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위험 넘치는 남쪽의 땅
"형님, 이곳이 빙산 마을이에요."
빙산 마을.
말 그대로 거대한 빙산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범려가 화살을 사기 위해 들른 마을이기도 하다.
"그런데 해골들은 저 바깥에 놔둬도 괜찮아요?"
"괜찮아. 땅속에 숨어 있으니까."
해골 병사들은 다들 땅속에 숨어 있다. 물론 해골마라고 해서 예외는 될 수 없다.
"여기가 무기 상점이구나. 아저씨!"
범려는 무기 상점에 들어가더니 바로 주인을 불렀다.
"손님, 어떤 무기를 사시려고 그러십니까."
"화살 61만 개 주세요."
"컥!"
옆에 있던 취선은 화살 숫자를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61만 개? 무슨 화살이 그렇게 많이 필요해요?"
"내가 쓰는 건 겨우 1만 개 정도, 나머지는 해골들이 쓸 것."
"해골 병사들 그냥 무기 들고 나오는 거 아니에요?"
"……."
전혀 그런 거 없다. 범려가 몇 번의 횡재를 해서 돈을 벌었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큰 소득을 기대할 수가 없다.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일단 화살이나 들어줘."
많은 숫자의 화살은 혼자서 처리가 힘들다. 절반 딱 나눠서 인벤토리가 가득 찰 때까지 화살을 들고 가서 병사들에게 나눠줬다.
"우아, 내 평생 그렇게 많은 화살 보기는 처음이네. 형님, 그렇게 화살을 사면 남는 거 좀 있어요?"
"당연히 없지. 화살 61만 개다. 남는 게 있으리라 생각하냐."
아무리 생각을 해도 대박 아이템을 먹지 않는다면 이건 무의미한 짓이라고 생각이 드는 취선이었다.
"형님, 던전 안 가세요? 이 정도 숫자면 혼자서 던전 털어버릴 것 같은데."
"던전 가면 난이도 무조건 전쟁이야."
"네! 그 어렵다는 전쟁 모드요?"
범려는 지금 해골 병사들 숫자로 가면 무조건 난이도 전쟁이다.
"그럼 나오는 아이템이 다르겠지만 해볼 만하지 않아요?"
"한번 가봤는데 어렵기는 어려운데 못 깰 정돈 아니더라."
그때는 헬렌이 있어서 좀 편하게 게임을 한 편이다.
"형님 혼자 한 거예요?"
"아니. 마법사와 같이 했어. 생각보다 잘 싸우던데."
범려는 헬렌이 있다면 적당한 던전에 들어가서 같이 사냥을 하고 싶었다. 마법사의 힘이 아주 절실하기 때문이다.
"형님, 제가 아는 마법사가 하나 있는데 마법사랑 같이 사냥하는 게 어때요?"
"좋지."
범려가 흔쾌히 승낙하자 취선은 누군가와 귓속말을 시도하더니 약 3분 정도가 지나자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으로 온대요."
"그래? 잘됐네."
시간이 지나 마법사가 도착을 했고, 범려는 그 마법사의 얼굴을 보고 외쳤다.
"헬렌 님?"
"범려 님이 여기는 무슨 일이세요?"
"둘이 서로 알아요?"
범려는 헬렌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취선에게 알려 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세 사람은 다 같은 파티를 하게 됐지만 파티의 리더는 자연스럽게 범려가 되었다.
"범려 님, 저기 잠시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뭔데요?"
"제가 퀘스트를 하나 얻었는데, 난이도가 좀 되는 퀘스트라서 그래요. 도와주세요."
헬렌이 퀘스트를 도와달라며 부탁하자 범려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퀘스트를 공유도 해주었다.
-영혼의 문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문을 찾아라. 그 문은 죽지 않고도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난이도:B
완료 조건:죽지 않은 상태에서 아르테미스를 만나라.
보상:천사의 깃털
"응?"
범려는 퀘스트를 받자 왜 난이도가 B인지 의문스러웠다. 자신은 아르테미스를 원하는 대로 불러들일 수가 있었다.
"제가 알기로 영혼의 문은 냉혈의 아멜리아 북쪽에 있는 것으로 확인했어요. 거기 가는 데 많은 몬스터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이 퀘스트를 지옥의 퀘스트라고 한대요."
"아, 그래요? 저한테는 전혀 어려운 부분이 아닌데. 꼭 영혼의 문으로 가야 하는 건가요?"
"그건 저도 잘 몰라요. 다만 죽지 않은 상태에서 아르테미스를 만나야 해요."
범려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굳이 영혼의 문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동쪽으로 가나 서쪽으로 가나 목적지에만 도착하면 그만이다.
"아르테미스!"
"안녕하세요, 범려 님."
즉각 모습을 드러내는 아르테미스를 보고 놀란 두 사람은 뒤로 살짝 물러났다.
"아르테미스 님, 저기……."
"제 깃털을 원하시는군요."
퀘스트를 받아서 그런지 아르테미스는 거침없이 자신의 날개 깃털을 뽑았다.
"여기, 깃털."
"감사합니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같이 퀘스트를 완료하고는 그들이 받은 깃털을 확인했다.
-천사의 깃털
영구적으로 성 속성의 내성을 3% 증가시켜 준다.
범려는 이걸 보고 별거 아닌 퀘스트라고 생각했지만 다들 퀘스트는 꽤나 중요하게 여긴다.
"범려 님, 잠시 저 좀 보실까요."
범려는 아르테미스가 자신을 따로 부르자 다른 일행들을 잠시 뒤로하고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범려 님, 고요의 아티잔을 찾아가서 제 부탁으로 왔다고 하면 알 거예요."
-고요의 아티잔을 찾아라.
『판게아 월드』를 지키는 아홉 드래곤 중에 하나로, 그녀를 찾아가 해골 제작자의 존재를 알려라.
난이도:B
완료 조건:아티잔과 대화하기(실패 시 아티잔의 브레스를 맞는다.)
보상:용의 징표
범려는 용의 징표라는 말에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용이라는 단어가 뭔가 있어 보였다.
"네, 할게요. 그런데 아티잔은 어디에 살고 있나요?"
"그건 범려 님이 찾으셔야죠."
최근 아르테미스가 주는 퀘스트들은 그냥 찾으라고 던져만 주고 그게 끝이었다.
"작은 힌트만이라도 안 될까요?"
"그러면 재미없잖아요."
범려는 더 얘기해봤자 시간 낭비라 생각해 입을 다물었다.
"부탁은 이게 끝이 아니에요."
"네?"
아르테미스가 부탁을 하나 더 한다고 하자 범려는 또 무슨 퀘스트를 줄지 긴장되었다.
"다른 분들도 여기로 오세요."
헬렌과 취선이 아르테미스가 있는 곳으로 오자 작은 퀘스트창이 하나 떴다.
-얼음의 마법사를 제거하라.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 북부에 위치한 설산 티루만에 가라. 그곳에 사악한 얼음의 마법사가 있다. 그를 제거하고, 그가 만든 모든 걸 파괴시켜라.
난이도:C
완료 조건:얼음의 마법사와 함께 그의 모든 연구 자료를 파괴하라.
보상:마정석
"마정석?"
범려는 보상을 보고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정석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혹시 마정석에 대해서 아세요?"
"재료 아이템이에요.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 때 첨가하는 아이템이죠. 그걸 넣으면 아이템 옵션이 조금 좋아져서 꽤나 비싼 물건이에요."
헬렌의 말에 마정석이라는 물건이 상당히 고가의 재료 아이템으로 인식이 되었다.
"돈 되는 물건이군."
범려는 단순히 돈 되는 물건으로 치부를 해버리고, 자신과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물건으로 인식했다.
"가죠. 연계 퀘스트인데."
헬렌은 지금 하는 퀘스트를 하자며 둘을 불렀고, 두 사람의 표정은 약간 달랐다.
취선의 경우 별다른 인식이 없지만, 범려는 힘들어하는 얼굴을 보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범려 님?"
"아, 아니요. 별일 아니에요."
아르테미스가 준 2개의 퀘스트 중 하나는 뭔지 모르지만 따로 받은 퀘스트는 분명 해골 제작자와 연관이 있다.
"궁금하네. 퀘스트를 주고 나서 뭘 알려 주려는 것인지 말이야."
범려의 마음은 설산의 마법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있는 아티잔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혼자만 해골마 타지 말고 저도 좀 태워주세요."
딱!
범려가 손가락을 딱 튕기자 해골 기병 둘이 말에서 내리더니 해골마 갈비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말 타고 가자."
헬렌과 취선이 말 위에 올라타자 단순히 걸어가는 것이 아닌 이제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으윽!"
바람이 옷을 통과하면서 살갗에 닿는 느낌이 너무 차가웠다.
"크윽, 춥다."
말을 타고 움직이니 얼음의 마법사가 살고 있는 설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말이 빠르기는 빠르구나."
취선은 게임에서 말을 타는 것이 처음이라서 몰랐지만 일반 유저들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산으로 올라가자."
얼음의 마법사가 살고 있다는 산은 의외로 높지 않았다. 오히려 산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산이 산처럼 안 보이네요, 범려 님."
"후읍! 그러게요."
취선은 두 사람이 존댓말을 쓰는 것을 보자 둘의 관계가 어색하게 보였다.
"형님, 헬렌 누나하고는 만난 지 얼마 안 됐어요? 둘 다 존댓말 하게?"
"처음 본 건 오래됐는데, 같이 게임을 한 지는 얼마 안 됐어."
"그럼 둘 다 편하게 말하고 살아요. 보는 제가 다 이상해요. 헬렌 누나는 제 사촌 누나예요. 나이는 25살이구요."
"야! 나이를 말하면 어떻게 해!"
헬렌은 발끈하면서 취선에게 따졌지만 이미 그걸 막기에는 늦었다.
"뭐 어때요. 나이 25살이 많은 것도 아닌데. 범려 형님, 편하게 누나라고 하세요."
범려는 살짝 눈치를 보고는 취선의 말에 따랐다.
"헤, 헬렌 누나……."
"그래."
두 사람은 이런 자리가 약간 어색했지만 그것도 잠시, 헬렌이 먼저 범려에게 자주 말을 걸었다.
"범려야, 너 나랑 말할 때 자꾸 후웁, 후웁 하던데 왜 그러는 거야?"
헬렌은 지금까지 그게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해도 항상 사냥에 열중하고 있어서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그, 그게……."
범려는 자신이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헬렌과 대화를 할 때마다 후웁! 거리면서 심호흡을 했다.
"여자 앞에만 서면 그렇게 되는 거야?"
"후웁! 여자 앞에서는 왠지 모르게 말을 더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고치려고 하다 보니."
헬렌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로 돌아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게 사실이었네."
"네? 뭐라고요?"
"어머나, 어서 퀘스트를 깨야지."
헬렌은 범려의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퀘스트를 해야 한다면서 둘을 데리고 산을 올랐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아서 해골 기병들이 오르는 데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헛! 저걸 봐."
산 중턱쯤 오르자 첫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아이스 골렘."
크기는 2.3미터가 넘는 몬스터다. 어디 가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몬스터는 아니다.
"상당히 딱딱해 보이는데."
순수한 얼음 덩어리로 이루어진 녀석이라서 굉장히 딱딱해 보이지만 동시에 골렘의 핵이 어디 있는지 한눈에 보였다.
"머리에 핵이 있군."
범려는 그 차가운 얼음 안에서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주먹만 한 핵을 보고 있었다.
"골렘이 몇 놈이나 올까."
주변에 널린 게 아이스 골렘이지만 공격을 한다면 몇 놈이 더 달려올 것이다.
"형님, 제가 앞장설게요."
"그래, 네가 고생 좀 해라."
취선이 골렘들과 전방에서 싸우게 된다면 헬렌과 범려가 녀석의 머리를 박살내면 되는 것이다.
취선이 앞으로 나오자, 범려는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헬렌을 불렀다.
"후웁! 헬렌 누나, 토네이도 준비해주세요. 여기를 한 방에 다 쓸어버리게."
"그건 위험해!"
"형님, 그건 미친 짓이에요."
"내가 하면 미친 짓 아니야."
범려는 자신이 하는 일이라면 미친 짓이 아니라고 단언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친 짓이다.
"어서 준비해!"
범려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헬렌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더니 순순히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기마 궁수들 한 번에 다 쓸어 와야 한다. 알았지!"
범려의 명령에 기마 궁수들은 말을 타고 달리더니 여기저기 흩어지기 시작했다.
다그닥다그닥!
기마 궁수들은 주변에 있던 모든 아이스 골렘들을 끌고 오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이건 미친 짓이야!"
취선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아이스 골렘들을 보더니 할 말을 잃었다.
"누나! 마법!"
"토네이도!"
범려의 말이 끝나자 우르르 몰려오던 아이스 골렘들이 전부 다 토네이도에 휩쓸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불화살!"
명령이 떨어지자 활을 들고 있던 모든 궁수들은 불화살을 날렸다.
불화살은 토네이도 안으로 들어가더니 목표에 명중이 되면서도 일부는 같이 회오리 안에 갇히고 말았다.
"회색의 빛!"
토네이도를 향해 공격 스킬을 시전하자 그 안에 있던 모든 아이스 골렘들이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벼락을 맞았다.
그런데 그 안에서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쿵! 쿵! 쿵!
많은 수의 골렘들이 몇 번 공격을 당하더니 그들의 몸이 조금 부서지면서 잔해들도 같이 날아다녔는데, 그 잔해들이 다른 골렘의 몸을 때리고 부수고 다시 다른 골렘을 두들겼다.
씨익.
범려는 그걸 보고 웃었지만 헬렌과 취선은 경악을 했다.
"역시 쉽군."
콰드득!
얼음들이 이제는 잘게 부서지더니 골렘의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모두 다 부서진 것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제일 궁금한 것은 헬렌이었다. 토네이도는 분명 강력한 범위 공격 마법이지만 연쇄 반응으로 그 안에서 서로 부딪치는 일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냥 도박이라고 해야 할까나."
토네이도가 무서운 것은 그 안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서로 부딪치는 것이다. 범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렇게 한 것인데 제대로 걸린 것이다.
"이제 다 쓸어갔으니 올라가죠."
골렘들이 준 경험치는 엄청나서 범려의 해골 병사들 전부 다 레벨이 1 올랐고, 범려도 레벨이 1 올랐다.
"경험치가!"
헬렌은 범려보다 레벨이 높은데 경험치를 보고 놀란 걸 보면 엄청나게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형님, 대단하십니다."
취선은 존경 어린 눈빛으로 범려를 바라봤다. 하지만 정작 마법은 헬렌이 썼는데, 존경의 눈빛을 받는 것은 범려였다.
"쑥스러운데. 내가 마법을 부린 것도 아닌데 말이야."
"맞아! 마법은 내가 썼어!"
헬렌이 마법은 자신이 써놓고 칭찬은 범려가 받은 것에 대해 약간 신경질을 부렸다.
"누나도 대단하죠."
"흥!"
엎드려 절 받는 건 싫은지 헬렌 나름대로 심통을 부렸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골렘들이 다시 나오기 전에 올라가자!"
범려의 말대로 골렘이 다시 생성되기 전에 위로 올라갔다. 그 뒤에는 좀 더 강력한 몬스터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전혀 그런 게 없었고, 에티들만 보였다.
"에티들도 한꺼번에 쓸어버릴까."
"쿨 타임이 아직 안 돼서 그렇게 못해."
범려는 살짝 아쉬웠다. 방금 같이 위력적인 마법을 몇 번만 더 쓴다고 한다면 충분히 이번 퀘스트를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아쉽다. 토네이도 두 번만 더 쓰면 몬스터들은 한순간에 없애버릴 수 있는데."
"형님, 그런 말 말아요. 전 얼마나 심장 떨렸는데요."
의외로 소심한 모습을 보이는 취선이었다. 범려는 해골 병사들이 박살날 각오로 마법을 쓰도록 유도한 것인데, 죽어도 아무런 피해 없는 취선이 벌벌 떨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범려는 도박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정공법으로 착실하게 공략해나갔다. 그리고 산 정산에 오르자 그 위에는 널찍한 공터가 있었고, 3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었다.
"여기가 얼음의 마법사가 사는 곳인가."
"형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저기 위에 봐요."
옥상에 파란색 로브를 입은 사람이 범려가 있는 쪽을 보고 있었다.
"너희들은 누구지?"
"누구기는, 마법사가 악당 짓을 한다고 해서 왔다!"
시작부터 까칠하게 나가는 범려였다. 그러자 헬렌이 옆구리를 툭 쳤다.
"그러다 시작부터 마법이 날아오면 어떻게 하려고……."
"후웁, 그, 그게……."
말투가 급격하게 조용해지면서 여자 앞에서는 힘을 못 쓰는 범려였다. 아무래도 병을 고치려면 조금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오호호호! 날 잡으러 온 걸보니 누가 시켰는지 알 만하군."
웃음소리가 요사스럽게 들려왔지만 옥상에 있던 마법사는 플라잉을 쓰면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플라잉… 저 마법서 어떻게 얻을 수 없을까."
플라잉 마법은 저서클 마법이다. 이 마법을 쓰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고 마나만 받쳐 준다면 대륙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플라잉 마법 내가 가르쳐 줄까?"
"네?"
얼음의 마법사가 마법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헬렌은 하마터면 당장 달려가 제자가 되겠다고 대답할 뻔했다.
"왜? 내 마법을 배우기 싫어?"
"저… 그게."
"누나! 진정해!"
취선은 마법서에 목매는 헬렌을 붙잡으면서 정신을 차리라며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내가 마법서 말고도 전사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서 같은 것도 있는데 그 기술서가 아마, 태풍 몰아치기였던데."
"태… 풍 몰아치기."
태풍 몰아치기는 전사 계열의 공통 범위 공격 기술이다. 전사 계열은 반드시 배워야 하는 거지만 그 기술서가 잘 떨어지지 않고,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싸기에 진짜 돈 많은 유저가 아니면 손도 못 대는 물건이다.
"……."
범려는 저 둘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자신은 모든 스킬들을 아르테미스가 가르쳐 주기에 기술서나 마법서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그대에게는……."
얼음의 마법사는 범려를 물질적으로 유혹해보려고 입을 열었지만, 해골 제작자라는 직업이 숨겨진 직업이라서 자신이 줄 서적이 없었다.
"둘 다 뭐 하는 거야! 당장 이리 와!"
범려는 두 사람을 불렀지만 이미 마법서와 기술서라는 이 2가지에 매혹이 되어 있었다.
"하, 하지만……."
여기서는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이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쳇! 나 혼자 하지."
범려는 결국 혼자 하기로 결심했다. 마법서나 기술서 따위가 필요 없는 범려는 해골들을 정렬시키더니 공격 준비를 했다.
"어머나, 성격도 급하기는. 하지만 그런 해골들을 가지고 날 잡으려면 어려울 건데."
"누가 해골 병사들과 같이 싸운대. 일대일로 승부하자!"
"호호호, 나와 일대일 승부를 하자는 사람은 처음이야. 좋아, 그 조건에 응하지."
범려는 해골들을 뒤로 물리고, 해골마를 탄 상태에서 일대일 싸움을 벌이려 했다.
"호호호, 나와 일대일로 싸우자는 녀석이 있으니 먼저 공격해. 선수는 양보하지."
"고맙다."
범려는 마법사와 일대일 승부를 해본 적이 없지만 질 거라 생각지도 않았다. 범려는 자신의 활 실력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이랴!"
범려는 멀리서 말을 달리더니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활을 당겼다. 그 화살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법사의 심장에 맞았다.
"크윽!"
게임이라서 큰 데미지만 줄 뿐 단번에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상당히 공격적인데."
"그게 내 장기니까."
얼음의 마법사는 범려를 향해 마법을 발현했다.
"아이스 볼트!"
작고 날카로운 얼음이 날아오자 범려는 해골마를 움직이면서 마법을 피했다.
"기마술이 대단한데."
"연습 좀 했지."
범려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화살이 날아들자 마법사는 당황하며 급히 마법을 전개했다.
"아이스 실드!"
역시 캐스팅 없이 즉시 시전을 했다.
범려는 지금 저 얼음 마법사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어떤 마법이 되었건 무(無) 캐스팅으로 마법을 부리는 것은 상당한 경지에 이른 마법사만 가능하다.
'무 캐스팅을 할 정도면 도대체 몇 서클인 거야?'
범려는 멈추지 않고 화살을 날렸고, 해골마를 타면서도 화살은 계속 마법사를 향해 날아들었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습니다.
치명타가 터졌다는 깔끔한 멘트가 눈에 보였고, 범려는 웃으면서 마법을 피해 다녔다.
"보통 녀석이 아니군."
"이제 알았냐."
범려의 기사(騎射) 실력은 이미 평범함을 넘어서 비범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지겠어. 블리자드!"
"이런!"
무 캐스팅으로 마법을 발휘하자 범려는 재빨리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블리자드는 얼음 계열 마법 중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있는 마법이다.
"달려!"
범려는 얼음을 몇 대 맞자 생명력이 멈추지 않고 계속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크윽! 일반 마법사가 아니야."
절대로 그냥 마법사가 아니었다. 슬슬 저 얼음의 마법사의 정체가 의심되었다.
"너, 정체가 뭐야!"
"호호호, 내 정체가 뭔지 몰라? 마법사야. 세상의 신비한 힘을 다루는 마법사지."
범려의 눈에는 절대 그냥 마법사로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사람들과 파티를 몇 번 안 해봤지만, 유저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들으면서 이 마법은 어떻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절대 블리자드는 무 캐스팅으로 발휘가 안 되는 마법이다. 그건 게임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짓이야.'
범려는 활을 쏘면서도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공격을 하면서도 한 가지 이상의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해골들을 부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된 부산물이다.
"너, 인간이 아니지!"
범려가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건, 뭔가 있었다. 방금 대답으로 확신이 섰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다. 그럼 뭘까. 이렇게 마법을 고강하게 쓸 수 있는 존재는 하나였다.
"드래곤이구나!"
"흐윽!"
자신의 정체에 정곡을 찔렸는지 잠시 신음을 흘렸지만 공격을 멈추지 않은 걸로 봐서 확실한 이름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냉혈의 아멜리아!"
"안 돼!"
얼음의 마법사는 냉기가 풀풀 날리는 모습에서 벗어나 거대한 용으로 모습을 바꾸고 말았다.
아멜리아의 모습은 곳곳에 얼음 같은 수정이 솟아나 있었고, 비늘은 파란색을 띠고 있었다. 심지어 눈동자마저 파란색이었다.
「인간 녀석 나의 유희를 방해하다니.」
아멜리아는 분노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아르테미스가 부탁한 일인가.」
"당연하지!"
아멜리아는 아르테미스라는 말을 듣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수호자 역할이나 하라는 거군.」
아멜리아는 거대한 몸을 날갯짓하면서 저 높은 하늘로 날아오르고 말았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얼음의 마법사라는 존재가 냉혈의 아멜리아라는 것이 확인되자, 다른 두 사람은 멍하니 하늘로 날아간 아멜리아를 보면서 입을 벌렸다.
"아르테미스!"
범려는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뜨자 바로 아르테미스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범려 님. 벌써 제 부탁 하나를 완수하신 모양이네요."
"물론이죠. 부탁하신 대로 얼음의 마법사를 돌려보냈습니다."
"잘하셨어요. 여기 마정석."
범려는 마정석을 받더니 그걸 확인했다.
-마정석
아이템의 능력을 상승시키는 마법의 돌. 연금술사들이 사용한다면 현자의 돌을 만드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좋은 물건이야."
범려가 퀘스트를 완료하자 다른 두 사람 역시 황급히 퀘스트를 완료하고 마정석을 받았다.
"100골드 벌었다!"
헬렌은 100골드 벌었다면서 무척이나 좋아했다.
"형님, 마정석 저한테 주실 수 없을까요."
"100골드나 하는 물건인데……."
범려는 쉽게 마정석을 줄 수가 없다. 화살 값으로 써야 한다.
"제가 돈 드릴 테니 저한테 파세요."
범려는 자신에게는 나중에 써도 되지만 일단 돈을 더 모아야 하기에 선심 쓰듯이 물건을 취선에게 팔았다. 대신 100골드를 다 받지 않고 80골드만 받았다. 범려는 취선에게 제 값을 다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의 깍듯한 행동에 범려는 오히려 미안했다.
"아니야."
다시 파티는 어디 갈 곳이 없어졌지만 범려는 달랐다.
"후, 아티잔으로 돌아가야 하나."
"형님, 아티잔으로 왜 돌아가요. 여기서 사냥하면 되는데."
"아니, 내 직업 퀘스트 때문에 그래."
범려가 직업 퀘스트 때문에 간다고 말하자 취선과 헬렌은 약간 수긍을 했다.
"그럼 같이 가요. 목적지는 아세요?"
"알지. 아티잔의 레어."
"네?"
아티잔의 레어라는 말을 듣자 두 사람은 동시에 경악을 했다.
"레어에 들어간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는 아시죠."
"몰라. 일단 퀘스트 때문에 가야 해."
"거기 가면 죽어요. 고요의 아티잔의 모습을 정면으로 보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없어요."
취선은 범려를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직업 퀘스트라는 게 말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같이 가자, 범려야."
헬렌은 범려에게 받은 게 있어서 그런지 그걸 갚기 위해서라도 같이 간다고 말하자, 취선은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되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그래도 가야 해."
범려는 다시 고요의 아티잔 지역으로 들어왔고, 드래곤 레어를 찾기 위해서 움직였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정말 드래곤을 상대해야 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만난다면 해골들을 뒤로 빼야겠어."
드래곤 브레스라도 날아온다면 그야말로 모든 게 끝이다. 고요의 아티잔을 찾는 일은 그야말로 힘들었다.
드레곤이 살고 있는 집을 찾는 일이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아직 아티잔을 하늘에서 봤다는 사람은 있어도 그들의 레어를 발견했다는 소리는 없었다.
"드래곤이 어디에 있을까."
"어디 정보 길드 같은 곳에서 정보를 알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헬렌의 말에 범려는 귀가 번쩍 뜨였다. 정보 길드라면 자신이 알고 있다. 분명 반돌 도시에 있는 술집이었다.
"다들 날 따라와."
범려는 술집을 떠올리며 말을 타고 반돌 도시를 향해 달려갔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도시 가까이 접근하자 범려는 해골들을 땅속으로 숨으라고 지시하고는, 후드를 쓰고 도시 안에 있는 술집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뭘 드릴까요."
범려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티잔의 집을 찾으려고 왔다."
"음, 손님, 공짜로는 안 됩니다."
공짜가 안 된다는 말에 범려는 조심스럽게 2실버를 술집 주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주인은 그걸 냉큼 낚아채더니 자신을 따라오라는 눈빛을 줬다.
"뭐, 뭐야."
헬렌은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 어리둥절했지만 취선은 어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이야, 신기하네. 우리도 가요, 누나."
"으응."
"두 분은 안 됩니다."
주인은 헬렌과 취선을 가로막으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둘은 어쩔 수 없이 술집에서 기다려야 했고, 범려 혼자만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범려 님. 찾고 계시는 정보가 있다고 하던데."
"다른 건 아니고, 아티잔의 레어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아티잔의 레어라는 말에 정보 길드의 요원은 인상을 찡그렸다. 용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왔다는 말에 인상이 좋을 리 없었다.
"그건, 가격이 좀 비쌉니다."
"위치가 어디인지 알고 있군요."
범려는 확신에 차 말했다. 드래곤의 레어를 찾는 데 어느 정도 지출은 각오하고 있었다.
"200골드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범려는 돈 200골드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길드 요원은 범려 앞에 지도를 하나 내밀었다.
"이것이 고요의 아티잔에 레어를 표시한 지도입니다.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서 주문이 필요합니다. 물론 지도에 다 적혀 있습니다."
너무나 쉽게 정보를 얻었다. 대신 돈 200골드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암흑가의 명성이 2 증가했습니다.
범려는 암흑가의 명성이 2 증가했다는 소리를 듣고 참 어이가 없었다. 정보를 샀는데 명성이 오른 것이다.
"돈 들어가는 구멍을 하나 찾은 격이네."
암흑가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범려 자신도 모른다. 하지만 정보를 얻는 곳이라면 절대적으로 거쳐야 하는 곳이다.
"형님."
"범려야."
"가자."
범려는 술집을 나오더니 바로 지도를 펼치며 보여 줬다.
"이곳이 아티잔이 있는 곳이다."
"어디요? 어디에 있는데요. 지도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이게 안 보여?"
범려 자신의 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지도가 바로 옆에 있는 취선에겐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헬렌에게도 보여 줬지만 그녀 역시 지도가 보이지 않았다.
"아, 나만 볼 수 있는 건가."
비싼 돈 주고 구입한 지도는 남들이 쉽게 알아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런 건가."
"뭐가요? 형님이 들고 있는 그 종이 어디다 쓰는 거예요?"
"음, 나한테만 보이는 물건이야. 몰라도 돼."
헬렌과 취선은 범려만 볼 수 있는 물건이라고 하니 바로 고개를 돌리고 그가 안내해주는 길로 가기 시작했다.
"지도가 꽤나 상세하군."
마을에서 사는 일반 지도와 다르게 굉장히 자세하게 나왔고, 이런 지도라면 아무리 길치라도 고요의 아티잔을 찾아갈 수가 있었다.
"이곳이다."
"초원?"
다들 눈앞에 펼쳐져 있는 초원을 보면서 어디에 드래곤의 레어가 있는지 궁금했다.
"지도에 주문이 있었지."
아티잔의 레어의 입구를 찾기 위해서는 입구로 들어가는 주문을 알아야 했다.
"세상의 고요, 모든 것이 아티잔 앞에 숨죽이는 순간 문이 열린다!"
우우웅-!
범려는 두 사람이 들릴 정도로 크게 외쳤지만 헬렌과 취선은 그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이번에는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헉!"
"이게 레어 입구?"
평범한 초원에 갑자기 이상한 공간의 문이 열리면서 그 안으로 회오리치며 문이 열린 것이다.
"들어가자."
범려가 해골들과 같이 레어로 들어가자 헬렌과 취선이 그들을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