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해골들에게 배우다
[그럼 저희들이 사용하는 무기를 배워보시겠습니까?]
"뭐? 너희들이 가르쳐 주겠단 말이야? 그게 가능해?"
해골 병사 하나가 땅바닥에 다시 글을 써내려갔다.
[가능합니다. 주인님이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병사의 글을 보고 범려는 잠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해골들에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활만이 아닌 검과 창을 같이 쓸 수 있다는 거다.
어느 누가 자신이 만든 창조물에게 이런 걸 배운단 말인가.
그런데 해골들의 능력은 범려가 겪어온 바로는 실로 엄청났다.
"좋아! 너희들에게 배울 수 있는 건 배우지. 처음에는 망구다이들에게 기사를 배워야겠지."
범려는 활과 말을 잘 다루는 망구다이들에게 제대로 된 기사(騎射)를 배우고 싶었다.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좋아! 지금 시작하지."
망구다이들의 기사 실력은 적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와해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서, 범려보다 배는 능숙하게 말을 돌리면서 활을 당길 수 있었다.
"크윽! 이것들, 나보다 더 잘하네."
망구다이의 공격이 전부 다 치명타로 터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다루는 실력만큼은 한 수, 아니 두세 수 위였다.
"이렇게 된 거 철저하게 배워주마."
범려는 해골들이 또 다른 스승이라 여기고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망구다이는 범려의 활 쏘는 방식이 발을 땅에 붙이며 쏘아왔던 습관이 남아 있는지라, 말 위에서 활을 당길 때도 그로 인해 말이 움직이는 데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지적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활을 당기시면 타고 있는 말이 불편해하기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움직이게 하기 위해 망구다이는 날카로운 지적을 서슴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범려는 말을 탈 때의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바빴다.
'이놈은 스승님보다 더하네.'
범려는 망구다이의 날카로운 지적이 스승님인 안서진보다 더 날카롭다고 느꼈다.
죽어라 연습한 결과 이제 어느 정도 자세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대로 더 연습을 해야겠지만, 하루 종일 망구다이에게 시달림을 당한 범려는 결국 피곤에 지쳐서 로그아웃하고 말았다.
"으아! 저놈의 망구다이, 너무 독하게 가르치잖아."
다음 날도 어김없이 혹독한 수련의 시간이 찾아왔지만, 지루했던 사냥을 탈피해서 이런 시간을 갖는 게 자기 발전을 위해 더 좋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해보자."
범려는 오기를 가지고 망구다이가 가르치는 모든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고, 그 결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타났다.
"이랴!"
범려의 예전 기마술은 약간 뻣뻣하고 어색한 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부분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부드럽게 활을 당기고 말을 움직이는 모습에 말과 한 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이상 저에게 배우실 것은 없습니다.]
"아니야. 네가 아니었으면 이런 기술을 어떻게 배우겠어."
범려는 망구다이가 아니었으면 이런 발전은 없었을 거라면서 망구다이를 칭찬했다.
가장 빨리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고 나자, 이제는 다른 병과 쪽으로 눈이 돌아갔다.
'개마 기병한테 창을 배워볼까? 그런데 해골 제작자가 창을 사용할 수는 있나?'
범려는 활을 들 수는 있지만 창까지 들 수 있는지 아직 확인을 안 해본 상태다.
"일단 아르테미스를 불러서 내가 무슨 무기를 사용 가능한지 확인해볼까? 아르테미스!"
"안녕하세요."
"아르테미스 님, 해골 제작자는 활하고 검하고 또 뭘 사용할 수 있나요?"
"범려 님이 원하시는 무기가 뭔가요?"
"음, 창요."
"사용 가능한 무기예요. 그리고 해골 제작자는 무기 사용에 제한이 거의 없어 웬만한 무기들은 다 사용이 가능하니 걱정 마세요."
범려는 아르테미스의 말에 안심을 했다.
원래 범려는 게임을 시작할 때 활을 들 수 있어서 다른 건 거의 신경 쓰지 않았었다.
"레벨 100 넘은 지가 한참인데, 이런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니. 다음부터는 자세히 알아야겠네."
범려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다짐을 했지만, 그의 성격상 아마 앞으로도 자주 이런 일이 생길 확률이 높았다.
"연습으로 사용할 창을 구해야겠다."
마을로 와 좋은 창 하나를 구입한 그는 개마 기병을 바라봤다.
"창을 가르쳐 줘."
개마 기병은 창을 배우겠다는 범려의 의지를 받들어 제대로 된 창을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후! 창은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데 잘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확실히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개마 기병은 확실히 가르쳐 주겠다며 땅바닥에 글을 썼다.
"좋아! 너만 믿겠다."
범려는 자신을 가르쳐 주겠다는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 뒤부터 범려는 정말 지옥 훈련이 따로 없을 정도로 지독한 훈련 속에서 살게 되었다. 개마 기병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는 게 없었고, 범려를 철저하게 굴려 주면서 반복적인 기초 창술을 연습시켰다.
"헉헉! 조금만 쉬었다 하자."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개마 기병은 휴식 시간조차 주지 않고 범려를 훈련시켰다. 그는 입에서 단내가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게임이라서 진짜로 입에서 단내가 나지는 않았다.
"이얏!"
날카롭게 뻗어나가는 창을 보면서 개마 기병은 턱을 덜그럭거렸다.
"설마 저것들 웃는 건 아니겠지?"
범려의 눈에는 개마 기병들이 턱을 덜그럭거리는 것이 웃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의 말이 들리기라도 했는지 개마 기병들은 갑자기 턱을 덜그럭거리는 것을 바로 멈췄다.
"이것들이!"
범려는 개마 기병들이 자신을 보고 웃은 거라는 확신이 들자 바로 달려가 한 녀석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너 방금 웃었지?"
녀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범려의 의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니야. 너 분명히 웃었어. 내 눈은 속일 수 없어. 너희들이 뼈만 있다고 그걸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 것 같은데 내 눈은 그냥 달린 게 아니야."
그 개마 기병은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기 시작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역시 웃었군."
하지만 범려는 이 녀석을 질책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동안 자신이 부려먹은 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 너희들 부려먹은 거 생각해서, 이번만 그냥 넘어가 준다. 다음에 그런 행동이 내 눈에 띈다면 넌 끝장이야."
개마 기병은 범려의 용서에 감명받았는지 부복을 하면서 다시는 그렇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럼 훈련을 계속하지."
범려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 창을 열심히 휘둘렀다. 개마 기병의 교육 계획에는 별다른 변동 사항이 없었고, 오로지 기본만 충실히 한다는 신념으로 연습을 시켰다.
그렇게 연습하기를 2주일. 개마 기병이 갑자기 앞으로 오더니 바닥에 글을 써내려갔다.
[범려 님, 그 정도면 기본기는 익히신 것 같습니다.]
"그래? 좋았어. 다음에는 뭘 하면 되지?"
[대련입니다.]
대련이라는 말에 범려는 깜짝 놀랐다. 얼마나 배웠다고 벌써 대련을 한다는 것인가. 말이 안 된다.
"그 이유를 들어봐도 될까?"
[현재 상태에서는 이 이상 수련을 하려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대련을 통한 수련을 한다면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시간 길게 끌 것 없이 대련으로 단숨에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아직 기본기를 익혔다고 해도 능숙하게 다루는 건 아니야."
[기본기 연습은 매일같이 하셔야 합니다. 거기에 추가로 대련을 할 뿐입니다.]
이어진 개마 기병의 말에 그제야 납득이 갔다.
"네 말대로 하지."
[감사합니다.]
그는 개마 기병의 말대로 기본기 연습은 꾸준히 하고, 거기에 대련을 하면서 계속 실력을 키워갔다.
"으악!"
범려는 개마 기병과 대련을 할 때마다 말에서 굴러 떨어지기 일쑤였고, 창 다루는 실력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아이고, 허리야. 실제로 이렇게 떨어졌으면 내 허리가 남아나지 않겠네."
그나마 게임이라서 말에서 떨어져도 버티는 거지, 이게 실제 상황이라면 병원에 실려 가고도 남았다.
[오늘은 그만 하시겠습니까?]
개마 기병은 창술이 얼마나 능숙한지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말을 탄 상태에서 창으로 땅바닥에 글을 써내려갔다.
"아니, 계속하자."
범려가 다시 말에 오르고, 대련은 그 후로 10시간 넘게 지속되었다.
"헉헉! 오늘은 이만 하자."
완전히 지쳐 버린 범려의 모습과는 달리 녀석은 해골이라서 그런지 너무나 쌩쌩했다.
범려는 개마 기병에게 시달림을 받으면서 현실 시간으로 한 달을 보내게 되었다.
* * *
챙! 챙!
"이랴!"
인적이 드문 곳에서 말 달리는 소리와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며 주변을 시끄럽게 하고 있었다.
"하압! 이건 어떠냐!"
범려는 한 달 동안 사냥도 안 하고 오로지 개마 기병들과 대련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일대일 대련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2 대 1, 혹은 3 대 1이 되었다.
이건 해골 개마 기병들이 범려를 제압하기 위해 동원되는 숫자였고, 그 숫자가 늘어갈수록 범려의 실력은 나날이 늘어갔다.
"크악!"
개마 기병들과 한참을 싸우다가 결국에는 범려가 말에서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들이 10명이나 동원해서 날 핍박하다니! 아이고! 온몸이 다 아프네."
지금 범려의 실력은 한 달 동안 쉼 없이 노력해서 개마 기병 10명을 동원해야 제압이 가능했다.
[범려 님, 대단하십니다. 저희들 열이 덤벼야 제압을 할 정도라니.]
"헤헤! 너희들이 도와준 덕분에 이렇게 됐지, 나 혼자서는 몇 년이 걸렸을 거야."
범려가 해골 병사들을 치켜세우며 칭찬을 하자, 다들 기분이 좋은지 턱이 들썩거렸다.
'자식들, 웃는 거 한번 요란하네.'
해골들은 뼈만 앙상해서 표정을 알기 힘들지만, 지금 상황에서 딱 하나 얼굴 표정을 알 수 있는 것은 해골들이 웃을 때는 턱을 들썩거리며 웃는다는 거다.
"후! 이제는 사냥을 하면서 연습을 해야지."
오랫동안 사냥을 안 해서 레벨이 그대로 멈춰 있었다. 다시 레벨 수치를 올려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가자! 얘들아."
해골 병사들을 이끌고 레벨 업을 위해 움직였다.
"저기 몬스터가 보인다!"
범려가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자 병사들이 무기를 뽑아 들면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얘들아, 나 혼자 싸울 테니 나서지 마라."
범려는 처음으로 해골 병사들은 놔두고 혼자서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그 대상은 리자드맨, 몸놀림이 빠르기로 유명한 몬스터였다.
"이랴!"
범려는 먼저 활을 꺼내 리자드맨들을 공격했다. 아무리 창을 배운다고 하지만 활 연습도 틈틈이 해왔다.
쉬이익! 쉬이익!
범려가 날린 화살은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리자드맨들의 미간 정중앙에 박혔다.
활을 당기다가 리자드맨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범려는 말머리를 바꿔 놈들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공격했다. 하지만 워낙 빠른 놈들이라서 금세 범려의 앞에 나타났다.
"쳇!"
활을 집어넣고 바로 창을 들어 공격을 펼치자, 리자드맨들이 범려의 날카로운 창 공격에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회색의 빛!"
범려가 창으로 회색의 빛 스킬을 시전하자,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몰려 있던 녀석들이 한꺼번에 그 공격에 당하고 말았다.
"이야압!"
범려의 창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리자드맨들이 방패를 들고 공격을 막아도 뒤로 밀리고, 작은 틈이라도 있으면 그 틈을 향해 날카로운 창이 비집고 들어와 공격했다.
부우웅!
창을 크게 휘두르자 전방에서 범려를 막고 있던 리자드맨들이 모조리 뒤로 나가떨어져 버렸다.
별로 좋은 창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범려는 마치 유니크 아이템을 들고 싸우는 것 같았다.
"키아악!"
리자드맨들의 상처가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범려의 공격은 더욱더 날카로워졌다.
"마지막이다! 회색의 빛!"
범려의 창끝에 모인 밝은 빛을 그대로 내지르자 빛의 폭발이 일어나면서 리자드맨들이 차디찬 시체가 돼버렸다.
"후! 역시 근접전 전투가 박진감 넘쳐서 좋은데, 무기가 이래서야."
박진감은 넘치지만 범려가 들고 있는 창은 마을에서 구입한 거라 유저들이 들고 다니는 무기보다는 능력치가 한참이나 뒤떨어졌다.
"나중에 좋은 창이 나오면 활보다는 창을 많이 쓰게 되려나."
잠깐 생각을 해봤지만, 창을 쓰게 되면 자신의 뒤를 볼 수가 없기에 지휘를 할 때 문제가 생긴다.
"기본적으로 활을 중심으로 쓰고 창은 상황에 따라 써야겠다."
그때, 누군가가 범려에게 귓속말을 걸어왔다.
[범려야!]
"아이고, 깜짝이야. 재성이 아냐?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기는. 너랑 같이 게임하고 싶어서 연락했지].
"그래? 같이 하자. 일단 자연의 도로시 지역 엘프 도시로 와라."
[거기? 나 지금 엘프 도시에 있는데.]
"그럼 빨리 찾겠구나."
[광장으로 와라.]
귓속말을 끊고 범려는 엘프 도시 광장에서 친구인 재성을 만났다.
"제마야, 게임에서 보는 게 이번이 몇 번째냐? 세 번째냐? 두 번째냐?"
"하하하! 이제 두 번째네. 그렇게 오래 게임을 했는데 말이야."
서로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는 듯이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마야,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온 거야?"
"내가 여기 오는 이유는 단 하나지. 연금 재료를 구하기 위해 왔어."
범려는 연금 재료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지만, 이 녀석이 재료를 구한다면 분명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닐 것이다.
"무슨 재료를 찾는데?"
"별거 아니야. 정령석."
제마가 정령석을 구한다고 하자 범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왜 필요한데?"
"정령석으로 재미난 걸 만들려고 그러지. 자세한 내용은 비밀."
범려는 뭘 만들지는 모르지만, 정령석을 필요로 한다기에 정령의 뼈를 하나 제마에게 건네줬다.
"이거 받아라. 정령의 힘으로 만든 뼈다."
"정령의 힘으로 만든 뼈?"
범려가 건네준 물건은 정령석과 같은 물질인 정령의 뼈였다. 다만 돌과 뼈라는 형태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건 뭐 하게? 난 정령석이 필요하지, 뼈가 필요한 건 아니야."
제마는 정령의 뼈가 정령석과 같은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알았어. 그럼 정령석을 만들어줄게."
"무슨 소리야? 정령석은 만드는 물건이 아니야."
정령석은 유일하게 엘프들에게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세간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때문에 제마는 지금까지 정령석을 구하기 위해 엘프들에게 구걸하다시피 했지만, 그들은 절대로 정령석을 주지 않았다.
"범려야, 나한테까지 거짓말할 필요는 없다."
"이놈 참, 속고만 살았나? 만들 수 있다는데 내 말을 안 믿네."
"네가 정령석을 만들 수 있으면, 내가 너한테 미스릴 70킬로그램 준다."
제마가 말한 미스릴의 양은 보통 양이 아니다. 미스릴 1킬로그램 정도면 80골드라는 적지 않은 돈이 된다.
특히 대장장이들에게 이걸 주면 철과 합금을 해서 굉장히 좋은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 수 있다.
"음, 그럼 정령석 2개면 140킬로그램인 거냐?"
"좋아! 그렇게 준다. 어차피 철로 미스릴 변환이 가능하니까 100킬로그램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다 준다."
제마가 그 자리에서 약속을 하자 범려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따라와. 내가 정령석을 만들어주마."
제마는 속는 셈치고 범려를 따라 도시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범려는 인적이 드문 숲 속으로 들어가더니, 마법의 깃털 펜을 꺼내 허공에다 정령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잘 봐라, 제마야. 내가 뭘 만드는지."
몇 분 정도 걸려서 마법진을 완성하자, 범려가 이제는 가만히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 하면 뭐가 나오는데?"
"기다려 봐."
한 20초 정도 지나자 마법진이 스스로 빛을 발하더니 그 가운데에 정령의 힘이 모여 결정을 이루기 시작했다.
"어!"
마법진 위에서 만들어지는 결정을 본 제마의 두 눈이 커질 대로 커지고 입은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정령석이 만들어졌습니다.
"음, 아주 잘 만들어졌구나."
범려가 마법진 위에 만들어진 정령석을 집자 마법진은 사라지고 정령석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자, 확인해봐."
정령석을 휙 던져 주자 제마는 그걸 얼른 받아서 물건을 확인하기 바빴다.
"오, 이런! 진짜 정령석일 줄이야!"
"어때? 진짜 정령석이지? 약속대로 미스릴 70킬로그램 주라."
"크윽! 70킬로그램을 만드는 건 좀 어려워. 50킬로그램으로 봐주라."
"안 돼. 친구를 못 믿은 벌로 70킬로그램 확정이야."
범려는 그렇게 못을 박으면서 미스릴 70킬로그램을 요구했다. 어쩔 수 없이 제마는 눈물을 머금고 미스릴을 주고 정령석을 받았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뭘 할 거야?"
"폭탄 만들 거야."
"폭탄?"
"그렇지. 위력은 썬더스톰 정도 돼. 문제는 이걸 하나 만들려면 정령석 10개가 필요하다는 거야."
폭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정령석 10개가 필요하다는 소리에 범려는 잠시 생각에 빠져 들었다.
'음, 분명 제마가 만든 폭탄은 보통 물건은 아닐 거야. 하지만 그 정도 폭탄은 게임의 밸런스를 무너트리지 않을까?'
범려는 폭탄을 계속 던져서 일정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제마의 말에 그 생각을 접었다.
"폭탄의 위력은 대단하지만, 쿨 타임이 있어서 20분에 한 번밖에 사용 못해."
"20분에 한 번?"
20분에 한 번이면 다른 광역 마법과는 좀 다르지만, 쿨 타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폭탄은 제작자만 사용 가능해서 남에게 줄 수도 없어."
제작자만 사용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과 거래도 안 된다는 소리다.
"나름대로 밸런스를 맞춘 건가? 아, 가만 있어봐."
범려는 갑자기 친구 목록을 뒤지더니 지금 접속해 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그래봤자 친구 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은 상당히 적었다.
"오, 헬렌 누나 접속해 있구나."
범려는 헬렌이 접속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귓속말을 날렸다.
"누나!"
[어, 범려구나. 무슨 일이야?]
"누나, 지금 여기로 오실 수 있나요?"
[지금 급한 것도 없으니 갈게. 거기가 어디야?]
헬렌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 준 범려는 빨리 가도 20분 정도 걸린다는 헬렌을 기다리는 사이 정령석을 만들기 시작했다.
"범려야!"
"누나, 왔어요?"
헬렌과 범려가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본 제마의 시선은 헬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옆에 있는 분은 누구니?"
"아, 누나, 여기는 제 친구 제마예요."
"안녕하세요. 헬렌이에요."
헬렌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제마는 여자 앞이라 그런지 약간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른 거야?"
"실험을 좀 하려는데 동참해주실 수 있는지 해서요."
"실험?"
범려는 헬렌에게 제마가 만들려고 하는 폭탄에 관해 대충 이야기하고서, 폭탄 실험에 협조를 요청했다.
"음, 나쁘지 않은데. 그런데 그 폭탄 실험을 하게 되면 난 뭘 하면 돼?"
"몬스터들에게 실험을 할 거예요. 실험을 하고 난 뒤 혹 살아남은 몬스터들의 처리를 부탁하려고요."
"그런 거라면 충분하지. 그런데 폭탄은 어디 있어?"
"제가 폭탄 재료가 되는 것을 지금 만들어서 줄 거예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헬렌은 연금술사가 만들 폭탄을 궁금해 하며 기다렸고, 범려는 열심히 정령의 마법진을 그리며 정령석을 제조했다.
"10개 완료!"
"어서 줘."
정령석 10개를 채워서 건네주자 제마는 바로 폭탄 제조에 돌입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뇌관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실수라도 할까 봐 긴장하고 있었다.
꿀꺽!
"거기, 침 삼키는 소리가 왜 그렇게 커? 집중하는 데 방해되잖아."
범려는 황급히 두 손으로 목을 잡으며 침 삼키는 소리를 최대한 줄였다.
"여기서 뇌관을 조심스럽게……."
스르륵- 철컥!
"휴, 완성이다."
제마는 폭탄 하나를 겨우 완성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무슨 폭탄이 만들어진 거야?"
"정령 폭탄."
"그럼 어디 한번 실험을 해보자."
범려가 만들어진 폭탄으로 실험을 하자고 제안하자, 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번 해보자. 나도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다."
범려 일행은 실험을 하기 위해 적당한 지역을 찾기 시작했고, 그중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된 곳이 공허의 보리스 지역이었다.
"으, 뜨겁다. 이곳이 공허의 보리스인가?"
공허의 보리스 지역은 필드 전체가 사막으로 되어 있는 곳이며, 사막의 꽃인 오아시스가 많아서 그 주변으로 마을과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허허벌판이면 어떤 실험을 해도 잘 보이겠지."
"음, 어디에 몬스터가 있을까?"
제마는 적당한 몬스터 무리를 찾았다.
"어디 보자, 좀 약하고 숫자가 많은 녀석들을 실험 대상으로 써야 하는데."
딱히 적당한 몬스터가 생각나지 않는 찰나, 눈길을 끄는 몬스터가 하나 보였다.
"음? 저건 뭐지?"
우르르르-
눈에 보이는 것은 사막 풍뎅이였다.
"숫자가 꽤나 많아. 그리고 왠지 약해 보이는 놈이야."
겉모습만 봐서는 실험 대상으로 아주 적당한 실험체였다.
"헬렌 누나, 폭탄 실험을 하고 난 후에 만약 몬스터들이 살아 있을 것을 대비해서, 폭탄을 던지고 바로 토네이도를 쓸 수 있게 준비해주세요."
"응! 맡겨만 줘."
어느새 제마는 폭탄을 들고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 간다!"
제마는 힘차게 정령 폭탄을 던지고는 얼른 뒤로 가서 엎드렸다.
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의 충격으로 날카로운 바람이 몰아쳤다. 폭탄의 위력은 제마가 말한 대로 썬더스톰 수준이었고, 그 범위도 비슷했다. 다만, 눈에 보이는 모습은 핵폭탄처럼 느껴졌다.
"몬스터, 몬스터 살아 있냐?"
헬렌이 다급하게 외치며 몬스터들의 생사 여부를 묻자, 범려는 망원경을 꺼내 폭발이 일어난 지역을 살펴보았다.
"누나! 토네이도!"
범려의 다급한 외침에 헬렌은 다급하게 마법 캐스팅을 하더니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토네이도!"
거대한 회오리가 하나 일어나 범려 일행에게 달려드는 사막 풍뎅이들을 모두 다 하늘 위로 띄워버렸다.
토네이도 마법으로 인해 풍뎅이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모두 다 죽었다.
"후!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정령 폭탄이 눈으로 보여 주는 이미지는 강력했지만, 그 수준은 다른 광역 마법과 다르지 않았다.
"하하하! 성공이야, 성공."
제마는 정령 폭탄이 성공적이라면서 크게 웃었다.
"음, 제마야, 이제 우리 거래를 좀 해보자."
"무슨 거래를 하자는 거냐?"
범려가 사악하게 웃으면서 제마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이거 왜 이래? 정령석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건 나뿐이잖아."
"너, 설마 원하는 게 미스릴인 거냐?"
"너라서 특별히 싸게 해준다. 정령석 10개당 미스릴 100킬로그램. 어떠냐?"
제마에게는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다. 정령석 1개당 미스릴 70킬로그램보다 10개당 100킬로그램이 훨씬 좋았디.
"좋아. 그 숫자에 계약을 체결하지."
"잘 생각했어. 이로 인해 너와 나 사이가 좀 더 돈독해지는 거야."
사실 범려는 친구 사이인 제마에게 미스릴을 안 받아도 되지만, 나중에 그걸로 장비를 만들려는 생각에 미스릴로 거래를 하는 것이다.
"범려야, 내일까지 정령석 100개 주라. 그럼 내일 바로 미스릴 줄게."
"그렇게나 많이?"
"그동안 제대로 된 공격 기술조차 없었던 연금술사한테 빛이 보이는데, 최대한 폭탄을 많이 준비해놔야지."
제마는 가끔 범려에게 연금술사가 힘든 직업이라며 우는 소리를 해댔었다.
"범려야, 이왕 이렇게 모인 김에 우리 사냥하자."
헬렌이 마침 3명이 모였으니 파티를 이루어 사냥을 하자고 주도하자, 제마와 범려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와의 사냥은 언제나 환영이지.'
무서운 범위 마법을 자랑하는 마법사가 있다는 것은 어딜 가나 환영받는다.
"그래요."
셋은 그렇게 파티를 이루어 사냥을 시작했고, 제마는 처음으로 범려가 해골들을 이용해 사냥과 지휘하는 모습을 보았다.
"역시 해골 제작자! 병사들을 너무 잘 다뤄."
제마는 범려의 지휘를 보고는 감탄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저런 병사까지는 아니더라도 호위를 해줄 가디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게 뭐지?"
한창 사냥을 하던 범려는 저쪽에서 꾸물꾸물 기어오는 무리를 발견하고는 망원경으로 살펴보았다.
"뱀?"
범려가 본 것은 아나콘다처럼 무식하게 큰 뱀들이 해골들이 있는 방향으로 기어오고 있는 광경이었다.
"다들 도망칠 준비해!"
"무슨 일이야?"
"저 멀리서 뱀 무리가 이쪽으로 이동하고 있어! 어서 자리를 피해야 해!"
헬렌은 범려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조금도 의심치 않고 그를 따라 자리를 피했다.
"날 버리고 갈 거냐!"
혼자 뒤처진 제마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범려는 망구다이 몇 명을 지목하더니 제마를 데려오도록 지시했다.
"으악!"
그에 망구다이들은 순식간에 제마를 낚아채더니 재빨리 대열에 합류하면서, 그를 말 위에 태웠다.
"아이고! 친구를 이렇게 매몰차게 대하다니."
범려는 제마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망원경으로 뱀들의 이동 경로를 살피고 있었다.
"굉장히 많군. 도대체 저 뱀들이 어디로 가는 거지?"
그 숫자만 어림잡아도 1,000은 되어 보이는 뱀들은 종류도 다양했지만, 그 크기 하나만큼은 전부 다 아나콘다처럼 컸다.
"뭔가에 쫓기는 분위기인데."
뱀들이 전력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확실히 뭔가에 쫓기는 모습처럼 보였다.
"우와! 저 뱀들 잡을까?"
"아니, 잡으면 안 돼. 어떤 몬스터이건 이렇게 황급히 이동하는 것은 저 뒤에 뭔가 있다는 거야. 뱀은 그 신호이고."
범려는 뱀처럼 날카롭게 상황을 분석하더니 이글거리는 저 사막 너머를 바라봤다.
"그런데 겨우 뱀이 지나갔다고 해서 그렇게 단정 짓기는 어렵지 않을까?"
"여기는 게임이야. 프로그램 때문에 몬스터들이 일정 구역 내에서만 활동하지. 그런 것들이 자신의 지역을 이탈했다면 나오는 답은 뭘까?"
범려가 바로 반문을 하자 제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게임에서는 이런 이상 징후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 뭔가 이벤트의 조짐?"
"아마도."
이벤트라는 말에 헬렌과 제마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아직 공식 홈페이지에는 제대로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게임 안에서는 그 이벤트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그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 어서 이벤트를 준비해야지."
"누나, 취선한테 연락해서 대대적인 이벤트가 예견된다고 알려 주세요"
"알았어."
헬렌은 바로 로그아웃을 하더니 딱 5분 만에 다시 접속을 했다.
"로즈랑 취선에게 전화해서 알려줬어. 나중에 접속하면 바로 여기로 오라고 했어."
"제마야, 혹시 마나 물약 만들 수 있어?"
"마나 물약?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지. 재료도 몇 가지 안 들어가고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그럼 만들어줘. 최대한 많이."
"공짜로?"
"내가 정령석 200개 줄게."
"으흐흐! 좋아! 당장 만들지."
연금술사가 포션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직종이라서 편리한 감이 있었다.
"그럼 난 마나 물약을 만들기 위해 간다. 정령석 200개 준비해놔라."
"걱정 말고 포션이나 많이 만들어놔."
제마는 귀환 스크롤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걸 찢으면서 자리를 떠났고, 이제 남은 건 헬렌과 범려뿐이었다.
"누나, 이벤트 준비 어떻게 하실 거죠?"
"준비라고 할 건 별로 없는데, 굳이 한다면 마법서 구입하는 것 정도."
"마법서라……."
헬렌 정도 되는 마법사들이 원하는 마법서는 돈 단위가 장난이 아니다. 오죽하면 장비 부실한 마법사라도 마법만 많이 배웠다면 무조건 환영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겠는가.
"솔직히 마법서는 힘들겠네요."
"어쩔 수 없지. 마법서는 어디 가서 툭 떨어지지 않는 이상 돈 주고 사야 하니까."
범려는 갑작스레 마법서가 어디서 드롭되는지 궁금했다.
'어디서 마법서가 떨어질까?'
이거 잘만 하면 마법서를 드롭하는 몬스터를 찾아 세계 일주를 할 가능성도 높았다.
"정보 길드에 가볼까?"
"정보 길드라니?"
헬렌은 정보 길드에 관한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범려와 공구장뿐인데, 공구장은 지금 게임을 완전히 접은 것 같았다.
"아니요. 따로 정보를 모아봐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나도 도울게. 어떻게 하면 되는데?"
헬렌은 적극적으로 범려를 돕겠다면서 나섰지만, 정보 길드에 관해서는 돕는다고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건 저 혼자서 해야 하는 거라 누나가 도와줄 일은 없어요."
"뭐야, 도움이 안 된다니. 너무해."
"아, 제가 예전에 정보와 관련된 퀘스트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퀘스트가 상당히 제한적이다 보니 허락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거든요."
범려가 설명을 하며 설득해나간 결과, 퀘스트라는 말에 헬렌은 머리로는 이해를 했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 못한 것 같았다.
"알았어. 퀘스트를 수행해서 생긴 일이라면 어쩔 수 없지."
"보리스에 있는 도시로 가서 술집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길 아세요?"
"응, 여기 도시는 웬만큼 알고 있어."
헬렌은 이곳에 몇 번 와본 적이 있는지 공허의 보리스 지역에서 제일 큰 도시인 전사의 도시로 안내를 해줬다.
전사의 도시는 아랍의 어느 유명한 도시처럼 보였는데, 모래 폭풍 같은 것이 몰아치지 않는지 항상 거리가 깨끗하게 꾸며져 있었다.
"전사의 도시라고 해서 근육이 우락부락한 병사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네."
"여기는 단순히 이름만 전사의 도시야. 자세한 것은 나도 잘 모르니까 더 이상 묻지 마."
"네."
전사의 도시에 온 범려는 술집을 찾아다닌 끝에 제일 큰 술집에 들어가 주인에게 약간의 돈을 주고는 정보 길드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범려 님."
"역시 정보 길드군요. 제가 이름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절 아시다니."
"고객의 이름도 모른다면 어떻게 정보 길드를 할 수 있겠습니까."
범려는 정보 길드의 정보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뭐, 오래 끌 것 없이 본론부터 이야기하지요. 제가 마법서를 구하려고 하는데 그게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싶습니다."
"음, 그런 정보는 상당한 가격을 요구합니다. 돈은 있으신지요?"
정보 길드 요원의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는 말에 범려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천 골드 단위의 돈을 요구하겠지. 마법서를 어디서 드롭하는지만 알면 하나는 헬렌 누나한테 주고, 그곳을 계속 돌며 나머지는 내가 계속 먹으면 본전을 뽑을 텐데 말이야.'
범려는 지금 마법서를 찾으려는 이유가 헬렌에게 주기 위한 것도 있지만, 마법서가 워낙 고가의 물건이라서 몇 개만 제대로 먹어주면 남는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헬렌도 챙겨 주고 범려 자신도 잇속을 챙기려는 것이다.
"마법서 중에서도 좀 싼 거 없나요?"
"음, 대부분 가격대가 좀 있는 거지만, 범려 님이 어떤 마법서를 찾는지 모르니 정확한 답을 드리기가 애매하군요."
"블리자드 같은 마법은 어떨까요?"
"그 마법을 찾으신다면 가격이 2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1,800골드 정보이고, 다른 하나는 300골드입니다."
가격 차이가 무척이나 심한 정보였다.
"300골드짜리 정보로 하죠."
"그럼 먼저 돈을 주시지요."
범려는 길드 요원에게 돈을 지불하고 그 정보에 대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아멜리아한테 가서 블리자드를 마법서를 요구하면 됩니다."
"엥?"
300골드짜리 정보는 생각보다 간단한 내용이었다. 아멜리아한테 가서 마법서를 요구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300골드나 먹는 정보인가요?"
"당연하죠. 드래곤이 마법서를 내놓을 일이 없지 않습니까."
정보 길드에서 판단하기에는 드래곤이 마법서를 절대로 내놓을 일이 없으니 그냥 300골드만 받은 것이다.
반대로 1,800골드 정보는 드래곤이 아닌 어디 던전을 말하는 것이다.
가격대로 봐서는 드롭 확률이 0.007퍼센트 정도 되는 확률일 것이다. 여기서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으면 2천 골드 단위로 넘어갔을 거다.
"음, 알겠습니다."
범려는 300골드를 그냥 날린 것 같아서 속이 너무나 쓰렸다. 아멜리아와 안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 가지고 마법서를 줄 거라 생각지 않았다.
'아까운 300골드…….'
혼자서 300골드에 대한 미련을 남기면서 헬렌에게 돌아왔다.
"범려야, 정보는 얻은 거야?"
헬렌은 조금이나마 정보를 얻었는지 물었지만, 범려의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얻지 못했구나. 괜찮아. 마법서야 나중에 구하면 되지, 뭐."
범려는 정보를 얻지 못해 그런 게 아니라 쓸데없이 300골드를 허무하게 날려먹었다는 게 속이 쓰린 것이다.
'으! 그거면 화살이 몇만 개에, 새로운 장비도 살 수 있는 돈인데.'
요즘이야 수입이 소모를 앞서 가고 있어서 괜찮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큰돈임을 부인할 수 없다.
"누나! 나 잠시 아멜리아 지역에 다녀올게요."
"어,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