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냉혈의 아멜리아
"간단한 일이지. 아티잔 그 무뚝뚝한 년이 네놈 볼에 두 번이나 뽀뽀를 했으니까. 그 흔적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지만 드래곤들 눈에는 역력하게 보이지."
범려는 황급히 자신의 볼을 두 손으로 가렸지만, 그건 아멜리아를 자극하는 행동이었다.
"흐음, 역시 귀여워. 전투를 할 때는 매의 눈을 하더니, 이럴 때는 순한 토끼의 눈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아멜리아는 범려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의 풍만한 육체를 들이대면서 말이다.
"이제 본론에 들어가 볼까? 무슨 일로 이곳에 온 거지?"
"이겁니다."
범려는 아티잔이 건네준 마법의 깃털 펜을 아멜리아에게 보여 줬다.
"때가 되었다는 말이군. 그런데 공짜로 주기는 싫어. 내 부탁 하나를 들어줘야겠어."
"들어드리겠습니다."
범려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멜리아가 주는 퀘스트는 분명 해골 마법사를 만들기 위한 연계 퀘스트로 인식을 한 것이다.
"어려운 건 아니야. 나에게는 얼음 병사들이 있는데 그들과 싸워 이겨 봐."
-아멜리아가 내주는 시험
그녀에게는 아르테미스의 해골 병사들을 따라서 만든 얼음 병사들이 있다. 그들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을 하고 싶어 한다.
난이도:C
완료 조건:얼음 병사를 모두 물리쳐라.
보상:각인의 마법서
"이겨 드리겠습니다."
"호호호! 역시 아르테미스 님이 선택한 인간이야. 그래도 이렇게 추운 날 바깥에 나가는 것은 조금 힘들 테니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
"헉!"
아멜리아가 요염한 눈빛으로 윙크를 보내자 범려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저, 저는 이만."
"잠깐!"
아멜리아가 용언을 사용해 몸을 딱딱하게 굳게 만들어버리자, 범려가 아무리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도 아티잔과 같이 축복을 내려 주지."
"읍!"
순간, 그는 사고가 멈춰버릴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아름다운 미녀가 자신의 입술을 덮친 것이다.
'아, 안녕, 나의 입술이여.'
범려는 제대로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그렇게 입술을 빼앗기고 말았다.
-냉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멜리아 지역에서 불어 닥치는 눈보라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아멜리아 지역에서 사냥하는 유저들이라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이었다.
"축복도 내려 줬으니 내가 그곳으로 데려다 주지. 저 해골들과 같이 말이야. 그리고 싸움이 끝나면 내가 알아서 가지."
번쩍!
아멜리아는 손가락을 탁 튕기더니 범려를 얼음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버렸다.
"헉!"
범려는 순식간에 해골 병사들과 같이 아멜리아의 얼음 병사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던전이 아닌 커다란 성이었고, 그 성을 지키는 얼음 병사들이 시야에 잡혔다.
"저, 저것들과 싸워서 이기라는 건가?"
이건 난이도 C등급의 퀘스트가 아니었다. 적어도 B등급 이상의 퀘스트였다.
눈앞의 커다란 성을 보고 있자니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망원경으로 성 위를 살펴보니 그 위에 배치된 병사만 해도 300명은 넘었다.
"젠장! 저걸 어떻게 이겨!"
범려의 병사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저런 성을 정공법으로 공략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르테미스!"
"안녕하세요, 범려 님."
"투석기를 소환해주세요!"
아르테미스는 곧장 투석기를 소환해주더니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은 아멜리아의 병사들이 있는 곳이군요."
"아멜리아가 저 병사들과 싸워서 이기래요! 이런 걸 어떻게 해요!"
불평을 하는 범려에게 다가간 아르테미스는 그에게 격려의 말을 했다.
"걱정 마세요. 그리고 해골들을 믿으시면 길이 열릴 거예요."
"네."
아르테미스는 사라지고, 범려는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다.
"아자! 아자!"
투석기를 한번 보고, 저기 보이는 얼음 성을 봤다.
"충분해. 얘들아, 할 일이 생겼다!"
범려는 해골들을 시켜서 주변의 바위들을 끌어 모았다. 착실히 공략하기 위해 바위를 300개 정도 모았다.
"너무 큰 건 적당히 깎자!"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바위가 너무 큰 것은 조금 크기를 줄이고, 너무 작은 것은 따로 분리를 했다.
그렇게 분류된 바위들은 200개. 나머지는 조잡하지만 방어를 위해 벽을 만들었다.
"크기를 다 똑같이 만들었으니 무게는 별 차이가 없겠지."
탄도학 계산을 한 그는 저 성벽 위에 있는 병사들을 향해 바위를 날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성벽 위만 공격할 것도 아니다.
"흐흐흐! 볼 만할 거다."
돌을 준비하는 도중에 좋은 작전이 생각났는지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전투 준비!"
병사들은 다들 투석기 근처에 달라붙어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던져!"
범려의 신호가 떨어지자 투석기는 육중한 바위를 날리기 시작했다.
후우웅! 후우웅!
커다란 바위는 그의 의도대로 성벽 위에 정확히 떨어졌다.
"빨리 다음 바위를 올려! 시간이 없다!"
범려는 병사들을 재촉해서 바로 다음 바위를 날렸고, 이번에도 바위는 계산대로 성벽 위에 떨어졌다.
쾅! 쾅!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얼음 덩어리라서 그런지 바위에 의해 무참히 깨졌다. 그쪽에는 투석기 같은 병기가 없는지 범려를 공격할 방법이 딱히 없었다.
"투석기를 뒤로 밀어낼 거다! 다들 자리 잡아!"
모든 해골들이 투석기에 달라붙어서 잡아끌자 투석기가 빠른 속도로 이동되었다.
"계속 밀어! 내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멈추지 마!"
해골 병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투석기를 밀었고, 기병들이 밧줄을 이용해 앞에서 잡아당기더니 생각보다 빨리 자리를 잡았다.
"그만! 바위 올려라! 목표는 성문 앞이다! 절대 성문이 아니야. 성문 앞이다! 앞에 떨어트려야 한다!"
얼음 성의 성문이 열리려고 하는 순간, 그 성문 앞으로 무식한 바위 덩어리가 날아왔다.
쾅! 쾅!
땅에 떨어진 바위는 굉음을 내면서 성문 앞에 정확히 떨어졌고, 열리려던 문은 바위 때문에 열리지 않게 되었다.
"놈들이 문을 열고 나오면 다 죽는다. 문을 막아라!"
바위만 수십 개를 날려서 성문을 꽉 막아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성문이 바위 때문에 꼼짝없이 닫히고 만 것이다.
투석기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면서 성벽 위에 올라온 얼음 병사들을 향해 바위를 날렸다. 하지만 이것들은 바위를 몇 대 맞더니 더는 올라오지 않았다.
"하하하! 너희들은 다 죽었어. 안에다 던져!"
범려는 성벽을 그대로 놔두고 조금씩 전진하면서 그 안을 향해 바위를 날렸다. 성안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뭐가 어떻게 되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보병 절반, 기병 절반은 바위를 구해와라. 나머지는 계속 돌을 날려라!"
해골들이 명령에 따라 바위를 구해와 계속 날리자, 얼음 병사들은 이판사판으로 스스로 성벽에 사다리를 걸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다리 타고 온다!"
단 2기의 투석기이지만 그 활용의 극을 보여 주는 범려의 지휘에, 성벽 위로 올랐던 얼음 병사들 일부가 죽어갔다.
"기병들 준비!"
망구다이와 개마 기병들이 앞으로 나오더니 성벽을 내려온 병사들을 향해 투지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숫자는 얼마 안 된다. 얼음 덩어리를 부숴라!"
범려의 말이 떨어지자 기병들은 힘차게 말을 몰아 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범려는 기병들과 같이 전투에 참여했고, 투석기는 그 바위가 떨어질 때까지 계속 날아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왜 바위가 날아드는 게 끊겼지?"
범려는 한참 전투를 하던 중에 바위가 더 이상 날아들지 않자 뒤를 보았다.
"이런!"
바위가 몇 개 남은 상태에서 얼음 병사 몇몇이 투석기 쪽으로 가서 공격하고 있었다.
"기병들 후퇴!"
범려는 다시 투석기가 있는 곳으로 와 보병들에게 붙어서 투석기 사용을 저지하려는 얼음 병사들을 다 깨버렸다.
"다들 대열을 정비해!"
해골들이 대열을 정비하는 동안 얼음 병사들 역시 다들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성벽 아래에 정렬하고 있었다.
"다행히 기병은 없군."
기병이 없음을 확인한 범려는 망구다이들을 앞세워서 저들을 휘젓고 오라고 명령했다.
아니나 다를까, 망구다이들은 얼음 병사들이 제대로 진형을 갖추기 전에 적들을 바로 혼란에 빠트렸다.
"이리저리 흩어지는구나."
그래도 저들에게는 지휘관이 있는지, 병사들의 혼란을 수습하고 악착같이 진형을 유지했다.
"돌진!"
해골 병사들이 맹렬하게 얼음 병사들을 향해 돌진하자 이내 난전이 펼쳐졌고, 얼음 병사들은 서로 뒤엉켜 싸워야 했다.
"올가미 던지기!"
망구다이들이 던진 올가미에 의해 20명의 얼음 병사들이 전투에서 이탈되었다.
"휩쓸기!"
부웅! 부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면서 개마 기병들이 기다란 창으로 전방을 쓸어버렸다.
"밀어버려!"
병사들의 능력과 병과의 다양함이 떨어지는 얼음 병사들은 해골 병사들의 손에 깨부숴졌다.
"더 이상 안에 병력이 없을 테니 성문을 막고 있는 바위를 치워라."
병사들과 같이 성벽으로 가까이 다가갔지만 궁수들이 올라와 공격을 하거나, 보병들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지 않았다.
"성안은 텅 빈 건가?"
그럴 리 없었다. 투석기로 공격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분명 성안에는 병사들이 있다. 대신 많은 수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성문이 열리자 그 안에는 수많은 얼음 병사들이 하늘에서 날아온 바위에 의해 많이 박살이 나 있었다.
"다들 조심해!"
주위를 살피면서 성안으로 진입하자 일부 얼음 병사들이 범려의 앞을 가로막았다.
"항복이란 걸 모르나?"
범려가 손짓으로 얼음 병사들을 없애버리라는 시늉을 하자 해골 병사들은 얼음 덩어리들을 무참히 부숴버렸다.
"많이도 부서졌네."
성안은 날아든 바위 때문에 절반 이상이 부서지고 망가져 있었다. 투석기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직 퀘스트가 완료 안 됐나?"
많은 수의 얼음 병사들을 깨부쉈지만,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뜨지 않는 걸 보면 성안에는 아직도 뭔가 있었다.
"키아악!"
때마침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며 얼음 도마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는 3미터 정도의 큰 놈이었고, 숫자는 10이었다.
"저놈들이 성벽을 못 넘어서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군."
범려는 도마뱀 녀석들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모습에 속이 울렁거렸다.
"징그러운 놈들. 불화살 준비!"
끼이익!
"쏴라!"
모든 궁수들이 불화살을 날리면서 공격해오자 도마뱀들은 그 불이 싫은지 자신의 몸에 닿자 입김으로 화살에 붙어 있는 불을 꺼버렸다.
"저 얼음 도마뱀, 꽤나 성가신 기술을 가지고 있네."
입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도마뱀을 본 범려는 인상을 찌푸렸다. 해골들에게는 저 냉기가 마법 공격만큼 위협적이었다.
"상혼의 힘!"
-상혼의 힘을 사용했습니다. 10분간 파티 전체 공격력과 방어력이 3% 상승합니다.
범려의 생명력 400이 빠져나가면서 해골 병사들의 힘이 증가했다.
"한바탕해보자!"
그는 개마 기병과 망구다이를 믿었다. 유일하게 생명력과 방어력이 좀 되는 얘들이 저들뿐이다.
"돌격!"
전투가 시작되자 도마뱀들이 뿜어내는 차가운 입김이 공격 속도와 생명력을 쭉쭉 떨어트렸지만, 개마 기병들이 워낙 방어력과 생명력이 좋다 보니 해볼 만한 싸움이 되었다.
"한 놈만 패자!"
개마 기병들이 얼음 도마뱀 한 마리당 기병 하나씩 맡아서 시선을 빼앗는 사이, 다른 해골 병사들은 한 놈씩 두들기면서 도마뱀들을 정리해나갔다.
"으하하! 이것들이 어디서 까불어."
범려는 이런 장난을 치면서 부서진 얼음 도마뱀들을 발로 툭툭 차버렸다.
"어머나, 병사들 숫자가 500이 넘었는데 그걸 다 없애버렸네."
"헉!"
등 뒤에서 들려오는 요염한 목소리에 범려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역시 회색의 전승자야. 이 많은 숫자의 병사들이라면 역으로 전승자가 죽을 줄 알았는데."
"……."
범려가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상대가 성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바위에 깔려 부서져서 숫자가 크게 줄어 있었다.
"아주 잘했어, 회색의 전승자."
"네……."
아멜리아는 자신의 병사들이 박살이 났는데도 범려를 칭찬했다. 아마도 자신의 병사들에 대한 애착이 없었던 모양이다.
"숫자가 많이 차이가 났었는데. 어디 그 승리의 비결을 들어볼 수 있을까."
아멜리아는 범려에게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상태에서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음, 지휘관과 무기입니다. 얼음 병사들은 병사들로서 자질은 뛰어나지만, 그들을 지휘할 지휘관의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공성 무기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음, 무기와 지휘관이라……. 무기는 알겠는데 지휘는 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그렇겠지. 드래곤은 지휘하는 것보다는 마법으로 한 방에 쓸어버리는 게 더 빠를 테니까.'
범려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완료 메시지가 뜨면서 아멜리아는 범려에게 책을 내밀었다.
"이걸 받아라."
-각인의 마법서
마법을 부릴 수 없는 존재에게 마법의 각인을 새겨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듭니다.
필요 아이템:마법의 깃털 펜
책을 펼치자 그 안에는 이상한 그림과 글이 적혀 있었다.
"이걸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끝났다. 회색의 전승자, 그럼 작별 인사를 해야지."
"아, 안녕히……."
범려는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멜리아가 그의 품에 안겨서 입맞춤을 하고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드래곤들 세계에서는 입맞춤이 인사법인가……."
범려는 조금 당황스럽지만 드래곤에게 이런 일을 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게임이지만 그녀들은 굉장한 미인들이었다.
"드래곤들은 다 여성일까?"
갑작스럽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판게아 월드』의 아홉 수호룡은 다 여성이다. 드래곤들을 설명할 때 하나같이 '그녀'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아르테미스!"
범려는 펜과 각인의 마법서를 들고 아르테미스를 불렀다.
"무슨 일이죠?"
"다른 게 아니라 이걸 어떻게 사용하나요?"
"입술에 그 입술 자국 좀 지우고 말씀하세요."
"죄, 죄송해요. 이게 말이죠……."
"다 알아요. 아멜리아가 한 짓이죠?"
아르테미스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드래곤들이 모두 다 여자이다 보니 남자를 상당히 그리워한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호룡들은 다 똑같아요. 수천 년 동안 남자의 손길 한 번 못 받아봐서 남자에 많이 굶주려 있어서 그래요. 그건 범려 님이 이해해주세요."
"저야… 아하하하."
만나는 드래곤들이 이런 식이라면 범려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마법의 깃털 펜과 각인의 마법서 사용은 간단해요. 해골을 만든 후에 펜으로 마법서에 나와 있는 그림을 순서대로 새기시면 돼요. 그리고 단순히 해골을 만들었다고 해서 병사 제한에 걸리지 않는 부분은 잘 아시죠?"
"네, 알고 있어요."
그냥 해골들을 만든다고 해서 병사 제한에 걸리지 않는다. 해골을 무장시키게 되면 그제야 병사 숫자에 제한이 걸린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잠깐만요, 아르테미스 님!"
"무슨 일이신데요?"
"저 여기서 어떻게 나가죠? 길도 모르는데요."
범려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진 아멜리아 때문에 곤란했다. 자신을 다른 곳으로 좀 보내줬으면 하는데 그냥 가버린 것이다.
"음, 아멜리아가 범려 님을 여기에 놓고 그냥 가버렸군요. 어쩔 수 없이 이번만 제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드릴게요."
"얼음 도시로 가는 길을 열어주세요."
아르테미스가 곧 얼음 도시로 가는 타운 포탈을 열어주었다.
"그럼 다음에 또 봬요."
범려는 아르테미스가 만들어준 타운 포탈을 통해서 얼음 도시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르테미스도 이런 마법을 할 줄 아는구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녀는 영혼의 세계와 다른 세계를 너무나 쉽게 넘나드는 NPC이다. 유저 하나쯤 이동시켜 주는 일 따위는 물 한 잔 마실 시간이면 충분하다.
"다들 숨어 있어라. 난 작업을 좀 해야겠다."
범려는 해골들을 숨기고 도시에 있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바깥은 무척 춥기 때문에 따뜻한 여관방 안에서 해골을 만드는 게 좋다.
"일단 해골을 하나 만들어야겠지."
뼈를 꺼낸 그는 인연의 바늘과 운명의 실로 해골 병사를 뚝딱 만들어냈다. 영혼을 아직 집어넣기 전 상태라 녀석의 몸이 덜그럭거렸지만, 작업을 하는 데는 이 상태가 좋았다.
"어디 보자, 첫 번째 페이지 마법의 각인이란……."
구구절절 설명이란 설명이 줄줄이 달려 있었고, 각 신체 부위에 그려야 할 이상한 글과 그림이 한가득이었다.
"머리에는 먼저 마나의 흐름을……."
범려는 책에 나온 대로 해골의 몸에 마법의 각인을 새겨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신체로 만들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이, 영혼을 집어넣고 영혼 소환!"
범려의 손에 영혼의 구슬이 쥐어지더니 곧 영혼을 해골의 몸에 집어넣었다.
"다음에는 일어나라고 주문을 외우면 되는구나."
아브라 카다브라!
어디서 많이 듣던 주문이었지만, 주문을 읊조리자 푸른빛을 띠면서 해골의 몸이 들썩들썩하며 강렬한 빛이 방 전체를 뒤덮더니 이내 그 빛이 사그라졌다.
-해골 마법사(수습생)
레벨:1
힘:7 민첩성:7 지능:60 정신력:40 체력:7
생명력:70 마나:200
공격력:20 방어력:30
마법 공격력:240 마법 방어력:180
"으하하! 마법사다, 마법사-!"
범려는 미친 듯이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마법사를 드디어 만든 것이다.
"그런데 저 수습생은 뭐지? 그리고 스킬은?"
마법사는 맞지만 그 옆에 수습생이라고 적혀 있었고, 병사들이 새로이 등장하면 스킬이 등장하는데 그것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거 뭔가 불안한데. 아르테미스!"
범려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다시 아르테미스를 불러서 왜 마법사 뒤에 수습생이라는 딱지가 붙었는지 물어보았다.
"범려 님, 그건 마법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지금 마법사의 몸을 가졌지만 영혼은 평범한 영혼이죠. 자신의 몸에 새겨진 마법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런 건가요?"
범려는 자신이 해골에게 한 짓이 뭔지는 자세히 모른다. 다만 이걸 하면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것만 알 뿐이다.
"음, 각인의 마법서가 대충 마법을 기억시켜 주는 정도 되는 물건인가요?"
"해골들에게는 그렇죠. 각인을 새기게 되면, 영혼들의 기억 속에 마법의 기억을 주입하게 하는 거죠. 그러니 영혼들은 그 기억을 이해하기 위해 수습생이라는 딱지가 붙게 돼요. 아시겠죠?"
"네."
뭐가 되었든 각인의 마법서는 해골들에게만 통하고 유저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네, 잘 가세요."
아르테미스가 가버린 후, 범려는 이 해골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다. 당장 마법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애버릴 수도 없었다.
"속박 스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고, 이것은 병사로 취급도 안 된다는 건가."
스킬창에 있는 속박 스킬을 봤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수습생 자체는 아예 등록도 되지 않은 것이다.
마법 수습생 때문에 머리 아프게 고민해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여관에서 나온 범려는 그래도 수습생에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아이템을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앙상한 뼈만 있으니 참 민망한 모습이네. 옷이라도 걸치게 해줘야지."
그는 수습생이 사용할 만한 아이템을 찾았지만, 막상 쓸 만한 아이템이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지팡이가 없네. 다행히 로브는 자연의 로브를 입으면 되니까 문제없고."
아주 좋은 건 아니더라도 중간 정도 되는 다른 아이템을 찾고 있는데, 그런 물건이 있을 리 없었다.
"에이, 몰라. 일단 지팡이는 나중에 찾고 옷만이라도 입혀야지."
범려는 자연의 로브를 수습생에게 입혔다. 그러자 이름만 수습생이지, 멋진 마법사처럼 보였다,
"너 혼자 마법사 하면 심심하겠지?"
다른 해골 마법사를 더 만들려니, 그 녀석에게도 입힐 옷이 필요해졌다.
"아, 마법사를 만들면 옷이 더 있어야겠구나. 황혼의 무덤으로 가서 자연의 로브를 더 얻어와야겠다."
범려는 황혼의 무덤으로 가서 자연의 로브를 뱉어내는 녀석만 잡을 생각이었다.
"순백의 크라운 지역으로 가자!"
아멜리아 지역에서 순백의 크라운까지는 멀었다. 특히 고요의 아티잔을 필수로 지나야 했다.
범려는 길고 긴 시간을 해골마를 타고 달렸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지 어차피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루 동안 쉬지도 않고 달려서, 겨우 순백의 크라운 지역으로 들어온 그는 황혼의 무덤으로 곧장 달려가 그곳에 있는 등신 마법사만 계속 잡았다.
"파이어! 으악!"
범려의 레벨이 높고 해골들의 능력이 좋다 보니 놈은 20초를 못 버티고 죽었다.
"아이템 안 나왔네."
던전을 다시 리셋해서 찾아오기를 수십 번. 자연의 로브 30벌을 얻을 때까지 계속했다.
로브를 다 얻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플레이 시간으로 이틀이 걸렸다. 그것도 마법사만 죽이고 다른 보스는 손도 대지 않았다.
"30벌을 얻었으니 로그아웃!"
로그아웃을 하고 나온 범려는 시계를 보고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나다, 제자야.)
"아! 스승님, 그동안 별일 없으셨는지요."
(인사는 됐고, 『판게아 월드』 시작했다.)
"네? 정말 하시는 거예요?"
희성은 자신의 스승인 안서진이 게임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캡슐 100개를 그냥 회원들에게 다 나눠주고 스승님은 안 할 줄 알았다.
(그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나이 든 인간은 게임도 하지 말라는 거냐?)
"아, 아닙니다, 스승님. 게임은 모두가 즐기기 위한 것이지요."
(어찌 되었건 다들 고요의 아티잔인가? 그 지역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직업이야 다들 궁수로 정했고, 인원은 100명이다.)
"거대한 길드가 되겠는데요."
(거대 길드는 모르겠고. 일단 희성아, 활 좀 사주라. 100명이라는 숫자가 적은 게 아니라서 말이지.)
희성은 활을 사달라는 스승님의 말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해골들 장비나 화살 값이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좋은 활은 필요 없고, 그냥 각궁이면 된다. 너 돈 좀 있지? 3일 후에 각궁 100개만 준비해라.)
"……."
희성은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안서진은 곧장 전화를 끊어버렸다.
"100개……."
스승님의 부탁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는 각궁 100개를 준비해놓았고, 화살도 1만 개씩 준비했다.
"어디 전쟁 난 것도 아닌데 각궁 100개라니."
3일 후, 범려의 스승인 안서진은 『판게아 월드』에 접속하더니 그날 궁수로 전직을 했는데, 역대 궁수 시험을 본 사람 중에서 최단 시간에 전직 시험을 끝마치는 기록을 달성했다.
"스승님."
"아, 제자야, 왔느냐? 생각보다 궁수 시험이 쉽더구나."
"어떤 시험을 보셨습니까?"
"별거 아니었어. 멀리 있는 과녁 맞히기 100번 하고, 움직이는 과녁 맞히기, 마지막으로 로빈후드처럼 화살로 화살을 맞히는 거였는데 30분도 안 걸렸다."
어떤 의미로 괴물인 안서진이었다.
"그런데 스승님, 아이디를 어떤 걸로 하셨습니까?"
"궁귀(弓鬼)."
활의 귀신이라는 말만큼 안서진에게 잘 어울리는 닉네임이 없었다.
"잘하셨습니다."
"음, 뭐 잘했다고 할 건 없고. 길드를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들어가느냐?"
"제가 길드를 만들어보지 못해서 얼마가 들어가는지는 모르는데요."
"그래? 그건 나중에 내가 알아보면 되겠지."
범려는 그 외에도 게임에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을 모두 말해주었다.
"음, 그렇단 말이지. 재미있겠어."
안서진은 쉰이 넘은 나이지만,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제자야, 친구 등록 해놓을 테니 나중에 궁금한 게 생기면 연락하마."
"네, 스승님."
안서진은 협회 사람들을 데리고 인근의 사냥터로 향했고, 금세 그곳의 몬스터 씨를 말려서 사람들만 가득한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오랫동안 궁을 만졌던 사람들이라서 여타 궁수들과는 다르게 백발백중의 활 실력을 과시했다.
실력 좋은 궁수들은 어느 파티를 가더라도 대접을 받지만, 이들은 같은 협회 사람들끼리 파티를 맺고 사냥을 하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가자. 이곳에 너무 오래 있으면 민폐다."
안서진은 몬스터가 사라지자 다른 유저들도 생각해서 협회 사람들을 데리고 자신들이 사냥할 만한 곳으로 장소를 바꿨다.
"스승님은 정말 못 말려."
협회 사람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궁수 100명이 뭉쳐 다니면 주변이 어떻게 변하는지 똑똑히 보여 주었다.
이들도 분명 범려처럼 인적 드문 사냥터를 찾아 움직이게 될 것이다. 100명이서 남들 다 가는 사냥터에 간다면 레벨 올리기가 한없이 어렵기만 할 것이다.
"좀 더 강한 곳으로!"
"와아-!"
궁도 협회 사람들은 회장인 안서진을 따라서 주변의 몬스터들을 빗자루로 쓸어내는 것처럼 정리해나갔다.
계속 강한 몬스터를 찾아 헤매던 그들은 어느덧 자신들의 레벨보다 8레벨 높은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그래야 뭔가 경험치가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저것들 뭐냐? 왜 우리 사냥터를 쑥대밭으로 만들지?"
안서진 일행들이 사냥하는 것을 보고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유저들이 있었다.
"이보세요! 왜 남의 사냥터에 오셔서 허허벌판으로 만듭니까?"
"여기에 주인이 있소? 내가 알기로 사냥터는 주인이 없는 걸로 아는데."
"아니, 영감님 이 게임을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여기는 우리가 정해놓은 사냥터거든요."
"뭐, 영감님?"
안서진은 영감님이라는 소리에 인상이 확 구겨졌다. 아직 손자도 보지 못했는데 영감님 소리를 듣자 기분이 상한 것이다.
"이봐, 젊은 친구, 내 아들은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 소리인가?"
"그건 영감님 사정이고요. 여기서 나가세요. 좋은 말 할 때."
그 말에 안서진의 입가가 씰룩거리더니 화살을 뽑아 상대의 눈을 꽉 찔러버렸다.
"크악!"
"으흐흐! 젊은 친구, 오늘 임자 만난 줄 알아."
안서진은 순간 몇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자기 사냥터라고 외쳐 댔던 유저들을 공격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안서진을 공격해왔다.
"회장님이 공격당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협회 회원이 외치자 다들 안서진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적이라고 판단되는 유저들이 보이자 거침없이 화살을 날렸다.
쉬이익! 쉬이익!
"엇!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들에 공격당한 유저들은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화살이 꽂혀 죽고 말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아. 하지만 녀석들이 또 올 거야."
범려가 유저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려 주었고, 부활에 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머리색이 붉게 변했지만, 그들은 별로 두렵지 않았다. 일단 궁수가 다 합쳐서 100명이고, 다들 믿을 만한 사람들이다.
죽임을 당한 유저들은 일단 머릿수에서 밀리기 때문에 자신들이 아는 사람들을 총동원해 다시 그 사냥터로 몰려왔지만, 막상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협회 사람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걸려들었구나."
"쏴!"
순식간에 100여 개의 화살이 날아들더니 단 하나도 빗맞지 않고 유저들을 유린했으며, 협회 사람들의 머리색은 다들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이만큼 했으면 됐다. 자리를 뜨자."
"네."
안서진의 말대로 이 이상 싸워봐야 감정만 상할 거라고 생각하고는 바로 떠났다.
이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협회 사람들을 잡기 위해 왔지만, 사냥터에는 그저 몬스터 몇 마리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뭐야! 도망갔잖아!"
협회 사람들을 잡지 못해 더욱더 분노했지만, 이미 사라진 사람들 쫓아다니면서까지 복수할 만큼 시간이 여유로운 인간은 없다.
범려도 공구장을 우연히 발견해서 복수를 했지, 발견하지 못했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회장님, 그런데 복수한답시고 쫓아오지 않을까요?"
"걱정 마. 제자 놈이 여기는 게임이라서 사람들이 그런 거 잘 신경 안 쓴다더라. 당한 놈은 혼자 욕만 하는 거지."
"……."
안서진은 게임 안에서는 자유분방하게 움직일 생각이다. 활 하나로 세상을 누비며 여행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보게, 부회장, 우리 던전이라는 곳을 가보지 않겠나?"
"던전?"
"그래. 희성이 녀석이 던전에 가면 지금보다 강한 녀석들이 많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 던전이라는 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네."
안서진의 말에 모두들 고블린 던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은 인원수 제한이 있어서 20명 이상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협회 사람들은 다섯 팀을 만들어서 던전을 쓸어버리자는 내기를 했다. 안서진은 가장 먼저 끝낸 팀에게는 계정 1개월 공짜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10만 원짜리 계정이라서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던전에 도전했고, 1개월 공짜라는 상품은 생각보다 큰 물건이었다.
얼마 후, 고블린 던전을 최단시간에 클리어해버린 팀은 안서진이 있는 팀이었다. 타임 랩은 28분으로 굉장히 빨랐다.
더군다나 10명 이상이 들어가면 자동 전쟁 모드로 난이도가 조절되는 상태에서 던전 클리어 속도는 그야말로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음, 다들 아쉽게 되었군. 10초 차이로 이기다니 말이야."
안서진 팀 말고도 다른 팀들은 시간 차이가 10초 정도 났다. 이 말은 곧 아주 근소한 차이라는 것이다.
"이 던전이라는 거 굉장히 스릴 넘치고 즐겁지 않은가, 부회장?"
"물론입니다, 회장님!"
모두의 얼굴에서 던전에 대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언제나 혼자서 수련하는 식으로 활을 당겼다면, 『판게아 월드』에서는 서로 파티를 이루고 동료 의식을 가지며 활을 당겼다.
"이거 오래 할 것 같은데."
안서진은 『판게아 월드』라는 게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활을 당기며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말이다.
"회장님."
"여기서는 궁귀다. 궁귀라고 불러라."
"예! 궁귀님."
안서진, 아니 궁귀는 점점 게임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 * *
"범려 형님!"
"취선아!"
범려가 사냥을 하는 중에 취선이 찾아왔다. 일주일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취선이었다.
"형님, 그때 갑자기 사라져서 죄송해요."
"뭘 그런 걸 가지고. 살다 보면 급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지. 헬렌 누나는 어디 갔어?"
"아, 헬렌 누나는 내일 올 거예요."
헬렌은 지금 병원에 있다. 미진이가 혼자 병원에 있으려면 심심할 테니 말 상대를 해주고 있었다. 미진의 퇴원일은 내일이다.
"근데 저기 있는 해골은 뭐예요? 다들 갑옷을 입고 있는데 그중에서 로브를 입고 있는 해골이 눈에 띄네요."
"마법사다."
"진짜 마법사예요? 형님, 마법사도 만들 수 있게 된 거예요?"
"아직은 완벽하지 않아. 저 해골 마법사는 수습생이야. 레벨은 오르고 있는데 전투에 참여가 안 돼."
"수습생?"
범려가 수습생에 대해 적당히 설명했지만, 취선은 약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대충 감은 잡히는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