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12화 (12/80)

제2장. 무덤을 찾아서

범려는 이 망자의 무덤의 진정한 주인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럼 알케이드라는 자는 어디에 있는 거지? 아무리 봐도 그가 있는 곳은 모르겠는데."

"당연하지! 그곳을 알아내려면 비밀의 문을 열어야 한다."

리치가 비밀의 문을 이야기하자 이곳에 뭔가 또 다른 던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비밀의 문은 어디 있는 거지?"

"말할 수가 없다. 아니, 말하면 안 된다."

다 말해놓고 이제 와서 말을 안 하겠다는 건 조건이 하나 더 필요하다는 소리 말고 뭐가 더 있겠는가. 하지만 녀석의 생명줄은 범려가 쥐고 있었다.

톡톡톡!

리치에게 제일 중요한 라이프 베슬을 건들이자 갑자기 리치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생명력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끄윽, 그, 그만!"

"그 비밀의 문은 어디지?"

"저, 절대 말할 수 없다."

범려는 인연의 바늘로 계속 라이프 베슬을 건드렸다. 하지만 리치가 죽어도 입을 열지 않자 범려는 비상수단을 썼다.

"얘들아, 덮쳐!"

해골 병사들이 다시 리치를 땅바닥에 눕히자 범려가 뼛조각 찾기 스킬로 녀석의 뼈를 잡아당겼다. 생명력은 닳아지지 않지만 뼈를 잡아당기는 고통으로 인해 녀석은 고문을 당했다.

"어서 말해! 비밀의 문은 어디지!"

"마, 말할 수 없다."

범려는 화가 나서 라이프 베슬을 쥐고 있던 손에 무심코 힘을 줘버렸고, 리치의 라이프 베슬은 너무나 쉽게 깨져 버렸다.

퍼석!

"아차, 깨버렸네."

범려는 순간 실수를 하고 아쉬워했지만 이미 깨져 버린 라이프 베슬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크아아악!"

-3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범려는 리치를 잡고 던전을 클리어했지만 기분은 별로였다.

원하던 정보를 다 얻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달래고 있던 차에 리치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녀석의 시체 위로 마법진이 하나 나오더니 공간의 문을 여는 마법이 펼쳐졌다.

"헛! 이놈 겨우 돈만 떨어뜨리더니 죽으면서 입구를 열고 죽네."

-혼돈의 무덤을 발견하셨습니다.

-최초의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현실 시간으로 7일 동안 범려 님에게 귀속이 됩니다. 같은 파티를 할 시 파티의 리더가 범려 님일 경우 던전에 입장이 가능합니다.

-아이템을 떨어트리는 개수가 7일 동안 한 개 추가가 됩니다.

범려는 주르륵 뜨는 메시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던전 안의 던전인 혼돈의 던전. 왜 리치가 죽어도 입을 열지 않았는지 이해가 갔다.

자신의 라이프 베슬이 터지면 던전을 여는 열쇠가 된다는 것을 말할 리치는 없다.

"혼돈의 던전 주인이 알케이드라고 했지."

범려는 던전의 입구에 들어서려는 순간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던전의 평균 레벨이 87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입장은 되지만 81레벨이 조금 넘는 범려로서는 무척이나 위험한 던전인 것이다.

"제길! 레벨이 높잖아. 어쩔 수 없지, 이왕 이렇게 온 거."

범려는 남은 화살 수를 점검하고 해골들의 장비가 문제없는지도 확인했다. 한번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끝을 볼 생각인 것이다. 더군다나 감춰진 던전 퀘스트와 연관될 가능성이 보였다.

"화살은 충분하고 장비도 문제없으니 자, 들어간다."

범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는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시체로 뒤덮이고 그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는 6개의 동산이었다.

"크윽, 냄새 한번 고약하네."

어떻게 이런 던전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분명 존재하는 던전이었다.

범려는 시체들로 이루어진 산들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각 시체의 동산이 얼마나 큰지 동산마다 등산로처럼 뼈로 만들어진 길이 있었다. 그것도 친절하게 중간 보스로 가는 길이라고, 표지판까지 있었다.

"음, 동산이 6개. 보스를 포함해 이름 있는 녀석들이 6명이라는 건가."

그리고 시체로 만들어진 동산이라지만 언데드 몬스터들이 쫙 깔려 있었다. 무리 시스템으로 인해 몇 놈이나 따라올지는 모르지만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가장 가까운 동산부터 시작하자."

범려는 활을 약간 위로 겨냥해 화살을 날렸다.

쉬이익!

대충 150미터 바깥에 있는 녀석을 노리고 쐈는데 범려의 실력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곧바로 메시지가 떴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습니다.

"맞았네. 게임에서 이게 될 거라 생각은 못했는데."

먼 거리를 쏜 적은 궁수 퀘스트를 할 때 말고는 없어서 긴가민가한 상태로 화살을 날린 것이다.

공격을 당한 언데드 몬스터는 무리 시스템으로 묶여 있는 10명의 언데드 몬스터들과 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궁수들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쏴!"

해골 궁수들은 녀석들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즉각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언데드 몬스터들이 달려오면서 생명력이 7퍼센트 이상 빠져나간 후에 돌격병과 근위병이 돌진을 하며 전투가 벌어졌다.

"보병들은 뒤로 조금씩 물러나면서 싸워!"

한마디로 최대한 맞지 말고 뒤로 후퇴하면서 싸우라는 것이다. 범려의 명령대로 보병들은 위험한 공격이 날아오면 뒤로 물러서면서 방어를 했다.

던전 몬스터들이 강하고 레벨이 높아 최대한 생명력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전투를 치렀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느긋하게 공략을 해나갔다.

"연사! 저격!"

범려가 각 연노병과 저격수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그들은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킬들을 발휘하면서 무시무시한 데미지를 주었다. 하지만 화살은 기관총 쏘듯이 사라져 갔다.

"길을 위에 있는 녀석들은 다 처리했다."

조금 위험하기는 했지만 6개의 동산 중 한 개의 길을 뚫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머리 위에 '알케이드 제자 멜론'이라고 써져 있는 중간 보스가 서 있었다.

"멜론… 과일이냐."

멜론이라는 녀석은 연금술사인지 여러 가지 시약을 만지면서 실험을 하고 있었다. 범려는 녀석이 마법을 쓰지 않을까 걱정했다.

연금술을 하면 아무리 마법을 잘 못해도 3서클은 한다. 문제는 그 3서클도 범려의 해골들에게는 무섭다는 것이다.

"생명력 달리는 해골들아, 너희들 때문에 걱정이다."

범려는 어떻게 해서든 저놈을 확실하게 제거하려고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녀석을 가만 보니 옷차림은 갑옷이 아닌 가벼운 천 조각을 걸치고 있었고 머리에는 작은 모자조차 없다.

"방어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거군."

더군다나 몸뚱이는 살아 있는 인간의 몸이었다.

"녀석 눈깔에 화살을 꽂아주면 되겠다."

지금까지 늘 해오면서 경험으로 알아낸 방법을 쓸 생각이다. 어차피 이 게임은 머리통에 공격을 제대로 하기만 하면 치명타가 터지기 쉽다.

범려는 녀석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아서 편한 마음으로 시위를 당겨 뒤통수에 화살을 박아주었다.

"이놈! 감히 나를 공격하다니."

"식육점 주인이냐, 식칼 들고 다니게."

녀석이 식칼을 들고 어설픈 폼으로 달려오자 범려는 녀석의 눈깔을 단번에 맞혀 버렸다. 멜론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사이 해골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자 그들은 미친 듯이 녀석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이놈 이걸 받… 크악!"

멜론이 마법을 쓰려고 하자 또다시 화살로 눈을 맞혀 캐스팅을 끊어버렸다.

"이번에는 심장을 겨눠주지."

쉬이익, 퍽!

깔끔하게 화살이 들어가자 치명타가 터졌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멜론은 발악을 해보기도 전에 아이템을 토해내고 죽었다.

-강화의 비약 제조법

몸을 유연하면서도 부드럽게 강화시키는 비약

2시간 동안 체력과 힘을 300 증가시켜 준다.

재료:천사의 피, 죽은 자의 영혼, 오우거의 힘줄, 트롤의 살 조각

"비약 제조법이냐. 재성이가 연금술사니까 이걸 주면 되겠지."

범려는 추가로 아이템이 나온다고 해서 2개를 기대했는데, 겨우 하나만 나오는 것을 보니 이놈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이것 하나뿐인가 보다.

강화의 비약 제조법은 범려에게 별로 의미가 없다. 그러나 천사의 피와 죽은 자의 영혼은 범려라면 아르테미스에게 부탁해서 구하지만, 다른 이들은 쉽게 구할 수가 없다.

"다음 동산으로 가자."

범려는 바로 옆 동산으로 가서 언데드를 물리치며 그곳을 점령해나갔다. 그러다 두 번째 동산의 중간 보스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등신 마법사."

두 번째 시체 동산에 있는 중간 보스의 이름이었다. 참 마법사라는 이름과 맞지 않게 미련하게 생겼고, 얼굴은 추악했으며, 흔히 말하는 주먹을 부르는 면상이었다.

"이 마법사야, 아이템이나 토해내!"

등신 마법사가 마법을 시전하려고 하자 범려는 화살로 눈깔을 뚫어주는 센스를 발휘해 캐스팅을 두 번 끊어주었다.

크억!

치명타가 연이어 터지며 체력이 한없이 떨어지자 마법 몇 번 써보지도 못하고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무슨 아이템이 나왔을까!"

아이템이 뭐가 나왔을지 궁금해서 소리를 지르자 로브가 하나 나왔다.

-자연의 로브

이런 어두운 곳에서도 이 옷을 입고 있으면 상쾌함이 느껴진다.

옵션:지능+30, 체력+20, 정신력+24

모든 마법은 효과가 10% 증가한다.

"헛! 대박이다."

지금 떨어진 아이템은 잘 가지고 있다가 경매장에 팔라는 하늘의 계시가 내린 것이었다. 더군다나 모든 마법 효과가 10퍼센트 증가 옵션이다. 마법을 사용하는 모든 계열은 탐낼 만한 물건이다.

"흐흐흐, 이런 건 곱게 접어서 인벤토리에 넣고."

범려는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조심스럽게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흐흐흐, 다음 녀석을 잡으러 가볼까."

몬스터의 평균 레벨이 87이라 상당히 긴장을 했는데 중간 보스들은 다들 혼자였다. 범려의 얼굴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피어올랐다.

다른 언데드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잡았으며 철저한 생명력 관리를 했다.

"남은 보스들은 모두 4명. 약간 걱정이 되지만 일단 다른 녀석들을 잡다 보면 아이템을 알아서 토해내겠지."

범려는 정말 느긋하게 사냥을 했다. 위험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고, 안전제일 위주로 사냥을 하며 최종 보스를 제외한 다른 3명을 모두 잡았다.

거기서 나온 아이템은 이렇다.

-자유의 신발

언제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바람의 정령왕이 신발에 힘을 부여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거짓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옵션:상태 이상 마법 10% 저항

-어둠의 화살 주머니

화살을 담는 전용 화살 주머니다. 원거리 공격력을 16% 증가시켜 주며, 화살을 최대 30,000개 담을 수 있다.

-활 골무

활을 당길 때 손가락을 보호해주는 장갑이다. 원거리 공격 속도를 3% 상승시켜 준다.

다들 하나씩 아이템을 떨어뜨려 줬다. 혹시 아이템을 2개는 떨어트리는 녀석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중간 보스들은 없었다.

"아, 그래도 이 세 가지는 내가 써도 될 물건들이네."

범려는 바로 아이템을 착용하고 화살을 화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렇지 않아도 화살 주머니라는 아이템이 혹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찾아다녔지만 대부분 화살 주머니는 화살이 많이 들어가지도 않고, 공격력 증가 옵션도 없는 별 볼일 없는 물건이었다.

"그럼 마지막 보스를 잡으러 가볼까."

범려는 혹시나 있을 위험해 대비하기 위해 최종 보스가 있는 동산의 몬스터를 깡그리 쓸어버렸다.

"이번에는 마법사는 아닌 걸로 보이는데."

혼돈의 무덤 보스인 알케이드는 리치가 아니었다. 망자의 무덤 보스가 리치였기에 혹 리치가 아닐까 했지만, 그런 것과 거리가 먼 검을 들고 있는 전형적인 전사 타입이라고 해야 옳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마법을 쓸지도."

그동안 5개의 동산에서 알케이드 제자들을 보고 느낀 게 있다면, 제자들의 직업이 다양해서 아무리 겉모습이 전사라고 하지만 마법을 부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일단 저 번개처럼 생긴 검이 왠지 수상한데."

검이 번쩍거리는 걸 보니 절대 보통 검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자세히 보니 약간의 스파크가 튀었다.

"스파크가 튀네."

막상 공격을 하려니 고민이 되었다. 해골이 단 하나라도 죽는다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최소한 무슨 기술을 쓰는지만 알면 대처를 할 수 있겠는 데……."

하지만 범려는 이 던전의 최초 발견자. 절대로 알케이드의 기술을 알아낼 가능성은 없다.

"어차피 나의 해골들과 함께한다. 어렵겠지만 한번 해보자."

범려가 서서히 활시위를 당기자 다른 해골들도 그와 같이 활시위를 당겼다.

"발사!"

쉬익, 쉬이익!

화살들이 보스를 향해 날아가자 전투가 개시되었다. 범려는 일단 보스 혼자라고 해서 방심하지 않고 차분하게 녀석의 공격을 먼저 맞는 영광을 얻었다.

"크윽!"

온몸에 짜릿한 전류가 흐르면서 생명력이 주르륵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지만 한 대 맞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았다.

"짜릿한데."

알케이드의 공격이 치명타로 터져서 5분의 1이 생명력이 빠져나갔고 부가 효과로 감전 현상이 일어났다.

-감전 상태에 빠집니다. 1분 동안 이동속도와 공격 속도가 20% 감소합니다.

공격 속도 감소는 정말 치명적이었다. 궁수 전용 스킬도 없는 범려는 유일하게 치명타와 자신의 손 빠르기만 믿었는데, 공격 속도가 느려지면 사람 답답하게 만든다.

"조준은 편한테 속도가 떨어지니 미칠 노릇이군."

알케이드가 범려만 바라보고 첫 공격을 하는 바람에 일단 말을 타고 뒤로 도망쳤다. 감전 효과는 해골마에게도 영향을 미쳤지만 워낙 말이라는 동물의 이동속도가 좋아서 거리를 쉽게 벌렸다.

"이걸 두세 번 맞았다가는 해골들이 못 버틸 거야."

해골들의 체력은 자신에 비해 낮은 편이다. 서너 번 맞으면 바로 사망이고 감전이라도 걸린다면 도망도 못 칠 것이다.

"무슨 보스가 이런 놈이 다 있어."

알케이드가 갑자기 검을 들더니 공격 주문을 외우려고 하자 범려는 거침없이 녀석의 눈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크악-! 내 눈!"

녀석은 주문을 외우다가 고통스러움을 호소하며 마법을 중단시켰다. 바로 녀석의 눈을 또다시 겨냥했지만 이놈은 특이하게 두 번 당하지 않았다.

"이놈!"

"쳇! 화살을 잡아버렸잖아."

범려의 화살을 잡은 몬스터는 알케이드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일단 사람의 급소라고 판단되는 곳엔 모조리 화살을 날렸다.

"컥!"

급소를 전부 다 맞은 알케이드는 전신이 번개를 맞은 것처럼 움찔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범려를 향해 다가오는 걸음은 정말 무서웠다.

"날 봐라, 바보야! 클클클."

범려는 말을 타고 있기에 빙글빙글 돌며 알케이드를 도발했고, 그 효과가 있는지 그는 범려만 바라보았다.

해골들은 빙글빙글 도는 알케이드의 뒤를 공격하며 움직였지만 그는 여전히 범려를 쫓으며 다가갔다.

범려는 말을 타면서 처음으로 활을 뒤로 쏘는 방법을 익히고 있었다.

"이게 무슨 고구려 벽화 수렵도도 아닌데, 활을 뒤로 쏴야 하냐."

범려는 닿을 듯 말 듯 하면서 뛰어다녔다. 제일 중요한 건 아직도 그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달린다는 것이다.

"알케이드! 넘어져라!"

범려는 알케이드의 발등을 향해 화살을 쐈고, 그만의 정교한 활 실력으로 녀석의 한쪽 발에 화살이 제대로 꽂히며 일시적으로 걸음이 멈췄다.

"크윽!"

"이때다!"

범려는 곧장 반대쪽 발에 화살을 쏴버렸고, 그것도 명중하자 발이 묶인 알케이드는 검을 들어 마법을 쓰려고 했다. 그는 곧바로 눈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크악!"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은 체력이 거의 다 빠져나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얘들아, 제압해!"

해골들은 공격을 멈추고 우르르 달려들어 알케이드를 바닥에 눕히고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잡았다.

"후, 이제 이야기를 좀 해야지."

"크윽!"

"이봐, 한 가지 물어보려고 왔어. 공격한 거 미안해.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을 것 같아서."

"크르릉."

겉모습은 사람으로 보였는데 목소리는 개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눈을 자세히 보니 눈동자가 이미 죽은 사람처럼 풀려 있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인간처럼 본능만 남아 있어."

범려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르테미스가 준 영혼의 구슬을 가져다댔지만 생각과는 달리 영혼의 구슬이 녀석의 몸속으로 스며들지 않았다.

"이 사람이 아니야. 헛짚은 건가."

두근두근!

갑자기 영혼의 구슬이 심장처럼 두근거렸다. 반대로 알케이드는 그 영혼의 두근거림을 듣더니 겁을 먹고는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꽉 잡아!"

해골들은 작은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녀석을 움직이지 못하게 힘으로 눌러버렸다.

구슬은 점점 두근거리면서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보스가 있는 시체 동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동산이 흔들리더니 이상한 관 하나가 튀어나왔다.

"헉!"

툭 튀어 나온 관이 열리며 한 사람이 나오자 범려는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관에서 나온 사람은 알케이드였다.

"드디어 내 몸을 찾았다."

그가 관을 열고 나와서 하는 소리였다. 그럼 여기 해골들이 잡고 있는 알케이드는 누구라는 걸까.

"당신이 알케이드?"

"내가 알케이드다. 당신이 나를 되살려 준 건가?"

범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왠지 그가 당장이라도 공격해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다행이야. 영원히 이곳에서 갇혀 있을 뻔했는데, 고맙다."

"크크크, 알케이드 너를 영원히 가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쉽구나."

해골에게 억류당한 녀석이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 한 번 병사들이 누르려 했지만, 그는 무시무시한 힘으로 해골들을 뿌리치고 일어났다.

"으하하하! 이따위 해골들을 가지고 날 묶어두려고 하지 마라. 그리고 내가 진짜 알케이드다!"

"넌 가짜야! 내 제자들이 만약을 위해 만들어놓은 호문 크루스. 날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흑심을 품은 넌 날 공격하고 육신과 영혼을 따로 분리시켜 가둬놓았잖아!"

범려는 사건의 전말이 어떻게 됐는지 대충 알게 되었다. 결국 저놈을 잡아 죽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저 호문 크루스를 죽이면 되겠네요."

"당연하지!"

"그렇게 쉽게 안 될 것이다. 리커버리!"

알케이드를 닮은 호문 크루스는 마법을 쓰면서 범려가 어렵게 빼놓은 생명력을 단 한순간에 채워버렸다.

'이런 XX. 뭐야, 저놈. 아, 짜증나.'

범려는 일단 눈앞의 적을 어떻게 제압할지 고민이었다. 진짜 알케이드가 전투를 도와줄지 아니면 그냥 지켜보기만 할지 걱정이었다.

그중에서 범려가 제일 원하는 방식은 진짜 알케이드와 같이 호문 크루스 알케이드를 없애는 것이다.

"으윽!"

진짜 알케이드는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범려가 제일 싫어하는 반응이다.

"아직, 몸의 힘을 회복하지 못해서……."

'어련하시겠습니까.'

범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피가 완벽하게 차오른 녀석을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 난감했다. 호문 크루스 알케이드는 분명 지금까지 없던 기술도 사용하면서 전투를 할 텐데…….

그러던 순간 자신의 인벤토리에 있는 검이 머리에 스쳤다.

"벼락검."

-벼락검

생긴 것도 벼락처럼 생긴 검이다. 공격하면 굉장히 아플 것 같다.

공격력:500

옵션:체력+30

원, 근거리 공격 시 5% 확률로 하늘에서 데미지 200의 번개가 떨어진다(마법 방어력 무시).

자신이 사용하기보다는 팔아먹을 생각으로 가지고 있던 물건이었는데, 지금 상황이 별로 안 좋아서 부장의 환도를 풀고 대신 벼락검을 착용했다.

"그럼 2라운드를 시작해야지."

범려가 해골들에게 손짓을 하자 다들 모여들었고, 중요한 순간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해골들이 죽는 꼴을 볼 바에야 차라리 내가 죽는다."

어떻게 키운 것들인데. 이런 사지에 내몰 수가 없었다. 하지만 범려의 생각과 달리 해골 병사들은 비장한 각오로 그의 옆에 섰다.

"……."

한 번도 앞에서 전투를 치른 적이 없는 범려가 앞으로 나온 것이 해골들을 자극했고, 그들도 다 같이 죽자는 각오를 다지며 나선 것이었다.

"그래, 다 같이 죽을 각오로 하는 거다!"

"흐흐흐, 너희들은 이제 다 죽었어!"

호문 크루스 알케이드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높게 쳐들자 범려는 바로 녀석의 목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컥!"

곧 헛바람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리더니 호문 크루스는 자신의 목에 꽂힌 화살을 뽑아냈다.

"이따위 공격으로……."

그 뒤의 말은 잇지 못했다. 해골 병사들이 화살을 쏘며 공격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난 혼자가 아니거든."

범려 자신의 뒤엔 든든한 병사들이 있었다. 해골들은 범려의 지시가 없어도 자신들의 마나가 0이 되는 순간까지 스킬을 난사했다.

"이런 뼈다귀 녀석들이!"

우르릉, 쾅!

하늘에서 벼락이 치더니 호문 크루스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범려가 화살을 계속 쏘고 있는 사이에 하나가 떨어진 것이다.

"발동이 되기는 되는군."

이런 무기의 특징 중 하나가 발동 확률이 5퍼센트라고 하는데 정확히 5퍼센트 확률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체감적으로 느끼는 게 9퍼센트 정도다.

쾅! 쾅! 쾅!

한번 번개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멈출 생각을 않고 계속 이어졌다. 200이라는 데미지가 생각보다 작다고 느껴지지만 마법 방어력을 무시하는 벼락이 계속 떨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어라, 이거 장난이 아니네."

범려의 속사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보니 발동 확률이 속사 속도에 비례하여 증가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범려의 화살이 멈췄다. 가지고 있던 화살이 다 떨어진 것이다.

"이런, 망했다."

하지만 번개는 계속 떨어져 내렸다.

쾅! 쾅! 쾅! 쾅!

"…설마."

범려가 주변의 해골들을 둘러보자 그들이 공격하는 동안에도 번개가 떨어지고 있었다.

"하하, 이런 사기 같은 일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소환수 형태의 몬스터들은 이런 것에 적용이 안 되는 걸로 아는데 지금 이 순간은 적용이 되는 것이다.

"나중에 운영자한테 들키게 되면 알아서 패치되겠는데."

이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게임사의 잘못이다. 그 덕분에 호문 크루스의 체력은 1퍼센트씩 초 단위로 떨어져 갔다.

벼락이 떨어지는 속도가 점점 가중되더니, 이제는 몇 개씩 중첩되어 떨어져 체력이 빠지는 속도가 더욱 가속되었다.

"나도 놀고만 있을 수는 없지."

범려는 검을 잘 다루지 못하지만 벼락검을 뽑아들고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벼락은 계속 떨어지고, 그 줄기가 멈출 줄 모르는 상태가 되자 녀석이 누워버렸다.

"허무하네."

해골들이 얼마나 두들겼는지 시체 위에도 수차례 벼락이 떨어졌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죽을 각오로 덤볐는데 의외의 결과로 인해 녀석이 죽고 퀘스트 완료 메시지도 보게 되었다.

"아르테미스!"

범려는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뜨자 바로 아르테미스를 불렀다.

"무슨 일이신가요, 범려 님."

"영혼의 주인을 찾았어요."

"벌써 찾으셨네요. 전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아무런 힌트도 없어서 솔직히 난감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간 던전이 답이 되었다.

-속박(중급 0.000%)

해골 제작자에게는 병사들을 소유하고, 그들을 부릴 수 있게 만듭니다. 대신 제한된 숫자를 넘어서서 병사들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해골 병사 숫자 30/30

초급이었던 속박 스킬이 중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범려가 바라던 기병에 관한 내용은 뜨지 않았다.

"기병은 아직인가."

"범려 님, 뭘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세요?"

"아, 아니에요."

"아르테미스 님."

알케이드가 갑자기 무릎을 꿇으면서 고개를 숙이자 아르테미스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세요. 그동안 제가 부탁한 일을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닙니다, 아르테미스 님."

"부탁한 일?"

"범려 님은 모르고 계시는 일이죠. 이곳에 있는 시체들은 사악한 무리들이 만든 언데드입니다. 이 무덤은 사악한 힘을 가진 시체들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은 공간이지요."

아르테미스의 말은 이곳이 사악한 기운으로 물든 시체들이 가득한 곳이며, 알케이드의 제자들은 그 사악한 힘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고, 알케이드는 자신과 닮은 호문 크루스의 손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충 알 만한 스토리네."

"네? 알 만한 스토리라니요?"

"아, 혼잣말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아르테미스는 알케이드와 몇 마디를 더 나누더니 범려를 바라보며 물었다.

"범려 님, 알케이드 님을 다시 살려 주셔서 감사해요. 그 의미로 혹시 원하시는 소원이 있으세요?"

"소원이오?"

"네, 소원요."

"물론 있죠. 기병은 언제 등장하나요?"

아르테미스는 잠시 얼굴 표정이 이상했다.

'아직도 기병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겠어?'

라는 표정이었다.

"간단해요. 돌격병, 근위병, 저격수, 연노병을 그냥 말 위에 태우시면 전직해요."

"네?"

범려는 그 말을 듣고 쓰러지는 줄 알았다. 왜 해골들을 말 위에 태울 생각을 못했을까. 이런 단순한 방법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럼 다, 당장 가볼게요. 기, 기병을 만들어야 해서요."

"네, 잘 가세요, 범려 님."

범려는 구겨질 것 같은 인상을 억지로 피면서 말을 하자 음성이 떨려 왔다.

"내 인생에 여자들이라고는 전혀 도움 안 되는 것들뿐인가."

범려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로즈도 사냥할 때만 도움이 되고, 아르테미스는 오로지 퀘스트와 전직을 위해서만 도움이 된다. 그 외에는 전혀 별다른 답이 없다.

"너! 너! 너!"

범려는 던전을 나오자 해골들 다섯을 지목하더니 말 위에 오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눈부신 빛이 나오더니 메시지가 떴다.

-해골 기병

레벨:1

힘:23 민첩성:13 지능:14 정신력:11 체력:12

생명력:120 마나:80

공격력:80 방어력:80

마법 공격력:40 마법 방어력:40

-돌격:말을 타고 공격을 한다. 보병의 돌진과 같은 조건이지만 30% 추가 공격력을 가진다.

쿨 타임:10초, 마나 소비:20

-기마술:말을 조종해 두 손을 자유롭게 하고, 무기를 손쉽게 다루게 한다. 이동속도가 향상된다. [패시브]

-말발굽 공격:말발굽을 이용해서 상대를 걷어찬다. 자신의 공격력에 2배의 힘을 내어 공격하며, 성공할 경우 3초간 기절 상태와 10m 정도 뒤로 날아간다. 실패할 경우 자신이 1초간 혼란 상태에 들어간다.

쿨 타임:20초, 마나 소비:40

"으아-! 내가 미쳐-!"

이런 간단한 진리를 모르고 지금까지 고민했으니 범려는 자신이 정말 바보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해골 기병으로 인하여 병사의 제한이 1 증가합니다.

……

……

순식간에 5개의 메시지가 뜨면서 범려는 재빨리 스킬창에 있는 속박 스킬을 확인했다.

-속박(중급 0.005%)

해골 제작자에게는 병사들을 소유하고, 그들을 부릴 수 있게 만듭니다. 대신 제한된 숫자를 넘어서서 병사들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해골 병사 숫자 30/35

기병 5/???

"헉! 제한 숫자가 늘어났다."

기병의 제한 숫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도 일정 수준의 숫자에 다다르게 되면 정지를 할 것이다.

"아싸! 병사의 숫자가 늘었어-!"

병사의 숫자가 늘었다는 것은 던전을 더욱더 편리하게 클리어할 수 있다는 소리다. 동시에 그만큼 키워야 하는 고통도 뒤따른다.

"당장 무덤으로 가자! 숫자가 늘어났다!"

범려는 서둘러 마을로 달려가 기병들이 사용 가능한 무기를 장비해주고, 혹시 몰라서 마갑도 씌우려고 했지만 경(輕)기병으로 분류되어 마갑은 씌울 수가 없었다.

"하하하, 병사들을 만들자-!"

범려는 무덤에서 기쁜 마음으로 삽질을 하고는 다시 해골 병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병사의 숫자가 5가 늘어나면 원거리 계열과 근접 계열이 늘어난다.

범려는 일단 사냥을 중단한 후 해골 병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마나를 조금 채우고 바로 해골마 한 마리를 만들고 나서 사냥을 시작했다.

"일반 기병이라서 방패와 검만 들고 다니네."

돌격병이나 근위병같이 다른 무기를 들지 않고 기본적인 검과 방패를 들었다.

기병들의 레벨이 아직은 낮아서 후방에서 무조건 대기시키고 일정 수준의 레벨이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점점 사람들의 눈길이 별로 안 좋아."

해골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자꾸 해골 병사들과 자신을 번갈아 보면서 가는 눈길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저 사람 네크로맨서 맞아?"

"아닌 것 같아. 네크로맨서들도 저렇게 많은 언데드 병사를 끌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어."

누군가 네크로맨서라는 직업을 봤는지 이야기했지만 일단 범려가 고레벨 유저라고 판단하는 모양이었다.

"사냥터를 바꿀 때가 됐어."

범려는 다른 유저들의 눈길이 거슬렸다. 자꾸 자신의 뒤에서 쑥덕거리는 것이 사람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다른 곳으로 가자!"

범려의 명령이 떨어지자 해골 보병들은 해골마의 갈비뼈 안으로 모두 들어갔다.

"출발."

갈 때는 이렇게 숫자를 줄어서 가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덜 받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해골 기병들이 말 타고 가는 것 자체가 신기한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