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스승의 분노
"궁귀 님, 이렇게 바다에 나오니까 좋습니다."
"하하하! 부회장도 바다에 나오니 좋은가 보지? 하긴 바다는 사나이들의 로망이니 싫지가 않겠지."
범려의 스승인 궁귀는 궁도협회 회원들과 같이 자금을 모아서 100명이 움직일 수 있는 배를 하나 구입했다. 물론 그중 70퍼센트는 궁도협회 회장인 안서진이 부담했다.
"그런데 배를 사는 데 얼마나 돈이 들어간 거지?"
"네, 회장님."
회장님이라는 말에 궁귀의 눈빛이 찌릿찌릿하게 바뀌자 부회장은 급하게 말을 바꾸었다.
"정정하겠습니다. 궁귀 님, 배를 구입하는 데 총 7억 골드가 들었습니다. 중고를 구입할 수가 없어서 새 걸로 샀습니다."
"얼마 안 들었군. 그런데 제자 놈은 어디 가서 뭐 하는지 연락도 없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범려가 너무나 매정하게도 자신에게 연락도 잘 안 하자 약간 속이 상한 궁귀였다.
그때, 협회 회원이 큰 소리로 외쳤다.
"거대 해파리 무리입니다!"
"별 쓸모도 없는 해파리들이 오는구나."
"어떻게 할까요?"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잘됐다."
궁귀가 거대 해파리 무리를 잡기 위해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자, 다들 시위에 화살을 재더니 활을 가득 당겨 발사 명령을 기다렸다.
"녀석들이 사정거리에 들어올 때까지 쏘지 마라."
궁귀는 차분한 목소리로 명령하면서, 가장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거리 안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
"지금이다."
100여 개의 화살이 동시에 거대 해파리 무리에 날아들자, 그 흐물흐물한 몸에 구멍이 숭숭 뚫리면서 해파리들은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놈들이 다가온다. 배에 도달하기 전에 잡아라!"
『판게아 월드』의 해파리들은 현실과 다르게 상당한 운동량을 자랑한다. 한번 배에 올라타면 그 흐물흐물한 촉수로 극독을 주입해 유저들을 괴롭히는 최고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해파리 숫자가 얼마나 남았나?"
"8마리 남았습니다!"
"좋아, 한 번에 한 마리씩이다. 알겠지!"
"예! 궁귀 님!"
궁귀는 웃으면서 활을 가득 당기더니 해파리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협회에 속한 사람들은 거대 해파리를 정말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죽였고, 딱 아홉 번의 화살 세례로 거대 해파리 무리 하나를 전멸시켰다.
"음, 가벼운 운동 정도는 됐군."
"궁귀 님, 아이템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버려. 그거 팔아봐야 돈도 안 나오잖아."
협회 부회장은 궁귀의 말에 따라 해파리에서 나온 아이템을 확인만 하고, 별 필요 없는 아이템으로 판명되면 가차 없이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정말 돈 안 되는 해파리 녀석들."
누가 잘 먹지도, 잡지도 않는 인기 없는 것들은 될 수 있으면 잡지 않는 쪽이 이득이었다.
"궁귀 님, 해파리만 잡다가는 손해만 보겠습니다."
"휴, 어쩔 수 없지. 고래를 찾아봐야겠군."
바다에서 최고의 황금 몬스터는 단연 고래다. 『판게아 월드』에서 유일하게 몸 전체가 아이템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래는 한번 잡으면 천 단위 골드를 벌어들일 수 있지만, 보스로 취급되며 레벨도 240이나 되는 최고의 괴물이다.
"하지만 어디서 나타나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잡는단 말이냐?"
"제가 그래서 좋은 정보를 하나 얻어왔습니다. 현실 시간으로 7시간마다 출몰한다고 하는 지점입니다."
"무명이 아주 좋은 정보를 들고 왔군."
협회 부회장인 무명은 올해 나이 40으로, 생각보다 젊은 나이에 능력을 인정받아 궁도협회 부회장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이곳 위치가 남쪽이군."
"네.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의 남쪽 바다입니다. 이곳은 남극처럼 춥다고 알려져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겠군."
궁귀는 딱 한 번,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에 들어가서 며칠간 사냥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분명 사냥감이 많고 유저가 없어서 레벨 업에 최적인 장소였지만 동시에 엄청난 추위로 인해서 사람들의 옷차림은 은연중에 두꺼워졌고, 하루에 두 번 몰아치는 눈보라에 얼어 죽기도 했다.
"두꺼운 옷을 준비해서 최소한 얼어 죽는 것만은 방지해야겠지."
"알겠습니다, 궁귀 님."
무명은 궁귀의 명령대로 가까운 항구로 돌아와 두꺼운 겨울옷을 구매했다.
"그럼 고래 사냥하러 가자."
"고래! 고래!"
협회 회원들도 고래가 돈이 되는 것을 알기에 다들 환호했다. 한 마리만 잡으면 한 사람당 적어도 10골드 이상을 벌어들이는 살아 있는 금광이었다.
"남쪽으로 배를 돌려라!"
펄럭펄럭!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자, 돛이 활짝 펼쳐지면서 배가 바람을 타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고래 10마리만 잡자!"
고래 10마리면 한 사람 앞에 최소 100골드라는 돈이 떨어진다. 나중에 배 수리비나 화살 값을 제외해도 60골드가 순이익으로 남을 것이다.
"흑검 형님, 걸렸습니다."
"정말이냐?"
"네. 저희가 의도적으로 퍼트린 정보를 듣고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후후후, 당장 출발한다. 이 기회에 돈 좀 만져야겠다."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형님. 저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도 온다고 들었습니다."
"상관없다. 어차피 그놈들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 이상 손댈 필요 없으니까."
흑검은 당장 배를 출발시키더니 제일 큰 돈벌이가 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제 바다는 천국이자 지옥이 된다."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면서 바다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궁귀 님, 이제 곧 있으면 고래가 있는 지역에 들어가게 됩니다."
"부회장, 사람들에게 30명씩 2시간 간격으로 교대하면서 쉬라고 해."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일단 그렇게 하게."
"아, 알겠습니다."
무명은 궁귀의 말대로 사람들을 3교대로 보초를 서게 하고, 2시간씩 휴식 시간을 주었다.
"여기는 아무리 봐도 고래가 있는 곳이 아니야."
고래가 있다는 곳에 도착한 궁귀는 그곳이 절대로 몬스터나 다른 동물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작은 새들도 없어.'
얼음이 있는 곳이면 항상 보이던 펭귄도 눈에 들어오지 않자 일이 뭔가 단단히 꼬였음을 알게 되었다.
'뭔가 있다.'
궁귀는 회원들을 시켜서 천천히 배를 몰도록 한 후,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의외로 주변에 숨을 곳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중에서 적당한 곳을 골랐다.
"다행히 배 한 척 정도 숨길 수 있는 공간은 있어. 이 정도 크기의 배를 여기다 가져다놓고 조용히 숨어 있으면,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 수 있겠군."
궁귀는 자신의 배를 조심스럽게 숨겼다.
"음, 이곳에서 배를 숨기고 기다리는 게 최고겠어."
그리고는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남몰래 지켜보았다.
궁귀가 고래가 있는 곳으로 도착하고 나서 몇 시간 뒤, 다른 유저들도 큰 배를 이끌고 하나 둘씩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런 곳에 고래가 나온다는 정보를 어디서 얻은 거야? 그리고 우리만 알고 있는 게 아닌데?"
다른 유저들도 고래가 나온다고 해서 확인차 나오기는 했지만, 막상 와서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아닌데. 분명 비밀리에 정보를 얻었는데."
"저기 또 배가 오네."
이번에는 하나 둘이 아니라 적어도 10척이 넘는 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무래도 이거 이상하다."
하나 둘도 아니고 많은 배들이 갑자기 몰려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급하게 방향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으하하하! 다들 배를 이 몸에게 바쳐라!"
"해적이다!"
많은 배가 몰려 있다 보니 해적들이 유저들의 배를 강탈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해적들이 나타났다! 녀석들은 겨우 한 척이다!"
그렇다. 해적이라고 나타난 배는 겨우 하나고 반대로 고래를 잡겠다고 온 배들은 30척이나 됐다.
"우리 모두 해적들을 잡아 죽이자!"
30척이나 되는 배가 동시에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자, 놀란 것은 해적선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혼자 오는 게 아니었는데."
해적들은 자기들끼리 노략질을 해보려다가 오히려 공격당할 위기에 처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뱃머리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놈들아! 어서 움직여! 여기서 공격당하면 맨몸으로 바다를 헤엄쳐야 한다!"
해적선장은 필사의 각오로 배를 돌려서 겨우겨우 도망쳐 나오다, 반대편에서 유유히 이쪽으로 오는 배를 하나 발견했다.
"선장님, 배가 꽤나 큰데요."
"그러게 말이다."
쉬이익!
그때, 화살 하나가 날아오더니 선장 바로 앞에 떨어졌다.
"헉! 전투 준비! 적이다."
해적들이 순식간에 전투 준비를 빠르게 마치고 큰 배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자, 이번에는 더 많은 화살이 날아들었다.
"우리도 화살을 쏴라!"
해적들도 유저들이라 궁수들이 끼어 있어서 상대방을 향해 화살을 쏘며 응수했다.
"해적들을 잡아라!"
큰 배에서 외침이 들려오는 동시에 그 위에서 웃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후후후, 내 먹이를 노린 놈은 철저한 응징을 해줘야지."
"흑검 형님, 해적선은 손쉽게 접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해적들을 정리하고 두 명 붙여서 저 배를 몰고 가 항구에 팔아 치워."
"예! 흑검 형님."
흑검 역시 해적질을 하면서 유저들의 배를 강탈할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것이다. 더군다나 고래가 나온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 이가 바로 그였다.
흑검이 운영하는 우산 길드는 해적선을 순식간에 정리하고 녀석들의 시체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심해의 노턴에서는 유저들의 시체를 바다에 던지면 배에서 부활하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 부활하게 된다.
"해적들이라 배를 너무 험악하게 다뤄놨군. 이런 상태의 배라면 4천 골드도 겨우 받아내겠어."
흑검은 해적들의 배가 너무 형편없어서 돈을 많이 받지 못할까 걱정이었다. 우산 길드가 배 한 척을 구하기 위해 투자한 돈은 12억 골드나 되었기에, 하루 빨리 이 돈을 복구하지 않으면 길드가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괜히 바다로 나온다고 한 건가? 어차피 나중에는 이 배를 다시 팔아치워야 하는데."
"흑검 형님, 저쪽의 배들이 고래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떠나려고 합니다."
"이것들이 잠시 생각할 틈도 안 주고 가려고 하네. 절대로 그럴 수는 없지. 당장 녀석들을 쫓아라!"
흑검은 곧장 녀석들을 쫓아가라면서 재촉했고, 배 한 척이라도 더 포획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음, 이제 슬슬 바깥으로 나가도 되겠군."
궁귀는 방금 해적 한 척이 왔다가 다른 녀석들에게 오히려 쫓겨 가는 입장이 되어 도망가는 모습에, 조심스럽게 배를 끌고 나오다 상당히 커다란 배를 보고는 놀라고 말았다.
"무슨 배가 저리도 크지?"
겨우 7억 골드를 가지고 만든 배와 12억 골드를 투자해서 만든 배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다들 전속력으로 이곳을 벗어난다!"
궁귀는 저 큰 배가 왠지 불안하다고 느끼고 황급히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해적이 나타났다."
"뭐야! 무슨 배가 저리도 커!"
흑검이 운영하는 배는 그 크기가 다른 여타 다른 배들과는 심하게 차이 날 정도로 컸다.
"공격해! 배가 아무리 커도 적은 저 배 하나다!"
다른 유저들은 우산 길드에서 쓰는 배가 크기는 하지만 한 척이라면서 용기를 불어넣었지만, 우산 길드의 마스터인 흑검도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하하하! 작은 배 가지고 뭘 어쩌겠다는 거야! 본보기를 보여 줘라!"
"예! 마스터!"
길드마스터인 흑검의 명령이 떨어지자, 우산 길드원들은 거침없이 무기를 들고 상대편 배로 뛰어들거나 화살을 쏘면서 무차별적인 공격을 펼쳤다.
"아니! 저건 해적?"
검은색 깃발에 해골 마크가 그려진 배를 보더니 궁귀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여기서 해적을 볼 줄이야."
바다에 나와서 해적을 못 본 건 아니다. 궁귀가 타고 있는 배가 그리 크지 않다 보니 그와 비슷하거나 만만한 해적들이 종종 덤벼들기도 했다.
하지만 해적들은 배에 달라붙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고, 그 배를 두어 번 팔아치운 적도 있었다.
"궁귀 님, 저놈들과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물론이지. 저런 해적들은 그냥 놔두면 안 되지!"
정의에 불타는 궁도인 궁귀였다.
"당장 배를 몰아라. 해적들에게 우리의 따끔한 화살 맛을 보여 주자!"
협회 사람들은 활 사정거리에 맞춰서 배를 움직였고, 딱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배를 멈추더니 그대로 활을 당겼다.
쉬이익! 쉬이익!
"크악!"
"뭐냐, 어디서 날아온 화살이냐?"
협회 사람들이 날린 화살들은 우산 길드원들의 몸에 거침없이 쑤셔 박히면서 그들에게 압박을 가했다.
"저쪽이다! 저쪽에서 화살이 날아온다."
"배를 움직여서 저쪽으로 가야 한다!"
"멈추지 말고 화살을 쏴라! 녀석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우리가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다."
궁귀는 사람들을 독려하면서 녀석들을 수세에 몰아넣으려고 했지만, 그들의 배가 너무 크고 생각보다 위에 있다 보니 화살에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으악!"
"저 배를 공격해라!"
"저희 궁수들보다 바깥에서 공격합니다."
"그럼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면 될 거 아니야!"
흑검은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으며 배를 곧장 전진시키더니 궁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갈 것을 명령했다.
"적이 옵니다!"
"감히 해적 따위가 내 배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다니! 어림없다!"
궁귀는 버럭 소리를 쳤는데, 그 모습이 삼국지의 관우가 격분한 모습 같았다.
"멈추지 말고 쏴라! 녀석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자!"
"예!"
궁귀는 우산 길드를 향해 화살을 날렸고, 다른 사람들은 모든 시선이 궁귀가 있는 배로 쏠리자 그 틈을 타서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저 길드와 계속 싸우면 분명 배가 털릴 거야."
다들 자기 배들이 소중한지, 아니면 돈에 대한 미련이 남은 건지 도망치기 급급했다.
"이런,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을 치다니!"
궁귀는 같이 싸우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자신들 쪽이 조금 불리하다고 느꼈는지 꽁무니를 빼는 모습에 분개했다.
"이런 미련한 것들! 싸움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꼬리를 말다니!"
"궁귀 님, 이대로 가면 저들이 배에 올라옵니다."
"후퇴한다! 이대로는 저들을 이길 수 없다."
궁귀는 이를 갈면서 뱃머리를 돌려 물러나야 했다. 그 모습에 흑검은 누구의 배도 빼앗지 못하고 도망가는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저 궁수들 때문에 배 한 척 빼앗지 못하고 물러나야 하다니!"
흑검은 궁귀가 있는 배를 보면서 다음 척살 대상으로 지목했다.
"해골 제작자를 잡고 난 뒤 너를 잡아주마."
"저 배를 기억해라, 부회장."
"예, 궁귀 님."
"당장 제자 녀석에게 연락을 취해야겠어. 이 바다에는 너무 많은 해적들이 판을 치고 있어서 안 되겠다."
궁귀는 서슴없이 제자에게 귓속말을 날렸다.
"제자야."
[앗! 스승님,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별고 있었다. 당장 내가 있는 곳으로 와라."
[스승님, 제가 지금 육지에 있어서 금방은 가기 힘들고 한 시간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알았다. 그럼 일이 끝나는 대로 아프로항으로 와라."
[네, 스승님.]
범려는 귓속말을 끊고서 바로 노턴 지역의 알라마 군도에 있는 아프로항으로 갈 준비를 하라고 해골들에게 명령하고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음… 다급하지 않으면 날 찾으실 분이 아닌데, 무슨 일이지?'
범려는 지금 드워프 도시에 돌아와서 부장이 장비할 무기와 여분의 무구를 주문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해골들이 쓸 무기와 갑옷이네."
"감사합니다, 반트 님."
"하하하!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인가. 자주 우리를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 난 기쁘다네."
드워프 도시의 대장장이 반트는 전에도 무구를 만들어줬는데, 이번에도 미스릴만 받아서 무상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나? 요즘 바다로 많은 사람들이 가는 것 같은데."
"저도 바다에 나갑니다. 저의 스승님이 급히 오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음, 그래? 뭐, 스승이 찾는다니 가봐야겠지. 그래도 종종 이곳을 들러주게."
"네."
물론 다음에도 이곳에 올 예정이었다. 해골들의 무구를 여기만큼 잘 만드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조선소로 가볼까."
범려의 배는 지금 드워프 조선소에 정박해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 조선소에선 배를 정박시킬 수 없는데 제마가 조선소 사장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우, 그러고 보니 미스릴 얻고, 배 수리한다고 제마한테 정령석을 400개는 준 것 같네."
범려는 시간 날 때마다 정령석을 만들어 조선소에 오자마자 제마한테 주고 배 수리와 함께 미스릴을 받았다. 제마도 항상 철을 구입해 미스릴로 변환하고 있었기에 여유분이 넘쳐 나는 상황이었다.
"후, 어서 배로 가야지. 스승님이 부르는데 더 이상 지체하기도 그렇고 말이야."
범려는 조선소로 해골마를 타고 달려가 바로 배 위에 올랐고, 도착하자마자 심해의 노턴에 있는 아프로항을 향해 항로를 잡았다.
"아프로항으로 출발!"
충무공호는 최대 속력으로 항해를 했다. 그에 거센 파도가 일었지만 그걸 거침없이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근데 이 둘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범려는 로즈 남매가 며칠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큰일이라도 나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다.
"오늘은 퀘스트 끝났나?"
"로즈!"
"범려야!"
로즈는 범려를 보더니 한달음에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너무 보고 싶었어."
그 말을 들은 범려는 가슴이 찡하고 울리는 느낌에 로즈를 품에서 놓지 못했다.
"그런데 언제 돌아온 거야?"
"며칠 안 됐어."
"이번에는 어디 가는 거야?"
"스승님이 부르셔서 아프로항으로 가는 중이야."
"스승님?"
로즈는 처음으로 범려의 스승님의 존재를 알았다.
"너한테 스승님이 있었어?"
"아, 내가 이야기 안 했구나. 나에게 활을 가르쳐 주신 분이야."
그 말을 들은 로즈는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그분도 활 실력이 대단하시겠네."
"물론이지. 엄청난 분이야. 내가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으니까."
"저, 정말?"
로즈는 범려가 단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는 말에 눈이 크게 치떠졌다.
"스승님 실력이 그렇게 대단해?"
"응, 정말 대단하지."
범려의 눈빛이 존경으로 가득 차자 로즈는 새로운 모습을 봤다면서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제발 두 사람, 그만 좀 붙어 있으면 안 돼? 어디 애인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언니!"
뾰족한 음성의 주인인 헬렌이 접속하며 모습을 드러내자, 로즈는 범려의 품에서 나와 헬렌에게 안기며 좋아라 했다.
"언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에휴,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
헬렌은 로즈를 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과거의 일은 깨끗이 잊어버렸다.
"누나,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요."
"아, 아니야. 내가 시기해서 그런 것뿐인데."
헬렌은 스스로가 애인이 없다는 것을 한탄했지만, 어떻게 보면 운이 없는 그녀였다.
"언니, 기운 내. 조만간 좋은 사람 나타날 거야."
"그래, 내가 할머니 됐을 때?"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을 거야."
로즈는 헬렌을 위로해주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다.
"그런데 취선은 왜 안 오는 거야?"
"소개팅 하러 간댔어. 오늘은 못 올 거야."
헬렌도 취선 나이 때는 이리저리 소개팅에 불려 나간 적도 많았다.
"음… 뭐, 그 나이 때는 한창 바쁠 테지."
"다들 이야기 도중에 미안하지만, 갑판 위에서 그러고 있으면 배가 움직이는 데 방해되니까 선실로 들어가 주실래요?"
범려는 해골 병사들이 지나가는 자리에 떡하니 길을 막고 서 있는 두 사람을 선실로 돌려보냈고, 해골들은 배를 열심히 조종하면서 속력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프로항까지 얼마나 걸리겠나."
"제가 항해 스킬을 배운 적이 없어서 정확히 답변해드리지 못합니다."
해골 부장은 범려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항해 스킬을 배운 녀석은 지금 저 위에서 키를 잡고 배를 열심히 조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항구에서 네가 배울 스킬들을 사야겠군."
"감사합니다, 장군님."
"감사할 건 없고, 어차피 네가 잘돼야 나도 좋거든."
범려는 해골 부장이 잘되는 길이 최고의 결과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후후후, 네놈이 잘 크면 내 앞날은 아주 밝은 미래가 되니까 이러지.'
해골 부장이 해골들을 통솔하면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줄여 주자, 범려는 부장을 하나 더 만들까 생각했다.
"한 녀석만 더 만들면 해골 병사들의 숫자도 늘어나니 또 만들까?"
해골들의 상태를 확인하던 범려는 다음 부장이 되는 녀석을 찾게 되었다.
"음, 목록을 보니 대략 부장을 동시에 5명을 만들 수 있구나."
동시에 5명의 부장을 만들게 되면 해골 병사들의 숫자가 크게 격감하기는 하지만, 병사가 아닌 장교의 탄생은 그 급이 달라지기에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부장을 5명 더 만드는 거야."
범려는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25명의 해골들이 사라지고 5명의 해골 부장이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장군님!"
"장군님!"
"으하하하! 해골 부장 5명이다."
이로써 해골 장교들이 탄생했고, 범려는 한구석에서 쿨 타임이 될 때마다 해골 병사들을 만드는 신세가 되었다.
"장군님, 아프로항에 도착했습니다."
"알았다."
범려는 아프로항에 도착하자 스승님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스승님."
"왔느냐, 제자야."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이렇게 부르신 겁니까?"
"너, 우산 길드라고 아느냐?"
범려는 우산 길드를 처음 들었기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른다는 뜻을 비쳤다.
"일단 그놈이 해적질을 해서 내가 좀 건드렸는데, 녀석의 길드가 크다 보니 머릿수에서 밀리더라. 그래서 너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한 거다."
"그런 거라면 진작 말씀하셔야죠. 그 길드를 혼내주실 작정입니까?"
"그래, 녀석들을 혼내주고 싶구나. 그리고 덤으로 녀석들의 배도 빼앗아 팔아치우고 싶다."
스승인 궁귀의 말에 범려는 살짝 놀랐다. 평소에는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않는 분이었던 것이다.
"녀석들이 꽤나 나쁜 짓을 했나 봐요?"
"물론이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이지!"
"아하, 그렇구나."
범려는 스승이 제일 싫어하는 짓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약자를 괴롭히는 짓.
'우산 길드 녀석들, 현실에서 만났으면 사부님이 다 초죽음으로 만들어놨을 텐데.'
나이가 50줄에 들어선 궁귀이지만, 현실에서는 20대 못지않을 정도의 체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제자의 해골들이라면 나와 함께하는 게 가능할 것 같아 물었는데, 어떻게 녀석들과 한판 해보는 게 될 것 같으냐?"
"음, 그럼 제 병사들의 숫자를 좀 채워야 할 것 같은데요."
"숫자를 채워? 얼마나?"
"대략 100명 정도."
궁귀는 100명이라는 말에 웃음 지었다. 해골 병사들 100명이면 엄청난 전력이 아닐 수 없다.
"좋아, 그대까지 기다리지. 하지만 너무 늦지는 말거라."
"알겠습니다. 스승님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범려는 자리를 벗어나 항구에서 필요한 물건을 빠르게 구입하고는 배로 돌아왔다.
"얘들아,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할 것 같다."
해골들은 전쟁이라는 말에 두 눈을 반짝이면서 당장 무기를 빼들었다.
"아아, 다들 진정해. 지금 전쟁을 치를 수는 없다. 병사들이 더 필요해. 그리고 이번 전쟁은 나의 스승님과 함께한다. 그러니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우선 폴리항으로 돌아가서 그곳에 있는 해골들을 데려온다."
범려는 곧바로 부두에서 배를 빼더니 폴리항을 향해 최대 속력을 내며 움직였다.
"아악-!"
그때, 갑판 위에서 로그인한 취선이 소리를 지르며 나타나자 범려가 왜 그러는지 물었다.
"취선아, 왜 그래?"
"소개팅에 폭탄이 나왔어요. 그 폭탄이 저보고 좋대요. 아악-!"
취선은 외모가 확실히 미소년 스타일이라 여자들이 끌릴 만한 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었지만, 성격은 완전히 조직 폭력배 저리 가라였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서 도망 왔어?"
"도망이라도 나왔으면 다행이게요. 지금 같이 게임방에 왔어요. 형님, 저 어떻게 하죠? 도와주세요."
취선은 간절한 표정으로 범려에게 매달렸지만, 범려도 여자 친구를 사귄 것이 로즈가 처음이라서 뭐라 딱히 조언해줄 상황이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너희 누나랑 사귀는 게 처음이라서……."
"크윽!"
"미안."
취선은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표정이었다.
"취선아, 오랜만이다."
"헬렌 누나, 저 좀 도와주세요."
"어머나, 얘가 갑자기 왜 이래?"
헬렌은 갑작스럽게 달라붙어서 애원하는 취선에게 영문도 모르는 상황에서 끌려가고 말았다.
"연애 문제는 자기가 알아서 할 것이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네."
범려는 취선과 헬렌을 뒤로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폴리항으로 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해골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고 싶었다.
"녀석들이 어떻게 됐을까?"
배를 타고 몇 시간 만에 도착한 폴리항은 전보다는 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유저들이 이미 바다에 나가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항구에 도착했으니 대장간에 제일 먼저 가봐야지."
범려는 일단 해골을 맡긴 대장간으로 찾아갔다. 그곳은 여전히 용광로를 달구는 뜨거운 열기와 쇠를 두드리는 소리로 시끄러울 지경이었다.
"주인아저씨."
"어서 오십시오, 손님. 무엇을……."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범려는 대장간의 대장장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대장장이의 인상은 별로 곱지 못했다.
"어험! 여기 해골 없소. 그냥 가시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 해골이 없다니요."
범려는 대장장이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실제로 해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해골은 없으니 이제 그만 가시오."
"음, 이거 수상한데요? 그 녀석은 어디 갈 곳도 없는데 말이지요."
범려는 대장장이가 지금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눈치 채고 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럼 해골이 없다면 어디로 간지는 아시겠지요?"
"그, 그건… 모르오."
"아니, 그것도 몰라요? 그럼 해골을 버리신 겁니까? 제가 고개까지 숙여 가며 부탁을 드렸는데 매몰차게 버리시다니, 이거 섭섭합니다."
"누가! 그 귀염둥이를 버렸다는 것이오!"
대장장이가 버럭 소리치며 반박하자 범려는 미소를 지었고, 대장장이는
'아차!'
하면서 인상을 구겼다.
"제 해골을 보여 주시죠."
대장장이는 포기한 표정을 짓더니 대장간 뒤로 가서 해골을 데려왔다.
-해골 대장장이
숙련된 대장장이가 되었습니다. 재료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제작이 가능하며 수리도 가능합니다. 대장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고생했다."
방금 뜬 메시지를 본 범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단순히 수리만이라도 가능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완벽한 대장장이가 된 것이다.
해골은 범려에게 고개를 숙이며 주인에 대한 예를 표했다.
곧이어 범려는 대장장이한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흥! 어서 데리고 가게."
지금 대장장이의 표정은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애지중지 키운 딸을 사위에게 보내는 심정인지 퍽이나 좋지 못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범려는 진심으로 고개 숙여 대장장이에게 다시 감사를 표하고는 해골과 같이 대장간을 나왔다.
"이제 대장장이를 얻었으니 다른 곳으로 가볼까."
다음으로 무두장이 일을 하는 곳에 보낸 해골을 찾아오고, 그다음에는 의류점에 보낸 해골과 마지막으로 활을 만드는 궁장(弓匠)이 있는 곳에 가서 해골을 데려왔다.
-해골 무두장이
가죽 옷과 가죽을 다루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 어떤 가죽이 되었던 세공이 가능하며, 훌륭한 가죽 옷과 신발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해골 재봉사
그 어떤 천으로도 물건을 만들 수가 있으며, 특히 패션에 관한 디자인은 끊임없이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해골 궁장(弓匠)
활을 만드는 장인입니다. 형태에 따라 다양한 활을 제작 가능하며, 재료만 있다면 못 만드는 활이 없습니다.
"으하하하! 이걸로 당장 써먹을 만한 해골들은 다 모았다. 장인들이 있으면 나중에 무척이나 편해지지."
대장장이나 무두장이들은 병사들과 다르게 능력치가 없고 NPC 취급을 받고 있기에, 전투가 벌어져도 공격 대상에서 제외되어 배가 가라앉지 않는 이상 죽는 일은 없었다.
"앞으로 재료를 구하러 사방팔방 뛰어다니려면 힘들겠군."
장인들을 얻었으니 돈 주고 물건을 살 필요 없이, 재료만 있으면 못 만드는 물건이 없을 터였다.
"후후후… 일단 배로 돌아가서 얼마 남지 않은 이 미스릴로 간단한 무기를 만들어보라고 해야지."
범려는 약간이지만 검 한 자루를 만들 정도의 미스릴을 가지고 있었다.
"이걸로 검 한 자루 만들어봐라."
그가 해골 대장장이에게 미스릴을 주면서 검을 하나 만들어보라고 하자, 해골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도구들이 없지."
해골 대장장이가 왜 고개를 가로저었는지 이유를 안 범려는 그를 위해 특별히 배에 소형 용광로를 하나 설치했고, 다른 장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작업에 필요한 도구들을 모두 다 사주었다.
"이것도 다 너희들을 위한 투자다."
범려는 해골들이 돌아와서 좋은 게 아니라, 무기 수리 등에 더 이상 돈이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뻤다.
"무기 수리비는 이제 굳었고, 남은 건 화살 값인데… 궁장이 어떻게 해결 가능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