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31화 (31/80)

제1장. 나머지 숫자

범려한테 죽은 게 억울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인력과 재산을 동원해 모습을 드러낸 공구장이다.

"으흐흐! 죽으려고 왔구나, 공구장."

"누가 할 소리! 내가 널 죽이려고 지옥에서 온 거다!"

"지옥?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범려는 지옥에서 왔다는 공구장의 말을 비웃으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그리 좋지 못했다.

'제길! 유저를 10명이나 데려오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못해볼 숫자는 아닌데, 해골 병사들의 피해가 커질 것이다. 병사를 한번 양성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범려한테는 짜증나는 일이다.

"퉤! 해골 제작자, 넌 오늘 게임 접는 날이다."

"뭐야! 네가 뭔데 범려한테 게임 접으라 마라야!"

옆에 있던 로즈가 공구장의 말을 듣더니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씩씩거렸다.

"범려야, 저놈들 다 죽여 버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셈이야."

범려는 로즈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크게 안심했다. 그녀가 독한 마음을 먹고 힐을 하기 시작하면 범려와 해골들 둘 중 하나도 안 죽는다.

"한번 해보자, 공구장."

"흐흐흐! 너의 그 빈약한 해골들을 박살 내주마."

"빈약?"

범려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의 해골들은 다들 정령의 뼈 효과로 능력치가 20퍼센트나 상승된 상태다.

"빈약은 옛날 말이 됐는데, 어쩌지?"

공구장은 그가 허풍을 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은 진실이다.

범려가 손을 휘휘 저으니 병사들이 대열을 이루면서, 넓게 포진했다.

"로즈, 힐 부탁할게."

"맡겨만 줘."

"궁수 공……."

해골 병사들이 대열을 맞추고 범려가 궁수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공구장 일행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앞으로 돌진해왔다. 그러자 제일 선두에 서 있던 개마 기병들이 창을 찌르며 그들을 저지했다.

쉬이익!

대부분은 개마 기병의 찌르기 공격을 피했지만, 한 놈이 그 창에 찔리더니 헛바람을 들이켰다.

"이, 이런……!"

생각했던 것보다 강력한 공격을 당하자 공구장 일행들은 매우 놀랐다.

"공격력이 보통이 아니야."

범려를 잡으러 온 사람들은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이대로 돌진한다면 해골들을 잡기도 전에 죽을 것이다.

"공격력이 이렇게 강하다는 말을 안 했잖아."

"생명력이 비리비리한 대신 공격력이 강한 거겠지. 그래봤자 소환물이야."

공구장이 다른 이들에게 핑계를 대고 있을 때, 범려는 하품을 했다.

"하아암! 졸리는군."

사실 조금도 졸리지 않았지만, 녀석들을 도발하는 데에는 좋은 방법이었다.

"이놈!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봐."

범려는 자신 있게 대꾸했다. 사실 로즈를 믿고 있었기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끼이익! 우우웅!

범려가 앞에서 공구장과 말씨름을 하고 있을 때, 뒤에 있던 해골들은 활을 당기고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쏴라!"

"실드-!"

공구장 일행 중에 마법사가 있는지 일시적으로 광범위 방어막을 형성하더니 그 많은 화살과 마법을 막아냈다.

"흡!"

범려는 저런 광범위 방어 마법을 처음 보았다. 하지만 그걸 펼친 마법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니 자주 쓸 수 있는 마법은 아닌 것 같았다.

"해볼 만하니까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가."

범려는 작게 중얼거리면서 한편으로는 저들의 복장을 살펴봤다.

'가죽 입은 놈들이 셋, 판금 입은 것들이 셋, 나머지 넷은 천이군.'

만만히 볼 놈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다들 한두 번 싸워본 인간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돌격!"

공구장 일행은 11명의 숫자로 해골들을 상대하는 것이 어림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해골들을 움직이는 원흉인 범려를 향해 뛰어들었다.

"이런!"

범려는 해골들의 공격을 무시하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11명을 보고 신음을 흘렸다.

"해골들을 무시하고 해골 제작자만 때려!"

공구장 일행들이 순식간에 다 같이 공격을 해오는 바람에 생명력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을 때, 그의 머리 위로 빛이 하나 터졌다.

"힐!"

힐 마법 단계가 얼마나 높은지는 모르지만, 0을 향해 내달리던 생명력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생명력을 회복한 범려가 망구다이들에게 외쳤다.

"올가미 던지기!"

망구다이들이 명령에 따라 유저들에게 올가미를 던져 잡아채버렸다.

"후! 로즈가 아니었으면 진짜 죽는 줄 알았네."

"크윽! 언제 이런 녀석들을……!"

"음, 공구장,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하나 알려 줄까? 네놈이 알고 있는 정보는 옛날 정보다."

그러면서 범려가 손가락으로 공구장을 가리키자 해골들은 그를 집중 공격하더니 순식간에 죽여 버렸다.

공구장이 죽어버리자 그와 같이 따라온 유저들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긴장감에 휩싸였다.

'단 5초 만에 녀석이 죽었다.'

'쪽수가 너무 많아!'

해골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 보니 아무리 강한 유저라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 누구부터 죽여줄까."

올가미에 묶여서 꼼짝도 못하는 유저들은 긴장했다. 이렇게 죽으면 개죽음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살려 주십시오!"

누군가 비굴하게 살려 달라고 외쳤지만, 범려는 웃으면서 그놈을 먼저 죽여 버렸다.

"으흐흐! 일단 날 죽이려는 대가는 크다."

"……."

다들 입을 다물고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노력하는 사이, 범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시간 없다. 그냥 다 죽여라."

"헉!"

그 한마디에 해골들이 무기를 들더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을 동원해서 한순간에 쓸어버렸다.

"두고 보자!"

"이렇게 물러날 거라 생각지 마라!"

범려는 그들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죽여 버리면 그만이었다.

나머지 유저들을 다 죽이고 난 후, 범려는 제일 가까운 마을이 어디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마을이 고무나무 마을."

범려는 로즈를 자신의 앞에 태우더니 고무나무 마을로 병사들을 이끌고 이동했다.

잠시 후 마을에 도착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그는 그동안 묵혀 놓았던 망원경을 꺼내 마을 주변을 감시했다.

"이놈들 죽을 때 아이템 좀 떨어트리지, 하나도 안 떨어뜨리나."

범려는 살인자들을 죽일 때 그 잘 떨어진다는 아이템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동시에 공구장 일행들은 지금쯤이면 부활을 했을 테고, 자신들의 아이템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을 걸 확인한다면 다시 모여서 범려를 잡으려고 작전을 짤 것이 분명했다.

"저기 있구나."

정확히 11명의 유저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으흐흐! 나에게 칼날을 세우는 녀석들을 본보기로 때려잡아야겠지."

범려는 처음으로 동영상을 찍기로 결심했다. 공구장을 잡는 동영상을 찍어, 다음에 자신을 노리는 놈들이 있다면 이렇게 당하게 된다는 걸 똑똑히 보여 주고 싶었다.

"동영상 기능이 어디 있더라… 여기 있군."

동영상 촬영이 시작되고, 범려는 미소를 지으면서 마을 바깥으로 나오는 11명의 살인자들을 지켜보았다.

"그래, 다시 날 잡으러 오겠다는 거지?"

범려는 당장 달려가서 살인자들을 쓸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저것들을 너무 편하게 죽이는 것 같아서 싫었다.

"공구장, 이제 어떻게 할 거지?"

"해골 제작자를 다시 찾아가서 죽이는 거 말고 뭐 있나?"

"방금 전에도 싸워봤지만, 단순히 마법을 사용하고 말고를 떠나서 해골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공구장이 이전에 봤던 해골들은 이렇게 강하지 않았다.

"젠장! 정보 길드에서는 분명 해골들의 능력이 비리비리하다고 알려 줬는데."

정보 길드에서 거짓 정보를 준 적은 없었다. 다만, 그 정보가 오래되었다는 사실뿐이다.

"제길! 이대로 당하면 우리 꼴이 뭐가 돼!"

"해골 제작자를 죽이려면 작전을 세워야 합니다."

"그럼 좋은 계획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당당하게 계획이 없다고 말하는 이의 얼굴을 보면서 모두 속으로 '저런 무책임한 놈'이라고 욕을 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럼 이러는 건 어떤가요? 여기서 추가로 1명씩 불러들이는 겁니다. 그럼 인원이 22명이 되겠지요. 그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음."

다들 그 의견에 공감했다. 누가 되었든 인원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해골 제작자를 잡으려면 최소한 그 정도 인원은 돼야 할 것이다.

"당장 사람들을 구합시다."

결정이 나자, 다들 자신들의 인맥 중에서 제일 확실하게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저것들 뭐 하는 거야?"

범려는 마을 바깥에서 작당 모의를 하는 붉은 머리 유저들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11명 가지고 부족하니까 사람들을 더 불러 모으려는 거 아닐까?"

"사람들을 더?"

로즈의 말에 범려는 긴장했다. 저 11명도 망구다이가 아니었으면 자신도 죽고 해골들도 죽었어야 정상인데, 거기다가 사람을 더 구한다면 망구다이가 올가미를 던져서 묶는 숫자를 넘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위험한데."

해골 병사들이 전보다 강해졌지만, 여전히 걱정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이대로 있다가는 나도 당하겠어."

범려는 잠시 저들을 상대할 방법을 고심해보았다.

"아, 그래! 저들은 날 잡으러 왔다고 했지. 그런 방법을 쓰면 되겠군."

저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기 위해 범려는 재미난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이것들! 이제 다 죽었어."

공구장 일행들은 각자 한 명씩 불러내더니 총인원이 22명이 되었다.

"겨우 해골 제작자 하나 잡으려고 22명이나 동원되다니."

공구장은 이런 인원을 동원한 것이 처음이었다. 길드도 없이 서로 간의 이해관계로 모인 사람들을 움직이게 된 것이다.

"해골 제작자를 잡으러 갑시다!"

"그런데 그 유명인을 잡아서 뭐 하려는 거지?"

"혹시 그거 아닐까? 해골 제작자한테서 흘러나오는 소문 중에,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전부 다 유니크라잖아."

"진짜?"

여기에 불려온 사람들은 해골 제작자에 관한 헛소문만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해골 제작자를 잡으러 간다고 밝히니, 아이템을 집어 먹으러 가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었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범려가 아이템을 떨어뜨리면 그걸 가지고 튀려는 생각만 가득했다.

"으흐흐! 잡것들, 사람을 많이도 끌어 모았네. 하지만 그게 나한테 통할 것 같으냐."

범려는 22명이 모이는 동안 작전을 몇 가지 세워 해골들에게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다.

"이쯤이면 준비됐겠지."

제1작전이 계획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골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곳에 가보았다.

"범려야, 왔어?"

"해골들 잘하고 있지? 로즈야."

"엉. 너무 잘해서 내가 신경 쓸 게 하나도 없어. 바위도 적당히 잘 깎았고, 투석기도 준비가 완료됐어."

"좋았어. 이제 유인만 하면 된다, 이거지."

범려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로즈에게 작은 부탁을 했다.

"로즈야, 내가 엘프 도시에 갈 수 없어서 그러는데, 대신 좀 갔다와줘. 거기 가서 대장로님에게 내가 써준 편지를 보여 주면 그 내용대로 물건을 줄 거야?"

"알았어."

"아, 개마 기병들과 같이 갔다 와."

로즈는 곧 개마 기병들과 같이 엘프 도시로 출발했다.

"슬슬 공구장한테 가볼까."

범려가 공구장 일행들을 찾으러 움직이는 그때, 반대로 공구장 일행도 범려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어디 있는 거냐, 해골 제작자!"

"난 여기 있다, 공구장!"

범려는 해골마를 탄 채로 혼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다들 주변에 해골들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느라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다녔다.

"해골들은 어디 있지?"

"하하하! 너희들은 해골들이 없어도 다 죽은 목숨이야!"

"뭐야!"

범려는 당당하게 소리치면서 공구장 일행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공구장은 그런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흥! 감히 우리를 도발해서 해골들이 매복해 있는 곳으로 끌고 갈 참이냐!"

"클클클!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군. 해골들이 없어도 충분히 너희들을 뭉개버릴 수 있는데 말이야."

거만한 태도로 범려가 비웃어주자, 공구장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해서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놈-!"

공구장이 먼저 튀어나와 공격을 펼치자, 범려는 재빨리 해골마의 기수를 돌려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놈아, 그런 달리기로 나를 잡을 수 있겠냐?"

범려는 말 위에서 일어서더니 대놓고 공구장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화가 나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잡아라!"

"해골 제작자! 넌 죽었어!"

모두 다 앞뒤 분간 못하는 상태로 쫓아오자, 범려는 그들을 향해 크게 웃으면서 해골마를 계속 달렸다. 그러다가 간혹 멈춰 서서 공구장 일행을 놀리고 다시 달리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우하하하!"

범려가 크게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그러자 다른 유저들이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르테미스에게 안부나 전해라."

"무슨 개소리냐!"

"발밑을 보면 달라질걸."

공구장 일행이 서 있는 자리에는 작은 돌로 X 표시가 되어 있었다.

후우웅- 후우웅- 쿵! 쿵!

"어! 바위다! 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날아 들어온 바위는 놈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22명은 거대한 바위 2개에 온몸이 짓뭉개져 버렸다.

"클클클! 탄도학 공식으로 어디에 떨어질지를 계산하면 이런 건 쉽지."

범려의 첫 번째 작전은 목표 지점에 투석기로 바위를 날리는 것이었다. 그 효과는 확실했고, 단 2개의 바위에 모두 다 깔려서 죽어버렸다.

"클클클! 내 도발에 쉽게 걸려들다니, 전략 전술도 모르는 무식한 놈들 같으니."

범려는 해골들을 불러서 바위를 치우고 혹시나 그곳에 아이템이 떨어졌는지 확인했지만, 이 잡것들은 이번에도 아무것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뭐냐. 지금 로또 당첨에 도전하는 거냐. 70퍼센트 확률로 아이템을 떨어뜨리는데 단 한 놈도 안 떨어트리다니. 지독한 것들……."

범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했지만, 결과에 그저 한숨만을 내쉰 후 다음 작전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좀 더 긴장감 넘치게 놀아야 넘어오겠지?"

다음은 해골마를 타지 않고 범려가 직접 발로 뛰어야 하는 계책이었다.

범려가 해골들에게 다른 계책을 적당히 일러주고 있을 때, 로즈가 엘프 도시에서 돌아왔다.

"범려야, 기름 단지 가져왔어."

"잘했어. 서른 단지나 가져왔네."

범려가 엘프 대장로에게 보낸 편지는 도시에서 제일 큰 기름 단지를 좀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잘했어, 로즈."

"아니야. 별거 아니었어."

"해골들아, 시간이 없다. 다음 함정을 준비해야 한다."

끄덕.

해골 병사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음 함정을 위해 각자 커다란 기름 단지를 가지고 작전 지역으로 가버렸다.

"이제 여기다 말을 놓고 마을로 가볼까."

범려는 해골마를 그대로 놔두고는 녀석들이 다시 부활하는 고무나무 마을로 갔다.

공구장 일행들이 범려가 해골마 없이 자신들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별다른 도발을 하지 않아도 악착같이 쫓아올 것이다.

"이놈! 해골 제작자!"

다들 범려를 향해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범려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으흐흐! 그 살기가 독하면 독할수록 도발이 쉽게 걸리는 건 왜 모르나."

사람은 위험한 일을 당할수록 냉정해야 한다. 그래야 그 상황을 벗어나기 쉽다.

"다들 해골 제작자를 잡으러 갑시다!"

"와!"

22명이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범려를 잡기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사이, 범려는 저들을 한꺼번에 모이게 하려고 크게 소리쳤다.

"이놈들아, 나 여기 있다! 메롱~"

"해골 제작자가 저기 있다!"

"우헤헤!"

범려는 놈들이 쫓아오는 것을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너 거기 안 서!"

"저놈 왜 저렇게 빨라!"

범려가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 중에는 더스틴의 뿔 나팔이 있다. 그 아이템의 능력으로 이동속도가 10퍼센트 상승하기에 똑같은 조건에서 달린다고 해도 앞지르게 된다.

"어이쿠, 이런 거북이들!"

공구장 일행들은 범려의 달리기 속도가 자신들과 비교해 은근히 차이가 많이 나자, 악착같이 쫓아가면서 화살을 날렸지만 달리는 상태에서 활은 범려가 더 잘 쏜다.

"컥!"

"으헉!"

정말 활의 귀재라고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였다.

"클클클! 나랑 활 싸움 하면 힘들걸!"

범려는 따라오는 모든 유저들에게 가볍게 화살의 무서움을 일깨워주었다.

"뒤처지더라도 화살을 날려!"

공구장은 궁수 계열의 유저들에게 화살을 날리라고 명령했지만, 달리면서 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야, 공구장, 그게 쉬우면 누구나 다 궁수 하겠다!"

범려는 달리는 와중에 공구장에게 대꾸를 하며 그의 무식함을 비꼬았다.

"이익! 검기 발출!"

"메롱~"

일정 거리를 앞서서 달리다 보니 공구장이 사용하는 기술을 보고는 살짝 피할 수 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범려는 저들을 유인할 목표 지점에 가까워져서는 갑자기 주르륵 미끄러져 버렸다.

"놈이 넘어졌다!"

공구장 일행들은 범려가 땅바닥에 넘어진 줄 알고 그를 잡으려 달려들었는데, 그는 넘어진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미끄러진 것이다.

"어, 으악!"

"땅바닥이 왜 이렇게……!"

뒤를 쫓던 그들은 갑자기 땅바닥이 미끄러워져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다들 넘어졌다.

범려는 먼저 바닥에서 일어나더니 옷에 묻은 진흙을 황급히 떼어내고는 멀찌감치 떨어졌다.

"후후후! 진흙이 좀 미끄럽지. 그런데 이를 어쩌지? 그 진흙은 물을 섞어 만든 게 아니라 기름을 섞어 만든 기름 진흙인데."

쉬이익! 화르르!

엘프 장로가 큰 기름 단지를 많이 준 덕분에 기름을 섞어 진흙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위로 궁수들이 불화살을 날려 불을 붙였다.

"으아! 뜨거워!"

전신을 엄습하는 불길. 공구장 일행들은 통증보다는 눈에 보이는 불길의 모습에 충격을 먹었다. 고통은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다만 눈에 보이는 불길에 일시적인 공황에 빠진 것이다.

"별로 뜨겁지도 않은데 엄살은……. 궁수들, 나와라!"

주변에 매복하고 있던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낸 채 온몸이 불길에 휩싸여 있는 22명을 보고 있었다.

"공격."

무수한 화살들이 공구장 일행들에게 날아들었고, 그들은 하나 둘씩 목숨을 잃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까불기는. 클클클!"

범려가 보기에 그들은 정말 바보로 보였다. 화가 났다고 무턱대고 달려들고, 이게 계략일 거라는 생각은 해보기나 했는지 의심이 들었다.

"이번에는 부활을 했나?"

공구장은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3번의 죽음을 당한 상태이기에, 부활을 했는지 안 했는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걱정되는데. 이번에도 다시 부활해서 날 쫓아올까?"

범려는 자신이 죽을까 걱정하는 게 아니라, 공구장이 자신을 안 쫓아올까봐 그게 걱정이었다.

"그놈한테 제대로 손도 대보지 못하고 죽은 게 벌써 몇 번째야!"

범려를 잡으려다가 몇 번을 죽게 되자 일부 사람들은 짜증이 나 파티를 이탈하기 시작했고, 그래도 오기가 있는 사람들은 아직 남아 있었다.

'큰일이다. 벌써 숫자가 13명으로 줄었어.'

공구장은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돈을 주고 고용한 인간들도 핑계를 대고 떠나갈 거라 여겼다. 아니면 돈을 돌려주고 가버릴 수도 있었다.

"젠장!"

공구장은 한쪽 구석으로 가서 혼자 화풀이를 하더니 잠시 후에 씩씩거리면서 다시 돌아왔다.

"다시 갑시다."

"아니,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집시다. 이 상태로 또 들이받는다면 다시 죽을 겁니다."

공구장은 완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반면, 일행 중 한 사람이 냉정을 되찾으면서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요?"

"우리가 지금까지 숫자만 늘어났을 뿐, 해골 제작자의 계책에 빠져 앞뒤 분간 못하고 뛰어들어서 어떻게 됐습니까?"

"……."

그럴 때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번에도 운이 좋아 아이템을 떨어뜨리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것보다 비참해져서 게임을 못할 것이다.

"잘 아시겠습니까?"

"그렇지, 우리가 미친개처럼 날뛰는 바람에 죽었지."

"이제는 우리가 놈을 기습해야 할 차례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우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해야겠지."

"그렇지요."

다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릿수만 믿고 까부는 짓은 그만뒀다. 이제는 자신들도 철저하게 작전을 세워 녀석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잡것들, 이제 머리가 돌아가는 거냐? 하지만 너희들보다 내 머리가 더 좋은 것 같은데."

범려는 멀리서 작전 회의를 하는 공구장 일행들을 보며 웃었다.

"야, 투석기에 기름 단지 올려놨지?"

언제 투석기를 다시 불러내 기름 단지를 올려놨는지는 몰라도 범려가 머리 하나는 비상한 것 같았다.

해골 병사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좋아. 기름 단지에 심을 꽂고 불을 붙여라. 기름 단지 8개만 던져 주면 녀석들이 좋아하겠지."

공구장 일행들이 마을 바깥에서 한창 작전 회의를 하고 있을 때, 범려는 모여 있는 놈들을 향해 불붙은 기름 단지를 선물해줄 작정이었다.

"던져!"

후우웅! 후우웅!

커다란 기름 단지 2개가 녀석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지만, 작전 회의를 하느라 바쁜 몸들은 그저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으악! 뜨거워!"

"불이다!"

한 놈이 '불이다' 하고 외치는 순간, 기름 단지가 깨지면서 주변을 불구덩이로 만들었다. 범려는 기름 단지 8개를 날려주더니 기병으로 공격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우헤헤! 너희들이 마을 안에서 작전을 세웠으면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았을 거 아니냐."

망구다이나 개마 기병들은 불에 휩싸인 유저들을 손쉽게 잡아버렸고, 다들 반격도 못한 채 또다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이제 몇 번 남았지?"

범려가 공구장을 죽인 횟수를 차근차근 세고 있는 사이, 망구다이와 개마 기병들이 돌아왔다.

"음, 이제 두 번 남았구나. 얼마 안 남았네. 저놈 잡는 거 재미있었는데 말이야."

범려는 어느새 공구장을 잡아 죽이는 데 재미를 붙인 상태였는데, 2번을 죽이면 딱 10번을 채우는 꼴이 되니 약간 아쉬워졌다.

"망구다이 한 놈은 남아서 땅속에 숨어 있어라. 나중에 공구장이 움직이면 나한테 달려와서 알리고."

다른 병사들은 범려와 함께 떠났지만, 망구다이 하나는 부활 장소로 조심스럽게 가더니 땅속에 몸을 숨기고 공구장 일행이 부활해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놈의 해골 제작자! 작전 회의를 하는 순간에 기습을 하다니!"

공구장 일행은 범려를 철천지원수처럼 느끼며 이를 갈았다.

그런데 한 사람이 부활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음? 그러고 보니 한 사람이 없는데."

"아직 부활을 하지 않은 건가?"

그 빠진 사람이 올 때까지 다들 작전을 짜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결국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안 오는 사람의 이름 아는 사람?"

"……."

대답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공구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제 이 짓거리를 그만 하고 싶었다.

범려에게 벌써 몇 번이나 죽임을 당했고, 딱 한 번 죽기 직전까지 몰아쳤지만 결국 또 죽임을 당했다.

"후! 난 여기서 빠지겠소. 돈 여기 있소."

한 사람이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돈으로 고용된 사람들은 공구장에게 차례차례 돈을 돌려줘버렸다.

"이봐! 해골 제작자를 잡아야 하잖아!"

"그건 당신 사정이지. 돈을 돌려줬으니 이제는 나와 관계없소."

돈을 돌려준 유저들은 이제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면서 매몰차게 돌아서 버렸다.

"야! 너 거기 안 서!"

공구장은 반말로 소리치며 그들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그런 방법이 통할 만한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돈을 더 준다고 해도 그를 도울 사람은 없었다.

"나랑 같이 해골 제작자를 무너트리자!"

"혼자 열심히 해서 해골 제작자와 한판 붙는 게 빠르겠소."

다들 떠나가 버리자 공구장은 완전히 의욕을 잃어버렸다.

"로즈, 넌 여기서 로그아웃해.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

"응, 알았어……."

로즈는 약간 걱정되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그에 반해 범려는 이제 이겼다는 확신에 젖어 있는 얼굴이었다.

로즈가 사라지자 범려는 해골들 없이 혼자서 공구장에게 다가갔다.

"어이, 공구장, 주변에 동료들 다 어디 갔냐?"

"다 떠났다."

"그래? 잘됐네. 이제 다른 사람들이 오는 거냐? 보아하니 사람들이 돈을 주던데, 무슨 돈이야?"

"돈은 무슨 돈! 네놈 잡으려고 고용한 사람들인데 안 잡겠다면서 돈을 돌려주고 간 것이다!"

공구장은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범려에게 소리쳤다.

"쯧쯧쯧! 그러니 사람이 마음을 곱게 써야지, 왜 초보자들을 죽이고 그랬어."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초보자들을 죽이다니?"

"모르는 거야? 아니면 시치미를 떼는 거야? 너 몇 개월 전에 겨우 레벨 10 되는 애들 잡고 다녔잖아."

"…그, 그건 스트레스를 풀려고 그런 건데."

"아, 스트레스를 푼 거야?"

범려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그랬다는 공구장의 말에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 스트레스 대상에 내가 끼어 있다면 어떻겠냐."

"그럼 그 유저들 사이에 네놈이 있었단 말이냐?"

"물론 있었지. 그때 레벨이 딱 10이었거든. 가차 없이 죽여주던데. 덕분에 해골 제작자라는 직업을 얻었지. 나는 그걸 널 잡으라고 하늘이 주신 기회로 여기고 살았고, 지금 널 잡을 능력을 얻게 된 거지."

험악해진 인상을 쓴 채 말하는 범려는 공구장에게 충분히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게 만들었다.

"무기를 들어라. 해골들 없이 널 끝장내주마."

이미 싸울 의지를 상실한 공구장은 무기를 들지 않았다. 눈빛은 이미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뭐야, 겨우 이런 일 때문에 그렇게 처량한 눈빛을 하는 거냐? 너도 참 한심하다."

범려는 공구장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다른 유저들을 죽일 때는 언제고, 자신이 몇 번 죽었다고 해서 화를 내더니 이제는 포기를 하고 말았다.

"참 나, 싸울 맛 떨어지게 하는 놈이네. 내가 충고 하나 하지.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다들 즐겁게 해야지, 너 혼자만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야. 알았냐!"

범려는 곧장 해골마를 불러내더니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이 이상 저 녀석을 잡아봐야 재미도 없고, 인간이 덜된 놈한테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것이 생각보다 고된 일이기도 했다.

"아, 시간만 버렸네. 그러고 보니 동영상이 잘 찍혔나?"

지금까지 공구장과 그 일행들과의 전투를 담은 동영상, 아니 정확히는 그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한 동영상이 저장되어 있었다.

"로그아웃!"

범려는 로그아웃을 하더니 그동안 찍은 동영상을 살펴봤다.

"음, 처음 찍은 동영상치고는 괜찮은데? 편집기를 이용해서 불필요한 부분을 자르고 동영상 게시판에 한번 올려 봐야지."

프로그램을 이용해 지금까지 찍은 영상을 적당히 편집하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 정도만 해도 쓸 만한 동영상 하나가 완성되었다.

"공식 홈페이지 동영상 게시판에 업로드를 하고, 제목은 살인자 사냥."

동영상을 업로드 시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걸로 됐다."

동영상을 올린 후, 희성은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적당히 게임을 하고 해골들을 관리하고 있는 사이에 희성이 올린 동영상은 당당히 베스트 동영상 1위에 올랐다.

-우와, 이런 전략의 귀재.

-저 붉은 머리! 얼마 전에 나 죽인 놈이다!

-헛! 해골 제작자가 살인자 사냥을 하다니! 대단해요! 그것도 혼자서 이런 전략을 짜시다니.

-님 짱 먹으셈.

그 밑으로도 여러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살인자들을 죽여줘서 속이 다 시원하다는 댓글이 가장 많았다.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 사실을 범려는 밤에 잠을 자고 일어난 뒤 동영상의 조회수를 확인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올린 동영상이 이렇게 인기가 좋다니."

희성은 자신이 올린 동영상이 베스트 동영상 중에서 당당히 1위를 하고 있음을 보고는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하하하! 이 몸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니까."

혼자서 오만 가지 잘난 척을 하고 있는 사이, 핸드폰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여보세요."

(아들,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어?)

"엄마."

(잘 있었어? 밥은 안 거르고 먹지?)

"네, 잘 챙겨 먹고 있어요."

오랜만에 집에서 걸려온 전화에 희성은 부모님의 안부를 물었다.

(희성아, 그런데 집에 자주 좀 전화해주라. 이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해야겠니?)

"네, 이제는 자주 전화 드릴게요."

희성은 집에 자주 연락을 못한 게 죄송스러웠다.

(그래. 목소리 들었으니 엄마는 이만 끊을게.)

"네, 들어가세요."

전화가 끊어지자, 희성은 하루에 한 번은 아니더라도 이삼 일에 한 번은 집에 전화를 걸어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게임에 접속을 해볼까."

게임에 접속한 범려는 사냥도 안 하고 해골들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 오늘은 사냥하기 싫다. 이참에 해골들하고 한판하며 놀아볼까?"

범려는 매일 사냥하는 것도 지루하고 그래서 해골들과 제대로 한번 겨루어보고 싶었다.

"얘들아, 사냥도 지겹고 한데 대련 한번 해볼까?"

그러고 보니 해골들을 만들면 키우기 바빴지, 대련 같은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때, 한판 하는 거?"

해골들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더니 뭔가 뜻을 교환이라도 하듯이 눈빛을 주고받고는, 그중에서 한 녀석이 앞으로 나왔다.

"개마 기병이라."

육중한 갑옷을 입고 창을 휘두르는 병과로, 사냥을 할 때도 맷집 역할을 톡톡해 해내고 있는 병사들이다.

"첫 상대치고는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범려는 일단 활을 든 상태에서 개마 기병과 한바탕 놀아볼 생각이었다.

"이랴!"

일단 거리를 벌리기 위해 해골마를 전속력으로 몰아붙이는 순간 뭔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웅!

"컥!"

범려가 말을 달려 얼마 나가지도 않았는데 개마 기병의 그 기다란 창이 말 다리를 거는 바람에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으윽!"

범려는 땅바닥을 한참 구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고, 개마 기병은 옆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졌다."

개마 기병은 단 한 방에 범려를 제압하고 말았다.

이다음에는 망구다이와 해봤는데 시작부터 올가미를 던지는 통에 거기에 걸려 말에서 떨어졌고, 어느새 망구다이는 해골마 위에서 활을 겨누고 있었다.

"이번에는 창병이다."

좀 만만해 보이는 녀석을 하나 골라서 대련을 시작했지만, 해골 창병은 의외로 몸이 날렵해서 범려가 쏘는 화살을 피하고 개마 기병처럼 창을 휘두르면서 말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크윽! 이것들……."

범려는 너무 계획적으로 접근하는 녀석들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쳇! 이것들,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는 거냐?"

범려는 자신을 이렇게 단 한 수에 제압해버리는 해골들이 그동안 실력을 숨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였다. 사실 해골들은 매일 범려를 옆에서 보니 자연스럽게 그 방법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그게 아닙니다. 주인님의 실력은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그런 주인님을 매일같이 보아왔기에 주인님의 방식에 대해서는 알기 싫어도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해골 하나가 땅바닥에 글을 쓰면서,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자 범려는 할 말이 없었다.

"쩝.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범려는 순순히 항복을 하고는 다시 해골들을 바라봤다.

"내가 무기를 다양하게 다룰 수 있다면 어떻게 해볼 텐데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