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221화 (221/225)

# 221

“투하하라!”

“투하하라!”

“투하하라!”

“타앗!”

“차앗!”

“하앗!”

드반 족 전사들은 우렁차게 고함을 내지르며 검을 내리찍었다.

“크악!”

“아악!”

“으악!”

수백 개의 머리가 동시에 떨어져 나가고, 잘려 나간 부위에서 마족의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둥둥둥! 둥둥둥! 둥둥둥! 둥둥둥!

츄아악! 츄아악! 츄아아악!

잠잠하던 바다가 갑자기 거칠어졌다. 그리고 아래로 쏟아져 내린 피는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거대한 원을 그렸다.

“생혈을 준비하라!”

“생혈을 준비하라!”

“생혈을 준비하라!”

또다시 명령이 떨어지고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수백 명의 마족이 바다를 향해 머리만 내놓은 채 엎드렸다.

“투하하라!”

“투하하라!”

두 번째 명령이 떨어지고 잘려 나간 머리 수백 개가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잘린 목에서 떨어진 피가 첫 번째, 두 번째 원을 그렸다.

둥둥둥! 둥둥둥! 둥둥둥!

북소리는 더욱 커지고 바다는 더욱 거칠게 요동쳤다.

“생혈을 준비하라!”

“생혈을 준비하라!”

붉은색의 원이 선명해지자 세 번째 명령이 떨어지고 안쪽에서 수백 명의 마족이 끌려 나와 측면 갑판에 엎드렸다.

그때 크라반은 측면 갑판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가 서 있는 곳 좌우 측에는 눈에 익은 두 명이 엎드려 있었다. 한 명은 제1원로 프리메우스고, 다른 한 명은 마계의 최고 통치자인 마왕이었다.

마왕은 고개를 돌려 크라반을 보았다.

“이 아래쪽에 다두 드래곤이 있는 게 맞느냐?”

“그렇다, 마왕. 이곳을 비롯한 세 곳의 바다에는 우리 드반 족의 최강 무기인 다두 드래곤이 잠들어 있다.”

“다두 드래곤이 이곳에 잠들어 있는 이유를 아느냐?”

“카이제 드반드쉬가 드래곤을 봉인하기 위해 차원의 벽을 세웠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내 바람이다, 크라반.”

마왕은 빙그레 웃었다.

바람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마왕 또한 그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마신전쟁의 단초를 제공했던 자들은 드반 족이었지만 그들은 다섯 종족이 전쟁을 치를 때 나서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다두 드래곤과의 전쟁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드반 족의 최강 무기였던 다두드래곤은 명령권자였던 드반 족을 공격하기 시작하였고, 드반 족은 다두 드래곤과 전쟁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카이제 드반드쉬라는 걸출한 인재가 나타나 다두 드래곤과의 전쟁을 이끌게 되는데, 그는 뛰어난 머리와 마법을 이용해서 대부분의 다두 드래곤을 없애게 된다. 하지만 세 마리, 토타이닉, 힐부아래, 페다부크는 어쩌지 못했다.

그때 생각한 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을 이용한 차원의 벽이었다. 카이제 드반드쉬는 바닷속에 다두 드래곤을 유인하여 가둘 결계를 만들고 차원의 벽을 세울 준비를 했다. 역사는 드반드쉬 혼자 한 걸로 기록했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이들이 동원됐다. 결국 차원의 벽을 완성한 드반드쉬는 다두 드래곤 세 마리를 바닷속 결계 안으로 유인하여 가둔 다음 차원의 벽을 이용해서 봉인했다.

“차원의 벽을 만들었던 카이제 드반드쉬가 남긴 방법대로 하는 거다. 실패할 수가 없다.”

크라반은 확신 어린 얼굴로 소리쳤다. 어느새 다른 배에서는 마지막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 속에는 크라반 옆에 있던 프리메우스도 들어 있었다.

프리메우스를 비롯한 마족 수백 명의 목이 잘려 나가고 바다로 쏟아진 피는 별 모양을 형성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999명의 피로 만들어진 그것은 다름 아닌 역 오망성이었다. 바다는 더욱 거칠어지고 배는 바람에 휘날리는 가랑잎처럼 출렁거렸다.

“나는 그들을 깨워서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

크라반은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찍었다.

툭!

마왕의 머리가 바다로 추락했다.

츄아악!

그리고 잘려 나간 단면으로부터 피가 폭포처럼 흘러나와 바다로 쏟아졌다. 정확하게 1천 번째 생혈이었다.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미친 듯이 북소리가 터져 나오고 물살이 거칠어졌다.

츄아악!

“드디어!”

크라반은 희열에 찬 얼굴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북소리에 의해 만들어진 혼돈의 기운이 마법진을 통해 흡수되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휘이이익!

소용돌이는 점점 커지고 빨라져 선박이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노를 끌어올려라!”

“노를 올려라!”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선장은 노를 끌어올릴 것을 명령했다.

츄아악! 츄아악!

그 와중에서 소용돌이는 계속 커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거대한 기둥이 나타났다. 그 기둥 또한 역 오망성 형태로 세워져 있었다.

“눈을 떠라, 토타이닉이여!”

크라반은 아래쪽을 바라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크아앙!

바닷속 저 깊은 곳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부르르!

크라반은 희열에 찬 얼굴로 온몸을 떨었다.

크아앙! 크아앙!

이번엔 두 번의 울림이다.

크아앙! 크아앙! 크…….

이어 다섯 번의 포효가 들려오더니 수면 아래쪽으로 검은 그림자가 비쳤다.

“토타이닉이여!”

크라반은 다시 고함을 내질렀다.

“네 주인인 나 크라반 드반드쉬를 영접하라!”

크아아아앙! 크아아아앙!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엄청난 포효와 함께 거대한 동체가 물속에서 솟아 나와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길이 1백 미터에 여덟 개의 머리가 달린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종족인 다두 드래곤이었다.

크아아앙!

순식간에 1백여 미터 높이까지 날아올라 간 토타이닉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그는 어떻게 된 건지 혼란스러웠다.

“우린 깨어난 거냐?”

맨 오른편에 있는 머리가 일행을 보며 물었다.

“그런 모양이야, 토타이닉!”

“그럼?”

토타이닉이라 불린 다두 드래곤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대가 우리를 깨웠는가?”

토타이닉은 크라반을 보며 물었다.

“그렇다, 토타이닉! 내가 그대를 깨웠다. 나 크라반 드반드쉬는 그대들의 주인이다!”

“드반드쉬?”

토타이닉은 고개를 갸웃했다.

드반드쉬란 말은 아득한 기억 속에 각인된 단어였던 것이다.

-토타이닉.

드반 족과 드래곤을 멸하라.

이번이 마지막 명령이다.

이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하면 그대 영혼은 영원히 자유다. 드반 족을 찾아내는 방법은 이미 그대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크아아아앙!

토타이닉의 입에서 살기 어린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50여 척의 선박에서 수많은 드반 족이 감지됐다.

“토타이닉! 내가 널 깨웠다. 나는 네 주인이다!”

크아앙!

토타이닉의 머리 여덟 개에서 일제히 포효가 터져 나오고 그의 배가 잔뜩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엄청난 힘이 토타이닉 주위로 모여들었다.

“헉!”

크라반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토타이닉의 의도를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토, 토타이닉. 내가 널 깨웠다! 나는 네 생명의 은인이다!”

크아앙!

또다시 광포한 외침이 터져 나오고 토타이닉 머리 여덟 개가 일제히 벌어졌다.

슈아악! 슈아악!

그리고 새하얀 광채가 선박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것은 드래곤 최강의 힘이라 불리는 브래스 중의 브래스, 디바인이었다.

“내가 널 깨웠다, 토타이닉! 난 네 주인…… 아아악!”

크라반은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가루로 흩어졌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박에 타고 있던 이들은 물론이고 선박까지 전부 가루로 변해 흩어지고 말았다.

“도, 도망쳐라! 드래곤이 미쳤다, 도망쳐라!”

각 선박의 선장은 노잡이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도망친다는 건 그들의 바람일 뿐이었다. 토타이닉은 계속해서 브래스를 쏘았다.

토타이닉의 공격은 금세 끝났다. 50여 척의 선박과 5천여 명이 죽임을 당했지만 작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나다, 토타이닉!

바로 그때 토타이닉의 머릿속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힐부아래였다.

-오랜만이다, 힐부아래.

-나도 있다, 토타이닉.

이어 페다부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다부크,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다, 토타이닉.

-어떤가?

토타이닉은 물었다.

-이 세상에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아반은 남아 있지 않다, 토타이닉.

-크록 아반드쉬의 마지막 명령만 수행하면 영혼은 자유를 얻는단 말이군.

토타이닉의 눈에서 차가운 광채가 일렁거렸다.

창조주 아반드쉬로부터 받은 영원의 명령. 그 명령을 수행하지 않으면 소멸이라는 참혹한 형벌이 따른다.

-자유를 얻는 순간 이 세상은 우리 소유가 된다.

힐부아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그런데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파악했는가?

토타이닉은 힐부아래에게 물었다.

-천족, 마족, 인간, 드워프, 엘프는 문 대륙에서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각 대륙으로 흩어지게 된 건가?

-철족 때문이었다.

-우리의 노예였던 그 철족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토타이닉.

-좀 더 자세히 말해 봐라, 힐부아래.

-그러니까…….

힐부아래의 입에서 철족을 비롯한 여섯 종족에 얽힌 사연이 흘러나왔다. 힐부아래에게 여섯 종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 자는 드반 족 천계 책임자였던 헤라반이었다.

-그러니까 다섯 종족은 철족의 공격을 피해서 문 대륙 주위에 있던 다른 대륙으로 흩어졌다는 말이구먼. 드반 족은 문 대륙에서 떠나는 자들에 섞여 도망쳤고.

-그렇다, 토타이닉.

-드반 족이 가장 많이 숨어 있는 곳이 어딘가?

-가장 많은 곳은 마계고, 그 다음이 천계 그리고 인간들이 사는 휴도니아 대륙에 극소수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먼저 마계부터 정리해야겠군.

-이쪽으로 오게.

-알았다, 힐부아래.

토타이닉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날갯짓을 하며 북쪽으로 날아갔다. 순간 이동 마법이 있지만 그는 날갯짓을 택했다. 다시 태어난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였다.

“이젠…….”

토타이닉이 나아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내가 신이다!”

이어 광포한 외침이 주위로 퍼져 나갔다.

* * *

휴도니아 대륙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펠콘 성과 고칸 성으로 물러갔던 서로군벌과 동로군벌이 제국 수도를 향해 진격했다는 소식과 함께 그들의 진격을 막기 위한 영지 연합군 또한 출병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온 것이다.

한 번의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쉽게 미소를 지을 상황이 아니었다. 전엔 각각 1천여 명에 불과했던 천족과 마족의 수가 15만 명씩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천족 15만, 마족 15만 명. 과연 발탄 제국의 힘으로 그들을 막아 낼 수 있을지…….

일부는 걱정스런 얼굴로 전장을 주시했고, 일부는 피난 짐을 싸서 문 대륙으로 떠나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그들과는 달리 비교적 평온한 곳이 있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발탄 제국 황실이었다.

아니 티격태격하는 작은 소란은 있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패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라미는 퉁퉁 부은 얼굴로 아버지 홀딘을 쏘아보았다.

그 당시 김필도는 홀딘에게 한 방만 맞은 게 아니었다. 홀딘은 김필도를 쫓아가면서 쉬지 않고 구타를 했다.

옆에서 홀딘을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일방적인 구타는 김필도가 기절하고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야 이것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그 사람이 어디가 어때서요? 아빠, 그 사람 때문에 목숨을 건졌잖아요.”

“그건 고맙다고 이미 말했다.”

“제 목숨도 그가 구해 주었단 말이에요.”

“목숨을 구해 주었다고 전부 자진 않는다.”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난 그 녀석이 싫다.”

“어디가 싫은데요?”

“키가 작아도 너무 작아. 어지간한 차이라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너와 그 녀석은 아래쪽에 커다란 돌을 놓아도 키를 맞출 수가 없어.”

“남녀가 함께 사는 데 키가 무슨 소용 있어요?”

“아무튼 안 돼!”

“러브 서클이 향기를 뿜었어요.”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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