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41화 (41/80)

제1장. 바다로

범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거대한 조선소에서 드워프들이 두세 척씩 배를 건조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제마야,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수주한 거니?"

"음, 아직 유저들에게 수주를 받은 건 아니지만 NPC들에게는 주문을 받았지. 노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아르킨인가 하는 NPC야, 자기들이 사는 군도에 해군을 양성한다고 해서 수주를 요청했어."

업데이트를 한 지 겨우 3일밖에 안 지났는데, NPC들은 발 빠르게 드워프들이 운영하는 조선소에 찾아와 수주 요청을 해댔다.

"아, 그리고 네가 사용할 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나야 좋지. 내 배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중요한 문제니까."

"그럼 아래로 내려가지."

범려는 제마를 따라서 배를 건조하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는 위에서 볼 때보다 더 많은 드워프들이 일하고 있었고, 배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배들 중에서 내 배는 어디 있는 거야?"

"네 배는 다른 곳에서 만들고 있어. 이쪽으로 와봐."

제마가 안내한 곳은 이상한 동굴로, 그 안에서는 함선이 하나 건조되고 있었다.

"이게 네 배야."

거대한 골격만 있는 상황이지만,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범려의 배는 아주 크고 튼튼하게 제작되고 있었다.

"갈튼!"

"사장님, 여기 있습니다."

제마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자, 적갈색 수염을 멋지게 기른 드워프 한 명이 다가왔다.

"소개하지. 여기는 갈튼, 함선을 만드는 전문가이자 이곳의 총책임자야."

"반갑습니다. 범려라고 합니다."

"아, 사장님이 말씀하신 분이군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둘이 이야기해 난 연금술에 대해 연구해야 하거든."

제마는 갈튼을 소개시켜 주고는 일이 있다면서 가버렸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일단 배의 설계도를 보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일반 드워프들이라면 인간에게 이런 존대는 별로 하지 않겠지만, 거금을 주고 배를 사가는 손님이다 보니 고객 관리 차원에서 존대를 하는 드워프였다.

"이게 배의 설계도군요. 그런데 생각보다 배가 큰데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배는 3층 구조로 저희들의 모든 기술력이 동원될 것입니다."

"음… 그런데 여기에 스크류가 없군요. 전 배에 스크류를 달고 싶은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스크류? 그걸 무엇에 쓰려는 거죠?"

"다름이 아니라……."

범려는 배의 맨 아래층에 스크류를 달아서 함선을 움직일 생각이었다. 물론 동력원으로 사용할 것들은 해골마들이다.

"그러니까 고객님이 원하시는 건, 배 아래층에서 말 40마리가 벨트를 타고 움직이는 동력으로 스크류를 돌리는 거군요."

즉, 헬스장에 흔히 있는 러닝머신 위에서 사람이 달리듯이 벨트를 만들어서 그 위에 해골마를 달리게 한다는 거다.

"이런 설계는 가능하시겠습니까?"

"충분히 가능한 부분입니다."

범려의 이야기대로 하려면 배의 설계를 일부 바꿔야 했지만, 큰 틀은 변화가 없기에 갈튼은 그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기로 했다.

"내일도 배를 건조하는 걸 볼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갈튼이 언제든지 와도 된다고 하자 범려가 미소 지었다.

다음 날도 범려는 조선소를 찾았다. 이번에는 해골들과 함께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갈튼 님."

"헛! 해골!"

"아, 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제 병사들은 제 명령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갈튼은 해골 병사들을 보고 잠시 놀랐지만, 범려의 말에 약간의 긴장을 풀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병사들을 데려오신 겁니까?"

"여기에 있는 해골마들 보이시죠? 벨트에는 이 해골마들이 타게 될 겁니다."

"그냥 말이 아니라, 해골마?"

갈튼은 일반 준마들이 달릴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해골마라고 하자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음… 이쪽으로 오십시오. 언데드 병사들이 배에 타는 거라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지요."

갈튼과 범려는 자리를 옮겨 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계속 나누었다. 그러면서 배의 형태는, 갈튼이 생각하고 있던 모습에서 점차 다르게 변형되어가고 있었다.

"그럼 뱃머리에 있는 충각(衝角)의 모양은 해골 얼굴이 좋겠군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렇게 며칠 동안 갈튼과 이야기를 나누자 배의 형태가 점점 진화하더니, 겉모양에서부터 내구성과 선회 능력까지 여타의 배들과는 차원이 다른 앞선 기술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럼 이런 식으로 배를 건조하면 되겠군요."

"이렇게 해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후, 범려는 더 이상 배를 어떻게 건조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고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만 확인했다.

그리고 며칠 뒤 벨트가 완성됐을 때 해골마가 스크류를 잘 돌릴 수 있는지 시험 운전을 했고,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제 보름 후에 완성되면 배를 바다 위에 띄울 수 있습니다."

"그 보름 후가 무척 기대되는군요."

범려는 흥분이 되었다. 마치 바다 사나이가 될 거 같은 짜릿함에 하루라도 빨리 배에 오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 보름 동안 뭘 할까?"

적당히 사냥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로즈나 취선과 같이 사냥하는 것에 재미가 붙어서 그들이 없이는 사냥을 해도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심심한데 룬 문자 숙련이나 올릴까."

최근에 초급에서 중급으로 숙련도가 바뀌어서 상당히 쓸모가 많았다.

"그러고 보니 내 장비에 룬 문자를 안 새겼네."

해골들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해골들 장비에나 했지, 정작 자신의 장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먼저 섬전의 창에다 룬 문자를 새겨 볼까."

범려가 창날 부분부터 자루 끝부분까지 전체적으로 룬 문자를 새기자, 어느새 룬 문자만으로 가득 메워진 창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창의 무게가 절반만큼 가벼워집니다. 공격 속도와 공격력이 5% 상승합니다.

"공격 속도와 공격력이 올랐네."

지금까지 나온 룬 문자 조합 중에서 그나마 제일 좋은 능력이 오른 것이었다.

"다른 장비들도 해볼까."

범려는 자신의 장비에 조심스럽게 룬 문자를 하나씩 새겨 나갔다.

-야수의 갑옷이 더 튼튼해집니다. 생명력 +200, 민첩성 +20.

-유니콘의 활이 더 탄력성을 가집니다. 민첩성 +22, 마나 +180.

이것 말고도 계속해서 다른 장비에도 룬 문자를 새기자, 능력치가 크게 상승하더니 오로지 스탯만으로 오른 능력치가 170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올리고 말았다.

"정말 룬 문자 조합은 중급만 돼도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는구나."

범려는 룬 문자 조합의 매력에 푹 빠져 상급으로 바꾸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숙련도가 빨리 오를까 이리저리 궁리를 했다.

"룬 문자 조합이 중급이라서 나쁜 건 아닌데, 그래도 상급이 되면 더 좋을 테니. 그런데 뭐로 숙련도를 올리지?"

[범려야, 어디 있어?]

혼자서 룬 문자 조합의 숙련도를 어떻게 올릴지 고민하고 있을 때, 로즈한테서 귓속말이 날아왔다.

"엉? 로즈네."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로즈야, 나 지금 드워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조선소에 있어."

[드워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조선소?]

로즈는 범려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드워프 도시는 지하에 있는데 거기에 무슨 조선소가 있단 말인가.

[무슨 소리야? 드워프 도시에 조선소라니, 거긴 지하에 있는 도시잖아.]

"아니.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지하 터널이 하나 더 생겼어. 그 터널은 조선소에 이어져 있고, 여기 위치가 대충 공허의 보리스 지역하고 냉혈의 아멜리아 접경 지역이야."

[거기, 육로로 가는 길이 있어?]

"아니. 여기 주변은 조선소가 있는 땅을 빼놓고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육로로 올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배를 타고 오거나 드워프 도시에서 통로를 타고 올라와야 될 거야."

로즈는 범려의 대답을 듣자마자 귓속말을 끊어버렸다.

"로즈?"

[…….]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인가?"

범려는 로즈의 대답을 굳이 기다리지 않았다. 드워프들이 만들고 있는 배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다로 나가면 어떻게 싸워야 하는 거지?"

한 번도 바다에서 전투를 치러보지 못한 범려는 그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어디… 해전에 관한 전쟁 기록들을 찾아봐야 하나."

『판게아 월드』의 바다는 현실 세계와 다를 바 없었기에 해전도 현실에서 기본적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로그아웃!"

범려는 로그아웃을 하고는 바로 인터넷을 뒤져서 해전에 관한 내용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동서양을 막론한 모든 해전 자료를 모아봐야지."

정말 닥치는 대로 과거의 자료들을 끌어 모으다 보니 어느새 상당량을 수집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자료가 많군.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 적당히 자르자."

희성은 수집한 자료 중에서 불필요한 것들은 제거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신이 운용 가능한 함선의 숫자는 겨우 한 척에 불과하다.

"크, 내가 쓸 수 있는 배가 겨우 한 척밖에 안 되니 별로 써먹을 전략이 없네."

희성은 몇 개 안 되는 전략을 천천히 훑어보면서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전부 휙 던져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배 한 척 가지고 써먹을 건 하나도 없겠어."

결국 상대의 배 위로 올라서 칼질하는 게 최고였다.

"어디 대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의 배는 설계도상으로 봐도 대포가 장착되는 배가 아니다. 드워프들이 대포를 장착하지 않는데, 다른 배라고 다를 건 없었다.

"제마한테 말해서 드워프들이 만든 발리스타를 몇 개 달아달라고 할까?"

돈 많은 친구 녀석이 드워프 조선소 사장이라 말만 잘하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당장 핸드폰으로 연락해봐야지."

희성은 핸드폰을 꺼내더니 바로 연락을 취했다.

어머! 오빠 안녕, 오랜만이야~ 왜 이렇게 전화 안 했어~

갑자기 여자 목소리가 들려와 희성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했다.

"이놈의 벨소리 언제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제마, 즉 희성의 친구인 재성의 핸드폰 벨소리였다. 적응하기 힘들 정도의 간드러지는 여자 목소리를 벨소리로 하고 있는 녀석은 이놈밖에 없었다.

(어, 그래, 나의 된장 같은 친구여. 얼마 만에 나한테 전화하는 거냐.)

"재성아,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뭐냐, 내 선에서 해결 가능한 거라면 해주마.)

"다른 건 아니고, 전에 드워프 도시에서 봤던 발리스타를 내 배에 몇 개 장착하고 싶은데 가능하겠냐?"

(정령석 500개 주라. 그럼 가능하다. 네 배에 장착 가능한 발리스타의 숫자는 최대 6개다.)

"엇! 가능하구나. 알았다. 당장 정령석 만들 테니까 드워프들에게 물건 장착해달라고 해줘."

(알았다.)

희성은 기쁜 마음으로 게임에 접속해 곧바로 정령석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게임 시간으로 일주일이 지났다.

* * *

"드디어 내 배가 바다 위에 뜨는구나!"

범려가 바다 위에 대기 중인 배를 구경하고 있을 때, 제마가 찾아왔다.

"축하한다. 배 이름은 정했냐?"

"아직 안 정했어."

"이름을 정해야지. 그래야 게임상에서 배 주인으로 등록된다."

"등록은 어떻게 하냐?"

"간단해. 네가 저 배에 가까이 가서 '네 이름은 이제 XX다'라고 하면 돼."

범려는 제마의 말을 듣고는 자신의 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더니 크게 외쳤다.

"네 이름은 이제 충무공이다!"

-지금부터 이 배의 이름은 충무공이 됩니다. 함장은 범려 님으로 등록됩니다.

함장으로 등록됐다는 메시지를 들은 범려는 미소를 지었다.

"제마야, 그런데 방은 몇 개나 되냐?"

"방 많다. 괜히 3단짜리 배가 아니니 걱정 마라. 물건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실을 수 있다."

그의 말대로 배는 3단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가장 아래층에는 해골마들이 벨트를 타고 달릴 수 있도록 장치되어 있었고, 그 위층에는 여러 개의 방과 무기고 등 물건을 담아두거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가장 위층엔 발리스타들이 있구나."

크기가 2미터 정도 되는 발리스타들이 좌우에 2개, 그리고 전방에는 발리스타 투창을 날릴 수 있게끔 충각과 연결된 해골의 두 눈이 뻥 뚫려 있었다.

"너무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 그리고 함장실은 위에 있거든. 따라와라."

제마가 함장실을 안내해주자 범려는 입이 딱 벌어졌다.

"이거 뭐냐? 호텔이냐?"

"하하하! 너무 기죽을 것 없어. 함장실이 이 정도는 돼야지."

범려는 한 번도 호텔을 구경해본 적이 없는 인간이다. 그런 그가 고급 호텔 수준의 방을 보게 되니 자연히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같이 배에 탈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어서 오라고 해. 그리고 여기서는 보급 물자 같은 걸 팔지 않으니까, 네가 직접 항구로 가서 물건을 사야 돼."

"알았다. 그런데 넌 이번에 바다로 안 나가냐?"

"이번에는 안 나가. 연금술 연구를 좀 더 해야 돼서."

그렇다면 다른 이들을 데리고 나가야 했다. 범려는 로즈를 제외한 취선과 헬렌에게 연락을 넣었고, 둘은 바로 조선소가 있는 곳으로 달려온다고 답했다. 다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지라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얘들아, 다들 배 위로 올라와라."

범려는 해골 병사들을 먼저 태운 뒤 해골마를 태웠다.

"해골마를 아래층으로 보내라."

배에는 해골마를 아래층으로 보내기 위해 특별 제작된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이 있었다.

우르르.

벨트가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간 해골마들은 각자 자신들이 서야 할 자리를 아는 것인지, 질서정연하게 벨트 위에 올라가더니 자리를 잡고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았어. 해골들은 준비 다 됐고, 그런데 돛대는 왜 달아놓은 거지?"

범려의 배는 솔직히 돛대가 필요 없다.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진 해골마들이 배를 움직이게 될 것이니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에구, 이왕 달아놓은 거 떼어버리기는 아까우니 내버려 두자. 그런데 배의 내구력이나 상세한 제원은 어떻게 보지?"

배의 제원을 보기 위해 독특한 메뉴가 없나 찾는 사이 제마가 옆에 왔다.

"뭐 하는 거냐?"

"제마야, 잘 왔다. 이 배의 내구도나 그런 거 보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함선 정보라고 외치면 돼."

"아하! 함선 정보!"

-충무공호

길이:43m 폭:15m

층수:3층 구조

내구력:15,000/15,000

최대 적재량:10t

최대 속도:14knot(해골마 사용 시 최대 속력)

무장:발리스타 6기

배의 크기는 『판게아 월드』에서 나온 것치고 작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말할 정도도 아니다.

"근데 내구도가 15만이네. 이거 많은 건가?"

"내구력 15만이면 생명력이 15만인 것과 동급이야. 전투 중에 수리는 불가능하지만, 전투 끝나고 자재를 실어놓고 있으면 수리도 가능해."

"좋은데? 그럼 내 해골 병사들이 수리가 가능하려나."

"NPC 고용해. 항구에서 고용할 수 있어. 항해사도 고용하면 바다에서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지."

"음, 그런 녀석들은 해골들로 대체하고 싶은데."

범려는 해골들을 이용해 바다를 누비고 싶었다. 항해사 같은 것들을 고용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럼 내가 수리 관련해서는 드워프 한 명을 여기에 붙여 줄게. 배 수리하는 건 해골들 시켜 봐. 항해사 고용할 돈 안 되면 네가 직접 항해 스킬을 배우고. 책은 여기 있다."

제마는 항해에 관련된 스킬 북을 가지고 있었다.

"어, 너 이 책 어디서 난 거야?"

"조선소에서 넘쳐 나는 게 항해 스킬 북이다."

제마는 범려가 불편함을 겪지 않게 스킬 북을 통해 배우게 했다.

-초급 항해[패시브]

배를 조종하게 됩니다. 거친 바다를 여행할 때 좀 더 원활하게 배를 몰게 됩니다.

항해 속도 5% 상승

제마는 범려가 항해 스킬을 배우자, 배에서 내리더니 드워프 한 명을 배 위로 올려 보냈다.

"아, 갈튼 님?"

"이거, 범려 님을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전 갈튼 님이 해골들에게 배 수리를 가르치러 오시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이 갈튼, 해골들을 최고의 배 수리공으로 만들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사실 범려는 해골들이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광산의 경우 단순히 곡괭이질만 하면 되니 별문제가 없었지만, 배를 수리하는 것은 광산일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얘들아, 다들 모여 봐라."

해골들은 범려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그 앞으로 갈튼이 나타났다.

"그동안 잘 지냈는가, 병사들!"

갈튼은 해골들 앞에서 당당하게 소리치며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 뒤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나는 다름이 아니라 그대들에게 이 배를 오랫동안 보호하고 관리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이곳에 올라왔다. 다들 내 말을 알아듣겠는가!"

척! 척!

해골들은 갈튼의 말을 이해라도 했는지 자신들의 오른손을 들어 각자의 왼쪽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좋다! 너희들이 배울 기술은 배를 수리하는 법이다! 배울 수 있겠나!"

해골들이 다시 한 번 손을 들어 왼쪽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감을 표현하자, 그 순간 범려의 눈이 번뜩였다.

'추가로 스킬을 배울 수 있구나!'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된 범려는 인벤토리 안에 있는 블리자드 마법서를 천천히 바라봤다.

'혹시 이것도 배울 수 있나?'

마법사들이 있으니 어찌 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마법서를 구하러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할 판이었다.

'지금 당장 확인할 필요는 없겠지. 일단 해골들이 선박 수리 스킬을 배우고 난 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해골들이 선박 수리에 관한 강습을 갈튼에게서 듣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범려의 눈앞에 작은 메시지가 하나 떴다.

-선박 수리[패시브]

자신이 타고 있는 선박을 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수리할 수 있는 공구와 자재가 있을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진짜로 배우게 될 줄이야."

이걸로 어디 가서 배가 망가지거나 해도 자재만 있다면 수리가 가능하게 될 것이었다. 범려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인벤토리에 있는 블리자드 마법서를 보았다.

"블리자드 마법을 해골 마법사들이 배울 수 있겠구나."

더 이상 헬렌 혼자서 마법을 부리는 시대는 안녕이다. 진정한 마법사들의 마법이 난무하는 광란의 시간이 찾아오려 하고 있었다.

"자, 다들 알겠는가!"

해골들은 갈튼의 말에 다 같이 이해했다는 뜻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고, 범려는 갈튼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갈튼 님."

"아닙니다, 범려님."

갈튼이 내려가고 뒤이어 제마가 몇몇 드워프들과 같이 올라왔다.

"범려야, 정령석 50개만 주라."

"왜 또 50개냐."

"내가 배 수리할 공구하고 자재를 줄게. 그 대신 정령석 50개."

"알았다. 기다려라."

범려는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정령 마법진을 그리면서 혼자서 정령석을 계속 만들기 시작했다.

제마는 그 모습을 한 번 보더니 드워프들을 불러서 선박 수리에 필요한 공구와 자재들을 배 안에 선적하도록 명령했다.

제마는 자재를 다 옮기고 범려 옆으로 오더니 작은 소리로 말을 꺼냈다.

"완성되어가나?"

"잠시만 기다려라. 금방 만든다."

"너, 이번에 바다에 나가면 뭘 할 거냐?"

"흐흐흐,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해적 소탕이지."

범려는 의미심장한 웃음과 함께 정령석을 계속 만들었다. 하지만 제마는 해적 소탕이라는 말에 약간 의문을 품었다.

"『판게아 월드』에서 해적은 지금까지는 없었어."

"그렇지, 지금까지는 없었지. 하지만 해적들이 판을 치게 될 거야."

범려는 호언장담을 했다.

"그럼 해적들을 소탕하러 다니면 부수입이 있어야 할 거 아니냐."

"물론이지. 내가 해적들의 배를 탈취할 거야. 그 배를 네가 사주라."

"배를?"

제마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후후후… 좋아, 내가 사지. 하지만 상품 가치 떨어지는 배는 취급 안 한다."

"당연하지. 나도 상품 가치 떨어지는 배는 안 팔아."

둘은 악수를 하면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 * *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 사악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때마침 로즈 일행들이 드워프 조선소로 들어서고 있었다.

진한 목향(木香)이 풍겨 오는 조선소에서 거대한 배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작은 나무에서 거대한 목조 건축물로 탈바꿈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범려는 어디 있지?"

로즈는 조선소에서 느껴지는 목향과 드워프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범려만 찾고 있었다.

"이거, 널려 있는 게 배들이다 보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취선은 수많은 드워프들이 배를 몇 척씩 동시 건조하고 있었기에 어떤 배가 범려의 배인지 알 수 없었다.

"로즈야, 범려한테 귓속말 넣어서 어디 있는지 물어봐."

"알았어, 언니."

헬렌은 로즈에게 귓속말을 부탁했다.

"범려야, 지금 어디 있어?"

[어, 로즈 왔네. 다른 사람들은?]

"다 같이 왔어. 그런데 여기 배들이 너무 많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아, 8번 부두로 와. 나 거기 있어.]

"알았어."

로즈는 귓속말을 종료하더니 헬렌과 취선을 데리고 8번 부두를 찾아갔다.

"8번 부두, 8번 부두… 찾았다!"

8번 부두에 도착한 로즈 일행의 눈앞에 정말 커다란 배가 정박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로즈가 늘 봐왔던 해골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야, 배 크다."

배 위에 오른 로즈 일행은 해골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범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범려야."

"어, 왔어?"

로즈는 빠른 걸음으로 범려에게 다가가더니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우리를 부른 거야?"

"다른 게 아니라 바다를 누비며 여행을 하고 싶어졌거든. 역시 남자라면 거친 바다를 여행하면서 인생을 즐겨야 하지 않겠어?"

"형님! 역시 바다는 남자의 로망 아니겠습니까!"

취선 역시 범려와 같이 저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사나이의 로망을 꿈꾸고 있었다.

"아!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얘들아! 출항 준비를 해라!"

범려가 해골들에게 출항 준비를 명령하자, 부두의 드워프들이 비트(배를 부두에 붙들어두기 위한 쇠기둥)에 묶여 있던 홋줄(배를 비트에 묶어 붙들어두는 밧줄)을 풀어 배 위로 던져 주었다. 그러자 해골들은 기다란 막대기로 배를 힘차게 밀면서 부두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범려는 키를 잡더니 그 옆에 있던 작은 관을 열고는 크게 소리쳤다.

"후진!"

그러자 가장 아래층에 있던 몇몇 해골들이 해골마를 하나 둘 달리게 만들었고, 배 아래에 있던 스크류가 조금씩 돌아가면서 배가 서서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범려는 키를 잡고 배의 방향을 돌리더니 다시 작은 관을 향해 소리쳤다.

"전속 전진!"

배가 한참을 뒤로 빠지다가 멈추더니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점점 속도를 냈다.

"돛을 내려라!"

펄럭!

수많은 돛들이 해골들의 손에 의해서 펼쳐지더니 제대로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밑에서는 스크류가 돌면서 배를 몰고, 위에서는 돛이 활짝 펼쳐져 강한 바람이 앞으로 밀고 있었다.

"여기서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면 보리스 지역의 항구가 나온다고 했지?"

충무공호는 공허의 보리스 지역에 있는 항구를 향해 첫 항해를 시작했다.

"우욱! 속이야……."

"으읍!"

『판게아 월드』에서는 너무나 필요도 없는 것을 구현해놓았다. 그건 바로 뱃멀미였다.

헬렌과 취선, 로즈는 뱃멀미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범려는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후… 괜찮아?"

"아니, 괜찮지 못해. 으윽!"

다들 머리가 무겁고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파도가 그나마 잔잔한 해안선을 따라 이동을 하는데도 범려를 제외한 3명은 죽을 것같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 막막하군."

범려의 항해 숙련은 겨우 초급 수준이다. 자연히 배 조종이 미숙하고 거칠 수밖에 없었다.

"왜 항해사를 돈 주고 고용하라는지 이해하겠다."

처음에 제마가 항해사를 고용하라고 했을 때 '항해사를 고용할걸' 하고 생각했지만 이미 범려 자신이 초급 항해 스킬을 배웠으니 항해사 고용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이왕 배운 거, 열심히 운전해서 숙련도나 올려야지."

"으윽, 힘들어. 나 먼저 선실로 돌아갈게."

"그래, 로즈야 들어가."

"형님, 저도 힘들어서."

다들 초췌한 얼굴로 선실로 돌아가 버리자 범려 혼자서 배를 조종하게 되었다.

"뱃멀미에 적응될 때까지는 혼자서 열심히 해야겠군. 아, 그러고 보니 해골들 스킬을 배울 수 있었지?"

범려는 해골 마법사들을 불렀다.

"마법사! 마법사들 다 집합!"

한참 일을 하던 해골 마법사들은 범려의 부름에 갑판으로 나와서 정렬했다.

"이거 받아라!"

범려는 그들에게 블리자드 마법서를 하나 툭 던지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익힐 수 있지?"

해골 마법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걸 연구해서 다들 마법을 익혀라."

그의 명령에 해골 마법사들은 블리자드 마법서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녀석들이 알아서 토론하고 연구하겠지."

범려는 해골 마법사들이 어떻게 마법을 익힐지 그게 제일 궁금했다.

* * *

보리스 지역에 있는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게임 시간으로 5시간이 흐른 뒤였다.

"후, 여기가 항구인가."

보리스에서 최남단에 위치한 이곳은 폴리항이었다. 항구에는 이미 여러 배들이 정박해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유저들의 것보다 NPC들이 운영하는 선박들이 많았다.

"다들 접안 준비를 해라!"

해골들은 범려의 명령대로 배를 대기 위해 홋줄을 부두에 있는 사람들에게 던졌고, 홋줄을 받은 NPC 인부들은 비트에 묵어 배를 단단히 고정시켜 주었다.

"내려갔다 올 테니까 너희들은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범려는 필요한 물자를 사기 위해 항구에 있는 무기 상점을 찾아다녔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무엇을 찾으십니까?"

"화살하고 투창을 좀 사려고 왔습니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화살은 500만 개, 투창은 50만 개."

범려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숫자가 튀어나오자 무기 상점 주인은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하하! 손님, 아주 통이 크시군요. 많은 양의 화살과 투창을 구입하시니 저희가 어느 정도 할인을 해드리겠습니다."

"30퍼센트 할인되나요?"

"어이구, 물론입니다. 계산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돈 여기 있습니다."

범려는 그 자리에서 금화를 들이밀고는 3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화살과 투창을 구입했다.

상점 주인은 얼른 금액을 확인하더니 아주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손님, 물건은 어디로 배달해드릴까요?"

"부두에 정박해 있는 배 중에서 충무공호가 있을 겁니다. 거기로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다음으로 항해에 관련된 스킬 북을 사기 위해 항구 서점을 찾아 움직였다.

"폴리항 서점."

항해에 관련된 초급 스킬 북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이야, 역시 서점은 분위기부터 다르네."

서점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책을 고르고 사가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초급 항해에 관련된 서적이……."

범려는 항해 관련 책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해도(海圖)

지금까지 발견된 심해의 노턴 지역의 지도다.

심해의 노턴에 관련된 지도는 극히 일부분만 밝혀져 있었다. 다른 지역과 다르게 바다라는 특성과 유저들이 직접 밝혀지지 않은 곳을 탐험하라는 『판게아 월드』 측의 배려이기도 했다.

"음, 지도는 항상 구입해야 하는 필수 항목 아이템이지."

불확실한 지도임은 확실하지만, 다른 지역 연안 항구와 노턴 군도에 있는 핵심 항구 같은 경우에는 확실히 표시가 되어 있어서 항구를 찾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듯했다.

"그리고 내가 스킬로 배운 초급 항해서."

범려는 해도와 함께 항해서 두 권을 사버렸다.

"나 혼자 계속 키를 잡을 수가 없으니 두 녀석 정도는 항해스킬을 배우게 하면 여유 있게 부려먹을 수 있겠지."

책을 사들고 다시 배로 돌아오자, 때마침 선적할 물건이 도착해 있었다.

"음, 잘됐군. 얘들아, 화살과 투창을 배에 실어라."

그의 명령에 병사들은 우르르 내려가 투창과 화살을 배 안으로 선적했고, 범려는 마법사를 제외한 다른 병사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얘들아, 너희 중에 혹시 이걸 배워보고 싶은 녀석 없냐?"

범려는 두 권의 초급 항해서를 들고는 해골들에게 권유했다. 그러자 해골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뭔가 이야기를 하는 듯하더니, 잠시 후 정확히 두 녀석이 앞으로 나왔다.

"망구다이 한 명, 개마 기병 한 명."

딱 능력치 좋은 녀석 둘이 나오자 범려는 해골들 사이에서 어떠한 서열이 존재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신기하게 가장 레벨이 높은 녀석들이 앞으로 나왔어.'

약간 의아했지만 그래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자, 책을 받아라."

책을 받은 해골들은 얼른 내용을 읽고 싶은지 배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제 할 일은 다 했으니 지도를 보면서 어디로 갈지 정해볼까?"

노턴 지역의 해도를 보던 범려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찡그려졌다.

"정말… 이것도 지도라고 파는 건가."

지도에는 대륙 연안 몇 개의 항구와 노턴 지역 몇몇 군도의 항구만이 표시되어, 나머지 부분은 백지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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