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26화 (26/80)

제6장. 엘프를 위협하는 적들

아르테미스가 한 번 왔다 간 후로 엘프들이 범려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침입자로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이제는 신성한 대리인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눈빛 한번 부담스럽네."

침입자가 되었든 신성한 대리인이 되었든, 범려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범려 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골 님, 저한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아르테미스에게 선택받았을 뿐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범려는 이들과의 관계를 좀 더 진전시켜 이 부담스러운 눈길을 피하고 싶었다.

"전 아르테미스에게 선택받은 사람이지만, 엘프들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 절 인간이 아닌 평범한 엘프처럼 대해주십시오."

범려의 말에 감격한 그들의 눈빛은 마치 이런 위대한 분을 만나서 영광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제길! 눈빛이 더 심각하게 변했어.'

아르테미스의 단 한 번의 등장으로 범려의 입지는 아르테미스와 동급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 엘프 대장로가 다가와 범려에게 도와달라며 사정을 했다.

"범려 님, 저희 엘프들을 도와주십시오."

"무슨 일이신데 그러시는 겁니까?"

"저희 엘프들을 몬스터로부터 구해주십시오."

-엘프 대장로의 간절한 애원 1

정령계의 문이 닫혀 정령의 힘을 잃은 엘프들의 도시를 감춰주던 은폐 마법이 사라졌다. 엘프들은 몬스터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 몬스터들을 물리쳐 그들의 근심을 덜어줘라.

난이도:B

발동 조건:엘프의 도시를 처음으로 발견한 자

완료 조건:엘프의 도시 주변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의 침입을 막고, 그들을 이곳에서 몰아내라.

보상:유니콘의 활

"이, 이건……."

범려는 엘프 대장로가 주는 퀘스트에 당황했지만, 보상이 활이라는 것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B급 난이도의 보상이 활이라면 평범한 활은 아니야.'

범려는 당장 퀘스트를 수락했다.

"대장로께서 친히 부탁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범려는 당장 해골 병사들을 도시로 불러들였다. 엘프들은 해골들의 모습에 약간 경계를 했지만, 범려에게 절대적 충성을 바치는 모습을 보고는 경계를 풀어버렸다.

해골 병사들이 도착하자 갑자기 엘프의 도시 위에 폭죽이 하나 터졌다.

피이잉- 펑!

폭죽을 본 엘프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몬스터들이 몰려온다-!"

"성문을 닫아라-!"

갑작스레 몬스터들이 몰려온다는 한 엘프의 외침에 다들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골 님, 몬스터가 몰려온다니요? 방금 터진 건 폭죽이 전부인데."

"저 폭죽은 멀리 망루에서 몬스터 무리를 발견했을 때 도시에 위험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붉은색 폭죽은 이 도시를 향해 오고 있는 몬스터들을 뜻합니다!"

"네?"

엘프의 도시는 오랜 세월 계속된 몬스터의 침입으로 인해 도시 주변이 거대한 성곽이 둘러싸여 있고, 육중한 성문으로 입구를 관리하고 있었다.

"사수들은 각자의 위치로!"

엘프들은 은폐 마법에 걸려 있었어도, 이런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지 신속하게 움직였다.

"저도 돕겠습니다. 어디로 병사들을 이끌고 가면 됩니까?"

"저기 보이는 성문 오른편에 병사들을 배치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기병들은 아래에서 대기하고, 보병들은 날 따라와!"

범려는 해골 병사들을 이끌고 성문 오른편에 해골 병사들을 배치시켰다.

"저것들 뭐야?"

범려의 눈에 보이는 녀석들은 단순 무식한 오크들이 아닌 제대로 훈련된 오크 군대였다.

"젠장! 성벽 위로 올라가는 공성 장비들은 다 가지고 있네."

투석기나 발리스타 같은 무기가 없을 뿐이지, 그 외의 것들은 거의 다 갖추고 있었다.

"사수 조준-!"

엘프들을 지휘하는 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범려도 그 명령에 따라 활을 당기며 저 아래에 깔려 있는 오크 군대를 향해 활을 당기며 조준하고 있었다.

"취익! 엘프들이 저기 있다. 우리 모두 엘프 고기를 먹어보자!"

"취익! 엘프 고기! 엘프 고기!"

오크들은 겁을 주기 위해 '엘프 고기'를 외치며 함성을 질렀지만, 엘프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미친 돼지 녀석들이 별짓을 다 하는구나."

범려는 아래에 있는 오크들을 보고 욕을 했지만, 그 말소리가 오크들에게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취익! 엘프들을 쓸어버려라!"

"취익! 와-!"

오크들이 도시를 공격하기 위해 시커멓게 몰려오자 엘프 대장이 명령을 내렸다.

"쏴라!"

슈슈우우욱!

성벽 위에서 아래로 날아가는 무수한 화살들에 수많은 오크들이 죽어나갔다.

"취익! 사다리를 올려라!"

성벽 아래로 가까이 다가온 오크들이 성벽 위로 올라가기 위해 사다리를 올렸다.

"사다리가 올라온다! 밀어내라!"

병사들이 달려들어 사다리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사다리가 성벽에서 착 달라붙어 있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돌격병 둘, 근위병 둘, 이렇게 4인 1조가 되어서 사다리 위로 올라오는 녀석들을 떨어트려!"

범려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녀석들을 때려잡기 위해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래에 대기하고 있는 망구다이들은 성벽 너머에 있는 오크들을 향해 화살을 쏴라!"

"크악!"

망구다이들의 화살은 정확히 성벽을 넘어서 오크들에 명중했다.

"역시 상위 병과."

범려는 망구다이들의 실력을 보고 감탄했다.

"마법사들은 손가락 빨고 있을 거냐? 어서 마법을 날려!"

20명의 해골 마법사들이 다급하게 마법을 뿌리기 시작하자 오크들이 마법에 당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취익! 오크 살려!"

"충차다! 충차다!"

한 엘프가 충차(衝車)가 왔다며 큰 소리로 외치자 다들 시선이 성문으로 집중되었다.

"성문이 위험하다! 충차를 공격하라!"

충차는 성문을 부숴 열기 위한 공성 병기다. 일단 성문이 열리게 되면 엘프들은 도시를 지키기가 힘들어진다.

"회색의 빛!"

범려가 굴러가는 충차의 바퀴를 향해 화살을 날리자,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한쪽 바퀴가 부서졌다. 그로 인해 굴러가던 충차가 주춤거리면서 굴러가는 속도가 늦춰졌다. 하지만 완벽하게 충차를 부순 건 아니다.

"이럴 때 버프가 필요한데 아! 상혼의 팔찌가 있었지! 상혼의 힘!"

-상혼의 힘을 사용했습니다. 10분간 파티 전체 공격력과 방어력이 3% 상승합니다.

생명력 400이 소모되면서 버프가 발동되었다. 그런데 버프는 범려와 해골들에게만 적용된 게 아니었다.

"힘이 솟구치는구나!"

엘프들에게도 상혼의 힘이 적용되면서 엘프들의 공격이 매서워지고 있었다.

"얼래? 엘프들은 같은 파티가 아닌데."

범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곧 의아한 생각을 떨쳐 버렸다. 엘프들의 공격력이 좋아지면 이득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으니.

쿠쿠쿵.

바퀴 하나를 잃은 충차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조금씩 전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충차가 다시 움직이잖아! 이번에는 움직이지 못하게 나머지 바퀴를 박살내주마."

범려는 회색의 빛의 쿨 타임이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다시 한 번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자 충차의 남은 왼쪽 바퀴가 부서지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지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넘어져 버렸다.

쿵!

"클클클, 별것도 아닌 것이."

성문 앞에서 충차가 넘어지자 이제 그것은 오크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었다.

"취익! 부서진 충차를 치워라!"

"오크들이 충차를 치우려 한다. 막아라!"

엘프들은 충차가 가로막고 있는 이상 성문을 공략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기에 목숨을 걸어서라도 오크들이 부서진 충차를 치우는 걸 저지했다.

"이걸로 한동안 성문은 안심이고, 남은 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돼지들인가."

더 이상 성문을 공격하지 못하게 되자, 이제는 성벽을 타고 올라오는 오크들이 문제였다.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오크들을 성벽 위에서 두들겨 깨는 동안 해골 궁수 몇몇이 공격을 멈췄다.

"너희들 왜 공격 안 해!"

공격을 멈춘 해골 궁수들이 화살이 없다는 행동을 하자, 범려는 한 손으로 이마를 딱 쳤다.

"이런! 화살을 점검했어야 하는 건데."

화살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 그때, 화살을 한껏 짊어지고 달려오는 엘프가 눈에 보였다.

"범려 님! 여기 화살입니다!"

"아골 님, 감사합니다!"

엘프들이 이렇게 공짜 화살을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기에, 화살이 도착하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화살 값 굳었다.'

화살을 받아든 범려는 병사들에게 서둘러 나눠줬고, 궁수들은 다시 활을 당겼다.

"오크들이 물러간다!"

"와아-!"

그 많던 오크들이 공격을 포기하고 물러가기 시작하자, 범려는 병사들을 이끌고 성벽 아래로 내려왔다.

"아골 님, 당장 성문을 열어주세요."

"왜 그러십니까, 범려 님?"

"저들을 추격해야 합니다."

범려가 기병들을 이끌고 추격을 하려고 하자, 아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안 됩니다. 지금 추격을 한다고 해도 오크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한마디로 오크들의 근거지를 모르니 추격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됩니다. 근거지를 모른다고 해서 추격을 못하게 하다니."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범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근거지를 모른다면 정찰을 보내 그들의 근거지를 발견하고 공격할 생각을 해야 한다. 꼼짝도 안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엘프들이 그의 눈에는 너무나 소극적으로 보였다.

"그럼 나중에 성문을 열어주십시오. 병사들을 이끌고 저 혼자 해보겠습니다."

"그, 그건……."

범려는 이런 소극적인 자세를 가진 엘프들과 함께 전투를 한다면 자신만 피곤해질 거라 여겼다.

"알겠습니다, 범려 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화살을 좀 챙겨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중에 화살이 더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크들이 물러가고 한참 후, 범려는 병사들을 이끌고 도시를 나왔다. 그는 방금 몰려온 오크들의 근거지를 부수고 다 쓸어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대회를 열면서까지 병사들을 양성하는데, 왜 이렇게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

범려는 엘프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힘을 기른 것은 맞지만, 그걸 단순히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만 사용할 뿐이다.

"천천히 오크들을 추적해볼까."

궁귀에게서 아주 기본적인 추적술을 배웠지만, 워낙 오크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추적하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음, 길이 저쪽으로 연결되어 있군."

병사들을 데리고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오크들의 근거지를 찾을 수 있었다.

"여기 있구나."

많은 수의 오크 군대가 주둔해 있는 지역을 찾아낸 범려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은 다 죽었어."

오크의 군대를 다 쓸어버리기 위해 그는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음, 뭐가 좋을까. 어떻게 하면 저들을 쓸어버릴 수 있지?"

생각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그는 그루터기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 그루터기 참 시원한데."

엉덩이로 전해지는 시원함이 머리까지 전달되어 상쾌함을 주었다.

"아! 그래! 그 방법이 있었지."

범려는 그루터기를 보고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당장 엘프의 도시로 달려가 톱을 찾았다.

"아골 님, 톱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그럼 12미터 길이의 톱은 있습니까?"

"그렇게 큰 톱은 없습니다. 그 톱을 무엇에 쓰려는 겁니까?"

"그럼 대장간에 부탁하면 만들어주나요?"

범려가 자신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오로지 톱만 찾자, 아골은 그를 일단 진정시켰다.

"범려 님, 크게 심호흡 좀 하세요."

"후우웁! 하아!"

"이제 다시 물어보지요. 톱은 왜 찾으시는 겁니까?"

"오크들을 몰아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정말입니까?"

아골은 크게 기뻐하며 그 방법을 자세하게 물었지만, 범려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보다 대장간이 어디 있나요?"

"따라오십시오."

범려를 대장간으로 데리고 간 아골은 대장장이들에게 12미터 정도 되는 커다란 톱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에 엘프 대장장이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길이 12미터짜리 톱을 3개나 만들어주었다.

"얘들아, 톱을 들어라."

정말 기다란 톱을 3개나 들고서 천천히 오크의 주둔지로 돌아온 범려는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으흐흐! 다 내 경험치가 되어라."

정말 사악한 웃음을 흘리는 범려의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던 해골들은 그에게서 한 발자국 멀리 떨어졌다.

"얘들아, 내가 말하는 대로 나무를 썰어야 한다!"

해골 병사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범려는 3개의 거대한 나무를 가리키면서 어떤 식으로 나무를 잘라야 하는지 일러주었다.

"잘 들어라. 두 번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번 작전은 너희들이 얼마나 나무를 깔끔하게 썰었느냐가 승패의 관건이다."

범려의 방법은 이렇다. 정해진 3개의 나무를 원하는 각도로 잘라내어 원하는 방향으로 쓰러트리는 것이다.

이 방법은 언제인가 텔레비전에서 나온 것인데, 벌목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이라고 한다.

정해진 나무의 아랫부분의 2분의 1 지점을 삼각으로 잘라내고, 반대쪽에서 나무를 찍으면 그 삼각으로 잘린 부분으로 나무가 넘어가게 된다.

이걸 이용해 범려는 거대한 나무 몇 개를 쓰러트려 오크 군대가 있는 곳을 뭉개버릴 계획이다.

"지름 10미터나 되는 이 거대한 나무들이 무기가 되다니."

스르륵- 스르륵- 스윽-

해골 병사들이 범려가 정해준 나무에 톱질을 하기 시작하자, 나무가 썰리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오크들에게 공포의 시간이 찾아왔다.

"넘어간다!"

끼이이익! 우지직-!

지름 10미터나 되는 거대한 나무가 오크들의 주둔지에 떨어지자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취익! 나무가 떨어졌다! 병사들이 죽어간다!"

"또 간다!"

쿵! 쿵!

이번에는 2개가 연속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둔지를 그대로 덮쳤고, 그 많던 오크들이 곤죽이 되어 살아남은 놈들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취익! 살려 줘! 살려 줘!"

아직 죽지 않은 오크들이 여기저기서 살려 달라며 외쳤지만, 범려는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해골 병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연이어 터지는 레벨 업 소리가 범려의 눈과 귀를 어지럽게 했고, 해골들과 범려 모두 8렙이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후! 얼마나 죽었는지 감도 안 잡힐 정도구나."

8렙이 오를 정도로 많은 오크들이 죽었다. 겨우 나무 3개를 쓰러트렸을 뿐인데 주둔지는 쑥대밭이 되고 만 것이다.

"여기서 오크들을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 오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다 쓸어버려라!"

범려는 병사들을 이끌고 주둔지로 달려가더니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오크들을 공격했고, 혼란에 빠진 오크들은 별다른 저항도 제대로 못해보고 다 죽고 말았다.

다시 엘프의 도시로 돌아온 범려는 톱을 건네주면서 더 이상 오크들이 쳐들어오지는 않을 거라 말했다.

"범려 님, 오크들을 다 물리치신 겁니까?"

"네."

"이제 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한 고비라니요? 오크 말고 또 있는 겁니까?"

범려는 오크들만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엘프 도시를 공격하는 몬스터들은 단순 오크들만이 아니었다. 이외에도 무려 두 종족이나 엘프 도시를 노리고 있었다.

"리자드맨들과 트롤들이 이곳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골칫거리는 리자드맨입니다."

멍청한 트롤들은 무식하게 성문으로 돌진만 하기 때문에 쉽게 상대할 수 있지만, 리자드맨들은 상당히 똑똑하고 몸이 날렵한 놈들이라 사다리만 올리면 순식간에 성벽 위로 뛰어오른다.

"공성 병기를 만드는 게 어떻습니까?"

"네? 하지만 저희는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항상 정령의 힘에 의존해온 엘프들이다. 공성 병기처럼 기계적인 물건은 만드는 기술이 부족하다.

"투석기라면 제가 만드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범려는 발리스타를 만드는 법은 모르지만 투석기라면 만들어봤다.

"투석기?"

아골은 투석기라는 것도 처음 듣는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범려는 잠시 기다려 보라는 손짓을 하더니 아르테미스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범려 님."

"이번에는 조용히 오시네요."

"호호호! 요란하게 오는 건 한 번이면 돼요."

"투석기를 소환해주세요."

딱!

아르테미스는 손가락을 튕기자 2개의 투석기가 소환되었다.

"그럼 다음에 또 봬요."

아르테미스는 투석기 소환을 끝내고 그대로 돌아갔다.

투석기를 본 아골이 그 크기에 놀랐다.

"굉장히 큰 물건이군요."

"이걸로 거대한 바위를 날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에게 피해를 주는 겁니다."

범려는 투석기의 용도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이야기를 모두 들은 아골은 범려를 대장로님에게 데려가 다시 한 번 투석기에 대해 설명하도록 했다.

"허허! 위험한 무기구나. 하지만 몇 개는 필요하겠어."

대장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게 전부였다. 그래도 무기가 필요하다고는 느낀 모양이었다.

"대장로님의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범려 님."

"네? 그게 허락이 떨어진 겁니까?"

"이제 그 투석기를 만들면 됩니다."

한순간에 떨어진 결정으로 인해 범려는 투석기를 만들어야 했다.

"투석기를 만들려면 여러 가지 재료가 필요합니다."

범려는 투석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모두 다 구해달라고 했고, 아골은 도시에 있는 엘프들에게 도움을 청해 공성 병기인 투석기를 만들 재료를 모았다.

"이 정도면 4기는 만들겠는데요."

투석기 4기면 전투 시작부터 많은 수의 병사들을 죽일 수 있다.

범려는 엘프들이 가져온 재료로 투석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사용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 주었다.

"이제 트롤과 리자드맨들을 물리치는 일만 남았습니다."

엘프들은 새로운 무기를 얻어서 들떠 있었다. 하지만 무기를 얻었다고 해서 평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엘프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범려가 보기에는 엘프들은 정령의 힘을 잃고서 무기와 성벽이라는 벽을 만들어 거기에만 기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골 님, 리자드맨이나 트롤들의 근거지는 아십니까?"

"모릅니다."

기대도 안 했지만 막상 모른다는 대답을 듣자 범려는 머리가 아파왔다. 이번에도 녀석들을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이다.

'끙! 도움이 안 되는 엘프들이네.'

NPC에게 무슨 희망을 품는단 말인가. 그냥 유저들이 알아서 해야지.

"그럼 녀석들이 어느 방향에서 자주 침입하는지는 아십니까?"

"트롤은 북동쪽에서 오고, 리자드맨은 북서쪽에서 옵니다."

그나마 어느 방향에서 몬스터들이 몰려오는지 그거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트롤을 먼저 잡으러 가야겠군."

먼저 무식한 트롤들을 없애버려야 전투가 쉬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범려는 곧 트롤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당히 크고 번성한 그 마을에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휘이익! 찰싹!

"이 무식한 트롤들아! 어서 움직여라!"

채찍을 들고 있는 리자드맨들이 이 트롤 마을을 점령하고 그들에게 채찍질을 가하면서 노예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쿠어-! 아프다."

"무식한 것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휘이익! 짝!

리자드맨들은 인정사정없이 채찍을 휘두르면서 트롤들을 제압했고, 녀석들은 채찍질당하는 게 무서워서 리자드맨들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고 있었다.

"망할! 리자드맨들이 이렇게 똑똑한 녀석들이라니."

리자드맨들은 엘프 도시를 공격하기 위해 먼저 트롤들을 제압해 그들을 이용해서 전쟁을 치를 작정이었다.

"돌아가자. 이곳에서의 전투는 불리한 싸움이다."

자신의 불리함을 깨달은 범려는 바로 도시로 돌아가 엘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정말입니까? 리자드맨들이 트롤 마을을 점령한 겁니까?"

"네.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습니다. 리자드맨들이 머리를 굴려서 그들을 제압했습니다."

"대장로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습니다."

아골은 대장로에게 알려야 한다며 곧장 달려갔고, 범려도 그 뒤를 따라갔다.

"허허허! 이런……."

대장로는 허탈한 웃음소리만 나올 뿐 별다른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물러가게. 혼자 있고 싶구나."

엘프들은 대장로의 말을 듣고 물러갔지만 범려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왜 당신은 가지 않고 남은 거요?"

"대장로님에게는 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고 생각되어 남았습니다."

범려는 몬스터 퇴치 퀘스트를 깨려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오크들과 전투를 해봐서, 도시를 공격하는 병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기에 신중을 기했다.

"사실 한 가지 방법이 있소. 하지만 그 방법은 너무나 위험하오이다."

"대장로님, 그게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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