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223화 (223/225)

# 223

둥! 둥! 둥! 둥! 둥!

진격 명령이 떨어지자 기사와 기병 병사들은 북소리에 맞춰 걸음을 옮겼다. 여기저기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오고 양측 간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기갑기사들은 돌격하라!”

“기사들은 돌격하라!”

“기갑기사는 돌격하라!”

“기사는 돌격하라!”

4백 미터 거리를 남겨 두었을 때 양측에서 돌격 명령이 떨어졌다.

“타앗!”

“차앗!”

“타앗!”

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두두두두!

수만 필의 이야크와 전투마가 서로를 향해 내달렸다. 이야크 위에는 전투기갑을 걸친 기갑기사가 탔고, 전투마 위에는 갑옷을 걸친 일반 기사가 탔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콰콰쾅! 쾅콰쾅! 쾅콰쾅!

거의 10만에 달하는 기사가 양측의 중앙에서 부딪쳤다.

“으아악!”

“아아악!”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양측 진영 중앙에서 터져 나왔다.

거의 동시에 수백 명이 심장 또는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지만 누가 죽었는지 어느 쪽이 승기를 잡았는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기병은 나가라!”

“기병은 출병하라!”

“기병은 출병하라!”

“기병은 나가라!”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기사에 이어 기병까지 가세하자 양측 진영은 난전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이겼다, 노르탄!”

하다르만 백작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시간을 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는 난전이다. 지금 상황에서 병력을 조금씩 투입하게 되면 적 또한 맞대응할 수밖에 없고 전투는 내일 아침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다.

“보병 제1군은 준비하라!”

하다르만 백작은 뒤편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제9장 뒈질 줄 알아!

“빌어먹을!”

노르탄 공작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전투가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적군의 선봉으로 천족이 나설 거라 확신했고, 진형 또한 그 상황을 염두에 두고 구축했다.

그런데 천족 대신 서로군벌이 먼저 치고 나온 것이다.

처음부터 꼬이는 것 같더니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전혀 놔 주지 않는 서로군벌의 행태 때문이었다.

전투라는 게 밀고 들어가고 밀려나고, 때로는 휴식을 취하면서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건 뭐 첫날에 끝장을 보자는 건지 쉬지 않고 달려들고 있다.

평원 전투의 특성상 한번 밀리면 끝장인데 물러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이 하나를 투입하면 아군도 하나를 투입하고, 열을 투입하면 이쪽도 열을 투입해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흐르고 희생만 늘고 있다.

이제 첫 번째 충돌인데 작전이 아무 소용없는 개싸움이 되고 만 것이다.

“해가 뜬다. 조금만 버텨라!”

“해가 뜨기 시작한다! 조금만 버텨라!”

“해?”

적진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노르탄 공작은 의아해졌다.

적과 아군은 이미 전력의 절반을 소진한 상태다. 해가 뜬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 그런데 해라니.

번쩍!

바로 그때 저 멀리서 황금빛 광채가 일렁였다.

“……!”

노르탄 공작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는 얼른 고개를 돌려 동쪽을 바라보았다. 프라넬 평원 동쪽 끝에서 붉고 거대한 덩어리 하나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태양이었다.

“맙소사!”

그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적이다!”

“천족이다!”

“천족이 앞으로 나왔다!”

“아, 안 돼!”

노르탄 공작은 비명처럼 소리쳤다.

황금색 전투기갑과 황금색 갑옷, 그리고 황금색 검을 가진 천족 15만 명이 태양 빛을 받으며 늘어서면 아군은 앞을 보지 못한다. 아니 그들의 위용에 사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 것이다.

“후, 후퇴해야 해, 후퇴하라! 후퇴하라!”

노르탄 공작은 고함을 내질렀다.

버언쩍! 푸아악!

바로 그때였다. 영지 연합군 전면이 온통 황금색 광채로 들어찼다.

“천계 전사들이여, 돌격하라!”

“크아아아!”

“우와와와와!”

“캬우우우우!”

15만 명의 천족 전사들은 광포한 고함을 내지르며 도하 군을 향해 돌진했다.

“공작 각하!”

“북쪽으로 퇴각하라! 북쪽으로 가서 아스달 군과 합류하라!”

노르탄 공작은 전력으로 내달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아스달 군은 헬모트 공작이 이끄는 영지 연합군을 일컫는 말이다. 노르탄 공작과 헬모트 공작은 만일 어느 한쪽이 불리해져 퇴각하게 되면 서로 합치기로 약속하고, 하룻길을 유지한 채 전투 준비를 했던 것이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스악! 슉! 스악!

“크악!”

“아악!”

“으아악!”

벌판 곳곳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이야크를 탄 천족은 도하 군의 기사와 기병을 없앴고, 보병들은 달려가는 도하군 보병의 등에 대검을 꽂았다.

천족 15만 명.

그들은 금빛 해일이었다.

“북으로 후퇴하라! 북쪽으로 가면 아스달 군이 있다. 그들과 합류하라!”

“북으로 가면 아스달 군이 있다!”

“아스달 군과 합류하라!”

노르탄 공작의 외침에 이어 그의 명령을 복창하는 외침이 벌판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노르탄 공작이 이렇듯 고함을 지른 이유는 그의 수중에 있는 태양의 반지 때문이었다.

태양의 반지, 기사, 그리고 병사 셋 중 한 가지만 부족해도 황제는 꿈도 꿀 수 없고, 자칫 잘못하면 공작 자리도 위태롭게 된다. 그 상황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기사와 병사를 한데 모을 필요가 있었다.

“북으로 가면 아스달 군이 있다!”

노르탄 공작은 계속 고함을 내지르며 북쪽으로 내달렸다.

“브라이트!”

세이아칸은 옆에서 달려가고 있는 천좌 제3군을 불렀다.

“하명하십시오.”

브라이트는 이야크를 몰아 세이아칸 옆으로 다가갔다.

“너무 빠르다. 속도를 늦춰라.”

세이아칸이 속도를 늦춘 것은 지금 상태로 가다 보면 아스달 군 후미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리멸렬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건 그가 바라는 상황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표시 나지 않게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브라이트는 이야크를 몰아 선두로 내달렸다.

잠시 후 천족의 공세가 약간 느슨해졌다. 하지만 도망치는 도하 군은 천족의 공세가 약해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해가 뜸과 동시에 시작됐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도하 군은 아스달 군 진영에 도착했다.

아스달 군은 북로군벌과 치열하게 교전 중이었다. 그러나 서로군벌과 전투를 치렀던 도하 군처럼 일방적으로 밀리는 상황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냐?”

갑자기 진영 후미가 어수선해지자 헬모트 공작은 그의 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펠톤은 급하게 뒤편으로 이야크를 몰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돌아와 상황을 보고했다.

“도하 군입니다, 아버지.”

“그게 무슨 소리냐?”

헬모트 공작은 깜짝 놀랐다.

급하면 서로의 진영으로 후퇴하기로 했지만 전투는 어제 시작됐다. 설마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패할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도하 군이 패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전부 우리 쪽으로 오고 있단 말이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의 후미는 어떠냐?”

“후미라면…….”

“서로군벌이 쫓아오고 있는지 그걸 묻는 거다, 펠톤!”

“천족입니다. 천족이 오고 있습니다!”

“이런 제길. 너는 지금 당장 남아 있는 기사와 궁병을 후미로 배치해라.”

“알겠습니다, 아버지!”

펠톤은 급하게 이야크를 달려갔다.

“기사와 궁병은 후미로 집결하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기사 2만 명과 3만 명의 궁병이 후미로 내달렸다.

그들은 후미에서 1킬로미터를 더 나아간 지점에 진형을 구축했다. 기사들이 앞에 서고 궁수는 기사들 바로 뒤편으로 늘어섰다. 그들과 본 대 사이 1킬로미터 공간은 도망쳐 오는 도하 군을 수용하기 위한 장소였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먼저 도착한 자들은 말과 이야크를 타고 있던 기사와 기병들이었다. 그들은 아스달 군 사이로 내달려 빈 공간으로 들어갔다.

“도하 군 기사들은 집결하라!”

“도하 군 기사들은 집결하라!”

“전투기갑을 착용한 자들은 선두로 나가라!”

아스달 군이 만들어 준 공간으로 들어간 도하 군 진영 곳곳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자는 노르탄 공작이었다.

아스달 군 진영에 도착했다고 해서 넋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아스달 군과 힘을 합쳐 천족을 물리쳐야 할 때였다.

부하들이 전열을 가다듬는 모습을 지켜보던 노르탄 공작은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말과 이야크를 소지한 기사와 궁병은 적의 공격을 피해 이곳에 도착했지만 발로 뛰어야 하는 보병들은 천족들에게 따라잡혔을 가능성이 높았다.

“빌어먹을!”

노르탄 공작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벌판 너머에는 황금색 갑옷을 걸친 자들과 도하 군 병사들이 뒤섞여 이편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궁병은 준비하라!”

천족의 모습이 보이자 펠톤은 명령을 내렸다.

척! 척척척! 척척척! 척척척!

궁병들은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고 화살을 시위에 먹였다. 천족들은 벌판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면서 무섭게 이편을 향해 달려왔다.

“크악!”

“아악!”

“으아악!”

천족이 가까워지면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천족들 사이에서 달려오던 도하 군 병사들이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쏴라!”

펠톤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천족들 사이에 도하 군 수만 명이 있지만 그들의 생사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틱! 틱틱틱! 틱틱틱!

3만 개의 화살이 한꺼번에 적진을 향해 날아갔다.

스아아악! 스아아악! 스아아악!

스산한 바람 소리를 남기며 날아가는 화살은 태양 빛마저 집어삼켰다.

푹! 푹푹푹! 푹푹푹! 푹푹푹!

“크악!”

“악!”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천족 진영에서 터져 나오고 수천 필의 이야크가 풀썩풀썩 쓰러졌다. 그러나 화살에 맞은 천족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이 걸친 갑옷 때문이었다.

“계속 쏴라!”

펠톤은 재차 명령을 내렸다.

또다시 3만 개의 화살이 허공을 가리고 수천 필의 이야크가 쓰러지고, 이야크에서 떨어지거나 갑옷 사이를 뚫고 들어온 화살을 맞은 천족이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천족은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진격 속도를 더 높였다.

“기사들은 공격하라!”

“우와아아!”

“와아아!”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아스달 군 기사와 도망쳐 왔던 도하 군 기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돌격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콰콰쾅! 콰콰콰쾅!

양측 진영 선두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이어 난전이 벌어졌다. 거의 동시에 말과 이야크 수백 필이 죽임을 당했고, 그와 비슷한 수의 천족과 인간 기사들이 죽었다.

그런 그들의 행태를 내려다보는 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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