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225화 (225/225)

# 225

“크윽!”

“커억!”

“으윽!”

전투기갑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다고는 하지만 1백 미터는 너무 높았다. 다리가 부러진 자, 팔이 부러진 자, 갈비뼈가 나간 자들이 속출했다.

“크아앙!”

공중 정원을 없애 버린 토타이닉과 힐부아래는 김필도 일행을 노려보았다.

“벌레 같은 것들이!”

두 다두 드래곤의 눈에서 새파란 광채가 쏘아져 나왔다.

“죽여 주겠다, 벌레들!”

토타이닉과 힐부아래는 차갑게 소리치며 김필도 일행을 향해 날아갔다. 순식간에 50미터 상공까지 내려온 두 드래곤은 입을 벌렸다.

“젠장!”

김필도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크록 아반드쉬가 남긴 마훼가 놈들을 막아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녀석은 다두 드래곤이 나타났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바르칸!”

“루시안!”

김필도 품에 있던 리시아와 라헤나가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았다.

휙!

스아악!

바로 그때였다.

김필도는 왼손을 불쑥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건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들린 것이었다.

“이건?”

깜짝 놀라 왼손을 바라보고 있는데 손바닥에서 검은 알갱이가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검은 알갱이는 순식간에 수천수만 개로 늘어나더니 메뚜기가 되어 다두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

“그따위 잔재주는…….”

토타이닉의 여덟 개 입 중 하나가 열리더니 검은 덩어리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푸아악!

슈우욱! 슈우욱!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검은 알갱이는 토타이닉의 브래스를 무력화시키며 그대로 날아갔다. 그리고 토타이닉의 온몸으로 파고들어 갔다.

“허억! 크아악!”

토타이닉은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검은 알갱이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에 모래성이 허물어지는 것처럼 토타이닉의 동체가 조금씩 모습을 감췄다.

“크아아악!”

토타이닉의 동체가 사라진 건 한순간이었다. 토타이닉을 먹어 치운 검은 알갱이들은 이번엔 페다부크를 향해 날아갔다. 페다부크는 검은 알갱이들을 막아 내기 위해 최강의 방어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 또한 금세 검은 알갱이들에게 먹혀 소멸됐다.

“맙소사, 마나충!”

김필도의 품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흘러나왔다. 검은 알갱이를 바라보며 소리를 지른 사람은 라헤나였다.

“저것들을 마나충이라고 해요?”

김필도는 라헤나를 보며 물었다.

“네. 다두 드래곤을 만들고 나서 그들이 너무 강해지자, 뭔가 그들을 제어할 필요를 느끼고 새롭게 구상한 무기라고 해요. 하지만 이론상의 무기일 뿐 실제로는 구현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마나충이 정확하게 뭐죠?”

“마나를 먹는 벌레라고 보시면 돼요.”

“다두 드래곤 마나만 먹는 건가요?”

“그렇다고 해요. 그런데 저걸 어떻게 구한 거죠?”

“크록 아반드쉬 그분이 남긴 거예요. 지하 공동에서 얻었어요.”

“결국 성공하셨군요.”

“크록 아반드쉬와는 어떻게 되는 사이죠?”

“제 먼 조상이에요.”

“그랬군요. 다 끝난 것 같으니까 그만 일어나죠.”

김필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장은 온통 시체들로 가득했다.

“이것 보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홀딘이 작은 알갱이들을 가지고 왔다. 그건 조금 전 다두 드래곤을 잡아먹었던 마나충이었다. 임무를 완수한 마나충 또한 자연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다두 드래곤의 마나만 먹는 마나충이랍니다.”

김필도는 빙긋 웃으며 자리를 옮겼다.

시체들 사이에서 악연을 맺었던 자들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신의 정원 10인 위원회 위원장인 아론의 머리를 보았고, 대천신군의 수장인 세이아칸의 상체도 보았다. 도망치다가 하체는 브래스에 녹고 상체만 남은 모양이었다.

“끝났네. 아니 아직 한 명이 남은 건가?”

“크악!”

“아악!”

“으악!”

김필도의 중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북동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일행은 비명이 들려온 북동쪽을 바라보았다.

“라헤나.”

김필도는 다시 고개를 숙여 시체를 살피며 라헤나를 불렀다.

“말씀하세요.”

“루시안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은 자를 원수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은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검이 아니었다면 바르칸은 이곳에 오지 못했을 거라는 뜻인가요?‘

“네.”

“바르칸이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오테르라면 원수이겠지민 학사 사시미 김필도라면 은인이 되겠죠.”

“제가 누구로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단 말이군요.”

“제 생각은 그래요.”

“알았어요.”

“그동안 고민했던 거예요?”

“약간요.”

“어떻게 결론을 내린 건데요?”

“아직 못 내렸어요.”

“그럼 이렇게 하세요.”

“어떻게요?”

“바르칸 앞에 무릎을 꿇으면 살려 주고, 그렇지 않고 황제가 되겠다고 검을 겨누면 제거하는 걸로요.”

“그게 좋겠네요.”

김필도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다시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더니 수천 명의 기사가 다가왔다.

기사들이 달려오자 주위에 있던 마족과 천족들이 일제히 김필도 뒤로 늘어섰다.

“워어!”

“워어!”

“워어!”

김필도 앞에 멈춘 자들은 일제히 말에서 내려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김필도의 예상대로 리처드 일행이었다.

리처드는 재빨리 김필도 주위를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자들은 3미터 키의 최상급 마족과 천족의 신좌들과 1천여 명이 훨씬 넘어 보이는 마족과 천족 전사들이었다.

‘젠장!’

리처드는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얼른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었다.

“폐하!”

그는 김필도를 황제라고 칭하고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헐! 리처드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오.”

김필도는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리처드가 곧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일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뒤쪽에 천족과 마족이 있다고는 하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릎을 꿇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김필도는 바로 걸음을 옮겼다.

김필도가 움직이자 뒤편에 있던 천족과 마족이 일제히 따라나섰다.

“어딜 가십니까, 폐하?”

리처드는 멀어지는 김필도를 향해 소리쳐 물었다.

“나는 문 대륙으로 갈 거요.”

“그럼 발탄 제국은, 아니 휴도니아 대륙은 어떡합니까?”

“당신 거요.”

“…….”

리처드는 멍한 얼굴로 김필도를 바라보았다.

“왜?”

한참 동안 앉아 있던 리처드가 소리쳤다.

“나는 학사 사시미 김필도니까.”

김필도 일행이 떠오르는 석양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로부터 1달 후.

발탄 제국 북쪽 고칸 항에서는 거의 2천여 척의 선박이 떠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천족과 마족 인간이 총 망라된 선단은 문 대륙으로 떠나는 김필도 일행이었다.

김필도는 아직 배에 오르지 않고 있었다.

“이거 받으시오, 리처드.”

김필도는 검은 상자 하나를 리처드에게 내밀었다.

“뭡니까?”

“선물이오.”

“감사합니다, 폐하.”

리처드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난 그만 가 보겠소.”

김필도는 몸을 돌려 배에 올랐다.

“출발하라!”

뿌우! 뿌우! 뿌우! 뿌우!

뿔 나팔 소리가 들려오더니 맨 후미에 있던 선박부터 천천히 항구를 벗어났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김필도를 태운 선박이 항구를 벗어났다.

선박을 가만히 바라보던 리처드는 고개를 숙였다.

“어떤 선물을…….”

그는 김필도가 준 선물 상자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검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검 옆에 김필도가 남긴 걸로 보이는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리처드는 편지를 펼쳤다.

-리처드.

그날, 프라넬 벌판에서 난 참 고민을 많이 했어.

네가 어쌔신에게 청부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테니까 리처드 넌 내 은인이자 원수인 셈이잖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만일 네가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면 살려 주고 꿇지 않으면 너는 물론이고 네 부하들까지 전부 죽이기로 결정을 내렸어.

그런데 넌 영악하게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더구나.

네 목숨을 구하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않기를 바란다는 거야. 그리고 그날 그 자리에서 외쳤던 ‘폐하’라는 말을 뼛속 깊이 기억하는 게 좋아.

이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하라미의 아버지이자 내 장인어른이신 홀딘 마하바 코타나 이스마디온 신좌는 장차 천계의 천왕이 되실 거고, 내 친구인 쿤할 디움바 세이디안 팔리카 원로는 마계의 마왕이 될 거야.

그들을 잊거나, 프라넬 벌판에서 내게 무릎을 꿇었던 사실을 한 시라도 잊으면 넌, 뒈져.

나 또한 상자 안의 검을 잊지 않을 거야.

그건 리처드 네 청부를 받은 어쌔신이 내 가슴에 찔러 넣었던 바로 그 검이야. 피도 그대로 말라붙은 채니까 시간 날 때 확인해 봐.

참!

이건 네가 궁금해할 것 같아서 미리 알려 주는 거야.

내 생일은 7월 1일이야.

내 생일만 가지곤 안 되고 다른 사람들 것까지 알아야 한다고?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그래서 그녀들에게 물어서 알아 놨어.

시아나는 2월 6일.

라헤나는 4월 12일.

하라미는 6월 9일.

이카렌은 8월 23일.

리시아는 11월 6일이야.

그리고 추수감사절은 9월 15일이고.

네 달력에 기록해 두었다가 1달 전에 알려 줬으면 해.

너도 결혼을 했으니까 알겠지만 남자라는 동물은 마누라 생일을 기억하는 게 쉽지 않잖아.

네가 그녀들의 생일을 말해 주면 그때부터 선물을 준비할 생각이거든.

시아나와 하라미는 보석을 좋아하고, 라헤나와 이카렌은 옷을 좋아하고, 리시아는 두 가지를 다 좋아해.

그리고 난 골드라면 사족을 못 써.

문 대륙으로 문안 인사 올 때 준비해 오라는 건 절대 아냐. 내가 워낙 잘 잊어 먹어서 말이야. 내가 잊어 먹었을 땐 누군가에게 물어볼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

아무튼 잘 있어. 잘 살고.

그리고 디바스칸 공작과 드보르칸 공작에게도 안부 전해주고.

두 사람을 왜 공작이라고 부르냐고?

넌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내 마음속엔 그들 두 사람은 공작이야.

긴 글 읽느라 수고했어.

그럼 1월 1일 날 리모스에서 보도록 하자.

학사 사시미 김필도

ps.

다시 한번 말할게, 친애하는 리처드.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절대 잊지 마.

단 한 줄이라도 잊으면 뒈질 줄 알아.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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