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40화 (40/80)

제10장. 말 업데이트

챙! 챙! 챙!

"하압!"

취선이 깜둥이 소와 일대일 승부를 벌이고 있는 와중에 범려는 최대한 빨리 졸개들을 처치하기로 마음먹었다.

"환영섬!"

범려가 마나를 아끼지 않고 소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 환영섬을 사용하자, 미노타우로스 10마리가 한꺼번에 휩쓸리고 말았다.

"우헤헤헤!"

"쿠어-!"

미노타우로스들이 환영섬을 정통으로 맞아서 그런지, 다들 범려를 살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는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헉! 이런 젠장! 이 기술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탈이라니까. 회색의 빛!"

번쩍!

눈부신 섬광이 빛을 발하더니 미노타우로스들에게 데미지를 줬다.

"어디 한번 나 잡아봐라!"

창은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활을 꺼낸 범려의 주특기 기술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포의 미간 뚫기!

범려가 활을 잡은 후로는 미노타우로스들의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었다.

"눈깔 한 번씩 뚫어주마."

범려가 활을 연속적으로 당기면서 미노타우로스들의 눈을 푹푹 찔러주자, 다들 얼굴을 가리며 고통스러워했다.

"심장에 맞으면 어떤 신음 소리가 들려올까?"

그 말과 함께 시위에 화살을 재어 활을 당기고 있는 범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제일 잘 어울리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쉬이익! 쉬이익!

"컥!"

심장에 화살을 맞은 미노타우로스들은 헛바람 소리를 내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제대로 들어갔군."

두꺼운 가죽 하나만 믿고 움직이는 녀석들의 심장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니 자연스럽게 주저앉은 것이다.

"때는 지금이다!"

해골 병사들은 미노타우로스들이 다시 무기를 들고 반격을 하기 전에 죽이려고 맹렬히 돌진하더니, 미노타우로스의 몸을 샌드백 두드리듯이 두들겨 버렸다.

"깜둥이 소를 잡자!"

"인간! 후회하게 될 거다! 쿠어-!"

괴성을 지른 깜둥이 미노타우로스는 두 눈이 붉게 충혈되더니 몸집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뭐야! 왜 커지는 거야?"

범려는 녀석의 몸이 커지는 것을 보고 황급히 활을 당겨 녀석의 눈과 심장 등 신체의 급소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화살을 쑤셔 박아줬다.

"크르릉!"

하지만 아무리 급소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공격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생명력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회복이 되고 있었다.

해골 병사들은 갑자기 커지는 깜둥이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각자 가지고 있는 스킬 중에서 최고의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스킬들만 펼치기 시작했다.

"우하하! 간지럽구나. 그따위 공격으로 날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엿이나 처먹어라!"

범려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쉼 없이 몰아쳤다.

'놈을 잡는 것은 그냥은 안 돼. 격노로 공격력을 높여야 해.'

해골들이 아무리 공격해도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더군다나 깜둥이 미노타우로스가 4미터로 늘어나자 이건 어떻게 해결할 수준이 아니었다.

"야! 깜둥이! 그렇게 커지니까 좋냐? 이 덩치만 큰 바보야!"

"뭐시라! 인간! 죽고 싶은가 보구나!"

깜둥이 미노타우로스는 범려의 도발에 쉽게 반응해 그 큰 주먹으로 범려를 힘차게 후려쳐 버렸다.

"크억!"

해골마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말과 함께 날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 범려는 그 와중에 생명력이 얼마나 줄었는지 확인해보았다.

'젠장! 50퍼센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0퍼센트의 생명력이 사라졌다. 이러면 힐 한 번 받고 다시 맞아야 한다.

"로즈! 생명력을 80퍼센트 수준으로 끌어올려 줘!"

"왜 하필 80퍼센트이야! 생명력 조절하는 게 쉬운 줄 알아!"

로즈는 투덜거리면서도 작은 힐을 시전해 범려의 생명력을 귀신같이 80퍼센트로 맞춰줬다.

"야, 깜둥이! 별로 안 아프다. 한 대 더 쳐 봐라!"

"쿠어-!"

범려의 말을 들은 깜둥이 미노타우로스는 광분했는지 더 무섭게 주먹을 휘둘러서 그에게 심각한 타격을 줬다.

"우엑!"

일부러 맞아서 생명력을 줄이는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해골들을 격노하게 만들려면 방법이 없다.

'아싸! 생명력 30퍼센트!'

-해골 병사들이 격노 상태에 빠집니다. 모든 능력이 50% 상승합니다.

"크윽! 힘들다."

"범려야, 괜찮아?"

"괜찮아.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다른 녀석들 힐 해줘."

로즈는 범려의 말대로 해골들과 취선처럼 근접해서 싸우는 녀석들에게 힐을 하면서 전투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다."

해골들은 격노 상태에 빠져서 두 눈에서 붉은빛을 뿜어대고 있었지만, 그중 몇몇은 붉은 빛이 아니라 주황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주황색과 붉은색은 비슷한 계열이라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회색의 빛!"

범려는 어느새 스킬 쿨 타임이 돌아오자 즉각 날려 주는 센스를 발휘해주었다.

"쿠아아앙-!"

깜둥이 미노타우로스가 소리를 지르자 그 소리가 땅과 주변의 공기를 진동시키고, 모든 공격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만들었다.

-미궁의 지배자의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30초간 모든 공격 형태의 적중률이 20% 하락합니다.

적중률이 떨어지자 다들 얼굴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이놈! 적중률을 떨어트리다니!"

"깜둥이 녀석이!"

적중률이 떨어지자 다들 공격이 성공하는 횟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크윽! 마법이 안 맞아."

중요한 마법이 빗나가기 시작하자, 깜둥이 녀석의 생명력이 줄어드는 속도가 무던히 느려지고 있었다.

"해골들아! 녀석을 붙잡아라."

해골들은 범려의 명령에 따라 온몸을 이용해 깜둥이 녀석을 붙잡기 시작했다.

"이런 하찮은 뼈다귀들이 어디 감히 이 신성한 몸을 더럽히려 하느냐!"

깜둥이 녀석은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해골들을 이리저리 떼어내면서 놈들의 지독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소 주제에 신성함을 따지다니! 그냥 곱게 죽어라!"

깜둥이 미노타우로스는 해골들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꿋꿋하게 버티면서도 해골들을 하나라도 부숴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 공격을 퍼부었지만, 해골들은 단 하나도 쉽게 죽지 않았다.

아니, 죽지 못하게 로즈가 힐을 해주고, 범려가 지휘를 하면서 적절하게 뒤로 뺐다가 다른 녀석과 위치 변경을 해주고 있었다.

"쿠어-!"

-미궁의 지배자가 광분하게 됩니다. 방어력이 10% 하락, 공격력이 30% 상승합니다.

"광분 버서커가 되는군."

범려는 깜둥이 미노타우로스가 버서커가 되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녀석의 공격력이 워낙 막강하고 생명력이 많다 보니 차근차근 생명력을 갉아먹어야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누나, 프리징!"

"알았어. 프리징!"

깜둥이의 발밑이 갑작스럽게 차갑게 변하더니 발을 조금씩 알게 모르게 얼리고 있었다.

"쿠어-! 덤벼라!"

"넌 세상과 하직할 시간이 왔다."

"웃기는 소리! 누구도 날 이기지 못한다!"

범려는 깜둥이 소가 이런 단순한 함정에 걸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음?"

깜둥이 소가 한참 해골들을 상대하다가 자신의 발이 완전히 얼음 덩어리로 변한 걸 알아차린 것은, 근접전을 펼치던 해골들이 두세 발자국 뒤로 물러났을 때였다.

"하하하! 어때? 상당히 좋은 얼음 조각상이 되겠는데."

"쿠어-! 이따위 얼음은 그냥!"

깜둥이 미노타우로스의 발이 얼어붙어 몸은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고, 프리징 마법이 발휘되는 동안은 생명력이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는다.

"하하! 아무리 덩치가 커져도 그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양이군."

범려가 깜둥이를 살짝 비웃어주면서 손짓을 하자 마법사들과 사수들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펼쳤고, 근접 공격 해골들은 대기 상태에 돌입했다.

"크르릉!"

쿵! 쩌쩍!

깜둥이 녀석은 얼음을 깨기 위해 안간힘을 쓰더니, 결국 안 되겠는지 주먹으로 직접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쳇!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거냐."

범려의 작은 바람은 깜둥이가 마법에 걸려 있는 동안만이라도 멍청하게 있어줬으면 하는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인간, 넌 내 손에 죽는다."

"그래? 날 죽이시겠다? 어디 그게 쉬울까?"

범려는 활을 계속 당기면서도 인벤토리 안에 있는 섬전의 창을 바라봤다.

'가까이 오면 환영섬이다.'

깜둥이 미노타우로스가 얼음을 깨고 나오려고 하자, 해골들과 취선이 다시 달려들더니 녀석의 발목을 붙잡았다.

"어딜 가려고!"

"비켜라! 난 저놈을 죽여야겠다!"

"하하하! 나 취선을 두고 그냥은 못 간다."

"그럼 너부터 죽여주마. 쿠어-!"

쾅!

깜둥이 미노타우로스가 무식하게 주먹을 크게 휘두르는 바람에 취선이 도끼로 녀석의 공격을 막았지만,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면서 그는 저 높이 날아가 버렸다.

"으악!"

얼마나 높이 날아가 버렸는지 미궁의 다른 곳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취선!"

전투 구역을 이탈해버린 취선을 뒤로하고 범려는 어쩔 수 없이 개마 기병들을 앞세워 전투를 벌였다.

"이런 뼈다귀로 날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쿵! 쿵!

미노타우로스가 무식하게 양손을 좌우로 휘저어버리니 개마 기병들이 쭉쭉 나가떨어졌다.

"내가 상대해주지."

범려는 결국 창을 쥐고서 깜둥이 앞으로 나서야 했다.

"힐!"

한 대라도 맞으면 위험해지기 때문에 로즈가 범려의 생명력을 모두 다 채워주자, 해골들의 격노 상태가 풀리고 말았다.

"덤벼라! 이 소 대가리야!"

"이놈!"

맨 주먹과 창의 대결이 펼쳐지면서, 해골 병사들은 자연스럽게 범려를 중심으로 대열을 이루게 되었다.

"이 소 대가리! 좀 죽어라!"

"인간! 너나 죽어라!"

후우웅!

깜둥이가 주먹을 크게 휘두르자 범려는 재빨리 허리를 숙여 녀석의 주먹을 피하면서 생긴 틈으로 창을 내질렀다.

"크억!"

"좀 아프지?"

해골들이 범려의 공격에 보조를 맞추면서 공격을 해대자, 생명력이 떨어지는 쪽은 범려와 해골들이 아니라 깜둥이 미노타우로스였다.

"으압!"

범려가 창을 회전시키면서 다시 찔러 들어가자 개마 기병이나 다른 창을 든 병사들이 창을 회전시키면서 동시에 치고 들어갔다.

"쿨럭!"

깜둥이의 몸이 수십 개의 창으로 꿰뚫려 입으로 피를 토해내는 상황까지 오자, 녀석의 생명력이 크게 줄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인간……!"

"곱게 죽어라! 소 대가리!"

푸욱!

범려는 깜둥이 미노타우로스의 몸에 꽂혀 있는 창을 비틀며 더 깊숙이 찔러 들어갔다.

"크윽!"

범려가 비틀어 찌를 때 해골들도 같이 창을 비틀어 찔렀다. 미노타우로스가 아무리 덩치가 4미터에 달하는 거구가 됐다고 하지만, 그래봐야 몬스터라는 존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제발 좀 죽어!"

챙! 푸욱!

범려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벼락검을 꺼내들더니 깜둥이의 목에 쑤셔 박았다.

"너희들은 뭐 해! 보조 무기는 뻘로 있는 게 아니야!"

개마 기병과 망구다이들은 보조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범려의 명령대로 무기를 꺼내들어 거침없이 깜둥이 미노타우로스의 몸 깊숙이 쑤셔 넣었다.

"끄르륵!"

거품 무는 소리가 들려오고 두 눈에서 흰자가 보이더니, 결국 깜둥이 미노타우로스는 온몸에 창과 검이 꽂혀 있는 상태로 죽음을 맞이했다.

"지독한 녀석이었어. 퉤!"

범려가 개마 기병들을 시켜 취선을 찾아오라고 명령하려는 찰나에 취선이 돌아왔다.

"형님!"

"어, 취선아."

"그 소 대가리 어디 있습니까?"

"저기 누워 있잖아."

온몸이 창과 검에 꿰뚫린 흔적을 남긴 채 시체가 돼버린 깜둥이 미노타우로스는 옆에 물건 하나를 내놓고 죽어 있었다.

"형님, 아이템 나왔네요."

"어, 나왔네. 그런데 아이템의 능력치가……."

-페트레아의 목걸이

현자 페트레아가 사용했던 목걸이

옵션:체력 +14, 지능 +30

착용자의 모든 마법 주문에 의한 영향력이 10% 증가한다.

범려와 취선에게는 별다른 효과가 없는 물건이었고, 연금술사인 제마는 표정을 보아하니 이런 반지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헬렌 누나, 로즈야, 이리 와봐. 두 사람이 사용할 만한 아이템이 나왔어."

범려 쪽으로 다가온 헬렌과 로즈는 무슨 아이템이 나왔는지 살펴보았다.

"어머나! 이거……."

아이템을 본 헬렌과 로즈는 둘 다 탐욕으로 똘똘 뭉친 눈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거 어떻게 하지? 탐나는 아이템인데. 양보하기도 애매하고…….'

'옵션이 정말 대단해! 내가 가지고 싶은데… 로즈에게 목걸이가 없기도 하고… 어떻게 하지?'

둘 다 이 아이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아이템을 갖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친한 사촌지간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범려는 이 둘의 눈빛을 보고 그녀들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할 거라 생각하곤 절충안을 내놓았다.

"이거 게임을 해서 승자가 갖는 걸로 하죠."

"무슨 게임을 할 건데?"

"가위바위보."

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오묘한 세계인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목걸이의 주인을 결정하기로 했다.

"승부는 단판 승으로 해도 되죠?"

"응!"

"어, 그래."

그녀들은 범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각자 손을 풀면서 준비 운동을 했다.

"난 준비됐어."

"나도."

"그럼 시작합니다. 가위바위보!"

두 여자들이 가장 짜릿하면서도 오묘한 승부에 주사위를 던졌고, 곧 그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아악-!"

"어머! 내가 이겼어!"

헬렌은 바위를 내고 로즈는 보를 내는 바람에 승자는 로즈로 결정이 되었다.

"자, 여기 목걸이."

"어머! 예쁘다."

로즈가 목걸이를 착용하자 헬렌은 상당히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이미 결정이 난 승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기에 이내 포기했다.

"축하해, 로즈야."

"아니에요. 언니 덕분인걸요."

"흥! 계집애."

헬렌은 눈을 한번 살짝 흘기더니 표정을 풀고 로즈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언니, 다음에 비슷한 아이템 나오면 언니가 가져가."

"네가 말 안 해도 챙길 거야. 걱정 마."

"이제 이곳에 볼일 없으니 슬슬 위로 올라가 볼까."

미궁을 제압했으니 이곳에서 사냥을 더 해도 되지만, 범려는 이곳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형님, 여기서 좀 더 있지 않고 지상으로 올라가요?"

"그럼 올라가야지. 언제까지 여기서 죽치고 있을 수는 없잖아."

다들 칙칙한 지하 세계보다는 햇살이 비추고 강과 산이 보이는 지상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어서 가자, 범려야. 나 햇빛이 보고 싶어."

로즈는 범려의 의견에 절대 찬성하고는 그의 해골마 위에 올라탔다.

"그래, 드워프 도시로 돌아가자."

일행들은 해골마를 타고 도시로 돌아왔고, 다들 이곳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다.

"이제 지상으로 올라가자."

"범려야, 난 나중에 올라갈게."

"제마야, 같이 지상으로 안 올라가는 거야?"

"난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어서 말이지. 지상에 올라가면 따로 연락할 테니 걱정 마라."

제마는 드워프 도시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기에 범려와 같이 지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그럼 나중에 보자."

"다음에 또 보자."

범려는 제마를 뒤로하고 지상으로 나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도 마법처럼 되어 있는 곳일까요?"

"그건 아닐 거야. 저기 봐. 드워프들이 돌아다니잖아."

마법으로 만들어진 게이트 같은 곳이라면 그 안에서 드워프가 돌아다닐 수 없다.

"진짜네."

범려는 입구를 향해 첫발을 내딛고는 그대로 그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해골 병사들도 범려의 뒤를 따라서 터널 안으로 들어갔고, 이제는 위로 올라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어서 가자, 지상으로."

드워프 도시에서 지상으로까지의 길은 상당히 멀었다. 특히 드워프 도시로 연결된 입구는 단절 산맥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서 길을 쉽게 찾지 못하는 곳이었다.

"후! 도시 입구가 이런 곳에 있다니. 그러니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

"후아! 지상이다. 지하의 공기보다 확실히 좋다."

취선이 한참 지상의 공기가 좋다면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만끽하고 있을 때, 유저들에게 보내는 전체 메시지가 하나 떴다.

-안녕하세요. 『판게아 월드』입니다. 새로운 업데이트를 위해 서버를 5분 뒤에 종료하겠습니다. 자세한 업데이트 내용을 알고 싶은 분은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

"업데이트?"

"무슨 업데이트일까요?"

"서버가 5분 뒤에 종료된다니 로그아웃하고 확인하러 가보면 되겠지."

"그럼 나 먼저 갈게."

가장 먼저 로그아웃을 한 사람은 헬렌이었고, 그다음 로즈와 취선, 연이어 범려도 로그아웃을 했다.

로그아웃을 한 희성은 『판게아 월드』 홈페이지에 있는 오늘의 업데이트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안녕하세요. 『판게아 월드』입니다. 오랫동안 계속된 유저들의 건의에 의해 드디어 이동 수단 업데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업데이트되는 이동 수단은 마구간과 조선소입니다.

마구간은 유저 여러분들이 『판게아 월드』에서 좀 더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말을 구입하는 업데이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헛! 이건 내 해골마를 위협하는 거잖아."

『판게아 월드』에는 각 도시마다 마구간이 있지만, 말을 유저들에게 팔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말을 판다는 것이다.

범려는 지금까지 『판게아 월드』에서 유일무이하게 해골마라는 독특한 말을 판 적이 있었다. 가끔 돈이 필요할 때 팔 계획으로 아껴 두고 있었는데, 『판게아 월드』에서 먼저 말을 업데이트시킨 것이다.

"음, 아무리 봐도 이건 유저들이 해골마를 보고 말을 타고 싶다고 『판게아 월드』에 건의한 건 아닐까?"

희성의 예상대로 해골마가 등장한 이후로 수많은 유저들이 자신도 말을 타고 싶다며 『판게아 월드』에 건의했고, 특정 유저만의 특권으로 해골마를 선보이는 거 아니냐는 비난도 받았다.

그런 건의와 비난이 하루에 수백 개씩 쏟아지는 통에 『판게아 월드』 측에서 결국 버티지 못하고 유저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아, 그럼 내 해골마는 어떻게 되는 거지?"

희성은 이제 해골마를 팔아서 돈을 만져 볼 기회가 물 건너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조선소는 또 뭐지?"

-지상에서 말을 이용해 대륙을 누비고 다녔다면, 해상에서는 배를 만들어 저 멀리 대양을 누비실 수 있습니다.

마구간과 마찬가지로 조선소에 찾아가셔서 배를 주문하실 수 있으며, 더 이상 심해의 노턴에서 이동 수단을 걱정하시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이전에는 심해의 노턴에서는 어떻게 생활했다는 거냐."

이전 심해의 노턴에서는 NPC들이 가지고 있는 배를 타고 사냥을 하거나 이동했기에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심해의 노턴에서 그런 제약이 사라지는 것이다.

"음, 조선소라……. 한번 심해의 노턴으로 가봐야겠지."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서 심해의 노턴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분명 배를 만드는 데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닐 거야. 그럼 돈 많은 녀석들이 바다로 나온다는 건데, 오히려 그걸 노리고 나오는 녀석들이 있지 않을까?"

희성은 심해의 노턴으로 나갈 생각을 하다가, 몬스터 사냥보다 유저들끼리 치열하게 싸워서 보물을 빼앗는 해적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대륙에 말이 나오는 것보다 바다에 배가 나오는 게 더 신경이 쓰이는데."

대륙의 각 지역마다 100여 개 정도의 크고 작은 항구들이 신설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항구가 100개나 생기면 자연의 도로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대륙 곳곳에 항구가 생기는 거네. 뭐, 상황에 따라서 작은 항구에서 배를 만들 수도 있겠군."

분명 몇몇 길드에서는 거대한 군함을 만들기도 할 것이고, 어떤 곳에서는 그보다 작은 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판게아 월드』에서 서로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쟁이 바다에서 벌어지다니. 나도 거기에 한번 끼어들어 볼까?"

희성은 왠지 모르게 그 진흙탕 싸움이 될 것 같은 바다의 전쟁터에 한 다리 걸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음, 일단 내가 배를 살 만한 돈이 없는데, 어디서 돈을 구하지?"

한참을 고민하던 희성의 머리에서 번쩍 하며 돈이 나올 구멍이 떠올랐다.

"그래! 정령석을 제마한테 넘기고 대신 미스릴이나 돈으로 받는 거야! 그럼 배를 만들 돈이 생기는 거지."

아주 간단하게 돈을 구할 방법이 생겨나자 희성은 어서 업데이트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이번 업데이트는 정확히 18시간 동안 진행됐으며, 동시 접속자 수가 11만에 이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자랑했다.

"제마가 드워프 도시 안에 있으니 다시 도시로 들어가야겠군."

범려는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제마를 만나기 위해서 다시 드워프 도시로 돌아오게 되었다.

도시로 돌아온 범려는 드워프 도시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일단 제마한테 귓속말부터 해봐야지."

범려가 제마에게 귓속말을 하려는 순간, 뒤에서 범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친구! 어제 이곳에서 나간 거 아닌가?"

"아, 제마야, 널 다시 보려고 왔다."

"날 다시 보려고? 무슨 일인데?"

"다른 건 아니고, 돈 좀 빌려 주라. 나 이번에 업데이트 내용을 보고 심해의 노턴으로 가볼 생각이야."

"음, 네가 나에게 돈을 그냥 빌려 달라고 할 녀석이 아니니. 뭘 줄 거냐."

"내가 빌린 돈에 상응하는 정령석."

범려가 정령석을 주겠다고 말하자 제마는 살짝 턱을 쓰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정령석 1,000개 주라. 네가 조선소에 가서 작은 배를 구입하거나 그럴 거라는 생각은 안 든다. 아마도 최고급에 가까운 배를 원하겠지. 내가 4만 골드를 줄 테니까 정령석 1,000개를 주라."

4만 골드를 주겠다는 제마의 말에 범려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언제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4만 골드라는 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왜, 돈이 적어?"

"아, 아니. 그 반대야."

"겨우 푼돈 가지고."

제마는 이게 겨우 푼돈이라고 말했다. 그럼 저놈은 실제로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건지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3일 안에 정령석 1,000개 준비할게."

"어. 그럼 3일 뒤에 내가 귓속말 하지."

범려는 제마와 헤어진 뒤 정말 정령석 1,000개를 만들기 위해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바쁘다, 바뻐."

그는 드워프 도시에 있는 여관방을 하나 빌려서는 그 안에서 계속 정령 마법진을 그리며 정령석을 끊임없이 생산하기 시작했다.

스스슥- 스스슥-

마법진을 하나 그리고 마법진이 발동하기 전에 그 옆에 또 다른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연속적으로 마법진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바닥에 정령석이 떨어져 굴러다니기 일쑤였다.

"만들어진 정령석은 인벤토리에 넣고."

끊임없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서, 범려의 손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범려는 정말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정령석 1,000개를 만들었고, 제마의 귓속말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 정령석 천 개 만드는 것도 일이구나."

[범려야, 정령석 준비됐냐?]

"제마구나. 그래. 정령석 정확히 1,000개 준비됐다. 내가 어디로 가면 되겠냐?"

[그것보다 내가 거기로 가마. 너 어디 있냐?]

"나 여관에 있는데."

[그럼 아래로 내려와서 기다려라.]

범려는 정령성 1,000개를 준비해놓고 여관 바깥으로 나가 제마를 기다렸다.

그렇게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웬 마차가 범려의 앞에서 멈췄다.

"음? 마차?"

범려 앞에서 멈춘 마차의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제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야, 타라."

"헛! 어떻게 된 거냐. 단 3일 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일단 타고 나서 이야기해줄 테니 어서 타기나 해."

범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차에 올라타자 문이 닫히면서 마차가 곧 출발했다.

"제마야, 어떻게 된 거냐?"

"어떻게 된 거긴. 나 여기에 자리 잡았다. 집도 하나 구했고, 작은 사업체도 구했어."

"어떻게 구했는데? 집이야 나의 집 시스템이 예전에 업데이트됐으니까 그런다 치지만, 사업체라니?"

"후후후! 저번에 업데이트 알지? 조선소가 업데이트된 거."

"알고 있지."

"그 조선소, 내가 샀다."

"뭐!"

제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범려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 이거 받아라. 정령석 1,000개다."

"고마워 정령석은 자주자주 너한테 부탁할게."

어차피 정령석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범려를 통해 구하는 방법 말고는 없다.

"아, 그리고 내가 산 조선소가 어떤 조선소인지 알어?"

"아니. 이런 지하 세계에서의 조선소는 약간 이해가 안 된다. 어디 지하도라도 뚫려서 거기에서 배를 만드는 거냐?"

"맞았어. 업데이트가 되는 바람에 드워프 도시에 지하 터널이 갑자기 뚫리고, 거기에다 조선소가 하나 생겼더라고. 그래서 거기 드워프랑 이야기해서 내가 조선소를 사버렸지."

제마는 조선소를 샀으니 이제 유저들에게 이 조선소를 알리는 일만 남아 있었다.

"제마야, 너 이 도시에서 눌러 살 생각이냐?"

"그냥 집하고 조선소 하나 샀을 뿐이야. 가끔 이곳에 와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또 돈도 생기고 좋지. 그리고 여행은 계속할 거야. 새로운 연금법을 배우려면 여행은 필수잖아."

범려는 제마가 돈을 이렇게 많이 벌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얼떨결에 범려는 조선소의 주인이 된 제마에게 처음으로 수주를 넣는 유저가 된 것이다.

"아, 그리고 네가 사고 싶다는 배 있지. 지금 조선소에서 만들고 있거든. 이왕 왔으니 한번 봐야지."

"당연하지. 그런데 언제 도착해?"

"지금."

덜컹!

마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더니 제마가 먼저 내렸다. 뒤따라 내린 범려는 눈앞에 보이는 조선소의 모습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이런 일이……!"

5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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