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해리포터는 드르렁드르렁 요란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거의 네 시간 동안 꼬박 침실 창문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어둠이 깔리는 거리를 뚫어지게 보다가, 마침내 차가운 유리창에 얼굴 한쪽이 짓눌린 채 곯아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안경은 코 위에 비스듬히 걸쳐져 있고, 입은 헤벌어져 있었다. 그의 입김이 유리창에 닿아 생긴 뽀얀 성에가 창 밖에 서 있는 가로등의 환한 주황색 불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부스스한 검은 머리카락이 마구 엉클어진 데다가 형광 불빛을 받아 핏기가 싹 가신 듯한 그의 얼굴은 꼭 귀신처럼 보였다.
방안에는 온갖 다양한 소지품들과 적잖은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부엉이 깃털과 사과 씨, 사탕 껍질 등이 마룻바닥에 버려져 있었고, 침대 위에는 서로 뒤엉킨 옷가지들 사이로 여러권의 마법책들이 뒤죽박죽 널려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한 무더기의 신문들이 불빛 아래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중 한 신문에 다음과 같은 여러기사가 크게 실려 있었다.
해리포터, 선택받은 자인가?
최근 마법부에서 벌어진 원인 모를 사건을 둘러싸고 갖가지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으며, 그동안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이 또다시 목격되었다.
“우리는 이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마십시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망각본부의 마법사 한 명은 몹시 흥분한 표정으로 지난밤 마법부를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부 내부의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사건은 그 전설적인 예언의 방을 중심으로 일어났다고 한다. 비록 마법부의 대변인 마법사들은 지금까지 그런 방의 존재 여부를 확인해 주는 것조차 거부해 왔지만, 점점 더 많은 마법사들이 현재 무단 침입과 절도 미수로 아즈카반에서 복역 중인 죽음을 먹는 자들이 예언을 훔치려고 했다고 믿고 있다. 예언의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치명적인 저주를 당하고도 살아남았다고 알려진 단 한 사람, 해리 포터와 관련이 있다는 추측들이 무성하다. 해리 포터는 그날 밤에도 마법부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예언이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그를 지적했다며 포터를 두고 ‘선택 받은 자’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현재 예언의 소재는-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비록……. (기사는 2면 5단에서 계속 이어짐)
첫 번째 신문 옆에 또 다른 신문이 한 장 놓여 있었다. 그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머리기사가 실려 있었다.
스크림저, 퍼지의 후임이 되다
신문의 1면을 대문짝만 하게 장식한 커다란 흑백 사진 속에는 사자의 갈기처럼 길고 숱이 많은 머리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듯한 인상을 풍기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 움직이는 사진속의 남자는 천장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의 오러 사무국 국장이었던 루퍼스 스크림저가 코넬리우스 퍼지의 뒤를 이어서 마법부 장관의 자리에 올랐다. 마법사 대다수는 이번 장관의 임명을 열렬히 환영했다. 하지만 새 장관과 최근 위즌가모트 국제 마법사 연맹 회장으로 복직된 알버스 덤블도어 사이에 마찰이 있다는 소문이 스크림저가 자리에 오른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스크림저의 대변인은 그가 장관 직에 취임하자마자 즉시 덤블도어를 만났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어떤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알버스 덤블도어는……. (기사는 3면 2단에서 계속 이어짐)
이 신문의 왼쪽에는 반으로 접힌 또 다른 신문이 놓여 있었는데, ‘마법부 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하다’라는 제목이 달린 기사가 보였다
새로 임명된 마법부 장관 루퍼스 스크림저는 이번 가을에 호그와트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정부가 새로 마련한 강력한 조치들을 발표했다.
“마법부에서는 이번에 철통 같은 새 보안 계획을 마련했지만, 몇 가지 명백한 이유로 인해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다”고 장관은 말했다.
하지만 측근들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번 조처에는 방어 주문과 마법, 복잡한 구성의 반대 주문, 그리고 호그와트의 보안을 전담하는 소규모 오러 기동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새로운 마법부의 강도 높은 조치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심하는 분위기이다. 어거스타 롱바텀 부인은 “손자인 네빌이 해리 포터의 친한 친구이며, 지난 6월에 마법부에서 해리 포터와 함께 죽음을 먹는 자들과 싸웠다”며…….
이 기사의 나머지 부분은 그 위에 놓인 커다란 새장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새장 안에는 눈처럼 하얀 거대한 부엉이가 있었다. 부엉이는 호박색 눈으로 거만하게 방 안을 살피다가 이따금 고개를 돌려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자기 주인을 열심히 쳐다보곤 했다. 그러다가 한두 번 초조한 듯이 부리를 딱딱 부딪치며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해리는 너무 깊이 잠든 나머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트렁크가 우뚝 서 있었는데, 뭐라도 잔뜩 쏟아져 나올 듯이 뚜껑이 활짝 열려 있었다. 하지만 안에는 고작 낡은 속옷 몇 벌과 사탕, 빈 잉크병, 그리고 가방 밑바닥을 온통 뒤덮고 있는 부러진 깃펜들뿐, 거의 텅 비어 있었다. 근처 마룻바닥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화려하게 새겨진 자주색 전단지가 한 장 떨어져 있었다.
마법부에서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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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정과 가족들을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법
최근 마법사 사회는 자칭 ‘죽음을 먹는 자들’이라는 한 조직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간단 안전 규칙을 준수하신다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 그리고 당신의 가장을 그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혼자 집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하십시오
2. 해가 진 이후에는 특별한 주의 가 요구 됩니다. 가능하면
저녁이 되기 전에 외출을 끝낼 수 있도록 스케쥴을 조정
하십시오.
3. 집 주변의 안전 설비들을 점검하시고, 가족들 모두가 방
어벽 마법과 투영 마법, 그리고 미성년자를 위한 동반 순
간이동 마법과 같은 비상 대처법을 잘 알고 있는지 확인
하십시오.
4.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 사이에 보안 암호를 정해서, 죽
음을 먹는 자들이 폴리주스 마법약(2페이지를 볼 것)을 사
용하여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는 것을 막도록 하십시오.
5. 가족이나 동료, 친구 혹은 이웃들이 낯선 행동을 한다고
느껴지면, 즉시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 수사대로 연락
하십시오. 임페리우스 저주(4페이지를 볼 것)에 걸렸을지
도 모릅니다.
6. 어떤 거주지 혹은 건물 위로 어둠의 표식이 나타날 경
우, 절대 들어가지 말고 즉시 오러 사무국으로 연락하
십시오.
6. 확인되자 않은 목격에 의하면, 죽음을 먹는 자들이 현재
인페리우스들(10페이지를 볼 것)을 이용하고 있을 수도 있
습니다. 인페리우스를 목격하거나, 그와 유사한 것과 마
주쳤을 경우에는 즉시 마법부에 보고하십시오.
해리는 잠을 자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유리창에 기댄 얼굴이 약간 밑으로 미끄러지면서 코에 걸친 안경이 더욱 비스듬하게 삐뚤어졌지만 잠에서 깨어나지는 않았다. 창틀 위에서는 해리가 몇 년 전에 고친 알람시계가 재깍재깍 큰 소리를 내며 11시 1분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옆에 축 늘어져 있는 해리의 손에는 가느다랗고 비스듬한 글씨가 가득 적힌 양피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3일 전에 이 편지가 도착한 이후 어찌나 자주 이 편지를 들여다보았는지. 처음에는 돌돌 말려 있던 두루마리 편지가 지금은 완전히 납작하게 펴져 있었다
친애하는 해리
너만 괜찮다면 오늘 금요일 오후 열한 시에 프리벳가 4번지
를 방문하고 싶구나. 너를 버로우로 데려다 줄 생각이다. 남은
방학 기간 동안 그곳에서 함께 지내자는 초대를 받았단다.
그리고 네가 찬성한다면 버로우로 가는 도중에 내가 잠깐 처
리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네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구
나. 그 문제에 대해서는 너를 만났을 때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이 부엉이를 돌려보내면서 부디 네 답장도 보내 주렴. 그럼
이번 금요일에 만나길 바라며.
알버스 덤블도어
해리는 그 내용을 완전히 외우고 있었지만, 그날 저녁 일곱 시 프리벳가 양쪽 모퉁이가 가장 잘 내다보이는 침실 창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이후, 매분마다 그 편지를 힐끔힐끔 내려다보고 있었다. 덤블도어의 편지를 자꾸만 다시 읽어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해리도 알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시키는대로 우편 배달 부엉이에게 ‘네’라는 대답을 써서 돌려보냈으니, 그가 오든 안 오든, 지금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밖에 달리 뾰죡한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해리는 가방을 싸 놓지 않았다. 더즐리 가족들과 함께 지낸 지 겨우 2주일밖에 안됐는데 이곳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다니, 너무 좋아서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뭔가 일이 틀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덤블도어에게 보낸 그의 답장이 전혀 엉뚱한 곳으로 배달된다든가, 덤블도어가 그를 데리러 올 수 없게 된다든가, 이것이 덤블도어가 보낸 편지가 아니고 단지 속임수나 장난, 혹은 함정이었던 것으로 밝혀진다든가 뭐 그런 일들 말이다, 해리는 기껏 짐을 싸 놓았다가 실망하고 다시 짐을 풀어야 하는 그런 사태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여행에 대비해서 그가 한 준비라고는 딱 하나, 눈처럼 하얀 그의 부엉이 헤드위그를 안전하게 새장 속에 넣어 둔 것뿐이었다.
알람시계의 긴 바늘이 숫자 12에 가서 닿는 바로 그 순간, 집 밖에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꺼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둠의 경고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해리는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황급히 안경을 똑바로 고쳐 쓰고 유리창에서 뺨을 뗀 다음, 유리창에 바싹 코를 대고서 눈을 가늘게 뜨고 도로를 바라보았다. 펄럭거리는 긴 망토를 입은 키가 큰 사람이 정원에 난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해리는 마치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사람처럼 펄쩍 놀라서 의자 뒤로 벌렁 자빠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마루에 있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서 트렁크 안에 던져 넣기 시작했다. 겉옷 한 벌과 마법책 두 권, 그리고 감자 칩 한 봉지를 한창 방 저편으로 날리고 있을 때, 현관문의 초인종이 울렸다. 그러자 아래층 거실에서 버논 이모부가 소리쳤다.
“도대체 어떤 놈이 이 시간에 찾아오고 난리야?”
해리는 황동 망원경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 운동화를 든 채 우뚝 멈추어 섰다. 더즐리 부부에게 덤블도어의 방문에 대해 미리 말을 해 둔다는 것을 새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불안하기도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기도 한 기분을 느끼며, 해리는 트렁크를 타 넘어가서 침실문을 열었다. 그 순간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이 더즐리 씨로군요. 제가 찾아올 거라고 해리가 미리 말씀드리지 않던가요?”
해리는 한 번에 두 계단씩 뛰어 내려가다가, 바닥에서 일곱 계단쯤 남았을 때 갑자기 멈춰섰다. 오랜 경험을 통해서 가능한 한 이모부의 사정거리 밖에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현관문 밖에는 하얀 머리카락과 긴 수염을 거의 허리까지 늘어뜨린,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구부러진 코에 반달 모양의 안경을 걸치고서 검은색의 긴 여행용 망토와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한편 검은색이기는 하지만 덤블도어만큼이나 콧수염이 무성한 버논 더즐리는 암갈색 실내복을 입은 채, 단춧구멍만 한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찾아온 방문객을 멍하나 바라보고 있었다.
“믿기지 않아서 넋이 나간 당신 표정을 보아하니, 해리가 제가 올 거란 말씀을 드리지 않은 모양이군요.”
덤블도어가 유쾌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저를 집 안으로 들어가도록 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이런 어수선한 때에 문밖에 너무 오래 서 있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이니까요.”
덤블도어는 잽싸게 문지방을 타 넘고 들어오더니 현관문을 닫았다.
“지난번에 찾아오고 나서 꽤 오랜만입니다.”
덤블도어가 매부리코 아래로 버논 이모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댁의 아가판서스(백합과에 속하는 식물 : 역주)들이 참으로 잘 자라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버논 더즐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해리는 이모부의 말문이 곧 트일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이모부의 관자놀이의 맥박 수가 거의 심상치 않은 수준으로까지 치솟고 있었다-지금 이 순간 덤블도어의 어떤 면이 버논 이모부의 숨을 일시적으로 멈춰 버린 것 같았다. 어쩌면 그의 외모에서 두드러지게 풍기는 마법사 같은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아무리 버논 이모부라 해도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 찾아왔음을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오, 잘 있었니, 해리?”
덤블도어가 몹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반달 모양 안경 너머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훌륭하구나, 훌륭해.”
이 말이 버논 이모부를 깨운 모양이었다. 적어도 이모부가 아는 한, 해리를 쳐다보면서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와 의기투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무례하게 굴 생각은 없습니다만…….”
버논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퉁명스러움이 가득 담긴 어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뜻하지 않은 실례를 범할 때가 종종 있는 법이죠.”
덤블도어가 엄숙하게 그의 말을 대신 끝내 주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제일 좋겠습니다. 아, 이분이 페투니아로군요.”
부엌문이 열려 있고, 거기에 해리의 이모가 서 있었다. 그녀는 잠옷 위에 실내복을 걸친 채, 손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늘 하던 대로 잠들기 전에 한창 부엌 전체를 말끔히 닦아 내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말처럼 길쭉한 그녀의 얼굴은 오직 충격 그 자체였다.
“알버스 덤블도어입니다.”
버논 이모부가 자신을 소개해 주지 않자, 덤블도어가 먼저 말했다.
“물론 서로 연락을 한 적은 있었죠.”
덤블도어가 페투니아 이모에게 한 번 호울러를 보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일깨우다니, 참 묘한 방법이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하지만 페투니아 이모는 그 말에 감히 응답 하지 않았다.
“그럼 이 아이가 당신의 아들 두들리겠군요.”
그때 두들리는 거실 문을 열고 문 뒤에서 이쪽을 엿보고 있었다. 줄무늬가 들어간 잠옷 칼라 위로 불쑥 튀어나온 그의 커다란 금발 머리는 이상하게 몸과 분리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덤블도어는 잠깐 동안 더즐리 부부 중 어느 누군가가 무슨 이야기든 꺼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침묵이 계속되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를 거실로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두들리는 황급히 몸을 움직여 길에서 비켜났고 덤블도어가 그 앞을 지나갔다. 해리는 여전히 망원경과 운동화를 각각 양 손에 움켜쥔 채 마지막 몇 계단을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덤블도어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는 벽난로에서 가장 가까운 안락의자에 앉아서 애정 어린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는 거의 터무니없을 정도로 주위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만…… 가지 않으실래요. 교수님?”
해리가 초조한 듯 물었다.
“그래, 몰론 그래야지. 하지만 가기 전에 먼저 몇 가지 의논 해야 할 문제가 있단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밖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야 여기가 좋겠지. 그러니까 우리는 아주 조금만 더 네 이모님과 이모부님께 폐를 끼쳐야 항 것 같구나.”
“그래요? 그런다고요?”
버논 더즐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페투니아는 그 옆에 붙어 있었고, 두들리는 두 사람의 등 뒤에 바싹 숨어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럴 겁니다.”
덤블도어가 간단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해리도 미처 보지 못 할 만큼 빠른 손놀림으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덤블도어는 그것을 그저 살짝 흔들기만 했는데, 소파가 앞으로 슈우욱 튀어나오더니 더즐리 가족 세 사람의 무릎을 탁 쳤다. 그 바람에 세 사람은 소파 위에 무더기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또다시 지팡이를 살짝 흔들자, 소파는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슈웅 돌아갔다.
“좀 편안하게 계시는 게 좋겠지요.”
덤블도어가 유쾌하게 말했다. 하지만 덤블도어가 다시 지팡이를 호주머니에 넣을 때, 해리는 그의 손이 시커멓게 변해 오그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마치 그의 살이 불에 데기라도 한 것 같았다.
“교수님…… 도대체 어떻게 된……?”
“나중에, 해리. 우선 자리에 앉거라.”
덤블도어가 말했다.
해리는 되도록이면 더즐리 가족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자리를 골라서, 남아 있는 안락의자에 앉았다. 그들은 얼이 빠져 할 말을 잃은 듯이 보였다.
“뭐 좀 마실 거라도 내주실 거라고 기대했습니다만…….”
덤블도어가 버논 이모부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그건 어리석을 정도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인 것 같군요.”
세 번째로 지팡이를 휘두르자, 먼지 낀 유리병과 다섯 개의 유리잔이 허공에 나타났다. 유리병이 앞으로 기울어지더니 벌꿀 색깔이 나는 음료를 각각의 유리잔에 가득 따랐고, 유리잔이 하나씩 방 안에 있는 사람들 앞으로 둥둥 날아갔다.
“떡갈나무 술통에서 숙성시킨 로즈메르타 부인의 가장 좋은 꿀술이죠.”
덤블도어가 이렇게 말하며 해리를 향해 잔을 높이 들었다. 해리는 자기 잔을 들고 한 모금 들이켰다. 지금까지 이런 음료는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지만, 굉장히 맛있었다. 더즐리 가족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재빨리 서로를 쳐다보고는, 자기 앞의 잔을 완전히 무시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유리잔들이 그들의 머리 양옆을 살짝살짝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해리는 덤블도어가 왠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덤블도어가 그를 향해 몸을 돌리고는 말했다.
“자, 해리, 어려운 문제가 하나 생겼구나. 나는 네가 우리를 위해 그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여기서 ‘우리’ 라고 함은 불사조 기사단을 말한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시리우스의 유언장이 일주일 전에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너에게 말해 줘야 할 것 같구나. 그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너에게 물려주었단다.”
소파 위에서 비논 이모부의 고개가 돌아갔다. 하지만 해리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아, 그렇군요.”
“별로 복잡할 게 없는 일이란다.”
덤블도어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린고트에 있는 너의 은행 계좌로 상당한 액수의 금화가 추가되었고, 너는 시리우스의 개인 재산을 모두 다 물려받게 되었단다. 그 유언에서 한 가지 약간 곤란한 부분은…….”
“해리의 대부가 죽었단 말이오?”
버논 이모부가 소파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덤블도어와 해리는 그를 향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꿀술이 담긴 유리잔은 이제 버논의 머리통 한쪽을 끈질기게 툭툭 치고 있었고, 그는 그것을 쫓아 버리려고 애썼다.
“죽었소? 그의 대부가?”
“그렇습니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그는 해리에게 왜 더즐리 부부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았다.
“우리의 문제는…….”
덤블도어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해리를 향해 말을 이었다.
“시리우스가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에 있는 집도 너에게 남겼다는 것이란다.”
“집을 남겼단 말이오?”
버논 이모부가 작은 눈을 더욱더 가늘게 뜨면서 탐욕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질문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냥 계속 본부로 쓰세요. 전 상관없어요. 교수님께서 가지셔도 돼요. 전 정말 그 집을 원하지 않아요.”
해리가 말했다.
해리는 할 수만 있다면 두 번 다시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 가면, 그토록 간절하게 떠나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집에 갇혀서 어둡고 곰팡내 나는 방들을 홀로 배회하던 시리우스의 기억이 언제까지나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 참 고맙구나. 하지만 우리는 우선 그 집을 나왔단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왜요?”
“그건 말이지…….”
덤블도어는 옆에서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는 버논 이모부를 완전히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꿀술을 담은 잔이 이제는 버논 이모부의 머리를 거세게 툭툭 치고 있었다.
“블랙 가문의 전통에 따르면 그 집은 반드시 직계 후손에게만 물려주게 되어 있단다. 그러니까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남자 후손에게 말이다. 하지만 시리우스의 동생인 레귤러스가 그보다 먼저 죽었고, 두 사람 모두 자식이 없기 때문에, 시리우스가 그 집안의 마지막 후손이었지. 비록 그의 유언이 그 집을 너에게 물려주겠다는 뜻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혈통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그 집을 소유할 수 없도록 막아 주는 어떤 주문이나 마법이 그곳에 걸려 있을 수도 있단다.”
순간 해리의 머릿속에, 그리몰드 광장 12번지 저택의 복도에 걸려 있던 시리우스의 어머니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침을 뱉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당연히 그럴 거예요.”
해리가 말했다
“그래.”
덤블도어가 말했다.
“만약 그런 마법이 존재한다면, 그 집의 소유권은 아마도 시리우스의 살아 있는 친척들 중에서 가장 맏이인 사람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데, 그것이 바로 그의 사촌인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이란다.”
그 말을 듣자 해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무릎 위에 놓여 있던 망원경과 운동화기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시리우스를 죽인 살인자,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이 그의 집을 물려받는단 말인가?
“안 돼요.”
그가 말했다.
“글쎄, 물론 우리도 그 여자가 그 집을 갖게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단다.”
덤블도어가 침착하게 말했다.
“상황이 좀 복잡하게 꼬였어. 우리는 우리들이 그곳에 걸어 놓은 마법들, 예를 들면 위치 추적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마법 따위가, 시리우스의 손에서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 지금도 유효한지 알 수가 없단다. 혹시라도 언제 벨라트릭스가 그 집 문 앞에 나타날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래서 당연히 상황이 확인될 때까지 그곳을 떠나야만 했지.”
“하지만 제가 그 집을 소유할 수 있는지는 어떻게 알아보시라고요?”
“다행히도 아주 간단한 테스트만 거치면 된단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리고 빈 잔을 의자 옆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미처 다른 행동을 하기 전에 버논 이모부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지긋지긋한 것들을 제발 좀 치워 주시겠소?”
해리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더즐리 가족 세 사람이 전부 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유리잔들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쿵쿵 뛰는 바람에 담겨 있는 내용물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 미안합니다.”
덤블도어가 공손하게 말하더니 다시 지팡이를 들었다. 세 개의 유리잔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걸 마시는 게 더 예의 바른 태도였을 겁니다.”
버논 이모부는 당장이라도 기분 나쁜 말로 쏘아붙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 보였지만, 그저 페투니아 이모와 두들리가 앉아 있는 소파로 물러나 앉을 뿐이었다. 그리고 입을 굳게 다문 채, 돼지같이 생긴 자그마한 눈으로 덤블도어의 지팡이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너도 알겠지만…….”
덤블도어는 버논 이모부가 언제 말을 했었냐는 듯이, 태연하게 해리에게로 돌아서서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네가 정말로 그 집을 물려받은 것이라면, 그와 더불어…….”
덤블도어는 다섯 번째로 지팡이를 흔들었다. 이번에는 커다랗게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집요정이 나타났다. 코는 주먹코에 귀는 커다란 박쥐 귀처럼 생겼고 둥그런 눈에는 시뻘겋게 핏발이 선 이 집요정은 때 묻은 누더기를 걸친 채 더즐리 집안의 모직 카펫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페투니아 이모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도록 날카로운 비명을 마구 질렀다. 이모의 기억으로는 이렇게 더러운 것이 그녀의 집 안에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두들리는 분홍색이 감도는 커다란 맨발을 재빨리 바닥에서 들어 올리더니, 앉은 채로 거의 머리 위까지 번쩍 치켜들었다. 이 짐승이 그의 잠옷 바짓가랑이 사이로 파고들기라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버논 이모부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도대체 이 망할 놈의 것은 뭐지?”
“크리처를 함께 상속받게 되는 거지.”
덤블도어가 하던 말을 끝냈다.
“크리처는 안 할 거야, 크리처는 안 할 거야, 크리처는 안 할 거야!”
집요정은 두 귀를 마구 잡아당기고 울퉁불퉁하고 뒤틀린 긴 발을 쿵쿵 구르면서, 버논 이모부만큼이나 큰 소리로 꽥꽥 울부짖었다.
“크리처는 벨라트릭스 아가씨 것이야. 맞아, 크리처는 블랙 집안 것이야. 크리처는 새 주인 아가씨를 원해. 크리처는 애송이 포터를 섬기지 않을 거야. 크리처는 안 할 거야, 안 할 거야, 안 할 거야…….”
크리처가 계속해서 “안 할 거야, 안 할 거야, 안 할 거야!” 하고 악을 쓰는 바람에 덤블도어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보다시피 해리, 크리처는 너의 소유가 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단다.”
“상관없어요.”
해리는 몸부림치며 쿵쿵 발을 구르는 집요정을 역겨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저도 저 녀석을 원하지 않아요.”
“안 할 거야, 안 할 거야, 안 할 거야.”
“그럼 저 녀석을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의 소유로 넘겨주겠단 말이니? 저 녀석이 지난 1년 동안 불사조 기사단 본부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명심하거라.”
“안 할 거야, 안 할 거야, 안 할 거야…….”
해리는 덤블도어를 빤히 쳐다보았다. 크리처를 벨라트릭스 레스트랭과 함께 살도록 내보내 줄 수는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녀석, 시리우스를 배신한 바로 그놈을 책임지게 된다는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혔다.
“그에게 명령을 내리거라.”
덤블도어가 말했다.
“만약 그가 너의 소유로 넘어온 것이라면, 네 말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 녀석을 그의 정당한 여주인으로부터 떼어 놓을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하겠지.”
“안 할 거야, 안 할 거야, 안 한다고!”
크리처의 목소리가 거의 비명처럼 높아졌다. 해리는 달리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쑥 명령을 내뱉었다.
“크리처, 입 닥쳐!”
잠깐 동안 크리처는 당장이라도 질식할 듯이 보였다. 그의 입술은 아직도 분노로 실룩거리고 두 문은 튀어나올 듯이 부릅뜨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꽉 누르고 있었다. 크리처는 몇 초 동안 죽을 듯이 숨을 꺽꺽거리더니, 카펫 위에 얼굴을 처박고 쓰러졌다(페투니아 이모가 울먹였다). 그러고는 두 손과 발로 마루를 미친 듯이 내려치며, 광폭하지만 조용하기 짝이 없는 분노 상태에 빠졌다.
“자, 이걸로 모든 문제가 간단해졌구나.”
덤블도어가 유쾌하게 말했다.
“시리우스는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너는 이제 그리몰드 광장 12번지 저택과 크리처의 정당한 주인이야.”
“그럼 제…… 제가 저 녀석을 데리고 있어야 하는 건가요?”
해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크리처는 그의 발밑에서 몸부림을 치며 뒹굴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지. 너는 저 녀석을 호그와트로 보내서 부엌일을 하도록 시킬 수 있단다. 그렇게 하면 다른 집요정들이 저 녀석을 감시할 수 있겠지.”
“그래요.”
해리가 안심하며 좋아했다.
“그래요. 그렇게 하겠어요. 어…… 크리처…… 나는 네가 호그와트로 가서 다른 집요정들과 함께 그곳 부엌에서 일하기를 원해.”
이제는 아예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팔다리를 허공으로 마구 내젓고 있던 크리처는 증오심에 가득 찬 눈으로 해리를 한 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또다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좋아.”
덤블도어가 말했다.
“이제는 히포그리프인 벅빅의 문제가 남아 있단다. 시리우스가 죽은 이후로 해그리드가 벅빅을 계속 돌봐 주고 있었지. 하지만 이젠 벅빅은 네 것이란다. 그러니 만약 네가 달리 처리하고 싶다면…….”
“아니요.”
해리가 선뜻 대답했다.
“벅빅은 해그리드와 함께 지내도록 해 주세요. 제 생각에 벅빅도 그걸 더 좋아할 거예요.”
“해그리드가 아주 좋아하겠구나.”
덤블도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벅빅을 다시 보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거든. 한마디 덧붙이자면 우리는 벅빅의 안전을 위해서 그의 이름을 ‘위더윙즈’로 바꾸기로 결정했단다. 마법부에서 그 녀석이 한때 사형 선고를 받았던 바로 그 히포그리프인 걸 눈치 챌지도 몰라서 말이다. 자, 해리, 가방은 싸 놓았니?”
“저…….”
“내가 정말 나타날지 몰랐단 말이니?”
덤블도어가 짓궂게 물었다.
“당장 가서 어…… 끝낼게요!”
해리는 황급히 말하며 바닥에 떨어진 망원경과 운동화를 얼른 집어 들었다.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가방에 집어넣는 데 1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침대 밑에서 투명 망토를 꺼내고 색깔이 바뀌는 잉크병의 뚜껑을 꽉 잠근 다음, 냄비 위로 가방 뚜껑을 억지로 눌러서 닫았다. 잠시 후에 그는 한 손에는 트렁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헤드위그의 새장을 든 채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덤블도어가 현관 복도에 나와 기다리고 있지 않자, 해리는 몹시 낙심하고 말았다. 그건 다시 거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덤블도어는 꽤 마음이 홀가분해진 듯이 나지막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지만, 방 안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은 커스터드보다도 더 썰렁했다. 해리는 더즐리 가족이 있는 쪽은 감히 쳐다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 교수님…… 준비가 다 되었는데요.”
“그래.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남아 있단다.”
덤블도어는 이렇게 말하며 또다시 더즐리 가족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당신들도 분명히 알고 있겠지만, 해리는 1년만 지나면 성인이 됩니다…….”
“아니에요.”
덤블도어가 나타난 이후 처음으로 페투니아 이모가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하셨죠?”
덤블도어가 공손하게 물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저 아이는 두들리보다 한 달이 더 늦어요. 그리고 우리 귀여운 두들리는 내후년이 되어야 열 여덟 살이 된다구요.”
“아!”
덤블도어가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마법사 세계에서는 열일곱 살에 성인이 된답니다.”
버논 이모부가 “황당하군” 하고 중얼 거렸지만 덤블도어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당신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볼드모트 경이라 불리는 마법사가 이 나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마법사 세계는 대대적인 전쟁 상태입니다. 볼드모트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서 살해하려고 했던 해리는, 이제 내가 더즐리 씨의 현관 계단 위에 그를 내려놓고 갔던 15년 전의 그날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때 나는 이 아이의 부모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설명하고 부디 친자식처럼 돌봐 달라는 부탁이 적힌 편지를 함께 남겼었죠.”
덤블도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명랑하고 침착했으며 조금도 화가 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해리는 그에게서 싸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고, 더즐리 가족들이 더 바싹 붙어 앉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당신들은 내가 부탁한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해리를 단 한 번도 아들처럼 대해 주지 않았죠. 저 아이는 당신들의 손에서 오직 냉대와 잦은 학대 이외에는 경험한 것이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신들이 당신들 사이에 앉아 있는 저 불쌍한 아이에게 행한 그 끔찍한 해악으로부터 적어도 해리는 벗어날 수 있었다는 거겠지요.”
페투니아 이모와 버논 이모부는 마치 두들리 외에 다른 누군가가 그들 사이에 끼어 앉아 있기라도 한 듯이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가…… 우리 두들리에게 나쁜 짓을 했다고? 도대체 당신은 무슨 말을……?”
버논 이모부가 화가 나서 따지고 들려고 했지만, 덤블도어는 손가락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버논 이모부는 벙어리가 된 듯 입을 다물었다.
“내가 13년 전에 걸어 놓은 마법은, 해리가 그나마 여전히 이 집을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안에는 강력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해리가 아무리 이곳에서 불행하고 냉대를 받고 학대를 당했다고 할지라도, 당신들은 마지 못해서나마 그에게 방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해리가 열일곱 살이 되는 순간, 그 마법은 풀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해리가 성인이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지요. 제 부탁은 단지 이것뿐 입니다. 해리가 열일곱 살 생일이 되기 전에 다시 한 번 이 집에 돌아오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때까지는 마법의 보호력이 확실하게 지속될 것입니다.”
더즐리 가족들 중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두들리는 자기가 언제 학대를 받은 적이 있었는지 기억해 내려고 여전히 애를 쓰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버논 이모부는 목구멍에 뭔가가 딱 걸린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페투니아 이모는 기이하게도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자, 해리…… 떠날 시간이다.”
마침내 덤블도어가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길고 검은 망토를 매만졌다.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덤블도어는 더즐리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때가 영원히 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덤블도어는 살짝 모자를 벗더니 휙 거실을 나갔다.
“안녕히 계세요.”
해리가 머뭇거리며 더즐리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덤블도어의 뒤를 따라 나왔다. 덤블도어는 헤드위그의 새장이 얹혀 있는 해리의 가방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이 짐들이 거치적거리면 안 되지.”
덤블도어가 또다시 지팡이를 꺼내 들며 말했다.
“이 짐들을 먼저 버로우로 보내서 그곳에서 대기하도록 해야겠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투명 망토는 가져가도록 해라.”
해리는 가방에서 투명 망토를 가까스로 꺼냈다. 가방 안이 엉망진창인 것을 덤블도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해리가 망토를 윗도리 안쪽 주머니 속에 넣자 덤블도어는 지팡이를 흔들었고, 가방과 새장, 헤드위그가 사라졌다. 덤블도어가 또다시 지팡이를 흔들자 현관문이 휙 열리면서 싸늘하고 축축한 어둠이 눈앞에 펼쳐졌다.
“자, 해리, 이제 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 모험이라는 그 변덕스런 유혹자의 뒤를 쫓아가 보도록 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