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47화 (47/80)

제7장. 스승님의 길드에 가입하다

해골 장인들이 배에 돌아오자 정말 돈 나가는 일이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그 줄어든 만큼 범려의 수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화살을 만드는 원자재 가격이 이렇게 쌀 줄이야."

화살에 사용되는 재료들은 화살 100만 개 기준으로 30실버를 넘지 않았고, 발리스타에 사용되는 투창의 재료 역시 5만 개를 기준으로 20실버를 넘지 않았다.

"이거 완전 거저먹는 거잖아."

범려는 게임을 하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은 자주 하지 않았다. 거의 사는 쪽이었고, 몇몇 물건을 팔아치울 때는 어마어마한 이득을 챙기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거의 무구들을 구입했다.

"소모성 물건들이 많은 이윤을 남겨먹는 장사였군."

범려가 직접 발로 뛰며 재료들을 구입한 결과, 화살 가격이 상당히 뻥튀기된 게 눈으로 보였다.

"화살 가격이 상당히 싸서 별다른 이윤이 안 남을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남기면서 장사하는 거였어."

어찌 되었건 이제 범려의 소비는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그만큼 돈을 만지게 되었다.

"다음에는 화살이나 투창에 사용되는 원자재도 직접 채취하러 다닐까?"

범려는 잠시 생각했지만, 원자재를 직접 채취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비된다는 점을 계산하면 이득이 아니었다.

"그리고 해골들 실력이 아직은 완전히 좋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화살이나 투창을 제외한 품목들을 만든다고 하면 그리 좋은 물건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것들이 만든 가죽 옷이나 다른 것들을 적당한 가격에 NPC들에게 팔면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겠지."

범려는 해골들의 숙련도를 높이면 분명 많은 이익을 창출해낼 거라고 생각했지만, 숙련도라는 것은 단시간 안에 큰 효과를 기대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뭐, 하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장군님, 이제는 어디로 갈까요?"

"아, 사냥을 해야지. 먼 바다로 나가자. 부장들은 다들 항해 스킬을 익혔지?"

"물론입니다. 지도 제작 스킬도 익혔습니다."

"잘했어."

범려는 아프로항에서 지도 제작과 항해 스킬을 가르쳐 주는 스킬 북을 부장들에게 주었고, 그들은 그것들을 모두 다 익힌 상태였다.

"먼 바다로 가자!"

지금까지의 여행은 연안 근처를 도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더 멀리 나가서 사냥을 할 것이었다.

"마치 원양어선이라도 탄 것 같네."

해적이라고 해도 먼 바다로 나가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먼 바다는 공개적으로 바닷길이 열려 있지 않은 상태라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범려는 항해하면서 바닷길을 찾기 위해 부장들에게 해도를 작성할 것을 명령해놓았고, 부장들은 나침반과 지금 배의 속도가 얼마나, 그리고 얼마만큼, 어느 각도의 거리인지 계산하면서 충실하게 지도를 밝혀 나가고 있었다.

"자, 이제 난 가만히 앉아서 지도가 완성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범려는 느긋하게 함장실 안에 앉아 열띤 토론을 벌이는 부장들을 보면서 만족스러워했다.

'후후후, 녀석들 열심히 지도를 만들어라. 난 잠시 눈 좀 붙여야겠다.'

범려는 게임에서 로그아웃을 하고는 달력을 보았다.

"이제 개학의 시절이 찾아왔구나."

희성은 방학 기간 동안 미진을 게임에서 만나는 일 이외에는 가끔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게 전부였다.

"개학하게 되면 폐인 꼴은 될 수 있으면 안 보이는 게 좋겠지. 그리고 부장들이 알아서 바다를 여행하면서 어느 정도 지도를 만들어놓을 테니 그나마 안심이다."

부장이 생긴 뒤로 게임 안에서의 생활이 조금 편해지게 되었다. 게임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는 했지만, 결코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는 희성이었다.

"후후후, 그러고 보니 내가 게임하면서 벌어들인 돈이 꽤나 많구나."

바다에 나온 지도 벌써 보름이 넘었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계속 사냥을 해서 돈을 벌어왔다. 이제는 소비하는 돈이 크게 줄어서 떼돈을 벌게 된 희성이었다.

"해골들을 이제 어떻게 하지?"

부장이 총 6명으로 기병만 60이 늘었다. 다른 병사들도 제한이 늘어나서 다행이지만, 제일 좋은 현상은 총 기병의 숫자가 100이 되어서 개마 기병과 망구다이의 숫자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재성이한테 말해서 배를 한 척 더 건조할까?"

지금 범려가 사용하고 있는 배를 똑같이 주문한다면 게임 시간으로 15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다시 배를 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나온 상태였다.

"어쩔 수 없다. 사냥이 끝나면 조선소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보자."

희성은 게임에 대한 생각을 접고는 눈을 감았다.

드르렁. 드르렁.

너무 피곤한 나머지 코까지 골면서 잠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다음 날 아침.

"하암, 잘 잤다."

"나도 잘 잤다."

"……."

희성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누군가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진아!"

"응, 희성아?"

희성은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미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미진이 눈을 뜨자 바로 옆에 있는 것이다.

"'응, 희성아'가 아니잖아. 너 어떻게 여기 온 거야?"

"문이 열려 있던데?"

"현관문……."

희성은 어제 일을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자신이 나갔다 들어오면서 현관문을 깜빡 잊고 잠그지 않은 것이다.

"문 좀 잠그고 다녀. 내가 도둑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냥 열고 들어온 너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닌데."

"뭐가 어때서! 내가 도둑이야? 그리고 너 나 잘 알잖아. 뭐가 문제야?"

그렇다. 미진은 게임 방송사에서 유명한 VJ로 2개의 프로그램에 출현하고 있는 상태였고, 희성의 애인이다. 신용도 부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도 말만 한 처녀가 남자 방에 불쑥 찾아오는 건 좀 아니잖아……."

"뭐야! 희성이 너, 나 싫은 거야?"

"아니, 누가 싫어한대? 매일 보고 싶어서 꿈속에서도 찾는데."

"그래? 알았어, 믿을게."

불쑥 찾아온 미진은 희성의 집 안을 자기 집처럼 활보하고 다녔다.

"뭐야? 빨래도 안 해놓고 설거지도 안 해놨네. 방은 왜 이렇게 지저분해!"

"크윽, 부모님이 하는 잔소리가 따로 없네."

조잘조잘, 투덜거리던 미진은 혼자서 설거지를 하고, 방을 청소한 뒤,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넣으며 거침없이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아무리 남자라지만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사는 거야!"

"……."

희성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에 미진의 잔소리를 고스란히 다 받아넘겨야 했다.

모든 잔소리를 마치고 설거지 및 온갖 잡다한 일을 다 끝낸 미진이 털썩 앉으면서 하는 말.

"뭐 해? 어깨 주물러 줘야지."

"네."

희성은 얼른 달려가 미진의 어깨를 꾹꾹 주무르면서 최대한 말 잘 듣는 남자가 되었다.

'해골들을 지휘할 때는 카리스마 넘치더니, 이거 완전 카리스마 무너지는 장면이네.'

상황에 따라 완벽한 변신을 하는 희성의 모습에 미진은 살짝 미묘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희성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아, 시원해. 딱 5분만 주무르고 게임하자."

"어."

미진의 말대로 딱 5분만 어깨를 주무른 뒤, 둘은 같이 게임에 접속했다.

"장군님, 오셨습니까."

"그래, 그동안 지도는 얼마나 작성했나?"

"생각보다 바다가 넓어서 얼마나 걸릴지 예상이 안 됩니다."

그만큼 심해의 노턴 지역이 넓다는 걸 의미했다.

"지도 좀 보자. 얼마나 됐는지 보게."

범려는 지도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성과다. 계속 지도를 그려 나가도록."

"예, 장군님!"

그 뒤로도 해골 부장들은 함장실을 들락날락하면서 열심히 지도를 만들었고, 몇 개의 무인도도 발견했다.

"무인도를 발견할 때마다 해도에 자동적으로 이름이 표시되네."

무인도는 해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되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길을 연결하면 해도가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지도는 밝혀지고 있는데, 몬스터는 안 보이는군."

지도가 만들어지면서 기대를 하는 것이 몬스터와의 싸움이다.

그런 경험치를 주는 녀석들이 하나도 안 보이게 되면 슬슬 짜증이 나는데, 그건 해골들이 전혀 클 수가 없다는 문제점과 곧바로 이어지게 된다.

"몬스터! 몬스터가 필요해! 이봐, 부장! 해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몬스터도 같이 찾아!"

"알겠습니다, 장군님."

그때부터 부장들은 일부 해역을 지도에 그리게 되면 몬스터를 찾는 일도 반드시 같이했다. 그와 동시에 지도에 무슨 몬스터가 나오는지 기록하기 시작했다.

"장군님, 이곳에서 크로노사우로스를 발견했습니다."

해골 부장 중 하나가 상당히 긴 이름을 가진 몬스터를 발견했다고 하자, 범려가 되물었다.

"그 크로노 뭔가 하는 녀석은 뭐냐?"

"바다에 사는 몬스터로, 흔히 말하는 바다 공룡입니다."

범려는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해골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놈을 잡자."

"알겠습니다."

크로노사우로스 무리를 잡기 위해 해골들은 전투 준비를 하고는 목표물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 숫자는 5마리. 생각보다 덩치가 꽤나 큰 녀석들인데?"

크로노사우로스의 크기는 6미터 정도로 육지에서 사는 다른 몬스터에 비해 중간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겠지만, 바다라는 특성상 웬만해서는 몬스터들이 다 거대하다.

"발리스타 준비!"

"준비 완료!"

"발사!"

쉬이익! 푹! 푹!

무서운 속도로 발사된 투창이 크로노사우로스의 몸에 박혀 들어가자, 녀석들의 생명력은 눈에 보일 만큼 그 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발리스타 녀석들, 생명력이 16퍼센트나 사라져 버렸어."

범려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크로노사우로스들이 배에 접근하는 것을 보고 외쳤다.

"놈들이 온다. 준비!"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공격 준비를 취하자 범려는 근거리 공격을 하는 해골 병사들에게 일렀다.

"녀석들이 배에 접근하면 물에 뛰어들어서 잡아라."

돌격병이나 근위병, 개마 기병은 물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는 두 눈에 푸른빛을 일렁이며 필사의 각오를 다졌다.

"궁수, 마법사 공격!"

범려는 바다 공룡들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즉각 공격 신호를 내렸다. 그러자 마법과 화살이 동시에 날아들면서 크로노사우로스의 피를 주르륵 깎아내렸다.

"근위병, 돌격병, 개마 기병 준비!"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순식간에 뒤로 물러서자 그 앞을 다른 병사들이 메우고 바다에 뛰어들 준비를 했다.

"뛰어들어!"

병사들은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들었고, 그 무거운 갑옷을 입고 크로노사우로스를 향해 헤엄쳐 갔다.

"저 무거운 갑옷을 입고 수영 잘하네……."

범려는 현실 세계였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사슬 갑옷을 입고 헤엄치는 짓은 '나 죽고 싶소'라고 외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역시 게임이라서 그런지 그들은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수영이 되겠군."

범려는 섬전의 창을 꺼내더니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들어 무기를 든 상태에서 수영하기 시작했다.

"역시 수영할 때는 무기를 들고 있어도 제약을 받지 않아."

범려가 크로노사우로스 무리에 다가갔을 때, 이미 해골들은 그들과 치열한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아르테미스의 손길!"

그러자 하늘에서 백색의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모여들더니, 그 중심부에서 12개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내려와 신성한 빛을 뿌리자 모든 아군들에게 버프가 걸렸다.

-모든 무기에 성 속성이 부여됩니다.

-모든 형태의 능력치와 공, 방어력이 40% 상승합니다.

-모든 마법 저항이 20% 상승합니다.

거의 격노급에 해당하는 버프가 발동하자 해골들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고, 배에 타고 있던 로즈와 취선은 그 자리에 경직돼서 서 있었다.

"누나, 이거 지금 누나가 한 거야?"

"난 이런 버프 없어……."

둘은 금붕어처럼 입만 뻐금거리며 별 내용 없는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환영섬!"

크로노사우로스들을 향해 펼친 환영섬의 위력은 아르테미스의 손길로 인해서 그 위력이 배는 증가했고, 수십의 창이 수백으로 바뀌면서 전방을 쓸어버렸다.

"크아악-!"

녀석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를 때마다 범려의 공격은 더욱더 매서워졌고, 해골들은 계속해서 미쳐 날뛰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크로노사우로스의 시체가 바다 위에 둥둥 떠오르자 범려는 녀석들이 토해내는 아이템을 기다렸다.

"어서, 아이템아, 나와라."

그러나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시체도 사라지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범려가 시체를 향해 손을 뻗자 메시지가 하나 떴다.

-크로노사우로스의 시체를 획득하셨습니다.

이놈도 고래처럼 시체 자체가 아이템이 되는 녀석이었다. 그렇다면 녀석의 고기가 고래만큼 좋다는 이야기다.

"으윽! 그런데 왜 이렇게 무거워?"

해골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배로 돌아와 녀석들의 시체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배 위에 내려놓자, 그제야 무게감이 확 줄었다.

"후아, 몬스터 그 자체가 아이템인 녀석은 말로만 들었지, 직접 만져 보기는 처음이네."

그는 크로노사우로스의 시체를 한쪽에 잘 고정시켜 두었다.

"혹시나 해서 소금을 샀는데, 이럴 때 써먹는구나."

고기가 부패할까 봐 소금에 절여 잘 보관해놓았다.

"후, 게임이라서 부패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범려는 이다음에도 크로노사우로스와 전투를 벌였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몰라도 지금 그가 있는 해역은 크로노사우로스가 가득한 지역이었다.

"이거 몇 마리 잡지도 못하고 화물이 가득 차겠는데."

범려의 예상대로 딱 다섯 무리의 크로노사우로스를 잡자 더 이상 배에 공간이 부족했다.

"장군님, 큰일 났습니다. 크로노사우로스가 너무 많아서 배가 균형을 잡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당장 균형을 맞추도록 해봐. 만약 녀석의 고기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면 몇 마리 버려."

"알겠습니다, 장군님."

해골 부장은 범려의 명령을 이행했고, 아슬아슬하지만 크로노사우로스의 고기를 버리지 않고도 배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돌아간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그는 가장 가까운 항구를 향해 배를 전속력으로 몰았지만, 배가 무거워서 최고 속도로 전진하지 못했다.

"범려야, 나 궁금한 게 있어."

"형님, 저도 궁금한 게 있어요."

로즈 남매가 얼굴을 들이밀면서 이야기를 꺼내자 범려는 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챘다.

"버프에 관해서야?"

"응, 그 버프 어떻게 배운 거야? 사제가 쓰는 것 같던데."

"음, 내가 직접 쓰는 건 아니야. 아르테미스가 쓰는 거지."

"그 10골드 천사가?"

"엉, 보여 줄게. 하늘을 봐. 아르테미스의 손길!"

범려가 큰 목소리로 소환하자, 하늘에서 아르테미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우와, 진짜다."

"어머나! 날개가 12개야."

-모든 무기에 성 속성이 부여됩니다.

-모든 형태의 능력치와 공, 방어력이 40% 상승합니다.

-모든 마법 저항이 20% 상승합니다.

다시 한 번 버프가 걸리고 엄청난 능력치가 상승되자, 소환이 종료되며 아르테미스가 사라져 버렸다.

"형님, 너무 아름다워요!"

취선이 아르테미스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범려가 끼어들었다.

"그만 봐라. 아르테미스 뚫어지겠다."

"형님, 이런 건 이렇게 봐줘야 한다고요."

취선은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여자를 쳐다보는 편이었다. 물론 얼굴이 잘나고 성격도 화끈한 면이 있어서 여자들이 싫어할 것 같지는 않았다. 잘생긴 남자가 끈적끈적하게 쳐다봐주는 것은 관심이지만, 못생긴 놈들이 보는 건 바로 스토커로 몰리는 것이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형님, 또 소환해주세요. 보고 싶어요."

"안 돼. 한 번 소환할 때 마나 2,000씩 잡아먹는다."

취선이 쓰는 스킬 중 마나를 2,000이나 먹는 기술은 없었다.

"엄청나게 먹네요."

"그러니 말 시키지 마.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두 번 썼어."

마나 회복이 그리 빠른 편이 아닌 범려는 시작부터 엄청난 마나를 소비해버렸다.

"항구에 돌아가는 몇 시간 동안 난 선실에서 푹 쉴 테니까 급한 일 아니면 부르지 마."

범려가 혼자서 함장실에 들어가 버리자 로즈 남매도 뒤따랐다.

"어?"

그때, 갑판 위에 유저라고는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가만히 서서 멍하니 한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헬렌이었다.

"어머, 방금 벌어진 일이 뭐였지?"

버프 때문에 충격을 받고 멍하니 서 있던 헬렌은 배가 무거워서 기우뚱해질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범려와 로즈 남매가 선실로 들어가자 그때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방금 그 버프 누가 한 거지? 로즈가 한 건가?"

일단 신성한 빛이 내리는 직업은 누가 생각해도 사제겠지만, 그건 엄연히 범려가 쓴 버프였다.

"다들 어디 갔지?"

헬렌은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혼자서 버프를 쓴 사람에 대해 생각하면서 선실로 내려갔다.

충무공호는 심해의 노턴 지역에 있는 트레몬 군도에 있는 러블러 항구에 정박하게 되었다.

범려는 크로노사우로스의 고기를 처분하기 위해 항구로 나왔다.

"아니, 이건!"

크로노사우로스의 거대한 시체가 배에서 나오자 항구에서 일하고 있던 선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것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이거 무슨 구경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몰려드는 거야?'

한 마리당 6미터에 달하는 길이, 그리고 무식한 턱과 날카로운 이빨, 마지막으로 크로노사우로스의 야들야들한 육질이 시선을 잡아끈 것이다.

"저거 바다 괴물의 시체 아니야?"

"맞아. 바다 괴물 중에서도 성격이 포악하기로 유명한 크로노사우로스야."

다들 이 몬스터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모양인지 신기한 듯 보면서도 두려워했다.

"어서 빨리빨리 꺼내."

범려가 닦달하자 해골들은 소금에 절인 크로노사우로스를 한쪽 구석에 쌓아놓기 시작했다.

"이보시게, 젊은 친구."

그때, 웬 나이 든 어르신이 범려의 앞으로 오더니 크로노사우로스의 시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들을 자네가 직접 잡았나?"

"물론입니다. 왜 그러시죠?"

"아니, 이걸 자네가 잡았다고 하면 이 괴물들을 내가 사려고 그러네."

"전부요?"

노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고, 범려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가격을 말씀해주시죠."

"다 합쳐서 500골드 어떤가?"

크로노사우로스 다섯 무리를 잡았을 뿐인데 500골드나 준다면 무조건 남는 장사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만, 왜 이런 녀석들의 몸값이 500골드나 하는지 의심스러웠다.

"상당히 비싼 금액이라서 그러는데, 왜 사시려는 건가요?"

"이유는 간단하네. 저것들에게 죽은 내 아들의 복수를 해준 자네에게 보답하고 싶은 걸세."

노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의외였다.

"복수라……. 그렇다면 제가 이것들을 더 많이 잡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두 다 사겠네."

"영감님, 돈이 부족하다면 제가 보태겠습니다."

"저도 보태겠습니다."

-반복 퀘스트:원수

이곳 항구도시의 사람들은 크로노사우로스에 대한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날카로운 이빨에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 원한이 깊고도 깊어 몇몇 사람은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정도입니다.

난이도:D

완료 조건:크로노사우르스 60마리

보상:100골드, 경험치 추가

도시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서로 돈을 주겠다고 하자 범려는 이들을 먼저 달랬다.

"알겠습니다. 전 굳이 돈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곳에 와서 몇 가지 물품만 받게 도와주시면 됩니다.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

범려는 원한이 깊은 이들에게 굳이 돈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화살 값과 투창, 그리고 배를 수리하는 몇 가지 물건들만 있으면 되었다.

-도시 사람들이 크게 감동하여 친밀도가 형성됩니다.

-퀘스트의 내용이 변경됩니다.

-반복 퀘스트:원수

이곳 항구도시의 사람들은 크로노사우로스에 대한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날카로운 이빨에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 원한이 깊고도 깊어 몇몇 사람은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정도입니다.

난이도:D

완료 조건:크로노사우르스 40마리

보상:크로노사우로스 60마리 잡은 경험치×3, 도시 사람들의 친밀도 +20(친밀도 80 이상은 효과 없음), 화살 및 기타 소모성 물품에 대해서 가격 80% 할인

"허허, 이런 것도 있네."

범려는 퀘스트의 완료 조건과 보상이 바뀌자 깜짝 놀랐다. 보상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아진 것이다.

"이런, 겨우 인사치레로 한 말에 보상이 바뀌다니……."

과연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고 하는 걸까.

"이 사실을 당장 녀석들에게 알려야겠다."

잠시 후 그가 노인에게 복수의 대가로 3,000골드를 받은 뒤에 바로 배로 돌아와 퀘스트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다들 귀가 번쩍 뜨였다.

"형님, 그 말 진짜입니까?"

"물론이지. 내가 너한테 왜 거짓말을 하냐?"

"범려야, 정말이야?"

"그래."

로즈 남매와 헬렌은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고, 친구인 제마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뭐냐! 그런 퀘스트! 내 당장 그곳으로 가마. 기다려라.]

"야, 오기 전에 내가 지금 타고 있는 배와 똑같은 것 2척을 추가로 주문하고 싶은데, 돈은 후불로 할게."

[알았다. 그건 걱정 마라. 조금만 기다려. 내가 당장 배타고 달려가마.]

범려는 그 뒤 스승님인 궁귀에게도 연락을 했다.

[제자야, 정말이냐?]

"예, 제가 퀘스트를 공유해드릴 테니 어서 오세요."

[그렇지 않아도 널 만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있었는데, 잘됐다. 내 당장 그곳으로 가마.]

궁귀는 바로 협회의 사람들을 이끌고 범려가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자, 범려는 이들에게 퀘스트를 공유해주면서 당부의 말을 일러주었다.

"이 퀘스트는 제가 받았으니 다른 분들이 따로 받는다고 해서 같은 퀘스트가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니 항시 퀘스트는 다 같이 완료해주시고,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말아주세요."

다들 범려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다물겠다는 표시를 했다.

"그럼 다들 출발!"

2척의 함선이 크로노사우로스의 씨를 말리기 위해 저 멀리 바다에 있는 녀석들을 잡아 죽이며 퀘스트를 진행하자, 다들 퀘스트를 완료할 때마다 들어오는 기가 막힐 정도의 경험치에 혀를 내둘렀다.

"이대로 가면 7렙 이상은 오르겠다."

"그러게 말이야."

궁도협회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오르는 경험치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고, 범려는 몇 시간 사냥해야 하는 일에서 단 몇십 분 만에 결과를 얻어내니 너무나 좋았다. 더군다나 해골들은 범려와 경험치를 나누어 먹는 상태에서 해골 부장의 등장으로 그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아싸! 경험치다, 경험치! 그렇지 않아도 해골들 숫자가 늘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이걸로 완전 해결이다."

"어이, 친구, 네 덕분에 내가 레벨 쭉쭉 오르는구나.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어?"

제마의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보이더니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좋아, 배 한 척은 공짜로 주지. 하지만 나머지 한 척은 정령석으로 지불해줬으면 한다."

"알았다. 몇 개나 주면 되겠냐?"

"천 개만 주라."

범려가 제마한테 주는 정령석의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해서, 지금 제마가 이걸로 정령 폭탄을 만들었다면 1천 개쯤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보았다.

"15일 뒤에 받을 수 있는 거냐?"

"물론이지. 보통 사람들은 60일 동안 만들어야 하지만, 드워프들은 15일이면 충분해. 그리고 네가 원하는 배의 구조가 상당히 독특하잖아."

"그렇지. 내부 구조가."

둘만의 대화가 오고 가는 와중에도 범려는 계속해서 해골들을 양성해나갔다.

"그리고 네 해골들, 지금 한계치가 얼마나 되지?"

"제마야, 그건 무슨 뜻이야?"

"아무리 봐도 네가 병사들을 만드는 조건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 주황색 눈을 하고 있는 녀석이 나타난 뒤로 네가 해골들을 만드는 속도에 가속이 붙었거든."

"크윽, 눈치 빠른 놈. 맞다, 저 해골 부장이 나타난 뒤로 해골 병사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어."

범려는 제마의 눈치 빠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지금 총 얼마나 만들 수 있는 거냐?"

"현재 병사들의 숫자는 210이고, 최대 인구수 제한은 530이다."

제마는 범려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범려는 『판게아 월드』 최강의 사기 캐릭터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간다면 배가 몇 척 더 필요하지 않겠냐?"

"아니, 2척만 더 있으면 돼. 정령석이랑 해골 만들 시간이 빠듯하거든. 여유가 조금 더 생기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서 말이야."

범려의 말에 제마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급한 대로 배 2척만을 만들기로 했다.

'차후에 배가 또 필요할지 모르니 2척이 완성되면 하나를 미리 만들어놔야겠군.'

제마는 범려가 해골들을 더 만들다 보면 분명 숫자가 크게 뛸 거라 여기고는, 미리 제작에 돌입할 작정이었다. 만약 필요 없다고 한다면 해골마가 엔진 역할을 하는 부분을 제거한 뒤에 팔아먹으면 된다.

"제자야, 나랑 이야기 좀 하자."

범려가 제마와 이야기를 끝내자 스승인 궁귀가 건너와 그를 찾았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제자야, 해태 길드에 들어라."

"스승님, 전 길드에 들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아니, 그 우산 길드인가 하는 것들을 박살날 때까지만 말이다."

"음, 그 길드에 스승님이 속해 계신 겁니까?"

"무슨 소리냐. 해태 길드는 협회에서 친목으로 만든 길드다."

범려는 스승이 길드를 만든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이런. 제자라고 있는 것이 스승이 길드 만들겠다고 이야기한 지가 언제인데, 그걸 기억도 못하고 있단 말이냐."

혀를 차는 궁귀의 말에 범려는

'그런 적이 있었나?'

머리를 굴려 봤지만,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놈아, 됐다. 어차피 이미 네놈 머릿속에서는 지워진 것 같으니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내가 너 일이 년 보는 것도 아닌데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우산 길드 녀석들이다."

궁귀가 생각보다 우산 길드에 대한 분노가 깊은 건지 그 길드를 박살내고 싶어 했다.

"스승님, 혹시 그 길드에 대해 아시는 정보가 있습니까?"

"여기 있다. 한번 읽어봐라."

궁귀가 자신의 품속에서 꺼낸 것은 우산 길드에 대한 약간의 정보였는데, 그곳의 길드마스터를 본 범려의 눈빛이 바뀌었다.

'드워프 도시에 있을 때 날 죽이려고 했던 흑검이 우산 길드의 마스터라니…….'

또한 불꽃의 검사 강토가 끼어 있는 것에도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이 두 녀석이랑은 한바탕해야 할 운명인가…….'

범려는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궁귀에게 입을 열었다.

"스승님, 길드에 가입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네 눈빛을 보아하니 이 중에 너와 안 좋은 관계에 놓인 인간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게 좀… 그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범려는 과거의 이야기를 딱히 뭐라 설명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다가 대충 사연이 있다면서 넘겨 버렸다.

"뭐, 그걸 내가 안다고 해서 별로 이득이 될 만한 건 없어 보이는구나."

"네, 스승님."

범려가 저렇게 이야기할 때는 시작부터 안 좋은 인연이었을 터였다.

"제자야, 길드에 가입이나 하거라."

-해태 길드에 초대되었습니다. 초대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es/No

범려가 Yes를 선택하자 해태 길드에 가입이 되었다.

"가입이 되었으니 내 제자라는 신분도 있고 거기에 걸맞은 직책을 주마."

"네?"

궁귀는 범려의 직책을 순식간에 바꾸어버렸다.

-신입 길드원으로 등록되셨습니다.

-일반 길드원으로 등록되셨습니다.

-길드 간부로 등록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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