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미스릴 무구
제마가 한창 철을 미스릴로 변환하고 있을 때, 범려는 바론에게 찾아갔다.
"음, 범려 자네가 이곳에 웬일인가? 철을 샀으니 더 이상은 이곳에 나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다름이 아니라, 전에 저에게 말해주셨던 대장장이를 소개받고 싶습니다."
"아, 내 동생을 말하는군. 하긴 그 많은 철을 사기만 했지, 대장장이를 소개시켜 주지 않았구먼. 잠시만 기다리게."
바론은 잠시 어디론가 가더니 황급하게 범려에게로 돌아왔다.
"후! 이제 가지, 화장실이 급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하하하!"
바론은 멋쩍은 웃음을 보이면서 앞장섰다. 범려가 그 뒤를 따라가는 사이, 제마한테서 귓속말이 날아왔다.
[범려야, 미스릴로 다 변환했다.]
"오, 그럼 해골들 시켜서 나한테 보내."
[이미 말해놨어. 해골들에게 너희 주인에게 가라고.]
"고맙다, 친구."
[정령석이나 줘. 다른 건 필요 없으니까.]
"물론이지."
범려는 해골들이 어떻게 주인을 찾아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 저 멀리서 해골들이 미스릴을 한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덜그럭덜그럭.
어제는 무겁디무거운 철이었다가 오늘은 그 철의 반의 무게도 안 되는 미스릴로 바뀌어서 그런지 수레를 끌고 오는 속도가 배 이상 빨라져 있었다.
"팔두마차."
해골들이 해골마를 앞세워서 수레를 끌고 오는 모습이 마차처럼 보였는데, 각 수레를 8필이나 되는 해골마들이 끌고 있었기에 빠른 속도로 범려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음!"
바론은 해골마들이 수레를 끄는 모습보다는 그 수레에 실려 있는 금속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저건 미스릴?"
"네, 미스릴 맞아요."
"어제 자네가 구입한 건 그냥 철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미스릴로 바뀔 수 있는 거지?"
"그건 저만의 비밀입니다."
"음, 아무래도 자네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
바론은 어제의 철이 오늘의 미스릴이 되어 돌아온 것이 정말 신기하게 여겨졌다.
"여기가 내 동생이 머물고 있는 대장간이지."
"대단한 열기군요."
대장간에서는 엄청난 열기가 바깥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범려는 대장간의 열기에 몸이 후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반트! 반트 있나!"
"바론 형님?"
대장간에서 모습을 드러낸 드워프는 바론의 친동생 반트였다.
"형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 내가 자주 찾아와야 하는데 늦어서 미안하다."
"무슨 그런. 제가 자주 찾아가야지요."
두 형제는 서로 얼싸안으며 그동안 못 나눴던 형제의 정을 나누고는 범려에게 소개를 시켜 줬다.
"여기는 반트. 내 동생이지."
"반갑습니다. 범려라고 합니다."
"반갑네. 반트라고 하네."
반트는 범려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뒤에 있는 미스릴에 힐끔힐끔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 반트를 슬쩍 본 범려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미스릴에 시선을 자꾸 두시는군요."
"어험! 대장장이로서 귀한 금속에 눈길을 한번 준 것뿐이네. 다른 뜻은 없네."
"정말 눈길만 준 것입니까? 저걸 가지고 뭘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은 안 해보시구요?"
"어험!"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반트는 대답을 회피했지만,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가진 드워프라면 저 많은 미스릴을 가지고 뭔가 하나 만들어 보고픈 욕구가 가슴 깊은 곳에서 무럭무럭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저는 반대로 반트 님에게 저 미스릴로 작은 부탁을 드리려고 왔는데, 별다른 관심이 없으시니 제가 물러나야겠군요."
"부탁? 무슨 부탁인가? 저 미스릴을 가지고 무슨 부탁을 하려고 온 건가?"
반트는 아까와는 다르게 부탁이라는 말에 얼굴 표정부터 바뀌면서 범려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다른 게 아니라, 저걸 가지고 무구를 만들어주셨으면 해서 말입니다."
"무구?"
반트는 뒤에 있는 미스릴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무구를 만들어달라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저 정도면 웬만한 병사들을 무장시켜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누구에게 입힐 무구인가?"
"저기 보이는 해골들에게 입힐 무구입니다. 정 궁금하시면 저들이 어떤 무기를 쓰는지 보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
"보고 싶네."
범려가 손가락을 살짝 튕기자, 아무것도 입지 않은 해골들이 순식간에 장비를 착용하면서 아주 무서운 병사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럴 수가……."
반트와 바론은 처음으로 해골 병사들의 모습을 봤고, 그 위용에 경악했다.
"이들에게 무구를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하하하!"
해골 병사들이 미스릴 무기와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반트는 왠지 웃음이 나왔다.
"왜 해골들을 보고 웃으시는 겁니까?"
범려는 반트가 웃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미스릴은 은처럼 신성한 금속이네. 그런데 저런 언데드들이 이걸 입고 무기를 휘두른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하하하!"
"후! 겨우 그런 것 때문이라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제 해골들은 신성한 기운에 망가지지 않으니까요."
"뭐야? 신성한 기운에 망가지지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 해골 병사들에게만 해당되는 특권입니다. 정 궁금하시면 확인해보셔도 좋습니다."
"좋아! 내 당장 확인하지."
반트는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해골 하나를 미스릴 위에 올려놓았다.
"신성한 금속이라고 불리는 미스릴 위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언데드는 없다."
"……."
미스릴 위에 올라간 해골은 아무런 반응 없이 그냥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고, 가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지금 자신이 뭘 하는 건지 궁금해 하기도 했다.
"뭐지? 왜 아무런 반응이 안 보이는 거지? 분명 미스릴 위에 올라가면 언데드들이 고통에 몸부림쳐야 정상이거늘."
"에휴! 이제 믿어지십니까?"
범려는 한숨을 쉬면서 물었지만, 반트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미,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군."
입을 먼저 연 드워프는 반트가 아니라 옆에 있던 바론이었다.
"이제 반트 님도 믿으시겠습니까?"
반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고, 범려는 다시 해골들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보통 언데드가 아니었어. 그래, 이제 내가 뭘 해주면 되는가."
반트가 범려에게 물었지만, 돌아올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저들에게 맞는 무구를 만들어주십시오. 각 병사들의 병과마다 무기가 다르니 각자 다르게 준비해주시면 됩니다."
"좋아. 그럼 저들을 이곳에 두고 가게. 그리고 무구가 완성되는 대로 저들과 같이 딸려 보내지."
"알겠습니다."
범려는 해골들을 놔두고 대장간을 나왔고, 바론은 동생의 일을 도와야 할 것 같아 대장간에 남았다.
"이야, 해골들 없이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썰렁해……."
해골들과 헤어진 지 아직 1분도 되지 않았건만 범려는 뒤가 서늘하게 느껴지는 기분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무구가 완성되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동안은 혼자서 사냥해야겠군."
범려는 섬전의 창을 꺼내더니 어디 사냥 갈 곳이 없나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드워프 도시가 있는 곳은 지하 필드와는 엄연히 다른 곳이다.
"어디로 가야 사냥터가 나오지?"
"형님!"
범려가 잠시 사냥터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취선이 달려오고 있었다.
"음? 취선아, 무슨 일인데 그렇게 헐레벌떡 달려오는 거야?"
"형님! 빅뉴스… 빅뉴스예요. 여기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게 몬스터예요."
"으잉? 몬스터? 여기 지하에 몬스터가 살 만한 데가 어디 있어? 웜 같은 지렁이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에요. 그것보다 더 대단한 거예요. 지하 세계가 펼쳐져 있다고요."
"지하 세계?"
범려는 취선의 말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직까지 『판게아 월드』를 하면서 지하 세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취선아, 나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아니에요-! 진짜 있다니까요!"
취선은 흥분을 한 상태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범려를 붙잡고 도시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
"저걸 보세요!"
"아니!"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정말 지하 세계였다. 아직 드워프들이 세상 바깥으로 나온 게 아닌 이상 이건 진실이었다.
"『판게아 월드』에서 지하 세계까지 구현해놓다니."
더군다나 드워프 도시가 있는 곳은 지상과 지하 세계를 연결하는 중심점에 위치해 있어서, 만약 유저가 이곳을 찾기 시작하면 지하 세계는 새로운 사냥터가 되는 곳이다.
"형님, 이제 믿으시겠죠."
"이건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
"그리고 또 하나 찾은 게 있어요. 지상으로 가는 길이 있어요. 광산 일 그만두고 이틀 동안 조사해본 결과 알아낸 거예요."
"대단하구나, 취선아."
범려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크게 칭찬해주었다. 그러자 취선은 기분이 좋은지 몸을 으쓱거렸다.
"형님, 둘이 오랜만에 사냥이나 할까요?"
"난 한동안 해골들 없이 사냥해야 돼."
"그런 거라면 상관없어요. 어차피 여기 지하 세계 필드 몬스터만 잡으면 되거든요."
"던전이 아니라면 일반 필드는 상대가 되겠지."
혼자서 사냥하게 되면 지루하기만 하고 그리 재미가 없는데, 취선과 같이 사냥을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형님, 가요."
취선과 같이 지하 세계로 해골마를 타고 내려오자, 정말 지상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지하는 풀이 아니라 무슨 이끼 같은 게 나는구나."
주변에는 지상의 식물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이끼 식물들이 많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지하 세계가 불빛이 없어서 어두울 것 같았는데, 주변 곳곳에 흐르는 용암의 흔적들이 불빛을 대신하고 있었다.
"형님, 저기 보세요."
취선이 가리킨 것은 지하에서 살고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저건 뭐지? 공룡?"
"공룡 비슷한데요."
지하에서 사는 파충류 같은 건데, 상당히 덩치가 크고 네발로 기어다는 놈과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놈들도 있었다.
"두 발로 가는 것들은 랩터 같은 공룡인데."
"그러게요."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일단 지하 세계는 뭐 하나 지상과 같은 게 없었다.
"후! 사냥을 한번 해볼까?"
"네, 형님."
두 사람이 해골마를 타고 나타나자 제일 먼저 접근한 몬스터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가진 랩터였다.
키아악-!
"반응도 빠르네. 우리가 이곳에 내려오자마자 눈길을 주다니. 어디 한번 내 창에 꿰어봐라!"
범려가 섬전의 창을 힘차게 내지르자 창끝이 파공성을 내면서 랩터의 살가죽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라? 스쳤어?"
랩터의 기민한 행동에 범려의 창 공격이 빗맞아버린 것이다.
키아악!
"형님! 뒤!"
뒤에서 랩터가 기습적으로 달려들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자, 범려는 해골마를 툭툭 건드리더니 뒷발질로 랩터를 차버렸다.
쿵!
"후후후! 별것도 아닌 게."
범려는 환영섬 스킬을 쓰지 않고 순수하게 해골들에게 배운 창술로만 상대하고 있었다.
"덤벼라! 이 도마뱀 녀석들아!"
"태풍 몰아치기!"
거대한 도끼가 거센 바람을 일으키면서 범려가 몰아넣은 랩터들을 쓸어버리자, 일거에 랩터들의 생명력이 크게 떨어졌다.
"역시 형님! 대단하세요. 이것들 레벨이 160이 다 되는데, 단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싸우시다니."
"진짜 160레벨 몬스터야?"
범려는 취선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랩터들의 레벨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어도 자신과 동급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몇 레벨 위의 몬스터라는 것이다.
"내가 능력이 좋은 것보다는 이 창의 공격력이 좋아서 그럴 거야."
"아니에요. 형님 창술이 얼마나 대단했는데요. 누가 가죽옷만 입는 해골 제작자라고 생각하겠어요. 어디 판금 입는 창기사로 생각하지."
"하하하! 사람 비행기 태우네."
취선의 아부에 범려는 기분이 좋았지만, 자신은 판금이 아닌 가죽이라서 랩터에게 치명상이라도 입게 된다면 생명력이 크게 깎인다.
"계속 사냥해볼까."
범려는 창과 활을 번갈아 써주면서 주변의 몬스터들을 잡아나갔고, 어느새 몬스터 무리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음? 형님, 벌써 몬스터들 다 잡았는데요."
"뭐가 이리도 싱거워."
"그거야 형님이 혼자서 활 쏘고 창으로 쓸어버리고 하니까……."
취선은 정작 자신이 한 건 특별하게 없다 보니, 스스로도 바바리안이 맞는 건지 의심이 생길 정도였다.
"그래도 레벨 몇 단계 위의 녀석을 잡아서 그런지 경험치는 빨리 오른다."
"저도 그래요."
취선은 범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괜찮은 경험치가 오르고 있었다.
"형님, 저희 둘이서 던전에 한번 가볼까요?"
"던전? 힘들지 않겠어? 여기 몬스터 레벨이 상당해 보이는데."
범려는 드워프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랩터도 레벨이 160이 되는데, 더 깊숙이 들어가면 이보다 더한 것들이 널리고 널렸으리란 생각에 왠지 조심스러워졌다.
"이 이상 안으로 진입하거나 던전을 찾기 위해서는 해골들이 있어야겠는데."
"형님, 병사들 지금 어디 있는데요?"
"미스릴 무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해놓은 대장장이한테 전부 가 있어."
범려는 지금 돌아가서 해골들을 조금이라도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해골들은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큰 힘을 낼 수 있기에 오히려 적은 숫자를 움직이는 것은 손해다.
"형님, 그럼 어떻게 하실 거예요? 병사들이 거기 있다면 지금 던전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뭐, 해골들이라고 해서 던전을 쉽게 찾는 것도 아니야. 그냥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뿐이지."
범려에게 있어서 안전은 별로 의미가 없는 단어였다. 언제나 전투를 할 때는 해골들을 지휘하면서, 혹시 자신의 눈 바깥에 나가 죽는 해골이 없는지 긴장해야 한다. 어쩔 때는 범려 혼자 있는 게 긴장감이 덜하기도 하다.
"급할 건 없어. 여기에 유저들이 나타난 것도 아니니 말이야."
"그렇긴 하죠."
범려는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는 천천히 해골마를 타고 가면서 어디 특별한 건물이나 동굴, 혹은 길이 있는지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 * *
"여기가 어디지? 여왕개미를 잡고 땅이 무너지는 바람에 겨우 바위 틈 사이에 끼어 목숨을 건지기는 했는데."
범려 일행 말고도 여왕개미를 잡은 유저가 나타났고, 마찬가지로 아이템도 하나 얻은 상황. 하지만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개미굴에서 겨우 목숨만 건진 유저는 지하 세계로 떨어지고 말았다.
"『판게아 월드』에서 이런 곳은 본 적이 없는데."
"으악!"
한 사람이 옆으로 또 떨어지더니 지하 세계에 온 사람이 늘어났다.
"강토야!"
"크윽! 흑검 형님, 살아 게셨군요."
지하 세계에 새롭게 찾아온 유저는 둘. 한 사람은 흑검이라는 유저이고 다른 한 사람은 검사 강토였다.
"흑검 형님, 그런데 여기는 어디죠? 『판게아 월드』를 1년 가까이 했는데 이런 곳은 처음 보는데요."
"땅속으로 들어왔으니 아마도 지하 세계가 아닐까?"
"지하 세계요? 『판게아 월드』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는데요."
"당연하지. 생각해봐. 우리가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면 우리 말고 이곳을 아는 유저가 하나라도 있을까?"
"하긴 저희가 처음이라면 아무도 모르는 게 당연하겠군요."
강토가 지금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 때, 흑검은 주변에 뭐가 있는지 재빨리 확인했다.
"이건 뭐, 공룡 시대하고 분노의 아만 지역을 섞어놓은 것 같은데요."
지하 세계는 빛이 그리 밝지 못해 식물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끼 종류는 존재하고 있었고, 동물들은 공룡들처럼 크고 거대 파충류만이 눈에 띄었다.
특히 공룡 같은 것들은 그나마 크기가 좀 있는 것들만 해당된다.
"흑검 형님, 저쪽을 보십시오!"
강토가 가리킨 곳은 해골마를 타고 있는 두 사람이 랩터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장면이었다.
"해골마!"
『판게아 월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동영상으로 본 해골마였다.
특히 해골 제작자의 해골마가 유명하다 보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저 사람 혹시 해골 제작자일까요?"
"아닐 거야. 해골 제작자라면 항상 해골들을 끌고 다닌다고 했어. 그런데 저쪽은 딱 2명이잖아. 해골 제작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지."
흑검과 강토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범려가 해골 제작자라는 생각을 아예 지워버리고는 멀리서 지켜보았다.
"강토야, 저들을 죽이면 해골마를 드롭할까?"
"글쎄요. 해골마가 아이템인 건 맞는데, 죽으면 떨어트리는지는 모르겠어요."
"나 저 해골마가 탐이 나는구나. 그렇다고 해골마를 돈 주고 사기는 싫다."
흑검은 범려와 취선이 타고 있는 해골마를 보면서, 그걸 가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후후후! 확실히 아이템인 이상 죽는다면 한 번은 드롭하겠죠."
강토 역시 해골마가 탐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흑검은 유저 전체 랭킹 중에서 30위 안에 드는 강자이고, 강토도 30위 랭커였다.
"역시 강토가 내 마음을 잘 아는구나."
해골마를 드롭시키기 위해 둘은 모종의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르고 범려와 취선은 랩터를 사냥한 후에 숨겨진 던전을 찾으러 간다며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흑검 형님, 두 사람이 따로 떨어졌습니다."
"오, 떨어졌다. 그럼 한 녀석씩 잡자."
범려와 취선이 던전을 찾으려고 따로 떨어져 수색을 시작하자, 흑검은 두 눈에 이채를 발했다.
"누구 먼저 잡을까요?"
"저기 옷이 허름한 저놈부터 잡자."
흑검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유저는 바로 범려였다. 약간 너덜너덜해 보이는 회색 망토와 사슬 갑옷도, 판금 갑옷도 아닌 가죽을 덧붙인 것 같은 가죽옷들.
"한눈에 봐도 거지가 따로 없겠는데요."
"그래도 저 녀석이 들고 있는 창은 상당히 멋진데."
범려가 들고 있는 섬전의 창은 아주 심플한 스타일이었다.
"저도 저 창이 녀석한테 어울리지 않게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하는 김에 저 창도 빼앗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입니다, 흑검 형님."
"가자! 녀석을 잡으러."
둘은 범려를 죽여 그 아이템을 빼앗기 위해 은밀히 움직였다.
"하아암! 그런데 어디에 숨겨진 던전이 있는 거지?"
범려는 지금 취선과 따로 떨어져서 숨겨진 던전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던전의 입구라고 생각되는 곳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음, 이런 곳에 갈대라니……."
빛이 잘 들지 않는 지하 세계에서 황금빛 물결의 갈대밭이 눈에 확 들어왔다. 신기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약간 찝찝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약간 위화감이 들지만, 던전 하나 찾으면 일주일 동안 폭렙이니까."
레벨을 올리고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던전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갈대밭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억누르고 범려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휘이잉-
지하 세계에도 지상처럼 바람이 불었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갈대가 흔들릴 때마다 사라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
던전을 찾기 위해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던 범려는, 갈대밭 틈 사이로 조심스럽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두 인영을 느낄 수 있었다.
"뭐지? 여기 사는 NPC? 아니면 몬스터?"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가오는지 범려가 신중히 주변을 살피며 가는데도 잘못했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뻔했다.
스르릉.
검이 뽑히는 소리가 미세하게 고막을 두드리자 범려는 섬전의 창을 굳게 쥐고 자세를 잡았다.
"아무래도 여기 사는 몬스터 같은데."
활을 꺼내 공격할 수도 있지만, 은밀히 공격해오는 스타일의 몬스터라면 화살 공격을 당하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수 있었다.
"뭐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한 방에 끝내주마."
범려는 섬전의 창에 기록된 스킬 환영섬을 쓰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말을 넘어트려!"
"사람?"
범려가 황급하게 창을 내질렀지만, 두 인영의 동작이 조금 빨랐다. 그들은 해골마를 향해 몸통 박치기를 해 말을 넘어트렸다.
"젠장!"
말이 넘어지는 느낌을 받자 범려는 다급하게 말에서 뛰어 내렸다.
"누구냐!"
"널 잡으러 온 사람."
챙! 챙!
범려를 잡으러 왔다는 두 사람은 강토와 흑검이었다.
둘 다 검을 들고 있었지만, 검사의 모습으로 보이는 이는 강토였고, 흑검은 검사라기보다는 버서커처럼 살짝 광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해골 제작자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해골 제작자였군."
"내가 해골 제작자가 맞지만, 뭣 때문에 공격을 하는 거지?"
"PK에 뭐 다른 거 있나?"
범려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쥐고 있는 창으로 시선이 갔다. 누가 봐도 고급스런 아이템으로 보이는 섬전의 창이었다.
"참 나, 좋은 아이템을 먹어도 문제구만."
"흐흐흐! 이제 눈치 챈 모양이군."
범려는 눈앞에 있는 상대가 들고 있는 무기를 보더니 경악했다.
"댁들 무기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다른 걸 탐내다니. 욕심이 과하군."
"그렇지. 이건 여왕개미를 잡아서 나온 아이템이야. 덕분에 굴이 무너져서 다른 동료들은 다 죽고 우리만 살아남았지."
여왕개미를 잡은 사람들이 눈앞에 또 있었다. 그것도 순수하게 유저들만의 힘으로 잡은 사람들이다.
범려는 창을 크게 한 번 휘두르더니 눈앞에 있는 갈대들을 잘라내 버리고는 시야를 넓혔다.
"이제야 얼굴이 좀 보이는데… 넌? 불꽃의 검사 강토."
갈대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던 얼굴이 보이자, 범려는 토너먼트할 때 봤던 유저임을 알게 되었다.
"쳇! 내 얼굴을 알아보다니. 그렇다면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군."
강토가 돌진을 해오자, 범려는 섬전의 창을 그대로 내질렀다.
"헛!"
"그냥 한번 맞아주지."
범려가 방금 공격을 성공시켰으면, 치명타 공격이 터져서 강토의 생명력이 주르륵 빠졌을 것이다.
"PK를 하러 왔으면 어서 공격해야지, 그렇게 멍하니 있으면 오히려 나한테 죽을걸."
"흥! 해골마와 활이 없으면 너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강토는 범려의 전투 스타일이 활을 들고 쏘는 궁수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과거의 이야기다.
"푸훗! 내가 활을 다루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날 만만하게 보면 곤란하지."
범려는 두 사람을 향해 살짝 비웃어주면서, 창으로 녀석들을 꺾고 싶다는 투지를 불태웠다.
"으아-!"
흑검이 괴성을 지르면서 포효하더니, 두 눈이 붉게 충혈되고 온몸의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버서커?"
"해골 제작자가 눈치도 빠르군. 그래! 난 버서커! 즉, 광(狂)전사다. 다른 전사들이 쓰는 버서커와 다르게 난 엄청난 힘을 내면서도 이성을 유지하지."
즉, 몸은 미쳐 있으나, 머리는 미치지 않은 상태이다.
"골치 아픈 녀석들이군."
"간다, 해골 제작자!"
챙! 챙! 캉!
버서커로 변한 흑검은 대검을 휘두르며 강력한 일격으로 범려를 몰아세우고, 강토는 옆에서 협공을 하며 공격해왔다.
"쳇! 환영섬!"
섬전의 창이 수십 갈래로 갈라지며 눈앞에 보이는 두 사람을 향해 덮쳐 버렸다.
"우욱!"
범려의 반격이 통했는지 두 녀석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으면서 뒤로 물러섰다.
-정당방위가 성립되었습니다.
정당방위가 성립되자 흑검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이 이상 거칠 게 없어진 것이다.
"이래도 내가 만만해 보여?"
"흥! 혈검!"
흑검이 들고 있는 검이 핏빛으로 바뀌면서 동시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
범려는 상대의 검이 붉게 변하는 것을 보고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언뜻 보아도 저런 기술을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거나 받아라! 분노의 혈검이다!"
쾅!
혈검을 땅바닥으로 내려치니 엄청난 압력으로 인해 땅이 쩍 하고 갈라졌다.
"헛!"
범려는 땅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 갈라진 틈 사이로 붉은 화염이 솟구치더니 일정 지역을 다 폭발시켜 버렸다.
"해골 제작자, 까불지 말고 조용히 죽어라."
"엿 같은 소리!"
범려가 대답과 동시에 눈부신 속도로 창을 내질러 위협하자, 흑검은 자신의 대검으로 창 공격을 막으면서 여유 있게 웃어주었다.
"겨우 이 정도냐?"
"회색의 빛!"
번쩍! 쾅!
창을 그대로 대고 있는 상태여서 흑검은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크윽!"
"좀 아픈 공격이었나 보군."
"어디서 흑검 형님을!"
옆에 있던 강토가 끼어들더니 맹공을 퍼부으며 범려를 몰아세웠다.
캉! 캉! 캉!
강토는 원래 직업이 검사라서 그런지 검술이 아주 섬세하고 날카로웠다.
"열풍난무(熱風亂舞)!"
강토의 검끝에서 불길이 일어나더니 그 불길이 춤을 추듯이 범려를 향해 덮쳐 왔다.
"으윽!"
섬전의 창으로 강토의 공격을 일부 막아내지 않았다면 범려는 완전히 타 죽었을 것이다.
"쳇! 살아남은 건가."
"뒤지는 줄 알았네."
몸에 약간 그을린 흔적이 남은 범려는 잔여 생명력을 확인했다.
'저 불춤 한 방에 생명력 50퍼센트가 날아가 버렸어. 조심해야겠는데.'
"해골 제작자! 곱게 죽어라!"
"미친놈!"
범려는 절대로 죽을 생각이 없다. 특히 녀석들 좋으라고 죽어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하압!"
창을 어지럽게 움직이면서 둘을 압박해나가는 범려. 세간에 알려진 해골 제작자의 이미지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모습이었다.
"으랴!"
"아이템 내놔!"
2 대 1의 싸움인데도 전혀 밀리지 않는 당당함을 보이는 범려의 모습에 두 사람은 서서히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보통 놈이 아니야.'
'스킬 딱 두 번만 쓰고서 우리 둘을 이렇게 압박하다니.'
"둘 다 벌써 지친 거야?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범려 역시 심적으로 지쳐 있었지만, 저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필패(必敗)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서 덤벼라, 이것들아! 나도 힘들다.'
"받아라!"
흑검이 혈검을 치켜들어 범려를 향해 던지며 스킬을 외쳤다.
"혈폭(血爆)!"
콰쾅!
검에 묻어 있던 피가 폭발하면서 범려를 저 멀리 뒤로 날려 버렸고, 그로 인해 범려의 생명력이 한없이 깎여 나갔다.
"크윽! 내 생명력이 적기는 적구나……."
범려가 공격을 당한 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횟수인데, 이미 생명력은 30퍼센트로 떨어졌고 반대로 저들의 생명력은 반이 넘게 남아 있었다.
"하하하! 해골 제작자, 창 실력은 뛰어나지만 생명력은 형편없구나."
"후후후! 너희들은 이제 끝이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끝나는 건 우리가 아니라 너다."
"회색의 빛!"
전방을 향해 눈부신 섬광이 터지며 흑검과 강토의 시야를 일시적으로 빼앗았고, 그 틈을 타 범려는 해골마가 있는 곳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크윽! 이놈!"
"창술을 배울 때 말 위에서 배워서 말이야. 최소한 해골마 위에는 올라가야 하거든."
넘어져 있던 해골마는 어느새 벌떡 일어나 자세를 잡으며 어서 자신의 등 위로 올라타라는 듯 기다리고 있었다.
"으라차차!"
재빨리 말 위로 올라탄 범려는 창을 빙그르 돌리면서 외쳤다.
"하하하! 너희들은 다 죽었어. 이랴!"
"죽어라, 이놈!"
"죽어야 할 녀석은 내가 아니라 너다!"
푸욱!
범려의 창이 흑검의 가슴 한복판에 꽂히자 녀석의 생명력이 무지막지하게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말 위에서 창을 휘두르게 되면 속도가 더 빨라지고, 높은 곳에서 내려치기 때문에 그 위력은 사뭇 대단했다.
"흑검 형님!"
"날 노린 대가는 오로지 죽음뿐이다."
"난 광(狂)전사! 이따위에 죽을 만큼 약하지 않아!"
가슴에 창이 꽂혀 있는 상태에서 대검을 휘두르자 범려는 황급하게 창을 회수해 녀석의 공격을 막아냈다.
캉! 캉! 캉!
방어를 무시한, 광전사만이 할 수 있는 공격 방식이다.
"하압!"
"이야압!"
"범려 형님!"
멀리서 해골마를 달리며 황급히 달려오는 취선이 양손 도끼를 흑검을 향해 던졌다.
요란한 소리를 흘리며 날아가는 도끼는 정확하게 흑검에게로 날아갔다.
"이크!"
흑검은 범려와 한참 싸우다가 날아오는 도끼를 보곤 다급하게 뒤로 몸을 빼어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취선은 범려와 흑검이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말에 탄 상태에서 자신의 도끼를 주워 범려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저 멀리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와서 달려와 봤더니 이것들은 뭡니까?"
"날 죽이려는 것들이지."
"그럼 용서가 안 되는 것들이군요!"
취선은 오래 생각지 않고, 바로 달려들어 강토를 향해 무식한 도끼를 휘둘렀다.
캉!
"이런, 무슨 힘이……!"
순수하게 힘으로만 따진다면, 바바리안이라는 직업이 전사 계열 중에서 최강이다.
"분노의 일격!"
"열풍난무(熱風亂舞)!"
두 스킬이 충돌하자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지며 두 전사 계열 직업끼리 피 튀기는 전투가 시작됐다.
"우리도 신나게 놀아볼까?"
범려는 흑검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취선이 왔으니 이제 상황은 역전되었다.
둘이서도 범려를 못 잡아서 고생하고 있었는데, 취선으로 인해 이젠 흑검 혼자서 범려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환영섬!"
"피의 분노!"
그는 별수 없이 큰 기술, 작은 기술 가리지 않고 범려를 잡기 위해 몰아붙였지만, 그 날카로운 창술에 번번이 막히면서 점점 지쳐 갔다.
"회색의 빛!"
"크윽!"
치열한 싸움 끝에 흑검이 범려의 손에 죽으면서 시체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흑검 형님!"
"너 혼자 남았구나!"
범려가 강토를 향해 외치며 득의양양한 웃음을 흘리면서 섬전의 창을 겨눴다.
"잘 가라, 불꽃의 검사 강토!"
푸욱!
섬전의 창이 강토의 몸을 꿰뚫자 생명력이 0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취선이 강토의 목을 쳐 버렸다.
"다음에 덤비면 이렇게 편하게 안 죽인다."
죽어버린 시체 앞에서 말을 해봤자 알아듣지 못하지만, 분노에 찬 취선은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형님이나 저나 머리색이 빨간색이네요."
"에휴! 유저를 죽였으니 그렇지. 어서 머리색을 돌려놔야겠군."
붉게 변한 머리색을 바꾸기 위해 사냥을 시작한 둘은, 근처에서 가장 만만하게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들만 처리해나갔다.
"형님, 저들이 왜 형님을 공격한 건가요?"
"아이템을 노린 거야."
"그 창 때문인가요?"
"아마 이 해골마도 포함일 걸. 왜냐면 창보다는 해골마를 보는 눈빛이 장난이 아니었어."
"형님도 드디어 아이템 때문에 목숨에 위협을 받기 시작하는군요."
"그러게 말이다. 아이템이 좋으면 이렇게 자주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거냐?"
"종종 그래요. 전문 PK 집단을 만난다면 거의 도망도 못 치고 죽는 경우도 생겨요. 전 한때 그 집단의 눈에 띄어서 목숨을 위협받은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놈들을 만나지 않으니까 별 상관없어요."
범려는 아이템 때문에 그 체력 좋고 힘 좋은 취선의 목숨이 위협을 받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고레벨이 될수록 더 폼 나게 사는 게 아닌, 오히려 위험에 빠질까 봐 숨죽이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