게도 다크 아이는 살아 있는 것처럼 마족들을 쫓아가며 죽음으로 인도했다.

김필도 또한 다크 아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알리토로부터 배운 마족 검술을 펼치며 마족들 사이로 파고들어 갔다.

육안으로 파악이 불가능할 정도로 빠른 다크 아이와는 달리 그의 움직임은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헬칸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어김없이 마족의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마족들은 동료가 공격하고 난 빈 공간을 이용하려고 애를 써 보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바로 옆에서 비호처럼 움직이며 양팔을 휘두르는 시아나 때문이었다.

김필도가 느리면서도 깔끔하게 마족을 없앤다면 시아나는 빠르고 잔인했다.

그녀의 양손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마족의 몸통에는 다섯 줄기의 기다란 선이 생겨나고 전투기갑이 해체됐다. 그녀의 손톱에 어린 기운 또한 혼돈이기 때문이었다.

김필도와 시아나가 나아가는 뒤편에는 마족들의 시체로 길이 생겨났다.

“죽음을 부르는 바람! 살아 있는 생명체를 멸한다. 다크 윈드!”

오디안의 마법 지팡이가 마족들에게 향했다.

쉬이익!

마법 지팡이 끝에서 바람이 쏟아져 나와 전방을 쓸었다.

“컥!”

“큭!”

“윽!”

그러자 마족들은 일제히 목을 틀어쥐었다. 뭔가가 입안으로 들어오더니 숨을 쉴 수가 없게 돼 버린 것이었다.

“생명체를 죽이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오디안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고, 전투기갑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고 해도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오디안은 마법으로 마족들이 숨을 쉬지 못하게 해 버린 것이었다. 오디안은 다시 마법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폭풍을 일으키는 바람! 그 강렬함이여! 윈드 볼케이노!”

퍽! 퍽퍽퍽! 퍽퍽퍽!

“크악!”

“아악!”

“으악!”

엄청났다. 목을 그러쥐고 있던 마족 50여 명의 몸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헐!”

알리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오디안이 저런 식으로 마족을 없앨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8클래스 마법사의 가공함을 직접 목격한 공격이었다.

“대원들은 암흑 마법을 펼쳐라!”

고함을 내지르는 실바크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상대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다섯 명이 저렇듯 강자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니 아무리 강자라고 해도 5백 명이나 되는 마족을 저렇게 장난감 다루듯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숨어 봐야 소용없는데.”

김필도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마족들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그는 제6의 감각을 끌어올렸다. 전엔 눈을 감아야 했지만 지금은 눈을 뜬 상태에서도 대기 중에 숨은 마족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김필도는 세 개의 원반을 바라보았다.

원반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마족의 위치를 찾아내 죽음을 선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다가 마훼가 정령의 방패와 하나가 됐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마훼가 쫓아가는 건 마족이 아니라 마족의 껍질을 뒤집어쓴 드반 족이었던 것이다.

“상대를 잘못 골랐어, 드반 족.”

김필도는 피식 웃으며 허공에 숨어 있는 마족을 쫓아 이동했다. 곧 그가 움직이는 곳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족이 펼치는 암흑 마법은 그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암흑 마법에 구애를 받지 않은 사람은 또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마법을 펼치고 있는 오디안이었다.

“죽음을 부르는 바람! 살아 있는 생명체를 멸한다. 다크 윈드!”

오디안은 계속 같은 마법을 펼쳤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그의 마력이었다.

처음보다 두 배 이상 마력을 끌어올리자 마법이 미치는 범위가 넓어졌다. 거의 1백여 명이 숨이 막혀 목을 그러쥐었다.

“폭풍을 일으키는 바람! 그 강렬함이여! 윈드 볼케이노!”

퍽! 퍽퍽퍽! 퍽퍽!

“말도 안 돼.”

실바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마족 두 명, 인간 두 명, 오드 한 명. 총 5명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마족이 아니, 스스로 드래고닉이라 칭했던 드반 족이 도살을 당하고 있다.

특히 인간들이 펼치는 검술과 마법은 상상을 초월했다.

검은 원반 세 개는 허공에 숨어 있는 부하를 찾아내 목을 잘라 내고, 마법사가 마법을 펼칠 때마다 부하들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제 이야기를 좀 해 볼까?”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실바크는 고개를 돌렸다.

그 앞으로 다가가고 있는 자는 김필도였다. 김필도의 검 헬칸에서는 마족의 목을 잘라 낼 때 묻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실바크는 검을 틀어쥐었다.

“내가 궁금한 것은 아반 족이 창조해서 너희에게 건네주었던 다두 드래곤의 행방이야. 다두 드래곤들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그걸 알고 싶어.”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실바크는 움찔했다. 설마 김필도가 다두 드래곤에 대한 걸 물어 올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을 잘못한 모양이다. 네 녀석의 팔을 잘라 놓고 질문을 했어야 하는 건데.”

김필도의 시선이 다크 아이로 향했다.

슉! 슉! 슉!

“타앗!”

섬뜩한 기운이 다가들자 실바크는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다크 아이보다 훨씬 느렸다.

스윽!

5미터도 날아오르기 전에 두 다리가 동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크아악!”

슉! 슉!

처절한 비명이 실바크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 다크 아이는 방향을 틀었고, 이번엔 실바크의 두 팔이 잘려 나갔다.

털썩!

두 다리와 팔이 잘려 나간 실바크의 신형이 지면으로 추락했다.

“커억!”

실바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설마 자신이 한 번도 피하지 못하고 당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탓이었다.

“이걸 만든 자를 알면 그렇게 억울하지 않을 거야.”

김필도는 왼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다크 아이가 날아와 손목에 앉았다.

“만든 이?”

“이걸 만든 자가 크록 아반드쉬거든.”

“크, 크록 아반드쉬 총부족장이라고?”

“크록 아반드쉬를 아는 녀석이 다두 드래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아냐?”

김필도는 고통도 잊을 채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실바크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직 존재한다는 말은 들었다.”

“어디에 있지?”

“그건 나도 모른다.”

“어딘가에 숨어는 있는데 모른다는 말?”

“그렇다.”

“그럼 한 가지 더. 혹시 말이야, 크록 아반드쉬가 다두 드래곤에게 내린 명령이 아직 유효할까?”

드래곤과 드반 족을 몰살하라고 내렸던 명령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무슨 명령을 말하는 거냐.”

“모른다는 말이네.”

김필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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