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1화 (1/80)

제1장. Start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이런 날 연인과 같이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정말 세상이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이 하나 있었다.

"이런, 망할. 사장이 도망쳤다!"

그의 이름은 전희성. 나이 21살. 휴학 중. 그는 아르바이트 겸 용돈을 벌기 위해 작은 중소기업에서 대학을 안 다니는 인간으로 위장 취업을 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사장이 회사가 부도나자 돈을 들고 해외로 튀었다.

"젠장! 내 돈!"

아무리 통곡하고 소리를 쳐봐도 돈은 안 나오고 공장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놈의 회사가 망한 이유를 찾자면 다른 게 없었다. 단순히 경쟁에서 밀려서 망한 것이다. 그 망하게 만든 요인이 바로 가상현실을 하는 캡슐이다.

2010년 세상에서 제일 혁신적인 기술혁명이 일어났다. 단순한 컴퓨터에서 벗어나 캡슐을 통해 온라인 인터넷 등등의 거의 모든 서비스를 이용하게 만든 최고의 물건!

"그런데! 왜 하필 이 회사가 망하냐고!"

처음에는 돈을 잘 주는 회사였는데 어느 순간 월급이 조금 늦춰지기 시작하고 부도 냄새가 슬슬 나기 시작하더니, 사장이 아예 해외로 도망가 버린 사태까지 벌어졌다.

"내가 밀린 월급 대신 기계라도 챙겨야겠다."

범려가 위장 취업했던 회사는 보통 중소기업과 다르게 조립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는 꽤 큰 곳이다.

범려는 회사의 담장을 몰래 넘어 텅 빈 공장 안으로 들어가 월급 대신 가져갈 물건을 찾기 위해 창고를 들어갔다.

"찾았다, 밀린 월급!"

희성의 눈에 들어온 건 깔끔하게 포장된 커플용 캡슐이었다. 1인용 캡슐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챙겨가 버렸고 공간만 차지하는 커플용 캡슐만 남았다.

"이거면 밀린 월급 정도는 되겠군."

그는 당당히 깔끔하게 포장된 캡슐을 공장에서 사용하는 수레에 싣고 굳게 잠긴 공장 문을 열고 나왔다.

남들은 공장 안에서 커다란 캡슐을 가지고 나오는 게 신기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는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말했다.

"뭘 보슈. 내 밀린 월급 대신 가져온 건데."

희성이 살벌한 눈빛으로 주변 사람들을 째려보자 다들 눈을 피하고는 다른 곳을 쳐다봤다.

"이걸 집으로 가져가려면 차가 한 대 있어야겠지?"

그는 당장 핸드폰을 꺼내 단축 다이얼 10번을 눌렀다.

(여보세요?)

"나다 친구야."

(무슨 일?)

희성의 친구는 바로 용건을 물어봤다. 어차피 그는 자신에게 전화한 목적을 잘 알기에 용건만 간단하게 물어봤다.

"차 좀 가지고 내가 일하던 공장 앞으로 와라. 가져갈 물건이 있다. 좀 큰 거니까 트럭으로 가져와라."

(알았다. 20분만 기다려라.)

전화를 끊고 희성은 바로 바닥에 앉아서 20분이라는 시간을 밀린 월급 대신 받은 커플용 캡슐을 보면서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이걸 중고로 팔아치울까? 아니면 내가 쓸까?'

이걸 쓰는 데 문제가 조금 있다.

일단, 커플용이라서 안의 공간이 넓게 제작되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침대를 대신해서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좋은 물건이다.

하지만 1인용 캡슐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원하는 고객이 많지 않았다. 부부라도 같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적고, 일하는 시간과 집안일을 고려하다 보면 대부분 따로따로 하게 된다.

'애물단지를 가져온 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걸 인터넷 쇼핑몰에 내놓는다고 해도 살 사람이 나와 줄지 의문이었다.

빵빵!

희성의 친구는 정확히 20분이 지나서 그가 있는 공장 앞에 도착을 했다.

"이거냐."

"이거다. 내 밀린 월급이다. 젠장."

"푸하하하! 애물단지 하나 가져왔구나."

그의 친구는 아주 대놓고 웃으면서 희성을 놀렸지만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녀석은 원래 이런 놈이다.

"승욱아, 집으로 가자!"

"그래."

친구의 이름은 장승욱. 희성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는 한창 대학을 다니느라 바쁜 몸이다.

승욱은 희성이 혼자 사는 전셋집으로 캡슐을 가져다주고 설치도 해줬다. 일단, 사용이라도 한번 해보자는 심산에 희성이 설치하자고 했다.

"수고했다. 이왕 왔는데 밥이라도 먹고 가라."

"밥은 무슨. 난 연애 사업 때문에 바쁘다. 먼저 간다."

"……!"

연애! 모든 남자들이 원하는 연애(戀愛). 하지만 원한다고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나 먼저 간다."

승욱이 웃는 얼굴로 조용히 사라졌고 희성은 절망하고 말았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연애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수많은 소개팅도 받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옥동자 같은 얼굴을 가진 것도 아니고, 성격이 폭력적이지도 않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어버버버.'

여자만 보면 입이 자연스럽게 얼어버린다. 표정은 굳어지지 않지만 행동이 약간 부자연스럽게 되면서 급 소심한 남자로 변하게 되니, 그걸 본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퇴짜를 놓고 가버린다.

이놈의 인생이 한탄스럽다. 희성은 솔직히 여자는 좋아하지만 앞에만 서면 한없이 쪼그라드는 그 자신이 싫었다.

"아……."

가끔 이런 모습을 바꿔보려고 무단히 노력을 했지만 꼭 결정적인 순간에 닥치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빠라바라 빠라밤! 빠라바라 빠라밤!

핸드폰 벨소리로 오토바이 경적 소리가 울리자 희성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 나의 오래 묵은 된장 같은 친구여.)

"그래, 재성아. 무슨 일이냐."

(어제저녁에 뉴스 봤다. 네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서 사장은 도망갔다며?)

재성이 전화를 해줘서 이 참혹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니 그는 가슴이 따끔따끔하는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 내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서 사장은 도망가고 밀린 월급 대신 가져온 건 커플용 캡슐이다."

(하하하, 그 애물단지 커플용 캡슐을 가져왔냐. 중고품 시장에서 받아주지도 않는 물건을.)

확실히 애물단지 커플용 캡슐이다. 그렇다고 없는 1인용 캡슐을 만들어 올 수는 없었다.

(야! 희성…….)

뚜뚜뚜.

희성은 전화를 더 이상 하면 왠지 화를 낼 것 같아 끊어버렸다. 이것들을 친구로 둔 게 조금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친구라서 놀릴 때는 놀려도 잘해줄 때는 또 잘해준다.

"아, 한동안 녀석들한테 연락하지 말아야지. 날 이렇게 놀려먹나."

지금은 대학교에 휴학을 한 상태라서 딱히 할 짓이 없는 상황이고, 회사가 부도나서 이제는 일을 해도 뭔 의욕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어휴, 정말 이건."

한숨은 푹푹 나오고, 의욕은 없고. 희성은 꼭 망가지기 직전의 사람처럼 힘이 없었다.

"몰라. 잠이나 잘래."

의욕이 없지만 잠은 무지하게 잘 왔다. 잠이야말로 세상만사 모든 걸 잊어버리고 머리를 식히는 시간이다.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잠으로 푼다고 하지 않던가.

드르렁! 드르렁!

꿀처럼 달콤한 잠에 빠져서 날이 저무는지 해가 뜨는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이 빠져 들고 있을 때, 다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빠라바라 빠라밤! 빠라바라 빠라밤!

"하암, 한참 잘 자고 있었는데 누가 또 전화를 하는 거야."

희성은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놈, 전화를 함부로 끊다니 정녕 단매에 죽고 싶은가 보구나.)

"재성아, 어디 사극 찍어? 단매를 찾게. 나 잠자고 있었거든. 그러니 전화 끊을게. 필요하면 내가 먼저 연락할 테니까 너무 걱정 마라. 그럼 이만."

(야! 너! 후회…….)

희성은 전화를 끊고 혹시 또 전화가 올지 몰라서 핸드폰 배터리를 빼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있었다.

"하암, 잘 잤다. 지금 몇 시지?"

조용히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18시간이나 잠을 잤네. 어쩐지 몸이 개운하더라니."

18시간이나 잠을 잔 희성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고서 밥을 먹고 다시 느릿느릿하게 TV를 시청했다.

"푸하하하!"

혼자서 박장대소를 하며 시간을 잊어가고 있을 때 오랜만에 게임 방송이 보고 싶어 채널을 돌렸다. 그러자 아주 아름다운 미녀가 게임을 소개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귀염둥이 미진이에요. 오늘도 역시 새로운 소식을 들고 게임 유저들을 찾아왔답니다.>

"새로운 소식?"

뭔가 새로운 게임이라도 소개시켜 주는 것 같았다.

<그동안 여러분이 사랑해주신 『판게아 월드』가 새롭게 바뀌면서 이벤트를 열게 되었답니다. 지금까지 에피소드 2를 넘기고 에피소드 3로 접어들면서 벌써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게 됐는데요. 그 에피소드 3가 이제 곧 마감되고 에피소드 4가 시작된답니다. 이번 에피소드 4를 기준으로 신규 가입자를 위한 초대형 이벤트를 합니다! 오늘부터 10일간 신규 가입을 한 가입자들에 한해서 경험치 두 배! 아이템 드롭률 두 배! 마지막으로 추첨을 통해 당첨되신 분은 장장 석 달간 『판게아 월드』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무료이용권을 무려 300명에게 드립니다!>

희성은 방송을 열심히 하는 저 진행자의 설명보다 그녀의 몸매와 얼굴에 더 관심이 갔다.

"저런 미인과 하룻밤만이라도……."

혼자서 의뭉하게 침을 흘리면 탐을 냈지만, 여자가 눈앞에 없으니까 이렇지 막상 앞에다 데려다놓으면 고양이 앞의 쥐처럼 꼼짝도 못한다.

"어휴, 아서라. 저런 미인을 앞에다 데려다놓으면 입도 뻥끗 못하는 인간이 무슨 하룻밤이냐."

혼자 푸념을 떨며 TV를 보다가 이렇게 일을 못하고 시간만 보내는 것보다 게임이라도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게임이라도 하면서 지내볼까. 이번에 이벤트하는 『판게아 월드』인가 뭔가도 한번 해보고 말이지."

이미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희성은 바로 방 한구석에 고이 누워 있는 커플용 캡슐로 눈이 돌아갔다.

"어차피 중고 시장에서 받아주지도 않는 물건, 그냥 쓰자."

결심이 서자 그는 바로 캡슐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꽤 넓네. 확실히 커플용이라서 안에도 푹신푹신하고 서로 마주 볼 수 있게 만들어놨네."

사실 커플용 캡슐의 공간만 따진다면 두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넘치는 공간이었다.

"게임을 다운로드해볼까."

이 시대의 캡슐은 컴퓨터를 대신할 만큼 뛰어난 기기로 자리매김했기에 인터넷 검색 정도는 기본이고, 소프트웨어만 받쳐 준다면 누워서 집 안의 모든 걸 컨트롤할 만큼 대단한 기기다.

"검색, 『판게아 월드』."

언어 검색을 통해 『판게아 월드』 사이트를 접속하고는 게임 클라이언트를 다운로드받고서 즉시 파일을 설치, 접속을 시도했다.

-안녕하십니까. 『판게아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접속하자마자 아름다운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찰칵.

캡슐에서 짧은 순간 소리가 나면서 눈에 있는 홍채 사진을 찍더니 다시 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판게아 월드』에 계정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계정을 생성하시겠습니까?

지금 시대에는 비밀 번호를 필요로 하지 않고 오로지 눈에 있는 홍채 인식과 지문 인식을 통해서 비밀 번호를 대신하고 있다.

-예!

-계정 아이디를 말씀해주십시오.

계정 아이디는 거의 습관적으로 두세 가지를 쓰는데 그중에서 한 가지를 말했다.

-Promise.

-Promise. 사용이 가능한 계정 아이디입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네!

그가 짧고 간결하게 대답하자마자 계정이 생성되었고, 게임에 접속하자 캐릭터를 만드는 공간에 오게 되었다.

-캐릭터를 생성하실 수 있습니다. 신체 변화의 제한은 ±5%입니다.

즉, 몸의 일부를 손댈 수 있지만 크게 바꿔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하지만 희성은 얼굴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 어디 하나 쉽게 손댈쏘냐."

그는 의외로 고지식한 모습을 보이면서 아무런 변화 없이 자신의 몸을 그대로 캐릭터로 변화시켰다.

-캐릭터 이름을 정해주세요.

희성은 캐릭터 이름을 정하는 데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범려.

-사용 가능한 이름입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물론.

번쩍!

캐릭터 이름을 짓자 온몸이 환한 빛으로 휩싸이더니 눈앞에 거대한 지도가 하나 들어왔다.

-시작할 곳을 선택해주십시오.

눈에 보이는 지역은 9개의 구역으로 나왔지만 선택이 가능한 곳은 딸랑 두 곳뿐이었다.

"순백의 크라운과 고요의 아티잔이라……."

대부분 나라 이름으로 선택을 하거나, 혹은 도시 이름으로 선택이 가능하다. 이건 사람 이름처럼 보였지만 『판게아 월드』에서는 세상을 조율하는 아홉의 드래곤 이름을 지역별로 구분해놓은 것이다.

"고요의 아티잔으로 하지."

-고요의 아티잔을 선택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빛으로 휩싸이더니 주변 환경이 바뀌고 어느 이상한 곳에서 눈을 떴다.

"어, 어!"

쿵!

빛으로 휩싸이면서 이동하는 건 좋은데 하필 땅 위가 아닌 허공 나타나게 하더니, 사람을 툭 떨어지게 만들어 엉덩방아를 찧게 만들었다.

"아이고, 엉덩이야. 아프다. 어? 아프다?"

자신이 게임을 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아픔을 느낀 것이 신기했다.

"아프다……."

『판게아 월드』에서의 감각 시스템은, 처음으로 캐릭터를 만든 이들에게 이 감각을 느끼게 하려고 일부러 지상에서 약간 위에 떨어지게 만들어 통증을 느끼게 했다.

"안녕하세요, 범려 님."

"음!"

범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하얀 날개를 가진 천사였다. 눈은 호수같이 파란 눈에 머리는 눈부신 아침 햇살처럼 황금빛을 띠었다.

"저는 범려 님을 안내하기 위한 부활의 천사, 아르테미스라고 합니다."

『판게아 월드』에서는 모든 NPC가 일정한 확률로 초보 유저를 위한 안내를 해주게 되어 있다. 어떤 유저는 노인 NPC를 상대로 초보 안내가 되기도 하고, 어떤 유저는 마을 경비병이 초보 유저 안내원으로 선택되기도 한다.

범려는 운 좋게도 부활의 천사인 아르테미스에게 10만분의 1 확률로 안내를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사실을 그가 알 리가 없다.

"아, 아름답다."

아무리 게임 NPC라지만 사람보다 더 사람 같으면서도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아르테미스였다.

"아름답다고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르테미스는 환한 웃음을 보이면서 주저앉은 범려의 손을 잡고는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손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감촉은 평생을 가도 잊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어딘가요?"

"이곳은 흔히 말하는 천계라는 곳이에요. 실감이 안 나신다면 보여 드릴게요. 따라오세요."

아르테미스를 따라서 나오자 범려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면서도 눈을 돌리지 못했다.

"구, 구름 위……."

구름 위에 많은 건물들이 있었고 하나같이 웅장하고 순백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건물들이었다.

"이제 이곳이 어디인지 이해가 가셨나요?"

"우와! 저, 정말 대단한 곳이에요."

범려는 여자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거리는 버릇이 나오고 말았다. 이런 모습을 다른 여자들이라면 싫어했을지 몰라도 아르테미스는 NPC라서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범려 님은 이제 제가 게임을 하는 데 기초 지식을 배우는 튜트리얼을 진행하게 됩니다. 튜트리얼을 하시겠습니까?"

"하, 할게요."

"그럼 주변 환경을 바꾸겠습니다."

번쩍!

주변이 빛으로 휩싸이면서 환경이 바뀌자 방금 전 구름 위에 있던 웅장한 모습들의 건물과 천사들은 없어지고, 우거진 나무들과 들풀이 무성한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먼저 전투를 하기에 앞서 기본적인 것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판게아 월드』는 다른 가상현실과 다르게 감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각의 형태에 따라서 미각, 청각, 후각, 시각, 마지막으로 촉각을 느끼시게 됩니다."

"촉각? 방금 전 손을 잡았을 때나 느낀 그것?"

"네, 맞습니다. 그와 더불어 후각, 미각 등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가 있지만 단 하나, 고통에 의해서 느껴지는 통각은 상당히 제약을 많이 받는 부분이기에 아픔은 잘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게임에서 통증을 제외한 다른 감각은 100퍼센트에 가깝게 느끼지만, 아픔을 수반하는 통증은 상당히 덜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일부러 통증을 강하게 느끼시려면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시고 그 상담 증명서를 『판게아 월드』 공식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팩스 번호로 아이디를 적어서 보내주시면 됩니다."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뭐 그렇게 하죠."

범려라고 해서 고통을 많이 느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왜냐면 고통은 생각보다 정말 괴로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전투를 잠시 해보겠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무기가 있습니까?"

"무기라. 혹시 각궁 있습니까?"

"있습니다."

아르테미스가 고운 두 손을 내밀자 그 손 위에서 무언가 번쩍거리는 빛이 나오면서 각궁과 함께 화살을 받게 되었다.

범려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궁을 다뤘고, 대학교를 휴학하기 전까지 계속 활터를 다녔다.

"저기 보이시는 오크와 싸워보시겠습니까?"

"저, 정도야 쉽지요."

범려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오크가 자신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면서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바로 활을 당겼다.

쉬이이익! 픽!

정확히 오크 녀석의 미간에 화살이 박히면서 단 한 방에 녀석을 죽여 버렸다.

"어머나."

"별거 아니네."

능숙하게 활을 다루는 솜씨는 NPC인 아르테미스를 놀라게 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이었다.

"대단하시네요."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활을 만져 왔으니 이 정도는 해야죠."

사실 오크 머리가 사람보다 조금 크기는 하지만 그 미간을 단숨에 맞히는 것은 궁도를 오래 배운 사람이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너무 쉽게 끝난 것 같으니 다른 몬스터를 준비해도 될까요?"

"그러세요."

"이번에는 오크 3마리로 하겠습니다."

아르테미스가 손짓하자 대략 10미터 전방에 오크 3마리가 나오더니 방금 전과 같이 두 눈을 부릅뜨며 범려를 향해 달려들었다.

"후웁!"

범려는 숨을 들이쉬면서 손을 쉬지도 않고 연속적으로 활을 당겼다.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아주 미세한 소리만을 남기면서 짧은 시간 안에 오크들의 미간에 다시 한 번 화살들이 박혀 들었다.

이번에는 오크들이 단 몇 걸음을 걷지 못하고 벌어진 일이다.

"어머나!"

아르테미스는 범려의 실력을 보고 놀라 또다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번에는 조금 힘들었네."

범려는 약간 힘들다고 했지만 아르테미스의 눈으로는 전혀 그런 모습이 없었고,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활을 당긴 범려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정말 대단한 실력이네요. 범려 님."

"대단하기는요. 절 가르쳐 주신 스승님은 이것보다 더해요."

범려는 자신을 가르친 스승을 더 괴물로 알고 있다. 15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손바닥만 한 과녁을 정중앙에 화살을 10개나 박은 존재다.

"범려 님에게는 더 이상의 튜트리얼은 무의미하겠네요. 그래도 튜트리얼을 하셨으니 보상으로 아이템 상자를 드리겠습니다."

"그냥 이 활 주시면 안 되나요?"

"안 됩니다. 그 활은 튜트리얼 안에서만 사용 가능한 활이기에 드릴 수 없습니다."

범려는 이 활이 꽤 마음에 들었다. 활의 당겨지는 맛이나 손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어쩔 수 없지."

아쉽지만 활을 아르테미스에게 건네고 반대로 자신은 작은 아이템 상자를 받았다.

"이거 바로 열어봐도 되나요?"

"네."

범려가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자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아이템이 나왔다.

"어? 그 활이네."

방금 전 활과 똑같은 모양에 모습도 각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범려가 그 활을 잡자 몇 번 당겨 보기도 하고, 상태가 어떤지 만져 보자 튜트리얼 때 쓰던 활만큼이나 손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좋은 아이템이었다.

"아이템 확인은 어떻게 하나요?"

"'아이템 감정'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아이템 감정."

-각궁

장력이 뛰어나고, 멀리 날아가는 활. 생각보다 습기에 약하니 조심할 것

공격력:20 내구력:20

생각보다 능력이 뛰어난 아이템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쓸 만했다.

"초보자들이 사용하는 활보다 좋은 활이 나왔네요."

"그래요?"

이 아이템을 사용하는 데 제한은 없었다. 그러니 활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없이 사용이 가능했다.

"사용 제한이 없어서 아무나 사용이 되는 물건이네. 그나저나 화살 값이 걱정이네."

"그런 문제는 걱정하지 마세요. 이걸 받으세요."

아르테미스가 내민 것은 무료 화살 지급권이었다. 화살 10만 개 정도는 초보자들을 위해 무상으로 지급해준다는 쿠폰이었다.

-무료 화살 지급권

어디서나 화살을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지급받을 수 있는 화살의 개수는 10만 개이며 일반 화살에 한해서 지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단, 다른 화살은 지급받을 수는 없습니다.

100,000/100,000

어차피 저레벨 때 사용하는 화살은 일반 화살로 정해져 있었고, 문제는 화살을 한꺼번에 지급받는다면 담아두고 있을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10만 개를 어떻게 들고 다니지."

"그건 걱정 마세요. 화살은 인벤토리의 무게 계산에서 제외되는 물품입니다. 그냥 넣고 다니시면 됩니다. 너무 많다고 생각되시면 분할로 화살을 지급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모든 무기 상점에서 무료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초보 유저의 편의를 너무나도 잘 봐주는 『판게아 월드』였다.

"이제 모든 튜트리얼이 끝났으니 고요의 아티잔 초보 마을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곧 범려의 몸이 사라지면서 고요의 아티잔의 영역으로 떨어져 버렸다.

"마을로 이동하는 것도 순식간이네."

짧은 순간에 마을로 이동하게 되자 주변에 많은 사람들과 유저들이 활동을 하면서 서로 퀘스트를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와, 사람 많다."

『판게아 월드』가 상당히 인기가 높은 게임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파티 구합니다. 레벨 5 이상!"

"여기 그 유명한 몽고반점에 오시면 맛있는 자장면을 드립니다!"

마치 시장 한복판에 온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이야기하며 지내고 있었다.

"캐릭터 정보!"

이름:범려 레벨:1 성향:무(無) 직업:무직

생명력:100 마나:100

힘:10 민첩성:10 지능:10 정신력:10 체력:10

공격력:20 방어력:1 마법 공격력:30 마법 방어력:1

스탯 포인트:0

시작에 앞서서 자신의 캐릭터 정보를 확인하고는 마을에 있는 무기 상점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 손님, 무얼 찾으십니까."

무기 상점 주인은 영업용 미소를 띠면서 손님을 맞이했고, 범려는 주인에게 바로 쿠폰을 내밀었다.

"음, 무료 쿠폰이군요."

"혹시 분할로 화살을 받을 수 있나요?"

범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인에게 화살을 분할로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물론입니다. 한꺼번에 다 받을 수도 있고, 일부분씩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분할로 주시고, 2천 개만 주세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손님."

주인은 금방 화살 2천 개를 가지고 왔고, 그걸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정말 화살의 무게가 없는 건지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제약도 별로 없었다.

"정말 화살은 무게 계산에서 제외되는 모양이네."

범려는 화살을 받고는 곧바로 초보 마을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토끼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기 서라! 토끼!"

사람들이 토끼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약간 웃겼지만, 자신은 굳이 토끼를 잡으려고 뛰어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냥 화살 놓고 이렇게."

쉬이이익!

한순간에 토끼의 몸을 관통하고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한 번에 사냥을 해버렸다.

"가볍게 한 마리."

그리 멀리 있는 것들도 아니고, 사람이 다가가면 도망가기는 하지만 빠르게 뛰는 녀석들도 아니다. 그러니 화살로 한번 당기면 끝이다.

하지만 한 마리를 잡았다고 해서 사냥이 끝난 게 아니었다. 범려가 잡은 토끼 주변으로 3마리 정도가 다 범려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뭐지, 이 심상치 않은 기운은."

범려는 자신을 노리고 달려오는 토끼들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쉬익! 쉬익! 쉬익!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습니다.

"아, 위험했다."

3마리의 토끼를 죽이자 더 이상 다른 토끼들이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아주 중대한 사실을 하나 알아채지 못했다.

이곳은 무리 시스템이라는 게 존재한다. 아무리 약한 몬스터라도 최소 4~5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니며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걸 모르는 범려는 한번 사냥할 때마다 녀석들이 왜 자꾸 달려드는지 의아해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후, 조금만 쉬자."

몇 번 토끼를 잡고 나니 바로 레벨이 오르고, 2레벨이 되면서 2분간 쉬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혼자선 사냥을 안 하는구나."

무리 시스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를 맺고 같이 무리를 이루어서 사냥하고 있었다.

"저기, 저희랑 같이 사냥 안 하실래요?"

범려는 잠시 쉬고 있는 동안 자신의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오자 뒤를 돌아보았다.

"네?"

"파티 안 하실래요?"

여성 유저가 물어보자 범려는 순간 눈이 커지고 멀쩡하던 입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파, 파티요?"

여자들 앞에서 약해지는 범려였다.

"네, 파티요. 혼자 계시는 것 같은데 저희랑 같이 하실래요?"

"네, 네."

말을 살짝 더듬거리면서 대답을 하자 파티 신청 메시지가 들어왔다.

-헬렌 님이 파티에 초대하셨습니다. Yes/No

당연히 Yes를 눌러주고 같이 파티를 하게 되었다.

"혹시 전직하셨어요?"

"아니요. 전 아직 2레벨밖에 안 되는데요."

"네? 그럼 궁수로 전직한 게 아니에요? 활을 꽤 잘 쏘시던 데."

헬렌은 범려가 활로 토끼를 잡는 모습을 보고, 이제 막 궁수로 전직해서 시험 삼아 화살이 날아가는 짜릿함을 맛보기 위해 이곳에 와서 사냥을 하는 거라 여겼다.

"아닌데요. 제가 활을 좀 다룰 줄 알아서……."

다들 범려의 레벨이 2라는 말에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그냥 파티에서 내쫓을 건지, 아니면 이대로 데리고 다녀야 하는 건지 이야기하더니 그 결과를 알려 줬다.

"같이 가시죠."

"가, 감사합니다."

사실 범려는 같이 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사냥을 해도 경험치를 올리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의 전투 방식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거쳐야 한다.

"근데 원래 말을 그렇게 더듬거리시나요?"

"저, 그, 그게……."

쪽팔리게 여자들 앞에서는 말을 더듬거린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사, 살짝 그래요."

"그러시구나. 일단 같은 파티원이 됐으니 저희들 먼저 소개해드릴게요. 저는 헬렌, 이쪽은 제키 오빠, 옆에는 벤투스 오빠."

"바, 반갑습니다. 범려입니다."

범려는 헬렌이 자신의 옆에 있어서 계속 말을 더듬거렸다. 다들 그가 원래 말을 더듬는다고 생각하고는 그대로 넘어갔다.

"일단 사냥터를 다른 곳으로 바꾸죠."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앞장서자 다들 초보 사냥터를 벗어나 다른 사냥터로 움직였다.

"이곳에 나오는 몬스터가 순록들이니까 다들 조심해."

순록의 레벨은 정확히 10렙. 몬스터가 10렙이 되면 다들 기본적인 전직을 하기 때문에 범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제키와 벤투스는 전사, 헬렌은 마법사다. 다들 이제 10렙이 됐기 때문에 기본적인 직업 스킬만 가지고 있었다.

"내가 몬스터를 몰아올 테니 다들 준비해."

범려는 몬스터 몰아온다는 말에 습관적으로 활줄을 검지로 두어 번 건드리며 전투 준비를 했다.

"범려 님은 그냥 계세요. 사냥은 저희 셋이서 할 테니."

"……."

레벨이 낮다고 무시당했다. 이제 2렙밖에 안 됐으니 사냥에 도움이 안 된다며 빠져 있으라는 것이다.

'참 나, 이제 2렙밖에 안 됐다고 무시하는 건가.'

솔직히 화가 좀 났지만, 이왕 파티를 했으니 조금 레벨을 올린다는 생각으로 가만히 있었다.

전투 방식은 제키가 몬스터를 끌어오면 기다리고 있던 벤투스가 보조를 하면서 같이 싸우다가, 마법사인 헬렌이 마법으로 공격해 순식간에 죽이는 공격적인 파티였다.

"잡아!"

그들은 무섭게 몰아치다가 헬렌의 마나가 떨어지면 마나를 회복할 시간도 챙기고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자리에 앉았다.

그 잠깐 사이에 범려의 레벨은 4가 되었다. 이 정도 되면 전투에 참여할 만큼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 제 레벨이 4가 되었는데 전투에 참가해도 되겠죠?"

범려는 헬렌과 반대편에 서서 파티의 리더인 제키에게 말을 건넸다. 이때는 남자한테 말을 거니까 더듬지 않았다.

"음, 어차피 4렙 정도 됐으면 약간은 데미지를 줄 수 있으니 그렇게 하세요."

"네."

범려는 모든 스탯을 민첩성에 밀어버렸다.

이름:범려 레벨:4 성향:무(無) 직업:무직

생명력:120 마나:108

힘:10 민첩성:19 지능:10 정신력:10 체력:10

공격력:58 방어력:1 마법 공격력:30 마법 방어력:1

스탯 포인트:0

지금 스탯으로 보이는 공격력은 각궁의 공격력을 포함해서 나온 것이다. 좋은 데미지가 나올 거라 생각은 안 하지만 다른 파티원들과 비교해서 밀릴 것 같지는 않았다.

'좋아, 내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 주마.'

범려는 검지로 활줄을 두세 번 살짝 튕기더니 바로 화살을 시위에 올리고 준비 자세에 들어갔다.

제키가 뿔 달린 순록들을 데리고 오자 바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범려는 먼저 달려오는 순록의 미간에 정확히 화살을 박아 넣었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습니다.

미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박히자 데미지가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몰라도 순록 한 마리가 맥없이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한순간에 피가 쭉 빠지면서 순록이 죽자 범려는 바로 다음 목표를 향해 똑같이 순록들의 미간에 화살을 날렸다. 계속되는 치명타 행진에 파티원들은 범려를 쳐다봤다.

"버그 플레이?"

버그를 이용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가다 있지만, 얼마 안 가서 그런 사람들은 적발되고 『판게아 월드』에서 계정이 삭제된다.

"버그 플레이는 안 하는데요."

범려는 버그를 이용한 플레이는 모른다. 이전에도 다른 게임을 했지만 버그를 이용한 적은 없다.

"하지만 어떻게 치명타를 연속으로 터트리죠?"

"파티 가입하기 전에도 말했지만 전 활 좀 다룰 줄 압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까운 데서 목표를 못 맞히는 짓은 안 하니 걱정 마세요."

"일단, 그 말을 믿어보죠."

다른 사람들은 범려의 능력에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의심이 됐다. 버그를 써서 자신들에게 해가 되지는 않지만 왠지 찜찜하다.

다시 한 번 순록들을 끌고 왔지만 여지없이 범려는 활을 몇 번 당기더니 연속되는 치명타 공격으로 녀석들을 차디찬 시체로 만들었다.

'멧돼지 사냥하는 것 같아서 괜찮은데.'

솔직히 활터에서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과녁을 맞히는 게 대부분이지만, 간혹 사냥철이 되면 범려는 스승님과 함께 활과 화살을 들고 경찰서에 가서 사냥한다며 신고를 하고 멧돼지나 이런 걸 사냥해오기는 한다.

그것도 최근 했던 일이 작년이다.

"후웁!"

쉬익! 쉬익!

화살을 한참 날리다가 보니 갑자기 화살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벌써 화살 2천 개를 다 써버린 것이다.

"어라."

"뭐 해요? 공격 안 하고?"

"화, 화살이 떨어졌는데요."

헬렌은 화살이 떨어졌다는 소리를 듣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범려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제키 오빠, 범려 님 화살이 떨어졌대요. 잠시 마을을 다녀와요. 재정비도 할 겸."

"그래."

헬렌의 파티가 휴식과 장비를 재점검할 겸 해서 마을로 돌아가자 범려는 바로 화살을 인벤토리가 부족해질 때까지 모조리 사들였다.

"화살만, 8천 개 들었네."

화살의 소비가 은근히 빨랐기에 아무래도 10만 개의 화살은 금방 써버릴 것 같았다.

"뭐 해요. 준비 다 됐으면 어서 와요."

헬렌은 시간이 아까운지 범려를 재촉했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똑같이 재촉을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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