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29화 (29/80)

제9장. 새로운 기술 (2)

다음 날, 범려는 코엔을 찾아가 해골 형틀의 가격을 지불하기 위해 얼마인지 물어봤지만, 코엔은 돈을 받지 않고 '범려 님에게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하고 물건을 주었다.

"엘프들에게 도움을 너무 많이 받는데."

비록 퀘스트 때문에 몬스터를 처치하고 정령의 힘을 돌려줬지만, 그로 인해 받은 보상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크고 대단했다.

"이번에는 정령의 힘을 이 형틀 안으로 밀어 넣어야지."

깃털 펜으로 형틀 위에 마법진을 그리자 형틀 안으로 정령의 힘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령의 힘이 모여든다."

정령의 힘이 틀 안에 가득 차면서 마법진이 활동을 멈추자 범려는 틀의 뚜껑을 활짝 열었다.

"으흐흐!"

-정령의 뼈를 만드셨습니다.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물건이 나왔다. 이제 땅 파는 짓은 안녕이다.

"이제 이걸로 해골 병사를 만들 수 있겠군. 그런데 기존에 있던 녀석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기존의 해골 병사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아르테미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범려 님, 해골 제작자의 비밀을 하나 풀어내셨군요."

아르테미스는 미소를 지으며 범려를 칭찬했다.

"비밀이오?"

"네. 뼈를 채취한 게 아니라 만드셨잖아요."

지금까지 범려는 뼈를 구하기 위해 무덤을 파거나, 혹은 해골 몬스터를 잡아 얻곤 했었다.

"그, 그럼… 그 어떤 형태의 물건이라도 뼈로 만드는 기술이 있는 건가요?"

"음, 몇 개는 제약이 있지만, 거의 다 가능해요."

"컥!"

범려는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통곡했다. 지금까지 뼈를 구한답시고 파헤친 무덤의 숫자가 100 가까이 된다.

그걸 조립한다고 그렇게 고생했는데, 그 모든 고생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럼 실과 바늘은 필요 없는 물건인가요?"

"필요해요. 관절을 연결시키려면 필수 아이템이에요."

"그럼 기존에 있던 해골들의 뼈는 교체가 가능한가요?"

"네, 가능해요. 하지만 교체를 하다가 잘못하면 해골이 폭발해버려요."

"……."

뼈를 교체하다가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그동안 키워놓은 것들이 한순간에 안녕이었다.

번쩍!

아르테미스가 손을 뻗자 범려의 머리 위에 빛이 내리더니 2개의 스킬이 생성되었다.

-뼈 제작(Master)[패시브]

어떠한 물질의 형태라도 뼈로 변환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뼈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기초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마법이라면 마법의 지식을, 금속에 관련된 것이라면 대장장이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뼈 교체(Master)

일정한 확률로 지금의 뼈를 다른 종류의 뼈로 교체합니다. 실패 시 교체를 당한 해골은 폭발해버립니다.

쿨 타임:60초, 마나 소비:100

"아, 무한 노가다의 결정판이다……."

2개의 스킬을 보고 범려가 느낀 기분이다. 해골들의 뼈를 교체해 더 높은 능력치, 더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

"네……."

완벽한 노가다의 결정체 해골 제작자.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직업이다.

"뼈 교체나 한번 해볼까."

아르테미스가 사라지고 나서 범려는 해골 몇 놈을 정해서 뼈를 교체해볼 생각이다. 능력치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한번은 해봐야 할 것 같다.

"누구를 먼저 교체할까."

범려가 스윽 바라보자 해골들은 다들 한곳에 뭉쳐서 범려와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

"하! 정말 해골들이 무서워하고 있네. 이래서야 어디 뼈 교체를 하겠나."

보병들은 금방 키울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기병들이다.

병사 제한에 맞춰 기병들은 이미 꽉 차 있는 상태. 새로 키우는 것보다 뼈를 교체해야 새로운 힘을 가진 기병들이 탄생된다.

'보병들은 이대로 놔둬도 상관없지만, 기병들은 문제인데.'

현재 핵심 병과인 기병들은 뼈 교체를 피할 수가 없다.

"너! 앞으로 나와라."

범려가 개마 기병 하나를 지목하더니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불러들였다.

"후! 미안하다.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다. 이해해주라."

개마 기병은 그 말뜻을 잘 알고 있었는지 체념하고는 바닥에 글을 써서 유언을 남겼다.

[제가 죽으면 뼈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세요.]

"그래, 내가 아주 좋은 곳에 묻어줄게."

유언까지 남기자 개마 기병은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땅바닥에 누웠다.

"뼈 교체!"

화아악!

한순간에 강렬한 빛으로 휩싸이더니 곧 완벽하게 뼈가 교체된 개마 기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공이다!"

범려가 그 개마 기병을 얼싸안고서 환호성을 질렀다.

-정령의 뼈로 교체되었습니다. 정령의 힘으로 인해 능력치가 20% 증가했습니다.

-불, 물, 바람, 대지의 공격에 대해 20% 저항합니다.

"이얏호! 능력치가 늘어났다!"

능력치 상승은 범려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이었고, 뼈가 바뀐 개마 기병도 좋아했다.

"으흐흐! 이 여세를 몰아서 계속 바꾸는 거야."

이건 범려만의 생각이었고, 해골들에게 있어서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지금부터 일반 뼈는 다 버린다."

범려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일반 뼈들은 모두 다 버리고 정령의 뼈를 인벤토리에 채워 넣을 작정이다.

"해골마도 정령의 뼈로 만든다."

해골마 형틀이야 코엔에게 가서 부탁하면 된다. 그 뒤에는 범려가 다 알아서 할 터이다.

"일단 뼈가 필요해."

범려는 모든 해골들을 정령의 뼈로 바꾸기 위해 그 숫자와 동일하게 정령의 뼈를 찍어냈다.

"으하하! 뼈를 다 바꿔주마!"

음산한 웃음을 흘리는 범려의 모습에 해골들은 벌벌 떨었지만, 오직 단 하나, 제일 먼저 뼈가 바뀐 개마 기병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범려의 옆에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령의 뼈는 약간 투명하구나."

뼈가 약간 반투명해서 어떻게 보면 유리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흐흐흐! 조금만 기다려라. 너희들의 뼈를 모두 다 바꿔주마."

범려는 사냥도 안 하고, 해골 형틀에 정령 마법진을 찍어내 정령의 뼈를 계속 만들어냈다.

그사이에 해골들은 다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분명 뼈 교체 스킬은 실패 확률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들 중 누군가는 반드시 죽는다.

"으흐흐! 누구부터 뼈를 바꿔줄까?"

범려의 말에 해골 병사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다.

"……."

얼마나 기다렸을까? 시간이 꽤나 흐르자 해골 몇몇이 앞으로 나왔다. 그들 중 대부분은 기병들이었다.

"좋아. 다들 죽을 각오는 되어 있나?"

고개를 주억거리는 해골 병사들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뼈 교체!"

눈부신 빛을 발하면서 해골들의 뼈가 순식간에 바뀌었고, 범려는 뼈가 한 번 교체되는 순간이 올 때마다 식은땀을 흘렸다.

"성공이다!"

성공할 때는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고.

"실패……."

실패할 때는 1분 동안 절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뼈를 바꾸겠다며 앞으로 나선 해골들은 모두 50명. 그들 중 10명이나 몸이 박살나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크윽! 열 명이나 죽다니."

죽은 이들은 영혼의 구슬을 남기고 죽었고, 뼈는 산산이 부서져서 다시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뼈를 모아라."

범려는 부서진 녀석들의 뼈를 잘 모아서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죽은 이들의 영혼의 구슬을 모아서 정령의 뼈로 만든 몸에 심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했다.

"1레벨부터 다시 시작이군."

-해골 장검병

레벨:1

힘:5(+1) 민첩성:5(+1) 지능:1(+0)

정신력:1(+0) 체력:3(+0)

생명력:40 마나:10

공격력:18 방어력:34

마법 공격력:0 마법 방어력:33

-정령의 뼈로 인해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불, 물, 바람, 대지의 공격에 대해 20% 저항합니다.

정령의 뼈의 힘으로 능력치가 상승했지만, 해골 병사 1레벨의 초기 능력치는 허약하기 그지없다.

"아, 이런! 능력치 20퍼센트 상승이라도 0 이하 소수점 숫자는 버려지는군."

범려는 능력치보다 해골들을 다시 키워야 하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에 힘이 풀려 오는 것 같았다.

"크윽! 다시 키워야 하는 거냐."

범려는 사냥을 하지 않고, 마나가 되는 대로 병사들의 뼈를 정령의 뼈로 바꾸었다.

대부분 성공했지만, 부서진 해골 병사들의 숫자는 전부 30명. 그중 기병 계열의 해골이 10, 마법사가 5, 나머지는 보병들이다.

"사냥 가자."

일부 해골들을 일정 레벨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가다를 해야 했다.

"몬스터가 어디 있나."

눈에 불을 켜고 몬스터가 어디 있는지 찾아다니는 범려의 모습은 반쯤 광기에 물들어 있었다.

"저기 몬스터가 보인다. 잡아라!"

해골들도 범려처럼 경험치에 목말라 있어서 같이 씩씩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몬스터를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클클클! 뼈가 바뀌니 너희들이 날아다니는구나."

능력치가 좋아진 뼈로 바뀐 후로, 현재 하나의 해골이 예전의 해골 두 사람 몫을 하며 싸우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저기 해골 제작자다!"

"이크! 사람들이다."

범려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누가 해골 제작자다, 그러면 일단 자리부터 피하게 된다.

"뭐 해! 동영상 촬영해야지!"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해골 제작자에 관련된 동영상을 조금이라도 얻어내기 위해 뛰었다.

"얘들아, 자리를 뜨자!"

범려의 명령이 떨어지자, 순식간에 그 많던 해골들이 도망가 버렸다.

"아, 너 몇 초 찍었어?"

"나 3초."

"난 30초."

"30초! 대박이다! 어서 동영상 올리자."

대부분 해골 제작자 관련 동영상은 30초가 안 되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 근접한 동영상은 겨우 전투 한 장면이 들어가 있는 수준이다.

"이걸로 조회수 2만은 달성하겠다."

"블로그에 올릴 거야?"

"당연하지. 해골 제작자 동영상 20초 정도 되는 게 최소 조회수 1만이다. 30초짜리 올리면 조회수 최소 2만이야."

다들 해골 제작자에 관련된 동영상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상황이었다.

"이런! 하필 동영상 찍는 얘들일 줄이야. 그런 것들은 전부 다 피해야 되는데."

범려는 동영상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한번 찍히면 며칠을 사람들에게 쫓기면서 살아야 한다.

"나는 유명해지는 건 별로 관심 없는데, 왜 자꾸 사람들이 나만 보면 동영상을 찍고 질문을 해대는지. 에구."

범려는 유저의 시야에서 도망치고 난 뒤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면서 움직였다.

"음?"

길을 가던 그가 갑자기 멈추더니 저 앞에 있는 나무를 유심히 쳐다봤다.

약간 이질적인 분위기가 느껴져, 혹시 뭔가 있을 것 같아 개마 기병 다섯을 보내 나무를 포위했다.

움찔.

"헛! 움직였어. 뭔가 있구나. 망구다이, 포위해!"

더 많은 숫자의 망구다이들이 나무를 포위하자 바들바들 떠는 것이 보였다.

"당신 누구야!"

범려가 다가가서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나무로 위장하고 있던 위장막이 떨어지면서 그 안에 있던 유저의 모습이 보였다.

"왜 그곳에 숨어 있었지? 누굴 기다리고 있었나?"

"저, 저기… 그게 다름이 아니라, 해골 제작자 취재를 위해 왔어요."

"싫은데."

범려는 눈앞에 있는 여성에게 상당히 까칠한 모습을 보이면서 취재를 거부했다.

"제발 응해주세요."

"난 그런 거 싫어하는 사람인데, 자꾸 그러시면 곤란하죠."

"아니, 길게 묻지 않을게요. 몇 마디 질문에만 대답해주세요."

"난 사람들 이목 끄는 게 무척 싫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신경 끊어주시고, 혹 동영상을 찍으셨다면 폐기해주셨으면 합니다."

범려는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내비쳤지만, 이 여기자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부탁이에요. 몇 마디만 물을게요."

"망구다이, 이 여자를 묶어라."

망구다이들이 올가미 던지기를 이용해 여기자를 꽁꽁 묶어놓자, 범려는 경고 한마디를 해줬다.

"전 원하지 않는 취재는 무척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취재를 원하셔도 전 절대로 응하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다른 곳에 제가 인터뷰 신청을 하겠습니다."

"헉! 그러시면 안 돼요!"

범려가 다른 곳에 인터뷰 신청을 하겠다고 하자, 여기자는 깜짝 놀라더니 그러면 안 된다며 말렸다.

"그럼 다시 취재 안 한다고 약속 하실래요?"

"그건 안 돼요. 저도 먹고살아야 한다고요."

"협상 결렬! 다른 곳에 인터뷰 신청하죠."

"안 돼-!"

범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자 한 명을 두고 이리저리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죠. 기자님은 절 본 적이 없는 거예요. 혼은 좀 나겠지만, 회사에서 잘리지는 않겠죠."

"네……."

"그리고 약속만 잘 지켜 주신다면, 제가 나중에 독점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이 정도 조건이면 물러나시겠죠?"

"저, 정말이에요?"

여기자는 독점이라는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기뻐했고, 범려는 이런 여기자를 적당히 구슬려서 돌려보냈다.

"음, 순진한 사람이야. 내가 왜 나중이라고 말한 줄 알아? 내일도 나중이고, 몇 달 뒤도 나중이 되지. 클클클!"

한마디로 도망갈 구멍을 하나 만들어놓은 셈이다.

"얘들아, 이제부터 조심히 가자. 사람들이 너무 많이 꼬인다."

병사들은 범려의 말에 따라 주변을 이리저리 정찰하면서 사냥을 했고, 사람들이 있나 없나 확인하며 이동했다.

"아, 사냥 속도 느리다."

해골들을 빨리 키우기 위해서는 뭔가 방법이 필요하다고 느낀 범려가 벼락검을 손에 들었다.

"후! 격노 한 번만 쓰자."

푸욱!

범려는 병사들의 사냥 속도를 늘리기 위해 스스로 자해를 하고 말았다.

"커억!"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칼로 몸에 상처를 입히자 생명력이 30퍼센트 이하가 됐지만, 해골들이 격노에 빠지지 않았다.

"크윽! 왜 격노에 빠지지 않는 거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해골들의 모습을 보면서 범려는 자신이 지금 바보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병신 짓거리 했구나. 이렇게 되면 몬스터들한테 직접 두들겨 맞아야지."

범려는 격노 한 번 발동시키려고 일부러 몬스터한테 맞아가면서 스스로 생명력을 깎아냈고, 그렇게 해서 생명력이 3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자 즉각 효과가 나타났다.

-해골 병사들이 격노에 빠집니다.

"바로 이거야!"

자신이 원하는 상태가 되자, 해골 병사들은 미친 듯이 몬스터들을 쓸어내 버렸다.

"으하하하! 이제 여기 몬스터는 깨끗하게 지워진다."

예상대로 해골들의 공격력이 무지막지해져서 주변에 몬스터들의 씨가 말라가고 해골들의 레벨이 쭉쭉 올라갔다.

"이거 잘못하면 중독되겠는데."

격노의 메리트가 너무나 좋아서 범려는 마약처럼 중독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이건 아무리 좋아도 내 생명력과 직결된 문제라서 아주 위험할 때만 사용해야겠어. 너무 위험해……."

말은 위험하다고 했지만, 해골들의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메리트가 어디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고민 되… 지만 사용해야겠지."

이미 격노의 매력에 중독되어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생명력 70퍼센트를 날려먹는 위험한 짓을 했지만, 지금 그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으흐흐흐!"

범려는 격노를 계속 활성화시킨 상태에서 사냥을 이어갔다.

쿵! 쿵!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자 범려는 주변을 둘러보며 진동의 근원지를 찾았다.

"쿠아-!"

이렇게 괴성을 지르는 녀석은 드래곤 이후로 처음이었고, 왜 이런 소리를 지르는지 궁금했다.

"어떤 놈이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거냐!"

소리를 내지르는 정체는 멀리 있어도 똑똑히 보일 만큼 거대한 녀석이었다.

"거대 고릴라? 아니, 킹콩?"

6미터 정도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고릴라 녀석이 보였다. 범려와 해골들의 키는 평균 1.8미터 정도 되는데, 이건 뭐 장난이 아니었다.

"다들 피해!"

범려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녀석을 경계하면서 해골 병사들이 거대한 킹콩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게 막았다.

"쿠아!"

"크윽! 저놈의 괴성에 귀가 아프다."

저 소리가 능력을 떨어트린다거나 공격력을 감소시키지는 않지만, 귀가 아플 정도로 큰 소리에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신음을 흘렸다.

"일단 녀석이 물러날 때까지 기다리자."

킹콩은 주변의 나뭇잎을 뜯거나, 혹은 작은 몬스터를 발견하면 그걸 그대로 잡아먹었다.

"먹을 걸 찾으러 여기까지 온 거냐."

킹콩은 잡식성의 동물인지 눈에 보이는 먹을거리는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저놈 한번 잡아볼까? 보아하니 아이템 좋은 거 떨어트릴 것 같기도 하고."

킹콩은 아무리 봐도 보스급 몬스터로 보였다. 더군다나 혼자 다닌다는 것은 다른 녀석들이 필요 없을 만큼 강하다는 말도 된다.

"처음으로 혼자 다니는 녀석을 보는 건가? 다른 녀석들이 따로 있는 걸까?"

범려는 망구다이 세 놈을 지목했다.

"너희 셋은 당장 이 주변을 뒤져서 저 킹콩과 같이 다니는 녀석들을 찾아라."

망구다이들은 기동 속도가 개마 기병보다 좋기 때문에 넓고 멀리 정찰이 가능한 병과이다.

"조금 있으면 결과가 나오겠지."

범려는 킹콩이 이곳에 잠시 머물고 있는 동안 때를 기다렸다.

"잠시 후면 네가 혼자인지, 아니면 같은 무리가 있는지 확인된다."

혼자일 경우 당장 공격해서 녀석을 잡아버리고, 아니라면 다른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제발 혼자여라. 그래야 저놈을 독식하지."

망구다이의 정찰은 대략 5분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완료되었다.

"정찰의 결과는?"

[놈 혼자입니다.]

망구다이 하나가 말에서 내려 땅바닥에 글을 써 대답을 대신했다.

"좋았어. 녀석을 잡자."

범려는 거대한 킹콩을 잡기 위해 전투대형으로 진형을 펼치며 움직였다.

"조준!"

궁수들은 킹콩을 향해 조준하면서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발사!"

엄청난 양의 화살들이 일순간 날아들면서 킹콩을 덮쳤고,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기병들이었다.

쿠아!

괴성을 지르며 해골 병사들을 향해 달려드는 킹콩은 굉장히 무서웠다.

개마 기병의 능력치가 정령의 뼈로 인해 상승되지 않았다면 해골마와 함께 땅바닥을 구를 정도로 무서운 놈이었다.

"무식한 놈이다. 다들 조심해!"

범려가 아무리 조심하라고 말해도 저놈은 보스 몬스터다. 눈깔을 콱 뚫어주지 않는 이상 녀석의 공격이 멈추지 않는다.

"개마 기병과 근접 보병은 포위만 해. 공격은 다른 녀석들이 주력으로 해라!"

킹콩이 어느 한쪽으로 움직이면 포위망을 만들기가 어려우니, 녀석이 등을 보이면 집중 공격을 해서 포위망을 형성할 수 있게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게 게임이니까 가능한 방법이지, 현실이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클클클! 멍청한 킹콩 녀석! 아이템이나 뱉어내고 죽어라!"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이 많은 해골들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쿠어-!

-킹콩이 광폭화 상태에 빠집니다.

"이런 쓰벌! 버서커가 된 거냐!"

범려는 미친놈이 된 킹콩이 짜증났다. 버서커가 되면 눈을 공격해도 혼란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날 봐라, 원숭이! 회색의 빛!"

범려의 화살이 강렬한 빛을 발하며 킹콩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

번쩍번쩍- 쾅!

단, 한 방의 공격으로 킹콩의 생명력 2퍼센트를 없애버리자, 놈이 범려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어-!

킹콩은 풀쩍 뛰어오르더니 쿵 소리와 함께 해골 병사들을 뛰어넘은 것이다.

"이런 썅! 점프도 할 줄 아냐!"

뒤로 화살을 날리면서 광분하고 있는 놈을 보자, 범려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건 공포 영화야!"

범려는 녀석과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리기 위해 해골마를 몰아 눈앞에 보이는 나무를 빙그르 돌아 옆으로 빠졌다. 그러자 그 무식한 놈이 그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쿵!

쿠어-!

"헉!"

녀석은 나무를 타고 위로 오르더니 근처에 있는 나무로 점프해서는 다시 범려를 쫓아왔다.

"너무 빨리 오잖아."

기병들을 제외하고는 킹콩의 속도를 쫓아가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다.

쿵쿵 소리를 내며 뛰어오는 킹콩은 한순간 범려의 앞에 도착했다.

씨익!

썩은 미소를 짓고 있는 원숭이 놈이 범려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내가 그것에 맞아줄 놈이 아니다!"

범려는 그동안 말을 타고 다닌 덕분에 약간의 묘기를 부릴 수 있었다.

"굴러!"

범려는 해골마와 함께 땅바닥을 굴렀다. 그로 인해 전해지는 충격과 함께 정식적인 데미지, 해골마의 뼈가 범려를 압박했지만, 살아 있는 말보다는 덜 무거웠다.

꾸엑!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충격이 컸지만, 저 킹콩의 주먹에 맞는 것보다는 나았다.

"흐흐흐! 네놈의 아킬레스건을 끊어주지."

범려는 벼락검을 뽑아 한쪽 발목의 아킬레스건이 있는 부위에 휘둘렀다.

쿠엑!

킹콩은 한쪽 발을 잡으면서 땅바닥을 뒹굴었고, 그사이를 틈타 범려는 다른 쪽 발의 아킬레스건도 끊어주었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킹콩은 더 이상 달리지 못합니다.

"넌 이제 내 밥이다."

달리지 못하는 킹콩은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메롱! 나 잡아봐라!"

범려는 말 위에서 엉덩이를 툭툭 쳐 주며 킹콩을 놀렸고, 놀림 당한 녀석은 격분했는지 소리를 질렀다.

쿠어!

"메롱! 나 못 쫓아오지, 이놈아!"

한껏 놀려 주면서 약을 바짝 올리자, 킹콩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옆에 있는 나무를 한 방에 부숴버렸다.

쾅! 우지직!

"헉! 한 방에……."

킹콩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그 거대한 나무를 양손으로 꽉 끌어안더니 그대로 휘둘렀다.

"안 돼!"

범려는 순간 나무에 맞아 죽겠구나, 하고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는데,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살며시 눈을 떴다.

"어?"

킹콩이 들고 있던 나무는 주변에 있는 거대한 나무들 때문에 휘둘러지지 못하고 중간 부분이 부러져 있었다.

"튀어!"

말을 몰아 멀리 떨어진 범려는 킹콩의 아픈 급소만 노려 활을 겨눴고, 참지 못한 녀석이 나무를 던져 위협했지만 그때마다 범려는 말을 몰아 쪼르륵 도망쳐 버리는 통에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쿠아!

놈은 분을 참지 못하고 가슴을 두드리며 괴성을 질렀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달려온 해골 병사들이 범려의 뒤에 모여 있었다.

"망구다이들은 저놈을 묶어라!"

20명의 망구다이들이 올가미를 던지면서 놈을 억류시켰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려고 킹콩이 발악했지만, 다른 해골 병사들이 그걸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개마 기병들이 달려들더니 킹콩의 다리뼈가 보일 정도로 살점을 베어나갔다.

"잘한다!"

범려는 개마 기병들을 독려해주었다.

크르릉!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킹콩은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다른 병사들은 이 순간을 기다려 왔는지 우르르 달려들어 난도질을 시작했다.

"우헤헤! 죽어라, 바보 킹콩!"

병사들이 뒤덮은 킹콩은 오래가지 않아 아이템을 내뱉으며 바닥에 누웠다.

-야수의 갑옷

킹콩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옷이다. 야수들 중에서 제일 강하기에 홀로 고독을 즐기는 놈이다.

방어력:1,000 내구력:200/200

재질:가죽

옵션:힘 +30, 민첩성 +50, 체력 +30

파티 전체에 공격 속도 10%를 증가시켜 주는 신속의 오라를 발산한다(다른 신속의 오라와 중첩되지 않습니다).

"아싸! 아이템!"

그러지 않아도 갑옷은 한 번 교체를 해줘야 했는데, 새로운 물건이 나오자 즉시 입었다. 갑옷에 달린 오라의 능력으로 해골들의 힘이 한층 강화된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룬 마법을 배웠는데 한 번도 안 써먹었네."

범려가 룬 마법을 배운 이유는 단 하나다. 해골들의 장비 강화.

"일일이 아이템 사냥하기는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간단하게 룬을 새겨 그 시간을 줄이는 거야."

아직 초급 수준에 불과하지만, 계속 숙련도를 올리면 괜찮은 룬 마법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내 장비부터 하나 해봐야지."

기초적인 룬 마법은 갈릭에게 배운 걸로 충분하지만, 나머지는 응용을 해서 발견해야 한다.

범려는 마법의 깃털 펜을 꺼내 자신이 입고 있는 옷에 간단한 룬을 한번 새겨 봤다.

룬 문자를 한자 한자 써내려가자 은은한 빛을 뿌리면서 문자들이 스며들어갔다.

"다 됐다."

-체력이 2 증가했습니다.

"쿨럭!"

아무리 초급이라지만, 겨우 2가 늘어났다는 메시지를 듣고는 기침을 했다.

"그래! 아직 초급이고 숙련도도 낮으니까."

범려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어구나 무기에도 룬을 새겨 넣었다.

-공격력 4 증가했습니다.

-체력 1 증가했습니다.

-민첩성 2 증가했습니다.

늘어나는 수치는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이것도 노가다의 냄새가 나는데……."

몇 번 하다 보니 룬 마법도 단순한 작업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수치가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도움이 되겠지."

해골들의 장비에도 룬을 새기자, 다들 알게 모르게 장비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후아! 이것도 힘든 일인데."

하루 반나절을 꼬박 룬 문자를 써내려가는 일에 집중했다. 해골들의 숫자가 많다 보니 기초적인 숙련도를 절반 가까이 올렸고, 여기서 다시 절반을 올리면 금방 중급으로 발전할 것이다.

"음, 그런데 뼈에다가 룬 문자를 새겨 보지는 않았는데 이게 되려나?"

범려는 정령의 뼈를 하나 집어 들더니 영혼을 불어넣지 않은 상태에서 실험을 해봤다.

스스슥!

"잘 써지네. 이제는 영혼이 있는 녀석들에게 한번 해볼까."

그리고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해골을 잡아채더니 녀석의 몸에다가 룬을 새기고 있었다.

녀석은 룬이 새겨질 때 간지러운지 몸을 비비 꼬면서 움직였고, 범려는 그런 녀석의 머리에 한 대 쥐어박았다.

"가만히 있어."

해골 병사는 간지러움을 참으려고 몸을 부르르 떨었고, 그 바람에 범려가 룬을 새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모든 능력치가 1 증가했습니다.

"팍팍 좀 오르지. 개미 눈물만큼 오르네."

하나당 능력치가 개미 눈물만큼 올랐지만, 그래도 다 합치면 4라는 수치가 오른 것이다.

"그래도 해골들 몸에 룬 문자를 쓸 수 있으니 다행이군."

모든 해골들의 몸에 룬을 새기는 작업을 하자,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능력치 1이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아직은 초급이다, 이거지."

아쉽지만 지금 상태가 초급이라서 이 정도 수치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만큼이면 됐고. 잠시 쉬자. 너무 오래 게임을 했어."

로그아웃을 해버린 희성은 금세 잠에 빠져 들었다.

빠라바라 빠라밤! 빠라바라 빠라밤!

"으음, 누구야. 한참 잘 자고 있었는데."

아침 7시에 걸려온 전화에 잠이 깨버린 희성은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희성아!)

"누구시죠?"

(너 내 목소리 몰라? 집에 가서 맞는다!)

"앗! 미, 미진아."

(흥! 나 삐쳤어! 한 대 때려 줄 꼬얌.)

애교 섞인 목소리로 희성을 살살 녹이는 미진. 그때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어으! 얄미워. 내 목소리도 모르다니."

문을 열어주자 미진이 희성의 코를 살짝 만지더니 거리낌 없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미진이 방에 들어와서 느낀 건 딱 하나. 정말 더럽다는 거다.

"청소 좀 하고 살아라. 아무리 남자 혼자 산다고 하지만, 너무하는 거 아니야?"

미진은 방에 들어오자 아주 지저분한 방을 보고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 도구를 들더니 희성을 밖으로 내쫓았다.

"나가 있어. 청소할 거야."

"아, 나 아직 세수도."

"누가 늦게 일어나래."

"……."

변명의 여지도 없이 집 밖으로 쫓겨난 범려.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와 여기저기 정리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과 방문 바깥으로 먼지가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지저분하게 살다니."

청소하다가 느낀 거지만, 미진은 정말 이렇게 더럽게 사는 남자는 처음 봤다.

"하암! 아직도 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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