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권-제24장 섹튬셈프라 (23/30)

제24장

섹튬셈프라

   해리는 어젯밤 일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다음 날 아침 마법 수업 시간 동안 기쁜 마음으로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어젯밤에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말해 주었다(덕분에 가까이에 있는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머플리아토 주문을 써 보았다). 두 사람 모두 해리가 얼마나 교묘한 방법으로 슬러그혼으로부터 기억을 빼냈는지를 듣고 크게 감탄했다. 그리고 볼드모트의 호크룩스에 대한 이야기와, 덤블도어가 또 다른 호크룩스를 발견하면 해리를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탄해 마지않았다.

   “우와! 넌 정말로 덤블도어 교수님과 함께 가겠구나. 그걸 파괴하려고……. 우와!”

   “론, 네가 눈을 내리게 하고 있잖아.”

   헤르미온느가 참을성 있게 한마디 던지고는 그의 손목을 탁 잡고 천장 쪽을 향하고 있는 그의 지팡이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과연 하얗고 커다란 눈송이가 막 쏟아지고 있었다. 해리는 바로 옆에 있는 책상에서 라벤더 브라운이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헤르미온느를 험악하게 노려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헤르미온느는 얼른 론의 팔을 놓아 버렸다.

   “어, 그랬구나.”

   론은 여전히 얼빠진 표정으로 자기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미안해……. 우리 셋 다 끔찍하게 비듬이 많은 사람들처럼 보이는걸.”

   론이 헤르미온느의 어깨에서 눈을 털어 주자, 라벤더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론은 죄책감으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얼른 라벤더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녀와 헤어졌어.”

   론은 옆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해리에게 슬쩍 상황을 설명했다.

   “어젯밤에 말이야. 헤르미온느와 내가 침실에서 나오는 걸 라벤더가 보았잖아. 당연히 네 모습을 볼 수 없었으니, 라벤더는 우리 두 사람만 거기 있었다고 생각했던 거야.”

   “아, 그렇구나.”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어쨌든 끝났으니 너한테는 잘된 거잖아, 안 그래?”

   “그건 그래.”

   론이 솔직하게 인정했다.

   “라벤더가 마구 소리를 질러 댈 때엔 정말 끔찍했지만, 적어도 내가 먼저 끝내야만 할 필요는 없게 되었으니까.”

   “겁쟁이.”

   그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헤르미온느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한마디로 어젯밤은 연인들에게 아주 불운한 밤이었어. 지니와 딘도 헤어졌대, 해리.”

   해리는 그 소식을 전하는 헤르미온느의 눈빛이 왠지 뭔가를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갑자기 둥둥 올리는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그의 속마음을 그녀가 알 리는 없을 것이라고 애써 부인했다. 그는 최대한 무표정한 얼굴과 무관심한 듯한 어조를 유지하려고 애를 쓰면서 들었다.

   “어쩌다가?”

   “오, 정말 말도 안 되는 한심한 일로 갈라섰어……. 지니가 말하길, 딘이 지니가 초상화 구멍을 지나갈 때마다 마치 혼자서는 도저히 기어 오르지 못하는 사람 취급을 하면서 도와주려고 했다는데…… 그게 기분 나빴나 봐. 사실 두 사람 관계도, 오래전부터 위태위태 했어.”

   해리는 교실 저편에 앉아 있는 딘을 힐끗 쳐다보았다. 딘은 굉장히 우울해보였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일로 인해 네가 조금 난처해지겠구나,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해리가 재빨리 물었다.

   “퀴디치 팀 말이야. 지니와 딘이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내게 되면…….”

   헤르미온느가 설명했다.

   “아, 그거……. 그렇지.”

   해리가 우물거렸다.

   “플리트윅 교수님이다.”

   이때 론인 재빨리 경고를 했다. 키자 자그마한 마법 교수가 그들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식초를 포도주로 바꾸는 데 성공한 건 헤르미온느 한 사람뿐이었다. 그녀의 유리 플라스크는 짙은 붉은색 액체로 가득 차 있었지만, 해리와 론의 플라스크에 담긴 것은 여전히 어두운 갈색을 띠고 있었다.

   “이봐, 이봐, 거기 남학생들!”

   플리트윅 교수가 나무라듯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은 그만 하고 행동으로 좀 보여 주도록……. 어디 자네들이 어떻게 하는지 좀 볼까…….”

   두 사람은 동시에 지팡이를 들고 온 힘을 다하여 정신을 집중한 다음 플라스크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순간 해리의 식초는 얼음으로 변하고 론의 플라스크는 펑 하고 터져버렸다.

   “좋아……. 숙제로…… 연습해 와요.”

   책상 밑으로 숨었다가 다시 기어 나온 플리트윅 교수는 모자 위에서 유리 파편을 털어 내면서 말했다.

   

   이번 수업이 끝난 뒤, 오래간만에 다 함께 수업이 없는 자유 시간이 찾아왔다. 세 사람은 휴게실로 향했다. 론은 라벤더와의 관계를 끝내서 무척이나 홀가분한 기색이 역력했고, 헤르미온느도 꽤 즐거워 보였다. 도대체 뭐가 좋아서 싱글벙글 하냐고 묻는 말에 그저 “날씨가 좋잖아” 하고 간단하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두 사람 모두 해리의 머릿속에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싸움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니는 론의 여동생이야.

   하지만 그녀는 딘과 헤어졌어!

   그래도 여전히 론의 여동생이야.

   난 론의 가장 친한 친구잖아.

   그러니까 더 문제라고.

   만약 내가 먼저 론에게 이 사실을 고백한다면……. 

   그럼 당장에 한 방 얻어맞기나 할걸?

   뭐 어때? 나만 상관하지 않으면 되지.

   론은 너의 가장 절친한 친구라고!

   해리는 넋이 나간 상태로 초상화 구멍을 기어 올라가서 환하게 햇살이 비치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소리칠 때까지도, 해리는 7학년 학생들이 한곳에 우르르 몰려 있구나 하는 생각만 겨우 했을 뿐이었다.

   “케이티! 너 돌아왔구나! 괜찮니?”

   해리는 멍하니 그쪽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케이티 벨이 환호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제 멀쩡해!”

   케이티가 유쾌하게 대답했다.

   “월요일에 성 뭉고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엄마 아빠랑 집에서 이틀 동안 지내다가 오늘 아침에 학교로 돌아온 거야. 린느가 지금 맥클라건과 지난번 시합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는 중이었어, 해리…….”

   “그래.”

   해리가 말했다.

   “이제 네가 돌아왔고 론이 호조를 보이고 있으니까, 우린 반드시 래번클로를 격파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도 계속해서 우승컵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는 뜻이지. 그런데 케이티…….”

   해리는 당장 케이티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궁금했던 나머지, 잠깐 동안 지니에 대한 생각마저 까맣게 잊을 정도였다. 변신술 수업에 늦은 게 분명한 케이티의 친구들이 각자 자기 짐을 챙기기 시작했을 때, 해리는 잔뜩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그 목걸이 말인데…… 누가 너에게 그걸 주었는지 이젠 기억할 수 있겠니?”

   “아니.”

   케이티가 유감스러운 듯이 고개를 저었다.

   “모두들 나에게 그걸 물어보는데, 난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어.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내가 스리 브룸스틱스에서 여자 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는 것뿐이야.”

   “그럼 분명히 화장실로 들어간 거지?”

   헤르미온느가 확인했다.

   “글쎄…… 문을 열고 들어간 것까지는 알겠어.”

   케이티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건 사람은 바로 문 뒤에 서 있었던 것 같아. 그때부터 성 뭉고 병원에서 퇴원하기 2주일 전까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아. 이봐, 난 그만 가 봐야겠다. 맥고나걸 교수님은 내가 학교에 돌아온 첫날이라고 해도 능히 벌을 주실 분이거든…….”

   케이티는 가방과 책을 집어 들더니 서둘러 친구들 뒤를 따라갔다. 뒤에 남은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창가에 있는 탁자에 둘러앉아서 케이티가 한 말을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떤 여학생이나 여인이 케이티에게 그 목걸이를 준 게 틀림없어. 여자 화장실 안에 들어온 걸 보면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아니면 여학생이나 여인처럼 보이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지.”

   해리가 반박했다.

   “잊지 마. 호그와트에는 폴리주스 마법약이 한 통 가득 들어 있다는 걸 말이야. 그 일부가 도난당하기까지 했고…….”

   해리의 눈앞에 여학생으로 변신한 크레이브와 고일이 의기양양하게 활보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펠릭스 펠리시스 한 모금 더 마셔야 할 것 같아.”

   해리가 제안했다.

   “그러고는 필요의 방을 다시 찾아보는 거야.”

   “그건 완전히 약을 낭비하는 짓이야.”

   헤르미온느가 가방에서 방금 꺼낸 《주술사의 문자표》 책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딱 잘라 말했다.

   “행운은 거기까지야, 헤리. 슬러그혼 교수님과의 상황은 이거랑 달랐어. 넌 항상 교수님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다만 환경에 약간 변화만 주면 되는 거였어. 하지만 행운만 가지고는 강력한 마법을 뚫고 들어갈 수 없어. 괜히 남은 약을 낭비하지 마! 만약 덤블도어 교수님이 널 데리고 가신다면, 네게 있는 행운을 다 동원해도 부족할 판이라고…….”

   헤르미온느는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속삭였다.

   “우리가 더 만들 수는 없을까?”

   론이 헤르미온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해리에게 물었다.

   “행운의 약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굉장히 좋을 거야……. 책을 한번 뒤져 봐…….”

   해리는 가방에서 《상급 마법약 만들기》 책을 꺼내어 펠릭스 펠리시스를 찾아보았다.

   “이런, 엄청나게 복잡해.”

   해리가 재료 목록을 눈으로 훑어 내려가며 투덜거렸다.

   “게다가 여섯 달이나 걸리는데……. 그걸 뭉근하게 끓여야하고…….”

   “그럴 줄 알았어.”

   론이 말했다.

   해리가 책을 막 치우려고 하는 순간, 책 한 귀퉁이가 접혀 있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그 면을 펼쳐 보니, ‘적에게 사용’ 이라는 글자와 함께 섹튬셈프라라는 주문이 적혀 있었다. 그가 몇 주 전에 보고 표시해 놓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 주문이 어떻게 사용되는 건지 알아내지 못했는데, 그건 주로 헤르미온느가 옆에 있을 때 그걸 시험해 보기가 싫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다음에 맥클라건의 등 뒤로 몰래 다가가서 한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케이티 벨이 학교로 돌아온 걸 보고 별로 기뻐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바로 딘 토마스였다. 더 이상 그녀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추격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리가 이 말을 했을 때, 딘은 그저 몇 마디 불평을 하고 어깨를 으쓱했을 뿐, 의연한 자세로 이 가슴 아픈 통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해리는 딘과 시무스가 떠나는 그의 등 뒤에서 뭐라고 쑥덕거리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2주 동안은 해리가 주장으로서 생각하기에 가장 훌륭한 퀴디치 연습이 계속되었다. 그의 팀은 맥클라건으로부터 벗어난 데다가 마침내 케이티까지 돌아와서 어찌나 신이 나던지 그야말로 펄펄 날아다녔다.

   지니는 딘과 헤어진 것이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팀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지니는 퀘이플이 돌진할 때마다 골대 앞에서 불안하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론의 모습이나,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전에 맥클라건에게 악을 쓰며 지시를 내리던 해리의 모습을 흉내 내어 모두를 대단히 즐겁게 해 주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깔깔 웃으면서 해리는 지니를 마음껏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한 이유를 가지게 된 것이 기뻤다. 덕분에 연습 경기 동안 스니치를 제대로 보지 않고 있다가 몇 번이나 블러저에 맞아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지니냐 론이냐?’ 하는 싸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때때로 해리는 라벤더 사건 이후의 론이라면 설사 그가 지니와 사귀겠다고 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딘과 키스하고 있는 지니를 발견했을 때의 론의 표정을 생각해보면, 혹시 해리가 지니의 손만 잡아도 론은 그것을 그야말로 비열한 배신 행위라고 여길 게 분명했다

   하지만 해리는 지니에게 자꾸만 말을 걸고, 함께 웃으며, 연습이 끝난 다음에는 그녀와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양심에 찔리고 가책을 느껴도, 어느 순간 어떻게 하면 지니가 나를 좋아하게 될까 궁리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었다. 혹시 슬러그혼이 또다시 작은 파티라도 연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았다. 그곳에는 론이 얼씬거릴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슬러그혼은 파티를 포기한 것 같았다. 한두 번 해리는 헤르미온느에게 도움을 청할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르는 놀리는 듯한 표정을 도저히 똑바로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가끔씩 지니를 멍하니 바라보고나 그녀의 농담에 큰 소리로 웃는 그의 모습을 헤르미온느가 간파하고 분명 비웃는 표정을 짓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만약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조만간 다른 누군가가 지니에게 사귀자고 덤빌까 봐 걱정돼서 죽을 지경이었던 것이었다. 해리와 론은 적어도 지니가 너무 지나치게 인기가 있다는 사실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결국 펠릭스 펠리시스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싶다는 유혹은 점점 더 강해졌다. 이거야말로 헤르미온느가 말했던 대로, ‘환경에 약간 변화만 주면 되는 일’이 아니고 또 뭐란 말인가? 5얼의 화창한 날들이 순조롭게 흘러갔고, 해리는 지니와 마주칠 때마다 그의 곁에 언제나 론이 있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그는 어떻게든 론이 그의 가장 친한 친구와 여동생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만 몇 초라도 단둘이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줄 생각이 들게 할 수 있는 행운의 사건이 일어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하지만 그 학기의 마지막 퀴디치 시합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혀 그럴 가망성이 보이지 않았다. 론은 온종일 해리를 따라다니며 시합 전략을 짜는 데 여념이 없었고, 다른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론만이 아니었다. 그리핀도르 대 래번클로의 시합은 학교 전체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는데, 왜냐하면 아직도 전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우승의 향방이 이번 경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리핀도르가 300점 차이로 래번클로를 이긴다면(터무니 없는 요구이기는 했지만, 해리는 그의 팀이 지금만큼 실력이 좋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그리핀도르가 우승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만약 300점보다 적은 점수 차로 이긴다면, 래번클로 다음으로 준우승을 하게 된다. 하지만 100점 차이로 내로 지게 되면 후플푸프에 이어서 3위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200년 만에 처음으로 그리핀도르팀이 꼴찌 자리를 차지했을 때 그 팀을 이끈 주장이 바로 해리였다는 사실을 영원히 그가 잊지 못하게 될 정도로 모두들 난리를 피울 것이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이 결정적인 시합의 날이 다가옴에 따라 으레 나타나는 모든 현상들이 벌어졌다. 경쟁 기숙사의 학생들은 복도에서 상대편 팀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고, 선수들이 지나갈 때마다 그들 개개인에 대해서 기분 나쁜 말들을 공공연히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선수들 또한 거들먹거리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거나, 아니면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수업시간 사이사이마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토하기 일쑤였다. 어느 사이에 해리의 머릿속에서 이 시합은 지니에 대한 그의 계획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여부와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고 말았다. 만약 그들이 300점 이상의 차이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시합 이후에 벌어지게 될 야단스런 파티와 행복한 광경들은 틀림없이 펠릭스 펠리시스를 몽땅 마신 것만큼이나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일들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서도, 해리는 말포이가 필요의 방에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지 알아 내겠다는 또 다른 야심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호그와트 비밀 지도를 살펴보면서 말포이의 위치가 지도에 나타나지 않을 때마다 그가 여전히 그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추측했다. 비록 필요의 방으로 들어가겠다는 희망은 점차 포기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방에 가까이 갈 때마다 항상 다시 시도를 해 보곤 했다. 하지만 주문을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 봐도 벽은 변함없이 그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래번클로와의 시합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해리는 휴게실을 나와 혼자 식사를 하러 내려가고 있었다. 론은 또다시 토하러 가까이에 있는 화장실에 뛰어 들어갔고, 헤르미온느는 지난번 산술점 작문에서 한 가지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면서 벡터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허둥지둥 달려가 버렸다. 해리는 그럴 때마다 항상 그래 왔듯이, 호그와트 비밀 지도를 살펴보며 평소처럼 7층을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한동안 지도 어디에서도 말포이를 찾을 수가 없자, 해리는 틀림없이 필요의 방에 또 들어간 모양이라고 단정했다. 그 순간 말포이란 이름이 붙은 작은 점이 바로 아래층 남학생 화장실에 찍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크레이브도, 고일도 아닌 모우닝 머틀이 있었다.

   해리는 이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을 정신없이 바라보며 걷다가 그만 갑옷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말았다. 쾅 하는 요란한 소리에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든 그는 필치가 나타나기 전에 얼른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고 쏜살같이 대리석 계단을 지나 아래층 복도로 달려갔다. 해리는 화장실 밖에 서서 문에다 귀를 바싹 갖다 댔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해리는 살그머니 화장실 문을 열었다.

   드레이코 말포이가 문 쪽으로 등을 돌리고 두 손으로 세면대의 양쪽을 움켜쥔 채, 금발 머리를 푹 숙이고 서 있었다.

   “그러지 마.”

   화장실 칸막이 안 어딘가에서 모우닝 머틀의 구슬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지 말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말해 봐…….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야…….”

   “아무도 날 도와줄 수 없어.”

   말포이가 말했다. 그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난 할 수 없어……. 할 수 없어……. 작동이 안 돼……. 내가 빨리 이 일을 하지 못하면…… 그가 나를 죽이겠다고 했어…….”

   순간 해리는 깨달았다. 말포이가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말 그대로 엉엉 울고 있었다. 그의 창백한 뺨을 타고 줄줄 흐르는 눈물이 더러운 세면대 위로 뚝뚝 떨어졌다. 해리는 엄청난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말포이가 숨을 몰아쉬며 울음을 한 번 삼키더니 몸을 부르르 떨면서 고개를 들고 금이 간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해리를 발견했다.

   말포이는 지팡이를 뽑아 들고 휙 돌아섰다. 해리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지팡이를 뽑았다. 말포이가 쏜 저주는 아슬아슬하게 해리를 빗나가서 벽에 달린 등잔을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린 해리는 ‘레비코푸스!’라는 주문을 떠올리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말포이는 저주를 막아 내고 다시 공격을 하기 위해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안 돼! 안 돼! 그만 해!”

   모우닝 머틀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타일이 깔린 화장실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만! 그만 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해리 뒤에 있던 쓰레기통이 폭발했다. 해리는 다리 묶기 주문을 시도해 보았지만, 말포이의 귓전을 스쳐 지나간 주문을 벽에 맞고 다시 튕겨 나와 모우닝 머틀의 아래쪽에 있던 물탱크를 강타했다. 그녀는 목청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 댔다. 사방으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고 해리는 화장실 바닥에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 말포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크루시…….”

   “섹튬셈프라!”

   해리는 바닥에 쓰러진 채, 미친 듯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큰 소리로 주문을 외쳤다.

   말포이의 가슴과 얼굴에서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칼이 단번에 그를 베어 버린 것 같았다. 말포이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더니 물이 흥건하게 고인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힘없이 축 늘어진 그의 오른손에서 지팡이가 데구르르 굴러 떨어졌다.

   “안 돼…….”

   해리가 입을 딱 벌렸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는 말포이에게 달려갔다. 말포이의 얼굴은 이제 붉은 피로 번들거렸고, 그의 하얀 손은 피가 쏟아지는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아니야……. 나…… 나는 이럴 생각이…….”

   해리는 자기가 뭐라고 중얼거리는지도 모르는 채 말포이 옆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말포이는 자기가 흘린 피웅덩이 속에 누워서 걷잡을 수 없이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제 모우닝 머틀은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큰 소리로 악을 쓰고 있었다.

   “살인이야! 화장실에서 살인이 일어났어! 살인이야!”

   해리의 등 뒤에서 문이 활짝 열렸다. 해리는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스네이프가 사색이 된 얼굴로 황급히 뛰어 들어와 해리를 옆으로 거칠게 밀치고 말포이 위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지팡이를 뽑아 들더니, 노랫가락 같은 주문을 흥얼거리며 지팡이로 해리의 저주 때문에 생긴 깊은 상처 위를 훑어 갔다. 정신없이 솟구치던 피가 조금씩 멈추기 시작했다. 스네이프는 말포이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한 번 닦은 다음, 또다시 주문을 외웠다. 이번에는 상처가 저절로 꿰매지는 것 같았다.

   해리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너무 놀란 나머지 온몸이 피와 물로 흠뻑 젖은 것조차 알아채지 못한 채 여전히 넋을 잃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모우닝 머틀은 머리 위에서 계속 흐느끼며 울부짖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세 번째로 저주 풀기 의식을 행하더니 말포이를 반쯤 일으켜 세웠다.

   “병동으로 가야겠다. 흉터가 많이 남을 것 같긴 하지만, 빨리 디터니(산박하의 일종 : 역주)를 먹으면 그것도 피할 수 있을 게다……. 어서…….”

   말포이를 부축한 채 화장실을 나가던 스네이프는 문가에서 돌아서더니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너, 포터…… 넌 여기서 꼼짝 말고 날 기다려라.”

   해리는 그 말을 거역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는 몸을 덜덜 떨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물바다가 된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선혈이 수면 위에 새빨간 꽃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해리는 모우닝 머틀에게 그만 조용히 하라고 말할 정신도 없었다. 그녀는 줄기차게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는데, 점점 더 이런 상황을 즐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10분 후에 스네이프가 돌아왔다. 그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문을 닫았다.

   “가 버려!”

   스네이프가 머틀에게 명령했다. 그녀는 당장 자신의 화장실로 휙 날아가 버렸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메아리만 진동할 뿐이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해리가 즉시 반박했다. 그의 목소리가 차갑고 축축한 화장실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주문이 어떤 건지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가 널 너무 과소평가한 게 분명하구나, 포터.”

   스네이프는 조용히 말했다.

   “네가 그런 어둠의 마법을 알고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 그 주문을 누가 네게 가르쳐 주었지?”

   “어…… 어디선가 읽었습니다.”

   “어디서?”

   “그러니까…… 도…… 도서관에 있는 책이었습니다.”

   해리는 생각나는 대로 마구 둘러댔다.

   “그 책이 뭐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거짓말 마!”

   스네이프가 쏘아붙였다. 해리는 자꾸만 목이 탔다. 스네이프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그걸 제대로 막아 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의 눈앞에서 화장실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 같았다. 해리는 모든 생각을 감추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무리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혼혈 왕자의 《상급 마법약 만들기》 책이 그의 머릿속에 자꾸만 아른거리며 떠올랐다…….

   그러고 나자 해리는 엉망으로 부서지고 물바다가 되어 버린 화장실 한가운데에 서서, 다시 스네이프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는 혹시라도 스네이프가 자신이 가장 걱정하는 것을 꿰뚫어 보지 못했기를 바라면서 그의 까만 눈동자를 응시했다. 하지만…….

   “네 가방을 가져와라.”

   스네이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가방 안에 든 책도 전부 다 빠짐없이 다 가져오거라. 여기 내게로 말이다. 지금 당장!”

   뭐라고 따져 봤자 소용없는 짓이었다. 해리는 즉시 돌아서서 물을 철벅거리며 화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일단 복도로 나오자마자 그리핀도르 탑을 향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피와 물에 흠뻑 젖은 그를 보자 입을 딱 벌렸다. 하지만 해리는 그에게 쏟아지는 질문들을 무시하고 계속 달려갔다.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랑하고 아끼던 애완동물들이 돌연 괴물로 변한 것만 같았다. 왕자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주문을 자기 책에 써 놓았을까? 스네이프가 그 책을 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슬러그혼 교수님께 말하겠지……. 그가 어떻게 1년 내내 마법약 수업에서 그토록 좋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를……. 해리는 속이 마구 울렁거렸다. 스네이프는 그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던 그 책을 압수하거나 없애 버릴지도 몰라. 이제는 그의 친구이자 조언자가 되어 버린 그 책을…….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

   “어디 있었니? 왜 그렇게 홀딱 젖은 거야? 그리고 그건 피 아니야?”

   론이 계단 꼭대기에 서서 해리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책이 필요해.”

   해리가 헐떡거리며 말했다.

   “네 마법약 책 말이야. 어서…… 그 책을 나에게 줘…….”

   “하지만 혼혈 왕자의 책은 어떻게 하고…….”

   “나중에 설명해 줄게!”

   론은 가방에서 《상급 마법약 만들기》를 꺼내서 해리에게 넘겨주었다. 해리는 쏜살같이 달려가 휴게실로 들어갔다. 이미 저녁 식사를 끝낸 몇몇 학생들이 휘둥그런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시선을 무시하며, 그는 가방을 움켜쥔 채 다시 초상화 구멍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7층 복도를 따라서 정신 없이 뛰어갔다. 

   해리는 춤추는 트롤의 벽걸이 양탄자 앞에서 미끄러지듯 선 후, 두 눈을 꼭 감고 왔다 갔다 걷기 시작했다.

   “나는 내 책을 숨길 장소가 필요하다……. 내 책을 숨길 장소가 필요하다……. 내 책을 숨길 장소가 필요하다…….”

   텅 빈 벽 앞을 세 번 왔다 갔다 하고 난 후에 눈을 떠 보니, 마침내 거기에 필요의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타나 있었다. 해리는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얼른 안으로 들어간 다음 문을 꼭 닫았다.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너무나 다급하고 정신도 없고 화장실로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거대한 성당 크기만 한 방 안에 서 있었는데, 높은 창문들로부터 빛이 들어와 방을 비추고 있었다. 그곳은 높이 치솟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처럼 보였다. 그 도시를 이루고 있는 물건들은 수세대를 거쳐 호그와트에서 지냈던 사람들이 숨겨 놓은 것임에 틀림없었다. 쓰러질 듯이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는 부서지고 망가진 가구들 사이로 요리조리 좁은 길과 큰 길들이 나 있었다. 아마도 그 물건들은 누군가 잘못 처리한 마법의 증거들을 감추기 위해서 여기에 버렸거나, 혹은 성을 청소하는 데 열심인 집요정들이 감춘 모양이었다. 그 외에 금지되었거나 낙서가 쓰여 있거나 훔친 것이 분명한 수천, 수만 권의 책들도 쌓여 있었다. 날개 달린 새총과 이빨 달린 프리스비도 있었는데, 어떤 것들은 아직도 수명이 다하지 않아서, 다른 금지된 물건들 더미 위로 힘없이 떠다니고 있었다. 마법약이 엉겨 붙어 있는 이빨 빠진 병들과 모자, 보석, 망토도 있었고, 용의 알 껍질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으며, 아직도 안에 담긴 내용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코르크 마개로 막아 놓은 병들, 대여섯 자루의 녹슨 칼, 핏자국이 남아 있는 묵직한 도끼까지 있었다.

   해리는 이 감추어진 골동품들 사이로 난 수많은 좁을 길들 중에 하나로 황급히 걸어 들어갔다. 박제한 거대한 트롤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서 조금 달려간 후에, 작년에 몬태규가 실종되었던 그 망가진 사라지는 캐비닛에서 다시 왼쪽으로 돈 다음, 마침내 커다란 수납장 옆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 수납장은 마치 염산을 뒤집어쓴 듯이 표면이 우둘투둘했다. 삐거덕거리는 수납장 문을 열어 보니, 그곳에는 짐승의 우리가 감추어져 있었다. 우리 속에는 이미 죽은지 한참 지나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다리 다섯 개가 달린 어떤 생물의 잔해가 남아 있었다. 해리는 우리 뒤에 혼혈 왕자의 책을 얼른 쑤셔 넣고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잠시 동작을 멈추고 이 난장판을 둘러보았다. 가슴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과연 이 잡동사니 더미에서 이 장소를 다시 찾아낼 수 있을까? 해리는 가까이에 있는 나무 상자 위에서 여기저기 흠집이 난 못생긴 늙은 마법사의 흉상을 들어다가 책을 감추어 놓은 수납장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좀 더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서 먼지가 뽀얗게 앉은 낡은 가발과 녹슨 왕관을 흉상의 머리 위에 씌웠다. 그런 다음 감춘 물건들 사이로 난 좁은 통로를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다시 복도로 나온 해리가 문을 닫자마자, 문은 원래의 돌벽으로 변해 버렸다.

   해리는 론의 《상급 마법약 만들기》를 자기 가방 안에 집어 넣으면서 아래층에 있는 화장실로 곧장 뛰었다. 스네이프는 아무 말도 없이 해리의 가방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해리는 가슴이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헉헉거리면서 가방을 건네준 후에 잠시 기다렸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살펴보았다. 마침내 마법약 책 하나만이 남았다. 스네이프는 그 책을 유독 열심히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게 자네 책인가, 포터?”

   “네.”

   해리는 여전히 숨을 헐떡거리며 대답했다.

   “정말인가, 포터?”

   “그런데요.”

   해리는 좀 더 반항하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게 네가 플러리시와 블러트 서점에서 구입한 《상급 마법약 만들기》책이란 말이지?”

   “네.”

   해리가 딱 잡아뗐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의 표지 안쪽에 ‘루닐 웨즐립’이란 이름이 적혀 있지?”

   순간 해리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건 제 별명입니다.”

   해리가 얼른 둘러댔다.

   “네 별명이라고…….”

   스네이프가 따라 말했다.

   “네……. 제 친구들이 절 그렇게 부르거든요.”

   해리가 말했다.

   “나도 별명이 무슨 뜻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스네이프가 쏘아붙였다. 얼음처럼 차갑고 검은 눈동자가 또다시 해리의 눈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해리는 그의 시선이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 보지 못하도록 애를 썼다. 생각을 닫아…… 생각을 닫아……. 하지만 해리는 제대로 막아 내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포터?”

   스네이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가 거짓말쟁이에다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넌 이 학기가 끝날 때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내 방에서 징계를 받아 마땅하구나. 네 생각은 어떠냐, 포터?”

   “저……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해리는 여전히 스네이프의 시선이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 보지 못하도록 스네이프의 눈을 피하면서 대답했다.

   “징계를 받은 후에 네 기분이 어떨지 두고 보자.”

   스네이프가 말했다.

   “토요일 아침 10시에 내 사무실로 오도록 해라, 포터.”

   “하지만 교수님…….”

   해리는 간절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퀴디치 경기가…… 마지막 시합인데요…….”

   “아침 10시다.”

   스네이프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가엾은 그리핀도르…… 올해에는 꼴찌 신세를 면치 못하겠군…….”

   스네이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장실을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해리는 멍하니 금이 간 거울 속을 들여다 보았다. 속이 마구 울렁거렸다. 론도 이렇게 지독한 구역질을 평생 느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란 말을 굳이 하지 않겠어.”

   한 시간 후, 휴게실에서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구박했다.

   “그만 좀 해, 헤르미온느.”

   론이 화를 냈다.

   해리는 식사도 하러 가지 않았다. 전혀 식욕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론과 헤르미온느, 지니에게 오늘 벌어진 일을 다 털어 놓았지만, 사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순식간에 소문이 퍼졌던 것이다. 모우닝 머틀이 성 안에 있는 모든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이 이야기를 떠들고 다닌 것이 분명했다. 이미 병동에 있는 말포이를 병문안하고 돌아온 팬시 파킨슨은 해리에 대해 온갖 험담을 늘어놓는 데에 결코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한편 스네이프는 학교 교수님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덕분에 해리는 휴게실에서 불려 나가 15분 동안 맥고나걸 교수와 대단히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맥고나걸 교수는 그에게 운이 좋아서 퇴학을 안 당한 줄 알라고 하면서 학기가 끝날 때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징계받도록 하겠다는 스네이프의 처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선언했다.

   “그 왕자라는 사람, 뭔가 수상하다고 말했었잖아.”

   헤르미온느가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내 말이 맞았지, 안 그래?”

   “아냐,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해리가 고집을 부렸다.

   굳이 헤르미온느까지 나서서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해리는 이미 충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벌은 그가 그리핀도르 선수들에게 이번 토요일 시합에 나가지 못한다고 말했을 때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었다. 해리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니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지만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 분노하거나 실망하는 눈빛을 보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해리는 지니에게 토요일 시합 때 자기 대신 수색꾼으로 뛰어 달라고 말했다. 지니를 대신해서는 딘이 다시 추격꾼으로 팀에 합류 하게 될 것이었다. 혹시 시합에서 이기게 된다면, 지니와 딘은 환희에 들떠 다시 화해를 하게 되겠지…….이런 생각이 해리의 가슴을 날카로운 칼처럼 후벼 팠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말을 이었다.

   “넌 어떻게 아직도 그 책에 대해 미련을 가질 수가 있니? 그런 주문을…….”

   “그 책에 대해서 그만 좀 헐뜯어!”

   해리가 소리를 꽥 질렀다.

   “왕자는 그저 그 주문을 써 놓은 것뿐이야! 다른 사람에게 한번 해 보라고 권한 게 아니라고! 왕자는 그저 뭔가 써 놓기만 한 건데, 그게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엉뚱하게 사용된 것 뿐이잖아!”

   “정말 기가 막히는구나.”

   헤르미온느가 탄식했다.

   “네가 진짜로 이렇게 그를 옹호하고 나설 줄은…….”

   “내가 한 행동이 옳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잖아!”

   해리가 재빨리 말을 막았다.

   “나도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고 있어. 하지만 열두 번이나 징계를 받게 돼서 그러는 건 아니야. 너도 내가 그런 주문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잖아. 설사 말포이한테라도 말이야. 그렇다고 왕자를 비난할 수는 없어. 왕자는 ‘이 주문을 써 봐. 아주 훌륭해!’ 라는 말 따위는 절대 써 놓지 않았어.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 혼자 보려고 자기 생각을 좀 적어 놓은 것뿐이라고.”

   “그럼 넌 지금 다시 그 방에 가겠다는 말이니?”

   헤르미온느가 따져 물었다.

   “그래서 그 책을 다시 찾아올 거냐고? 그래, 그럴 거야.”

   해리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봐, 왕자가 아니었다면, 난 절대로 펠릭스 펠리시스를 상으로 받지 못했을 거야. 독약을 마신 론을 살려 내는 방법도 몰랐을 테고, 게다가…….”

   “부당하게 마법약의 천재라는 명성을 얻게 되는 것도 절대 불가능했겠지.”

   헤르미온느가 심술궂게 물고 늘어졌다.

   “이제 그만 좀 해, 헤르미온느!”

   갑자기 지니가 꽥 소리쳤다. 해리는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심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얘기를 듣자 하니 말포이는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쓰려고 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해리한테 그런 훌륭한 대비책이 있었다는 게 다행인 거 아니야?”

   “당연히 나도 해리가 저주에 맞지 않은 게 기뻐!”

   헤르미온느가 발끈해서 맞섰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섹튬셈프라 주문을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 지니, 그래서 결국 해리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좀 봐! 게다가 이 일로 인해서 이번 시합에서 이길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잖아!”

   “흥! 이제는 퀴디치 경기에 대해 도사라도 된 것처럼 구는군. 그러다가 괜히 망신이나 당할 거야.”

   지니가 매섭게 쏘아붙였다.

   해리와 론은 어리둥절해서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언제나 단짝처럼 사이좋게 지내 왔던 지니와 헤르미온느가 팔짱을 낀 채 서로를 무섭게 노려보면서 앉아 있었던 것이다. 론은 불안한 표정으로 해리를 힐끔 쳐다보더니 닥치는 대로 책 하나를 집어 들고 얼른 그 뒤로 숨어 버렸다. 하지만 해리는 자신이 지금 기뻐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갑자기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졌다. 그 후로 저녁 내내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 분위기였음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해리의 기분이 좋아진 것도 잠깐이었다. 다음 날부터 그리핀도르 친구들의 분노는 물론이고 슬리데린 학생들의 야유까지 참고 견뎌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핀도르 학생들은 이번 학기 마지막 시합을 앞두고 팀의 주장이 출전 금지를 당했다는 사실에 몹시 분개했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 해리는 헤르미온느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듣든 간에, 론과 지니. 그리고 다른 선수들과 함께 퀴디치 경기장으로 걸어 들어갈 수만 있다면, 온 세상 펠릭스 펠리시스와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같이 장미꽃 모양의 장식과 모자를 쓰고 깃발과 스카프를 휘두르며 햇빛 속으로 우르르 몰려 나가는 학생들을 뒤로한 채 지하 교실을 향해서 돌계단을 내려가는 심정은 참혹하기 짝이 없었다. 멀리서 웅성거리는 학생들의 소리마저 완전히 들리지 않는 곳까지 내려가자, 해리는 야유나 함성 소리 혹은 경기를 중계하는 단 한 마디 말조차 들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포터.”

   해리가 문을 두드린 다음 그 기분 나쁜 낯익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는 이제 위층에서 수업을 가르치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 방을 쓰고 있었다. 방안은 평소처럼 어두침침했고, 기분 나쁜 죽은 생물들이 둥둥 떠 있는 여러 가지 색깔의 마법약들이 온 벽을 빙 둘러 놓여 있었다. 한편 분명히 해리를 위해 마련한 자리처럼 보이는 책상 위에는 온통 거미줄로 뒤덮인 상자들이 불길한 분위기를 풍기며 높이 쌓여 있었다. 그 상자 안에는 끔찍하고 힘들고 쓸데없는 일거리가 담겨 있을 게 분명했다.

   “필치 씨가 마침 이 오래된 서류들을 정리해 줄 사람을 찾고 있더군.”

   스네이프가 상냥한 척하며 말했다.

   “이건 호그와트의 품행 불량자들과 그들에 대한 처벌을 적어 놓은 기록이지. 잉크가 희미해졌다거나 쥐가 심하게 갉아 먹은 카드의 경우, 그 죄목과 처벌 내용을 자네가 새로 적어 주기 바라네. 그리고 알파벳 순서로 정리되어 있는지 확인해서 다시 상자 안에 집어넣도록. 절대로 마법을 사용해선 안 돼.”

   “알겠습니다, 교수님.”

   해리는 특히 마지막 세 음절에 최대한 그의 분노를 담아 대답했다.

   “이제 시작하도록 하지.”

   스네이프는 악의에 찬 미소를 머금으며 해리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선 1,012번에서부터 1,056번까지의 상자를 처리하도록 해라. 거기서 낯익은 이름도 보게 될 텐데 덕분에 이 일이 훨씬 흥미로울 게다. 자, 바로 여기…….”

   스네이프는 제일 위에 놓인 상자에서 카드를 꺼내더니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읽어 내려갔다.

   “제임스 포터와 시리우스 블랙. 버트럼 오버리에게 금지된 주문을 사용함. 오버리의 머리가 두 배로 커짐. 둘 모두 징계.”

   스네이프가 비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군. 비록 그자들은 죽었지만 여기 그들의 위대한 행적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고 말이야……”

   해리는 또다시 뱃속에서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상자들 앞에 앉아서 상자 하나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해리가 예상했던 대로. 이 일은 전혀 쓸모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스네이프가 의도했던 대로) 그의 아버지나 시리우스의 이름이 눈에 보일 때마다 뱃속이 뒤틀렸다. 두 사람은 대개 사소한 여러 가지 잘못을 함께 저질렀고, 이따금씩 리무스 루핀과 피터 페티그루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했다. 해리는 그들의 다양한 위반 행위들과 처벌들을 몽땅 베끼면서, 밖에서는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을지 궁금했다. 시합이 방금 시작되었을텐데……. 지니가 초에 맞서서 수색꾼으로 날고 있겠군…….

   해리는 벽에서 째깍거리고 있는 커다란 시계를 연신 쳐다보았다. 그 시계는 보통 시계보다 두 배는 더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혹시 스네이프가 천천히 가도록 시계에 마법을 걸어 놓은 건 아닐까? 이제 겨우 여기 온 지 30분밖에 안 되다니……. 한 시간……. 한 시간 반…….

   시계가 12시 30분을 가리키자, 해리의 뱃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해리가 일을 시작한 이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스네이프가 마침내 고개를 들고 시계를 쳐다보았을 때는 이미 1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그만 해도 될 것 같구나.”

   스네이프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어디까지 했는지 표시해 놓도록 해라. 다음 토요일 10시에 계속해야 하니까 말이다.”

   “네, 교수님.”

   해리는 접어서 표시한 카드 한 장을 상자 안에 되는 대로 쑤셔 넣고는, 스네이프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얼른 그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혹시나 운동장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귀를 쫑긋 세운 채 단숨에 돌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사방이 고요했다……. 시합이 끝난 것이다…….

   해리는 학생들로 가득찬 대연회장 밖에서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대리석 계단을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핀도르가 이기든 지든 간에, 선수들은 대개 그들 휴게실에서 축하연을 베풀든 서글픔을 달래든 했던 것이다.

   “퀴드 아지스?(‘How are you?’ 라는 뜻의 라틴어 : 역주)”

   해리는 과연 휴게실 안은 어떨지 궁금해하면서 뚱뚱한 여인에게 조심스럽게 암호를 댔다.

   뚱뚱한 여인은 도통 심중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들어가 봐.”

   그러고는 휙 길을 열어주었다.

   구멍에서 요란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하자, 해리는 입을 딱 벌렸다. 여러 개의 손이 일제히 그를 휴게실 안으로 잡아끌었다.

   “우리가 이겼어!”

   론이 튀어나와 해리에게 은으로 된 우승컵을 휘둘러 보이며 소리쳤다.

   “우리가 이겼어! 450 대 140으로 우리가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고!”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쪽에서 지니가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환하게 빛나는 얼굴로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어떠한 계획도 없이, 50명의 사람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만 해리는 지니에게 키스를 하고 말았다.

   한참 후…… 30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햇살이 가득한 날들이 며칠이나 지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시간이 지나간 후 두 사람은 떨어졌다. 방 안이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그때 몇몇 학생들이 늑대 울음소리 같은 것을 냈고, 일제히 쑥스러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니의 머리 너머로 부서진 유리잔을 손에 쥐고 있는 딘 토마스가 해리의 눈에 들어왔다. 로밀다 베인은 뭐라도 집어 던질 듯한 기세였다. 헤르미온느는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해리의 눈은 열심히 론을 찾고 있었다. 마침내 해리는 여전히 우승컵을 손에 쥔 채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론을 발견했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그러자 론이 까닥 고갯짓을 했다. 해리는 그걸 ‘그래, 네가 그래야만 하겠다면……’ 이란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가슴속에 있던 괴물이 승리의 함성을 질렀고, 해리는 지니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없이 초상화 구멍 밖으로 나가자고 손짓을 했다. 운동장을 한 바퀴 산책하자는 뜻이었다. 산책하는 동안, 혹시 시간이 나면, 시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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