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집요정의 미행
“결국 론에게는 썩 즐거운 생일이 아니었단 말이지?”
프레드가 말했다.
고요한 병동 안에 저녁이 찾아오자, 창문에는 커튼이 드리워지고 등불이 밝혀졌다. 병실 안에 누워 있는 사람은 론 한 명뿐이었고, 해리와 헤르미온느, 지니가 그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이중문 밖에 서서, 누군가 병실 안을 드나들 때마다 안을 기웃거리면서 면회 시간을 기다렸다. 폼프리 부인은 8시가 되어서야 겨우 그들의 입실을 허락했고, 프레드와 조지는 10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이런 식으로 선물을 건네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걸.”
조지가 씁쓸하게 말하며 침대 옆의 캐비닛 위에 포장된 커다란 선물을 내려놓고 지니 옆에 앉았다.
“그러게……. 우리가 선물 주는 장면을 상상했을 때, 상상 속의 론은 멀쩡했어.”
프레드가 말했다.
“우리는 론을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호그스미드에서 기다렸는데…….”
조지가 말을 이었다.
“호그스미드에 있었다고?”
지니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사실은 종코의 장난감 가게를 인수할까 생각 중이거든.”
프레드가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호그스미드 지점을 내려고 말이야. 하지만 주말 방문이 계속 금지돼서 너희들이 우리 물건을 사지 못하게 된다면 전혀 장사가 안 될 거야.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의자를 끌어다가 해리 옆에 앉은 프레드는 론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확하게 어떻게 된 건지 자초지종을 좀 말해 봐, 해리.”
해리는 이미 덤블도어와 맥고나걸 교수, 폼프리 부인 그리고 헤르미온느와 지니에게 골백번도 넘게 했던 이야기를 또다시 들려주었다.
“그래서 내가 론의 목구멍으로 위석을 집어넣으니까 그의 숨소리가 편해졌어. 그러고 나서 슬러그혼 교수님은 도움을 청하러 달려갔고, 맥고나걸 교수님과 폼프리 부인이 와서 론을 이리로 데리고 왔어. 그분들 말씀이 론은 괜찮다고 했어. 폼프리 부인 말로는 일주일 정도 여기에 있으면서 계속 루타 수액을 복용해야 한대.”
“세상에, 네가 위석을 생각해 낸 게 천만다행이었구나.”
조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위석이 그 방에 있었던 게 다행이었지.”
해리가 말했다. 만약 그 작은 돌멩이를 손에 넣을 수 없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헤르미온느는 겨우 들릴락 말락 하게 콧소리를 냈다. 오늘따라 그녀는 온종일 이상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병동 밖에 서 있는 해리에게 쫓아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본 이후로는, 론이 독약을 마시게 된 경위에 대해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해리와 지니 옆에서 문병이 허락될 때까지 겁먹은 표정으로 입을 꽉 다문 채 서서 통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 아빠도 아셔?”
프레드가 지니에게 물었다.
“벌써 보고 가셨어. 한 시간 전에 도착하셨는데, 지금은 덤블도어 교수님 방에 계셔. 금방 돌아오실 거야…….”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모두들 잠결에 뭐라고 중얼거리는 론을 지켜보았다.
“그럼 그 술에 독약이 들어 있었던 거니?”
프레드가 조용히 물었다.
“맞아.”
해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차피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다시 이 문제에 대해서 의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뻤던 것이다.
“슬러그혼 교수님이 술을 따랐어.”
“혹시 네가 안 보는 사이에 론의 잔에다 뭔가를 슬쩍 탄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슬러그혼 교수님이 왜 론을 독살하려고 하겠어?”
“그야 모르지.”
프레드가 인상을 썼다.
“혹시 실수로 잔이 바뀐 건 아닐까? 그러니까 널 주려던 잔과 말이야.”
“슬러그혼 교수님이 왜 해리를 독살하려고 하겠어?”
지니가 물었다.
“나도 몰라.”
프레드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해리를 독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을 거 같은데, 안 그래? ‘선택받은 자’ , 그거면 이유는 충분하잖아?”
“그럼 슬러그혼 교수님이 죽음을 먹는 자란 말이야?”
지니가 따져 물었다.
“아니라는 보장도 없지.”
프레드가 우울하게 말했다.
“슬러그혼 교수님이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렸었는지도 몰라.”
조지가 추측했다.
“아니면 전혀 몰랐을 수 도 있지.”
지니가 반박했다.
“술병 안에 독약이 들어 있었을 수도 있어. 바로 슬러그혼 교수님을 노린 거라면 말이지.”
“도대체 누가 슬러그혼 교수님을 죽이려고 한단 말이야?”
“덤블도어 교수님은 볼드모트가 슬러그혼 교수님을 그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셔.”
해리가 말했다.
“그래서 슬러그혼 교수님은 호그와트에 오기 전 1년 동안 숨어 지냈어. 그러니까…….”
해리는 덤블도어가 슬러그혼에게서 아직 얻어 내지 못한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볼드모트는 슬러그혼 교수님을 제거하고 싶어 할 지도 몰라. 슬러그혼 교수님이 덤블도어 교수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하지만 슬러그혼 교수님은 그 술을 덤블도어 교수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 계획이었다고 말했다며?”
지니가 해리의 말을 상기시켰다.
“그러니까 그 암살자는 덤블도어 교수님을 노렸던 것일 수도 있어.”
“그렇다면 그 암살자는 슬러그혼 교수님을 잘 몰랐던 거야.”
헤르미온느가 마치 지독한 감기에라도 걸린 것 같은 목소리로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슬러그혼 교수님을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절대 내놓지 않을 사람이란 사실을 알았을 테니까.”
“에르…… 미…… 느…….”
갑자기 그들 가운데 누워 있던 론이 신음 소리를 내자, 모두들 입을 다물고 걱정스럽게 그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론은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금방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때 병실 문이 왈칵 열리는 바람에 모두들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머리에 빗방울이 맺힌 해그리드가 한 손에 석궁을 든 채 비버 가죽 외투 자락을 펄럭이며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가 지나온 마룻바닥에는 돌고래만 한 진흙 발자국들이 여기저기 찍혀 있었다.
“온종일 숲에 있었어!”
해그리드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아라고그가 더 나빠졌거든. 녀석에게 책을 읽어 줬지. 저녁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다가 이제야 스프라우트 교수님께 론 이야기를 들었지 뭐야! 론은 어때?”
“심각하진 않아요.”
해리가 말했다.
“교수님 말씀이 괜찮을 거래요.”
“한 번에 여섯 명 이상의 문병객은 안 돼요!”
폼프리 부인이 허둥지둥 자기 사무실에서 달려 나왔다.
“해그리드까지 여섯 명인데요.”
조지가 지적했다.
“오…… 그렇구나…….”
폼프리 부인은 해그리드의 커다란 덩치 때문에 예닐곱 명쯤으로 착각했던 모양이었다. 진상을 알게 된 폼프리 부인은 지팡이로 해그리드의 진흙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서둘러 나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론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해그리드가 그 커다랗고 덥수룩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이 잠자는 모습 좀 봐……. 누가 이런 아이를 해치고 싶어 한단 말이지, 엉?”
“우리도 방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이에요.”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전혀 모르겠어요.”
“누군가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에게 앙심을 품은 건 아닐까?
해그리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처음에는 케이티더니 이번에는 론까지…….”
“내 생각에는 퀴디치 팀 선수들을 해치우고 싶어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조지가 말했다.
“우드라면 슬리데린 녀석들을 다 끝내 버렸을지도 몰라. 들키지 않고 할 수만 있다면 말이지.”
프레드가 그럴싸하게 말했다.
“어쨌든 퀴디치 때문은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이 두 사건 사이에는 분명히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헤르미온느가 침착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무슨 연관인데?”
프레드가 물었다.
“첫째, 두 번의 공격 모두 치명적이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어. 물론 순전히 운이 좋았던 덕분이지만 말이야. 둘째, 독약도 목걸이도 애초에 죽이려고 했던 사람에게는 전달되지 못했던 것 같아.”
헤르미온느는 신중하게 덧붙였다.
“이런 걸 볼 때, 이 사건 배후에 있는 인물은 훨씬 더 위험한 존재임을 알 수 있어.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이 불길한 발언에 대해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병실 문이 열리더니 위즐리 씨와 위즐리 부인이 황급히 들어왔다. 위즐리 부부는 조금 전에 병실에 찾아왔을 때 론이 완전히 회복되리라는 것을 알고 겨우 마음을 놓았었다. 위즐리 부인은 해리를 덥석 붙잡더니 숨이 막힐 정도로 꼭 껴안았다.
“덤블도어 교수님으로부터 네가 위석으로 론의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위즐리 부인이 흐느끼며 말했다.
“오, 해리, 뭐라고 할 말이 없구나. 지니의 목숨을 구하고 아서의 목숨을 구해 주더니, 이번에는 론의 목숨까지 구해 주었어…….”
“그런 말씀 마세요……. 전 아무것도…….”
해리는 어색한 듯 우물우물거렸다.
“이제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 중 절반이 네 덕분에 목숨을 건진 셈이구나.”
위즐리 씨가 애써 울컥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론이 호그와트 급행열차에서 너와 같은 칸에 앉기로 한 날이야말로 위즐리 가족에게는 행운의 날이었다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해리.”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끙끙거리고 있던 해리는, 폼프리 부인이 론의 병실에 들어와서 문병객이 여섯 명 이상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자 오히려 반가웠다. 그와 헤르미온느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자 해그리드도 함께 가겠다고 해서, 그들은 론을 가족들에게 맡긴 채 병실을 나왔다.
“끔찍한 일이야.”
세 사람이 대리석 계단으로 가는 복도를 걸어가고 있을 때, 해그리드가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중얼거렸다.
“새로운 보안 조치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이들이 다치고 있으니…… 덤블도어 교수님의 걱정이 태산 같으실 거야…….”
“교수님도 무슨 뾰족한 생각이 없으시겠죠, 해그리드?”
헤르미온느가 간절하게 물었다.
“교수님처럼 머리가 좋으신 분이라면 물론 수백 가지 생각을 가지고 계시겠지.”
해그리드가 말했다.
“하지만 누가 그 목걸이를 보냈고, 누가 그 꿀술에 독을 탔는지는 모르시는 것 같아. 만약 아셨다면 그놈들이 벌써 잡혔겠지, 안 그래? 내가 진짜로 걱정되는 건 말이다…….”
해그리드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뒤를 힐끗 살펴보았다(해리도 혹시 피브스가 있을까 싶어서 천장을 확인했다).
“아이들이 자꾸 공격을 당하다간 호그와트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거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싶다. 비밀의 방 때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어? 겁에 질린 부모들이 아이들을 자꾸 학교에서 데려가면 그 다음에는 뻔하잖아. 정부의 고위층들이…….”
해그리드는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자 유령이 소리 없이 스르르 지나가자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부의 고위층들이 학교를 영원히 닫아 버리자고 떠들어 댈걸.”
“설마 그럴 리가요?”
헤르미온느가 몹시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저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거야.”
해그리드가 침울하게 말했다.
“사실 아이들을 호그와트에 보내는 데에는 항상 약간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야, 안 그래? 나이 어린 마법사들 수백 명을 모두 한곳에 몰아 놓았으니, 사소한 사고가 일어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살인 미수라는 건 전혀 이야기가 다르지.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스네이프에게 화를 내시는 것도 당연한…….”
해그리드가 도중에 말을 뚝 멈추었다. 헝클어진 검은 수염 위로 드러난 그의 얼굴에는 아차 실수했다는 낯익은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뭐라고요?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스네이프에게 화를 내셨다고요?”
해리가 재빨리 물었다.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
해그리드는 딱 잡아뗐지만, 잔뜩 겁먹은 그의 표정은 오히려 진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시계 좀 보렴. 벌써 자정이 다 되어 가는구나. 나는 이제…….”
“해그리드, 덤블도어 교수님이 왜 스네이프에게 화를 낸 거죠?”
해리가 큰 소리로 다그쳤다.
“쉬이잇!”
해그리드가 화가 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표정으로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지 마라, 해리. 내가 학교에서 쫓겨나길 바라니? 하긴 너희들이 그걸 신경이나 쓰겠니? 아무렴,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도 그만둔 녀석들이…….”
“괜히 죄책감 들게 하려고 애쓰지 말아요. 그래 봐야 소용 없으니까!”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스네이프가 무슨 짓을 했는데요?”
“난 몰라, 해리. 그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었는데! 그…… 그러니까 지난 저녁에 내가 숲에서 나오려는데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잖니. 음, 사실은 다투고 있었어. 괜히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몰래 숨었는데, 그리고 듣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아, 글쎄 그게 말이지…… 너무 언성이 높아서 도저히 안 들을 수가 없더구나.”
“그래서요?”
해리가 해그리드를 재촉했다. 해그리드는 초조한 듯이 그 거대한 발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그러니까…… 내가 들은 건, 덤블도어 교수님이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스네이프가 말하는 소리뿐이었어. 그리고 아…… 아마 스네이프가 더 이상 그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말도…….”
“그 일이라뇨?”
“난 몰라, 해리. 스네이프는 자기가 다소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게 전부야. 어쨌든 덤블도어 교수님은 스네이프가 그 일을 하기로 동의했고, 그러니 그 일을 해야만 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더군, 꿈쩍도 안하시더라니까. 그러고 나서 스네이프가 그의 슬리데린 기숙사를 조사한 일에 대해서 뭔가 이야기를 하셨어. 뭐 별로 이상할 것도 없지 않니!”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서로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해그리드가 황급히 덧붙여 말했다.
“모든 기숙사 사감 선생님들이 그 목걸이 사진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거든.”
“그건 그래요.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다른 기숙사 때문에 큰소리를 내시지는 않잖아요, 안 그래요?”
해리가 물었다.
“이거 봐.”
해그리드가 초조한 듯이 손에 들고 있는 석궁을 비틀자, 으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석궁이 딱 하고 두 동강이 나 버렸다.
“”네가 스네이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나도 알아, 해리. 그렇지만 괜히 필요 이상으로 넘겨짚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조심해요.”
헤르미온느가 짤막하게 경고했다.
뒤를 돌아보니, 때마침 아구스 필치의 그림자가 벽 위에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등이 구부정하게 굽은 필치가 턱을 바들바들 떨면서 막 모퉁이를 돌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호!”
필치가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침실 밖을 돌아다니다니…… 이건 징계감이야!”
“그건 아닐세, 필치.”
해그리드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나와 함께 있지 않나, 안 그런가?”
“그렇다고 뭐가 달라지나?”
필치가 밉살스럽게 말했다.
“나도 어엿한 교수란 말이야. 알겠나? 이 염탐꾼 스큅 같으니라고!”
해그리드가 버럭 화를 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필치가 사납게 씩씩거리고 있는 동안, 어디선가 나타난 노리스 부인이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필치의 발목에 몸을 비비 꼬며 비벼 대기 시작했다.
“그만 가라.”
해그리드가 입을 우물거리며 슬쩍 말했다. 그러자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더 들을 것도 없이 잽싸게 자리를 피했다.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나는 두 사람의 등 뒤에서 해그리드와 필치의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들은 그리핀도르 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브스를 지나쳤다. 피브스는 째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소동의 진원지를 찾아서 신나게 날아가는 중이었다.
싸움이 벌어지고, 말썽이 생길 때
피브스를 불러 다오, 더 큰 소동을 일으킬 테니!”
꾸벅꾸벅 졸고 있던 뚱뚱한 여인은 잠을 방해받은 것에 몹시 기분 나빠 하면서도, 마지못해 입구를 열고 두 사람을 들여보냐 주었다. 디행스럽게도 휴게실 안은 고요하고 텅 비어 있었다. 아직 다들 론의 일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진절머리가 나도록 질문 공세에 시달린 해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헤르미온느는 그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여학생 침실로 올라갔다. 하지만 뒤에 남은 해리는 침실로 돌아가지 않고 잠시 벽난로 옆에 앉아서 꺼져가는 불씨를 내려다보았다.
결국 덤블도어는 스네이프와 언쟁을 벌였다. 그가 해리에게 한 그 모든 말에도 불구하고, 스네이프를 철석같이 믿는다는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덤블도어 역시 스네이프에게 화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덤블도어는 스네이프가 슬리데린 기숙사를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슬리데린의 학생들 중 어느 한 명을 조사하라고 한 건 아닐까? 혹시 말포이를?
그렇다면 덤블도어가 해리의 의혹에 대해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척했던 것은 순전히 모든 문제를 그의 손에 맡기고 해리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었을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덤블도어는 해리가 딴데 정신 팔지 말고 수업에만 집중하기를, 슬러그혼으로부터 기억을 빼내는 데에만 전념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겨우 열여섯 살짜리 꼬마에게 자기의 교직원을 의심한다는 말을 털어놓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여기 있었구나, 포터!”
기절할 듯이 놀란 해리는 자동적으로 지팡이를 쥔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휴게실이 당연히 비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저 구석에 있는 의자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코맥 맥클라건이었다.
“네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어.”
맥클라건은 치켜든 해리의 지팡이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줄줄 말을 늘어놓았다.
“아마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야. 사실은 아까 위즐리가 병동으로 실려 가는 걸 보았거든. 보아하니 걘 다음 주에 열리는 시합에 나가기는 틀린 것 같던데?”
해리가 맥클라건의 말뜻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아…… 맞아……. 퀴디치!”
해리는 지팡이를 다시 청바지의 허리띠 속으로 집어넣으면서 피곤한 듯이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래…… 론은 아마 그 시합에 못 나갈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가 파수꾼을 해야겠네, 안 그래?”
맥클라건이 말했다.
“그래…… 그래야 할 것 같다…….”
해리는 도저히 그의 말을 반박할 구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맥클라건이 선발 테스트에서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을 올린 것은 확실했으니까 말이다.
“잘했다!”
맥클라건이 만족스러운 듯 소리쳤다.
“그럼 연습이 언제야?”
“뭐라고? 아…… 내일 저녁에 있어.”
“좋아. 이봐, 포터. 그 전에 우리 둘이서 이야기를 좀 하자. 내가 아주 쓸 만한 전략들을 구상해 놓았거든.”
“알았어.”
해리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내일 들을게.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잘 자…….”
다음 날 론이 독약을 마셨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퍼졌다. 하지만 케이티가 받은 공격만큼 엄청난 반응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사건 당시에 론이 마법의 교수의 방에 있었고. 즉시 해독제를 먹고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들 단순한 사고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리핀도르 학생들은 대부분 다가오는 후플푸프와의 퀴디치 시합에 더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지난번 슬리데린과의 개막전 때 편파적인 해설을 하다가 톡톡히 대가를 치른 후플푸프 팀의 추격꾼 자카리아스 스미스를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해리는 퀴디치에 대해서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그는 급속도로 드레이코 말포이에 대한 생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틈이 날 때마다 호그와트 비밀 지도를 확인하고 말포이가 있을 만한 곳으로 멀리 돌아서 다니기도 했지만, 아직도 그가 수상쩍은 행동을 한다는 증거는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포이가 감쪽같이 비밀 지도에서 모습을 감추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지만 해리에게는 이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 볼 시간이 별로 없었다. 퀴디치 연습과 숙제 이외에도 이제는 어디를 가든 코맥 맥클라건과 라벤더 브라운이 그의 뒤를 졸졸 따라붙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지긋지긋한지 딱 잘라 말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맥클라건은 자기가 론보다는 팀을 위해서 몇 배 더 훌륭한 파수꾼이며, 해리 역시 규칙적으로 그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틀림없이 그쪽으로 생각을 바꿨을 거라는 의미의 말들을 끊임없이 흘리고 다녔다.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을 일일이 비판하고 나서면서 해리에게 훈련 계획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결국 해리는 그에게 누가 팀의 주장인지를 몇 번이나 상기시켜줘야만 했다.
한편 라벤더는 줄기차게 해리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론에 대해서 떠들었는데, 차라리 맥클라건의 퀴디치 강의가 덜 지겹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처음에 라벤더는 아무도 론이 병동에 있다는 소식을 자신에게 전해 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상당히 분개했다.
“난 그의 여자 친구란 말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라벤더는 해리의 건망증을 용서해 주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대신 그와 함께 론의 기분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안달이었다. 해리로서는 그야말로 피하고 싶은, 가장 불쾌한 경험이었다.
“이봐, 어째서 네가 직접 론에게 물어보지 않는 거지?
한번은 기나긴 시간 동안 질문 공세에 시달린 해리가 이렇게 물었다. 라벤더는 론이 그녀의 새 망토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부터 시작해서 론이 라벤더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시콜콜한 것들을 꼬치꼬치 캐물었던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내가 보러 갈 때면 론은 항상 자고 있는 걸!”
라벤더가 속상한 듯이 투덜댔다.
“그랬어?”
해리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가 병동에 찾아갈 때면 론은 언제나 말짱한 상태로 덤블도어와 스네이프의 말다툼에 대한 소식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맥클라건에 대한 흉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계속 론의 병실을 들락거린다니?”
라벤더가 별안간 물었다.
“응, 그런 것 같아. 두 사람은 친구잖아, 안 그래?”
해리는 어색하게 대꾸했다.
“친구 좋아하시네. 웃기지 좀 마.”
라벤더가 코웃음을 쳤다.
“론이 나랑 사귀기 시작한 뒤로 걔는 몇 주 동안 론이랑 말도 안 했어! 하지만 론에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니까 어떻게든 화해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거라고.”
“넌 독살당할 뻔한 걸 재미있는 일이라고 말하니?”
해리는 기가 막혔다.
“어쨌든…… 미안해, 난 그만 가 봐야겠어……. 저기 맥클라건이 또 퀴디치 이야기를 하러 오는구나.”
해리는 황급히 이렇게 말하고는 얼핏 단단한 벽처럼 보이는 문을 통해 재빨리 옆길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지름길을 통해 마법약 교실까지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다행히 라벤더도 맥클라건도 그곳까지 그를 따라오지는 못했다.
후플푸프와의 퀴디치 시합이 있는 날 아침, 해리는 경기장으로 향하기 전에 잠깐 병동에 들렀다. 론은 잔뜩 골이 나 있었다. 그가 너무 지나치게 흥분할 것을 염려한 폼프리 부인이 경기 관람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맥클라건은 어때?”
물론 이미 똑 같은 질문을 두 번이나 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해리에게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말했잖아.”
해리가 참을성 있게 대답했다.
“잠시 그 녀석이 세계적인 선수가 된다 해도, 난 절대 데리고 있고 싶지 않아. 맥클라건은 자기가 모든 포지션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다고 착각하고 있어. 다른 선수들에게도 이래라저래라 끊임없이 간섭을 하고 다닌다니까. 하루빨리 그 녀석을 내쫓았으면 좋겠어. 참, 기왕 그런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파이어볼트를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라벤더가 너를 찾아올 때 자는 척 좀 그만 하지 않을래? 걔 떄문에 내가 돌아 버리겠다.”
“어, 그래, 알았어.”
론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더 이상 걔랑 사귀고 싶지 않은 거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버려.”
해리가 충고했다.
“그래…… 그런데 그게 말이지…… 그렇게 쉽지가 않아…….”
론은 이렇게 말하고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물었다.
“혹시 시합 전에 헤르미온느가 여기에 들르지는 않을까?”
“아니, 헤르미온느는 벌써 지니랑 경기장으로 내려갔는걸.”
“오, 그렇구나.”
론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그래, 행운을 빌어. 맥클…… 아니, 스미스 녀석을 멋지게 눌러 버리길 바랄게.”
“노력해 볼게.”
해리가 빗자루를 둘러메며 말했다.
“그럼 경기 끝나고 보자.”
해리는 서둘러 아무도 없는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학생들은 모두 성을 빠져나가 이미 경기장에 앉아 있거나 가고 있는 중이었다. 해리는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가늠해 보려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때 앞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 보니, 말포이가 잔뜩 골이 나서 뿌루퉁해 보이는 여학생 두 명과 함께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해리를 보고 순간 멈칫한 말포이는 짤막하게 메마른 웃음소리를 내더니 다시 걸어왔다.
“어디에 가는 길이지?”
해리가 물었다.
“내 일도 아닌데 내가 말해 줄 것 같냐, 포터?”
말포이가 빈정거렸다.
“그만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요즘 뭐라더라, ‘선택받은 주장’ 이라나 ‘득점을 올린 바로 그 소년’ 이라나, 아무튼 다들 기다리고 있거든.”
여학생 중 한 명이 억지로 지어낸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해리가 기가 막혀서 그 녀석을 빤히 쳐다보자, 여학생은 얼굴을 붉혔다. 말포이는 해리를 휙 밀치고 지나갔고, 두 명의 여학생들도 종종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모퉁이를 돌아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해리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그들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정말 분통 터지는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경기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하려면 지금이라도 황급히 서둘러야만 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이 전부 자리를 비운 동안, 살금살금 뺑소니치는 말포이는 어쩌란 말인가. 지금은 말포이의 꿍꿍이를 알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침묵 속에서 몇 초가 흘렀고, 해리는 여전히 말포이가 사라진 쪽을 노려보며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도대체 어디 갔다 온 거야?”
해리가 탈의실로 정신없이 뛰어 들어오자, 지니가 다그쳤다. 팀 전체가 옷을 갈아입고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몰이꾼인 쿠트와 피크스는 초조한 나머지, 클럽으로 자기 다리를 툭툭 치고 있었다.
“말포이를 만났어.”
해리가 진홍색 망토를 머리 위로 뒤집어쓰면서 지니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은 다들 이곳으로 내려왔는데, 그 녀석만 여학생 두 명을 데리고 성 위로 올라가는 이유가 뭔지 알고 싶었거든.”
“지금 그게 중요해?”
“하긴, 어차피 지금은 알아낼 수 없을 테니까…….”
해리는 파이어볼트를 집어 들고 안경을 고쳐 썼다.
“그만 나가자!”
해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귀가 멍멍할 정도로 환호성과 야유 소리가 요란한 경기장으로 걸어 나갔다.
바람이 약간씩 불고 하늘에는 구름이 몇 점 떠 있어서 이따금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곤 했다.
“실수하기 좋은 날씨야!”
맥클라건이 팀원들을 격려하듯이 말했다.
“쿠트, 피크스, 태양을 등지고 날도록 해. 그럼 상대가 너희들이 날아오는 걸 보지 못할 테니까…….”
“맥클라건, 주장은 나야.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해리가 화를 냈다.
“그냥 골대나 잘 지키란 말이야!”
맥클라건이 가 버리자, 해리는 쿠트와 피크스를 행해 돌아섰다.
“반드시 태양을 등지고 날도록 해.”
해리는 마지못해 다시 한 번 그 말을 반복했다.
후플푸프의 주장과 악수를 나눈 해리는, 후치 부인이 호루라기를 불자 땅을 힘껏 박차고 다른 어떤 선수들보다 높이 공중으로 날아오른 다음, 스니치를 찾아서 경기장을 빙 돌았다. 운 좋게도 스니치를 빨리 잡을 수만 있다면, 성으로 돌아가서 호그와트 비밀 지도를 들고 말포이가 뭘 하는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후플푸프의 스미스 선수가 퀘이플을 잡았습니다.”
꿈꾸는 듯한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지난번 경기 때에는 저 선수가 해설을 맡았었죠. 그리고 지니 위즐리가 날아와서 그를 덮치기도 했습니다. 정황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고의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요. 스미스 선수는 그리핀도르 팀에 대해서 상당히 무례한 말들을 많이 했었지요. 지금 바로 그 팀과 경기를 하게 되었으니, 후회막급일 겁니다. 오, 스미스 선수가 퀘이플을 빼앗겼습니다. 지니 선수가 빼앗았군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아주 멋진 선수죠…….”
해리는 중계석을 내려다보았다. 루나 러브굿을 해설자로 보낼 만큼 정신 나간 사람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높은 곳에 있다 하더라도, 저 길고 지저분한 금발 머리와 버터 맥주의 코르크 마개로 만든 목걸이를 못 알아볼 수는 없었다……. 루나 옆에는 맥고나걸 교수가 이 해설자 선정 문제에 대해서 분명 이견이 있는 듯이,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었다
“……하지만 방금 덩치 큰 후플푸프의 선수가 지니로부터 퀘이플을 빼앗았습니다. 이 선수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바이블 뭐였던 것 같은데……. 아니, 버긴스인가?”
“캐드윌러더야!”
맥고나걸 교수가 루나 옆에서 소리를 빽 지르자, 관중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해리는 열심히 스니치를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흔적조차 없었다. 잠시 후에 캐드윌러더가 득점을 했다. 맥클라건은 지니에게 퀘이플을 빼앗겼다고 악을 쓰며 화를 내다가, 그만 커다란 붉은 공이 그의 오른쪽 귓가를 스치고 날아가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맥클라건,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고 네가 맡은 일이나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해!”
빙 날아서 파수꾼 앞으로 간 해리가 고함을 질렀다.
“너나 잘하라고!”
맥클라건은 시뻘개진 얼굴로 잔뜩 화가 나서 맞받아쳤다.
“해리 포터가 자기 팀 파수꾼과 언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래쪽 관중석에서 후플푸프와 슬리데린 학생들이 야유를 보내며 기뻐하고 있을 때, 루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태평스럽게 말했다.
“그래서는 스니치를 찾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 같기는 하지만, 어쩌면 작전상의 속임수일지도 모르죠…….”
해리는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붓고는 몸을 틀어서 다시 경기장 안을 빙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개 달린 자그마한 황금색 공의 자취를 찾아서 하늘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지니와 드멜자가 각각 득점을 하자, 아래쪽에 있는 붉은색과 황금색의 응원단들이 응원의 함성을 보냈다. 잠시 후에 캐드윌러더가 또다시 득점을 해서 동점이 되었지만, 루나는 그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득점 같은 세속적인 일에는 이제 흥미가 없다는 듯, 관중들의 관심을 기묘하게 생긴 구름이라든가, 지금껏 1분 이상 퀘이플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자카리아스 스미스가 소위 ‘패배자의 병’ 이라고 하는 질병에 걸렸을 가능성 같은 것들 쪽으로만 계속 유도하려고 했다.
“70 대 40으로 후플푸프가 앞서 갑니다!”
맥고나걸 교수가 루나의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벌써 그렇게 됐나요?”
루나가 몽롱하게 대답했다.
“오, 보세요! 그리핀도르의 파수꾼이 몰이꾼의 방망이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해리는 공중에서 빙그르 돌아 보았다. 과연 맥클라건이 피크스의 방망이를 빼앗아 들고, 다가오는 캐드윌러더를 향해 블러저를 어떻게 쳐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 준다며 자기만의 비법을 전수하고 있었다.
“당장 방망이를 돌려주고 넌 골대로 돌아가도록 해!”
해리가 맥클라건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돌진하는 순간, 맥클라건이 사나운 기세로 후려친 블러저가 빗나갔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격렬한 고통에 뒤이어…… 번쩍하는 섬광…… 아득한 비명 소리…… 그리고 한없이 굴속으로 떨어지는 느낌…….
그 다음에 해리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굉장히 따뜻하고 편안한 침대에 누워서 어두운 천장에 황금빛 둥근 원을 만들고 있는 등불을 올려다보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해리가 간신히 고개를 들자, 왼쪽으로 굉장히 낯익은 빨간 머리의 주근깨 소년이 보였다.
“입원을 환영해.”
론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해리는 눈을 껌벅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과연 그는 병실에 있었다. 창밖에는 쪽빛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시합은 이미 몇 시간 전에 끝났을 것이다……. 더구나 말포이의 뒤를 밟는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해리의 머리가 이상하게 묵직하게 느껴졌다. 한 손을 들어서 만져 보니, 딱딱한 붕대가 둘러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두개골에 금이 갔단다.”
폼프리 부인이 서둘러 일어나서 그를 다시 베개 위로 눕히며 대답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내가 즉시 고쳤으니까. 그래도 밤새 너를 지켜봐야겠다. 몇 시간 동안은 절대 무리해서는 안 돼.”
“여기서 밤을 지샐 수는 없어요.”
해리가 화를 내며 다시 일어나 앉더니 이불을 젖혔다.
“맥클라건 녀석을 찾아서 죽여 버리겠어요.”
“미안하지만 그것도 무리하는 일에 해당된단다.”
폼프리 부인이 단호하게 그를 다시 침대에 눕히더니 위협적으로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포터, 내가 허락할 때까지 여기 누워 있어라. 그러지 않으면 교장 선생님을 부르겠다.”
부인은 바쁘게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다. 해리는 씩씩거리며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우리가 몇 점 차이로 졌는지 아니”
해리가 이를 악물며 론에게 물었다.
“그럼 알고말고.”
론이 미안한 듯이 말했다.
“최종 스코어가 320 대 60이었어.”
“가관이군.”
해리가 사납게 내뱉었다.
“아주 가관이야! 맥클라건 녀석, 내 손에 잡히기만 해 봐라…….”
“그 녀석을 네 손으로 잡을 수는 없을걸. 그 녀석은 덩치가 거의 트롤만 하잖아.”
론이 지극히 이성적인 어조로 충고했다.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차라리 그 녀석에게 왕자의 책에 나온 그 발톱 저주 같은 걸 사용하라고 추천하고 싶어. 어쨌든 네가 여길 나가기 전에 다른 선수들이 벌써 그 녀석을 손봐 주었을 거야. 다들 썩 유쾌한 얼굴은 아니었거든…….”
론의 목소리에는 고소해 죽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맥클라건이 시합을 엉망진창으로 망쳐 버린 것에 대해서 론이 내심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게 해리의 눈에도 빤히 보였다. 해리는 천장의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방금 치료받은 머리는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왠지 붕대로 칭칭 감고 있으니 건드리면 아플 것만 같았다.
“여기까지 시합 중계하는 소리가 다 들렸거든.”
론은 이제 웃음을 참지 못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루나가 해설을 맡았으면 좋겠어. ‘패배자의 병’ 이라니…….”
하지만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해리는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잠시 후, 큭큭거리던 론의 웃음도 진정되었다.
“네가 정신을 잃고 있었을 때, 지니가 찾아왔었어.”
한참 후에 론이 말했다.
갑자기 해리의 상상력이 발동되면서, 축 늘어진 자신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던 지니가 그에 대한 깊은 애정을 고백하고 론이 두 사람을 축복해 주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지니 말이 네가 시합 직전에야 겨우 도착했다던데, 왜 그런 거야? 여기서 꽤 일찍 나갔었잖아.”
순간 해리의 눈앞에 떠올랐던 장면이 펑 하고 사라졌다.
“어…… 그게 말이지…… 말포이 녀석이 여학생 두 명이랑 몰래 돌아다니는 걸 보았거든. 그 여학생들은 왠지 그 녀석이랑 다니는 걸 보았거든. 그 여학생들은 왠지 그 녀석이랑 다니는 걸 썩 내켜 하지 않는 눈치였어. 어쨌든 그 녀석이 다른 학생들과 같이 퀴디치 경기장에 내려오지 않은 게 벌써 두 번째야. 지난번 시합 때에도 빠졌었잖아, 기억나?”
해리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차라리 그 녀석 뒤나 밟아 볼 걸 그랬어. 어차피 시합도 엉망진창으로 끝나고…….”
“멍청한 소리 좀 작작 해.”
론이 날카롭게 비난했다.
“겨우 말포이 녀석의 뒤를 밟느라고 퀴디치 시합에서 빠진단 말이야? 전 주장이라고!”
“하지만 난 그 녀석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궁금해 죽겠단 말이야.”
해리가 말했다.
“그게 모두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거라고는 말하지 마! 난 스네이프와 그 녀석이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엿들었다고…….”
“난 네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말한 적 없어.”
팔꿈치를 받치고 몸을 일으킨 론이 얼굴을 찌푸리며 해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반드시 걔만 무슨 일을 꾸미고 있으리란 말도 없잖아! 해리, 넌 말포이에게 점점 더 집착하고 있어. 그 녀석 뒤를 쫓으려고 시합에 빠질 생각을 다 하다니…….”
“난 그 녀석을 꼭 붙잡고 싶단 말이야!”
해리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도대체 그 녀석은 지도에서 사라져서 어디로 가는 거지?”
“글쎄…… 호그스미드?”
론이 하품을 하면서 한마디 던졌다.
“그 녀석이 지도에 나타난 그 어떤 비밀 통로도 지나가는 걸 전혀 본 적이 없어. 게다가 지금은 그 통로들도 다 감시를 받고 있지 않을까?”
“글쎄, 난 잘 모르겠어.”
론이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해리는 머리 위의 둥근 불빛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에게 루퍼스 스크림저만큼 힘이 있었더라면, 말포이에게 사람을 붙여 미행을 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해리에게는 마음대로 지휘할 수 있는 오러들로 가득한 부서 같은 것은 없었다……. D.A. 회원들과 뭔가를 꾸며 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수업을 빠져야 한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학생들 대부분은 시간표가 빡빡했던 것이다.
론의 침대에서 나지막이 드르렁거리며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두꺼운 실내복을 입은 폼프리 부인이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자는 척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해리는 옆으로 돌아누워, 폼프리 부인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모든 커튼이 저절로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등불이 희미해지고, 폼프리 부인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문이 딸깍하며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해리는 부인이 드디어 잠자리에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해리는 어둠 속에서 혼자 생각에 잠겼다. 퀴디치 시합 도중 입은 부상 때문에 병동에 실려 온 것이 벌써 세 번째였다. 지난번에는 경기장 근처에 나타난 디멘터들로 인해서 빗자루에서 떨어졌었고, 그 전에는 구제 불능인 록허트 교수 때문에 팔의 벼가 몽땅 사라져 버리기도 했었다……. 그때가 해리에게는 가장 고통스런 부상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팔 하나의 뼈가 전부 새로 자라날 때의 고통이 아직도 쌩쌩하게 전해졌다. 전혀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는데도 그 아픔이 전혀 사라지지 않았었다…….
갑자기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머리에 쓴 붕대 터번은 비스듬하게 흘러 내려와 있었다. 드디어 해결책을 찾아낸 것이다! 말포이를 미행할 방법이 있었다. 왜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왜 진작 그 생각을 하지 못했지?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그를 부르느냐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했더라?
해리는 시험 삼아 작은 목소리로 어둠에 대고 말했다.
“크리처?”
순간 펑 하고 커다란 소리가 나더니, 몸부림을 치는 소리와 꽥꽥거리는 비명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론이 소리를 지르며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해리는 폼프리 부인이 놀라서 달려오지 않도록 황급히 지팡이로 부인의 사무실 쪽을 가리키며 주문을 외었다.
“머플리아토!”
그런 다음 해리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침대 끝으로 기어갔다.
병실 중앙 바닥에 두 명의 꼬마 집요정이 뒹굴고 있었다. 한 집요정은 쪼글쪼글 주름이 잡힌 밤색 점퍼와 털실로 짠 모자를 몇 개씩이나 쓰고 있었고, 또 다른 집요정은 허리춤에 더럽고 낡은 천 조각 하나만 달랑 걸치고 있었다. 곧이어 또 다시 펑하고 큰 소리가 나더니, 피브스가 한창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집요정들 머리 위에 나타났다.
“내가 다 봤어, 해리!”
피브스는 발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가리키며 화가 난 듯이 떠들어 대더니, 큰 소리로 낄낄거리며 웃었다.
“시시껄렁한 일로 싸움질을 벌이는 저 한심한 것들 좀 봐. 툭탁툭탁 물고 뜯고…….”
“크리처는 도비 앞에서 해리 포터를 욕하면 안 돼. 절대로 안 돼. 계속 그러면 도비가 크리처의 입을 꿰매 버릴 거야!”
도비가 찢어질 듯이 높은 목소리로 꽥꽥거렸다.
“발로 차고 할퀴어라!”
피브스가 분필 조각을 던지며 집요정들의 하를 돋우었다.
“꼬집고 찔러라!”
“크리처는 자기 주인에 대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말할 거야. 그럴 거야. 주인은 무슨 주인? 더러운 머글들의 친구지. 가엾은 크리처의 여주인님께서는 과연 뭐라고 하실까……?”
하지만 크리처의 여주인님께서 뭐라고 말했을지 그들은 끝내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순간 도비의 마디진 작은 손이 크리처의 입을 정통으로 강타해서, 크리처의 이빨이 절반이나 부러졌기 때문이었다. 해리와 론은 얼른 침대에서 뛰어나와 두 집요정들을 간신히 따로 떼어 놓았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향해 발길질과 주먹질을 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피브스는 킬킬 웃으며 등불 주위를 빙빙 돌면서 싸움을 부채질했다.
“손가락으로 녀석의 콧구멍을 쑤셔! 머리를 잡아 뜯고 귀를 잡아당겨!”
해리는 지팡이로 피브스를 겨눈 다음, “랭록!”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피브스가 목을 움켜쥐더니 입을 딱 벌린 채 밑으로 뚝 떨어졌다. 이제 혀가 입천장에 딱 들러붙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피브스는 계속 손가락질을 해 댔다.
“잘했어.”
론이 칭찬을 하면서 도비를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도비는 여전히 팔다리를 마구 휘둘렀지만, 더 이상 크리처에게 닿지는 않았다.
“그것도 왕자의 주문이니?”
“맞아.”
해리가 크리처의 쭈글쭈글한 팔을 거의 목 조르기 자세로 비틀면서 말했다.
“너희 둘 다 싸우는 것을 금지한다! 크리처, 넌 도비와 싸우면 안 돼. 그리고 도비, 난 너에게 명령을 내릴 수는 없지만…….”
“도비는 해방된 집요정이니까 자기가 원하는 누구에게나 복종할 수 있어요. 그리고 도비는 해리 포터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거예요!”
주름이 쪼글쪼글한 도비의 작은 얼굴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점퍼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렇다면 좋아.”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그와 론은 집요정들을 풀어 주었다. 마루 위로 쿵 떨어진 집요정들은 더 이상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인님, 절 부르셨나요?”
크리처는 그가 당장이라도 고통스럽게 죽기를 바라는 표정으로 해리를 노려보면서도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래, 그랬어.”
해리는 아직도 머플리아토 주문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폼프리 부인의 사무실 쪽을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부인은 이 시끄러운 소동을 전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너에게 시킬 일이 있어.”
“크리처는 주인님이 원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크리처는 입술이 꼬부라진 그의 발가락에 거의 닿도록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왜냐하면 크리처는 선택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크리처는 그런 주인을 섬기게 된 것이 수치스럽습니다, 그래요…….”
“도비는 안 그래요, 해리 포터!”
도비가 테니스공만 한 두 눈에 여전히 눈물을 글썽이며 꽥꽥거렸다.
“해리 포터를 돕는 일은 도비의 영광이에요!”
“어디 생각해 보자. 너희 둘 다에게 시키는 게 과연 좋을지 말이야.”
해리가 말했다.
“좋아. 나는 너희 둘이 드레이코 말포이의 뒤를 미행하길 원해.”
론의 얼굴에 놀랍고도 어이없다는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못 본 척하면서 해리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그가 어디를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어. 그러니 너희 둘이 온종일 그의 뒤를 따라다녔으면 해.”
“예, 해리 포터!”
도비는 흥분해서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즉시 대답했다.
“만약 도비가 일을 잘못한다면, 도비는 제일 높은 탑에서 뛰어내릴 거예요, 해리 포터!”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해리가 황급히 만류했다.
“주인님은 제가 말포이 가문의 막내아드님을 미행하길 원하시나요?”
크리처가 끽끽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주인님은 제가 저의 옛 여주인님의 위대한 순수 혈통 조카 손자를 염탐하길 원하신단 말인가요?”
“그래, 맞아.”
여러가지 위험을 예상한 해리는 즉시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기로 마음먹었다.
“너는 그에게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돼, 크리처. 네 계획이 뭐지 그에게 보여주거나 말을 해서는 절대 안 돼. 편지를 써서도 안 되고, 또…… 어떤 식으로든 그와 접촉해서는 안 돼, 알겠지?”
해리는 방금 자신이 내린 지시에 대해서 크리처가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으려고 기를 쓸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잠시 후에 크리처가 다시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비록 원한에 가득 찬 목소리긴 했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해리는 만족했다.
“주인님은 모든 것을 생각하십니다. 크리처는 차라리 말포이 도련님의 하인이 되고 싶지만, 그래도 주인님께 복종해야만 합니다. 네, 그렇고말고요…….”
“그럼 됐어.”
해리가 말했다.
“정기적으로 나에게 보고하도록 해라. 하지만 내 앞에 나타날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단, 론과 헤르미온느가 있을 때에는 괜찮아. 그리고 너희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한 쌍의 고약처럼 말포이에게 딱 들러붙어 있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