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탈것(2)
회색 산맥의 몬스터들은 경험치를 산맥 아래의 몬스터들보다 많이 주지만 아이템은 없다. 그게 아무리 하찮은 아이템이라도 말이다.
"이것도 거지 저것도 거지. 이놈의 산맥은 아이템이 하나도 없어!"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몬스터들이 많다는 것은 조금 기분이 상한다. 게임의 재미 중 하나인 고급 아이템을 주워 먹는 그 재미를 회색 산맥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범려는 악마들이 숨어 있는 곳을 찾아 돌아다니며 사냥을 했지만 점점 짜증만 날 뿐이다.
"이것들이 어디에 숨은 거냐."
아직 녀석들의 흔적을 찾지는 못한 상태다. 범려는 한시라도 빨리 퀘스트를 진행하고 싶었다.
"범려야, 혹시 그 악마라는 녀석들 던전에 있지 않을까?"
"던전?"
"그래, 던전. 산맥에 있는 녀석들을 그렇게 잡으면서 돌아다니는데도 악마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느 던전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게 아닐까?"
범려는 로즈의 말에 심각하게 고민을 하면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주변에 몬스터를 잡으면서 계속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소득이 없었기 때문이다.
"던전이라……. 그럼 이 근처에 던전이 있다는 건데."
범려는 주변을 잘 둘러봤지만 던전의 입구로 보이는 장소는 보이지도 않았다.
"던전, 악마, 영혼."
범려의 머릿속에서 세 단어들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면서 뭔가 머릿속이 환하게 비춰졌다.
"어둠!"
범려는 주변을 둘러보자 대낮처럼 밝은 주변의 환경을 보고는 왜 아직도 악마들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 악마들은 밝은 대낮보다 짙은 어둠을 좋아하고, 영혼 역시 찬란한 빛에는 약하지."
"짙은 어둠?"
로즈는 범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말을 곧 이해하게 되었다.
"밤이 돼야 입구가 보이는 던전!"
범려의 예상이 맞았는지,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자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 커다란 공간의 문이 생기며 그 안으로는 깊은 어둠을 내뿜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던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자, 악마들을 잡으러."
범려와 함께 로즈가 같이 들어가자 던전 진입과 동시에 메시지가 들려왔다.
-악마의 소굴 던전에 최초 입장 자입니다.
-던전을 최초로 발견한 상태이므로 던전을 클리어하게 되면 보스가 드롭하는 아이템의 개수가 추가로 늘어나게 됩니다. 이 사항은 최초 발견자들에게 주어지는 7일간의 혜택입니다. 이후 다른 누군가 이곳에 오더라도 최초 발견자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드롭률 대신 아이템을 하나 더 준다는 메시지를 받자 범려는 그저 그런 표정을 지었지만, 로즈는 달랐다.
"아이템 추가! 범려야, 어서 던전을 클리어해!"
로즈의 눈에는 범려가 아이템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은 던전을 클리어할 수가 없지만 범려는 다르다. 해골들을 이끌고 마음만 먹는다면 7일 동안 무제한에 가깝게 돌 것이다.
"나, 나한테 명령을 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부탁이야. 이런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의 부탁을 거절할 남자가 어디 있다고."
확실히 예쁘기는 하지만 범려는 별로 그 말에 찬성하고 싶지 않았다. 퀘스트만 아니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저, 전혀 들어주고 싶은 부탁은 아닌데."
"뭐야! 흥!"
로즈는 바로 고개를 돌리며 토라졌지만 범려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로즈라는 여자에게 점점 적응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버, 버프 줘. 사냥하게."
"어머, 내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구나. 신의 가호! 빛의 숨결!"
-신의 가호가 내려집니다. 체력이 30 증가합니다. 30분간 지속됩니다.
-빛의 숨결이 내려집니다. 모든 공격 형태의 공격력이 5% 증가합니다. 20분간 지속됩니다.
로즈는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생각하고 버프를 걸어줬지만 돌아오는 범려의 대답은 좀 달랐다.
"그냥 퀘스트 때문에 하는 건데……."
"뭐야!"
"으악-!"
로즈는 범려를 발로 차버렸고, 그는 상당한 통증이 느껴지는지 왼쪽 다리를 감싸 쥐었다.
"무, 무슨 말만 하면 때려."
"여성의 부탁을 무시한 벌이야."
범려는 미웠다. 자신의 부탁을 안 들어준다는 이유로 막 자신을 때리는 로즈가 미웠다. 하지만 여자 앞에서는 힘도 못 쓰는 그는 당할 수밖에 없다.
'내 반드시 여자 앞에서 나약해지는 병을 고치고 만다!'
범려의 두 눈에서 순식간에 불길이 일면서 독한 마음을 먹고 병을 고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솔직히 남자건 여자건 누구한테 맞고 사는 건 취미가 아닌 범려였다.
'반드시 병을 고친다! 반드시 병을 고친다!'
굳은 결심을 한 범려는 해골들을 지휘했다. 던전의 평균 몬스터 레벨은 바깥에 있는 녀석들보다 약간 낮은 평균 82레벨이었다.
"궁수, 목표 조준!"
끼이익!
범려는 시위를 당기면서 던전 입구를 지키고 있는 몬스터들을 향해 활을 겨눴다.
"뿔 달린 악마들을 잡자! 발사!"
악마의 소굴이라는 던전의 이름에 걸맞게 입구를 지키고 있던 몬스터들도 악마들이었지만, 문제는 레벨이 81이라는 것이다.
쉬익! 쉬이이익!
악마들에게 날아간 화살은 제대로 명중했고, 한 무리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리를 구성하는 숫자는 5명.
"방패!"
범려의 말에 맞춰 돌격병들은 큰 방패를 앞으로 들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죽어라!"
팡! 팡!
큼지막한 방패 위로 악마들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공격을 펼쳤지만 돌격병들은 아주 능숙하게 공격을 막아냈다.
"회오리 찌르기!"
돌격병 뒤에 있던 근위병들의 창이 급격한 회전이 가해지면서 악마들을 공격했지만, 악마들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을 계속 펼쳤다.
"이것들 그냥 몬스터랑은 다르잖아."
필드 몬스터들은 고통을 느끼면 잠시 동안이라도 움직임이 움츠러드는데 악마들은 그런 것이 없이 마치 광(狂)전사처럼 싸우고 있었다.
"빛의 구속!"
하늘에서 갑자기 악마 한 녀석을 향해 빛이 내려오더니 녀석의 움직임이 문득 멈추고 말았다.
"내가 한 녀석을 붙잡을게, 나머지 녀석들을 잡아."
로즈는 사제의 신성 마법을 쓰더니 악마 하나를 완벽하게 구속해버렸다.
"그 기술 진작 쓰지."
"나도 잊고 있었어. 미안."
사제인 로즈는 방금 악마나 언데드 하나를 구속하는 마법을 예전에 배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기술을 쓸 상황이 거의 없었다.
"대신 때리면 구속이 풀리니까 조심해."
"아, 알았어."
범려는 구속당한 악마를 건들이지 않고, 다른 녀석들을 두들겨서 시체로 만들어나갔다.
"잡아!"
마지막 한 녀석은 구속을 당했던 녀석이었고, 한 대를 때려 빛의 구속이 풀리자 해골들이 떼거리로 달려들더니 몸을 덮어버린 것이다.
"다음에는 한 놈을 먼저 잡을게."
"부, 부탁할게."
레벨이 높은 녀석들이라서 약간 위험하기는 했지만 신성 마법으로 한 녀석을 묶어두기 시작하자 전투는 너무나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악마의 소굴 던전은 생각보다 기다랗게 연결된 방 대신 단순히 몇 개의 방으로만 구성되어 굉장히 짧았다.
"순식간에 보스 방이네."
"한 4구역을 정리했을 뿐인데."
거리도 짧고, 레벨은 80대 초반 정도의 던전. 만약 나오는 아이템이 좋은 것만 나온다면 완벽한 아이템 노가다를 위한 던전이 된다.
"저놈이 보스인가."
다른 악마들보다 덩치가 2배는 크고 아주 험악하게 생긴 녀석이 옥좌에 앉아서 암흑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따, 딱 봐도 보스처럼 보이는데."
범려는 혼자 있는 녀석의 모습에 이 던전을 쉽게 생각했었다.
"그럼 가자. 돌진!"
해골들이 맹렬하게 돌진을 하면서 보스에게 달려들더니 전투가 개시되었다.
-보스 가울링이 암흑의 오라로 인해 데미지를 50%만 입게 됩니다.
"헉! 데미지 절반!"
해골들이 아무리 때려도 데미지가 절반만 들어가기 시작하자 녀석의 생명력이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
"짜증나는 놈이네."
로즈도 같은 메시지를 보고는 보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데미지가 온전하게 들어가도 보스들은 굉장한 체력을 과시하기에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연노병 연사!"
연노병들이 무서운 속도로 연노를 당기더니 화살들이 소모되는 속도가 기가 막힐 정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머나, 기관총이네."
옆에서 보고 있던 로즈는 화살이 날아가는 걸 보고는 탄성을 질렀다.
"저격!"
저격수들이 활시위를 서서히 당기더니 보스를 향해 조준했다. 이어 화살에 푸른색 빛이 서리더니 날아가 명중하자 보스의 체력이 조금 빠져나갔다.
"암흑의 오라……."
원래대로라면 저격을 맞으면 체력이 쭉 빠져나간다. 일반 몬스터라면 체력이 30퍼센트는 그냥 빠지는 무서운 기술이다.
"그래, 네놈 데미지를 절반으로 줄이면 난, 혼란을 걸어주마."
범려는 매서운 눈초리를 하고는 활을 당기고, 호흡을 고르면서 화살을 날렸다.
피이잉!
작은 파공음이 들리면서 녀석의 눈을 향해 날아가더니 그대로 눈에 치명타를 먹였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습니다.
-눈을 공격당했습니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3초간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3초간 암흑의 오라가 제거됩니다.
단순히 눈을 공격한 것뿐인데 3초간 혼란과 동시에 암흑의 오라가 제거되었다.
보스 가울링의 눈은 3개. 이마에 하나, 일반 사람처럼 2개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가울링의 왼쪽 눈을 맞힌 것이다.
"저 눈이 암흑의 오라를 내뿜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다음 공격도 눈이다."
해골들은 암흑의 오라가 제거되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을 동원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그에 보스의 체력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혼란 상태가 회복됩니다.
-암흑의 오라가 발동됩니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습니다.
-눈을 공격당했습니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3초간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3초간 암흑의 오라가 제거됩니다.
다시 메시지를 본 후 바로 눈을 공격해 녀석을 바보로 만들었다. 3개의 눈을 모두 공격하자 다른 메시지가 떴다.
-가울링이 모든 눈을 잃어서 암흑의 오라를 펼치지 못합니다. 장님이 되어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하하하, 이제 쉽게 끝나는군."
바보가 된 보스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해골들은 가울링에게 달려들어 녀석을 넘어트리고 그 위에서 도끼로 찍고 창으로 찔러댔다.
"죽었다!"
보스가 죽자 옥좌 뒤에 석벽이 열리면서 말의 영혼이 하나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애마 비앙카다."
"퀘스트 완료다."
둘은 드디어 퀘스트를 완료한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보스의 시체에서 암흑의 오라가 내뿜어지더니 애마 비앙카에게 흡수되는 것이 아닌가.
"전투 준비!"
범려는 불길한 기분에 전투 준비를 외쳤다. 그러자 해골들이 비앙카를 에워싸면서 진형을 갖췄다.
히이잉!
말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말의 영혼은 점점 붉은색으로 물들고, 말발굽은 불타 말갈기도 불타올랐다.
"나이트메어."
마계에서만 산다는 말 나이트메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날, 날 죽여줘! 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으윽! 죽여라! 모든 걸! 살아 있는 생명들을.]
비앙카는 자신을 죽여 달라며 소리쳤고, 범려는 이런 퀘스트가 결코 쉽게 끝날 리 없다고 여겼다.
"제길! 공……."
"안 돼요!"
해골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아르테미스가 나타나 범려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르테미스 님."
"이 가여운 녀석을 죽이지 마세요."
"하지만……."
"절대로 죽이면 안 돼요!"
갑자기 나타난 아르테미스 때문에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로즈가 나이트메어에게 빛의 구속을 시전했다.
"빛의 구속!"
덕분에 나이트메어는 몸을 속박당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주 적절한 판단이었다.
"그럼 저 말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마음 약한 아르테미스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범려의 앞을 막아설 뿐이었다.
'난이도 C급이던데, 그냥 못 끝낸다 이거지.'
범려는 퀘스트 난이도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는 도박을 했다.
"좋습니다. 무기를 내려놓을게요."
범려는 손짓을 하여 비앙카 주변에서 공격 준비를 하던 해골들이 물러나도록 한 뒤, 자신의 뒤로 집합시켰다.
"내가 공격당해도 공격하지 마. 알았지?"
해골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범려의 명령에 따랐다.
"이제 됐죠?"
아르테미스는 그때서야 범려에게 길을 내주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빛의 구속으로 묶여 있는 비앙카에게 다가갔다.
"로, 로즈, 마법을 풀어줘."
"위험해!"
"괜찮아."
"알았어."
로즈가 마법을 풀자 비앙카는 억압되어 있던 몸이 풀린 것을 느끼고는 앞발을 들면서 요란을 떨었다.
"비앙카, 진정해! 너 이겨 낼 수 있어!"
[파괴! 모든 생명의 말살!]
"넌 나이트메어가 아니야! 정신 차려! 아르테미스 님과 같이 즐기던 추억을 떠올려 봐. 그때의 넌 천계의 말이었어!"
[추억! 천계! 파멸하라! 부숴라!]
비앙카는 제자리에서 요동을 치면서도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분명 어둠의 힘을 저항하려는 기운이 느껴졌다.
"아니야! 파멸이 아니라 네가 제일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봐!"
범려의 설득이 점차 통하는지 비앙카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려 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죽여라. 신의 축복이 내린 자들을 멸하라! 으윽! 행복한 순간, 아, 아르테미스 님…….]
"그래 아르테미스 님을 떠올려 봐. 널 그렇게 귀여워해줬잖아. 기억해내!"
범려는 대충 얼버무리는데도 그게 적절하게 애마 비앙카에게 먹혀들고 있었다.
[아르, 아르테미스 님!]
한순간, 말의 영혼에 머물고 있던 검은 기운들이 연기처럼 사라지면서 원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감사합니다, 범려 님. 비앙카를 구원해주셔서."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액티브 스킬 '해골마' 제작을 습득하셨습니다.
-'영혼의 팔찌'를 얻으셨습니다.
퀘스트 완료가 뜨자 범려는 웃었다. 드디어 새로운 스킬을 습득한 것이다.
"아, 그래도 아이템이 뭔지는 봐야겠지."
-영혼의 팔찌
순수한 영혼의 힘이 깃든 팔찌. 어둠도 빛도 아닌 무색의 힘을 가짐
옵션:모든 능력치+10
주변 파티원에게 마나 회복 속도를 40% 증가시켜 주는 지혜의 오라를 발산한다.
범려에게는 능력치를 제외하면 마나 회복 속도는 별로 가지고 싶은 아이템은 아니지만, 로즈는 달랐다.
"와! 나한테 딱 필요한 아이템이다!"
"그러고 보니 보스가 주는 아이템!"
퀘스트 아이템은 별로 의미가 없었지만 그래도 모든 능력치+10이라는 옵션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범려는 바로 보스의 시체를 확인했다.
-벼락검
생긴 것도 번개처럼 생긴 검이다. 벼락을 맞는다면 굉장히 아플 것 같다.
공격력:500 내구력:120/120
옵션:체력+30
공격 시 5% 확률로 하늘에서 데미지 200의 번개가 떨어진다.
-고요의 목걸이
고요의 아티잔의 숨결로 만들어진 목걸이다. 왜 악마 가울링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찌 되었던 고요의 일족 중 최고의 수장인 아티잔의 숨결이 들어 있다.
옵션:지능+40, 정신력+30
마나 회복 속도를 30% 증가시켜 준다.
던전 최초의 발견자라는 옵션으로 아이템이 하나 더 나오기는 했지만, 자신이 사용할 만한 물건들은 나오지 않았다.
"모, 목걸이는 로즈가 가져가."
"정말?"
로즈는 목걸이를 집더니 바로 자신의 목에 착용했다. 그렇지 않아도 마나 회복 속도가 제일 빠른 직업인 사제인데 아이템을 통해서 무서운 속도로 회복하는 아이템을 2개나 얻은 것이다.
"검은 먹을 사람이 없으니 내가 쓰지."
솔직히 자신에겐 필요 없다. 활이라면 모를까. 그래도 무기가 나와서 범려는 벼락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던전을 빠져나왔다.
범려는 바로 해골마 제작 스킬이 뭔지 보고 싶어서 스킬창을 열었다.
"스킬 확인!"
-해골마 제작(Master)
기병들에게 필수적인 해골마를 제작한다. 제작 재료는 말뼈가 필요하며 해골 제작자가 사용이 가능함(타인에게 양도 가능)
쿨 타임:1시간, 마나 소비:50
범려는 기병이라는 단어를 보자 크게 외쳤다.
"기병(騎兵)이다!"
아직 기병을 만드는 조건을 모르지만 분명 해골의 레벨과 관계가 있어 보였다. 지금 해골들 평균 레벨이 80이니까 적어도 90을 올리면 뭔가 나올 것 같았다.
"음, 기병이라니 무슨 소리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범려는 해골마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분 좋았다. 자신이 말을 타고 움직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짜릿하기도 했다.
"말 시체가……."
말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범려는 말을 잡기 위해 초원을 달려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로, 로즈야, 혹시 말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
"말?"
로즈는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그에게 지도를 하나 내밀었다.
"이거 받아. 아티잔 지역에서 북부에 있는 초원 지대인데, 그곳에는 널린 게 말이야."
"알았어. 여기서 멀지도 않네."
"근데 거기 뭐 하러 가는 거야? 몬스터라고는 초원에 있는 말들뿐인데."
로즈는 왜 그곳을 가는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북부 초원 지대는 정말 말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이 없다. 특히 거기에는 NPC가 없다. 즉, 퀘스트도 없는 곳이라는 말이다.
"아니, 일이 있어서 잠시……. 그럼 난 이만. 로그아웃!"
범려가 사라지자 홀로 남게 된 로즈는 자신도 사냥을 할 길이 없기에 로그아웃을 해버렸다.
그리고 정확히 5분 뒤 범려는 몰래 접속을 했다.
"갔나? 없군."
몰래 말이 있는 북부 초원으로 갈 생각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스킬인 해골마를 제작해볼 생각이다.
"그럼 해골마를 만들러 가볼까."
히이잉-! 우르르르!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 말들을 보니 정말 엄청난 무리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가 아티잔의 북부 초원 지대. 그럼 말 사냥을 잠깐 해볼까."
범려는 활을 조심스럽게 당기더니 눈에 보이는 놈 중에서 제일 큰 녀석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쉬이익!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화살은 바로 말 머리에 꽂히더니 말이 풀썩 쓰러져 버렸다.
"하나 잡았다."
범려는 말을 하나 잡았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이곳의 무리 시스템을 인식하고는 말 무리들이 한꺼번에 범려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었다.
"헉! 전투 준비! 전방에 다가오는 말들을 공격해!"
해골들이 범려의 명령에 따라 말들을 공격하자 말들의 레벨이 겨우 10밖에 안 돼서 속절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휴, 한 번에 40마리를 잡았네."
경험치는 오르지 않았지만 정말 쪽수로 무식하게 몰아치는 녀석들을 보고는 할 말이 없었다.
"일단 뼈를 채취해볼까. 뼛조각 찾기!"
범려는 시체 위에 말뼈가 고스란히 떠오르자 그걸 집었다.
"게임이라서 뼈만 나오네. 말고기는 없나."
피 한 방울, 고기 한 점 묻지 않은 순수한 뼈만 집어지는데 정말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꺼내서 만들어야지. 해골마 제작!"
스킬을 외치자 바로 운명의 실과 인연의 바늘이 손에 들려졌다. 하지만 그 뒤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뭐야! 또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거냐-!"
범려는 버럭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면서도 실과 바늘을 잡아 말뼈를 조심스럽게 관절 부위를 꿰면서 천천히 작업을 했다.
"으, 사람 뼈랑 다르게 말은 크다, 커."
말은 덩치가 사람보다 크기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는데, 특히 갈비뼈와 말 척추를 연결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
[야! 범려!]
귀가 멍멍하게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귓속말이 들려왔다. 가상현실이라서 귓속말도 음성으로 들려온 것이다.
"으윽!"
[너! 정말 이러기야!]
"무슨 여자 애 소리가 이렇게 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귀가 다 아프네."
범려는 잠시 귀를 막으면서 소리를 작게 들으려고 한 행동이지만 게임 안에서 그런다고 귓속말이 작게 들리진 않는다.
[너! 북쪽 평원이지! 대답해!]
"응."
[너, 거기에 꼼짝하지 말고 있어.]
로즈는 귓속말을 꺼버렸다.
범려는 잠시 동안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왔다고 느끼고는 다시 해골마 제작에 돌입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말뼈를 거의 다 맞춰가고 있는 동안 범려의 뒤에서 다시 한 번 큰 소리가 들렸다.
"너! 몰래 이곳에 혼자 와!"
"왜, 왜 그러는데. 막상 할 일 없어서 다시 접속했는데."
범려는 침착하게 대응하면서도 여자 앞에만 서면 습관적으로 말을 더듬었다.
"몰라서 물어. 한창 사냥 중인데 갑자기 가버리고! 알고 봤더니 여기서 말 사냥이나 하고 있고. 그래, 어디 이유나 들어보자."
로즈는 범려에게 최소한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다. 왜 나갔는지.
"잠시만, 기다려. 그 이유를 곧 알게 될 거야."
범려는 변명을 말로 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지금 하는 행동을 변명 대신 보여 주고 있었다.
"완성! 아… 이거 어떻게 움직이지? 생명을 불어넣어야 하나. 영혼 소환!"
범려가 영혼 소환을 외치자 손 위로 푸른빛을 띠는 구슬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구슬을 말 위에 올려놓자 아이스크림이 녹듯이 사르르 스며들었다.
히이잉!
말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뼈만 앙상한 해골마의 모습을 보여 줬다.
-해골마를 제작하셨습니다.
-해골 제작자가 사용 가능합니다. 해골마를 타인에게 양도를 할 수 있습니다.
2개의 메시지가 뜨자 범려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기병으로 가는 조건이 모두 갖춰졌지만 범려는 말이라는 것을 한번 타보고 싶었다.
"이거 때문이야?"
로즈는 해골마가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별것 아닌 걸로 보였다. 말이라면 여기에 널리고 널렸다.
"이것 때문이라니 잘 봐."
범려는 안장도 없는 말 위에 말의 갈비뼈를 밟고 말 등 위로 올라탔다.
"어!"
아직 『판게아 월드』에는 이동 수단인 말을 탄다는 계념이 없었다. 텔레포트를 이용해 날아가거나 혹은 걸어서 길을 가는 것이 일상적인 방법이다.
"아이고! 나 죽네……."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범려는 말 위에 올라서자 갑자기 자신의 아랫도리를 잡고는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로즈는 범려가 말에 오르자 바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는 소리쳤다.
"어머나!"
멀쩡하게 말에 오른 인간이 갑자기 굴러 떨어지니 놀란 것이다.
"괜찮아?"
"크윽……."
그래도 말에 오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정보이자 돈이었다. 범려는 한참 뒤에 고통에서 해방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윽, 안장이 있어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고통이……."
남자만이 아는 고통이었다.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 일단 말안장을 찾을 만한 곳으로 가야겠어."
고요의 아티잔 지역에서 나온 물건이 제일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은 단 한 곳뿐. 반돌 도시 최고의 상업 거래 지역이다.
다시 반돌 도시로 오자 도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마구간을 볼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말안장을 사려고 왔습니다."
"3골드."
말안장을 사려고 왔다는 소리에 즉답으로 3골드를 외쳤다. 동시에 말을 높이지 않는 걸 보니 손님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심산이었다.
"저……."
"흥정은 안 돼. 무조건 3골드. 더 이상 토 달지 마."
마구간 주인은 시작부터 못을 박아버리고는 범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 범려가 아니다.
"가격 말고, 저기 있는 말인데 안장이 채워지려는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헛! 해, 해골……."
마구간 주인은 해골마를 보고는 놀라서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일반적인 말만 보다가 움직이는 해골을 보고는 당황한 것이다.
범려는 그걸 보고 마구간 주인을 진정시켰다.
"아저씨, 저 말 위험하지 않아요. 그러니 진정하세요."
"너, 정체가 뭐야."
"마, 마법사! 그래, 마법사입니다."
마법사라는 소리가 확실히 설득력이 있는지 마구간 주인은 빠른 속도로 진정되면서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어이쿠, 귀하신 마법사님이 무슨 일로 이런 마구간에 오셨는지요."
"저, 해골마에 씌울 안장이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범려는 약간 얼굴 표정이 기이하게 변하면서 이 아저씨의 행동에 경계의 모습을 취했다.
"귀하신 마법사님, 저런 말의 안장을 만들어보지는 않았지만, 일반 안장을 씌우면 될 것 같습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말하는 주인을 보니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일이 잘 넘어가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3골드면 안장을 씌울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마법사님. 제가 안장을 직접 씌워드리겠습니다."
마구간 주인은 직접 말에 안장을 씌우고 단단하게 묶어주며 친절하게 행동했다. 범려는 안장이 씌워지자 말에 올라탔다.
"아, 안장이 있으니까 안전하네."
"범려……."
말에 오른 모습을 본 로즈는 범려의 몸 주변에서 이상한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음?"
회색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특별한 버프를 받거나, 뭔가 다른 것이 적용되어 메시지가 들리지도 않았다.
"뭐… 지?"
범려 자신도 모르는 현상이었다. 혹시 몰라 말에서 내리자 회색의 기운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해골마 한 마리만 눈에 보였다.
"어라, 신기하네. 말 위에 올라가서는 보였는데."
범려는 혹시나 해서 다시 말에 올라타자 회색의 기운이 다시 뿜어져 나왔다.
"……."
그 뒤로 몇 번을 반복해서 얻어낸 결론이 있었다. 사람이 올라타면 이상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펙트를 눈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다른 능력을 부여해준다든지, 혹은 능력치의 변화는 없었다.
"범려야, 그런데 해골마에 단순하게 안장만 씌우니까 너무 앙상해. 멋도 없고."
로즈의 말대로 해골마는 단순하게 안장만 씌워진 상태. 그러다 보니 너무 모습이 앙상하고 불쌍하게 보였다. 물론 범려가 올라타면, 회색의 기운을 뿜으면서 멋지게 연출을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아저씨, 혹시 여기에 뭐 하나 씌웠으면 하는데요. 너무 앙상해서."
"그렇다면 물건이 있습니다. 가격은 4골드입니다."
"네? 4골드요?"
범려는 겨우 천 조각의 가격이 4골드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4골드나 할 줄은 몰랐다. 단순하게 말을 치장하고 폼 나게 보이려고 하는 장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자신이 생각한 가격치고 비싸다고 생각했다.
"저 앙상한 모습을 가리려면 일반 천으로는 안 됩니다. 약간 길이를 길게 하고, 말이 달릴 때 전혀 거부감이 없어야 하기에 그 정도 가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씌워주세요. 어떤 물건이 잘 어울리는지 보고 살게요."
범려는 4골드나 되는 거금을 그냥 쓸 수가 없어서 철저하게 물건을 고르고 또 골라 최고의 품질을 찾아낼 작정이었다.
"이건 색이 보라색이고, 저건 빨간색……."
색상은 총 20가지나 되었고, 그중 고른 것은 회색이었다. 그나마 자신에게 말 위에 올라탔을 때 가장 잘 받는 색상이었다.
"이거로 할게요."
범려는 돈을 지불하고 마구간을 나왔다.
"그럼 말을 한번 타볼까."
범려가 말에 오르자 바로 회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서 아주 멋지게 보였다. 더군다나 키가 큰 편에 속하는 범려는 마치 말 위에 올라탄 기사처럼 보였다.
'쬐끔 멋있게 보이네.'
로즈는 마음속으로 약간이나마 범려가 멋있게 보였다.
"로, 로즈, 타. 내가 크게 선심 쓴다."
범려는 로즈에게 손을 내밀면서 해골마 위에 올라탈 것을 권유하자 마지못해 손을 내밀며 같이 말 위에 올라탔다.
"천천히 도시를 돌아다녀 볼까."
범려는 왠지 폼 잡고 싶어져서인지 로즈를 자신의 앞에 태우고는 반돌 도시의 제일 큰 대로에 들어섰다. 그러자 사람들이 범려와 해골마, 그리고 로즈를 바라봤다.
"유저가 말을?"
아직 아무도 말을 탔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판게아 월드』 측에서도 말이나 그 비슷한 것을 탄다는 소리가 나온 적도 없다.
"말이다! 그것도 뼈만 있는 해골마!"
"우오! 저 회색 오라!"
유저들은 범려의 주변으로 하나 둘씩 모여들더니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뭐, 뭐야.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
로즈는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몰려들어서 그런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면서 범려에게 손짓으로 이곳을 벗어나자고 했다.
범려도 로즈의 손짓이 뭔지 알아차렸는지 소리쳤다.
"이랴!"
말은 범려의 명령에 따라 무서운 속도로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해 순식간에 도시를 빠져나왔다.
도시를 빠져나오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로즈가 말 위에서 황급하게 내려온 것이다.
"창피해……."
사람들 앞에서 연인 같은 모습을 보여서 그런지 로즈는 얼굴이 사과처럼 붉게 변하더니, 말 위에서 내려 쪼그려 앉아서는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했다.
"……."
범려도 약간 로즈의 심정을 이해했다. 약간 폼만 잡으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자신도 당황한 것이다. 더군다나 로즈는 자신의 앞에 앉아서 말 위에서 구경까지 했으니 얼마나 창피할까.
'내가, 다시는 말을 타나 봐라.'
로즈는 속으로 다시는 말을 안 타겠다는 다짐을 하고는 범려를 째려봤다.
"야!"
"아, 미안해 그냥 약간 폼만 잡아보려고 했는데……. 사과의 의미로 내가 말 하나 만들어줄게. 잠깐만 기다려."
범려는 로즈가 하려는 말을 자르고 자신의 말만 하고는, 저 옆으로 가서 인벤토리에 있는 말뼈를 하나 꺼내더니 바로 해골마 제작에 들어갔다.
해골마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해골마 한 마리를 만들어서 로즈 앞에 대령했다.
"이거… 받아. 해골마는 다른 사람한테 줄 수도 있거든. 그리고 미안해."
"아니, 괜찮아."
범려는 사과의 의미로 말을 로즈에게 줬지만 그녀는 괜찮다면서 손을 내젓다가 갑자기 손을 멈췄다.
"이거 팔자!"
로즈는 범려를 향해 그리 소리쳤다. 범려는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로즈는 해골마를 보고 이걸 팔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뭐?"
"말을 만들어 팔자니까."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