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정령계의 문을 열어라
대장로는 심각한 얼굴을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굳게 닫혀 있는 정령계의 문을 다시 여는 것이오."
"정령계의 문을 다시 여는 거라고요?"
"그렇소이다. 정령의 힘을 다시 찾는다면 몬스터들을 막아낼 수 있소이다."
범려는 지금 대장로가 하는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분명 말하는 투로 봐서는 퀘스트를 줄 듯 말 듯 애매모호한 상태다.
'분명 퀘스트를 줄 분위기인데 어떻게 하지?'
범려가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대장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소이까?"
"대장로님……."
대장로가 다가와 무릎까지 꿇으면서 애원을 하자 범려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대장로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러지 마십시오. 도대체 무슨 부탁인지는 모르지만, 들어드리겠습니다."
범려는 나이 지긋한 어른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을 정도라면, 얼마나 간절했겠는지 짐작이 갔다.
-엘프 대장로의 간절한 애원 2
대장로는 엘프들이 정령의 힘을 잃어, 언제나 정령에 대한 그리움과 그 힘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난이도:A
발동 조건:엘프 대장로의 간절한 애원 1을 수행 중인 상태
완료 조건:정령계의 문을 열어라.
보상:명성 +5,000, 칭호 엘프들의 영웅
"헉!"
아직 퀘스트가 수행 상태인데 또 다른 퀘스트가 나타났다. 그리고 보상이 너무나 좋았다. 명성 5,000! 이건 다른 퀘스트 수백 번을 해야 얻을 수 있는 명성이다.
"대신 난이도가 A라……. 지독하겠어."
완료할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기는 하지만, 대장로에게 부탁을 들어준다고 말한 이상 범려는 그리 깊게 생각지 않았다.
"대장로님, 혹시 정령계의 문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알고 있네. 여기를 벗어나 남쪽으로 아멜리아 지역의 해안선을 따라가면 물과 바람의 정령들에게 폭풍우를 만나지 않게 기도를 올리는 제단이 있다네."
"물과 바람? 그럼 불과 땅은 어디 있습니까?"
"그건 분노의 아만에 있는 제일 커다란 화산에 있지. 산 이름은 잘 모르지만, 거기에 가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네."
범려는 남북으로 끝과 끝을 달리는 여행이 될 것 같아 골치가 아파왔다.
"지금 떠나야 합니까?"
"그렇게 하게. 리자드맨들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얼마간은 버틸 수 있고, 자네가 만들어준 공성 병기를 쓴다면 더 오래 버티겠지."
"하루 빨리 정령계의 문을 열고 돌아오겠습니다."
범려는 그대로 성문을 나와 남쪽으로 움직였다. 그나마 엘프 도시가 남쪽에 위치해 있어서 아멜리아 지역으로 가는 게 빠르기 때문이다.
우르르!
해골마들이 달리는 소리가 자연의 도로시 지역과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에 울렸다.
"으아! 여기는 올 때마다 추워."
범려가 해골 병사들과 함께 아멜리아 지역으로 들어서자 때마침 눈보라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멜리아의 축복을 받아 이곳에서 부는 찬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축복이 좋기는 좋군."
남들은 다 어디 굴을 파거나 동굴에 숨어 있는 반면, 범려는 유유히 눈보라를 맞으며 아멜리아 지역 동쪽 해안가에 도착했다.
"마치 남극을 보는 것 같군."
주변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고 바다에는 얼음들이 둥둥 떠다녔다. 다만 펭귄들이 보이지 않아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여기가 가장 동쪽이니까 서쪽으로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물과 바람의 제단을 발견하겠지."
지금은 정령의 문이 닫히는 바람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지만, 한때 이곳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물과 바람의 제단에 기도를 해서 폭풍우를 피해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기도를 올리는 곳이었다.
쿠르릉! 번쩍!
해안선을 따라가던 범려는 커다란 제단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제단 위에는 검은 먹구름이 끼어 있었고, 천둥이 치면서 주변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었다.
"저게 물과 바람의 정령에게 기도한다는 제단이군.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라. 나 혼자 갔다 오마."
범려는 해골들을 대기시키고 말에서 내려 제단을 향해 걸어갔다.
"어떻게 정령들을 불러내지?"
굳게 닫힌 문을 열기 위해서는 뭔가 있어야 하지만, 범려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령들을 불러낼 방법이 없으니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상황. 그러나 이런 퀘스트를 줬을 때는 뭔가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제단이니까 기도를 하면 나오려나?"
단순하게 생각해보니 이곳이 명색이 제단이니 기도를 올리면 도움이 될 만한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인간 범려가 물과 바람의 정령왕을 만나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제 기도가 들리신다면, 단 한 번만이라도 두 분을 뵙고자 합니다."
진심을 다해서 기도를 했지만, 하늘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뭐야, 이거? 아무것도 안 나타나잖아. 헛짓거리 했네. 아르테미스!"
"범려 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여기는 어디인가요?"
아르테미스는 이런 곳은 처음 봐서 그런지 신기한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머나! 여기 이렇게 넓은 돌이 있네요. 식탁인가요?"
"아르테미스 님, 여기는 제단이에요. 바다에 나가는 뱃사람들이 물과 바람의 정령들에게 폭풍우를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제단이오."
"제단? 그럼 제물은 어디 있나요?"
제물이라는 말에 범려는 두 눈을 반짝이며 아르테미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래! 제물이었어!"
범려는 아르테미스의 날개를 향해 손을 뻗더니 깃털 하나를 뽑아버렸다.
"아야! 범려 님, 너무해요! 제 깃털을 함부로 뽑다니!"
"죄송해요. 이 은혜는 꼭 갚을게요!"
제단 위에 아르테미스의 깃털을 올려놓고 다시 한 번 기도를 올리자, 두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천사의 깃털!'
"우리를 부른 것이 누구인가."
두 정령왕이 모습을 드러내자 범려가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제가 두 분을 불렀습니다."
"어머! 두 분 다 오랜만에 뵙네요."
옆에 있던 아르테미스가 끼어들더니 물과 바람의 정령왕에게 인사를 했다.
"아르테미스 님."
두 정령왕 역시 고개를 숙이며 아르테미스에게 인사를 하자, 가장 놀란 이는 범려였다.
'역시 영혼의 세계를 관장하는 천사답게 두 정령왕이 고개를 숙이다니.'
『판게아 월드』에서 아르테미스의 NPC 서열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었다.
"범려 님은 두 분을 처음 보시죠? 소개해드릴게요. 이쪽은 물의 정령왕 엘퀴네스, 반대편은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예요."
"바, 반갑습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지만, 일단 아르테미스에게 정령왕을 소개 받고 소개도 해주었다.
소개가 끝나자 정령왕들은 본론을 꺼냈다.
"회색의 전승자가 무슨 일로 우리들을 부른 거지?"
"다름이 아니라, 닫힌 정령의 문을 다시 열기 위해 왔습니다."
"그건 우리 둘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다른 두 정령왕들의 허락이 있어야 정령계의 문을 열 수 있다."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불과 대지의 정령왕들을 만나 설득할 것입니다. 그 전에 두 분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허락할 수가 없다."
물과 바람의 정령왕이 허락할 수 없다는 뜻을 표하자 범려는 심각해졌다. 불과 대지의 정령왕이 허락을 한다고 해도 이 둘이 거부한다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회색의 전승자가 더 잘 알 텐데."
엘프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지키기 위해 정령의 힘을 사용했을 뿐이다. 비록 너무 많은 힘이 모여 자연의 균형을 깨트릴 뻔했다고 하지만, 엘프들로서는 불운한 일이다.
"그건 자신들의 도시를 지키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나쁜 의도로 그랬다면 문제가 되지만, 엘프들은 겨우 자신의 도시를 지키기 위해 힘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범려는 마치 변호사라도 된 것처럼 엘프들을 대변하는 말을 했다. 정령왕들은 거기에 맞춰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여기서는 범려가 한 끗발 더 높은 언변을 구사했다.
"그럼 엘프들은 멸종! 당해야 하는 겁니까? 자연을 위해 거두었다고 하지만, 엘프들의 생존권까지 빼앗는 것은 횡포입니다!"
어찌어찌해서 이제는 엘프들의 생존권 이야기까지 나오자 정령왕들은 범려의 말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 그건……."
"허락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게……."
"그럼 엘프들을 다 죽이실 작정입니까!"
범려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지만, 그것이 이상하게 흘러가더니 정령왕들을 악당으로 만들고 있었다.
"허,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은 범려의 승리였고, 정령왕들은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찝찝함을 느꼈다.
'다시 거부하기 전에 얼른 도망쳐야지.'
대답을 들은 범려는 잽싸게 도망쳐 버렸고, 멀어지는 범려의 모습을 본 아르테미스도 다시 영혼의 세계로 돌아갔다.
"우리가 엘프들의 생존권까지 책임져야 하나?"
"그건 아닐 거야, 엘퀴네스."
"그럼 정령의 문을 닫았다고 겨우 인간한테 이렇게 핍박을 받아야 하나?"
"그것도 아니야."
"그럼 우리는 뭐지?"
"바보들이지……."
둘은 바보였다. 말도 안 되는 범려의 궤변에 놀아난 바보였다. 그 와중에 실피드가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공부의 필요성이었다.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공부라는 걸 해야겠어."
실피드는 냉정하게 입을 열더니 모습을 감췄고, 홀로 남은 엘퀘네스는 한동안 분노했지만 그것도 잠시, 실피드를 따라서 공부하러 가버렸다.
"하하하! 이제 분노의 아만으로 가서 나머지 두 바보들을 놀려 먹자!"
범려는 게임 시간으로 이틀 동안 밤낮없이 달려서 분노의 아만 지역에 도착했다.
"으아! 뜨거워라!"
분노의 아만은 화산 지대였다. 어디를 가나 불구덩이가 있었고, 산들은 하루에 한 번씩 화염을 토해내고 그럴 때마다 주변이 화산재가 날리는 곳이다.
"후텁지근한데."
게임이라서 땀은 흐르지 않았지만 찝찝하면서도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이곳에서 제일 큰 화산을 찾아야 한다고 했지."
불과 대지의 정령왕이 그곳에 있다고 했으니, 범려는 그 화산을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큰 산이라고 했으니 쉽게 찾겠지."
범려는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이곳의 화산들은 하루 종일 시커먼 연기에 뒤덮여 있기에, 어떤 산이 제일 큰 산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으아! 덥다! 제일 큰 화산도 찾아야 하고, 지도도 구해야 하고. 힘들다, 힘들어."
해골 병사들은 이런 더위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머리에는 화산재가 내려앉아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쾅!
근처에 화산이 하나 터졌는지 굉음이 들리면서 지축을 흔들었다.
"완전 불구덩이 속이네."
화산이 아무리 터져도 유저에게는 별다른 피해가 없다. 그저 눈으로 보여 주는 이미지에 불과했다.
"제일 큰 화산은 어디 있는 거야? 이거 뭔가 보여야지."
하늘에는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끼어 있어서 웬만한 높이의 산들은 그 연기에 가려 제일 높은 봉우리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에베레스트처럼 구름 위에 봉우리가 있는 건가?"
화산이 그만한 높이까지 솟아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지만,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다.
"이럴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범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접속해 있는지 확인을 해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필요할 때는 아무도 없네."
필요 없을 때는 북적대더니 막상 필요할 때는 자리에 없었다. 주변에 도움이 되는 인간들이 없어 한탄스러울 뿐이다.
"제길! 나 혼자 찾는다. 아멜리아의 레어를 찾을 때도 나 혼자였고, 퀘스트할 때도 나 혼자다. 에잇!"
혼자서 분풀이를 했지만, 그런 모습은 범려를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었다.
화르르!
"으아악!"
눈앞에서 불기둥이 치솟자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 범려는 그 불길의 정체를 금세 파악했다.
"뭐야, 밑에 용암이 흐르잖아?"
땅 밑으로 용암이 흐르고 있었고, 땅바닥에 난 틈을 통해 간헐적으로 용암이 불쑥 솟아올라온 것이다.
"여기는 왜 이렇게 생겨 먹은 거야?"
어떤 의미로는 냉혈의 아멜리아보다 더 안 좋은 곳이었다.
「키아악!」
"크윽! 드래곤?"
귀를 아프게 할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와 하늘을 보니, 황혼에 물든 저녁노을처럼 붉은빛을 발하는 드래곤이 배회하고 있었다.
"저 드래곤이 분노의 아만이군."
드래곤의 등 갈기가 실제로 불이 붙은 건지 아닌 건지 확인은 안 됐지만, 갈기에서 불길이 치솟은 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음?"
하늘을 날아다니던 아만이 범려를 발견하고는 점점 아래로 내려오면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헉! 이쪽으로 온다."
「그대는 누구인가?」
드래곤이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처음이라서 범려는 그 자리에 멍하니 있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그대는 누구인가?」
"범려입니다."
「왜 드래곤의 축복을 두 개나 받았는가?」
아만은 범려가 회색의 전승자인지는 몰라도, 아티잔과 아멜리아가 축복을 내린 것이 느껴졌다.
"거기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습니다."
번쩍!
빛이 순간적으로 번쩍이더니 불타는 갈기를 가진 드래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붉은 머리를 하고 있는 18세 정도 되는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어서 말해! 그 무뚝뚝한 년이랑 사향 냄새나는 년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드래곤끼리 사이가 별로 안 좋은지 다들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녀들의 특징을 이야기했다.
"아르테미스 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습니다."
범려가 아르테미스의 이름을 들먹이며 설명을 하자 아만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정체가 뭐야? 어떻게 아르테미스 님을 알고 있지?"
아만은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범려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저는 아르테미스 님이 정해주신 회색의 전승자입니다. 아만 님, 죄송하지만 전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합니다."
"내 용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어디를 가려는 거야!"
아만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고함을 치는 바람에 범려는 잠시 귀를 막았다.
"그럼 질문을 다 하신 후에 제 소원 하나를 들어주시는 겁니까?"
"내가 왜 네놈의 소원을 들어줘야 하는데? 난 드래곤이야. 내가 원하면 넌 대답해야 해!"
"제가 왜 그래야 하는 겁니까?"
범려는 다짜고짜 질문 공세를 쏟아 붓는 아만을 보고 말 많은 드래곤이라고 생각했다.
"죽고 싶어?"
"어디 절 죽일 수 있습니까?"
범려는 아티잔의 축복으로 인해 그 어떤 드래곤이라고 해도 먼저 공격당하지 않는다.
"크윽! 무뚝뚝한 년의 축복만 아니면 이걸 그냥!"
분노의 아만은 그 이름에 걸맞게 화를 냈지만 범려를 공격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왜 하늘에서 내려와 저의 가는 길을 막은 겁니까?"
"내 맘이야. 여기서 누구를 죽이든 살리든! 넌 왜 여기에 온 거야?"
말괄량이 아가씨 하나가 범려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그녀의 물음에 일단 응해줘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에 온 이유는 불과 대지의 정령왕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제일 큰 화산에 가면 알 수 있다고 해서 온 겁니다."
"제일 큰 화산? 넌 그곳에 갈 수 없어. 그 산에 오르려면 용암으로 된 강을 건너야 해."
용암으로 된 강이라는 말을 듣고 범려는 살짝 휘청거렸다.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해주면 그 강을 건너게 해주지. 호호호!"
'크윽! 저 짜증나는 드래곤.'
범려는 용암의 강을 건너기 위해 한발 물러나 아만이 묻는 모든 질문에 전부 다 대답해주었다.
"내 질문에 모두 답을 해줬으니 용암의 강을 건너게 해주지."
"가, 감사합니다."
범려는 아만이 쏟아내는 질문에 심신이 지쳐 있었다. 그래도 아만은 약속대로 제일 큰 화산이 있는 곳을 알려 주고는 용암의 강도 건너게 도와줬다.
"일이 끝나고 다시 강을 건널 때는 내 이름을 불러. 마법으로 강을 건너게 해줄 테니까."
"네."
범려는 너무 지쳐서 잠시 로그아웃을 했다.
"아, 힘들다. 드래곤들 상대하는 게 뭐 이리도 힘드냐."
빠라바라 빠라밤! 빠라바라 빠라밤!
"그래, 재성아,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기는. 너 복학 안 하냐고 전화하는 거다.)
"복학해야지."
(그럼 학교로 와서 복학 신청하고 등록금도 같이 내라. 돈 없으면 내가 빌려 줄게.)
재성은 선뜻 희성에게 돈을 빌려 주겠다면서 복학 이야기를 꺼냈지만, 재성에게 돈을 빌릴 만큼 절박한 상황은 아니다.
"아, 나 학비 있어. 걱정 마. 지금 가서 신청하면 되냐?"
(지금 와서 복학 신청하고 등록금 내면 돼.)
희성은 재성의 말대로 당장 학교로 가서 복학 신청과 같이 다음 학기 등록금도 납부했다.
"너, 돈 어디서 난 거야?"
"나? 뭐, 이래저래 돈 좀 벌었다. 어떻게 돈을 벌었냐고 묻는다면 노코멘트."
"그러고 보니 천마 길드에서 해골마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다섯이라고 했는데, 거기에 말을 팔아서 현금으로 바꾼 거지?"
희성은 재성의 추리에 멍한 얼굴이 되어서는 이런 족집게 같은 인간을 봤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놀란 표정 지을 필요 없어. 『판게아 월드』에 너에 대한 소문은 쫙 퍼져 있으니까."
재성은 소문만 듣고 추궁한 것인데, 희성의 얼굴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나니 더 이상 추궁할 필요가 없어졌다.
"너, 내 이름 떠벌리고 다니는 건 아니지?"
희성은 불안한 나머지 재성에게 물었다.
"내가? 귀찮게 그런 걸 왜 하냐?"
"정말이지?"
"야야, 걱정 마라. 친구 팔아먹어서 무슨 이득이 된다고 그런 짓을 하겠냐?"
재성은 희성을 안심시켜 주고 함께 학교에서 나왔다.
"이제 뭐 할 거냐?"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해야지."
"이런 폐인. 그러다 몸 망친다. 이왕 나온 김에 산책이나 하고 가라."
재성의 말에 희성은 가볍게 걸으면서 오랜만에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근데 재성아, 너 돈 얼마 벌었냐? 다이아몬드 만드는 비법을 알잖아."
"후후후! 게임으로 나같이 돈 많이 번 사람이 있냐고 물으면 아마 아무도 없을 거야. 2억 벌었다."
"헉! 2억!"
평범한 사람은 쉽사리 만져 보지도 못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그걸 게임을 하면서 벌다니, 희성은 재성이 존경스러웠다.
"다이아몬드 말고 그 외 다른 광물 변환 방법을 얻어냈지. 그래서 2억을 벌 수 있었던 거야."
"어떤 변환식이야? 금? 은? 백금? 아니면 보석 종류?"
"미스릴 변환식이다. 철을 미스릴로 변환시키는 거지."
이 미스릴을 구하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판게아 월드』에서는 광산을 찾아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그걸 변환하는 변환식을 찾았다는 것이다.
"철을 미스릴로? 너야말로 사기 캐릭터 아니냐?"
"무슨 소리! 넌 그 많은 해골들 끌고 다니잖아. 사기 캐릭터는 너야, 너."
둘 다 서로의 캐릭터가 사기라면서 되받아쳤지만, 정작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둘 다 사기 캐릭터였다.
재성과 헤어진 후, 희성은 다시 게임에 접속해 불과 대지의 정령왕이 있는 곳을 찾아 헤맸다. 물과 바람의 정령과는 다르게 특별한 제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령왕들은 어디 있는 거야?"
콰쾅!
하루에 한 번 터지는 화산에서 때마침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그와 동시에 범려와 해골들은 땅에 엎드려 그 불길이 자신들에게까지 미치지 않기를 기도했다.
"이런 곳에 무슨 불과 대지의 정령왕들이 있다는 거지?"
화산을 돌아다니던 범려. 문득 화산 꼭대기를 본 그는 불길이 치솟는 부분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 형상의 이상한 물체를 보게 되었다.
"불타올라라! 우하하!"
"이런! 이곳을 다 불바다로 만들 거야?"
화산 꼭대기에서 두 정령왕들이 티격태격하면서 놀고 있는 것이었다.
"멍청한 바보들이 저기 있구나."
이제 퀘스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화산이 진정이 돼야 다가가서 정령왕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안 돼! 벌써 불이 꺼지려고 해……."
불의 정령왕은 화산 활동이 멈추자 굉장히 아쉬워하면서 한숨을 쉬었고, 대지의 정령왕은 그런 불의 정령왕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불과 대지의 정령왕이시여."
"누구냐!"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전 범려라고 합니다."
범려는 자신의 소개를 하더니 두 멍청이들을 어떻게 요리할지 머리를 굴렸다.
"무슨 일로 우리를 찾아온 것이냐?"
불의 정령왕이 의외로 침착하게 무슨 이유로 이곳에 왔는지 묻자, 범려는 차분히 그 이유를 말했다.
"정령계의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뭐! 문을! 인간 주제에 정령왕들이 내린 결정을 뒤엎으려고 하는구나!"
불의 정령왕이 강압적으로 나오면서 범려를 몰아세웠지만, 범려는 그런 정령왕의 모습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럼 엘프들이 생존을 위해 사용한 정령의 힘을 왜 거두신 겁니까?"
"그건 그들이 자연의 균형을 무너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엘프들은 몬스터들로부터 위협을 느껴 힘을 발휘한 것뿐입니다. 몬스터들이 위협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겠지요."
"그건 엘프들의 사정. 우리는 우리의 사정이 있다."
"하하! 정령왕이라는 존재가 겨우 자신들만의 이유와 사정으로 정령계의 문을 닫다니.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뭐야!"
가만히 지켜만 보던 대지의 정령왕이 끼어들면서 역정을 냈지만, 범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지 않습니까? 엘프들이 생존을 위해 사용한 정령의 힘이 조금 넘쳐 자연의 균형을 위협했다고 합시다. 그게 굳이 정령계의 문을 닫을 만큼 위험한 것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범려의 말은 사실이다. 엘프들은 몬스터들 때문에 조금 과도하게 정령의 힘을 사용했었다.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절대로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인간 주제에 말이 많구나!"
불의 정령왕은 마땅히 할 말이 없는지 힘으로 범려를 누르려고 했다.
"이런!"
화르르!
범려는 급하게 몸을 틀면서 정령왕의 공격을 피했지만, 그 공격이 지나간 자리는 바위조차 녹아내리는, 실로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말이 안 통한다고 공격을 하는 겁니까! 왕으로서 너무 치졸한 행동이 아닙니까!"
범려가 불의 정령왕의 공격에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치졸한 행동이라며 항변하자 정령왕의 몸이 움찔거렸다.
'걸렸다.'
범려는 정령왕의 행동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뭐, 뭐가 치졸하다는 거냐!"
"말이 통하지 않아 힘으로 저를 핍박하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게 치졸하지 않다면 뭐가 치졸하다는 겁니까!"
"크윽!"
불의 정령왕은 화가 났지만 이 이상 공격을 하면 속 좁은 정령왕으로 낙인찍힐까 봐 더 이상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아르테미스!"
범려는 지금 상황에서 확실한 쐐기를 박기 위해 아르테미스를 불렀다.
"무슨 일이세요, 범려 님."
"아르테미스 님, 제 억울함을 들어주십시오."
아르테미스는 범려의 억울한 사연을 모두 다 듣더니 이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매서운 눈으로 정령왕들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죠!"
"아르테미스 님……."
『판게아 월드』에서는 아르테미스가 정령왕들보다 한 끗발 높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아르테미스에게 고개를 숙이는 정령왕들이었다.
"범려 님은 하나 잘못한 게 없는데, 두 분 다 너무하시는군요."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해골 제작자와 깊은 연관이 있는 아르테미스가 범려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그렇죠, 아르테미스 님? 두 정령왕들이 힘이 있다고 평범한 인간을 핍박하려고 하다니. 이건 너무 억울한 처사가 맞죠?"
"맞아요. 너무 억울한 처사예요."
이미 아르테미스는 범려의 편이 된 상황이다. 두 정령왕들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대로 범려를 계속 핍박한다면, 정말 자신들이 치졸한 정령왕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불과 대지의 정령왕님, 이제 정령의 문을 열어주시는 겁니까?"
"안 된다."
"그럼 두 정령왕들이 치졸하게 평범한 인간 하나를 공격했다고 소문낼 겁니다! 그럼 다른 존재들도 이 사실을 모두 알게 되겠죠!"
범려는 두 정령왕들을 협박했다. 왕이라는 위치에 있는 그들이 치졸한 수법으로 공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이다.
"그, 그건……."
"그럼 뭐가 문제인 겁니까?"
"물과 바람의 정령왕이 정령계의 문을 여는 걸 허락해야 한다. 우리 둘의 문제가 아니다."
"그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그 두 분은 이미 정령계의 문을 여는 데 승낙했습니다."
범려는 아무런 문제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상대를 가지고 놀았다. 이 싸움은 이미 승패가 나와 있는 싸움이었다. 바보 정령왕들은 범려의 궤변에 놀아났고, 약간은 비겁하지만 범려는 아르테미스를 동원해 아군으로 만듦과 동시에 정령왕들을 몰아세울 확실한 증인을 만든 것이다.
'후후후! 물과 바람의 정령왕도 그렇지만, 너희들도 무식하기는 마찬가지구나.'
"아, 알았다. 두 정령왕들이 승낙했다면 나 역시 거부할 수가 없겠구나."
"감사합니다, 정령왕님."
범려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겉으로만 고개를 숙였을 뿐이지, 속으로는 정령왕들을 비웃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엘프들이 정령의 힘을 다시 사용하게 됩니다.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뜨면서 대장로의 간절한 애원 2를 깬 것이다.
"하하하! 대장로한테 가자!"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든든한 배경이 있다는 것은 좋은 거다. 이렇게 어려운 퀘스트가 단숨에 해결되지 않는가.
엘프 도시로 돌아온 범려는 곧장 대장로를 만났다.
"범려 님, 저희에게 다시 정령의 힘을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엘프들에게 도움이 돼서 오히려 제가 기쁩니다."
-칭호가 로벤 마을 영웅에서 엘프의 영웅으로 변경됩니다.
-명성 5,000을 획득하셨습니다.
-칭호:엘프의 영웅
모든 능력치 +20
엘프 도시에서만큼은 물건을 살 때 50% 싸게 사고, 30% 비싸게 팔 수 있다.
퀘스트 보상을 받자 범려는 흐뭇했다. 더군다나 칭호 같은 것은 쉽사리 바뀌는 것이 아니고,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하는데 퀘스트 한 방으로 얻은 것이다.
"대장로님, 아직 리자드맨들이 쳐들어오지 않았나요?"
"네, 아직 녀석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장로님, 저희가 그들을 먼저 공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범려는 엘프들이 정령의 힘을 되찾았기에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설마 거절하겠어? 라는 생각도 있었다.
"당연히 그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지요."
전과 달리 소극적인 모습이 아닌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대장로였고, 다른 엘프들도 대장로처럼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우리를 위협하는 몬스터들을 모두 다 몰아냅시다!"
"몬스터를 몰아내자!"
정령의 힘을 다시 얻게 되자 엘프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날 당장 범려는 엘프들을 이끌고 트롤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갔다.
"어라? 엘프 도시를 침공하려고 여기에 무기를 잔뜩 만들어놨구나."
마을 곳곳에서 병장기들이 눈에 띄었다. 병장기 대부분은 무거운 병기들뿐이었고, 리자드맨들은 여전히 채찍을 휘두르면서 트롤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다들 잘 들어라. 오늘 밤 트롤 마을은 이곳에서 사라진다."
범려는 작은 소리로 명령을 내렸지만, 엘프들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흐흐흐! 귀여운 경험치들."
사악한 미소를 짓는 범려는 오늘 밤 트롤들을 잡아 레벨 업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깊은 밤이 되었고, 엘프들의 역습의 때가 찾아왔다.
슈슈슈우욱!
"큭!"
"적들……!"
트롤 마을에서 순찰을 돌던 리자드맨들은 제대로 된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죽었다.
"다 쓸어버려라!"
범려가 큰 소리로 외치자 숲에 숨어 있던 엘프들이 몬스터 마을을 향해 화살을 날리며 공격을 퍼부었다.
"오랜 세월을 참고 살아온 우리다! 이제는 복수를 할 때가 찾아왔다!"
엘프들은 반쯤 흥분해 있었지만, 공격은 매처럼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기습이다! 엘프들이 쳐들어왔다!"
리자드맨이 소리쳤지만, 트롤들이 그 소리를 듣고 반응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녀석들이 전투태세를 갖추기 전에 다 쓸어버려야 한다!"
범려는 엘프들과 해골 병사들을 지휘하면서, 혹 리자드맨들이 트롤 마을을 벗어나 자신들의 마을로 가지 않을까 경계했다.
"한 놈도 살려 둬서는 안 된다!"
이런 야간 전투는 해본 적이 없는 범려라서 걱정을 했지만, 엘프들이나 해골들이 명령에 잘 따라주어서 큰 문제없이 트롤 마을을 폐허로 만들었다.
"엘프들은 마을 바깥으로 도망친 리자드맨이 있는지 확인해라."
다행히 리자드맨들이 도망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공격에 휘말려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다.
"후후! 한 놈도 도망을 못 갔구나. 내일 밤에는 리자드맨들의 마을을 공격한다!"
트롤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다음 날 밤, 엘프들은 리자드맨들이 사는 마을로 은밀하게 움직였다.
"범려 님, 전원 리자드 마을 근처로 이동했습니다."
"아골 님,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내리는 신호에 맞춰서 움직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엘프들은 범려의 명령에 따라서 마을 주변 이곳저곳에 배치되었고, 리자드맨들이 혹시라도 눈치를 챌까 봐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였다.
"범려 님, 준비됐습니다."
씨익.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범려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자 그 신호에 맞추어 궁수들이 활을 당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사!"
일제히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리자드맨 마을 전체를 뒤덮었고, 엘프들은 각자 자신의 화살에 불의 정령의 힘을 실었다.
"이거 불화살이 따로 없는데."
불의 힘을 담은 화살은 마을을 불태우고 리자드맨들에게 아주 뜨거운 불세례를 내리고 있었다.
"리자드맨들이 마을 바깥으로 나온다!"
마을 바깥으로 나온 녀석들 중에는 단 한 놈도 멀쩡한 녀석들이 없었다. 다들 작은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다들 정령을 불러라!"
엘프들이 전부 정령을 불러내 리자드맨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크악! 수, 숨이……!"
"뜨거워! 살려 줘!"
"내 팔! 내 다리-!"
리자드맨들은 엘프들에게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다. 이후 몬스터들에 대한 위협은 이제 사라질 것이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리자드맨들을 다 잡자 나타난 메시지는 대장로의 간절한 애원 1을 완료했다는 거다.
퀘스트를 순서대로 한다면 애원 1을 완료하고 2를 완료해야 하는데 거꾸로 퀘스트가 완료되면서 살짝 이상하게 느껴졌다.
"돌아가죠."
범려가 엘프들을 이끌고 도시로 오자 대장로나 다른 엘프들이 성문 앞에 나와서 범려와 엘프 전사들을 맞이해주었다.
"범려 님,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대장로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엘프들에게 정령의 힘을 돌려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저희들을 위협하는 몬스터들도 물리쳐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대장로는 진정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범려는 퀘스트 보상 아이템으로 유니콘의 활을 받았다.
-유니콘의 활
유니콘의 힘이 담긴 활
공격력:700 내구력:150/150
옵션:민첩성 +100
치명적인 공격이 성공하면 하늘에서 800의 피해를 주는 빛의 화살이 떨어진다(마법 방어력 무시).
"클클클! 그렇지 않아도 활을 바꿔야 했는데 굉장한 활을 얻게 되다니."
유니콘의 활은 범려 같은 유저에게
'너 지존 먹어!'
라는 아이템이다.
아이템을 받은 범려가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판게아 월드』 대륙 전체에 메시지가 떴다.
-세상에 잠들어 있던 정령의 힘이 깨어났습니다.
정령의 힘이 깨어났다는 문구를 본 범려는 별거 아니겠지 라며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유저들은 그렇지 않았다.
"정령의 힘?"
"정령이래. 여기에는 정령사가 없잖아."
"뭐가 나오려나?"
사람들은 다들 한마디씩 하면서, 정령이라는 단어에 이목을 집중했다.
그리고 다음 날, 더 대단한 일이 벌어졌다.
-정령사가 등장하게 됩니다. 정령사가 되기 위해서는 엘프 도시로 가셔서 엘프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시작 지점으로 자연의 도로시가 추가됩니다. 엘프 도시 주변으로 초보 존이 형성됩니다.
-기존 유저들 중에서 정령사가 되고 싶은 유저들을 위해 7일간 정령사 이벤트를 합니다.
별다른 패치도 없이 정령사라는 직업이 등장하자 많은 유저들이 열광했다.
기존 유저들 중에서 정령사를 하고 싶은 유저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내가 엘프 도시를 찾아서 벌어진 일인가……."
범려는 자신이 엘프 도시를 찾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라 생각했다.
"아골 님, 엘프들의 머리카락 조금과 활을 하나 구할 수 있을까요?"
"그거야 쉽지요, 범려 님."
아골은 범려의 말에 그 자리에서 머리카락 일부를 자르고 들고 있던 활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걸 받으세요. 이 활은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 버려야 할 물건이지만, 범려 님이 원하시니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골 님."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범려는 엘프의 영웅이라는 이름을 얻어서 아골에게 너무나 쉽게 퀘스트 아이템을 받을 수 있었다.
"감사할 것은 없습니다. 엘프들은 범려 님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시면 엘프들에게 이야기하십시오. 저희들이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아골의 말에는 뭔가 뼈가 있었다. 이건 단순히 퀘스트가 끝났다고 해서 이들과의 인연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구나.'
범려는 당장 엘프 도시를 돌아다니며 알아보고 싶었지만, 이건 정보 길드 퀘스트를 완료하고 나서 조사해도 늦지 않았다.
"후! 일단 정보 길드를 다녀온 뒤에 다시 엘프 도시로 와야겠어."
범려는 멀리 있는 들풀 도시로 달려가서는 퀘스트를 완료했는데, 거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암흑가의 명성 500을 얻으셨습니다.
-암흑가의 명성이 높아져서 정보 길드의 이용료가 10% 할인됩니다.
-30골드 이하의 정보를 얻을 때는 공짜로 얻을 수가 있습니다(하루에 한 번 가능).
"이야, 좋은데! 가격 10퍼센트 할인하고 30골드 이하 정보는 공짜……."
30골드 정보라고 해서 무시할 건 아니지만, 대부분 유저들의 손에 의해 밝혀진 진실이 많다.
"암흑가의 명성이 1,502, 그냥 명성이 5,000! 좋은데."
일단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범려에게 이득이 많아진다. NPC들은 태도가 공손해지고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전에 보이지 않았던 물건들이 하나 둘씩 생겨난다.
"어! 사모?"
무기 상점에서 창을 둘러보다가 아주 좋은 물건을 발견했다. 발견한 창은 사모. 삼국지에서 장비가 사용했다는 것으로, 찌르기와 베기에 능한 무기이다.
"이야, 이거 옵션도 좋고 가격도 싼데."
개마 기병들에게 사용할 좋은 창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다.
"주인아저씨, 이거 스무 개 주세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가격은 개당 5골드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범려는 가뿐하게 물건을 구입하고는 개마 기병들에게 사모를 다 착용시켰다.
"장비가 20명이 된 것 같네."
보통 창에서 사모로 무기를 바꿔주니 개마 기병들이 더욱더 위용 있어 보였다.
"이제 엘프 도시로 돌아가자."
다시 엘프 도시로 돌아오자, 성문을 지키던 엘프들이 범려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도시를 구해준 영웅 대접을 해주었다.
"범려 님, 돌아오셨습니까."
"아니, 절 마중 나오셨나요?"
"범려 님은 엘프들의 영웅이십니다. 이 정도 대접은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범려가 도시에 도착하기 전부터 망루를 통해서 정보를 입수해 아골이 직접 나와 맞이한 것이다.
"다음부터 이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엘프들에게 대접을 받는 건 좋았지만 이렇게 과분할 정도의 대접은 범려에게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이런 대접은 저에게는 부담이 됩니다."
"범려 님은 엘프들의 영웅입니다. 이런 대접이 부담스럽다 하시면 다른 이들이 영웅을 하찮게 본다고 욕을 할 것입니다. 겨우 마중 나온 걸 가지고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지 말아 주십시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