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16화 (16/80)

제6장. 마법사의 위대함

"저기 벌레 하나가 도망간다!"

범려는 지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바퀴벌레 사냥터에서 죽어라 녀석들을 족치고 있었다. 바퀴벌레가 징그러우니까 그걸 보기 싫어서라도 사냥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벌레가 괜히 벌레가 아니었어."

죽여도 죽여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벌레들이 득실거렸고, 범려의 주변에는 바퀴벌레 시체가 산을 이룰 정도로 많았다.

"안쪽으로 들어간다!"

범려는 바퀴벌레들이 더욱더 몰려 있는 곳을 찾아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작정을 했다.

"안에 들어가면 필드 보스 몹 정도는 하나 있겠지."

아무도 깊이 들어간 적이 없는 사냥터. 그렇다면 필드 보스 몬스터 하나쯤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잡아본 적이 없으니 반드시 있을 거야."

너무 징그럽게 생겨서 사냥하기가 싫을 정도의 바퀴벌레. 심지어 남성 유저들도 기피 대상 지역이었다.

범려가 병사들을 데리고 더 깊숙이 진입하자 바퀴벌레의 숫자는 더욱 많아지고, 그들의 진액으로 땅을 적시며 진군했다.

"그래도 이왕 들어왔으니 뭐라도 하나 얻어야 나갈 것 아닌가."

범려가 아이템이라도, 아니 뭐 중요한 물건 하나라도 얻어야 할 것 같아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저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꺄악-!"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 바퀴벌레에게 쫓기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기병들은 날 따라와!"

범려는 그 쫓기는 유저를 향해 기병들만을 데리고 나오더니 바퀴벌레들 위로 뛰어올랐다.

콰지직!

벌레들을 뭉개버리면서 공격하자 순식간에 정리가 되었다.

"이봐요, 괜찮아요?"

범려는 방금 비명 소리를 지른 유저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한 유저는 머리를 숙이고 있었는데 범려의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들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헤, 헬렌 님?"

범려는 자신이 구해준 대상이 예전 헬렌이라는 것을 알고는 약간 말을 더듬었다.

'이 병을 고쳐야 하는데 여자 얼굴을 보니 또 쉽지가 않네.'

"범려 님?"

헬렌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범려라는 것을 보고 반가워했다. 그리고 뒤에 있는 해골들을 봤다.

"뒤에 있는 것들은 모, 몬스터?"

"아. 니. 에. 요."

범려는 일부러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 또박또박 한 자씩 말을 했다. 하지만 헬렌에게는 이 말이 약간 화가 난 것처럼 들렸다.

"아, 아니에요?"

"후, 후웁, 아니에요."

이번에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말을 하더니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더듬지는 않았다.

"후웁, 이건 제 기병들이에요. 제 직업이 궁수가 아닌 건 아시죠?"

"네, 알고 있죠."

"후웁! 가면서 말씀 드릴게요."

범려는 길을 가면서 헬렌에게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했다.

헬렌은 순간 놀란 눈으로 범려를 보다가 많은 수의 해골 병사들을 보고 다시 놀랐다.

"이게 다 범려 님이 만든 해골 병사들이에요?"

"후웁! 물론이죠. 그런데 이런 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혼자 사냥하러 왔어요. 같이 있던 오빠들이 직장을 다닌다면서 게임에 접속을 안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혼자 사냥을 나왔다가 이렇게 됐네요."

헬렌의 레벨은 117. 원래는 자신의 레벨보다 더 높은 녀석을 파티 사냥해야 하지만, 혼자서 몬스터를 사냥해야 하니 자신보다 낮은 레벨의 사냥터를 찾아다니며 사냥을 하는 것이다.

"후웁! 저랑 같이 사냥하실래요?"

범려가 처음으로 같이 파티 사냥 제의를 하자 헬렌은 기쁜 마음으로 파티에 참가했다.

"좋아요, 범려 님."

-범려 님의 파티에 헬렌 님이 초대되었습니다.

-지혜의 오라가 발동됩니다. 마나 회복 속도가 40% 증가합니다.

-헌신의 오라가 발동합니다. 방어력 30% 증가와 적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10%의 피해를 반사합니다.

헬렌은 지혜의 오라와 헌신의 오라가 발동하는 것을 보고 눈을 깜빡거렸다.

"이 메시지는 뭐죠?"

"아, 그거 아이템으로 발산되는 메시지예요. 그냥 던전 사냥하다가 나왔다고 생각하세요."

헬렌은 그동안 범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아이템을 얻은 것을 봐서 대단하다고 느꼈다.

"후웁! 제가 게임 초반에만 마법사와 파티를 해봐서 그러는데 레벨이 높은 상태에서 어떻게 싸우죠?"

범려가 아주 진지하게 물어보자 헬렌은 약간 당황했다. 딱히 특별한 전투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후방에서 마법만 잘 날려 주면 그게 최고인 직업이 바로 『판게아 월드』에서의 마법사다.

"그냥 후방에서 마법을 써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 건가요?"

일단 범려는 적들 중에서 마법사가 보이면 가장 빨리 신속하게 죽여 버려서 그들의 전투 방식을 알지도 못했다.

"후, 알았어요."

범려는 헬렌의 전투 방식을 본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 여겼다.

"일단 벌레를 많이 데리고 올 테니 마법을 준비해주세요."

해골마를 내몰아 바로 몇 명의 해골 기병에게 지시를 내리고 병사들을 전투태세로 준비하자, 멀지 않은 곳에서 기병들이 바퀴벌레 무리를 데리고 왔다.

"한꺼번에 몇 개의 무리를 상대하시려고요?"

"여덟 무리요."

여덟 무리는 범려가 해결하기에는 조금 벅찬 숫자다. 벌레의 레벨도 100이나 되기에 위험한 방법이다.

"차가운 숨결이여……."

쩌저적!

헬렌은 급하게 자신이 쓸 수 있는 제일 큰 마법을 준비했고, 지금까지 배운 스킬 중에서 제일 큰 범위 마법은 아이스 스파이크였다.

"아이스 스파이크!"

땅에서 날카로운 얼음들이 벌레들의 발밑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더니 치명상을 주면서 벌레들을 잡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있었다.

"다 잡았다."

범려는 자기도 벅찬 무리를 잡아서 그런지 좋아했지만 헬렌은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다음에는 아홉 무리를 잡죠."

"네? 그게 말이 돼요?"

여덟 무리에서 한 무리만 늘어나도 그 숫자가 다르다. 헬렌은 극구 반대를 하면서 여덟 무리로 못을 박아버렸다.

범려는 더 많이 잡고 싶었지만 여덟 무리로 만족을 하고는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한번 전투에 여덟 무리를 잡으니 주변은 금방 허허벌판이 돼버렸고, 헬렌은 고갈된 마나를 채우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음, 금방인데."

바퀴벌레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기는 했지만 그리 어렵게 사냥을 한 것 같지도 않았고, 오랜만에 파티 사냥이라는 것을 해서 굉장히 즐거웠다.

"후웁, 이제 사냥을 계속해야죠."

"네?"

헬렌은 마나가 회복되기는 했지만 벌써 사냥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신적으로 조금만 더 쉬었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야, 여덟 무리다. 끌고 와!"

기병들이 몬스터를 끌고 오기 위해 달려가자 헬렌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목표 조준!"

범려는 몰려오는 바퀴벌레들을 보면서 궁수들에게 명령을 내려 녀석들에 대한 공격을 퍼부을 준비를 했다.

"쏴라!"

명령이 떨어지자 화살들이 우수수 날아 들어오면서 바퀴벌레의 그 단단한 껍질 갑옷을 뚫고 박히자, 녀석들은 괴성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돌진!"

"아이스 스파이크!"

벌레들을 박멸하는 데 헬렌의 마법이 일조를 하고 있었고, 동시에 해골들은 별다른 생명력 관리 없이 안전하게 전투를 할 수 있었다.

"계속 끌고 와!"

범려의 명령에 기병들은 쉬지 않고 벌레들을 끌어 모으며 정리를 하는 도중, 한 녀석이 이상한 바퀴벌레를 끌고 왔다.

"적색?"

바퀴벌레가 적색으로 온몸을 도배하고서는 무척 흉물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스?"

"아니에요! 보스가 아니에요. 저건 거대 식인 바퀴벌레예요!"

녀석의 머리 위에 거대 식인 바퀴벌레라고 쓰여 있었고, 혼자서 온 것이 아닌 다른 동료들도 끌고 온 것이다.

"돌격병! 방패!"

범려의 명령에 따라 돌격병은 식인 바퀴벌레를 향해 방패를 들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헬렌 님, 마법 지원 부탁해요!"

범려는 다급한 마음에 헬렌에게 부탁을 하더니 자신은 활을 당기면서 위험해 보이는 식인 바퀴벌레를 향해 공격을 펼쳤다.

"회색의 빛!"

범려는 다른 벌레들을 뒤로하고 식인 바퀴벌레에게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일부 병력은 헬렌이 도와 처리했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식인 바퀴벌레는 별로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헬렌 님, 식인 바퀴벌레는 어디서 출몰하죠?"

"이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나와요. 숫자는 많지 않지만 다른 바퀴벌레보다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헬렌의 설명을 듣고 범려는 안으로 들어갈 결심을 했다. 레벨도 별로 차이 나 보이지도 않는데 능력치만 좋다면 경험치를 더 많이 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근위병! 회오리 찌르기!"

해골 근위병들의 창이 급격하게 회전을 하더니 무섭게 돌면서 바퀴벌레들의 단단한 갑옷을 무식하게 깨부수어 나갔다.

"출혈이 일어났어."

회오리 찌르기의 부가 능력인 출혈 현상이 일어나면서 바퀴벌레의 몸 안에 있던 진녹색의 끈적거리는 체액에 바깥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식인 바퀴벌레도 별거 아니네."

스킬 한 번 발동으로 식인 바퀴벌레를 잡아 죽이자 범려는 즉각 계산에 들어갔다. 쿨 타임에 비례하여 얼마나 빨리 잡히는지 파악했지만 결과는 '아직은 아니다'이다.

"쿨 타임이 너무 길어."

효과는 확실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2분이면 짧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사이에 다른 녀석들과 계속 싸우는 범려의 해골들이라면 위험하다.

"기병들, 식인 바퀴벌레는 데리고 오지 마!"

한마디로 더 안으로 가서 식인 바퀴벌레를 데려오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은 거대 바퀴벌레로 만족하겠다는 뜻이다.

"스톤 블레이드!"

쿠르릉, 쾅! 콰지직!

칼날같이 날카로운 바위가 솟아오르면서 벌레들에게 상처를 입히자 범려의 생각은 바로 바뀌었다.

'헬렌이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근위병의 회오리 찌르기나 돌격병의 나무 부수기의 쿨 타임을 생각해도 충분히 가능한 싸움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후웁, 헬렌 님, 우리 저 안으로 들어가서 사냥할까요."

범련이 심호흡을 하고서 차분하게 묻자 헬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요. 일단 이것부터 잡고 가죠."

헬렌의 승낙이 떨어지자 범려는 바로 남은 거대 바퀴벌레를 몰아치며 학살했다.

"후웁, 이제 가죠."

해골들의 레벨이 낮지만 범려에게는 별로 위협이 되지 않는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자신보다 높은 녀석들을 잡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보니 익숙해진 것이다.

이어 거대 식인 바퀴벌레들이 있는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땅바닥에서 늪지대 냄새가 났다.

"땅이 약간 질척거려요."

헬렌의 말대로 땅이 좀 질척거리면서 움직이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늪지대에 들어섰습니다. 이동속도가 10% 감소합니다.

"이런!"

그리 심각한 수준의 이동속도 감속은 아니지만 기병들은 이런 환경에서 움직이는 게 별로 안 좋다. 이런 곳은 보병의 활동성이 전투를 좌우한다.

"기병들은 아까와 같이 움직인다. 숫자는 일곱 무리다. 끌고 와!"

기병 일곱에게 명령을 내렸다. 범려는 여덟 무리를 잡고 싶었지만 녀석들이 얼마나 강한지, 혹은 이런 곳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움직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곱 무리를 선택했다.

"온다."

기병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식인 바퀴벌레를 데리고 왔다. 하지만 바퀴벌레들의 움직임은 이런 곳에서 별로 제약을 받지 않는지 기병들의 뒤를 바짝 쫓아왔지만, 바퀴벌레보다 기병이 조금 더 빨랐다.

"공격!"

범려의 공격 신호에 맞춰 헬렌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올리더니 작은 소리로 무언가 주문을 외웠다.

"체인 라이트닝!"

헬렌의 손에서 번개가 발출되더니 여러 바퀴벌레에게 동시 다발적으로 타격을 주고 있었다.

'역시, 마법사!'

범려는 감탄을 하면서도 자신도 마법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포위해!"

일단 해골들의 머릿수가 되니 포위 공격이 너무나 잘 먹혀들었다. 특히 뒤에서 공격을 하면 벌레들이 공격당하는 면적이 넓어지게 되어서 금방 죽어버린다.

"파이어볼!"

헬렌의 마법 난사는 계속 이어졌고, 벌레들의 숫자가 줄어들면 계속해서 기병들을 이용해 두 무리씩 몰고 왔다.

"조, 조금만 쉬었다 해요."

"후웁! 안 돼요. 조금만 더 해야 합니다."

범려는 헬렌을 참깨에서 참기름 짜내듯이 마법을 계속 쓰도록 쥐어짰다. 점점 지쳐 가는 헬렌은 돌아보지 않고 계속 사냥만을 하는 범려였다.

"이제 쉬죠."

범려는 병사들의 체력이 고르게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쉬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제 쉰다."

헬렌은 이 꿀 같은 휴식 시간이 찾아오자 바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언제 다시 일어나 사냥을 할지 몰라서 마나 물약을 한 개 먹고 회복이 빨리 되기만을 기다렸다.

"시작할까요?"

"네? 아니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헬렌은 범려를 말리면서 조금이라도 더 휴식 시간을 늘리려고 했다. 마나는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헬렌의 몸은 아직 멀었다.

"이럴 시간 없는데……."

범려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안 된다고 했지만 헬렌은 곧 죽어도 단 5분의 휴식 시간을 벌기 위해 그를 설득했다.

"딱 5분만요. 제발 부탁이에요."

"윽!"

애절한 눈빛으로 딱 5분만 쉬어달라는 헬렌의 눈빛에 범려는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여자 면역력을 조금이라도 기르려고 했지만 저런 눈빛은 면역력을 약하게 만들었다.

"후웁! 알았어요. 딱 5분만 더 쉴게요."

범려는 5분만 더 쉰다고 말하고는 기병들을 시켜서 주변에 정찰을 하도록 지시했다. 특히 필드 보스 같은 몬스터가 발견될지 몰라서 하는 정찰이었다.

기병들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5분이라는 시간이 흘러간 후였다. 딱히 중요한 몬스터를 발견했다는 기병은 없었다.

"필드 보스 몬스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나."

범려는 다시 기병들에게 명령을 내려 주변의 몬스터를 끌고 오라는 지시를 내리고 진형을 갖추었다. 헬렌은 범려의 옆에서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벌레들이 온다!"

기병들이 오면서 바퀴벌레들을 몰고 오자 전투가 시작되었다.

죽어라 바퀴벌레들을 잡은 결과물은 그리 대단하지 못했다. 화살 값 정도의 돈과 바퀴벌레의 진액이라는 아이템이었다.

"우엑!"

비위가 약한 헬렌이 속이 거북한지 헛구역질을 했지만 범려는 살짝 인상만 찡그리고 지나쳐 버렸다.

"다른 곳으로 가죠."

범려는 달리 볼 것도 없어서 바퀴벌레 지역을 빠져나왔다.

그 안에 있는 사이 해골들의 레벨이 전체적으로 2 올랐고, 범려 자신도 2레벨이 올랐다.

"후웁! 헬렌 님, 적당한 사냥터 아세요?"

헬렌은 그 말을 듣자 살짝 긴장했다. 범려가 사냥을 하는 모습에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주변 일대의 몬스터의 씨를 말리는 방법을 쓰기 때문이다.

"글쎄요. 저도 잘 몰라요. 필드 사냥터는 그냥 사람들 따라서 사냥을 해서요."

헬렌은 사냥터를 돌아다녀봐서 알고는 있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범려의 사냥은 그야말로 지독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음, 그럼 『판게아 월드』 공식 홈페이지를 가봐야겠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범려가 로그아웃 전에 해골 병사들을 땅속으로 숨으라는 명령을 내리자 모든 해골 병사들이 땅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병까지 들어가네."

헬렌은 해골마를 타고 있는 기병까지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범려가 로그아웃해 있는 동안 헬렌에게 누군가 귓속말을 보내왔다.

[언니!]

[로즈야! 언제 왔어. 그동안 일이 바쁘다고 안 오더니.]

[스케줄이 갑자기 펑크 나서 왔어. 혼자 사냥해?]

[아니, 다른 사람이랑 파티하고 있었어.]

[그래? 나도 같이 할까?]

[오늘 스케줄 펑크라면서. 이런 날은 푹 쉬어야지. 나중에 같이 하자.]

[알았어, 언니. 그럼 나중에 봐.]

로즈의 귓속말이 끊기면서 로그아웃을 해버렸다.

"오늘 같은 날 쉬어야지 자꾸 게임을 하네. 뭐, 스트레스 푸는 데 게임만 한 건 없지만."

헬렌이 로즈와 잠깐 동안의 귓속말을 하는 사이 범려가 다시 접속을 했다.

"아, 적당한 사냥터가 그 바퀴벌레 말고는 없네요."

"그럼 던전을 가요. 아직 적당한 필드 사냥터가 없다면 던전을 가는 게 최고예요."

"던전이라."

범려가 갈 만한 평균 90레벨 수준의 던전은 많다. 사람들은 아이템 파밍과 동시에 퀘스트, 그리고 레벨을 올리기 위한 도구로 던전을 자주 찾는다.

"좋은 던전 없나요?"

"여기서 조금 거리가 있지만 서쪽으로 가면 던전이 하나 있어요. 문제는 그 던전 자체가 지하에 있다는 거죠."

"지하?"

범려는 지하라는 말에 살짝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해골들을 100퍼센트 활용하려면 필드 던전 형태거나 혹은 지하라 하더라도 드래곤들의 레어 입구처럼 무식하게 큰 동굴로 된 던전이어야 한다.

"지하는 조금 문제가 있는데."

불안했다. 인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달랑 둘인 데다 해골 병사들의 숫자는 너무 많다. 특히 건물 안에 설치된 던전은 아직 들어가본 적 없는 범려였다.

전에 네크로맨서들 잡을 때 괜히 투석기를 만들었겠나. 안에 들어가면 불리하니까 만든 물건이다.

"그 지하 던전은 꽤나 큰 곳이라서 범려 님의 병사들이 들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

범려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죠. 그 던전이 어디에 있나요?"

"서쪽에 홉고블린 던전이 있거든요. 좀 멀어서 텔레포트를 타고 가야 돼요."

"아니요. 그러지 마시고 말을 타세요."

범려가 해골 기병을 하나 부르더니 헬렌을 태우라고 지시하자, 기병은 말에서 내려와 헬렌을 태우고 자신은 해골마 갈비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머나."

말에는 안장이 채워져 있고, 또 게임 시스템 자체적으로 초보자가 말을 타도 전혀 문제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다들 멀리 간다. 갈비뼈 안으로 들어가!"

해골들은 모두 말 갈비뼈 안으로 들어가면서 몸을 웅크렸다. 스스로 몸을 압축시키며 들어가는 것이라 해골마 갈비뼈 안쪽이 꽉 들어찼다.

"가자!"

우르르르!

말발굽이 마치 천둥 치는 소리를 내면서 달려가자 헬렌의 몸 전체를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속력으로!"

명령이 떨어지자 해골마들은 말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력으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으윽."

헬렌은 이런 경험을 처음 겪는지 말고삐를 꽉 잡고는 몸을 해골마에 기대었다.

게임 시간으로 대략 40분 정도 달리자 작은 산을 하나 발견하고는 그 밑에 커다란 입구가 있는 던전을 볼 수 있었다.

"후웁! 여기가 홉고블린 던전인가요?"

"네."

홉고블린은 일반 고블린보다 키가 큰 고블린을 가리키며, 신장은 최고 2미터까지 되는 녀석들이다.

"입구가 꽤나 마음에 드는데."

홉고블린 던전의 입구는 뒤에 있는 병사들이 다 들어가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넓은 입구를 자랑했다.

'이 게임사는 대규모 전투를 생각하고 만든 건가?'

당연하다. 무리 시스템을 봐도 작은 규모의 파티를 이루도록 유도하고 있다. 던전은 당연히 큰 규모의 파티도 결성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완벽히 구축되어 있다.

"들어가요, 범려 님."

"네!"

범려는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힘차게 대답하고는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던전 난이도가 전쟁 모드로 설정이 되었습니다.

-던전의 지형이 크게 확장됩니다.

-최종 보스, 중간 보스의 체력이 크게 상승합니다.

-던전 몬스터의 숫자가 증가합니다.

"범려 님, 난이도 손대셨어요?"

헬렌은 던전의 난이도를 조절했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달랐다.

"후웁! 전 손을 대지 않았어요. 그냥 입장을 하자 이런 메시지가."

"전쟁 모드는 일부러 난이도를 조정하거나, 혹은 10명 이상의 파티를 이루어야 되는데."

범려는 헬렌의 말을 듣고는 자신의 뒤에 있는 해골 병사들을 보았다. 10명 이상의 인원이라고 했지만 30명만 끌고 다닐 때는 이런 메시지를 본 적이 없다.

'설마 해골 병사들의 숫자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이렇게 되는 건가?'

범려는 속으로 해골들의 숫자가 110이 되었다는 것을 보고는 대충 이해가 됐다.

"후웁! 아마도 제가 끌고 다니는 해골들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네요."

헬렌은 뒤에 있는 병사들을 보고 이해가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해골 숫자가 100이 넘는데 전쟁 모드로 바뀌지 않으면 이상할 것이다.

"어쩔 수 없겠네요."

두 사람은 지금 상황을 수긍하면서 갑자기 거대해진 던전의 변화된 부분을 파악해나갔다.

"고블린들이 상당히 강해진 것 같아요. 숫자도 한 무리마다 3마리가 추가됐어요. 이곳은 한 무리가 5마리를 하고 있었는데."

"8마리……."

범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병사들이 얼마나 강한지, 혹은 다른 변수가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일단 한 무리만 잡아서 실험하죠."

범려는 자신의 병사들이 넓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놓은 던전을 보면서 충분히 싸워볼 만하지 않을까 했다.

쉬이익!

범려는 실험 삼아 홉고블린 한 무리를 공격하더니 바로 전투태세를 갖추며 녀석들을 포위 공격해봤다.

홉고블린들은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는데도 전혀 위축되는 감이 없이 자신의 전투 방식을 최대한 살리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골치 아픈 놈들이군."

상대의 진형에 흐트러짐이 없음을 보고는 이 던전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그나마 다행인 게 헬렌이 있어서 포위 공격을 하면 범위 마법이 즉각적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프리징!"

쩌저적! 쩍!

주변에 진눈깨비가 내리면서 몬스터들의 몸이 차가워지며 움직임이 느려졌고, 동시에 초 단위로 생명력이 떨어져 갔다.

"넘어트려!"

병사들은 몬스터들의 발이 얼어가자 발목을 주저 없이 내리쳤다. 홉고블린은 바닥에 넘어지자 빠른 속도로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끼고 발악을 했지만 등이 이미 땅에 붙어버려서 저항은 무의미했다.

한 무리를 헬렌의 마법으로 간단하게 잡자 범려가 물었다.

"후, 방금 마법이 뭐죠?"

"프리징이라는 마법인데, 상대를 서서히 얼려 가는 거예요. 천천히 얼고, 데미지도 굉장히 나빠서 별로 좋은 마법이……."

"후웁! 아니요. 정말 좋은 마법이에요."

범려는 방금 마법을 칭찬했다. 급속도로 얼어버리는 마법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그건 범려가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

"쿨 타임은 얼마나 되죠?"

"20초요."

20초면 충분하다. 데미지가 낮고 몸이 완벽하게 어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뿐이지만 범려는 프리징 마법으로 발목까지만 얼어도 충분했다.

"그 프리징이라는 마법을 계속 써주세요."

헬렌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을 대신했고, 곧 짧은 쿨 타임의 마법인 프리징을 연이어 발휘하자 싸우다가 녀석들의 발목이 얼어버리면 즉각 넘어트려서 잡았다.

"후웁! 헬렌 님, 두 무리 정도는 문제 없죠?"

"범위가 그리 넓지 않아서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해볼게요."

범려는 그 말을 듣자 바로 두 무리를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프리징!"

"홉고블린을 안쪽으로 몰아!"

해골 병사들은 공격보다 녀석들을 마법이 펼쳐지는 공간 안으로 밀어 넣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두 무리의 홉고블린은 자신의 다리가 꽁꽁 얼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했지만 범려는 신경 쓰지 않았다.

"회색의 빛!"

즉각 그도 범위 공격 스킬을 펼치자 좁게 모여 있던 녀석들은 알짤 없이 빛의 폭발에 휩싸이면서 동시에 벼락이 떨어졌다.

번쩍! 쾅! 쾅!

밝은 빛에 휩싸여 떨어진 벼락이라 헬렌은 벼락이 떨어지는 광경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방금 뭐가 떨어진 거죠? 번개가 친 것 같은데."

"이 무기의 옵션이에요."

범려는 자신의 허리에 착용하고 있는 벼락검을 보여 주었다. 그에 헬렌은 이런 아이템이 있다는 걸로만 인식하고는 관여하지 않았다.

"녀석들 강하네."

범려는 해골들의 체력을 꾸준하게 관리해주면서 한 대라도 맞으면 뒤에 있는 창병이나 혹은 옆에 있는 돌격병과 교체를 해주며 전투를 했다. 하지만 한 대 맞을 때마다 빠져나가는 생명력이 쉽게 볼 수준은 아니었다.

"이럴 때 빛의 구속 같은 마법 해주면 좋은데."

"그 마법은 언데드와 악마만 가둘 수 있어요."

범려가 매즈 마법에 관심을 보이고 있을 때 헬렌이 그 마법을 걸고 넘어졌다.

"매즈 마법을 찾는다면 아쉽게도 저는 없어요. 마법서를 구하지 못했거든요."

"무슨 마법인데요?"

"스톱이라는 마법서이에요."

파티를 하다 보면 제일 중요한 마법이 광역과 매즈 마법이다. 특히 스톱은 그 자리에서 멈추게 만드는 마법이라서 석화 마법처럼 몸이 굳어버린다.

"후웁! 전투를 하다가 나오면 드리지요."

"네."

헬렌은 마법서가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범려가 건네는 말은 고맙게 받아들였다.

"이쯤 되면 중간 보스가 하나 나올 때가 됐는데."

범려는 어느 정도 던전을 진행하다가 뭔가 하나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진군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에 홉고블린 고문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녀석이 눈에 보였다.

"후웁! 헬렌 님, 고문관이라는 녀석에 대해서 아세요?"

"저도 전쟁 모드는 처음이라 잘 몰라요. 그리고 고문관도 처음 보는 녀석이에요."

많은 이들이 전쟁 모드를 하지 않는다. 어렵기는 어디 뭐같이 어렵고, 파티원의 호흡이 맞지 않는다면 중간 보스를 넘기지 못하고 죽기 십상이다.

"음, 그럼 전쟁 모드에서만 나오는 녀석이라는 건가."

일단 분위기를 봐서는 별다른 게 없어 보이는 녀석이지만 문제는 녀석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녀석이 같이 데리고 있는 홉고블린이 5마리."

범려는 고문관을 유심히 보면서 어떻게 전투를 펼쳐야 할지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후웁! 헬렌 님, 제가 고문관을 끌고 돌아다닐 테니 그사이 다른 홉고블린을 잡아주세요. 병사들에게는 제가 명령을 내려놓을게요."

"알았어요."

범려는 해골들에게 각자 어떤 홉고블린을 잡아야 할지 정해놓고는 자신이 고문관을 잡고 있는 동안 처리하도록 명령했다.

"다들 알겠지."

병사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각자 정해진 녀석을 유심히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범려는 완료가 되었다고 믿고 앞으로 나아갔다.

"간다!"

쉬이익!

범려가 쏜 화살이 홉고블린 고문관의 미간에 박히자 치명타 메시지가 뜨면서 고문관이 외쳤다.

"고문을 받고 싶은 인간이 왔구나! 그렇지 않아도 심심했는데."

자신의 머리에 박힌 화살을 무시하며 범려에게 달려들자 뒤따라서 녀석들의 부하들도 달려왔다.

"각자 맡은 녀석을 처리해!"

범려는 해골마를 타고 고문관을 유인했다. 헬렌은 범려가 말을 타고 이동하며 활을 당기자 깜짝 놀랐다.

"대단해."

감탄도 잠시, 해골들이 홉고블린을 공격하자 헬렌은 마법을 부리면서 공격해 들어갔다.

"어디 너도 눈을 맞으면 바보가 되냐!"

-눈을 공격당했습니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하여 3초간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눈 달린 몬스터라면 절대로 피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고문관이 3초간 혼란 상태에 빠지자 범려는 멀리서 녀석의 머리를 노리며 계속 화살을 쐈고, 혼란에서 깨어나면 다시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고문관을 괴롭혔다.

"넌 오늘 제대로 걸렸어."

녀석이 바보여서 그렇지, 이건 범려에게 있어서 너무나 쉬웠다.

주변을 몇 번 빙글빙글 돌아주자 고문관의 부하들은 싸늘한 시체가 되었고, 남은 건 고문관 혼자였다.

"아이스 애로우!"

헬렌이 캐스팅이 제일 짧은 마법으로 공격을 시작하자 연이어서 궁수들과 보병, 기병들이 우르르 달려들며 공격을 시작했다.

고문관 하나에게 집중 공격을 퍼붓자 녀석의 생명력은 강가의 배가 급물살을 타듯이 급격히 빠져나갔다. 그러면서도 고문관은 끝까지 범려를 바라보며 달려왔다.

"날 쫓아오는 게 좋지."

말을 타고 공격하는 범려를 아무리 달려도 고문관은 때리지 못한다.

"이걸 받아라."

범려가 고문관의 하나 남은 눈을 공격하자 그는 바로 혼란에 걸리면서 우왕좌왕했다. 헬렌은 그걸 보고 바로 마법을 날렸다.

"프리징!"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던 고문관은 3초 안에 발이 얼어서 바닥에 붙어버렸고,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종아리까지 얼어가고 있었다.

쩌쩍, 쩍!

종아리 위로 몸이 얼어가자 이제는 근접 보병과 기병들이 자연스럽게 물러나고 원거리 공격력을 펼치는 병사들이 남아 공격을 펼쳤다.

"이랴!"

범려는 벼락검을 꺼내들고는 고문관을 향해 달려가 무서운 속도로 그의 목을 쳐 버렸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습니다.

우르릉, 쾅!

바로 번개가 내리치면서 고문관이 죽었다. 녀석이 죽으면서 떨어트린 아이템은 겨우 20골드. 그걸 본 범려는 절망했다.

"겨우 돈 20골드……."

두 사람밖에 없어서 나눠 가진다면 10골드. 돈이 당장은 부족하지는 않지만 해골들이 먹어치우는 돈은 무지막지하다.

"돈 먹는 기계들을 관리하려면 더 많은 녀석들을 죽여야 돼!"

범려는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진군을 시작했고, 헬렌은 뒤따라서 움직였다.

이후에 중간 보스들이 일곱이나 나왔지만, 하나같이 다들 아이템은 주지 않고 오로지 돈만 30~40골드를 토해낼 뿐이었다.

더군다나 잡는 방법은 고문관을 잡을 때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하, 겨우 돈 때문에 이곳에 온 게 아닌데."

돈에 목말라 있다면 지금 받은 돈이 중요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고, 그건 헬렌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템 하나가 안 나오네요, 범려 님."

"후읍! 그러네요."

다시는 전쟁 모드로 던전을 절대 클리어하지 말자라고 다짐을 하는 사이, 최종 보스 방에 들어왔다.

"홉고블린 킹!"

이름도 딱 어울리게 홉고블린 킹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이상한 금장식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을 뿐이지 저게 과연 잘 싸우는 녀석일까 의심이 되었다.

"후웁! 헬렌 님, 최종 보스도 아는 녀석인가요?"

"맞기는 한데, 조금 달라요. 언제나 갑옷을 입는 모습인데 지금은 왕관에 홀을 들고 있으니……."

헬렌이 알고 있던 보스가 아니라는 소리다. 뭐, 가는 도중에 아는 녀석들이라고는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왕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다만 범려는 무기도 없이 저기 떡 버티고 있는 녀석이 무슨 잔재주를 피울지 그게 못마땅한 것이다.

"그냥 콱 죽여 버렸으면 하는데."

당장은 혼자 있지만 그게 더 불안하다. 다른 녀석들은 다 부하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는데 왕이라는 작자가 혼자인 것이다. 더군다나 던전 난이도는 전쟁 모드. 은근히 눈에 거슬린다.

"저거 불안해."

"뭐가 불안한데요?"

"후웁! 홉고블린 킹이 들고 있는 저 홀이오. 홀에 박힌 큰 보석을 봐도 저거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아서요."

확실히 킹이 들고 있는 홀 끝에 박힌 보석은 일반 보석으로 보이지 않았다.

"에잇! 고민을 해봤자 도움 안 돼! 직접 부딪쳐야지. 혹시 모르니 헬렌 님은 일단 제일 공격력이 강한 마법을 준비하세요. 제가 신호를 하면 마법을 날리시고요."

"네."

범려는 처음으로 말을 더듬지 않고 말했지만 그건 모든 정신이 홉고블린 킹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기병은 좌우로 나뉘어 뒤에서 대기한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반응을 해야 한다!"

범려는 일단 보병만 앞으로 내세우면서 방패를 이용해 벽을 하나 만들었다.

"아무래도 저 홀이 꺼림칙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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