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224화 (224/225)

# 224

전장에서 1백여 미터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들은 김필도 일행이었다.

김필도를 비롯한 천족과 마족이 머물고 있는 곳은 공중 정원이었다. 라파에서 공중 정원에 오른 김필도는 그곳에 펼쳐진 마법을 이용하여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멋지네.”

김필도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맺혔다.

전선은 두 곳에 형성돼 있었다. 중앙에는 아스달 군과 도하 군이 있고 마족과 천족이 주축이 된 북로군벌과 서로군벌이 공격을 퍼붓고 있는 상황이었다. 2백만 명에 가까운 병력이 한자리에 모여 군무를 펼치는 것 같았다.

김필도는 한편에 두었던 마법 통신구를 집어 들고 마나를 주입했다. 곧 마법 통신구에 데푸시의 얼굴이 나타났다.

“지금 어디냐?”

“전장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북쪽입니다, 형님.”

“병력은?”

“기갑기사 1만 5천 명입니다.”

“상황 봐 가면서 천천히 와!”

“알겠습니다, 형님.”

데푸시와 통신을 끝낸 김필도는 이번엔 이프리스를 불러냈다. 이프리스 또한 1만 5천 명의 기갑기사를 거느리고 이편을 향해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락을 취한 자는 동로군벌의 수장 디바스칸 백작이었다.

“지금 어디 있소?”

“전장에서 동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이곳 상황은 내가 알려 줄 테니까 그곳에서 대기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전하. 그런데 라칸 공국에도 아는 분이 있습니까?”

“라칸 공국은 왜?”

“북동쪽 몬슨의 숲에 15만 명 정도가 있는데 라팔 공국 깃발을 들었습니다.”

“몬슨의 숲이면 여기서 4킬로미터 떨어진 곳인데?”

“아시는 분이 아닙니까?”

“그들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백작.”

김필도는 빙그레 웃었다. 몬슨의 숲에 숨어 있다는 그들은 라파를 떠난 리처드 일행이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수고하시오.”

김필도는 통신 마법구에서 마나를 제거했다.

“한 놈만 안 나왔네.”

“누굴 말하는 거죠?”

옆에 있던 리시아가 물었다.

“10인 위원회 위원장과 위원들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네요.”

리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긴 몰라도 어딘가 숨어서 이곳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거예요.”

김필도는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동서로 길게 늘어져 있던 전선은 조금씩 변하더니 지금은 한 덩어리로 뭉쳐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제 생각도 그래요.”

리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김필도의 예상대로였다.

아론을 비롯한 10인 위원회 위원들과 신의 정원 정원사 1만 명은 전장에서 북서쪽으로 2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올 때가 됐는데…….”

아론은 연신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가 기다리는 건 마계와 천계를 초토화시켰다는 다두 드래곤이었다. 마계와 천계의 소식을 받은 건 이곳으로 오기 전날 밤이었다. 마계와 천계의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파견한 정보원으로부터 엄청난 소식이 들어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두 드래곤의 등장에 관한 내용이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세 마리의 다두 드래곤은 마계 전역을 헤집고 다니며 살아 있는 생명체를 없애 버렸다고 하였다.

다두 드래곤.

그 존재에 대해 아론이 알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초대 회주였던 카이제 드반드쉬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책 속에서 다두 드래곤에 대해 적힌 피루스를 발견했다.

원래는 두 장의 양피지를 붙여 그 안에 숨겨 두었던 것이었는데 붙여 놓은 부분이 벌어지면서 드러난 모양이었다.

그 피루스에는 차원의 벽을 세웠던 이유와 함께 다두 드래곤과 드반 족에 대해 나와 있었다.

“나는 믿는다, 세월이 다두 드래곤의 기억 속에 각인된 크록 아반드쉬의 명령을 앗아 갔을 거라고. 아니 초대 회주께서 그놈들에게 펼쳤던 기억 소거 마법을 믿는다.”

카이제 드반드쉬는 바닷속에 마법 결계를 만들면서 다두 드래곤의 기억을 제거하는 마법과 더불어 드반 족을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는 마법도 함께 펼쳐 두었다.

즉 다두 드래곤에게는 기억 소거 마법과 새로운 명령을 기억하는 마법이 동시에 펼쳐진 것이었다.

“기억이 없어지고도 남을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까. 오, 온다!”

아론의 눈에 광채가 어렸다. 저 멀리에서 검은 점 세 개가 이편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점의 크기는 빠른 속도로 커졌다.

“쿠워워워워우!”

“크아아아아!”

“캬우우우웅!”

드래곤 피어가 내포된 엄청난 포효에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던 천족과 마족 그리고 인간들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마, 맙소사!”

“저럴 수가!”

“드, 드래곤이다!”

벌판은 순식간에 패닉 상태로 빠져들어 갔다.

8개의 머리가 달린 다두 드래곤 세 객체.

그들의 등장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쿠아아아!”

“크아아아!”

“죽여라!”

다두 드래곤 세 마리는 곧바로 전장으로 쏘아져 내려갔다. 50미터 상공까지 내려간 드래곤들의 입이 열리고 각각의 기운을 간직한 브래스가 지상으로 쏘아졌다.

화염 브래스, 얼음 브래스, 독 브래스, 초산 브래스 등 드래곤이 뿜어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브래스가 번개처럼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반항이나 대항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했다.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눴던 천족, 마족, 인간은 한 덩어리가 돼 죽어 갔다.

“마, 말도 안 돼!”

헬모트 공작은 넋을 잃었다.

비록 약간 밀리는 감이 없지 않았지만 아직 비장의 수는 사용하지도 않았고, 오늘 밤만 견디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숨겨 둔 비장의 수는 써 보지도 못하고 모든 것이 가루로 변해 흩어지고 있다.

“아, 아버지!”

펠톤은 겁먹은 얼굴로 헬모트 공작을 향해 달려갔다.

“침착해라! 하늘이 무너져도…….”

“크아아아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섭게 거대한 불덩어리가 쏘아져 왔다.

“아버지!”

펠톤은 고함을 내질렀다.

“젠장!”

헬모트 공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푸아악!

그런 그를 향해 직경 20미터가 넘는 화염 브래스가 덮쳐들었다. 화염 브래스에 정통으로 맞은 헬모트 공작과 그의 아들 펠톤 그리고 호위기사들은 한순간에 재로 흩어졌고, 주위에 있던 수백 명은 숯으로 변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여덟 개의 머리를 가진 드래곤 세 객체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며 브래스와 마법을 난사했다.

천족과 마족, 인간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몰살을 당했다. 수만 명이 선 채로 죽임을 당했고, 수만 명은 도망치다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지금도 쉬지 않고 죽어 가고 있다.

“엄청나네.”

허공에서 내려다보던 김필도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왜 드래곤들이 저들을 겁냈는지, 미래마저 걸고 저들과 전쟁을 치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다두 드래곤은 싸움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절대적인 존재, 신이었다.

김필도는 고개를 돌려 홀딘과 쿤할을 바라보았다.

둘은 굳은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김필도는 물었다.

“저들은 제정신이 아니에요, 바르칸.”

김필도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라헤나였다.

“무슨 말이죠?”

“저들을 둘러싸고 있는 마나를 보세요, 바르칸. 저건 정상적인 상태의 마나가 아니에요.”

라헤나는 다두 드래곤들을 가리켰다.

“그렇군요.”

신의 능력을 가진 자들이라면 아무리 많은 살겁을 자행하더라도 마나는 지극히 안정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다두 드래곤의 몸 주위에는 광포한 마나가 요동치고 있다. 그건 다두 드래곤들이 지극히 혼란스럽다는 뜻이었다.

“그럼 없애는 수밖에 없겠군요?”

홀딘은 라헤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없애느냐 하는 게 문제잖아요.”

“이 공중 정원을 이동시켜서 놈들 등판으로 내려가는 건 어떨까요?”

“여덟 명이 동시에 내려가서 한꺼번에 머리를 잘라낸단 말인가요?”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홀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르칸 생각은 어때요?”

라헤나는 김필도를 돌아보았다.

“한 놈을 처리한다고 해도 나머지 두 놈이 문제잖아요?”

김필도는 왼팔을 주무르며 말했다.

조금 전부터 마훼가 스며든 왼팔에서 아릿한 통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빠르게 처리하고 이곳으로 숨으면 안 될까요?”

“그렇다고 해도 들키고 말 겁니다.”

“놈들은 최강의 마법사들이네. 공격하지 않아도 우린 금세 들키고 말 거네.”

홀딘이 김필도를 보며 말했다.

“기회가 있을 때 한 놈이라도 없애잔 말인가요?”

“결정은 자네가 하게.”

“저놈이 제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군요.”

김필도는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다두 드래곤을 가리켰다. 아래를 향해 미친 듯이 브래스를 난사하고 있는 다두 드래곤은 힐부아래였다.

일행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의 1백50만 가까이 모여 있었는데 지금은 3분의 1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전쟁은 끝난 상태라고 봐야 할 듯했다.

“저놈으로 하세.”

홀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홀딘, 쿤할, 알리토, 록, 히발, 하라미, 이카렌은 닐 따라오세요.”

“저도 있어야 합니다, 전하.”

오디안이 김필도를 따라나섰다. 일행을 한꺼번에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이동 마법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합시다.”

김필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일행은 공중 정원 한편 끝에 섰다. 그들은 이곳까지 오면서 각자 잘라 낼 머리를 정한 상태였다.

“준비됐습니까?”

오디안의 물음에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겠습니다, 이동!”

오디안의 외침이 떨어지고 아홉 명이 동시에 사라졌다.

잠시 후 그들이 나타난 곳은 힐부아래의 등이었다.

“차앗!”

“타앗!”

“이압!”

일행은 힐부아래 등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크아아아앙!”

아래쪽을 향해 브래스를 쏘아 대던 힐부아래는 등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런 이물감에 깜짝 놀라 고함을 내질렀다.

그는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여덟 개의 머리가 일제히 뒤편으로 돌아가는 순간 여덟 자루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크아아아!”

“아아아악!”

“으아아아!”

“크아앙앙!”

잘려 나간 머리는 빠른 속도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힐부아래!”

“힐부아래!”

동료인 힐부아래가 죽임을 당하자 토타이닉과 페다부크는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이동!”

바로 그 순간 오디안은 일행을 공중 정원으로 이동시켰다.

“크아앙!”

하지만 상대는 10클래스 마법을 펼치는 드래곤.

허공에 숨어 있는 공중 정원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토타이닉과 페다부크는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저런 개새끼들! 탈출해!”

김필도는 고함을 내지르며 라헤나와 리시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탈출하라!”

“탈출하라!”

다급한 외침과 함께 공중 정원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아래로 몸을 날렸다. 지상에서 1백 미터 상공이라는 건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푸아악! 푸아악! 푸아악!

콰아앙! 콰앙!

열여섯 개의 브래스가 훑고 지나가자 공중 정원은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쿵! 쿵쿵! 쿵쿵!

그때 공중정원에서 탈출한 김필도 일행은 지상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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