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11화 (11/80)

제1장. 돈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야."

"난 아직……."

"너 돈 필요하지 않아?"

범려는 사실 돈이 필요했다. 대학 등록금 벌겠다고 위장 취업도 했다. 하지만 월급 대신 가져온 건 커플용 캡슐뿐이다.

"왜 그렇게 딱딱해. 골드를 벌어서 현금으로 바꾸겠다는 것도 아닌데. 그냥 화살 값 번다는 생각으로 하나 만들어서 팔면 되는데."

"화살……."

범려는 화살 값이라는 말에 살짝 고민을 했다. 사냥을 하는 데엔 많은 화살이 필요하다. 특히 해골 궁수 한 명당 평균 약 1만 개의 화살을 소비한다. 연노병의 경우 1만 개가 약간 넘는다.

"떼돈을 벌자는 게 아니야. 그냥 화살 값 충당한다고 생각해."

"……."

로즈의 말에 범려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판게아 월드』에서 최초로 말이라는 이동 수단을 발견하고 그걸 사용했다. 이건 석유를 발견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 해골마는 어떤 유니크 아이템, 아니 전설급 아이템하고도 비교가 안 돼. 너만 만들 수 있잖아."

말 가격은 정하지 않았지만 한 마리당 굉장히 높은 가격을 책정해 팔아먹을 수 있다.

솔직히 말해 범려는 돈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돈에 끌려 다니는 게 싫을 뿐이다.

"조, 좋아. 만들게."

"정말?"

"하, 하지만 다섯 마리만 만든다."

범려는 돈이 필요하지만 딱 5마리만 만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겨우 해골마 다섯 필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해? 사람들이 말 한 마리 사려고 수천 골드를 내놓을 것 같지는 않은데."

로즈는 5마리 가지고 되냐는 말을 했지만 범려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그 정도만 가지고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 다섯 마리만 있어도 충분해."

지금 당장은 해골마의 가치는 파악이 안 된다. 말을 만들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얼마를 생각하는 건데."

"오, 오백 골드를 생각하고 있어."

범려는 실상 해골마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이 바보, 고집불통. 그렇게 해서 돈 벌겠냐! 흥!"

"돈이 나를 따라오게 해야지 내가 돈에 이끌리면 안 돼!"

범려가 당당하게 소리치자 로즈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잠시 눈을 질끈 감았고, 그의 표정은 아주 확고하게 굳어 있었다.

"그래! 범려, 네 마음대로 해! 흥!"

로즈는 자신이 기껏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알려 줬다고 여겼는데 범려가 그걸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자 기분이 상했다.

"해, 해골마 만들 거야. 그러니 같이 사냥은 못하겠다."

범려는 바로 말뼈를 꺼내더니 인연의 바늘에 운명의 실을 이용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흥!"

로즈는 대꾸도 안 하고 로그아웃을 해버렸다.

범려는 묵묵히 말뼈를 맞춰가면서 작업을 진행했고 해골마 3마리를 만들 때까지는 꼼짝도 안 하고 거기서 죽어라 뼈만 맞췄다.

"아, 눈 아파라."

너무 집중해서 그런지 눈만 아픈 게 아니라 목도 뻐근하고, 허리도 아픈 게 잠시 쉬어야 했다.

"너무 피곤한데. 로그아웃!"

그는 게임에서 나오자 기지개를 펴고 허리와 어깨를 살짝 돌려 주며 몸을 풀었다.

"아, 게임을 너무 오래 했더니 몸이 굳었어. 지금 활터나 한번 가볼까?"

잠시 몸이 찌뿌듯한 게 운동이라도 할 겸 희성은 스승이 있는 활터에 한번 가서 다시 활을 잡을까도 생각했지만, 시계를 스윽 보고는 그 생각을 곧바로 접었다.

"새벽 1시……."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결국 활터에 가는 것은 잠시 접어두고 저녁밥 겸 야참을 먹어야 했다.

"잠을 적게 자더라도 밥은 제때 먹어야지, 이거 완전 폐인이네. 확실하게 밥 먹는 시간을 챙겨야겠어."

희성은 규칙적이고 건전한 게임 생활을 위해 하루 일과표를 작성했다.

시간표를 만들어보니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은 9시간 정도를 투자하고 나머지는 빈 공간이었다. 즉, 게임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래, 어차피 휴학 중 학비가……. 젠장, 이놈의 학비. 결국 돈이 문제냐!"

희성은 대학 등록금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머리가 아파왔다. 돈에 끌려 다니는 것은 싫지만 돈은 필요한 존재이기에 돈 때문에 세상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등록금만 아니면 내가 위장 취업도 안 하고, 이렇게 캡슐을 가져오지도 않았을 건데……."

희성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휴학을 끝마치게 되면 다시 학교에 복학을 해야 한다.

복학을 해도 게임은 계속하고 싶다. 무료 기간이 아직은 남아 있지만 계속 『판게아 월드』를 하고 싶으면 돈을 내야 한다.

"결국 말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거냐!"

소 팔아서 대학 등록금 마련한다는 소린 들었어도 해골마 팔아 돈 마련한다는 소리는 듣도 보도 못했다.

"일단 졸리니 나중에."

희성은 잠이 쏟아지자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 침대가 없기에 캡슐이 대신했다.

아침에 일어난 시간은 7시, 게임에 다시 접속한 시간은 8시였다.

"나머지 해골마를 만들어볼까!"

범려는 손을 계속 놀리기 시작하더니 몇 시간 뒤에 나머지 해골마들을 완성시켰다.

"영혼 소환!"

5개의 영혼의 구슬을 불러내고는 영혼을 불어넣자 해골마들이 퀭하니 뚫린 두 눈에서 푸른빛을 내면서 일어섰다.

"다 됐다. 이제 이걸 어떻게 팔지?"

막상 해골마를 어디에 팔아야 할지 고민이었다. 물건을 사기만 했지 판 적이 별로 없었다.

"시장에 팔아야 하나? 아니면 경매장을 찾아야 하나."

『판게아 월드』는 경매장과 시장이 있어서 물건을 팔 수가 있다. 경매장은 무조건 수수료 10퍼센트를 떼어가고, 시장은 수수료가 없지만 사기에 대한 위험성이 있었다.

"경매장에 물건을 올리면 해골마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할 테니까 시장으로 가자."

범려는 자신이 직접 물건을 시장에 나가서 팔 생각을 했다.

"시장이, 남쪽이지."

범려가 말에 오르자 말은 회색 오라를 내뿜으면서 신비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이것들을 어떻게 데리고 가냐."

시장은 반돌 도시에서 남쪽에 위치해 있다. 범려의 마음은 말을 신나게 타고 가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딸린 해골 식구들이 많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너희들만 두고 어떻게 나 혼자 가겠냐. 천천히 가자."

해골 병사들은 갑자기 자신의 몸을 압축시키더니, 텅 비어 있는 해골마의 갈비뼈 안으로 5명이나 들어가 버렸다.

"헛!"

범려 자신이 타고 있는 해골마까지 도합 6마리 30명의 해골들이 모두 그 안으로 들어가 딱 붙어 있는 모습을 보자 입이 쩍 벌어졌다.

해골들은 각자의 장비를 자신들의 개인 인벤토리에 자동적으로 집어넣고 한 행동이기에 무기가 튀어 나오는 일은 없었다.

"대단한 녀석들이네, 몸을 알아서 줄이다니……."

범려는 스스로 행동하며 움직이는 해골들이 보니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소환수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었다.

다그닥다그닥!

말을 잘 못 타는 범려지만, 이게 게임이라는 특징 때문에 처음 말 위에 오른 사람이라도 수년 승마를 배운 사람처럼 잘 탈 수가 있었다.

범려는 말을 몰아 반돌 도시의 남쪽에 위치한 시장에 도착했다. 역시 입구부터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북적거렸다.

"사람 정말 많다. 『판게아 월드』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는 것 같네."

안으로 들어가서 장사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 사람들이 많고, 해골 병사들 때문이라도 장터 입구 주변에서 물건을 팔아야 했다.

"해골마 팝니다-!"

범려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머리가 핑 돌아버릴 정도로 소리쳤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말을 판다고 하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범려의 목소리를 듣고는 조금 이상함이 느껴졌다.

"해. 골. 마! 팝니다!"

그냥 일반 말이나 군마가 아닌 해골마였다.

"혹시 유저인가요?"

"네, 유저인데요."

범려에게 혹시 유저냐고 물어본 사람은 놀라 눈을 크게 뜨면서 그의 뒤에 있는 해골마들을 바라보았다.

"저 말 타는 게 가능한가요?"

"물론이죠. 시범을 보여 드릴게요."

범려는 가볍게 말 위에 오르더니 몇 발자국 움직였다. 그러자 유저는 입이 떡 벌어졌다.

범려가 말 위에 오르자 회색의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흔히 말하는 간지가 줄줄 흐르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왜 그렇게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거죠?"

범려가 상대방의 얼굴이 멍해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가까이 다가가 묻자 그는 곧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가, 가격이 얼마인가요."

당장이라도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가격을 물었지만 범려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글쎄요."

이런 해골마를 파는 것도 처음인 데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물건이라 가격을 쉽게 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게임에서 흔히 말하는 '선 제시' 가격을 먼저 말하고 파는 사람이 그 가격에 만족을 하면 파는 것이다.

"제가 들고 있는 돈이 200골드인데 하나 파실래요?"

아마도 말보다는 말을 타고 있을 때 흘러나오는 오라에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

200골드. 작은 돈이 아니다. 『판게아 월드』에서는 1골드가 5천 원 한다. 그러니 현실 금액으로 100만 원. 괜찮은 가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회색 오라를 내뿜는 해골마를 그 사람 혼자만 본 게 아니었다.

"저 말 제가 500골드에 살게요."

불쑥 끼어든 유저는 머리카락을 제외한 부분이 모두 붉은색이었다. 머리까지 붉었다면 좋겠지만, 머리색이 붉어지면 흔히 말하는 살인자다.

"그 5… 웁!"

범려는 순간 500골드에 물건을 팔려고 했는데, 누군가 갑자기 그가 타고 있는 말 위로 뛰어올라 입을 막았다.

"음, 500골드 너무 가격이 그런데요."

범려의 입을 막고 가격을 흥정하기 위해 나타난 인물은 바로 로즈였다.

"로, 로즈……."

로즈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에서 내려와 적당히 중개를 했다.

"보아하니 물건 파는 사람하고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데 왜 끼어드는 거요."

"어머, 이렇게 보여도 저기 말 타고 있는 사람 누나예요. 친누나가 물건 좀 같이 파는데 문제 있을까요?"

그 유저는 범려와 로즈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전혀 닮지 않은 걸 가지고 토를 달았다.

"전혀 안 닮았잖아."

"게임하면서 성형 안 하는 여자 봤나요?"

"……."

돈도 안 드는 성형, 비록 5퍼센트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것 가지고도 얼마든지 변화를 줄 수 있다. 더군다나 공짜 성형이라서 모든 여자들이 다 한다.

"말해봐요. 왜 말이 없죠? 여자들 예뻐지는 데 성형 안 한다는 보장 없죠?"

"그, 그렇지."

"그러니 이제 믿으시겠죠. 제가 친누나라는 사실을."

로즈에게 토를 달던 유저는 그 말에 수긍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다시 흥정을 시작했다.

"저기 봐! 사람들이 몰려 있어. 뭣 때문에 몰려 있는 거지?"

범려가 말 위에 타고 있을 때 뿜어져 나오는 회색 오라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더군다나 해골마 뒤에 정확하게는 오와 열을 맞추어 서 있는 해골 병사들이 더욱더 눈길을 끌었다.

"700골드!"

"난 900!"

사람들이 몰려드니 시장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경매장처럼 바뀌었고, 서로 범려의 해골마를 사려고 자신이 가진 골드를 꺼내면서 거래하려 했다.

"자자, 다들 진정하세요!"

로즈는 큰 소리로 범려의 말을 사려고 달려드는 유저들을 진정시켰다.

'심심하군.'

지금 상황은 로즈가 주도하고 있었다. 생각지 못한 장사 수완에 가격은 순식간에 뛰었고, 사람들의 이목은 집중될 대로 집중되었다.

"범려야, 잠깐 말 달리는 모습을 보여 줘."

로즈의 말에 범려는 해골마의 기수를 돌려 달렸다.

"이랴!"

회색 오라를 내뿜으면서 말을 달리는 모습을 보여 주자 가격은 급격하게 뛰었다.

"1,000골드!"

가격이 뛰었지만 로즈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가격이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이다.

"부족하지 않을까요?"

로즈가 가격을 더 올려 받을 생각으로 말을 덧붙였지만 그것보다 범려의 행동이 더 빨랐다.

쉬이익! 퍽!

범려가 말 위에서 활을 당긴 것이다. 말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이 아니라 치명타는 터지지 않았지만 공격을 한 것이다.

"저 사람 말 위에서 활을 당겼어!"

"뭐야, 공격도 가능한 거야!"

"어! 몬스터가 온다."

범려가 공격한 대상은 켄타우로스 무리였다. 숫자는 5마리.

해골들은 전투가 시작되자 범려의 앞으로 뛰쳐나오더니 진형을 갖추었다.

"공격!"

범려는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잠깐 사냥을 한 것이지만 이 효과는 엄청났다.

"2,000골드!"

범려가 사냥을 하든 말든 일단 2,000골드라는 숫자가 나오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어머, 물건을 볼 줄 아시네요."

그제야 로즈가 원하는 가격이 나오자 살짝 미소를 지었다. 2,000골드면 웬만한 유니크 아이템 가격이다.

"저 해골마들 내가 2,000골드에 사겠소!"

1,000골드와 비교조차 불가능한 2,000골드가 튀어나오자 다들 그 가격을 부른 인물에게 눈길이 쏠렸다.

"누구시죠?"

"천마 길드에서 왔소. 말 한 필당 2,000골드 어떻소."

순식간에 1만 골드라는 계산이 나오자 범려가 달려왔다.

"한 필당 이천……."

"가격이 부족하오?"

"아, 아니요."

엄청난 가격이 아닐 수 없었다. 1만 골드면 현금으로 5천만 원이라는 돈이 나온다.

'5천만 원!'

겨우 해골마 5필 가격이었다. 범려는 그 자리에서 말들을 팔고 돈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 거래 현장을 목격하였고, 일부 사람들은 천마 길드의 재력에 놀라고 있었다.

"돈 벌었다!"

범려는 엄청난 골드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 돈이면 대학 등록금 해결과 나중에 무료 쿠폰 기간이 끝나더라도 게임을 계속하고 생활비도 충당이 가능하다.

"고맙다, 로즈!"

범려는 돈을 받아서 기쁜 나머지 로즈를 꽉 끌어안았다.

"버, 범려, 이러면……."

로즈는 당황해하며 홍당무같이 얼굴이 붉어졌고, 온몸에 힘이 빠졌는지 저항을 하지 못했다.

"너무 고마워."

"그, 그만. 이러면 나……."

"아, 맞다. 골드를 현금으로 바꿔야지."

로즈는 어렵사리 범려의 품에서 떨어지자 재빨리 로그아웃을 해버렸다.

범려는 로즈가 로그아웃을 한 것도 신경 쓰지 못한 채 방금 받은 골드를 바꾸기 위해 자신도 로그아웃을 했다. 그리고 비밀리에 『판게아 월드』 골드를 현금으로 바꾸어주는 사이트에 달려가 거래를 해서 딱 7,000골드를 현금으로 바꾸고 나머지는 놔두었다.

범려는 다시 로그인을 하고는 로즈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자 신경을 끄고 왜 기병이 등장하지 않았는지 고민했다.

"해골들 레벨도 80을 넘겼는데 왜 기병에 관한 소식이 없지? 아르테미스를 불러봐야 하나. 아르테미스!"

범려가 아르테미스를 부르자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공간의 문이 열리더니 그 유명한 10골드 천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범려 님."

"다름이 아니라 기병에 관해서 알고 싶어서 그런데요."

"그거라면 그냥 알려 드릴 수는 없고요. 이걸 받으세요."

아르테미스는 범려가 자신을 불러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 구슬을 내밀었다.

"이 영혼이 잠들어 있는 무덤을 찾으세요."

"네?"

-고귀한 영혼의 무덤을 찾아라.

아르테미스가 건네준 작은 영혼의 구슬. 하지만 그 영혼의 구슬은 범상치 않다. 과거의 인연을 먼저 찾아야 영혼의 육신을 찾을 것이다.

난이도:C

완료 조건:무덤을 찾아라.

보상:속박 스킬의 등급 변경

범려는 속박 스킬이 등급이 변경된다는 문구에 잠시 행동을 멈췄다. 지금까지 해골 병사들의 숫자가 30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숫자가 늘어난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알겠습니다. 이 영혼의 육신이 머물던 무덤을 찾겠습니다."

"그럼 기대할게요."

아르테미스는 다시 공간의 문 안으로 사라졌지만 범려는 영혼의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자신의 스킬 중에 이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워 그 모습을 보이게 만드는 스킬은 없었다.

"단순히 무덤을 찾으라니 어디서부터 찾지. 퀘스트로 준 영혼이라서 보통 영혼은 아닐 테고 유명한 무덤이라면 무슨 왕의 무덤 같은데……."

범려는 영혼의 구슬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차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왕의 무덤 같은 경우 『판게아 월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의 계념이 없고 단순하게 드래곤들의 영역으로 지역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나라가 없는데 왕의 무덤 같은 게 존재할 리 없지. 이거 미궁으로 빠지네."

범려는 결국 왕의 무덤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무덤을 찾기 위해 정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결국 내 발로 걸어야 하는 건가."

범려는 직접 걸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에겐 해골마가 있다. 이걸 타고 달려가면 된다.

"어디 한번 고요의 아티잔 지역에 있는 무덤이란 무덤을 다 찾아보자!"

그가 가장 먼저 찾은 무덤은 반돌 도시의 공동묘지였다. 역시 도시의 공동묘지는 크고 넓었다. 땅에 묻힌 사람들도 많았지만 범려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이 영혼의 이름도 모르잖아! 최소한 이름은 알려 줘야지. 아르테미스!"

범려는 신경질적으로 아르테미스를 불렀다.

"벌써 무덤을 찾으셨나요?"

"이 영혼의 이름이 뭡니까?"

범려는 다짜고짜 영혼의 이름을 물었다. 하지만 아르테미스는 살며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름은 알려 줄 수 없어요. 그럼 너무 쉽거든요. 수고하세요."

아르테미스는 다시 사라져 버렸고, 범려는 아르테미스의 대답에 가슴을 두드렸다.

"이름을 알려 줘야지 찾지. 이름 안다고 하루아침에 찾는 것도 아닌데!"

시작도 제대로 못해보고 포기할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걸 포기한다면 보상도 없고 범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병도 없다.

"일단 공동묘지에서 찾는 건 관두자. 너무 많다. 그래도 퀘스트이니 일반 공동묘지는 아니겠지. 홈페이지에 가서 중요 무덤에 관련된 게시물을 찾아보자."

범려는 로그아웃을 하고 바로 『판게아 월드』 홈페이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무덤, 무덤."

의외로 무덤에 관련해서 수백 개의 글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순백의 크라운에 있는 망자의 무덤인 언데드 던전에 관한 내용들뿐이었다.

"망자의 무덤이라."

망자의 무덤은 필드 던전으로 구분되어 있고, 문제는 던전 클리어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던전 공략에 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보스 잡았다는 소리만 잔뜩 적혀 있지 아무것도 없잖아. 근데 뭘 저렇게 어렵게 잡지?"

범려는 동영상을 봐가지고는 아무런 판단이 서지 않았다. 결국 직접 가는 게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백의 크라운 지역은 바로 옆이지만 너무 먼데."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움직이려면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범려는 딸려 있는 해골 병사들 때문에 마법으로의 이동은 불가능하다.

"이럴 때는 짐 덩어리네."

그래도 해골마를 만들어서 타고 움직인다면 마차처럼 해골들을 운반할 수 있다.

"다시 해골마를 만들어야겠다."

범려는 하루 종일 뼈들을 조립해서 해골마를 5필 만들었다.

나중에 기병이 등장할 때를 대비해 범려는 북부 평원으로 가서 말들을 다 죽이고 말뼈를 챙겨왔다.

말뼈는 스킬 재료 아이템으로 분류되어 아무리 많아도 무게를 먹지 않았다.

"이제 가볼까."

범려는 무서운 속도로 말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그닥다그닥!

범려는 말을 타고 순백의 크라운 지역까지 게임 시간으로 6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해골 병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단점을 가지게 되자 해골 제작자 직업에 살짝 회의가 들었다. 그래도 자신을 목숨처럼 따라주는 해골들을 생각해서 한숨만 내쉴 뿐이다.

"후, 겨우 순백의 크라운 지역에 들어섰다."

"전사 구해요!"

"마법사 구합니다!"

순백의 크라운 지역에서 아티잔과 제일 가깝다는 햇빛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파티를 구하는 풍경은 어디를 가나 똑같았다.

"아, 여기 마구간이 어디 있지?"

범려는 말들을 마을 바깥에 놔둘 수가 없어서 마구간을 찾았다.

이때, 범려는 해골들이 해골마들의 갈비뼈 안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연스럽게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음?"

마을 경비병은 해골마를 잠시 쳐다보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분명 게임 시스템 때문에 해골들을 인식한 건 분명한데 말이다.

"아, 마구간 있네. 아저씨?"

마구간 주인을 부르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놀라기는 했지만 범려는 자신의 직업이 마법사라고 속이고 말을 맡기려 했다. 그런데 주인이 이상한 눈빛으로 범려에게 말했다.

"말 안에 든 건 뭡니까?"

"앗!"

범려는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해골 병사들이 아직도 말 갈비뼈 안에서 압축되어 웅크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와라."

범려의 말을 듣고는 해골들이 우르르 나왔지만 이곳이 마을 안이라서 무장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전에는 마을 안에 못 오게 막았는데, 혹시?"

범려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해골들에게 무장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무기들을 장착해봐."

해골들이 명령대로 무기를 장착하자 마을 안을 돌아다니던 경비병이 귀신같이 찾아왔다.

"이곳에선 병사들을 둘 수 없습니다. 병사들을 데리고 나가주십시오."

"아, 죄송합니다. 무장을 해제시키면 안 될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상관하지 않겠소."

"얘들아, 무기 빼라."

무장을 해제하자 경비병은 그대로 돌아갔다. 이로써 범려는 확실하게 알았다. 해골들은 무장하지 않으면 마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작 이렇게 할걸."

범려는 해골 병사들을 마을 안으로 들여올 방법을 찾았지만 숫자가 많아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기에 그게 싫었다.

"해골들이 마을 안에서 돌아다니면 너무 눈에 띄어. 귀찮은 건 딱 질색이야. 너희들은 마구간 뒤에 숨어 있어."

충직한 해골들은 범려의 명령대로 다들 마구간 뒤에 모여서 쪼그려 앉아 대기했다.

범려 역시 병사들을 이렇게 숨기는 것은 싫었다. 그렇다고 사람들 이목을 줄줄이 끌고 다니는 건 더 싫었다.

"해골들이 머물 수 있는 막사라도 하나 주면 좋겠는데, 그 비슷한 이야기를 아르테미스가 안 해줬으니 방법이 없는 건가."

범려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망자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묻고 다니다가 한 친절한 유저 덕분에 무덤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서쪽으로 한 시간쯤 걸어가면 망자의 무덤 던전 입구가 보일 겁니다. 상당히 음침하게 분위기를 조성해놓아서 한눈에 알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범려는 그 친절한 유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해골 병사들을 데리고 20분 만에 망자의 무덤을 찾았다.

"이곳이 망자의 무덤인가."

던전 주변은 해골로 장식해놓아서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해골 제작자인 범려가 장식되어진 해골들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그것들은 진짜가 아니라 조각품이었다.

"이 던전에 이 영혼의 육신이 있을지도 몰라. 물론 예상에 불과하지만."

해골들을 이끌고 던전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해골마가 범려의 옷을 잡아당겼다.

"어, 어, 갑자기 왜 이래."

해골마는 자신도 같이 들어가고 싶다며 범려를 자꾸 건드는 것이다. 겨우 인공지능 주제에 별걸 다 같이 하고 싶어 하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같이 가자는 걸 보면 던전에 들어가는 게 가능한 모양이다.

"네가 들어오면 저 녀석들은 어떻게 하지?"

범려가 다른 해골마들을 걱정했지만 던전 입구 직전에서 메시지가 하나 떴다.

-던전으로 입장을 하게 됩니다. 해골마들은 무적으로 설정됩니다. 해골 제작자가 올 때가지 지속됩니다.

즉, 주인 없는 말들을 누가 해코지할 염려가 있었는데 무적으로 설정되니 안심이 되었다.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겠네."

말을 타고 던전 안으로 들어가자 말이 사라지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범려는 그대로 말 위에 올라탔다.

"이곳도 필드 던전이네."

일반 땅 위에 설정된 필드 던전이다. 필드 던전은 지하에 만들어진 던전과 다르게 드넓은 땅 위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천에 널린 게 시체들이네."

망자의 무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언데드 몬스터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이곳 언데드들은 다들 공통점들이 있었는데, 느릿느릿 걸어간다는 것이다.

"클클클, 놈들이 느리게 가면 나야 좋지."

느리면 사냥하기가 편하다. 하지만 이곳의 언데드들은 공격을 당하기 전에만 느리고 공격을 당하면 갑자기 빨라진다.

"편하게 레벨 업 하는 건가."

화살을 날리자 바로 치명타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언데드들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던전이라 몰려오는 숫자는 8명. 다른 던전보다 숫자가 많게 느껴졌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뭐야! 왜 갑자기 빨리 움직이는 거냐!"

그렇게 느리다가 전투가 시작되니 언데드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패로 막아!"

돌격병들이 방패를 들고 방어를 하자 근위병들이 날카로운 창을 들어 돌격병 뒤에서 공격했고, 저격수나 연노병들이 화살을 날려 순식간에 언데드들을 처리했다.

"휴, 놀랬잖아."

망자의 던전 평균 레벨은 80. 범려와 해골들의 레벨은 평균 81. 정말 괜찮은 던전이었다.

"이곳의 몬스터를 싹쓸이해봐야지."

범려는 이왕 이곳에 온 김에 녀석들을 깡그리 쓸어버리고 천천히 던전을 탐색하면서 퀘스트에 관련된 곳이 있는지 확인할 계획이었다.

"던전 몬스터는 한번 잡으면 던전을 리셋하지 않는 이상 현실 시간으로 15시간 후에 몬스터들이 재등장하니까 걱정 없단 말씀. 후후후."

사악한 미소를 흘리면서 범려는 망자의 무덤 몬스터들을 잡기 시작했다. 원래는 5인 기준으로 오는 파티이지만 쪽수로 따진다면 범려의 숫자가 많기에 금방 쓸어버린다.

"아이템과 돈을 떨구고 죽어라!"

해골들의 능력치가 좋아지니 범려가 약간의 광기를 보였지만 그래도 자신이 활을 날리는 것은 잊지 않았다.

"은화살을 들고 올걸."

약간 비싸지만 은화살을 들고 온다면 이곳을 제대로 공략 할 수 있는 던전이다. 아니면 무기에 성수를 발라 몇 분간 성스러운 축복을 받는 것이다.

"로즈가 생각나네."

사제인 로즈는 이런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특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녀석들을 포위해!"

범려는 자신들이 머릿수가 많다는 것을 이용해 몬스터 무리를 포위해버렸다. 몬스터들은 포위를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포위는 더욱더 단단해지고 꼼짝도 못해 해골 병사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하하하, 역시 내 해골들이야."

해골들의 능력치가 일반 유저들과 얼추 비슷해지니 좋았고, 더군다나 인공지능이 몬스터들보다 뛰어나다. 동시에 범려가 내리는 그 어떤 명령이라도 즉각 반응을 보이는 녀석들이다.

"보스가 있는 방을 제외하고 모조리 쓸어버려!"

범려는 정말 보스가 있는 방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쓸어버렸고, 자신은 여전히 말 위에서 활을 쏘면서 지휘를 했다.

높은 곳에서 상황보고 판단하니 지휘를 하기가 더욱 편했다.

범려는 주변의 몬스터들이 없어졌다는 것을 보고 보스가 있는 방 앞에 왔다.

"젠장! 리치!"

범려가 제일 싫어하는 몬스터는 리치 같은 마법사 계열 몬스터다.

"아, 마법 날아오면 해골들 생명력이고 뭐고 박살나는데."

보스들은 기절이 거의 안 걸린다 싶을 정도로 저항력이 뛰어나다. 특히 마법 계열은 캐스팅을 방해하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판게아 월드』는 팀플레이 성향이 강한 게임. 우르르 몰려가 두들기는데 보스 녀석이 광역 마법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정상이다.

범려는 어떻게 하면 녀석을 잡을지 고민했다.

"그래, 내가 먼저 몇 대 두들겨 맞으면서 해보자. 내 생명력이 어느 정도 되니 두 대 정도 맞다가 해골들로 포위 공격하면 대상을 바꾸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서둘러 병사들을 전투 준비 상태로 만들고 활을 당겼다.

"내가 녀석에게 공격당하면 공격을 시작한다. 알겠지!"

범려의 명령에 해골들은 고개를 주억거렸고, 자신들의 무기를 꽉 쥐고는 눈앞에 있는 리치를 향해 무한한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끼이익! 피잉!

깔끔하게 날아가는 범려의 화살은 정확하게 리치의 머리통을 관통했고, 동시에 늘 듣던 메시지가 하나 떴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습니다.

"누가 나의 성지에 손을 대는 것이냐!"

리치는 음산한 목소리로 외치고는 범려에게 마법을 시전하려는 듯 주문을 외웠다. 범려는 그걸 방해라도 하고 싶은지 다시 화살을 날렸지만 화살 따위에 마법이 취소되진 않는다.

"쳇!"

리치의 얼음 화살이 날아오자 범려는 그걸 한 대 맞더니 바로 해골마의 기수를 돌려 마법 사정거리 바깥까지 몰았다.

"제길, 녀석 마법 진짜 세네."

한 번에 생명력이 6분의 1 정도가 날아가 버렸다. 자신이 공격한 것은 겨우 1퍼센트의 데미지도 제대로 주지 못했다.

해골들은 범려가 공격당하자 바로 달려들더니 리치를 공격했다.

범려가 저 멀리 도망을 치자 리치는 공격 대상을 그에게서 가까이 있는 해골들로 바꾸려 했다. 그러자 때마침 화살이 하나 날아왔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습니다.

언제 들어도 두려운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범려는 어느새 활 공격 사정거리에 들어와 있었고, 말을 타고 빠르게 움직이면서 도망을 치는 방법을 구사했다.

"말 타면서 활 쏘는 법을 연습해야지 안 되겠어."

범려는 제대로 된 공격을 하기 위해 일단 말을 멈춰서 공격했는데, 원래는 해골마를 타고 달리면서도 공격이 가능하다.

"녀석이 마법을 외우지 못하게 넘어트려!"

해골들이 갑자기 뛰어오르더니, 리치의 얼굴을 가리고 두 손을 억류시키며 넘어뜨렸다.

"하하하, 날 이렇게 한다고 내가 마법을 쓰지 못할 것 같나!"

"마법을 쓰기 전에 널 해체시켜 주마! 뼛조각 찾기!"

스킬이 발동되며 범려가 손을 뻗자 해골 제작자의 고유 능력이 발휘되면서 눈앞에 있는 리치 뼈를 잡아 뜯었다.

-리치의 뼈를 채취할 수 없습니다.

-리치의 마법 캐스팅이 중단되었습니다.

"컥!"

범려는 뼈를 채취하지 못하고 리치의 체력에도 전혀 손상을 주지 못했지만 캐스팅은 중단시킬 수 있었다.

아마도 해골 제작자 앞에서는 어떤 해골이라도 버텨 낼 재간이 없는 것 같았다.

"해골이라서 뼈를 채취할 줄 알았는데 보스라서 안 되네."

해골들은 리치의 손발을 억류시킨 상태에서 계속 공격을 퍼부어댔고, 범려는 녀석이 마법을 외울 때마다 스킬을 발동시켜 뼈를 잡아 뜯고는 캐스팅을 중단시켰다.

"크억-!"

범려는 뼛조각 찾기 스킬 때문에 리치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는 스킬을 발동할 때마다 거칠게 뼈를 잡아 뜯었다.

"으흐흐, 뼈를 얻어내지는 못해도 고통을 줄 수 있구나."

범려는 뼈밖에 안 남은 리치의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사악한 미소를 지었고, 리치의 정신이 걸레가 될 때까지 마법 캐스팅을 방해하면서 괴롭혔다.

"제발, 살려 줘."

"이미 죽은 놈이 무슨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는 거냐."

"시키는 대로 모든 걸 다 할 테니 제발, 이 고문만은!"

"안 돼. 넌 리치야. 거짓을 말할 수도 있는데 무엇으로 그걸 증명하지."

리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보이는 선반 아래에 나의 라이프 베슬이 있다. 그걸 쥐고 있으면 내 목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고통에서 날 벗어나게 해다오."

범려는 해골 병사에게 물건을 가져오라고 시켰고, 병사는 정확하게 선반 아래에 있는 딱 사람 머리 크기만 한 금고를 가져왔다.

"비밀 번호는?"

"모른다."

"어서 말해! 아니면 죽을 때까지 뼈를 뜯어줄까!"

"5, 8, 3… 2, 0."

리치는 순순히 비밀 번호를 불었다. 범려는 리치가 말해준 번호로 금고를 열어서 라이프 베슬을 손에 쥐었다.

"자, 이제 날 풀어줘."

"아니, 이게 진짜인가 확인을 해야겠어."

범려는 인연의 바늘을 꺼내서 라이프 베슬의 표면을 살짝 긁었다. 그러자 리치가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생명력이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끄아-!"

"진짜군. 풀어줘."

범려는 라이프 베슬을 쥐더니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나를 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했지."

"그, 그렇다."

"혹시 영혼의 구슬을 아나?"

범려는 혹시 리치가 영혼의 구슬에 대해서 아는지 물어보았다.

"영혼의 구슬… 나는 잘 모르지만 알케이드 님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게 누구지?"

"이 무덤의 진정한 주인이시지. 너 같은 인간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그런 위대한 분이다."

이 무덤의 보스를 눈앞에 보이는 리치로 알고 있었는데 진정한 보스는 따로 있다니. 범려는 잠시 허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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