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38화 (38/80)

제8장. 퀘스트 실패?

취선과 범려는 머리색을 원래대로 돌린 후에 드워프 도시로 돌아왔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나고 있었다.

"드워프 전사들은 각자의 위치로 움직여라. 놈들이 오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

"무슨 일이지?"

수많은 드워프 전사들이 도시의 입구 쪽으로 몰려와 성문을 닫고 아주 단단한 잠금장치까지 하면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기, 지금 무슨 일이죠?"

"무슨 일이기는. 드디어 녀석들이 몰려올 시기가 됐으니까 그렇지."

"녀석들? 어떤 녀석들이 온다는 거죠?"

"녀석들이면 딱 하나밖에 없지. 미궁에 사는 미노타우로스들. 그것들밖에 더 있어?"

미노타우로스라는 말을 듣자 취선과 범려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이거 뭔가 있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시 저희들이 도울 일이 없을까요?"

"도와주게? 우리야 좋지."

-드워프 도시에 침략한 미노타우로스들을 처치해라.

드워프 도시는 오래전부터 미노타우로스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다. 그들은 미궁 속에 숨어 살면서 일정한 때가 되면 언제나 모습을 드러내며 주변의 모든 것을 짓밟고 부수어버린다.

난이도:B+

완료 조건:미노타우로스들을 완전히 몰아내라.

보상:명성 3,000

"퀘스트?"

"형님, 명성 3,000짜리 퀘스트예요. 당장 받아요."

"음……."

범려는 명성보다는 난이도를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난이도가 B+면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런 퀘스트는 해골들이 있어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좋아. 퀘스트를 수락하고 대장간에 가서 해골들을 다시 받아와야겠어."

"그래요. 범려 형님, 이 퀘스트를 알려 주면 누나들도 좋아할 거예요."

범려는 해골 병사들도 데려오고, 얼마나 많은 미스릴 무구를 만들었는지 확인도 할 겸 대장간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아니, 벌써 왔는가? 아직 무구를 완성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아, 바론 님, 그게 아니라, 해골들을 잠시 데려가려고 왔어요."

"벌써 말인가?"

"네. 도시 바깥에서 미노타우로스들이 쳐들어올 때가 됐다면서, 지금 모두 한창 바쁘더군요."

미노타우로스들이 온다는 소리에 바론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벌써 그들이 올 때가 된 건가? 데려가게."

바론은 더 이상 묻지 않고 해골들을 데려가라며 손짓했고, 범려는 대기 중인 해골들에게 무장을 하라고 명령했다.

"얘들아! 무기를 챙겨라.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다."

해골들이 정렬함과 동시에 각자의 인벤토리에 보관되어 있는 무기와 방어구를 착용했다.

"음, 미스릴 무구는 개마 기병만 완벽하게 입었고, 다른 병사들은……."

다른 병사들 중에서 돌격병이 사용하는 방패와 도끼만이 미스릴이었고, 다른 것들은 일반적인 것들이었다.

"개마 기병들은 최전방 녀석들이라 미스릴이 없으면 힘든데 다행이군."

해골 개마 기병들은 반짝이는 미스릴 갑옷을 입고 엄청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또한 공격력과 방어력이 크게 상승해서, 범려는 내심 미노타우로스와 일대일 승부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았다.

"이제 슬슬 성문으로 가볼까."

병사들을 이끌고 성문으로 가자, 그곳에는 로즈와 헬렌, 그리고 제마가 퀘스트를 받고 있었다.

"범려 형님, 오셨어요."

"다들 와 있었네."

"응. 어서 와."

다들 드워프 도시의 퀘스트를 받고서 팀의 리더인 범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퀘스트를 하러 가야지."

"형님, 성문이 닫혀서 정문으로는 나갈 수가 없어요."

"엥? 성문이 닫혀? 그럼 어떻게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라는 거야?"

"드워프들에게 물어보니 비밀 통로로 나가서 싸워야 한대요."

취선은 드워프들에게 비밀 통로의 위치를 알아냈고, 그곳을 확인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비밀 통로라……. 뒤통수를 치라는 거군."

드워프 도시의 성문을 닫는다면 그 누구도 쉽게 오갈 수 없기에, 은밀하게 병사들이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비밀 통로를 만든 것이다.

"비밀 통로로 가자. 취선, 앞장서라."

"예, 형님."

범려 일행은 곧 취선의 안내에 따라 비밀 통로의 입구에 도착했다.

"이게 비밀 통로야?"

범려는 드워프 도시의 비밀 통로를 보고는 잠시 의심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입구가 은밀하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 대단히 크고, 누구나 쉽게 이게 또 다른 길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저도 맨 처음에는 비밀 통로인지 몰랐는데, 드워프들이 그러던데요. 이게 비밀 통로라고요."

"정말 드워프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비밀 통로라고 하는지 의심스러워."

일행들이 통로 안으로 들어가자 그 안에서 순식간에 밝은 빛이 흘러나오면서 주변의 환경이 뒤바뀌었다.

"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어두운 통로 안으로 들어갔는데, 벌써 바깥이라니."

범려뿐만 아니라 다들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법?"

다들 입을 모아 내뱉은 단어였다.

"우리가 본 통로는 게이트였나 보군. 그것도 한쪽 방향에서만 발동하는……."

그제야 범려는 비밀 통로의 정체를 눈치 채고 드워프 도시를 새롭게 바라봤다.

"드워프 도시는 단순하게 전사와 장인의 도시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게이트를 만드는 것 자체가 드워프들도 마법에 관해서 자세히 알고 있다는 소리다.

"형님, 어서 미노타우로스들이 산다는 미궁을 먼저 찾아보러 가죠."

다들 드워프 도시의 게이트 마법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취선이 재촉했다.

"아, 미궁을 먼저 찾아야지. 잠시 잊고 있었어."

범려는 취선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해골마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지하 세계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어떻게 찾지? 위치도 모르는데."

가장 난감한 상황이다. 지하 세계에 관련된 지도를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을 찾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범려야, 차라리 미노타우로스들이 드워프 도시를 찾아갈 때 공격하는 건 어때?"

"그것도 나름 괜찮은 방법이지만, 드워프 도시에 도착한 미노타우로스 숫자들이 어마어마하다면, 저희가 뒤통수치다가 오히려 당할 수 있어서 그래요."

"아, 미안. 못 들은 걸로 해줘."

헬렌은 나름대로 조언을 했지만, 범려의 말을 듣자니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알 수 있었다.

범려는 전투를 하기 전에 드러나는 위험 요소들을 적절히 배제하면서, 유리한 위치에서 싸울 조건을 찾아보았다.

"헬렌 누나, 망구다이들에게 헤이스트를 걸어주세요."

"아직 전투 시작도 안 했는데 헤이스트는 왜?"

"정찰을 더 빨리하려고 하는 거니까 해주세요."

그에 헬렌은 망구다이들에게 개인적으로 헤이스트를 걸어주었다.

"망구다이들은 최대한 빨리 정찰을 시작한다. 목표는 미노타우로스 그들이다. 가라!"

헤이스트가 걸린 망구다이들은 바람처럼 말을 달리면서 미노타우로스들을 찾으러 각자 흩어졌다.

망구다이들이 흩어지자, 이제 남은 일은 망구다이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형님, 미노타우로스를 상대할 방법은 있으세요?"

"내가 미노타우로스의 능력을 몰라서 정확한 방법 제시는 어렵다."

"그건 내가 알아."

제마가 불쑥 끼어들더니 범려에게 다가왔다.

"레벨은 대략 190 정도, 신장 2.5미터, 무기는 양손 도끼, 공격 속도는 느린 편이야. 특수한 능력은 생명력 절반이 깎이면 자동적으로 피의 분노 상태에 빠져서 공격력이 30퍼센트 상승되지."

"다른 건 없고?"

"없어."

제마의 이야기를 들은 범려는 작전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제마 님,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미노타우로스에 대해서 잘 아세요?"

"직업이 연금술사이다 보니 각 도시의 도서관에 있는 몬스터에 관한 책을 열람할 권한이 있어서요."

"아, 그러시구나. 나도 마법사라서 도서관 열람이 되는데, 그런 책은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요. 이번 일이 끝나면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제마와 헬렌이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을 본 취선과 로즈는 뭔가 심상치 않은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누나, 은혜 누나가 설마……."

"아니야. 조금 더 두고 보자. 단순한 관심일 수도 있어."

"아! 그러면 되겠다. 다들 모여 봐."

범려가 뭔가를 생각해냈는지 일행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잘 들어. 한 번만 이야기할 테니까."

다들 범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작전 내용을 숙지했는데, 일행 중에서 로즈만이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역시 사제는 힐 말고는 하는 게 없잖아. 괜히 사제를 했나봐."

로즈가 작전 내용에 별다른 변화가 없어서 재미를 잃어가고 있을 때, 범려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살며시 올리면서 말을 건넸다.

"너 없으면 이런 작전을 세울 수 없어.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정말?"

"물론이지."

로즈는 범려의 말에 기분이 좋은지 밝은 미소를 보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응! 나 열심히 할게!"

다그닥! 다그닥!

다들 각자의 임무를 숙지하고 있을 때, 망구다이들이 정찰을 마치고 때마침 돌아오고 있었다.

"망구다이들이 오는군."

20기의 망구다이들이 도착하고, 그중 한 명이 말에서 내려 땅바닥에 글을 써내려갔다.

[미노타우로스를 찾았습니다.]

"그래, 어디서 발견했지?"

[남서쪽 둔지에 모여 있습니다. 숫자는 대략 800마리입니다.]

"지랄 맞을 정도로 많네."

신장 2.5미터 정도의 몬스터들이 800마리면 오크 5,000마리와 동급이라고 볼 수 있는 수치다.

"가자! 소 대가리들이 있는 곳으로!"

범려는 병사들을 이끌고 소 대가리 몬스터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말을 타고 달려 대략 10분 거리에 800마리나 되는 미노타우로스들이 집결해 있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온몸에 검은색 털이 나 있는 미노타우로스를 발견했다.

"저놈은 뭔데 저기 있는 거지?"

"지휘관……."

지휘관은 지휘관을 알아본다고, 범려는 놈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이 미노타우로스 무리를 지휘하는 녀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휘관요? 저 깜둥이 녀석이 좀 험악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지휘관처럼 안 보이는데."

"아니. 이번 싸움은 저놈을 얼마나 빨리 죽이느냐가 퀘스트 난이도를 결정하게 될 거야."

범려는 깜둥이 미노타우로스를 보면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놈의 몸에서 풍기는 기백이 다른 미노타우로스보다 더 흉포하고 더 잔혹하게 느껴졌기에 계속 노려보게 되었다.

"저놈을 잡으려면… 저놈을 잡으려면……."

그는 혼자서 깜둥이 녀석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되뇌며 가상의 전투를 머릿속에서 수십 번 그려 나갔다.

"범려야, 범려야!"

옆에서 로즈가 큰 소리로 아무리 불러보아도 깜둥이 녀석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범려는 요지부동이었다.

"정말!"

"아야! 아파라!"

결국 로즈가 옆구리를 힘주어 꼬집자 범려가 비명을 지르면서 정신을 차렸다.

"크윽! 아파라."

"내가 몇 번을 불렀는데 어디다 정신을 파는 거야?"

"아니, 잠시 생각 좀 하느라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저기 저놈들이 이동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깜둥이 녀석이 다른 소들을 지휘하면서 저 멀리 이동하고 있었다.

"여기서 바로 드워프 도시로 갈 거야. 도시로 가기 전에 단 하나라도 숫자를 줄여야 돼."

범려는 미노타우로스들의 발 빠른 행동에 다른 작전을 구상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얘들아, 소 대가리들의 꼬리를 친다!"

"헤이스트!"

"으아-!"

"신의 가호, 빛의 숨결!"

"상혼의 힘!"

-신의 가호가 내려집니다. 체력이 50 증가합니다. 30분간 지속됩니다.

-빛의 숨결이 내려집니다. 모든 공격 형태의 공격력이 5% 증가합니다. 20분간 지속됩니다.

-바바리안의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전투력이 10분간 170 상승합니다.

-가속 상태가 5분간 지속됩니다.

-상혼의 힘을 사용했습니다. 10분간 파티 전체 공격력과 방어력이 3% 상승합니다.

버프가 걸리자 범려는 시위에 화살을 재더니 활이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당겼다.

"회색의 빛!"

화살이 시위를 떠나 파공성을 흘리며 미노타우로스 무리 끝자락에 떨어지자, 빛이 번쩍하더니 뒤에 있던 소 대가리 녀석들이 범려가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대열을 형성해라!"

해골들은 순식간에 대열을 유지했고, 대열 가장 뒤에서는 화살을 재고 있는 해골들이 사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발사!"

무수히 많은 화살들이 미노타우로스들을 향해 매섭게 덮쳤다.

"음머-!"

동료들이 공격을 당하자, 선두에서 앞장을 서고 있던 깜둥이 미노타우로스가 금세 군대의 후미까지 달려왔다.

"쿠어-!"

"깜둥이가 빨리도 오네. 이 녀석들만 잡고 후퇴한다!"

범려는 지금 공격하고 있는 미노타우로스만 집중 공격을 하고는 그대로 퇴각을 해버렸다.

미노타우로스들은 동료들의 복수를 위해 열심히 뛰어오더니 어느 순간 뒤쫓는 일을 그만두었다.

"쳇! 생각보다 똑똑한데? 다시 추격한다."

계속 쫓아왔으면 몇 마리 더 잡았을 것인데, 녀석들이 추격을 멈추고 말았다.

"이번에는 녀석들의 선두를 친다!"

범려는 해골들을 해골마 갈비뼈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해놓고, 줄기차게 달려서 녀석들을 앞질러 놈들이 지나가는 길목의 고지에 자리를 잡았다.

"녀석들이 이곳에 돌입하는 순간 화살을 날려라. 일부 소들이 올라오면 개마 기병들이 처리해라."

범려가 점령한 고지는 뒤를 제외한 삼면의 경사면이 상당히 가팔라서 미노타우로스들이 쉽게 올라올 수 없는 아주 좋은 자리였다.

"소들이 온다! 조준 발사!"

쉬이익! 쉬이익!

해골들이 활을 힘차게 당기자 수많은 화살들이 미노타우로스들을 향해 날아갔다.

"쿠어-!"

덩치가 큰 미노타우로스들이 가파른 고지를 오르려고 그대로 뛰어오자, 개마 기병들은 아래에서 올라오려는 미노타우로스들을 창으로 찌르고 꿰뚫으며 치명상을 입히기 시작했다.

"돌격병! 앞으로!"

돌격병들은 번쩍이는 방패를 앞세워 철벽같은 방어벽을 만들어 미노타우로스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저지했다.

"쿠어-!"

"대열을 유지해라! 무너지면 다 죽는다!"

"토네이도!"

시기적절하게 헬렌의 마법이 발휘되며 눈앞에서 해골들을 압박하던 소들이 하늘 위로 떠올랐고, 뒤이어 몰려온 소들도 해골들 앞에 펼쳐진 토네이도에 휩쓸려 하늘 위로 올라가버렸다.

"형님, 소들이 뒤에서도 올라와요!"

"뭐! 이제 좀 해볼 만하니까 뒤에서 우리를 잡으려고 하네."

범려는 속으로 지휘관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수많은 미노타우로스들을 뚫는 동안 해골들이 살아남을지 의심스러웠다.

"밑에서 올라오는 녀석들 숫자가 얼마나 돼?"

"몇 마리 안 돼요."

"그럼 후방을 뚫고 드워프 도시 성문까지 후퇴한다."

범려는 몬스터들의 레벨이 파티원들보다 훨씬 높고 숫자도 많아서 이대로 싸우면 불리하기에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개마 기병! 길을 뚫어라!"

우르르르!

20기의 개마 기병들이 맹렬하게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곳으로 돌진을 하더니 그 무식한 덩치의 소들을 볼링 핀 쓰러트리듯이 밀어내버렸다.

"길이 뚫렸다. 달려라!"

해골들과 팀원들이 길이 열린 그곳으로 달려가 미노타우로스의 포위망을 뚫고 나왔다.

"후! 소 대가리 녀석들이 머리는 나빠도 체력과 힘은 장난이 아니네."

해골들을 이끌고 드워프 도시의 성문 가까이에 도달하자 범려는 다시 진형을 펼쳤다.

"취선아, 드워프들에게 가서 미노타우로스들이 왔다고 알려."

취선이 범려의 말대로 도시의 성문이 있는 곳으로 가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미노타우로스가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저희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십시오!"

그러자 거대한 성문이 살짝 열리면서 드워프가 어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형님! 성문이 열렸습니다!"

"다들 안으로 들어간다."

해골들과 팀원들은 도시 안으로 들어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미노타우로스들이 이 근처까지 왔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녀석들이 얼마나 강한지 저희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까지 강한 녀석들이라니."

미노타우로스들의 뛰어난 맷집과 공격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해서 범려의 해골들도 몇 마리밖에 잡지 못했다.

"숫자는 어떻게 되지?"

"대략 800마리 정도 됩니다."

"그 정도면… 우리가 쓰는 무기로 공격하면 어떻게 해결이 될 거야."

"무기?"

드워프들이 무기를 거론하자 범려 일행은 다들 그게 무엇인지 궁금해 했다.

때마침 드워프 병사들이 길이와 폭이 2미터 정도 되는 작은 발리스타를 하나 가져왔다.

"응? 발리스타?"

"이건 그냥 발리스타가 아니네. 우리들이 만든 회심의 걸작이야. 잘 보게."

발리스타의 숫자는 대략 20기. 그리고 발리스타에 소모되는 탄알은 길이 1.5미터짜리 투창이 쓰이고 있었다.

"성문을 열어라!"

드워프들은 성문을 활짝 열고 성문 입구에 발리스타를 대놓고서 미노타우로스들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소 대가리들이 쳐들어왔다. 그들에게 드워프의 무서움을 알려 주자. 발사!"

20기의 발리스타가 동시에 발사되더니 저 멀리서 소들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다음 장전!"

드워프들은 신속하게 발리스타의 투창을 장전해 즉각적으로 공격했다.

"형님, 저거 보세요. 소들의 생명력이……."

발리스타에 공격을 당한 미노타우로스들은 어마어마하게 생명력을 잃어가면서 흙바닥에 얼굴을 처박으며 쓰러지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이야……."

어떤 의미에서는 투석기보다 좋은 무기였다. 더군다나 발리스타의 크기는 겨우 2미터, 아니 자세히 보니 그것보다 더 작은 것 같기도 했다.

"하하하! 소 대가리 녀석들! 우리 무기의 위력에 힘 한 번 못 쓰고 죽는구나."

드워프 병사들을 지휘하던 한 드워프가 쓰러지는 미노타우로스들을 보면서 크게 웃었다.

"형님, 이대로 가다가는 퀘스트 실패하는 거 아니에요?"

"그, 그럴지도."

범려는 처음으로 퀘스트의 실패를 맛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드워프들이 이런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면 퀘스트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하하! 이거 자네들에게 미안하게 됐어. 때마침 신무기가 완성되어서 괜히 부탁을 하지 않았나 해서 말이지."

-퀘스트에 실패하였습니다.

미노타우로스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도 못하고, 오히려 쫓겨서 드워프 도시까지 왔으니 퀘스트가 실패할 만도 했다.

"이런! 명성 3,000짜리 퀘스트가……."

다행히 퀘스트를 실패했다고 해서 페널티는 없었지만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범려의 경우 지금까지 퀘스트를 하면서 실패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형님, 저희가 레벨이 낮아서 이런 일이……."

"아니, 괜찮아. 이걸로 우리는 한 가지를 배웠다. 레벨이 낮으면 죄악이라는 것을 말이다."

범려는 지금까지 자신의 레벨이 낮다고 해서 별다른 문제를 삼지 않았다. 해골들과 같이한다면 몇 단계 위의 퀘스트나 몬스터들도 어렵기는 하지만 처리할 수 있었다.

"우하하하! 소 대가리들을 다 잡았다!"

결국 드워프들이 발리스타를 앞세워 미노타우로스들을 모조리 쓸어버렸고, 눈앞에는 그 흔적으로 시체가 즐비하게 깔려 있었다.

"난 여기서 단 1레벨이라도 더 올리겠다. 너희들을 어떻게 할래?"

"전 형님 따라가겠습니다."

"이럴 때 사제가 빠지면 안 되지."

"둘 다 가버리면 마법사인 난 뭐 하라고."

"나의 친구여, 나 연금술사인 거 알지? 손톱만큼의 경험치라도 감지덕지한 직업이라서 말이야."

"가자, 사냥하러."

다들 범려를 만나고부터는 퀘스트 실패라는 걸 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실패를 하게 되자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디 가는 건가?"

"저희들의 실력이 미천해서 이번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나가서 사냥을 할 겁니다."

"그런가? 그럼 내 부탁 하나 들어주게. 사냥을 하다가 미노타우로스들을 보면 그들의 가죽을 벗겨오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미노타우로스의 가죽을 가져와라.

드워프들은 미노타우로스들에게 강한 적개심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가죽을 가지고 신발을 만들고 싶어 한다.

난이도:C

완료 조건:미노타우로스의 가죽 400장 획득

보상:명성 500

이전보다 퀘스트의 난이도가 낮아지고 명성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한마디로 퀘스트에 실패했으니 그보다 낮은 등급의 퀘스트를 주면서 사람을 얕보는 것이다.

"끄응."

퀘스트를 수락한 범려의 기분은 엉망이 되었다.

"형님, 어서 가죠."

"그, 그래."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범려야, 힘내."

로즈가 그나마 마음을 달래주자, 범려는 그 말에 기운을 차렸는지 얼굴 표정이 풀렸다.

"그래. 기분 나쁘다고 표정까지 찡그릴 필요는 없지."

범려는 해골마 위에 오르더니 로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 올라타. 미노타우로스 가죽 400장을 구하려면 시간이 없어."

"응!"

로즈가 범려의 손을 잡고 해골마 위에 오르자, 다른 팀원들도 서둘러 해골마에 오르더니 뒤따라서 도시 바깥으로 나왔다.

"가자! 소 대가리 녀석들 가죽을 벗기러."

범려 일행은 도시 바깥으로 나와 눈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도시 근처에 있는 녀석들은 범려와 레벨이 비슷하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사냥할 수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해골 병사 레벨이 올랐습니다.

파티원들은 지쳐 쓰려질 때까지 사냥을 했고, 각자 기본적으로 레벨이 2 이상은 올랐다.

"레벨 업을 더! 더! 해야 돼!"

반쯤 광기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과 해골들.

그렇게 며칠 동안 사냥을 계속 하는 사이, 지상에서는 개미 이벤트가 끝났다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대륙 전역에서 발견되던 개미들이 그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이벤트가 끝났다는 메시지가 『판게아 월드』 유저 전체에 알려지면서, 이벤트 기간 안에 부활을 못하고 있던 유저들이 게임에 다시 접속해 모습을 드러냈다.

"부활!"

"이 해골 제작자!"

지하 세계에서 범려의 손에 죽었던 흑검과 강토가 지상에 있는 도시에서 무작위로 부활했다.

그래도 두 사람이 한 도시에서 함께 부활하게 되어 따로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흑검 형님, 해골 제작자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 복수를 해야지! 당장 길드에 비상 소집령을 내려!"

"예, 형님."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범려를 먼저 공격한 건 생각지 않고, 자신들을 죽였다는 앙갚음을 하기 위해 길드 전체에 비상 소집령을 내린 것이다.

"흑검 형님, 길드에 소집령을 내려놓았습니다."

"잘했다. 이제 해골 제작자를 잡는 일만 남았구나."

"이제 해골 제작자는 더 이상 게임을 못하게 될 겁니다."

두 사람은 그들만의 상상에 빠져서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둘이 자기 멋대로의 상상을 하는 동안, 범려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형님, 언제 룬 문자 마법을 배우신 거예요?"

"좀 됐어. 숙련도는 아직 중급이 안 되어서 크게 기대할 게 못 되지만."

"어차피 숙련도야 계속 연마하면 오르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제 옷이나 무기에 룬 문자도 새겨 주고."

범려의 룬 문자 마법을 취선의 모든 장비에 새기니, 오른 능력치만 해도 벌써 10에 육박하고 있었다.

"나도 해줘."

다들 룬 문자 마법을 장비에 새기고 싶은지 그에게 장비를 내밀었다. 그에 범려는 일행들의 장비와 더불어 새로 미스릴 무구를 받은 해골들에게도 룬 문자 마법을 새겨 주었다.

-초급 룬 문자 조합이 중급으로 변경됩니다.

-중급 룬 문자 조합(0.00%)

룬 문자의 배열에 따라서 여러 가지 능력이 부여됩니다. 중급 룬 문자 조합으로 인해 문자를 새길 때 능력치가 크게 상승합니다. 한 번에 2개의 능력치가 생성됩니다.

룬의 힘으로 인해 중급부터는 공통적으로 공격 속도 및 캐스팅 속도가 0.2% 빨라집니다.

"어! 중급으로 변했다."

한참 일행들의 장비에 능력을 부여하고 있는 사이 중급으로 바뀐 것이다.

"아… 다시 룬 문자 조합을 해야겠다."

범려가 룬 문자 조합이 중급으로 상승되었다고 하자 일행들은 다시 그에게 장비를 주면서 룬 문자 마법을 새겨 달라고 했다.

"그럼 다시 해줘."

"알았어."

-룬 문자 조합으로 인해 체력 +7, 지능 +20이 증가했습니다.

-룬 문자 조합으로 인해 정신력 +14, 지능 +13이 증가했습니다.

-중급 룬 문자 조합의 공통 능력으로 인해 공격 속도 및 캐스팅 속도가 0.2% 빨라집니다.

각자 입고 있는 옷의 종류가 머리에서부터 발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보니 캐스팅과 공격 속도가 기본적으로 2퍼센트 이상 빨라져 버렸다.

"캐스팅이 2퍼센트나 빨라졌어."

실질적으로 느껴지는 캐스팅 속도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좋은 옵션이다.

"바쁘다, 바뻐."

범려 혼자서 룬 문자 마법을 새겨야 하니 많이 바쁠 수밖에 없었다.

해골들의 장비와 몸에 룬 문자를 새기자, 그 능력치 상승폭이 정령의 뼈로 인해 크게 상승되었다.

"형님, 저 먼저 들어갈게요."

"어, 들어가. 나중에 보자."

"범려야, 나도 이만 갈게."

다들 피곤한지 로그아웃을 했고, 범려 혼자만이 해골들의 장비에 룬 문자를 새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문자를 새기고 있는 와중에 해골 병사들 몇몇이 눈에서 주황색 빛을 발하며 이상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해골들이 요상한 기운을 풍겼지만, 범려는 한창 룬 문자를 새기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해골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잠시 후, 주황색 기운을 내뿜던 해골들의 눈이 다시 파란색으로 돌아왔다.

"음? 방금 뭔가 빛이 난 것 같았는데."

범려는 룬 문자를 새기는 데 집중하고 있다가 문득 해골들을 바라봤고,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아, 나도 피곤하다. 오늘은 그만 할까."

많은 수의 해골들의 장비와 몸에 룬 문자를 새겨 넣는 작업을 해서인지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였다.

범려가 해골들을 땅속에 숨기고 로그아웃을 하자, 땅속에 숨어 있는 해골 몇몇의 눈이 다시 주황색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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