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22화 (22/80)

제2장. 깃털 펜

자연의 도로시 지역에 들어온 범려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곳에는 길이라는 게 없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네."

망구다이들을 정찰병처럼 이용해 길을 찾으러 보내기도 했지만, 길이 없는 상황에서 망구다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럴 때 누군가 길을 찾게 도와줬으면……."

며칠째 마을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그 비슷한 것도 보지 못했다. 지나가다 만난 유저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헤매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는 아멜리아 지역보다 사람이 더 없는 것 같다."

자연의 도로시를 찾는 사람들은 많다. 문제는 땅이 워낙 넓고 길이 없다 보니 서로 마주칠 일이 적다는 거다.

"형님, 이대로 있다가는 단절의 산맥을 찾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쓰러지겠어요."

"범려야, 정말 그러게 생겼어."

헬렌과 취선은 지쳤는지 우는 소리를 했고, 범려는 이런 둘의 말을 듣는 척도 안 하고 어떻게 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마을은 어디 있는 거지?'

계속 길을 찾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나무와 풀밖에 보이지 않아 지쳐 가고 있을 때, 그들을 구원해줄 구세주가 하나 나타났다.

"해골 제작자다!"

이렇게 외치는 사람은 절대로 NPC가 아니다. 유저다.

"진짜 해골 병사다! 동영상보다 더 멋지다!"

해골 병사들을 발견한 사람들이 시선을 돌려 범려를 보고 있었다. 물론 범려는

'해골 제작자다!'

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후드를 눌러쓰고 얼굴을 가렸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범려가 차분하게 인사를 하자 상대도 마주 인사를 해왔다.

"해골 제작자 맞으시죠?"

"맞습니다."

"우와! 진짜 해골 제작자다!"

이 유저는 범려가 해골 제작자라고 소개를 하자 마치 연예인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렇다고 해서 범려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죄송하지만, 그것보다 마을로 가는 길을 아십니까?"

범려는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는 마을로 가는 길을 물었다.

"마을이라면,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나와요."

"감사합니다."

마을의 위치를 알게 되자 범려는 바로 병사들을 이끌고 사라져 버렸다.

"아! 이름을 대답해주셔야지요!"

끝내 범려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친구 등록을 해서 자신을 쫓아다닐 게 분명한 유저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유저의 도움으로 마을을 발견하고는 한시름 놓게 되었다.

"형님, 아까 그 유저를 만나지 않았으면 지금도 계속 헤매고 있었을 거예요."

"동감이야."

취선과 헬렌은 그 유저에게 고마움을 느꼈지만, 범려는 이들과는 반대로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형님, 마을에서 지도를 사야죠."

"그래야지."

그들은 다시는 길을 잃기 싫었기에 마을에서 지도를 구입했다. 다행히 이곳에서는 주변 마을의 지도까지 같이 팔고 있어서 다음 마을을 찾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형님, 이제 바로 단절의 산맥으로 가실 거예요?"

"당연하지."

"조금만 쉬었다 가요. 계속 숲 속만 헤매느라 지쳐서 지금 또 숲으로 들어가라면 못 들어가요."

"그럼 조금만 더 쉬었다가 가자."

그렇게 취선의 의견을 받아들이고는 잠시 쉬고 있는데, 힘들다며 쉬자던 취선이 갑작스레 범려를 붙잡고 말했다.

"혀, 형님, 저 급한 일이 생겨서 이만 가볼게요."

"어? 어, 그래."

워낙 다급한 일이 벌어졌는지 취선은 금세 로그아웃을 했고, 가만히 있던 헬렌도 갑자기 일이 생겼다면서 나가버렸다.

"무슨 일이지?"

범려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하고는 조금 더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 * *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누나가 교통사고를 당했단다. 빨리 병원으로 가자!"

"알았어."

오늘도 바쁜 스케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VJ 미진은 늦은 시간 음주운전자의 차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 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응급 처치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으윽! 목이야."

"아직 움직이지 마세요! 다른 곳이 아프시면 말씀하세요."

응급실에 안 여기저기서 환자들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신속하고 적절한 대처로 환자들을 살폈다.

"누나!"

"아, 여기."

미진이 목 깁스를 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손을 흔들었다.

"누나, 괜찮아?"

"괜찮아. 별다른 상처는 없는데, 의사가 혹시 모르니까 며칠 입원해 있으라는데."

미진은 웃으면서 가족들을 대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사고가 나니 친척들과 가족들이 미진을 걱정해주었다.

"동호야, 너 희성한테 붙어 있는 거야?"

"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 나하고 희성하고 사이가 틀어지면 죽는다."

"누나, 걱정 마. 내가 누구요? 그리고 나 희성이 형한테 해골마 받았어. 그것도 공짜로. 은혜 누나도 받았고."

"진짜! 난 안 주더니! 게임에 접속만 해봐! 죽었어!"

"허허! 그렇게 때리니까 그렇지. 누나는 다 좋은데 왜 막 사람을 때리려고 해. 남자 때리는 여자 누가 좋아한다고."

"그, 그래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지금은 게임에 접속을 못하고 있지만, 사실 미진은 기회만 된다면 게임을 하면서 희성의 옆에 있고 싶었다.

"누나, 희성이 형한테 잘해줘야 나중에 누나의 꿈을 이룰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속상하잖아. 난 자기를 기억하는데 자기는 날 몰라주고."

"옛말에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어, 지금은 누나가 참아야 할 시간이야. 나중에 기억을 하게 되면 그때 지금 못 받은 부분을 받아야지. 지금 기억도 못하는데 어떻게 할 수 없잖아."

"알았어. 내가 참아야지."

동호는 작은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계획이 이제 톱니바퀴가 돌아가듯이 맞물려 돌아감을 느꼈다.

'조금만 기다려, 누나. 내가 희성이 형 기억을 떠올리게 해줄 테니까.'

그렇게 동호가 혼자 다짐을 하고 있을 때, 간호사가 미진의 보호자를 찾았다.

"이미진 환자 보호자님."

"네!"

"병실이 정해졌거든요. 607호로 옮겨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큰 상처가 없기에 미진은 곧바로 일반 병실로 옮겨졌는데, 그녀가 연예인이라는 것을 감안해 1인실로 배정해주었다.

"아, 그냥 퇴원해도 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미진아. 교통사고 후유증은 이삼 일 후에 나타나기도 하니 일단 입원해 있어."

"알았어요."

미진은 후유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미진아!"

"은혜 언니도 왔어? 뭐 하러 와~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무슨 소리야! 교통사고가 어디 그런 거야!"

헬렌, 즉 정은혜는 미진의 이종사촌이었다. 그리고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는 친척이다.

"어디 크게 다친 곳은 없어?"

"응, 걱정 안 해도 돼. 충격으로 목이 좀 안 좋을 뿐이야."

"천만다행이다."

은혜는 미진의 상태를 보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두어 번의 검사를 더 했지만 미진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미진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때, 범려는 혼자서 단절의 산맥으로 길을 떠나고 있었다.

"여기가 숲의 끝인가?"

지도를 보고 오다 보니 벌써 단절의 산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도착했다. 단절의 산맥은 그 이름에 걸맞게 자연의 도로시와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의 경계를 짓는 거대한 산맥이었다.

"기병이 올라갈 수나 있으려나."

산세가 험해서 기병들이 들어갈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반대로 산에 오르니 기병들이 갈 만한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산길이 넓지는 않지만, 기병들이 못 갈 정도는 아니네."

단절의 산맥에는 거의 몬스터가 없었다. 산길을 가는 도중에 몇몇의 몬스터가 보이긴 했지만 범려의 상대가 안 됐다.

"어디 보자, 지도로 보자면 이 길을 따라서 정상 가까이 가야 하는구나."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길이 험해져서 병사들이 일렬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샘이 왜 꼭 이런 데 있어서는……."

범려는 투덜거리면서도 지도를 따라 열심히 올라가 어느새 샘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젊음의 샘을 발견했습니다.

젊음의 샘이라는 메시지를 보자 범려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런 건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데 『판게아 월드』에서 구현을 한 것이다.

"별걸 다 만들어놨어. 그런데 샘 안에 조각이 있으려나?"

범려는 가까이 다가가 작은 샘 안을 들여다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물만 채워져 있었는데 그 깊이가 상당해 보였다.

"이거 보는 거와 다르게 깊이가 좀 되는 샘이네."

범려는 조심스럽게 샘 안으로 들어갔다.

-젊음의 샘 효과로 인해 활력이 불어납니다.

샘의 능력으로 인해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기운에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몸이 어려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후웁!"

샘 안을 조사하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밑으로 잠수를 해 들어갔다.

'바닥이 보인다.'

샘의 깊이는 대략 10미터 정도였다. 크기는 얼마 안 되는 반면, 깊이가 상당했다.

다행히 바닥이 좁아 한눈에 뭐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푸하! 아무것도 없어."

물 위로 나온 범려는 자신이 헛수고했음을 알았다. 젊음의 샘은 그냥 몸에 활력만 불어넣어 주는 샘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회색의 산맥으로 가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그는 말 위에 올라 다시 길을 재촉했다.

"회색 산맥까지 언제 가냐."

자연의 도로시 지역에서 단절의 산맥은 남쪽에 위치해 있고, 회색 산맥은 북쪽에 위치해 있어서 산맥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산맥을 내려가고 나면 전속력으로 북쪽에 있는 회색 산맥으로 간다!"

해골 병사들은 범려의 말대로 산을 내려오자마자 전속력으로 회색 산맥을 향해 달려갔다. 숲으로 이루어진 곳이라지만 말들이 달릴 만한 공간이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없이 나아갈 수 있었다.

우르르르.

거침없이 질주하는 기병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몇 시간을 쉼 없이 달린 끝에 회색 산맥의 입구에 도착했다.

"후! 회색 산맥에 오는 것도 이번이 두 번째구나."

단절의 산맥과 다르게 회색 산맥은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지만 몬스터들이 좀 있었다. 문제는 아이템을 안 주는 치졸한 녀석들이라는 것이다.

"후! 산맥에 오르면서 살짝 전투를 즐겨 볼까?"

범려는 개마 기병과 망구다이의 실력을 보고 싶었다. 특히 휩쓸기와 올가미 던지기는 왠지 모르게 관심이 쏠리는 기술이었다.

"가볍게 한 무리 잡아보자."

병사들과 같이 회색 산맥에 오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녀석들은 오우거였다.

"저것들 오랜만에 본다."

하지만 전에 본 녀석들과는 이름이 달랐다. 이놈들은 빨간 머리 오우거였다.

"레벨이 좀 높은 녀석들인가?"

범려가 손으로 신호를 보내자 해골들이 순식간에 전투 대형을 이루었다.

"먼저 망구다이, 너희들의 실력을 보고 싶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20기의 망구다이들이 앞으로 나오더니 오우거를 향해 뛰어가며 화살을 날렸다.

망구다이들은 기마 궁수일 때 스킬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회오리 사격 같은 기본적인 스킬을 쓸 수 있었다.

휘이익! 휘이익!

망구다이들이 올가미 던지기를 사용하자 오우거 5마리가 순식간에 몸이 묶여 꼼짝도 못했다.

"매즈 스킬……."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매즈 마법을 망구다이가 스킬로 사용하고 있었다.

"역시 대단해."

범려는 망구다이들의 능력을 보고 감탄했다. 기마 궁수의 절정이라고 표현할 만한 실력이었다.

오우거들은 올가미에 벗어나려고 발광을 했지만, 범려가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인간이 아니다.

"공격!"

가볍게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이 무섭게 달려들며 오우거들을 도륙해버렸다.

그 이후, 새로운 오우거 무리를 발견한 범려는 이번엔 개마 기병을 앞으로 내세웠다.

"삼국시대 때 최고의 기병이라 불렸던 개마 기병이 어떻게 싸우는지 궁금하군."

공격 명령을 내리자, 개마 기병은 기다란 창을 들고 앞으로 달려가더니 오우거를 향해 그대로 내리그어 버렸다.

푸악!

기병들이 쓰는 창이라 길이가 상당한 긴 편에 속하는데 그걸 아무런 무리 없이 휘두르고, 오우거의 가슴에 커다란 상흔을 남겼다.

동시에 철갑을 입은 병사들이라서 오우거의 공격에 데미지도 그다지 많이 입지 않았고, 기마술이 어찌나 대단한지 오우거들의 공격을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부우웅!

긴 창으로 휩쓸기 스킬을 펼치자 오우거 3마리가 공격권 안에 들어가더니 그대로 쓸려 버렸다. 또한 개마 기병들이 시간차를 두고 계속 기술을 펼쳤다.

"하하하! 이거 대단한데. 무거운 철갑을 입지 않았다면 망구다이하고 별반 차이가 없겠어."

기마술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고, 전투 방식도 상당히 유연했다.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하던 병사들이라서 그런지 정말 대단해."

범려는 두 기병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이대로 레벨이 조금 더 오른다면 개마 기병과 망구다이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병사들이 될 것이다.

"좋아! 이대로 산맥 위로 간다."

범려는 전투를 하면서 산맥 위로 움직였다. 기병들의 능력이 뛰어나다 보니 병력 운용이 수월했고, 동시에 유연한 대처가 가능했다.

그렇게 전투에 심취해 있는 사이, 그는 어느새 회색 산맥에 있는 샘에 도착하게 되었다.

"여기가 그 샘이군."

단절의 산맥에 있는 젊음의 샘과는 다르게, 샘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고 물색이 약간 푸른빛을 띠면서 빛나고 있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데."

빛에 이끌려 샘 안을 들여다보자, 그 안에서 이상한 돌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게 보였다.

"찾았다!"

범려는 샘 안으로 들어가 그 돌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샘은 빛을 잃어버리고 단순히 투명하고 맑은 샘물만이 흘러나왔다.

-마법의 조각을 찾으셨습니다.

2개의 마법의 조각이 은은한 빛을 발하면서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마법의 결정을 얻으셨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완료 메시지와 함께 마법의 결정을 얻는 순간, 뒤쪽에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찾았네, 회색의 전승자."

"헛!"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는 고요의 아티잔이었다. 그녀는 범려가 물건을 찾자 바로 회색 산맥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이곳에 왔냐는 표정인데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 회색의 전승자. 회색 산맥은 누구의 영역도 아니니 아무나 올 수 있어, 그러니 내가 와도 이상할 건 없지."

아티잔은 손을 내밀면서 어서 마법의 결정을 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범려는 아티잔의 뜻대로 그 손 위에 마법의 결정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흠!"

그것을 건네받은 아티잔이 뭔가 마법을 부리는 듯했고, 이내 마법의 결정이 점점 이상한 모양으로 변해가면서 결국에는 깃털 펜으로 모양이 바뀌었다.

"받아라."

범려는 손을 내밀어 펜을 받아 들었다.

펜에서 나오는 푸른빛은 장난이 아니었다.

-마법의 깃털 펜

펜 자체에 마법의 결정이 들어 있다. 이걸로 뭔가를 쓰면 그 자체로 마법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잘못 쓴다면 당신에게 죽음이 있을 뿐이다.

"이 펜 어떻게 쓰나요?"

범려는 펜을 받고서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아티잔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범려에게서 펜을 빼앗더니 공중에 대고 뭐라 글자를 썼다.

스스슥.

허공에 글자가 쓰여지고, 아티잔이 마침표를 찍자 글자들이 한데 뭉쳐 변화를 일으켰다.

"파이어볼?"

"간단하게 마법을 쓸 수 있지만, 회색의 전승자에게는 이런 방법이 죽음을 불러올 거야. 마법이란 신비하면서도 선택받은 자가 아니면 벌을 내리거든."

그 말은 곧 이 펜으로 마법사들이 쓰는 마법을 쓸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건 해골 제작자가 직접적으로 마법을 쓰지 못하게 막는 조치이다.

"명심하지요."

범려는 아티잔의 말을 이해했다.

"이제 아멜리아에게 찾아가라. 그녀는 너에게 마법의 힘을 다룰 방법을 일러줄 것이다."

말을 마친 아티잔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왔고, 범려는 내심 긴장했다.

'서, 설마.'

"가만히 있어라."

쪽!

아티잔은 다시 한 번 범려의 볼에 키스를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혼자 남게 된 범려는 얼굴을 붉혔다.

"드래곤한테 두 번이나……."

두 번이나 이런 일을 당했지만,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제대로 엮이는 느낌이네."

범려는 깃털 펜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서둘러 산맥을 내려와, 회색 산맥에서 제일 가까운 씨앗 마을로 기수를 돌렸다.

마을에 도착하자 그는 해골들을 땅속에 숨기고 자신 혼자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냉혈의 아멜리아를 찾는 것 때문에 내심 고민하고 있었다.

"정보 길드에서 한 번은 부탁으로 들어준다고 해도, 두 번은 안 해줄 건데."

범려가 암흑가의 명성을 이용해 한 번은 어떻게 했지만, 정보 길드도 흙 파서 장사하는 게 아닌 이상 두 번의 정보를 공짜로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생각 깊게 해봤자 답이 없다. 일단 발로 뛰어야겠지? 그 전에 먼저 몸이 피곤하니 자자!"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으로 가는 것은 내일로 미루고 몸이 피곤한 관계로 범려는 로그아웃을 했다.

* * *

다음 날, 희성은 아침 일찍 일어나 가볍게 산책을 했다. 오랫동안 게임만 해서 그런지 안색이 별로 좋지 못했다.

"자주 햇빛을 봐야겠어, 이러다 완전히 폐인 될 거야."

희성은 지금 자신이 폐인이 아니라는 투로 말을 했지만 그는 이미 폐인이다. 게임 폐인 말이다.

"으! 6월이라서 그런지 날씨가 좋구나. 기말 고사를 치를 시기이네. 나도 슬슬 다음 학기에 복학하려면 못한 공부도 해야 하는데, 환장하겠네."

다시 집으로 돌아온 희성은 먼지가 쌓여 있는 책상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일한다고 책을 안 봤고, 이제는 게임을 하느라 책을 안 보고 있었다.

"수업 못 따라간 건 친구 놈들 닦달해서 쫓아가야지. 흐흐흐."

희성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친구들은 오한에 몸을 떨었다.

"으으, 뭐지? 날씨 좋은데 갑자기 오한이……."

그러거나 말거나, 희성은 게임에 접속하더니 아멜리아 지역으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우르르.

"오늘 안으로 아멜리아 지역에 들어가야 한다."

범려는 회색 산맥에서 저 밑에 있는 아멜리아 지역까지 게임 시간으로 하루 만에 주파할 작정이었다.

"마법사여, 기다려라! 내가 간다!"

마법사를 외치면서 범려는 죽어라 말을 달렸다. 해골마들은 일반 말들하고 달라 쉴 필요가 없기에 이렇게 달려올 수가 있었다.

"겨우 도로시 지역을 벗어났다."

어느새 범려는 도로시 지역을 벗어나 단절의 산맥 끝자락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아멜리아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조금만 쉬었다 가자. 지친다, 지쳐."

말을 타면 처음에만 신나지, 계속 타다 보면 지겹다.

"후! 마법사를 부리게 되면 텔레포트 같은 마법을 부릴 수 있으려나."

범려는 해골 마법사가 나오면 어떤 마법을 부릴지 그게 제일 궁금했다. 마법사들을 보면서 느낀 거지만, 다양한 마법과 그 끝을 알 수 없는 마법에 대한 활용 능력이 있어서 정말 멋진 직업이 아닐 수 없었다.

"마법사를 얻는다고 해도 유저들만큼 마법을 배울 수는 없겠지."

게임의 밸런스를 생각해볼 때, 마법사를 만든다고 해도 해골 마법사들에게 모든 마법을 배우게 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마법사가 있으면 사냥하기는 편하니까."

범려가 기대하는 부분은 마법사들이 쓰는 광역 마법이다. 그런 마법을 얻는다면 사냥터 한두 곳은 단번에 작살을 내버릴 수 있지만, 해골 마법사가 그런 마법을 얻을 가능성은 낮았다.

"슬슬 출발해볼까. 이대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지."

충분히 쉬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범려는 말에 올라탔다. 그러자 다른 기병들 역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의 뒤를 따랐다.

"전속력으로 간다!"

범려는 미친 듯이 말을 몰았고, 이내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에 들어섰다.

"후, 드디어 왔다. 다시는 이런 퀘스트는 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장거리 여행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그였다. 그렇다고 마법사 퀘스트로 보이는 것을 안 할 수도 없다.

휘이잉!

"으! 여기 바람은 왜 이렇게 차가운 거지?"

아멜리아 지역에 들어서면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다른 지역과 판이하게 다르다.

"몬스터가……."

범려는 주변에 몬스터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했다. 이곳은 몬스터의 유무가 눈보라를 예방하는 좋은 기준이 된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눈보라가 온다! 이글루를 만들어라!"

해골들은 범려의 명령에 따라 눈보라를 피할 만한 이글루를 만들었고, 해골마들이 눈을 피할 수 있게 커다란 마구간 형태의 이글루도 함께 만들었다.

"눈보라가 빨리도 오네."

이번에도 눈보라를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이글루 안이라고 해서 따뜻한 건 아니다.

"아, 춥다."

동상만 안 걸릴 뿐이지 춥기는 매한가지다. 더군다나 지금은 취선과 헬렌이 없다.

"심심하군."

눈보라가 몰아치는 동안 하도 심심해서 그는 옆에 있던 해골의 머리를 뽑았다.

"……."

머리가 뽑힌 해골 병사는 자신의 머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손을 뻗더니, 범려의 손에 있는 해골을 잡아채 다시 자신의 머리 위로 올렸다.

"음, 혹시 다른 녀석들 머리도 바꿔지나."

범려는 해골 병사들의 머리를 다른 녀석들과 바꿔치기했다. 그러자 자신의 머리가 아닌 걸 알아챘는지 녀석들은 서로 머리를 원래대로 다시 바꿨다.

"클클, 신기하네. 해골이라서 머리가 다 똑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기 머리가 따로 있을 줄이야."

범려는 자신과 함께 이글루 안에 있는 7명의 해골들의 머리를 이리저리 섞어버렸다.

"우하하하!"

그 때문에 이제는 서로 자신의 머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뒹굴었다. 범려는 그 모습에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그다지 웃을 일도 아니었지만 범려는 무지하게 재미있었다. 이 짓을 눈보라가 멈추는 그 순간까지 계속했다.

"하하하! 그래도 이번에는 재미있게 보냈네."

그는 재미있게 보냈을지 몰라도 해골들은 별로 달갑지가 않았다.

툭툭.

"응? 뭐야?"

해골 병사들은 범려의 이런 행동에 불만을 표했고, 잠시 후 어디서 구했는지 종이에 불만 사항을 적어서 그에게 보여 줬다.

"헉! 너희들 글을 쓸 줄 아는 거냐!"

해골들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범려는 한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녀석들이 건네준 쪽지에는 자신들의 머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안 할게."

범려는 해골들이 이렇게 분명하게 의사를 표하고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화를 내지 않은 걸 보면 참 다행이었다.

"하늘이 참 좋은데 냉혈의 아멜리아는 어디 있는 거지?"

드래곤들이 가끔 하늘을 날아다니며 자신의 영역을 배회하는 걸 알고 있다. 아티잔 지역에 있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한테 아멜리아를 어디서 봤는지 알아봐야지."

이번에는 직접 드래곤의 레어를 찾아볼 생각이다. 돈을 얼마나 요구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정보 길드를 통해 정보를 돈 주고 사기가 꺼려졌다.

"빙산 마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모아봐야지."

범려는 해골들을 숨기고 곧장 빙산 마을로 가서 NPC나 유저를 가리지 않고 냉혈의 아멜리아를 어디서 봤는지 물어봤다.

"안녕하세요. 뭐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 혹시 냉혈의 아멜리아를 어디서 보셨나요?"

"아멜리아요? 전 남쪽에서 봤죠. 워낙 빠르게 날아가서 잘 보지는 못했지만, 해안가 근처에서 봤어요."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서 그들의 대답을 모아본 결과, 아멜리아는 자기 영역을 모두 돌아다는 걸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자주 출몰했다는 곳은 아멜리아 지역에서 북동쪽이다.

"북동쪽이라."

범려는 유저들의 말대로 북동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죽치고 기다리며 아멜리아가 하루에 몇 번이나 모습을 드러내는지 확인했다.

"아멜리아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 말대로 아멜리아는 북동쪽 지역에서 하루에 세 번 정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움직이는 방향은 언제나 일정해서 마치 순찰을 도는 경찰 같았다.

"가는 방향과 오는 방향이 일정해."

범려는 지도와 아멜리아의 순찰 방향을 보며 레어가 있는지 확인했지만, 북동쪽에는 없었다.

"북동쪽은 단순히 순찰 돌 때 방향을 돌리는 턴 포인트……."

레어는 다른 곳에 있다는 소리. 그렇다면 세 곳 중 한 곳이 레어로 가는 길이다.

"길이야 세 개밖에 안 되니 작정하고 따라가면 레어로 가는 방향이 잡히겠지."

드래곤 자체가 워낙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기에 아멜리아의 순찰 방향 하나를 따라다니는 데 현실 시간으로 하루가 걸렸다.

"어떻게 저 비대한 몸집에서 저런 속도가 나오는 거지……."

범려는 아멜리아의 날아가는 속도에 질려 버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쫓아다닌 끝에 순찰 경로의 반을 알아냈다.

"순찰 경로의 반을 알아내는 동안 아멜리아 지역 반을 돌아다녔어."

아멜리아가 지역을 모두 다 돌았을 때, 범려는 고원 지대에 있는 산을 한 바퀴 돌고 온 것처럼 힘이 빠졌다.

"정말 다 돌고 다녔어!"

범려는 아멜리아가 자신의 영역 전체를 돌아다닐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언제나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친다는 것 역시 말이다.

스토커처럼 아멜리아를 따라다닌 끝에 드디어 턴 포인트가 아닌 순찰의 종점이자 기점을 찾을 수 있었다.

"레어는 저쪽인데 하필이면……."

아멜리아의 레어로 판단되는 지역은 하루 24시간 눈보라가 몰아치는 곳이었다.

"저 안에 들어가서 딱 5분만 있으면 동상……."

동상도 그냥 동상이 아니다. 프리징 마법과 맞먹는 동상에 걸리게 된다.

"이대로 가면 얼어 죽겠지?"

범려는 방한복을 사야 할까, 아니면 그냥 깡으로 버텨 볼까 생각했지만 죽는 것보다 방한복을 입는 게 이득이라 생각했다.

"답이 없네."

범려가 재봉을 할 수 있다면 곰을 잡아서 곰 가죽으로 방한복을 만들면 되지만, 그런 기술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얼음 도시로 가서 방한복을 사야겠구나."

아멜리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방한복을 파는 도시는 얼음 도시다. 별수 없이 그는 방한복을 사기 위해 얼음 도시로 가서 한 가게에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무엇을 찾으십니까?"

"눈보라에 버틸 만한 방한복 좀 보러 왔는데요."

"그럼 잘 찾아오셨습니다. 저희 가게는 방한복 전문점이지요."

가게 주인이 방한복이라고 가져온 것은 한눈에 봐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급스러운 털로 된 물건이었다.

"이건 어떠신지요? 요즘 잘 나가는 최상품입니다."

"100골드!"

가격을 본 범려는 기겁했다. 무슨 밍크코트도 아닌데 게임에서 100골드나 주고 이렇게 무거운 방한복을 입는 사람이 있을까?

'이러니 사람들이 방한복을 안 사고 그냥 눈보라를 피하지.'

정말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방한복 없이 아멜리아의 레어로 가는 짓은 죽고 싶어 환장한 짓이다.

"물건을 사야 하기는 하는데 가격이……."

가게 주인은 범려의 눈빛을 보더니 다른 물건이 있다며 소개했다.

"이 물건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되시면 중저가용 방한복도 있습니다."

"그 물건을 보고 싶습니다."

"이곳입니다."

주인은 곧 중저가용 방한복도 보여 줬지만, 범려에게는 그것도 비싸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것도 비싼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님? 눈보라를 피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입어줘야 합니다."

가게 주인은 최소한 이 정도는 입어주지 않는다면 얼어 죽는다면서 완강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범려는 중저가용 방한복을 30골드에 사고 말았다.

"안녕히 가십시오, 손님.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주인은 물건을 팔아서 좋아했겠지만 범려는 속이 쓰렸다. 그렇지 않아도 벌어들이는 돈이 별로 안 되는데 이런 식으로 돈을 쓰고 말았다.

"가자, 금지 구역으로."

그는 해골들을 이끌고 금지 구역으로 향했다. 역시 24시간 눈보라가 몰아치는 곳이라서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해골들은 문제가 없으려나."

비록 게임이지만 범려는 살아 있는 사람, 반대로 해골들은 한 번은 죽었던 사람들. 어떻게 보면 안전할 것 같으면서도 불안했다.

두꺼운 방한복을 입은 범려는 일단 이 방한복의 위력을 체험하기 위해 눈보라 지역에 들어갔다.

한 10분 동안 눈보라 지역에 서 있었지만 아무런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방한복이 이럴 때는 좋네."

방한복을 입고 이리저리 움직여 봤지만, 눈보라 안에서도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번에는 해골들을 확인해봐야지. 너희들, 저 눈보라 안에 들어가면 얼어 죽어?"

해골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즉,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안으로 들어가자."

범려는 혹시나 해서 눈보라 지역을 통과하는 도중에 해골들의 상태를 확인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확실히 얼어 죽지 않는 모양이네."

해골들은 범려의 생각대로 멀쩡했고, 행군을 하는 데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저게 뭐지?"

눈보라 속을 뚫고 지나가던 중,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서 커다란 동굴이 눈에 보였다.

범려는 그 동굴을 보고 레어의 입구라고 생각하고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드래곤의 레어가 맞았다.

"발견했다."

이 거대한 동굴처럼 보이는 레어 입구는 아멜리아만 들어갈 수 있도록 특별한 조치가 되어 있어서 암호 없이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떻게 들어가지? 발견은 했어도 열쇠가 없으면 안 되는 건가?"

범려는 아티잔의 축복을 굳게 믿고 아멜리아의 레어의 입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글루를 만들어라."

해골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순식간에 레어 입구에 수 개의 이글루가 만들어지고 다들 그 안에서 대기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늘에서 뭔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범려는 이글루 바깥으로 나왔다.

「누가 감히 내 집 앞에서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 거냐!」

아티잔의 축복으로 인해 아멜리아는 범려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멜리아 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날 만나러 왔다는 것이냐?」

범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나와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으니 일단 자리를 옮기지.」

아멜리아의 눈이 번쩍거리더니 해골들과 범려는 한순간에 아멜리아의 레어 안으로 들어왔다.

"헉!"

세 번째 겪는 일이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날 보자고 한 이유를 듣고 싶구나."

아멜리아는 어느새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매혹적인 그 모습에 범려는 황급히 두 눈을 감았다.

"음, 내 모습을 보고 눈을 감다니 배짱 한번 두둑한데? 죽고 싶은가 보지?"

"그, 그게 아니라 너무 아름다워서……."

범려는 일단 살아남기 위해 아름답다는 핑계를 댔지만, 그건 오히려 아멜리아를 자극하는 말이었다.

"전에 만났을 때는 날 죽이려고 달려들더니 겨우 내 이런 모습에 힘을 못 쓰다니. 그때 겉옷을 벗어버릴 걸 그랬어."

한때 아멜리아는 잠시 유희를 즐기려다가 범려의 파티에 정체가 들통 나서 유희를 접어야 했었다.

"크윽!"

"어머, 귀여워라. 그래, 아티잔이 이곳으로 널 보낸 이유가 있겠지?"

범려의 몸에는 아티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것도 드래곤들 눈에만 보이는 얼굴의 키스 자국이 말이다.

"그걸 어떻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