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다시 만난 악연
"돌격!"
범려는 유저들이 거의 없는 사냥터만 전전하면서 그 일대를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특히 말로 계속 이동하며 사냥을 하니 몬스터가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간혹 유저들이 와서 사냥을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없는 대지를 보게 된다.
"여기 누가 쓸고 가버렸네."
대부분이 이런 반응이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안 간다. 자신도 몬스터를 잡으러 왔지만 몬스터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게 된다.
"아무것도 없잖아."
유저들은 몬스터가 없으니 몬스터를 찾아 사냥할 만한 장소를 찾게 되지만 곧 포기하고 만다.
"몬스터가 안 보여."
보이지는 않지만 들려오는 소리가 하나 있다. 멀리서 말 달리는 소리가 약간씩 들려오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소리를 따라가 보면 이미 그 소리의 주인공은 사라진 뒤다.
"이거 뭐지. 몹 몰이인가?"
『판게아 월드』는 몹 몰이가 쉽지 않다. 일단 무리 단위의 몬스터를 몰이 사냥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범려는 지금 몹을 몰아서 사냥하지 않았다. 그냥 몬스터를 쫓아다니기는 했지만 몰이사냥은 아니었다.
"음, 이것들이 다 어디 간 거지?"
유저들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이곳은 몬스터가 없다는 것.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넌 계속 몬스터를 끌어와!"
범려는 한쪽 무리를 잡으면서 바로 다음 무리를 끌어들여 사냥을 했다. 동시에 두 무리를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범려는 양쪽의 전투를 관리하면서 이리저리 공격을 하고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보면서 흐뭇해했다.
쫘라라락!
범려 자신이 목표한 대상이 아니더라도 해골들 때문에 벼락이 줄줄이 떨어지고 있었다. 분명 나중에 이것에 대한 버그 패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다음!"
정말 검 하나 때문에 이렇게 재미를 보기는 드문 일이다. 해골들이 몬스터를 두들길 때마다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서 폭렙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이동!"
범려는 사냥하는 도중에 해골들이 일정 레벨이 되면 서슴없이 전직을 진행했다. 해골 기병들의 숫자를 늘려 병사들의 제한을 늘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무덤으로 가자!"
다시 해골마를 만들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하지만 말을 타고 사냥터를 이동하는 속도는 다른 유저들을 뛰어넘었다.
무덤에 도착한 범려는 해골마를 제작하고 전직을 시키면 다른 해골 병사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만든 해골 기병은 10명. 다들 번쩍이는 무기와 방어구로 무장을 시켜 놔서 범려의 마음이 뿌듯했다.
"아, 이상하게 들어오는 경험치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데……."
미묘하게 범려의 경험치가 오르지 않고 있었다. 분명 해골들의 레벨은 잘 오르는 반면 범려는 거기에 맞춰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뭐, 50퍼센트의 경험치를 나눠먹기는 하지만 왜 전보다 적게 먹는 걸로 느껴지지?"
이상함을 느꼈지만 전과 지금과의 경험치 차이를 쉽사리 느끼지 못하기에 생각을 접고는 다시 해골들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해골 병사들 숫자는 총 50. 그중 보병이 40, 기병이 10. 괜찮네."
기병의 능력으로 하나를 만들 때마다 총 병사들의 제한 숫자가 1씩 늘어난다. 좋기는 하지만 동시에 범려는 사냥보다 병사를 만드는 시간이 많이 할애되고 있었다.
"아, 피곤하네. 이제 슬슬 잠이나 자볼까. 다들 숨어라."
범려가 손짓하자 병사들은 땅속으로 스멀스멀 들어가더니 해골마조차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로그아웃!"
범려의 몸이 슬며시 사라지면서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걸 하나 보게 되었다.
"공. 구. 장-!"
맨 처음 자신을 죽인 원수인 공구장. 그놈 덕분에 해골 제작자가 됐지만 지금 로그아웃을 하는 도중 취소가 불가능했다.
범려가 피곤해서 로그아웃을 했지만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 공구장을 보자 잠이 확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놈이다-!"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외쳤다. 일단 마음을 침착하게 진정시키기 위해 찬물을 한 잔 마시고, 심호흡을 크게 했다.
"놈을 찾았다."
희성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기며 다시 게임에 접속했다
하지만 공구장은 없었다. 아마도 어디 다른 길을 가는 중에 우연히 무덤 근처를 지나가게 된 것이라.
"놈이 무덤에서 서쪽으로 이동했다면 제일 유력한 곳은 천사 도시."
순백의 크라운 지역에서 제일 큰 도시는 천사 도시다. 그런 곳에 살인자가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작은 마을이라면 몰라도 대도시의 경우 살인자는 경비병들에게 죽는 게 아니라 고레벨 유저들에게 죽는다.
살인자를 죽이는 이유는 죽이면 아이템 절반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천사의 도시로 간다면 고레벨 던전을 생각할 수 있겠어."
범려는 공구장 녀석을 로그아웃 전에 잠깐 봐서 그의 상태가 살인자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답은 하나, 뭐가 되었건 녀석은 범려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원한은 10배로 갚는다. 딱 10번만 죽어라."
자신이 한 번 죽임을 당했으니 범려는 녀석을 딱 10번만 죽일 생각이다.
일단 녀석의 행선지가 거의 확정이 됐으나 녀석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피로를 풀어야 했다. 언제 다시 녀석이 나타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최대한 숙면이 우선이다. 복수를 하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범려는 다시 로그아웃을 하더니 바로 잠을 잤다. 즐거운 복수를 위한 꿈을 꾸며.
아침이 밝아오자 충분한 숙면을 취한 희성은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게임에 접속했다. 이제부터 공구장을 잡기 위한 추적을 시작할 것이다.
"나와라."
자신의 말에 해골 병사들이 땅속에서 일어나자 범려는 그들을 데리고 천사의 도시로 움직였다. 그리고 도시에 가까이 오자 다시 해골들을 숨긴 후 홀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맛있는 불고기, 한 입만 먹어봐! 입에서 살살 녹아!"
"레어 방어구 팝니다!"
도시 안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물건을 팔거나 한다. 그러나 대도시 안에서는 노점상은 불법이다. 경비병들이 순찰을 하다 노점상을 발견하면 감옥으로 끌고 간다.
"도시 안에서 노점상은 불법이다!"
"아니, 그냥 방어구 하나만 팔면 되는데……."
유저 하나가 노점상을 열다가 경비병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공구장, 넌 지금 어디 있는 거냐."
범려는 후드까지 쓰고는 도시를 배회했지만 공구장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아직 살인자 상태인 건가. 도시에는 없다."
살인자라고 해도 경비병이 공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유저들이다. 유저들이 살인자를 보면 죽이려고 달려들기에 무섭다.
"도시 바깥을 뒤져 보자."
범려는 공구장이 마을 안에 없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천사의 도시 바깥으로 나와서 녀석이 있는지 없는지 찾기 위해 돌아다녔고, 해골들을 끌고 다니면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에 적당한 곳에 해골들을 숨기고 왔다.
"해골들 없이 돌아다니기는 처음이네."
해골들이 언제나 자신의 뒤를 따라다녀서 뭔가 그들을 이끌고 간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있을 때는 몰랐으나 막상 없으니 등 뒤가 허전했다.
"공구장, 어디 있나. 공구장 널 잡으러 내가 왔다."
범려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공구장을 찾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흔적을 찾기는커녕 주변 곳곳에서 용병을 구하는 사람들을 먼저 볼 수 있었다.
"아레나 길드에서 용병을 구합니다. 사례는 해드립니다. 물약도 지원해드려요."
천사의 도시 동쪽 성문 바깥에서 외치는 소리였다.
범려는 용병을 구한다는 소식보다는 공구장을 찾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는 동쪽을 지나 천사의 도시 서쪽 성문 바깥에 와서는 악바리 길드라는 곳에서 용병들을 모집하고 있는 곳까지 왔다.
"악바리 길드에서 용병들을 모집합니다. 장난은 사절입니다."
두 길드에서 용병을 모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 바로 공성전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각 도시마다 4개의 성이 존재한다. 공성전은 매주 화, 수, 목, 금으로 4일간 치러지며, 첫 시작은 동쪽에 있는 요새로부터 시작해서 남쪽 요새로 끝났다.
오늘은 수요일. 북쪽에 있는 지역의 성을 공략하는 날짜가 된다. 공격자는 악바리 길드, 방어자는 아레나 길드다.
"악바리 길드에서 용병을 하고 싶은데요."
범려는 운 좋게 공구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악바리 길드에 용병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는 머리가 붉은색이 아니었다. 즉, 살인자가 아니라는 소리다.
범려에게는 공구장이 살인자이건 말건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녀석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흐흐흐, 찾았다. 이놈 용병으로 지원할 모양이구나."
용병으로 고용이 되면 일단 계약이라는 것이 성립되는데, 이건 용병들을 구속하는 완벽한 조건의 내용이다.
용병으로 고용되어 의뢰했던 일이 끝나면 상대 길드에서 사례를 해준다. 그리고 계약으로 인해 고용주를 배신하지는 못한다. 배신은 바로 공성전에서 살인자가 되어 그 자리에서 100퍼센트 자신의 모든 아이템과 돈을 다 떨어뜨린다. 그럼 남 좋은 일을 시키게 되니 배신은 할 수가 없다.
반대로 길드에서 용병을 고용하고 일이 끝난 뒤 돈을 주지 않으면 길드 전체에 신용 불량 상태가 되고, 모든 NPC들에게 물건을 사거나 파는 짓을 하지 못하며, 마을 가까이 오게 되면 경비병들이 공격을 하게 된다. 용병들 배신과는 다르지만 좋지 않은 낙인이 찍히게 된다.
"용병이면 난 아레나 길드에서 용병으로 가입을 해야 하지만……."
범려의 레벨이 공구장보다 낮고, 자신에게는 해골들이 있지만 가면 작살난다. 공성전이 시작되면 해골들을 보호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쳇, 공성전이 끝날 때까지 네놈의 목숨은 연장되는구나."
공구장을 죽일 계획이 약간 늦춰지기는 했지만 상관없다. 그만큼 준비의 시간이 있는 것이다.
범려는 공구장을 위해서 작은 준비를 하려고 했다. 그것도 철저하게 말이다.
"얘들아, 나와라. 할 일이 생겼다."
해골들을 부르자 모두 다 일어나면서 범려의 앞에 정렬했다.
"다들 내 말 잘 들어라……."
범려는 해골들에게 어디서 뭘 해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해낸 계획을 종이에 적으면서 확인 작업도 했다.
만에 하나 녀석이 다른 길로 빠지거나 다른 일로 인해서 로그아웃을 할 경우 등의 차선책도 준비를 해놓았다.
"잘 알았지. 일단 녀석을 잡으려면 그냥 잡는 건 불가능하다. 아직은 버그 상태로 되어 있지만 이 검에 발동이 터지기만을 기도해야 한다."
범려는 벼락검을 해골들에게 보여 주며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이 검의 발동이다.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터진다.
"어차피 도박이다. 난 녀석보다 레벨이 낮다. 녀석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이대로 녀석을 놓치기는 더 싫지."
범려가 믿는 건 이 검 하나뿐이었다. 해골들이 붙어서 싸운다면 이길 수도 있지만 반대로 녀석들이 깨질 수도 있다. 그러니 조심스럽게 계획을 짜야 한다.
공성전을 알리는 소리가 천사의 도시 전체에 들려왔다. 그리고 도시 북쪽의 요새 주변에 이상한 막이 쳐지더니 일반 필드가 공성 필드로 변경되었다.
"공성전이 이렇게 시작이 되는구나."
공성전이 시작되면 다른 유저들이 들어오는 것을 제한하는 필드가 형성된다. 그러니 저 안에서 치고받으며 싸워도 그 안에서일 뿐 바깥까지 그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
"돌격-!"
"녀석들을 막아라-!"
그래도 관객들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다른 유저들이 멀리서나마 그 안의 전투 장면을 구경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공구장도 저 안에서 싸우겠군."
범려는 멀리서 공성전을 지켜보면서도 공구장이 어디 있는지 눈을 굴리며 찾고 있었다. 녀석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기 위한 방법이었다.
"저기 있다."
범려는 어렵지 않게 공구장이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형적인 전사의 기질을 가진 공구장은 방패도 없이 양손 검을 들면서 싸우고 있었다.
"검기 발출!"
공구장이 검을 내려칠 때마다 나오는 검기는 앞으로 쭉 뻗어나가는 방법이라 그 뒤에 있는 녀석들까지 공격을 하면서 피해를 입혔다.
"나도 저 기술에 당했지……."
범려 역시 그 기술을 당해 한 번에 죽고 말았다. 하지만 절대로 녀석을 잊지 않았고 이제야 복수를 할 기회가 왔다.
"검풍(劍風)!"
다른 기술이 연이어 터지면서 녀석의 기술이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언제 그 기술을 쓰는지 유심히 확인했고, 종이를 하나 들고 그것들을 적어나갔으며, 속으로 초를 세며 시간을 재었다.
'하나, 둘, 셋…….'
비록 정확한 시간은 추측할 수 없지만 ±3초 정도로 잡고 예측을 했다.
공구장의 정보를 하나 둘 수집하다 보니 어느새 공성전의 상황은 공격인 악바리 길드에게 승리가 점쳐지고 있었다.
"성문이 열렸다!"
성문이 열리자 전투는 난전이 되었고, 아무리 수비 측 아레나 길드가 노력을 한다고 하지만 성문이 열린 후 더 이상의 뒤가 없었다.
"저지선을 펼쳐!"
범려는 그걸 보고 해골들을 생각했다. 공성전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땅속으로 몸을 숨겼지만 해골들이라면 자신의 명령이 없이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저쪽은 저지선이 펼쳐져 있지만 사람들이 동요를 하고 있었다. 저지선은 얼마 가지 않을 것이다.
"안에서는 어떻게 싸우는지 보고 싶은데……."
성문과 성벽의 전투는 그냥 잘 보였지만, 성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가면서 그 안을 볼 수가 없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공성전의 진짜는 성안에서 펼쳐지는 전투다.
"더 이상은 무리인가."
범려는 더 이상 공성 전투를 볼 수 없다고 여겼다. 그리고 성안에서의 전투가 어떤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성 위에 검은 구름이 생성되어 번개가 내려치는 것은 볼 수 있었다.
"저거 봐! 썬더스톰이야!"
광역 마법인 썬더스톰. 저 마법서를 얻으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저기 봐! 블리자드야!"
같은 광역 마법 블리자드. 하늘에서 끊임없이 얼음 덩어리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성안에서 싸우는 전투가 얼마나 치열한지 예측이 가능했다.
"내 해골들은 들어가면 죽는다."
일단 해골들은 기본적인 체력이 낮다. 지금은 병사들이 일정 단계 이상 전직을 해서 동급 유저들과 기본적인 능력치는 별반 차이가 없지만, 유저들은 아이템으로 능력치를 올린다. 그렇게 되니 해골들이 상대적으로 약해 보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해골들의 아이템을 바꿀 수 있지만 언제 그걸 다 바꾸랴. 그냥 편하게 레벨 업시키고 만다.
"공성전에 참여 안 하기를 잘했지."
범려는 전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격자 길드인 악바리 길드가 드디어 성을 점령하면서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와! 이겼다!"
전투가 끝나자 성 주변에 펼쳐졌던 차단막이 사라지고, 무너지거나 망가졌던 성벽의 모습은 한순간에 원상 복구가 되었다.
"이제 공구장을 찾으러 가야겠지."
혹시 공구장이 어디 다른 곳으로 가버릴지 몰라서 악바리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은근슬쩍 다가가 그가 있는지 확인해봤다.
"자, 용병들은 이쪽으로 와서 사례금을 받으세요!"
용병들은 승리를 해서 원래 금액의 10퍼센트 인상된 가격을 받게 되었다. 즉, 이겼으니 보너스를 받는 것이다.
그 용병들이 돈을 받을 때 공구장도 그 안에 끼어 있었다.
범려는 공구장을 유심히 살피면서 녀석이 돈을 받고서 어디로 움직이는지 뒤따라갔다.
공구장은 도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조용히 로그아웃을 해버렸다. 범려는 녀석이 인근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쳇, 로그아웃을 하다니."
범려는 별수 없다는 듯이 자신도 로그아웃을 했다.
"오늘부터 한 시간씩 끊어서 잔다."
철저하게 공구장을 추적하기 위해서 끊어 자기라는 비기를 할 생각으로 바로 알람을 맞췄다. 즉, 8시간을 자더라도 나눠서 자는 방법을 쓴 것이다.
"이 방법은 안 쓰려고 했지만."
희성은 이런 방법은 최후의 보루로 사용하려 했지만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에도 전력을 다한다. 더군다나 상대는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유저.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지만 상대가 무슨 기술을 쓰는지 여부에 따라서 레벨의 정도가 결정된다.
"녀석의 추정 레벨은 110±7 정도. 난 87. 차이가 너무 나는데."
해골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레벨 110이 넘는 유저에게는 별로 힘든 일도 아니다. 결국 자신이 들고 있는 벼락검의 번개가 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대응 방법이 미약하다.
"뭐가 됐건 녀석은 나한테 죽는다."
희성은 한 시간 동안 짧은 숙면을 취한 뒤 게임에 접속해 궁을 다루는 연습을 했다. 만일을 위해서라도 단 한 발이라도 빗맞힌다면 죽는 건 자신이 된다.
"죽어라 연습뿐이군."
더군다나 해골마를 타고 연습을 해야 했다. 도망치는 연습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다그닥다그닥!
범려는 말을 타면서도 활을 쏘고, 전후좌우 모든 방면에서 활을 겨누며 쏘는 연습을 시작했다.
실제로 말을 타며 활을 쏜 적은 없지만 여기서만큼은 연습이 가능했다.
쉬이이익! 툭!
흔들리는 말 위에서는 정말 힘든 사격 방식이었다. 그래도 범려는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물며 궁을 들었다.
"반드시 녀석을 잡는다."
눈빛에서 독기가 흘러나오며 끊임없이 연습을 했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명중이 되는 그 순간, 아니 그 원하는 곳이 구멍이 나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말이다.
범려는 또 자신이 궁을 다루고 있을 때 공구장이 로그인을 했을 경우를 생각해서 해골 하나를 몰래 그 근처에 무장 해제를 시킨 뒤, 사람들 이목이 없는 곳에 몰래 숨어서 지켜볼 것을 지시했다.
'넌 이곳에서 공구장이라는 녀석을 보게 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에게 달려와라.'
해골 하나가 몰래 숨어서 지켜보는 동안 범려는 할 짓을 다 하고 있었다.
먼저 해골들에게 철저하게 공구장과 전투 대응할 방법을 연습시켰다. 만약 한 대라도 잘못 맞는 순간 해골 병사는 박살날 것이다.
"무턱대고 붙어서 싸우지 마라. 안 때려도 좋으니 녀석의 시선을 분산시켜라."
즉, 근접해서 싸우는 해골들은 철저한 연계 공격과 차륜전을 통한 전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돌격병은 방패로 온몸을 방어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근위병은 돌격병에게 녀석이 붙으면 찔러라. 약간의 데미지를 줘도 상관없다. 단, 녀석에게 죽지 마라."
범려는 단 하나의 해골도 아쉽고 또 아쉬웠다. 자신이 어떻게 키운 해골인데 죽게 내버려 둔단 말인가.
달그락달그락.
문득 뼈가 심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자 범려는 뒤를 돌아봤다. 정찰을 위해 심어놓았던 해골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그 모습에 범려는 미소를 지었다.
"녀석이 왔다."
드디어 계획대로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범려는 이 싸움에서 자신이 이길지도, 혹은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앞에 쓰러트려야 할 대상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즐거웠다.
범려는 해골 병사들을 해골마 갈비뼈 안에 태우고 말을 달렸다. 곧 멀리서 공구장이 나타나자 빙그르 돌아 녀석이 사냥터로 가는 것을 보았다.
"다행이야. 숲 속으로 들어갔군."
범려가 가장 원하는 곳이다. 숲이라고 해서 기병들이 돌아다닐 만한 곳이 못 되는 것은 아니다. 공구장이 들어간 숲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지 않은 곳이라. 기병 10명 정도는 여유 있게 움직일 만한 공간이 많다.
"나와라. 시작하자."
해골 병사 일부를 한쪽에 내려놓고 또 바로 다른 곳에도 조금씩 내려놓아 녀석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떨어트려 놓았다.
범려는 조심스럽게 녀석을 포위하면서 움직였다. 그리고 녀석이 사냥을 하고 있는 틈을 노렸다.
"이거 운이 좋은데. 시작부터 트롤이라니."
공구장은 트롤을 보자 기쁜지 마음껏 검을 휘두르며 사냥을 했다. 그때 녀석의 뒤에서 말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그닥다그닥!
"크악!"
공구장은 등에서 화끈하게 밀려오는 통증에 체력이 빠져나감을 눈으로 확인했다.
"이곳에 언데드 몬스터가……."
-정당방위가 성립되었습니다.
범려의 해골 기병이 공격해서 바로 녀석에게 정당방위가 성립되었지만 공구장은 정당방위라는 메시지를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정당방위라니……."
그는 일단 유저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트롤을 먼저 잡고서 저기 보이는 해골 기병을 잡기로 했다.
"일단 트롤이 먼저다."
하지만 공구장은 큰 실수를 하고 있었다. 해골 기병들은 미끼에 불과하다.
다그닥다그닥!
또다시 말 달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며 해골 기병들은 공구장을 향해 공격했고, 그는 눈앞에 보이는 트롤을 먼저 쓰러트린 후 해골 기병을 향해 눈을 돌렸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 근처에 소환수를 풀어놓은 모양인데 네놈의 소환수는 나한테 죽었어!"
공구장은 해골 기병을 잡으려고 검을 휘둘렀지만 기병들은 쉽게 맞아주지 않았다. 말을 타고 움직이기에 재빠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쉬이익! 쉬이익!
기병들이 시선을 끄는 동안 멀리서 화살이 날아 들어오더니 정확히 공구장의 몸에 꽂히며 정신을 어지럽혔다.
"누구냐! 모습을 보여라!"
화살이 한두 개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서 공구장은 공성전에서 싸웠던 아레나 길드에서 자신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파견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숲 사이에서 기병들이 시야를 빼앗고, 멀리서는 화살들이 날아오니 그는 미칠 노릇이었다. 공격력을 얼마 안 되지만 생명력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공구장, 넌 여기서 죽는다."
범려는 멀리서 활을 당기더니 약간 하늘을 향해 쏘자 화살은 긴 포물선을 그리면서 공구장의 머리에 꽂혔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습니다.
"큭!"
공구장은 방금 들어온 데미지를 보고 놀랐다. 방금 전 공격과는 다르게 생명력을 많이 빼앗아가는 것이었다.
우르르릉, 쾅! 쾅!
"크윽, 마법!"
하늘에서 200짜리 피해를 주는 벼락이 떨어졌다. 해골 병사들은 벼락이 떨어지는 신호에 맞춰서 공구장을 향해 달려들어 공격했다.
"검기 발출!"
이대로 죽을 수 없어서 검기를 쏘았지만 해골들은 연습한 대로 기술이 날아오자 좌우로 갈라지며 피했다.
"헛!"
유저들도 이 기술은 쉽게 피하지 못하는데, 소환수로 판단되는 것들이 피한 것이다.
"일진 한번 사납구나."
몇 명이 작정을 하고 자신을 잡으려고 나온 거라 판단한 공구장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그는 텔레포트 스크롤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빨리 도망쳐야 한다."
다그닥다그닥! 쉬이익!
범려는 공구장을 놓칠세라 말을 달리면서 화살을 쏴댔다. 혹시라도 자신의 정체를 알아낼지 모르기에 멀리서 나무들 사이사이를 이용해 화살을 날렸지만 약간 방해가 되었다.
'나무들이 귀찮네.'
연습 때는 몰랐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목표물을 맞히려니 나무들이 방해되었다. 하지만 범려의 활 실력은 이런 것쯤 가볍게 무시해주었다.
쾅! 쾅!
번개가 떨어지며 공격을 받자 공구장은 마법사들이 멀리서 공격을 해오는 줄 알았다. 꿈에도 범려가 들고 있는 검에서 나오는 벼락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젠장! 마법사 놈들."
벼락의 위력이 효과가 나오기 시작하자 공구장의 생명력이 이미 바닥을 기고 있었다.
"저격!"
범려가 외치자 저격수들이 갑자기 달리다가 멈춰서 화살을 날렸다.
"컥!"
공구장은 순식간에 빠져나간 생명력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동시에 범려의 머리색은 붉게 변하고 말았다.
"나머지 아홉 번 남았다."
공구장은 이 뒤에 접속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팀으로 자신을 작정하고 잡으려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 접속을 하지 않는 걸 보면 녀석은 로그아웃을 했어."
『판게아 월드』에서 살인자 효과를 지우기 위해서는 '죽인 사람 수×100'에 해당하는 몬스터 무리를 잡거나 아니면 간단하게 10번 죽어야 한다.
"공구장이 다시 접속하기 전에 살인자 딱지를 지워야 한다. 움직여, 이것들아!"
해골들은 바로 사냥에 돌입했다. 죽어라 몬스터 무리를 100번 잡으려 눈에 불을 켜고 사냥했고, 한 번에 세 무리씩 사냥했다.
"흐흐흐, 기다려라, 공구장. 접속하면 또 죽여주마."
정확히 공구장은 12시간 후에 재접속을 했고, 범려는 그때를 기다려 그가 움직이는 곳으로 몰래 따라갔다.
"이번에는 어떻게 죽여줄까."
범려는 이번에 상점에서 망원경을 샀다. 멀리서 공구장을 확실하게 보고 죽이겠다는 의지였다.
"이번에는 활만 쏜다. 기병들은 궁수들을 빠르게 운송해라."
해골 기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궁수들을 말 갈비뼈 안에 태우고 움직였다.
"조준 발사."
슈슈우욱! 우르릉, 콰쾅!
순식간에 화살들이 날아들면서 공구장을 공격하자 이번에는 바로 벼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번개가 떨어진다. 멈추지 말고 공격해!"
공구장은 또 자신이 목표가 됐다는 생각에 텔레포트 스크롤을 들고 찢으려 했지만 손에 쥐고 찢지 못했다.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눈을 공격당했습니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하여 3초간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공구장에게는 그 3초가 지옥의 시간이었다. 하늘에서는 벼락이 계속 떨어지더니 공구장의 체력을 다 갉아먹어버렸다.
"이놈들……."
죽어가면서 공구장은 이를 갈았다. 누군지 확실하게 밝혀내 복수를 하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이제 여덟 번이다."
공구장은 분노한 표정으로 곧바로 부활을 했다. 물론 10골드라는 돈을 지불하고 말이다. 그리고는 몇 가지 물건을 사가지고 와서는 다시 그 장소로 왔다.
"흐흐흐, 죽으려고 왔구나."
범려는 사악하게 웃으면서 망원경으로 공구장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망원경이 없는지 고개만 두리번거렸다.
망원경은 사람들이 거의 쓰지 않는 상점용 아이템이다. 가격은 10골드. 옵션이라고 해봤자 그냥 멀리 있는 상대를 가까이 본다는 능력이 전부다.
"망원경도 없구나. 그럼 넌 날 죽어도 보지 못해. 작전대로 매복해 있겠지?"
해골 기병 하나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대답을 대신했다.
"좋아. 일단 함정에 걸려들게 하기 위해서는 미끼가 필요하지. 갔다 와라."
해골 기병은 바로 달려가 공구장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넌 그 해골!"
공구장은 눈앞에 보이는 해골 기병을 보고 바로 검을 뽑아들었다.
미끼 역할을 하는 해골 기병은 공구장의 싸움에 응해주면서 뒤로 살짝 도망치며 싸웠다. 역시 스킬을 쓰려고 하면 기수를 돌려 피하고, 들고 있는 방패로 공격을 막는 것도 착실하게 해나갔다.
"뼈다귀 녀석!"
해골 기병은 공구장이 흥분을 했다는 생각에 급하게 말을 돌렸다. 그리고 그가 쫓아올 수 있도록 느리게 움직였다.
"검기 발출!"
갑자기 검기가 뿜어져 나오자 해골 기병은 즉각 옆으로 피했다. 저걸 맞는다면 체력이 거의 남아나지 않는다.
"거기 서!"
광분하면서 쫓아오던 공구장은 해골들이 땅속에 매복해 있는 지점으로 오고 있었다.
"지금이다!"
해골 병사들이 갑자기 땅 위에서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공구장을 포위했다.
"헛!"
돌격병은 방패를 들고 바로 녀석에게 부딪쳤다. 돌격병들이 전후좌우 방패로 공구장을 묶자 놈의 머리 위로 한손용 양날 도끼가 날아들었다.
퍽! 퍽! 퍽!
갑자기 뒤에 있던 돌격병이 빠지면서 공구장을 넘어뜨렸고, 근위병들은 넘어진 공구장의 팔과 다리를 창으로 찔러 땅에 고정시켰다. 그 뒤는 해골들에 의해서 난도질당하고, 수십 개의 벼락에 맞아 죽었다.
"일곱 번 남았다."
공구장은 물약을 먹을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당한 것이다.
범려의 머리색이 더욱더 붉게 변하기는 했지만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공구장을 본 순간부터 살인자가 되기로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공구장은 혼자서 오지 않았다. 그동안 인맥을 좀 쌓고 살아서 그런지 5명 정도가 같이 왔다.
"쳇!"
5명이면 범려는 공격을 할 수가 없다. 결국 이번에는 범려가 물러나야 했다.
"머리색이나 원래대로 돌려놔야겠네."
범려는 다른 곳으로 이동해 사냥에 집중했고, 해골들의 힘으로 살인자 표시는 몇 시간의 노가다 사냥 끝에 풀어버렸다.
"안심하지 마라, 공구장. 또 죽여줄 테니."
범려는 녀석이 혼자 있는 시간을 무조건 기다렸다. 역시 잠도 끊어서 자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공구장을 유심히 지켜본 지도 벌써 5일이 넘어가고, 범려는 눈 밑에 약간의 다크 서클이 생겼지만 절대로 공구장을 놓치지 않았다.
"좋아. 드디어 혼자가 됐구나."
장장 5일간 공구장 녀석은 일행과 함께했었다. 범려는 녀석이 혼자가 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내가 그만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남들이 아무도 안 쓰는 망원경을 가지고 멀리 있는 공구장을 확인한 그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많이 남았다. 네놈이 죽어야 할 숫자가 말이다."
공구장은 사냥터를 바꿔서 평야 지대로 자리를 선정했다. 범려는 녀석의 이동 경로를 앞질러 도착해 해골들을 매복시켰다.
"전처럼 죽여줄게."
이번에는 미끼를 쓰지 않고 오로지 매복만으로 공구장을 기다렸다. 녀석은 바보같이 그 해골들이 몰려 있는 매복 장소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와라."
범려는 아주 멀리서 입을 열었다. 해골들은 그럼에도 범려의 말이 들렸는지 정확하게 그 명령을 듣고 땅속에서 튀어 올라왔다.
"해골!"
해골 병사들은 한번 해봤다고 능숙하게 공구장을 바닥에 눕히고, 팔다리를 창으로 찔러 땅에 고정시키고는 난도질을 해버렸다.
우르릉, 쾅! 쫘라라락-!
곧이어 벼락이 미친 듯이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죽어버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구장이 아이템을 떨어트렸는데, 바로 그가 사용하던 검이었다.
-진실의 클레이모어
공격력:200 내구력:100/100
힘:20
옵션:근접 공격 시 2% 확률로 한 번 더 공격한다.
"별로 좋은 무기는 아닌데."
범려는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보다 능력치가 떨어지는 걸 알고는 버릴까도 했지만, 녀석이 물건을 다시 가지러 올까 봐 상점에다 팔아버렸다.
"남은 숫자는 여섯 번. 남자라면 근성 있게 나머지 숫자를 채워야지. 흐흐흐."
범려는 즐거운 듯 음침한 웃음을 날렸지만 아이템을 떨어트린 상대방은 그렇지 못했다. 절망에 빠졌는지 다시 접속을 안 하는 것이다.
"음, 12시간이 지났는데도 접속을 하지 않는군. 아직 여섯 번이나 남았는데……."
공구장을 6번 더 죽여야 하는데 녀석이 나타나지 않자 범려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검을 찾으러 오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을 불러오지도 않은 것이다.
"일단 머리색이나 풀어야지."
그는 다시 살인자 딱지를 지우기 위해 사냥을 시작하고는 정확히 2시간 만에 살인자 모습을 지웠다.
범려는 혹시나 자신이 없을 때 공구장이 부활할까 봐 도시 안에 있는 부활 장소에 해골 병사를 하나 매복시켜 두었다.
"아, 졸려. 로그아웃."
이번에는 한 시간씩 끊어서 안 자고 8시간을 내리 잠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일요일 아침 8시였다.
"하암, 잘 잤다."
희성은 일어나 간단히 밥을 먹고 다시 게임에 접속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빠라바라 빠라밤! 빠라바라 빠라밤!
"여보세요."
(이놈!)
"헛! 스, 스승님."
범려는 이놈이라는 소리에 순간 움찔했다.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목소리였다.
(너 요즘 안 보인다.)
"아, 하하. 그게 말이지요. 제가 일을 다니다 보니……."
(나도 텔레비전 본 다, 이것아.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거냐.)
희성은 그 말을 듣고 순간 식겁했다. 뉴스에서도 떠들던 사건, 사장이 도망친 사건!
"죄송합니다."
(오늘 나오는 거냐.)
"예, 가겠습니다."
희성은 조용히 전화를 끊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활터로 움직였다. 그곳에는 친구 재성이도 와 있었다.
"너도 전화받고 온 거냐."
"그렇다."
연금술사를 키우던 재성이 활터에 온 지는 1년 됐다. 즉, 20살 때 나를 따라서 활터에 온 것이다. 알고 지낸 지는 10년이 됐지만.
"너희 둘 왔냐."
"스승님, 그동안 무고하셨는지요."
"인사치레는 됐다. 오늘 손님들이 온다. 너희들 일 좀 해야겠다."
희성의 스승님은 활의 명인이라고 불리는 안서진. 올해로 52세의 나이를 자랑하며 대한궁도협회의 회장 직을 역임하고 있다.
"아, 그리고 협회 사람들만 오는 것도 아니니까 좀 바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