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강력한 병사
문을 통해 들어오자 안에 펼쳐진 광경은 참으로 신기했다. 작은 동산이 있고 그 동산 주변으로는 꽃과 푸르른 하늘과 잔디가 보였다.
"신기한 레어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레어는 동굴을 연상시키지만 이곳에 사는 드래곤들은 전혀 그런 게 없다. 자신만의 아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사는 것이다.
「누구냐! 누가 내 집에 함부로 들어오는 것이냐!」
"이크!"
처음으로 아티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경계와 분노를 담고 있었다.
"형님, 이대로 있다가 우리 다 죽는 거 아니에요?"
"……."
범려는 취선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드래곤의 레어에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것이 걸렸다.
"제길, 해골들을 바깥에다 숨겨 놓고 올걸."
이대로 같이 있다면 죽어도 이것들과 같이 죽는다. 범려는 도 아니면 모라는 심정으로 아티잔이 있는 곳을 향해 외쳤다.
"아티잔 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야기? 무슨 이야기를 말 하는가.」
범려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상대가 대답을 했다는 것이 조금 안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벌써 드래곤 브레스가 날아왔을 것이다.
"저희는 여기가 처음이라서 잘 모르는데 아티잔 님은 어디게시는지요."
"여기 있다."
"헉!"
범려 일행은 어느 순간 마법으로 텔레포트가 되었고, 눈앞에는 청록색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늘어트린 여자가 있었다.
"내가 고요의 아티잔이다.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물론입니다."
범려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고, 헬렌과 취선은 약간 긴장을 했다. 아차 하는 순간에 3명의 목숨은 저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아르테미스 님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회색의 전승자."
아티잔은 범려를 회색의 전승자라고 불렀다. 범려는 해골들을 다루지만 천사에게 선택된 사람. 그래서 회색의 전승자라고 부른 것이다.
"아르테미스 님이 회색의 전승자를 이곳으로 불렀다면 답은 하나, 마법의 힘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는 거지."
"마법의 힘?"
범려는 마법의 힘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법사……."
"이해가 빠르군."
아티잔은 모습과 목소리는 여자지만 말투는 여성과 동떨어진 말투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지."
"무슨 일인가요?"
"마법사를 보호하고, 강력한 방패이자 창이 되어줄 병사를 만들어 오게."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용의 징표를 얻었습니다.
-아티잔의 조건
고요의 아티잔이 마법의 힘을 주기 전에 그들을 보호할 병사들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해골 제작자는 그 병사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난이도:C
완료 조건:강력한 병사를 만든다.
보상:마법의 파편
"알겠습니다."
범려는 퀘스트 완료 메시지와 함께 또 다른 퀘스트가 나오자 그걸 수락했다.
퀘스트 수락을 하자 고요의 아티잔은 미소를 지으면서 범려에게 다가갔다.
"그대에게 고요의 축복이 있기를……."
쪽!
"어머나."
"헉! 볼에……."
고요의 아티잔은 스스럼없이 범려의 볼에 뽀뽀를 해버렸고, 범려는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 설마 드래곤이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
"그대에게 고요의 축복을 내렸으니 혹 다른 수호룡들을 만나더라도 경계하지 않을 것이다."
-고요의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다른 드래곤들을 만나더라도 먼저 공격당하지 않습니다.
드래곤 레어에 찾아오면 대부분 적으로 간주되어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 이번 경우만 해도 범려는 퀘스트가 아니었다면 브레스를 맞고 아르테미스와 영혼의 세계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야 했다.
"가, 감사합니다."
비록 게임이지만 여성에게 뽀뽀를 받아본 적은 처음인 범려였다. 첫 뽀뽀가 드래곤이라는 게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다.
"일단 이곳에 왔으니 어디로 다시 보내줄까?"
아티잔은 이왕 이렇게 왔으니 자신들이 원하는 곳으로 보내 주겠다며 선뜻 호의를 베풀었다.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으로 보내주십시오."
범려는 다시 아멜리아 지역으로 돌아가서 사냥을 하고 싶었다. 또한 강력한 병사를 얻으려면 그에 걸맞은 사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딱!
아티잔이 손가락을 딱 튕기자 해골들과 범려의 파티를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으로 이동시켜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으로 돌아오자 다들 정신이 멍했다.
"여기가 어디지?"
"대단해.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취선은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에서 많은 사냥을 하기에 단숨에 알아차렸다.
"드래곤들이라는 녀석들 역시 수호룡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네."
다들 드래곤의 힘에 감탄하고 있을 때 헬렌이 범려의 옆구리를 툭 찔렀다.
"드래곤이 뽀뽀해준 소감이 어때?"
"앗! 그, 그게……."
범려는 아직도 순결한 청년이었다. 여자의 손길을 원하면서도 쉽게 손을 뻗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다.
"어머, 얼굴 빨개지는 것 봐봐."
헬렌은 이런 귀여운 범려를 보고 미소를 지었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눈초리를 받는 것 같아서 쉽게 범려에게 손대지 못했다.
"사냥 가자!"
범려는 얼굴이 붉어져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냥을 가자며 화제를 돌려 버렸다. 이대로 더 있다가는 취선한테도 놀림을 받을 것 같았다.
"형님! 사냥하는 겁니다!"
"그렇지! 사냥!"
갑자기 두 남자가 두 주먹 불끈 쥐며 사냥에 열의를 불태우고 있자, 옆에서 보고 있던 헬렌은 그들이 사냥에 미친 인간들처럼 보였다.
"사냥에 미친 바보들."
두 남자는 그렇게 열렙을 외치며 사냥을 시작했다.
"아, 잠깐. 그러고 보니 나 퀘스트 보상으로 이상한 아이템을 받았어."
-용의 징표
단 한 번 미지의 던전을 알려 줍니다. 던전의 길을 보여 준 뒤 자동적으로 소멸합니다.
범려는 용의 징표의 내용을 보는 순간 눈이 빛났다. 미지의 던전이라면 아직 사람들 손에 발견이 안 된 던전을 의미할 것이다.
"후후후, 던전을 보여 주는 아이템이라."
"던전? 형님, 이 근처에는 던전이 없는데요."
"이 아이템을 봐봐."
범려는 취선에게 아이템을 보여 주자 그는 눈이 동그래졌다. 미지의 던전은 100퍼센트 미발견 던전이다. 지금 아멜리아 지역에 드러난 던전은 10개가 되지 않았다.
"오! 미지의 던전을 보여 주니까 아주 좋네요."
"아쉽게도 단 한 번이다."
"지금 써요. 전 한 번도 던전을 발견해본 적이 없어요. 찾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요."
취선의 말에 범려는 고민을 잠깐 하더니 이리저리 계산도 해봤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발견될 던전, 내가 찾는다면 이득이 좀 있지.'
"그래, 사용하자. 어차피 나중에는 밝혀질 던전이지만 해골들 레벨도 올려야 하고, 던전에 가면 경험치가 조금이라도 높으니."
범려에게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경험치는 거의 차이가 없지만 자신이 부리는 해골 병사들은 다르다.
"사용한다!"
우우웅!
징표가 빛을 내면서 지도를 보여 주자 3명은 그 지도를 보면서 위치를 추적했다.
"이곳은 제가 잘 알고 있어요. 형님, 저기 보이는 곳은 아마고산일 거예요. 거기에는 주변에 몬스터가 없어서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이죠."
"여기는 나도 알아. 주변에 있는 몬스터가 별로 없잖아."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이라서 던전이 발견 안 된 것 같은데."
범려의 말대로 아마고 설산 주변은 몬스터가 별로 없다. 그리고 있다 하더라도 아이템을 안 주는 몬스터만 있다.
"던전의 이름이 매머드 던전."
"매머드라면, 그 털북숭이 코끼리?"
"상당히 크지 않을까."
코끼리 종류는 육지에서 최고의 크기를 자랑하는 코끼리다. 이런 녀석들이 던전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는 범려였다.
"형님, 일단 가죠."
"그래, 가자. 왠지 험난한 길이 될 것 같지만."
던전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바로 용의 징표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가 입구구나."
눈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던 던전의 입구가 범려의 손에 빛을 보게 되었다.
"입구가 무진장 큰데."
눈을 치우다 보니 느껴진 것은 입구가 굉장히 크다는 것이다. 대충 인도코끼리 3마리는 넉넉하게 드나들 수 있는 크기였다.
"들어가죠, 형님."
다들 던전에 들어가자 전에도 봤던 문구가 나타났다.
-전쟁 모드로 자동 변경됩니다.
-던전의 크기가 크게 확장됩니다. 몬스터의 숫자가 증가합니다.
-최종 보스, 중간 보스의 체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최초의 발견자입니다. 드롭되는 아이템이 1개 추가됩니다. 이 효과는 7일간 지속됩니다.
몇 개의 메시지가 뜨자 제일 당황한 것은 취선이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 모양이었다.
반대로 헬렌은 전에 전쟁 모드 난이도를 해봐서 별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7일간의 아이템 추가 드롭이라는 것은 눈길을 끌었다.
"취선, 앞으로 나와 네가 탱커다!"
"예! 형님!"
취선은 바바리안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바로 탱커가 되었다. 해골 병사들은 취선을 보조해줄 것이고, 헬렌은 마법사로서 거기에 걸맞은 공격을 펼칠 것이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주변에 있는 매머드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크기는 정말 컸다. 대략 5미터는 될 법한 크기였다.
"크기가 무척 큰데 무리의 숫자는 3마리?"
한눈에 딱 봐도 무리를 이루는 숫자가 적었다. 숫자가 적은 만큼 이놈들 개개인이 강할 거라는 생각에 범려는 긴장했다.
"헬렌 누나, 늘 하던 대로 부탁해요."
"알았어!"
헬렌은 기합이 잔뜩 들어갔는지 대답이 힘찼지만 범려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내가 먼저 녀석들을 끌고 올게."
범려가 매머드의 그 넓은 머리를 향해 화살을 날리자 치명타가 터지면서 제대로 녀석들이 반응을 했다.
"온다. 준비해!"
"우오-!"
-바바리안의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전투력이 10분간 150 상승합니다.
범려는 방금 바바리안의 버프에 미소가 지어졌다. 해골들에게는 정말 필요한 버프였기 때문이다.
"공격-!"
범려의 파티와 매머드의 전투가 시작되자 매머드들은 발을 쿵쿵거리면서 땅을 울렸고, 혹은 자신들의 기다란 코를 이용해 이리저리 휘젓는 공격을 펼쳤다.
"회색의 빛!"
화살촉 앞에 밝은 섬광이 모이면서 휘몰아치자 범려는 바로 화살을 날리면서 빛의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매머드들이 너무 큰 관계로 겨우 하나의 매머드에게만 피해를 줬고, 다른 녀석들은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답이 없었다.
"이것들이 너무 커서 문제구나."
"아이스 애로우! 아이스 스피어!"
헬렌은 마법을 연달아 쏟아내면서 엄청난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기병들은 저쪽을 공격해!"
범려는 해골들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공격을 당하면 다른 녀석들을 대신 맞게 하거나 고루고루 공격할 수 있도록 변화를 자주 줬지만, 워낙 덩치가 크고 체력이 좋은 녀석들이라서 어려움이 많았다.
"쓰러진다!"
매머드들이 쓰러지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에서 물러났다.
"이 녀석들 죽을 때까지 사람 긴장하게 만드네."
범려가 죽은 녀석들의 시체를 뒤지자 별다른 것은 볼 수가 없었고, 약간의 돈만 나왔다.
지금은 파티 상태라 돈은 자동적으로 분배가 이루어졌다.
"가뿐하군."
취선이 가뿐하다면서 어깨를 으쓱거렸지만 사실 범려는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 해골들이 나머지 두 매머드들을 상대하느라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아이고, 전투는 내가 다 하는 것 같네.'
범려는 전투가 일단락되자 다음 매머드들을 상대로 바로 화살을 날리며 전투를 시작했다.
역시 숫자는 전과 동일한 3마리였다.
"으하하! 이놈들아!"
취선은 전투를 할 때마다 산적처럼 말을 하고 전투를 한다. 전생에 산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느낌이 강했다.
"매머드 하나는 확실히 잡아주는군."
취선은 혼자서 매머드 하나를 철저하게 마크해주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쪽은 신경을 끊을 수가 있었다.
던전에서 매머드들을 사냥하는 속도가 붙으면서 범려는 다소 편안한 표정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첫 중간 보스가 모습을 보였다.
"매머드 전사."
이놈은 다른 매머드들과 다르게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상아는 아주 뾰족하게 날이 서 있어서 한번 찔리면 상당히 아플 것 같다.
"털북숭이 코끼리가 갑옷을 두르고 있다니……."
"형님! 저한테 맡겨만 주십시오."
자신감 넘치는 말로 취선은 대답했지만 범려는 전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철저하게 전술적으로 상대를 분석했다.
'취선이 상대를 한다고 해도 몇 대 맞으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거야. 여기는 사제가 없으니 더 빠르겠지.'
결국 취선이 상대하는 시간을 고려해볼 때 그리 오래 붙잡지는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너 혼자 상대하다가는 몇 대 맞고 죽는다. 그러니 기병들과 연계해서 처리해야지."
범려는 기병들의 생명력이 높다는 부분을 생각해서 한 번씩 돌아가면서 맞아주며 한다면 시간을 꽤 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두 대는 맞아줄 생각이야."
범려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깔 뚫기를 쓴다면 눈이 2개짜리 녀석이니까 6초 정도는 묶어둘 자신이 있었다.
"정렬!"
병사들이 정렬을 하자 취선도 그 틈에 끼어 줄지어 섰다. 취선은 유저이지만 이미 해골 병사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공격은 녀석의 측면과 뒤다! 정면은 내가 정해준 녀석만 공격해!"
모든 해골들이 범려의 목소리를 듣고는 다들 자신이 어디로 공격해야 할지 파악해나갔다.
"취선, 선방은 너다!"
"예! 형님!"
취선은 양손 도끼를 꽉 움켜쥐면서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도록 했다.
"돌격 앞으로!"
명령이 떨어지자 해골들이 우르르 뛰어가더니 매머드 전사를 순식간에 둘러싸 버렸다.
매머드는 코끼리 특유의 소리를 내면서 공격했지만 녀석의 앞에는 취선 혼자, 나머지들은 뒤와 옆에서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취선! 옆으로 빠져!"
취선은 범려의 명령대로 몇 대 쳐 맞고 옆으로 빠졌다. 그 즉시 기병 하나가 코끼리의 앞을 가로막더니 공격을 한 대 맞아줬다.
기병들이 한 대씩 다 맞았을 때 범려는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는 재빨리 녀석의 눈깔을 팍 뚫어주는 실력을 과시했다.
"위에 올라타라!"
범려가 해골 병사들에게 위에 올라타라는 말을 하자, 그들은 거침없이 매머드 전사의 위에 올라타더니 그 위에서 찌르고 베고를 반복했다.
"생명력 쭉쭉 빠진다."
매머드 전사의 생명력이 빠지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자 범려는 녀석이 무슨 기술을 쓰기 전에 확실히 제압을 할 때가 됐음을 느꼈다.
"다른 눈도 뚫어줘야지."
다른 한쪽 눈도 공격당하자 녀석은 이제 눈앞이 깜깜해졌다.
"클클클."
사악한 미소를 날리면서 범려는 계속 화살을 날렸고 간간이 떨어지는 벼락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렇게 전투가 지속되고 있을 때 매머드 전사의 생명령이 0퍼센트가 됐다.
쿠에엑-!
매머드 전사가 입에서 붉은 선혈을 뿜으면서 차디찬 바닥에 쿵 소리와 함께 쓰러지자 제일 기대가 되는 것은 아이템이었다.
"무슨 아이템이 떨어진 거냐!"
최대의 관심사 아이템이었다.
-태풍 몰아치기
순수하게 무기를 휘둘러 작은 태풍을 만든다. 일정 범위 안에 있는 적은 태풍에 휩쓸린다. 전사 계열 공통 기술
-지진파
무기를 내려찍어 일정 범위 안에 땅을 울리게 만든다. 전사 계열 공통 기술
이건 누가 봐도 취선이 사용해야 하는 기술서다. 뭐, 중간 보스야 아직 좀 남아 있기에 기다리면 다른 아이템이나 서적이 나올 확률이 높다.
"취선이는 좋겠네."
헬렌은 약간 아쉬운 듯이 말했지만 취선은 입이 귀에 걸렸다.
"으흐흐."
참을 수 없는 기쁨에 입에서 절로 침이 흘러나왔다. 전사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태풍 몰아치기가 나왔고, 또 다른 범위 기술인 지진파가 나왔다.
"얼른 배우고 가자."
범려는 기술서를 보고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취선이 2개의 기술서를 들고 책을 보자 번쩍이는 빛이 두 번 발휘되었다.
"형님, 가요!"
이제 2개의 기술을 번갈아 가면서 엄청난 위력을 보여 줄 취선이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어디 활은 안 나오나.'
범려는 조심스럽게 활을 찾았다. 슬슬 무기를 바꿔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일반 매머드들은 취선의 새로 배운 2개의 기술 덕분에 굉장한 속도로 잡아냈다. 특히 태풍 몰아치기는 취선을 중심으로 작은 태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무기를 휘둘렀다.
"우아!"
헬렌은 2개의 기술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음, 조금 빨리해도 되려나."
범려는 슬슬 지루해졌다. 사냥이 지루한 게 아니라 시간이 오래 걸려서 지루한 것이다.
"이제부터 좀 더 빨리 사냥을 할 테니까 긴장해."
범려의 그 한마디로 두 사람은 긴장했다. 범려와 같이 사냥을 해봐서 알지만, 그는 늘 멈추지 않고 몬스터를 끌고 온다. 물론 사냥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형님, 이거 기술 쿨 타임이 5분이에요."
"굉장히 짧군. 당장 해야겠어."
괜히 쿨 타임을 말했다. 범려는 그 5분이라는 시간에 타임이 머릿속에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헬렌 누나, 마법은 뭘 써야 하는지 알죠?"
"으응."
헬렌은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자신의 마나가 전투를 할 때 잘 버텨 줄지 고민이었다.
"시작!"
범려의 입에서 시작이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매머드 무리를 끌고 왔다.
"태풍 몰아치기!"
취선은 바로 기술을 쓰면서 몬스터들이 자신을 보도록 했지만, 범려는 그걸 이용해 그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갔다.
"다음!"
한 무리가 죽어가고 있으면 즉각 다음 무리가 달려왔고, 취선과 헬렌은 그때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뭐 해! 빨리 움직여!"
말을 타고 움직이는 범려는 전투 상황을 아주 넓게 보며 지휘와 전투를 병행하고 있었다.
'죽을 맛이네.'
취선은 속으로 어디 최종 보스와 싸우는 것도 아닌데, 지독하게 움직이는 범려를 보면서 악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중간 보스가 보인다. 힘내!"
범려의 말대로 빠른 속도로 사냥을 하자 어느새 또 다른 중간 보스를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피에 젓은 매머드냐."
그 이름에 걸맞게 온몸이 피를 뒤집어쓴 매머드가 하나 보였다. 다른 매머드 무리는 이미 정리가 끝난 상태라서 넓은 공터가 만들어졌다.
"저놈 눈이 붉은색이네."
범려는 버서커를 살짝 의심했다. 버서커는 마법사 다음으로 어렵지만 동시에 바보다.
"먼저 기마 궁수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공격을 펼친다. 녀석이 너희들을 쫓기 시작하면 원을 그리면서 움직여라. 그 원 안에서 일정하게 펼쳐진 상태로 조금씩 공격을 한다."
일명 개 경주를 하는 식으로 진형을 만든다는 소리다. 개 경주의 관건은 작은 원형의 경기장과 개들이 쫓아갈 토끼 인형이 필수다.
기마 궁수는 빙글빙글 도는 토끼가 되는 것이고, 그 원을 형성하면 다른 병사들이 둥그렇게 원형진을 구사해 자리를 고수하며 공격한다.
"시작해!"
기마 궁수들은 범려의 말대로 먼저 공격을 시작하자 녀석이 쫓아왔다.
"빙글빙글 돌아!"
처음은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움직이더니 그 원이 점점 작아졌다.
"움직여!"
다른 병사들은 빠르게 그 원 안으로 들어가더니 자리를 잡고 녀석이 지나가면 조금씩 때렸다.
나머지 궁수들은 원 안에서 활을 당기며 공격을 펼쳤고, 혹시 원 안에 있는 녀석들에게 어그로가 몰릴까 봐 공격을 하다가도 잠시 멈추고 다시 공격했다.
쿠어-!
-피에 젖은 매머드가 광폭화 상태가 됩니다.
범려의 예상대로 미친 매머드가 되자 달리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저게 덩치 큰 코끼리라는 게 의심되는 순간이다.
"전속력으로 달려!"
기마 궁수들의 속도가 매머드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점점 아슬아슬한 거리를 두면서 뛰자 범려는 긴장이 되었다.
"흩어져!"
20기나 되는 기마 궁수들이 동시에 흩어지자 순간적으로 매머드는 혼란이 찾아왔다. 범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녀석의 눈을 공격했다.
-눈을 공격당했습니다. 광폭화 상태로 인해 혼란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광폭화 상태라서 혼란에 안 걸린다는 메시지를 보자 절로 욕이 나왔다.
"개XX."
동시에 매머드는 범려를 향해 뛰어왔고, 그는 해골마를 달려 아까처럼 같이 빙글빙글 돌았다.
"취선! 태풍 몰아치기!"
"태풍 몰아치기!"
달려오는 녀석에게 바로 기술을 걸자 피에 젖은 매머드는 대상을 취선으로 잡고는 공격을 했다.
"뛰어들어!"
해골들이 범려의 명령대로 뛰어들자 매머드 한 마리를 두고 하얗게 뼈들이 뒤덮었다.
"프리징!"
피에 젖은 매머드는 몸이 느려지기는 했지만 광폭화 상태라서 그런지 발이 얼어붙지 않았다.
"아이스 스피어!"
"회색의 빛!"
피에 젖은 매머드의 생명력은 이전에 많이 떨어져 있어서 남은 수치가 겨우 10퍼센트였고, 버서커 상태라 방어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죽었다!"
피에 젖은 매머드는 거칠게 반항했지만 얼마 가지도 못하고 죽었고, 아이템을 바로 확인했다.
-상혼(象魂)의 팔찌
피에 젖은 매머드의 영혼이 들어 있는 팔찌
옵션:체력+20
자신의 생명력 400을 소모하여 10분간 파티 전체에게 공격력과 방어력을 3% 상승시켜 주는 상혼의 힘을 사용한다.
-메스 헤이스트
파티 전원 5분간 가속 상태를 만든다.
"마법서다."
헬렌은 마법서를 보자 흥분을 했다. 그동안 마법사가 해줄 수 있는 버프가 없어서 문제였는데, 그게 나온 것이다.
"헬렌 누나가 마법서 가져가요."
"호호, 고마워."
마법서는 헬렌이 가져갔고, 남은 아이템인 상혼의 팔찌를 어떻게 처분하느냐에 달렸다.
"이건 형님이 가져가세요. 전 벌써 기술서 두 개나 얻었잖아요."
범려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선뜻 이 아이템을 내주니 고맙게 받아들였다.
"고맙다."
범려는 조심스럽게 상혼의 팔찌를 착용하고는 그 힘을 사용해봤다.
"상혼의 힘!"
범려의 생명력 400이 쑥 하고 사라지더니 해골들을 포함 전원 공격력 방어력이 3퍼센트 증가했다.
"괜찮은데. 생명력 400 빠져나가는 게 타격이네."
이건 많이 써야 한두 번 수준에 머물 것 같았다. 무턱대고 남발을 할 만한 스킬이 아니었다.
"형님이야 뒤에서 공격하니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취선의 말에 일리는 있지만 그래도 전투를 하다 보면 모른다. 철저한 생명력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도 전투가 벌어지다 보면 모르는 거야."
범려는 아이템 분배가 끝나자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헤이스트!"
"으아-!"
"상혼의 힘!"
-가속 상태가 5분간 유지됩니다.
-바바리안의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10분간 전투력이 150 상승합니다.
-상혼의 힘을 사용하셨습니다. 10분간 파티 전체 공격력과 방어력이 3% 상승합니다.
버프는 다 같이 시간을 맞춰서 해주는 게 잊어먹지 않는다. 범려는 생명력을 400이나 더 손해 보기는 했지만 사냥은 계속되었다.
버프의 위력은 절대적이라 할 만큼 좋았다. 특히 메스 헤이스트는 최고의 버프라고 할 정도로 무서웠다.
'이건 거의 버서커 수준이잖아.'
범려의 활을 쏘는 속도는 빠른 편에 속한다. 그런데 헤이스트 버프가 걸리자 이건 연사 수준의 속도가 나오는 것이다.
"연노병 연사!"
설마 하는 생각에 연사를 시전하자 연노병의 공격 속도는 기가 막힐 정도였다.
"으아, 좋기는 한데 화살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화살이 걱정이었다. 어찌 되었든 던전의 클리어 속도가 높아졌지만 피에 젖은 녀석을 잡은 뒤로 중간 보스는 나오지 않고 오로지 일반 매머드들만 가득했다.
"중간 보스는 어디 간 거지? 더 이상 없는 건가."
"아이템-!"
2개씩 아이템을 주는 녀석들이 안 나오니 아쉬웠다.
"형님, 저기 보스 방이 보이는데요."
"정말 최종 보스 방이다."
딸랑 중간 보스 두 녀석을 죽이고 벌써 최종 보스 방이었다. 최종 보스라는 걸 한눈에 알아본 이유가, 녀석은 흰색 털을 가지고 덩치는 무식하게 큰 백색의 매머드였기 때문이다.
"백색의 더스틴……."
생긴 것부터 심상치 않은 포스를 뿌리고 있는데, 다른 녀석들과 차원이 다른 힘을 발산했다.
"위험한 놈으로 보이는데."
"형님, 어느 던전이나 최종 보스는 다 위험하잖아요?"
사실이다. 어느 던전이나 최종 보스는 위험한 존재이다.
"그런가. 뭐, 상관없어. 마법만 안 쓴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으니까. 다들 정렬해!"
병사들은 흰색의 매머드를 잡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보스를 잡기 전에 마지막 버프를 했다.
"버프 완료!"
"공격!"
취선은 앞으로 달려가더니 가장 먼저 녀석의 시선을 잡아끌었고, 그 뒤를 이어서 해골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쿵!
흰색의 매머드가 발을 한 번 땅에다 찍자 주변이 한순간에 흔들렸다.
-더스틴의 발 구르기에 당했습니다. 30초간 공격 속도가 20% 감소합니다.
"젠장!"
공격 속도가 생명인 파티인데, 그게 무너졌다. 이 디버프를 제거할 방법이 없다. 꼼짝없이 30초 동안 어려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면 취선이 죽는다."
공격 속도가 느려지자 취선은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해골들도 마찬가지다.
디버프의 시간이 다행이 30초라 여기고 있을 때 다시 발 구르기가 이어졌다.
"뭐가 이렇게 빨라!"
-더스틴의 발 구르기에 당했습니다. 30초간 공격 속도가 20% 감소합니다.
-발 구르기의 효과가 중첩됩니다. 20% 추가 감소됩니다.
"이놈 쿨 타임이 30초짜리가 아니야?"
더스틴의 발 구르기는 20초의 쿨 타임을 가진 기술이었다. 이대로 가면 공격 속도가 심각해진다.
범려는 또 한 번의 감속 효과로 인해 40퍼센트가 되자 녀석의 기술이 20초 단위로 바뀌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도박이다! 내 말 잘 들어. 내가 점프하라고 하면 전원 점프해!"
땅을 울리는 기술이라서 그 땅에 닿지 않으면 기술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도를 했다.
"점프!"
쿵!
아무런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즉, 피한 것이다.
"좋았어!"
대신 점프를 하는 순간 공격이 중단된다. 유일하게 제외가 되는 병과가 있다면 기마 궁수들이었다. 그들은 이동을 하면서도 공격이 가능하기에 점프를 해도 공격을 할 수 있었다.
"이대로 계속 싸운다!"
녀석은 그 발 구르기를 제외한 공격은 별 볼일이 없었고, 20초 단위로 점프를 하니 공격 속도가 느려지지도 않았다.
"우하하하!"
범려는 흰색의 매머드를 향해 웃었다. 이건 쉬워도 너무 쉬운 것이다.
쿵!
"헛! 아직 20초 안 되잖아!"
-더스틴이 분노합니다. 발 구르기 쿨 타임이 감소합니다.
-더스틴의 발 구르기에 당했습니다. 30초간 공격 속도가 20% 감소합니다.
범려는 메시지를 보는 순간 다시 속으로 초를 셌다. 두 번 정도 맞은 결과 발 구르기 쿨 타임은 정확히 15초 조정이 되었다.
"점프!"
범려는 발 구르기를 좀 피했다 싶으니 그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설마 또 시간이 줄지 않겠지?"
쿵!
그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뛰어야 할 시간이 약간 어긋나버린 것이다.
"젠장, 이번에는 몇 초로 줄었냐!"
이번에는 세 번을 쳐 맞고서 알아냈다. 13초로 줄었다. 덕분에 죽을 맛인 건 취선이다.
"형님, 저 죽겠어요!"
"뒤지기 싫으면 뛰어!"
헬렌은 마법을 외울 시간도 부족했다. 큰 마법을 날리다가는 바로 발 구르기에 당하고 캐스팅이 취소된다.
"아이스 애로우!"
"파이어 애로우!"
가장 캐스팅 짧고 빠른 계열인 2가지 마법을 번갈아 가면서 쓰고 있었다.
"점프!"
"아이스……."
주문을 외우다가 뛰어야 했다. 벌써 제자리 뛰기를 몇 번 했는지 모른다. 범려는 해골마 위에 있기에 말을 뛰게 만들어서 발 구르기를 피했다.
범려는 흰색 매머드에게 무슨 욕을 하고 싶었는데 계속 점프를 해야 하니 욕할 시간이 부족했다.
몇 번이고 반복을 하는 사이에 벌써 발 구르기 시간은 5초 단위까지 줄어들었다. 즉, 5초 단위로 즉각 뛰어야 했다.
발 구르기 시간이 5초 정도가 되니 화살 한 발 날리기도 힘든 시간이 나왔다.
"범려야! 딱 15초만 시간 벌 수 있어?"
"왜요!"
"토네이도 쓰려면 15초가 필요해서 그래!"
헬렌은 백색 매머드에게 토네이도를 쓸 작정이다. 하지만 15초의 시간은 발 구르기를 두 번 이상 맞아야 한다.
"좋아요. 하지만 녀석이 눈을 맞췄을 때 혼란이 안 걸리면 소용없어요."
"알았어!"
범려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녀석의 눈을 향해 화살을 조준했다.
쉬이익!
3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