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여왕을 잡아라
"개미들이 한 번 지나가면 저 안으로 들어간다!"
"형님, 저 안에 개미들이 여기보다 더 많으면 어떻게 하죠?"
"어릴 때 학교에서 안 배웠어? 개미집은 여러 갈래의 방과 길로 만들어진 곳이잖아. 나오는 구멍은 하나일지 모르지만, 방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으니 그만큼 개미들이 분산되어 있잖아."
"아하! 그렇군요."
취선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손뼉을 쳤고, 옆에 있던 로즈가 그런 취선에게 꿀밤을 먹였다.
"넌 나보다 공부도 잘했으면서 그것도 잊어먹었냐?"
"아야, 그럴 수도 있지! 그런다고 때리냐!"
"둘 다 그만."
범려는 남매들 간의 싸움을 중재하고는 작전을 설명했다.
"분명 개미들이 거대해졌지만, 이건 게임이다. 여왕개미는 이 개미굴의 최하층에 자리 잡고 있을 거야. 개미집 길 자체가 워낙 미로라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최하층까지 최대한 안전하게 움직인다."
범려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몸을 움직였다.
파티원들은 개미굴 구멍에서 개미가 한 번 나오자, 쏜살같이 그 안으로 진입하더니 순식간에 진형을 짜며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개미는?"
"의외로 한산하군."
범려의 예상대로 개미굴 안에는 개미들이 우글거리지 않고 오히려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개미굴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눈에 보이는 굴의 숫자는 다섯. 이 중에서 단 한 곳만 여왕개미에게로 가는 길. 나머지는 여왕개미와는 관련이 없는 길이다.
"음, 어디가 여왕개미 쪽으로 가는 길일까?"
범려가 거듭 고민하고 있는 사이, 제마가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어. 우리는 천천히 수색만 하면 돼. 저 위 수많은 개미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잖아. 그 개미들이 다른 유저들을 막는 방패가 되어줄 거야."
제마의 말대로 저 위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개미들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지 아무리 죽여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제마의 말이 일리가 있어. 급하게 생각할 건 없겠지."
범려가 제마의 말에 동의하고는 굴 하나를 선택해 진입을 하는 순간, 그곳에서 개미 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개미다! 전투 준비!"
아직 제대로 된 탐험도 하기 전에 개미들이 먼저 움직여 줬다.
"돌격!"
일단 한쪽 방향으로만 몰려오는 개미들이라서 범려는 병사들을 이용해 들이받아 버렸다.
아직 격노 효과가 사라지지 않아서 해골 병사들이 굴 안으로 개미들을 몰아붙이며 어느 정도 들어가더니 그 속에서 제대로 된 전투가 벌어졌다.
다른 구멍에서는 개미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범려가 들어가 있는 구멍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개미들을 다 죽여라!"
"와아-!"
범려의 지휘에 개미들은 해골들의 손에 박살이 나버리고, 모두는 굴 안으로 진입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몬스터들의 출몰은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반복되고 있었다.
"무슨 몬스터가 5분 간격으로 나오는 거지?"
"잠깐! 5분 간격? 입구에 있었던 개미굴 숫자가 다섯이었지."
범려는 개미굴이 다섯, 그리고 하나의 굴에서 나오는 개미의 시간차가 5분.
"1분에 한 무리씩 계속 나오는 거였어. 왜 아까는 못 봤지?"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 많은 수의 개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개미들이 자신이 나오는 구멍을 제외하고는 다른 구멍엔 일절 신경 쓰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버려서 모른 것이다.
일단 파티원들은 지금 상황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결론을 내렸다.
"음, 다른 개미굴에서는 이쪽에서 전투가 벌어져도 달려오지 않는 것 같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범려와 로즈가 같은 생각을 내놓자 다들 그 의견에 동의했다.
"일단 몬스터가 나오는 간격이 5분이면 시간이 없어. 빨리 움직여."
범려는 정확한 출몰 시간을 알게 되자, 무조건 달리기 시작했다.
개미들이 몰려오기 전까지 개미굴은 텅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개미굴이 엄청 커서 말을 타고 달려도 거치적거리는 게 없어서 다행이야."
다들 해골마를 타고 개미굴 안을 질주하면서 달려가자, 순식간에 굴 깊숙한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곳은 뭐지?"
파티원들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산란실이었는데, 커다란 개미가 산란실을 지키고 있었다.
"제3산란실 수호 개미……."
산란실을 지키고 있는 개미의 이름이었다.
"저 개미 왠지 아이템의 냄새가 나지 않아?"
범려는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강렬한 아이템의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로즈나 다른 녀석들은 저 개미를 거부했다.
"저놈을 잡으러 온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아이템의 냄새가 난다고."
"범려 형님, 저거 잡기 전에 여왕 먼저 잡아요. 맛있는 걸 먼저 먹어야지, 맛없는 것부터 먹으면 입맛 버려요."
취선의 말이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는지, 범려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맛없는 것부터 먹으면 입맛만 버리지."
쩌적! 쩍!
그때, 산란실에서 알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안에서 애벌레가 나왔고, 그 애벌레는 빠른 속도로 개미로 변하고 있었다.
"범려야, 저 개미들이……."
로즈는 순식간에 30마리의 개미들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로즈, 그거 구경할 시간 없어. 여기서 빨리 도망쳐야 해!"
개미들이 모여서 움직이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다른 굴로 이동해야 했다.
"다들 입구로 달려! 개미들과 싸우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해골 병사들이 순식간에 해골마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대로 개미굴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산란실에서는 30마리의 개미들이 다 깨어나 몸이 완전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지!"
다들 바람처럼 몰던 해골마를 멈추고 뒤를 바라보자, 어느새 개미들이 바깥으로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저것들을 잡자!"
범려의 말 한마디에 다들 뒤로 돌아서더니 개미들과 싸우기 위해 준비했다.
-격노 상태가 사라집니다.
전투를 계속 진행하지 않으니 말을 달리는 동안에 생명력이 일부 회복됐는지 해골들의 격노 상태가 풀려 버렸다.
"이런! 격노가……."
범려는 격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딱 30퍼센트 이하가 될 때까지 조금만 맞아줄 생각이다.
"후후! 딱 몇 대만 때려 다오."
범려가 앞으로 달려 나가 개미들을 먼저 공격하고는 몇 대 맞아주니, 다시 격노 상태가 활성화되었다.
-해골 병사들이 격노 상태에 빠집니다.
"좋았어."
쾌재를 부르면서 좋아하고 있는 사이, 해골들은 분노를 터트리며 자신들의 주인에게 해를 입힌 눈앞의 개미들에게 무서운 일격을 가하고 있었다.
격노의 매력은 범려뿐만 아니라 파티원들에게 전염되어 모두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기만을 바랐다.
"우아! 정말 유저가 100명이 된 것 같아."
격노 상태에서만 느껴지는 힘이다. 그 빈약한 해골들이 한 명의 유저처럼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나가면 바로 왼쪽 개미굴로 들어간다. 일단 굴 안으로 최대한 깊숙이 들어가서 개미 무리를 한 번 잡고 단숨에 달려간다."
범려가 앞장서서 해골마를 몰자 다들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우르르!
해골 병사들은 대열을 유지하면서 굴 안으로 들어와 범려의 바로 뒤에 멈춰 서 있었다.
"대열을 맞춘 상태에서 빠른 걸음으로 이동한다."
범려는 개미들이 언제 달려 나올지 몰라 가기는 가되 대열을 유지한 상태에서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이번에 진입한 개미굴은 이전 굴보다 조금 더 깊어서 개미 무리를 두 번이나 더 만났다.
"이 굴이 꽤나 깊어. 이번에는 여왕개미가 있는 방인가?"
범려는 작은 기대를 걸었지만, 그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트리는 녀석이 눈에 보였다.
"제2산란실 수호 개미!"
"여기도 꽝이네."
범려는 깊이 생각지 않고 몸을 돌려 버렸다. 그러자 해골들이 그를 따라 말없이 입구로 향했다.
"이러다가 전부 다 돌… 읍!"
"범려야, 그 뒷이야기 하지 마. 재수 없어."
범려는 전부 다 돌아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로즈가 손으로 막은 것이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할까?"
범려가 처음으로 로즈에게 의견을 묻자 그녀는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저쪽."
"좋아. 저쪽으로 가자. 이럴 때는 직감이라는 것도 믿을 만하지."
다들 로즈가 가리킨 굴로 진입을 했다. 그런데 입구에서 얼마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개미들이 튀어나왔다.
"진형을 펼쳐라!"
죽으나 사나 해골들은 벽을 만들고 개미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저것들 턱이 왜 저리 크지?"
"어라? 저거 전부 다 병정개미들이야!"
병정개미만이 가지고 있는 큰 턱은 굉장히 위협적인 무기다.
"이런! 30마리 전부 다 병정개미야! 다들 조심해!"
같은 레벨이라도 병정개미는 저 큰 턱 때문에 더 위험하다.
"헬렌 누나, 프리징!"
"프리징!"
개미들이 서 있는 자리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하얀 서리가 내려앉더니 병정개미들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망구다이들아, 묶어라!"
망구다이들이 올가미를 던지더니 병정개미 20마리를 그 자리에 멈추게 만들었다.
"움직이는 10마리를 잡아라!"
움직이는 녀석들이라고 해도 이미 이동속도나 공격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하니, 그 큰 턱을 아무리 휘두른다 해도 해골들이 느려진 공격을 못 피할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프리징이 낫군."
범려는 이런 개미굴이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토네이도 같은 광역 마법보다 프리징처럼 상대의 발을 묶는 마법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누나, 상태 이상 마법 먼저 걸고 공격 마법을 써줘."
"알았어."
상태 이상 마법은 개미굴처럼 제한적인 공간이라면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느린 공격이 나한테 통할 것 같냐!"
취선은 느려진 병정개미의 머리를 무식한 도끼로 내려찍으며 치명타 공격을 연신 터트리고 있었다.
쩌저적! 쩍!
개미들이 프리징 마법 때문에 발이 묶이기 시작하자, 옴짝달싹 못하고 고개만 흔들거리며 해골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저항했지만, 그건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쳐라!"
해골들은 개미들의 그 무식한 턱을 피해 목 관절이 있는 곳으로 기어들어가더니 목을 쳐 버렸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30마리의 병정개미의 목이 떨어지자, 개미들은 체액을 뿜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보병들은 말 갈비뼈 안으로 들어가라!"
수많은 해골들이 갈비뼈 안으로 들어가자 기병들만 눈에 보였다.
"가자!"
우르르!
개미굴 안에서 울리는 말발굽 소리는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굴 안을 울리게 만들었고, 그 울림을 파티원들도 느끼고 있었다.
"5분이 다 돼간다!"
한참 말을 달리던 범려가 외친 5분이라는 소리에 다들 멈춰 섰고, 해골마 갈비뼈 안에 있던 병사들이 나와 대열을 갖추었다.
"개미들이 온다!"
준비를 마치고 개미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해골들은 개미들이 눈에 띄자 자신들의 무기를 바짝 고쳐 쥐고는 녀석들을 노려보았다.
"공격!"
슈슈우욱-!
마법과 화살들이 일제히 날아들더니 병정개미 2마리가 단 일격에 몸이 부서져 버렸다.
"프리징!"
"쓸어버려!"
후우웅!
많은 병사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더니 병정개미들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리고 말았다.
개미들과 전투를 하면 할수록 놈들을 죽이는 시간이 점점 단축돼가고 있었다.
"범려야, 저걸 봐."
제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앞쪽에는 병정개미보다 더 큰 턱과 몸집을 가진 개미 2마리가 딱 버티고 있었다.
"저놈들은 뭐 저리 커?"
앞에 보이는 개미는 머리 위에 '여왕개미 근위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아싸! 여기가 여왕개미한테 가는 길이구나."
범려는 저 앞에 있는 근위병보다는 이 길이 여왕개미한테 가는 길이라는 사실에 아주 기뻐했다.
"형님, 그렇게 좋아할 게 아니에요. 저놈들을 봐요. 얼굴만 봐도 심각해 보이는 녀석들인데."
"전혀 심각할 거 없어. 아무리 강해도 겨우 둘. 호흡만 맞춘다면 저런 거 처리하는 건 길바닥에 침 뱉기야."
범려는 저따위 개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저거 겉모습만 봐도 상당히 강해 보이는데.'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동료들과 반대로 범려는 저 개미를 어떻게 잡을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5분 간격으로 다른 개미들이 몰려온다. 그런데 저것들과 싸우면 5분이 훨씬 넘어가겠지. 뭘 어떻게 해야 저걸 잡을 수 있을까?'
가만히 고민을 하고 있는 중에 벌써 5분이 지나고, 개미 한 무리가 다시 달려오고 있었다.
"참 귀찮군."
범려는 시간 맞춰 찾아오는 개미들을 다시 한 번 쓸어버린 후, 아르테미스를 불러들였다.
"아르테미스!"
"무슨 일인가요? 범려 님."
"투석기를 소환해주세요."
"네, 여기 있습니다."
아르테미스는 눈 깜짝할 사이에 투석기를 소환해내더니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전 이만 가볼게요."
"잠깐만요.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게 있어요."
"뭔데요?"
"여기는 흙만 있고 바위가 없거든요. 바위 30개만 소환 가능한가요? 크기는 딱 이만한 걸로."
범려는 두 팔을 활짝 벌리더니 필요한 바위 크기를 말해주었다.
"그건 안 돼요. 저는 특정한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 이상 전투에 관여할 수 없어요."
"조건 성립?"
범려는 보조적인 목적으로 바위를 구해달라고 했는데, 아르테미스는 조건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조건은 뭔가요?"
"비밀이에요."
비밀이라는 말에 범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물었다.
"투석기도 무기인데, 이것도 간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게 아닌가요?"
"투석기는 무기이지만 바위가 없으면 그냥 쓸모없는 모형물에 불과하잖아요."
즉, 투석기는 그 자체만으로 힘을 발휘할 수 없지만, 바위까지 구해주게 되면 아르테미스의 간접적 전투 참여가 성립된다는 소리였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아르테미스는 할 말을 다 했는지 인사를 하고는 영혼의 세계로 가버렸다.
아르테미스가 사라지고 난 뒤, 범려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생각해보았다.
"이곳에서 어떻게 바위를 구하지?"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흙만 보이고 다른 것은 없었다. 단순히 흙을 날려서는 저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바위 말고 단단한 거 없나?"
혼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범려의 눈에 샘이 들어왔다.
"이런 지하에 샘이 있다니, 참 신기한데……. 그래! 이거야!"
범려는 갑자기 큰 소리를 치더니 고개를 돌려 헬렌을 바라보았다.
"누나, 마법 중에 저 물을 공처럼 만들어서 얼리는 마법 있어?"
"저걸 공으로 만들어서 얼리는 거? 단일 계열의 마법은 없어."
"그럼 워터 볼 마법 있어?"
"그건 당연히 있지. 하지만 거의 쓸 일이 없는 마법이라서 사용하지 않아."
"누나, 워터 볼을 쓴 상태에서 아이스 애로우나 프리징을 쓸 수 있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범려는 다짜고짜 헬렌을 샘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왔다.
"누나, 여기서 한번 해봐."
"여기서?"
범려는 어서 해보라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헬렌은 그의 말대로 한번 해보기로 했다.
"워터 볼!"
샘에서 물이 뭉치며 순식간에 사람 머리 크기만 한 워터 볼이 만들어졌다.
"프리징!"
쩌저적! 쩍!
2개의 마법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더니 동그란 얼음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음, 누나, 워터 볼을 이만한 크기로 만들 수 있어?"
범려는 양팔을 크게 벌리며 대략적인 크기를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크게? 그러면 마나 소비가 심한데."
"그럼 만들 수는 있는 거네."
"응, 만들 수야 있지."
"누나, 그럼 60개만 만들어줘."
"뭐? 그렇게나 많이?"
범려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헬렌은 하는 수 없이 워터 볼을 크게 만들어 그걸 그대로 프리징 마법으로 얼려 버렸다.
쿵!
묵직한 소리가 들리더니 바위를 대신할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헬렌 누나가 얼음 덩어리 60개를 만들 때까지 버틴다."
"형님, 얼음 덩어리를 어디다 쓰시게요?"
"당연히 바위 대신 쓰려고 하는 거지."
투석기에 쓸 탄환으로 바위를 대신해 얼음 덩어리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개미들이 온다!"
여왕개미 근위병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서,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하고 멀리 떨어져 개미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게 개미들을 5번 정도 잡은 후에 드디어 헬렌은 투석기에 사용할 얼음 덩어리 60개를 모두 만들었다.
"후! 다 만들었다."
"누나, 3분 줄게요. 그사이에 회복하세요."
마나를 회복하는 시간을 겨우 3분만 준 것은 어서 마나 물약 마시고 일어서라는 의미였다.
"아주 날 노예처럼 부려먹어라!"
"으흐흐! 진짜 노예처럼 부려 드릴까요?"
범려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드리워지자 헬렌은 입이 쏙 들어가더니 마나 회복을 위해 휴식을 취했다.
정확히 3분이 지나자 범려가 큰 소리로 외쳤다.
"다들 준비! 단 한 번에 저것들을 작살낸다."
범려는 보병 몇 명을 지목하더니 투석기를 사용할 병사들을 뽑아놓고, 신호에 맞춰서 얼음 덩어리를 던지라는 명령을 내려놓았다.
"아직 마나가 얼마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헬렌은 작게 투덜거리면서 마나 물약을 들이켜고는 전투에 참가했다.
"취선! 넌 왼쪽 편에 있는 여왕개미 근위병을 상대해라. 알겠지?"
"네! 형님."
"나머지는 오른편에 서 있는 근위병을 잡는다. 병정개미들이 나오는 시간이 되면 일부 병력들이 나와서 개미들을 잡는다. 잡고 난 후에는 말 안 해도 알겠지!"
해골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명령을 받아들였다.
"버프 타임!"
범려가 버프 타임을 외치자 이것은 전투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준비!"
쿵! 쿵! 끼이익!
투석기에 헬렌이 만든 얼음 덩어리가 올라가는 소리와 해골 궁수들이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격!"
수많은 해골들이 여왕개미 근위병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키아아악!"
"큭!"
-근위병 개미의 제압의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공격 속도가 5% 감소합니다.
해골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공격 속도 감소가 이루어지자 범려는 불같이 화를 냈다.
"이 깜둥이 벌레가!"
범려는 당장 창을 들고 뛰어가더니 개미 다리의 관절 부분을 창이 부러질 정도로 힘차게 내리찍어 버렸다.
콰드득!
얼마나 강하게 내리쳤는지 창이 부러지면서 창끝이 관절에 깊숙이 박히고 말았다. 창이 부서졌지만, 범려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범려는 다시 활을 꺼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다리를 향해서 스킬을 시전했다.
"회색의 빛!"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빛의 폭발이 일어나고, 몸에 비해 부실한 다리를 공격하니 개미는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균형을 잡으려고 발버둥 쳤다.
"얼음 덩어리를 날려!"
후우웅! 후우웅!
범려의 명령이 떨어지자, 투석기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즉각 반응했다.
퍽! 퍽!
얼음 덩어리라서 여왕개미 근위병이 맞으면 얼음이 깨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얼음의 크기가 있어서 한 대 맞을 때마다 개미가 휘청휘청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피어올랐다.
"효과 죽이네! 계속 던져!"
더군다나 지금 얼음 덩어리를 맞고 있는 놈은 한쪽 다리에 창이 박혀 있어서 그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개마 기병 다섯은 개미 다리를 부숴라!"
정확히 다섯의 개마 기병이 달려오더니 그 기다린 창을 휘둘러 다리를 공격하자 개미가 후들후들 떨기 시작했다.
"다리 하나를 부러트리자!"
개마 기병이 개미 다리를 부러트리려고 기를 쓰고 창으로 공격하며 노력한 결과, 다리 하나가 아주 걸레 조각처럼 너덜너덜해졌다.
"슬슬 병정개미 무리가 도착할 시간이다."
일부 병력을 제외한 다른 해골 병사들이 앞으로 나오면서 병정개미 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온다!"
병정개미들이 달려오자, 범려는 망구다이를 시켜 몇 놈을 확실히 묶어두라고 일러두었다.
"다들 목숨 걸고 개미들을 잡아야 한다."
해골들은 결의에 찬 눈빛을 띠더니 녀석들을 향해 돌진했다.
"돌격!"
해골들과 병정개미들이 뒤엉켜서 생명력을 온존하는 방법이 아닌, 오로지 공격 중심으로 죽지 않을 정도로만 생명력을 남기는 방식을 선택했다.
빠각! 푹! 푹!
개미들의 단단한 껍질이 일부분 부서지면 해골 병사들은 그 부서진 틈을 거침없이 찌르며 개미들의 아픈 곳을 후벼 파면서 그 구멍을 넓혀 나갔다.
병정개미들은 해골들이 껍질이 깨진 곳을 집중 공격하면 그걸 막으려고 그 무서운 턱으로 반격했지만, 해골들이 포위 공격을 하기 때문에 개미가 왼쪽으로 돌면 오른쪽에서 후벼 파고, 오른쪽으로 돌면 왼쪽에서 후벼 팠다.
"정령 폭탄이나 먹어라!"
제마는 지금까지 언제 정령 폭탄을 써야 할지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개미들이 한곳에 모이자 폭탄을 거침없이 던지며 미소를 지었다.
콰쾅!
폭탄이 터지면서 개미굴을 일순간 빛에 휩싸이게 만들자 개미들이 몽땅 폭탄 범위 안에 걸려들었다.
"크윽!"
바로 근처에서 폭탄을 터트려서 그런지 풍압으로 인해 해골들이 전부 다 뒤로 날아가 버렸다.
다행히 정령 폭탄은 적군에게만 피해를 주고, 아군에게는 바람에 날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으악!"
범려는 폭탄이 터질 때 중심부에 있어서 해골마와 함께 땅바닥을 구르는 영광을 얻었다.
"젠장! 대열을 유지해!"
범려는 땅바닥을 구르면서도 해골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그에 해골들은 바닥을 구르다가도 벌떡 일어나 대열을 이루려고 발악을 하며 달려갔다.
헬렌은 정령 폭탄이 터지자 바로 캐스팅을 시작하더니 위력이 사라질 때쯤 토네이도 마법을 일으켰다.
"토네이도!"
휘이잉-!
작은 바람이 주변을 빙글빙글 돌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바람이 형성되었고, 근처에 있던 개미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토네이도의 안에는 칼날같이 날카로운 바람들이 형성되어 있어서 아무리 단단한 껍질을 가진 개미들이라도 예기가 가득 서린 검으로 베이는 것처럼 서걱서걱 썰려 나갔다.
"로즈! 전체 힐!"
"응!"
파티 전원의 생명력을 크게 회복시키는 힐을 한 번 시전하니 생명력이 떨어져 있던 해골 병사들이 단숨에 회복해버렸다.
"이걸로 격노 상태도 풀렸네."
전체 힐을 통해서 범려의 생명력이 모두 다 회복돼버렸다.
"다들 다시 준비해! 그리고 제마야, 폭탄을 멋대로 던지지 말고 내가 던지라고 하면 그때 던져."
"알았어……."
제마는 정령 폭탄에서 아군들을 날려 버리는 풍압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방식은 전과 동일! 토네이도가 끝나면 바로 공격한다!"
토네이도가 돌고 있는 사이, 얼마 안 되는 짧은 휴식을 취하고 토네이도가 끝나자 개미들에게 바로 달려들었다.
병정개미들은 이미 생명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태였기에 해골들이 몇 대 때리지도 않았는데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버렸다.
"남은 녀석들을 처리한다!"
남은 개미들이라고 해봐야 근위병밖에 없었다.
해골들이 공격하는 근위병은 이미 한쪽 다리가 작살이 나서 한쪽으로 주저앉아 허우적대고 있었다.
"올라타라!"
몸이 기울어진 개미를 잡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투석기에서 날리는 얼음 덩어리를 계속 맞더니, 그 커다란 개미의 몸이 축 늘어졌다.
"다음!"
해골들이 하나 남은 개미를 향해 우르르 달려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개미 다리를 부러트리는 일이었다.
"다리를 분질러라!"
퍽! 퍽! 퍼석!
해골들이 다른 곳은 안 때리고 오로지 다리만 계속 공격하자, 개미가 다리에 통증이 느껴지는지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아니, 저게 도망치려고 하네! 망구다이!"
범려는 재빨리 망구다이로 하여금 올가미를 던져서 개미 다리를 붙잡아 도망을 못 가게 잡아두었다.
키아악!
개미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고 발악했지만, 모든 다리가 모조리 분질러지면서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려앉고 말았다.
"올라타라!"
해골들은 근위병 개미 위에 올라타더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로 열심히 개미를 찍어댔다.
"으하하! 별거 아니군."
겨우 다리 몇 개 분질렀을 뿐인데, 근위병 개미는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죽고 만 것이다.
중간 보스급 몬스터를 잡아서 뭔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근위병 개미는 아이템이나 돈, 그 어느 것도 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주는 거지 개미라니!"
파티원들이 힘들게 고생해서 잡았는데 아이템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 그에 범려는 근위병 개미의 시체를 발로 차며 분풀이를 했다.
"쳇! 여왕개미나 잡으러 가자!"
곧 범려는 일행들을 이끌고 개미굴 깊숙이 들어갔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왕개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왕개미다."
근위병 개미와 비교해서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은 크기를 가진 여왕개미이지만, 풍기는 느낌이 무척 달랐다.
"후! 여왕개미라서 그런지 상당히 덩치도 크고,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네. 주변에 깔려 있는 저 알들은 뭐냐?"
여왕개미의 근처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알들이 엄청나게 깔려 있었다. 여왕개미는 범려가 도착한 순간에도 알을 낳고 있었다.
"다행히 혼자 있어."
범려는 혼자 있는 보스가 더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러 마리를 신경 쓰는 것보다 단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게 편했다.
"형님, 이제 여왕개미를 잡아요."
"아니. 먼저 저기 보이는 알들을 없애야 돼. 저기서 개미라도 튀어나오면 어쩔 거야."
"아! 그러네요, 형님."
"제마야, 네 폭탄을 쓸 때가 찾아왔다. 한 번에 저 알들을 대거 쓸어버리는 거야."
"알았어. 개미 알 정도는 깨끗하게 쓸어버릴 수 있어."
썬더스톰의 위력과 동급인 정령 폭탄이다. 겨우 알들을 정리하는 데 폭탄을 쓰기는 뭣하지만, 한순간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히는 데는 정령 폭탄만 한 것도 없다.
"먼저 폭탄을 던지고 시작한다. 한 번 던지고 나서 알들이 정리가 되면 그때 해골들을 끌고 전투를 시작할 거다. 취선, 네가 앞장서라. 이럴 때 내가 판금 갑옷을 못 입는다는 게 아쉽다."
범려는 가죽 갑옷을 입고 있어서, 앞으로 나섰다가는 몇 대 맞고 죽을 확률이 100퍼센트였다.
"취선이 앞으로 나간 뒤에는……."
뒤이어 범려가 작전을 설명하자 다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알겠지?"
"네!"
"응!"
범려는 작전을 모두 하달하고는 여왕개미가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제마야, 시작하자."
"알았어."
제마는 인벤토리에서 정령 폭탄을 하나 꺼내더니 여왕개미가 있는 자리에 폭탄을 던졌다. 그러자 강렬한 섬광과 함께 주변에 있던 개미 알들이 모조리 불타 없어져 버렸다.
"역시 알들은 깨끗이 지워지는군."
알들이 사라진 텅 빈 공간에 여왕개미 혼자 서 있었다.
끼아아악!
-개미 알들이 모두 사라지자, 여왕개미가 슬픔의 비명을 외칩니다.
-여왕개미의 공격력이 10% 증가합니다.
"제길! 알들을 괜히 다 부숴버렸나."
범려는 전투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제마에게 폭탄을 던지라고 말한 것인데 이런 식으로 메시지가 나온 것이다.
"범려야, 메시지에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알을 그대로 놔뒀어도 거기서 나온 개미가 우리를 괴롭히는 건 매한가지야!"
엎치나 뒤치나 결과는 같다면서 제마가 범려를 다독거려 주었다.
"그래. 알을 깨고 나온 개미들을 모두 상대하는 것보다 여왕개미 하나 상대하는 게 낫지."
로즈가 범려 편을 들어주자 다들 사람들도 모두 그에 수긍했다.
"그래. 여럿보다 그냥 하나만 상대하는 게 편하지."
"다들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을 시간 없어! 여왕개미가 온다!"
끼아아악!
여왕개미는 이상한 비명을 지르면서 달려왔고, 취선이 앞서 맹렬히 달려가더니 여왕개미 앞을 가로막았다.
"네 상대는 나다!"
취선은 있는 힘껏 도끼를 휘두르며 여왕개미를 공격했고, 해골들은 여왕개미를 넓게 포위해버렸다.
"해골들, 공격!"
포위망이 형성되자, 범려는 여왕개미를 향해 공격 명령을 내렸다.
"회색의 빛!"
범려가 여왕개미를 잡는 데 공을 들이고 있는 사이, 헬렌은 뒤에서 열심히 얼음 덩어리를 만들고 있었다.
"차라리 싸움 시작하기 전에 얼음 덩어리를 만들라고 하지, 왜 지금 만들라는 거야."
헬렌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한쪽 구석에서 계속 마법으로 얼음 덩어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워터 볼! 프리징!"
헬렌이 얼음 덩어리를 하나 만들면, 몇 명의 해골들이 옆에서 준비하고 있다가 얼음 덩어리를 투석기 근처에 가져다 놓았다.
헬렌이 열심히 얼음 덩어리를 만들고 있을 때, 범려는 유일한 공격 스킬을 난발하면서 여왕개미를 노리고 있었다.
"회색의 빛!"
번쩍! 번쩍! 쾅!
무기에 붙어 있는 옵션이 발동되면서 여왕개미 머리 위로 떨어졌지만, 그것 가지고는 데미지를 크게 입혔다고 볼 수가 없었다.
"벼락이랑 빛의 화살이 떨어졌는데, 여왕개미한테는 새 발의 피구나."
지금 해골들이 계속 공격하고 있음에도 여왕개미의 생명력은 많이 줄어들지 않았다.
"크윽!"
"힐! 힐!"
반대로 취선은 여왕개미의 공격을 당하면서도 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로즈가 힐을 해주는 덕에 가능한 거지만, 여왕개미의 공격력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