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개미 군단
범려는 혼자서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으로 들어갔다. 헬렌과 같이 와도 되지만, 아멜리아를 만나서 마법서를 달라고 했을 때 거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혼자 왔다.
"후! 24시간 눈보라가 몰아치는 금지 구역……."
아멜리아의 레어 주변에는 하루 종일 눈보라가 몰아쳐서 몬스터조차 살지 못하는 극한의 땅이다.
"아멜리아-!"
범려는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목이 터져라 악을 쓰면서 아멜리아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레어 바깥으로 아멜리아가 걸어 나왔다.
「누가! 이 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거냐!」
아멜리아는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 것을 몹시 불쾌하게 여겼다.
"다행히 레어 안에 있었네."
「회색의 전승자, 네놈이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른 것이냐?」
"네."
범려는 그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즉답을 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아티잔의 축복으로 인해 범려가 먼저 공격 안 하면 상대가 공격할 일은 전혀 없다.
'어차피 내가 아멜리아를 이기려면 단 하나, 머리싸움이다. 반드시 마법서를 빼앗고 말리라.'
범려의 눈빛은 아멜리아가 보기에는 대단히 반항적으로 보였다.
「회색의 전승자, 나를 그런 눈으로 보다니! 죽고 싶은 거냐!」
아멜리아는 협박성 발언을 했지만, 범려는 그런 말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 듯 가슴을 활짝 펴면서 자기 말만 했다.
"레어 안에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끙! 좋다.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멜리아는 범려가 협박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눈치 채고는 자신의 레어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러자 곧 인간의 모습을 한 아멜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회색의 전승자,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지?"
"서론은 길어서 그만두고, 본론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블리자드 마법서가 필요합니다."
범려는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당당하게 블리자드 마법서를 요구했다.
"감히 이 아멜리아에게 마법서를 내놓으라는 말을 하다니!"
아멜리아가 발로 땅을 구르자 쿵 소리와 함께 바닥이 움푹 파여 버렸다. 하지만 범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저에게는 그 마법서가 필요합니다."
"이런 무례한 것을 봤나!"
아멜리아는 화를 내면서 그를 다그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범려는 아멜리아가 화를 내면 낼수록 그녀에게 한 발자국씩 가까이 다가갔다.
"블리자드 마법서가 꼭 필요합니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범려는 아멜리아에게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이제는 세 걸음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뭐, 뭐 하는 짓이냐!"
아멜리아는 범려가 갑자기 앞으로 다가와서 당황했지만, 뒤로 물러설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겨우 인간을 앞에 두고 자신이 뒤로 물러선다는 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블리자드 마법서가 필요합니다. 부탁드립니다."
"뒤, 뒤로 무, 물러나래도."
아멜리아가 말을 더듬으며 당황하자 범려는 확신을 가졌다.
'너무 쉬운데.'
아멜리아는 자존심 때문에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범려를 공격할 수도 없었다.
"블리자드 마법서를 주신다면 물러나겠습니다."
범려는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아주 배 째라는 표정을 지었다.
"알았다. 마법서 한 권이면 되겠나?"
"전 욕심이 많아서 서너 권은 얻어야겠습니다."
마법서의 숫자가 한 권이 아니라 이제는 서너 권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런 못된 회색의 전승자."
아멜리아가 노려보는 눈이 살벌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범려가 아니었다.
"여기 블리자드 마법서 세 권이다."
아멜리아에게 강짜를 놓아서 블리자드 마법서를 세 권이나 얻게 된 범려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멜리아 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이냐?"
"그렇습… 읍!"
아멜리아가 거침없이 달려들더니 그의 입술을 강탈해버렸고, 다리에 힘이 풀린 범려는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으음, 이걸로 비긴 건가?"
아멜리아는 입술을 혀로 살짝 핥으면서 도발적인 자세를 취했다.
"두 번씩이나 당하다니."
그리 잘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니건만, 드래곤들은 범려를 맛있는 사탕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회색의 전승자, 어디로 가고 싶어? 내가 그곳으로 보내주지."
"보리스 지역에 있는 전사의 도시로 데려다 주십시오……."
범려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간단한 일이지."
아멜리아가 손가락을 한 번 탁 튕기자 범려는 순식간에 전사의 도시 오아시스 근처로 텔레포트되었다.
범려는 주저앉은 상태로 오아시스 앞에 떨어지자 바로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여자 앞에서 말 더듬는 건 사라졌지만 여자를 많이 만나보지 못해서 그런지 미진을 제외한 다른 여자들이 다가오는 것은 약간 어색했다.
"후! 헬렌 누나한테 가볼까."
잠시 후 헬렌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 가보니 로즈도 함께 있었는데, 헬렌과 같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로즈는 왔으면 귓속말이라도 할 것이지, 여기서 헬렌 누나랑 같이 졸고 있다니."
둘이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함부로 깨우기가 뭣해서 그녀들이 자고 있는 근처 벤치에 앉아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암! 잘 잤다."
먼저 눈을 뜬 사람은 로즈였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던 그녀는 턱을 괴고 잠이 들어버린 범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어?"
설마 범려가 그녀들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잠들어버린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여기 와서 잠들어버린 건가?"
로즈는 살금살금 걸어가더니 범려의 몸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 위에 범려의 머리를 올려놓았다.
"잠을 잘 때는 편하게 자야지."
그녀는 범려의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사이, 꾸벅꾸벅 졸다가 깨서 주변을 둘러본 헬렌의 눈에 한 쌍의 커플이 약간 닭살 돋는 행동을 취하는 게 보였다.
"어이쿠, 잘한다~ 너희들은 커플이라 이거지?"
헬렌은 갑자기 서러워졌다. 자기도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고 같이 게임도 하면서 즐기고 싶은데, 저 둘이 옆에서 염장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언니, 쉬잇!"
로즈는 혹 범려가 깰까 싶어 헬렌에게 집게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며 작게 말했다.
"쳇."
헬렌은 로즈의 그런 행동에 삐쳤는지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약 한 시간 정도 졸고 눈을 살며시 뜬 범려는 헛바람을 삼켰다.
"이제 일어났어?"
"……."
입으로 소리만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눈은 커질 때로 커져 있었다.
"어, 언제……."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냐고? 별로 안 됐어. 한 시간 정도?"
"후! 낮잠을 너무 오래 잤네. 이제 일어나야지."
범려는 천천히 일어나더니 약간 부스스한 눈을 하면서 기지개를 폈다.
"끄으응."
이어 몸에서 우두둑 하며 뼈마디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잠 다 깼다."
"헬렌 언니한테 듣기는 했는데 이벤트라니? 무슨 소리야? 홈페이지에는 아직 그런 공지를 한 적 없는데."
"사막에서 뱀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을 봤거든. 그걸 보니 이벤트 냄새가 나서."
"그럼 정확한 사실이 아니고 그저 그것만 보고 판단한 거야?"
로즈는 범려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정보를 얻은 것이고, 아니라면 괜히 허탕만 치는 거다.
"이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밑져야 본전이야. 그러니 믿어!"
범려는 자신의 말을 믿으라며 로즈의 어깨를 잡고 외쳤다.
"알았어. 믿을게."
로즈는 범려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는 여기서 더 의심했다가는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 후 범려의 말대로 이벤트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딱 이틀 뒤에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가 떴다.
-안녕하세요, 유저 여러분. 이번 『판게아 월드』에서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월드 이벤트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개미 군단 이벤트로, 창공의 페이셔 지역과 심해의 노턴 두 곳이 제외가 되며, 이후 두 곳에서는 따로 이벤트를 열게 되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대륙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너무나 흔해빠진 개미들이 거대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개미들이 거대해지자 그 거대해진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변의 동물들 식물들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거기에 인간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개미들을 몰아내야 한다. 모험가들이여! 개미들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이 되어라!
"어! 진짜 이벤트가 열렸어!"
헬렌과 로즈는 정말로 이벤트가 열리자 믿지 않을 수 없었고, 이벤트는 공지가 올라오는 그날 업데이트가 시작되어서 다음 날이 되어서야 접속이 가능했다.
게임에 접속하자 범려의 눈앞에 메시지 2개가 나타났다.
-개미 군단 이벤트가 시작됐습니다. 아이템 드롭 확률 1.2배 증가, 경험치 1.5배 증가됩니다.
-여왕개미를 잡은 분들은 여왕개미의 보물 창고에서 보물을 한 가지 고르실 수 있습니다.
지금 나온 유니크 아이템 중에서 1개를 준다는 말은 많은 유저들의 욕망을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범려의 말이 사실이 될 줄이야! 안 믿고 있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뭐야! 내 말을 안 믿고 있었다는 거야!"
자신의 말을 전혀 안 믿고 있었다는 소리에 범려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고, 둘 다 아무 소리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쩝. 누나, 이거 받아."
범려가 헬렌에게 건넨 것은 블리자드 마법서였는데, 범위 마법 중에서 상위 5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최강 마법 중 하나로 불리는 것이다.
"이건 블리자드!"
"어떻게 구한 거야? 이거 돈 주고 사려면 7천 골드나 줘야 되는 건데."
범려는 7천 골드나 되는 마법서라는 소리에 속으로 '억' 하고 까무러쳤다.
"아하하! 별거 아니야. 내가 아는 곳이 있어서 거기 가서 사냥 좀 하니 나오더라고. 그래서 누나 주려고 가져왔지."
"언니는 좋겠다. 그런데 난 뭐 없어?"
로즈가 자기한테 줄 건 없냐면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범려를 바라봤지만, 사제들이 쓰는 신성 마법서는 없었다.
"아, 없는데……."
"어, 어쩔 수 없지, 뭐……."
로즈는 생각보다 크게 상심했는지 표정이 급격하게 우울해졌고, 범려는 그런 로즈를 살살 달래면서 나중에 꼭 구해준다고 약속을 했다.
"범려 형님, 그런데 개미 사냥을 어디에서 하실 건가요? 들리는 말로는 개미들이 뭉쳐 다니는 숫자가 30이 넘는다고 하던데요."
"취선아, 내 앞에서 쪽수 이야기하는 거냐? 내 직업이 뭔지 몰라?"
취선은 범려의 직업을 잠시 망각했는지 순간
'아!'
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개미 30마리 정도는 못해볼 숫자도 아니니 걱정 마라."
범려는 개미들의 숫자보다 그들의 능력이 어떨지 궁금했다. 그 딱딱한 벌레들의 능력을 알아내서 약점을 파고들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일단 사냥 지역은 두 곳이다. 자연의 도로시와 공허의 보리스에서 출몰하는 개미들을 처리한다. 우선적으로 보리스 지역에서 나오는 녀석이 첫 목표물이다."
범려가 사막에서 나오는 개미들을 처리하겠다고 선포하자 다들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해골마를 타고 개미들이 쏟아져 나오는 곳으로 이동했다.
"저 시커먼 것들이 다 개미예요?"
"그래, 저기 보이는 시커먼 것들이 다 개미다."
드넓은 사막 한복판에 시커멓게 깔려 있는 개미들을 보고 있자니 징그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놈들은 이 일대를 점령하고 있는 검은 군대처럼 보였다.
"취선아, 앞장설래?"
범려가 취선에게 선봉장으로 나가라는 말을 하자, 녀석이 들고 있는 큰 도끼를 뽑더니 당당히 앞으로 나섰다.
"형님! 맡겨만 주십시오. 이 취선이 형님에게 받은 해골마를 가지고 열심히 연습하며 지냈습니다."
취선은 생긴 건 미소년인데 말투는 산적 같아서 굉장히 언밸런스하다.
"다들 준비!"
범려가 지휘를 하자, 유저도 해골들도 자신들의 위치에 서서 전투 준비를 했다.
"먼저 한 무리만 잡는다!"
범려는 해골들을 믿지만, 개미들이 어떤 스킬을 쓰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다.
"사수 준비!"
궁수들이 목표를 향해 활을 당기고 있을 때, 취선은 제일 앞에 서서 전투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발사!"
가장 가까운 개미들을 향해 화살이 날아가자 거대 개미들이 반응을 보이면서 해골 병사들을 향해 달려왔다.
"돌격-!"
돌격 신호가 떨어지자, 취선이 제일 먼저 해골마를 타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 뒤를 이어 개마 기병이 달려왔고, 보병들도 같이 돌격했다.
"마법 공격 개시!"
해골 마법사들이 마법을 부리기 시작하자 개미들에게 별의별 마법들이 다 떨어졌다.
"힐! 힐! 힐!"
로즈는 생명력이 떨어지는 해골들에게 힐을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헬렌 누나! 블리자드!"
헬렌이 범려의 명령대로 블리자드를 사용하기 위해 캐스팅을 시작하자, 일부 개미들의 눈빛이 바뀌더니 다른 해골들을 무시하고 헬렌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망구다이, 헬렌에게 다가오는 녀석들을 막아!"
망구다이들은 올가미를 던지며 헬렌에게 다가오는 녀석들을 붙잡았고, 개미들은 계속 발버둥을 치면서 올가미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블리자드!"
개미들의 머리 위에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거기서 날카로운 얼음 덩어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개미들의 단단한 껍질을 부수면서 놈들의 생명력을 쭉쭉 떨어트렸다.
"특별한 능력은 보이지 않는데."
지금까지 개미들이 특별한 능력은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이, 갑자기 해골 몇몇이 뒤로 날아갔다.
"뭐지?"
범려는 해골들을 날려 버린 개미에 시선을 집중했다.
"병정개미?"
일개미보다 덩치가 더 큰 병정개미는 최대 무기인 무식한 턱이 있었다.
"턱이 거의 사슴벌레 수준이잖아."
범려는 병정개미의 턱에 놀람을 금치 못했고, 그 턱으로 해골 병사들을 뒤로 날려 버리는 광경에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저놈이 문제였어."
일개미들은 껍질만 단단할 뿐 별다른 능력이 없었지만, 병정개미는 거대한 턱으로 인한 공격력과 여차하면 상대방을 뒤로 날려 버리는 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해골 마법사! 병정개미를 집중 공격해라!"
범려의 명령에 해골 마법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병정개미를 향해 집중되면서 마법 공격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끼아-!"
-병정개미가 분노의 외침을 터트립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개미들의 공격 속도가 5% 상승합니다.
"개미 주제에 버프까지 쓸 줄 알다니!"
범려는 저 병정개미를 오래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직접처리하기 위해 나섰다.
"이랴! 회색의 빛!"
병정개미를 향해 날린 화살은 한순간에 커다란 피해를 주면서 놈의 시선을 범려에게 고정시키게 만들었다.
"나와라! 거기 있어봤자 내 해골들만 더 위험하다."
강한 놈은 일단 따로 떨어트려 놔야 더 이상 해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
병정개미는 범려를 향해 달려오더니 그 무식한 턱을 휘두르며 공격해왔다.
"덤벼!"
그에 범려는 활을 집어넣고 창을 꺼내서는 병정개미와 일대일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범려야!"
"로즈는 나 신경 쓰지 말고 해골들이나 신경 써!"
로즈는 병정개미와 홀로 전투를 벌이는 범려를 향해 소리쳤지만, 그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이 외쳤다.
"태풍 몰아치기!"
"토네이도!"
"치유의 손길!"
범려가 병정개미를 혼자 막고 있는 사이, 해골들과 파티원들이 개미들을 손쉽게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다 죽였다!"
취선은 눈앞에 있는 개미들을 모두 다 처리하자, 범려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하앗!"
챙챙!
창을 기민하게 다루는 범려의 모습은 취선에게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헉! 형님, 언제 창술을……!"
"취선아, 뭐 해! 어서 도와주지 않고!"
파티에서 제일 막내인 취선은 황급히 말을 달려가 병정개미를 향해 도끼를 내리쳤다.
콰직!
그나마 개미들의 몸 중에서 제일 부드럽다는 배 부분을 있는 힘껏 내리치니 치명타가 터지면서 병정개미가 비명을 질렀다.
"회색의 빛!"
범려의 창끝에 만들어진 빛 무리가 터지면서, 병정개미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더니 단단한 몸을 구성하고 있던 껍질이 산산이 부서지며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휴! 예상외의 복병이었어."
"형님! 언제 창술을 배우신 겁니까? 설마 해골 제작자는 만능 직업인가요?"
"아니. 사용 가능한 무기 중에 창이 있을 뿐이야."
"방금 쓴 스킬은 뭔가요?"
"내 유일한 공격 스킬인데, 너도 자주 보던 스킬 아니냐?"
취선에게는 활로 회색의 빛을 시전할 때와 창으로 펼치는 회색의 빛이 다르게 보였지만, 둘은 같은 스킬이고 범려에게 있어 유일한 공격 스킬이다.
"다음 전투에서는 취선이 네가 병정개미를 따로 떼어내서 처리해라."
"예, 형님."
"로즈는 귀찮겠지만, 취선이 힐 해주면서 관리 좀 해줘."
"야, 그냥 너 혼자 살아."
"헉! 누나, 이 동생이 사막에서 죽게 내버려 둘 거야?"
"호호호! 알았어. 장난친 거야."
장난이라는 로즈의 말에 취선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작전 회의는 끝!"
범려는 각 파티윈들에게 임무를 내리더니 바로 전투 준비에 돌입했다.
"준비!"
해골들이 전투 대형을 이루자 다들 긴장했다. 범려의 명령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해골들과 동조하여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지하게 된다.
'신기하게도 범려 형님과 같이 있으면 죽을 것 같지 않단 말이야.'
'역시 범려야.'
'범려를 따라다니면 마법을 마음 놓고 써도 안심이 되니 좋아. 이번에도 화끈하게 퍼부어야지.'
다들 범려의 지휘 능력에 안심하고 마음 놓고 싸울 자세를 취했지만, 범려는 혼자 신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저건 취선이 막고, 공격이 집중되는 곳이 저쪽이니까 힐이 저기로 떨어질 테고… 한곳으로 몰리는 시점이 이쯤 되니 블리자드나 토네이도가 떨어질 테고…….'
여러 가지 생각이 정리되자 드디어 범려가 명령을 내렸다.
"공격!"
범려의 화살이 개미의 머리에 꽂히는 것을 시발점으로 해골들과 거대 개미들과의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다들 버프 걸어! 상혼의 힘!"
"으아-!"
"빛의 숨결, 신의 가호!"
"헤이스트!"
순식간에 몇 개의 버프가 걸리더니 해골들과 파티원들의 힘이 크게 증가되었다.
더군다나 범려가 가지고 있던 오라의 힘이 추가로 더해지니 미친 듯이 공격을 펼치는 해골들을 볼 수가 있었다.
"후! 저 많은 개미들을 언제 다 죽이지?"
사막 필드에 시커멓게 깔려 있는 개미들을 보고 있자니, 여왕개미를 잡으려면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막막했다.
"다른 유저들도 어딘가에서 개미들을 잡고 있겠지."
(범려야!)
한창 개미 사냥을 진행하는 중에 갑자기 제마한테서 귓속말이 들려왔다.
(물약 다 만들었다. 어디 있냐?)
"개미들 잡고 있어. 위치는 전사의 도시에서 북동쪽으로 계속 올라오면 된다."
(알았다.)
제마는 범려가 말해놓은 포션을 다 준비했는지 이쪽으로 온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틈틈이 정령석을 만들면서 준비해놓은 덕분에 제마에게 줄 정령석이 하나 가득 쌓여 있었다.
범려가 개미 한 무리를 깔끔하게 다 처리하고 있을 때쯤에 제마가 찾아왔다.
"범려야!"
"제마야, 어서 와."
범려의 친구인 제마를 보고 헬렌이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헬렌 님."
웃으면서 그녀에게 인사하는 제마의 눈길은 헬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어험!"
범려는 제마의 시선이 너무 고정되어 있자 헛기침을 하면서 용건을 물었다.
"물약 얼마나 만들었냐?"
"먼저 정령석부터 주라."
"급하기는. 여기 있다 정령석 200개. 어서 물약 줘."
"여기 최상급 마나 물약 400개. 보너스로 최상급 치유 물약 100개."
제마와 범려는 적당히 거래를 하고 나서 서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누구시죠?"
로즈는 범려의 친구를 처음 봤는지 소개를 해달라는 듯이 물어왔다.
"여기는 내 친구 제마."
"안녕하세요. 범려 친구 제마입니다."
"전 로즈라고 해요."
"이런 말씀을 물어도 될지 모르겠는데, 범려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네?"
제마는 눈치가 빠른 인간이다. 특히 범려 같은 경우 지금까지 여자를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는 걸 잘 알기에 로즈와의 관계가 궁금했다.
"애인이에요."
로즈는 당당하게 범려의 팔짱을 끼면서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음!"
순간적으로 범려의 얼굴을 쳐다보는 제마의 눈빛이 약간 바뀌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범려가 얌전한 고양이는 아니지만, 제마의 입장에서는 여자와 이야기도 잘 못하는 그가 그렇게 생각되었다.
"하하하! 애인이셨군요. 범려가 누군가의 시선을 끌 만한 짓은 안 하다 보니 저도 몰랐던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됐네요."
"그건 저도 동감이에요."
"잘들 알고 있군."
범려는 누군가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걸 상당히 귀찮아한다. 하지만 단 한 번, 공구장 일행들을 잡을 때는 그들에게 망신을 주려고 작정하고 동영상을 올린 것이다.
"형님, 왜 저는 소개 안 시켜 줘요?"
"아, 깜빡 잊고 있었다. 이쪽은 취선, 바바리안이야."
"안녕하세요. 제마입니다. 범려의 십년지기 친구지요."
"안녕하세요."
취선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범려의 친구라고 하니 예를 갖춘 것이다.
제마는 파티원들과 통성명을 하더니, 자신도 파티에 끼워달라고 했다.
"범려야, 나도 파티에 끼워주라."
"들어와라."
제마가 사냥에 도움이 안 돼도 상관이 없었다. 제일 중요한 마나 물약을 제조하는 직업이다. 특히 사제나 마법사는 연금술사가 주는 마나 물약을 최고로 친다.
"연금술사라서 사냥에 별 도움이 안 되지만, 양해 바랍니다."
"아니에요."
제마가 고개 숙여 파티원들에게 양해를 구하자, 다들 제마를 예의 바른 청년이라는 이미지로 기억하게 되었다.
"다들 물약 받아. 한 사람 앞에 마나 물약 100개씩, 그리고 치유 물약은 취선이 다 가져가라."
"네, 형님."
마나 물약 100개면 상당한 양이다. 하루에 소비하는 마나 물약이 평균 5개로 긴급한 상황에서만 사용한다.
"다들 이걸로 여왕개미까지 가야 하니까 아껴 써."
"여왕개미까지? 거기까지 어떻게 가! 안 돼."
"형님, 저희 말라 죽어요."
여왕개미가 있는 곳까지 간다는 말에 다들 반대하고 나섰지만, 이미 결정을 내린 범려는 그대로 밀고 나갔다.
"다들 내 말 들어서 손해 본 적 있어?"
"아니."
범려를 따라다녀서 이득을 봤으면 봤지 손해를 본 적은 없었다. 다만, 그 과정이 고되고 힘들어서 문제였다.
"그럼 이대로 간다!"
"……."
범려가 해골마를 천천히 몰아 앞장서서 가자 자연스럽게 모두 그 뒤를 따르며 움직였다. 그러다 갑자기 제마가 걸음을 멈추었다.
"나만 걸어가?"
"응?"
뒤를 살짝 돌아본 범려는 제마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한번 짓더니, 그 자리에서 말뼈를 꺼내 해골마 하나를 뚝딱 만들어줬다.
"고맙다, 친구야."
"어려운 일도 아닌데, 뭐. 대신 말안장은 돈 주고 사라. 거기에 그냥 앉으면 지옥이거든."
"우하하하! 그럴 줄 알고 미리 안장을 사놨다."
제마는 범려가 해골마를 줄 것을 대비해 말안장을 구입해놓은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의 눈에, 제마는 예의 바른 청년의 이미지보다는 약삭빠른 인간으로 보였다.
"우후후! 이제 가자."
범려는 머리를 살짝 긁적거리며 제마의 행동에 약간 민망했다.
'지금 와서 저걸 내 친구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제마가 파티에 끼어도 사냥을 하는 데 별다른 변화가 없을 줄 알았는데 가장 큰 변화가 생긴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연금술사만이 사용하는 특수 포션 때문이었다.
얼마나 많은 양의 물약을 가져왔는지 계속 물약을 투척해 주변의 몬스터들을 각종 상태 이상에 빠트리고 있었다.
"염산 병이다! 먹어라!"
치이익!
"이번에는 화염병이다!"
펑! 화르르!
제마가 던지는 상태 이상 물약은 강한 데미지보다는 지속적으로 적을 약화시키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다행히 이번에 나온 정령 폭탄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됐지만, 그게 계속 던질 수 있는 폭탄이 아니라서 안타까웠다.
"딱 보조적인 직업이네."
연금술사라는 직업이 너무나 보조적인 스킬만 잔뜩 있다 보니 제마가 안쓰럽게 보였다.
사냥을 한창 하던 범려는 망원경을 들고 개미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개미구멍을 찾고 있었다.
"어디에서 나오는 거냐."
망원경으로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개미가 나오는 곳은 발견하지 못했고, 다른 곳에서 개미들을 죽이는 파티를 하나 찾았다.
펑! 펑!
얼마나 마법을 쏟아 붓고 있는지 망원경으로 보고 있는 순간에도 수 가지의 마법이 연신 터지고 있었다.
"와! 여기는 마법사 유저가 한 명인데 저쪽은 다섯 명이나 되는 건가?"
범려는 해골 마법사는 마법사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마법을 연달아 터트리는 저쪽 파티가 그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쪽에서 마법이 연달아 터지는 반면, 그 근처에서 다른 파티가 알게 모르게 사냥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저쪽에도 다른 파티가 있네.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른 유저들이 달려오지?"
범려는 경쟁자들이 계속 늘어나자 경각심이 일었다.
"경쟁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냥에 속도를 올린다!"
"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일행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
"범려야, 나 힘들어. 우리 개미 조금만 잡아도 되니까 천천히 하자. 응?"
"아니야. 이왕 왔으니 여왕개미를 잡아야지. 더군다나 저기 보이는 저것들도 여왕개미를 노리고 있어!"
범려는 여왕개미를 목적으로 움직이는 경쟁자들에게 지기 싫었다.
"이렇게 되면 격노밖에 없어."
격노라는 말에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범려는 갑자기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가더니 무조건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이에 깜짝 놀란 로즈가 힐을 하려고 손을 뻗었지만, 범려가 급히 그녀를 막았다.
"힐 하지 마! 하면 안 돼!"
그 말에 로즈가 힐을 하려다가 멈추자 범려의 생명력은 30% 이하가 되었다.
"크아!"
해골들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포효하자, 취선은 이전에도 한 번 보았던 해골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 이건… 매머드 던전에 있을 때 봤던……."
-해골 병사들이 격노에 빠집니다.
개미들에게 한참을 두들겨 맞던 범려가 개미 무리를 끌고 오자 해골들이 개미들을 향해 분노에 가득 찬 일격을 퍼부었다.
"취선! 병정개미를 끌고 나가!"
취선은 발 빠르게 움직이더니 병정개미들을 끌고 나왔다.
"헬렌 누나, 광역 마법!"
"알았어!"
"로즈는 내 체력이 30퍼센트가 넘지 않게 힐을 해줘. 명심해. 30퍼센트야."
"응."
로즈는 범려의 말대로 아주 소량의 생명력만 회복하는 힐을 해주었고, 절대로 생명력이 30퍼센트를 넘지 않게 만들었다.
사제들은 언제나 같은 파티원의 생명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주는 게 일반적인데, 범려가 말하는 생명력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달라는 주문은 꽤나 어려웠다.
"이제 내가 힐 해달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해주지 마."
"아, 알았어."
사실 범려에게 힐을 해줄 일은 거의 없다. 뒤에서 활을 쏘면서 지휘를 계속 해나가야 하기에 앞으로 나서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이대로 전진!"
해골 병사들을 천천히 밀어붙이면서 개미들이 달려오는 족족 잡아 죽이고, 병정개미처럼 등급이 높은 녀석들이 눈에 보이면 취선이 따로 떨어져 처리를 했다.
"헉헉!"
"쉴 시간 없어!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개미들한테 죽어!"
범려는 일부러 개미들이 있는 지역 깊숙이 들어와 놓고 취선이나 로즈를 자극했다.
"개미들이 온다! 공격해!"
너무 깊숙이 들어왔는지 전후좌우 개미들이 우글우글했다.
"원진(圓陣)을 펼쳐라!"
원진은 주변에 적들이 많을 경우 원 모양으로 진을 이루는 진법이다.
"제마야, 해골들이 시간을 벌고 있는 동안 폭탄을 만들어."
"뭐!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이곳에서 폭탄을 만들라고?"
"여기가 안전하니까 만들라는 거야. 폭탄을 다 만들 때까지 버티고 있을 테니까 어서 만들어!"
제마는 범려의 말에 따라 정령 폭탄 제조에 들어갔다. 혹시라도 폭탄을 만들 때 그를 방해하지 못하게 해골들에게 일러두는 것도 범려는 잊지 않았다.
"범려 형님, 우리 이대로 어떻게 버텨요?"
"걱정 마. 제마가 정령 폭탄을 완성할 때까지만 버티면 돼."
범려는 둥그렇게 진을 만든 상태에서 계속 개미들과 전투를 벌였다.
사방이 개미들이라서 몰려드는 녀석들이 많았지만, 튼튼하게 만들어진 원진을 뚫는 개미는 없었고 병정개미조차 해골 병사들을 뒤로 날려 보내지 못했다.
원진은 해골들로 만들어진 움직이는 철옹성이 되어, 개미 사냥을 계속했다.
"힐! 힐! 힐!"
여기서 제일 바쁜 사람은 로즈였다. 해골들의 생명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진이 뚫릴까 봐 걱정을 하고 있었다.
"힐을 조금 천천히 해도 돼. 해골들 그렇게 쉽게 안 죽어."
범려는 로즈가 조금이라도 쉬면서 힐을 하도록 유도했고, 그 와중에도 주변에는 개미들의 시체가 늘어가고 있었다.
"누나, 광역 마법!"
"블리자드!"
순식간에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날카로운 얼음 덩어리가 떨어지더니 개미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범려 파티가 블리자드로 주변을 정리하고 있자, 저 멀리서 블리자드 마법이 생성되는 것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뭐야! 저들은 벌써 저기까지 들어갔잖아."
"저것들 분명 여왕개미가 목적일 거야. 저 봐, 몬스터를 잡으면서 길을 만들고 있어!"
범려는 제마가 폭탄 하나를 만드는 시간을 기준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폭탄을 제작하는 순간은 멈춰서 기다리다가, 완성이 되면 전진하며 개미굴을 찾아갔다.
"저 팀한테 질 수 없다. 전진한다!"
범려 팀을 보고 자극을 받은 다른 유저들이 발끈하면서 개미들을 쓸어버리며 전진했다.
하지만 개미들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범려 팀을 제외한 다른 팀들은 깊숙이 전진을 못하고 근처에서 개미들에게 둘러싸여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정령 폭탄 20개 완성!"
"이제 개미굴을 찾자."
범려는 폭탄이 완성되자, 개미들이 솟아 올라오는 개미구멍을 찾기 시작했다.
"형님, 여왕개미보다 여기서 시간을 보내면서 사냥하는 게 어떨까요?"
"무슨 소리야! 이곳에 있으면 위험해. 아무리 원진을 펼친다고 해도 최대한 버티기 위해 펼친 거지, 여기서 자리 잡자는 게 아니야!"
취선은 범려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주변에 개미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개미들이 각자의 무리를 이루고 있지만,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고 드넓은 모래사막에 검은 물결을 이루고 있어서 그 시작이 어디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범려야, 저쪽을 봐봐."
로즈는 북쪽 방향을 가리키면서, 거대한 검은 구덩이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개미들이 나오고 있는 구덩이야."
개미들은 그 구덩이에서 일정한 시간차를 두면서 한 무리씩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저 안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