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전쟁
"이 지도가 우산 길드가 위치해 있던 지도입니다."
"잠깐! 그 지도의 돈을 지불하기 전에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질문하시지요."
범려는 예전에 공구장이 정보 길드를 통해서 해골 제작자의 옛 정보를 구입했다고 했었다. 그 정보를 얻고 나서 문제가 있다면 좀 오래된 정보라는 것이다.
"그 정보 일주일 전에 얻은 정보인가요?"
"……."
정보 길드원은 범려의 말에 순식간에 입을 다물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 되었다.
"정말… 일주일이 지난 정보군요."
범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정보 길드를 좋게 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정보의 처리 속도가 늦음을 확인하고는 이들을 다시 보았다.
"고객님, 사실 저희가 이러고 싶어서 이런 것은 아닙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아니!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겠습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가 수집한 정보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그걸 처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뿐입니다. 제가 당장 길드 본부에 긴급 연락을 넣겠습니다."
길드원은 범려를 붙잡으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곤 사라지더니, 약 1시간 가까이 기다리게 만든 후에 다른 지도를 들고 왔다.
"이건 딱 1시간 전에 얻어낸 정보입니다."
"1시간? 먼저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범려가 정보 길드의 정보를 의심스러워하며 확인을 요청하자, 길드원은 순순히 지도를 보여 줬다.
지도를 받아 살펴본 범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도와 비교를 하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주 정확한 정보로군요."
"그럼 용서해주시는 겁니까?"
"그렇게 하지요. 돈은 500골드만 지불해도 되겠지요?"
"물론입니다."
1시간 전의 정보라면 상당한 가격을 줘야 하지만, 정보 길드가 먼저 실수를 했기 때문에 가격을 올려서 받을 수 없었다.
"다음에 또 뵙지요."
정보 길드를 나온 범려는 바로 부두로 돌아와 배에 올라탔다.
"얘들아, 녀석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
"어디입니까, 장군님?"
"아모다 항구."
아모다 항구는 하마다 군도에 있는 항구로, 심해의 노턴 지역에서 대양 한가운데에 있는 중심부 항구도시다. 항구 중에서 제일 큰 항구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50척 이상의 배들이 들락거린다는 아모다 항구로 가다니, 참 대단한 녀석들이네."
아모다 항구는 현재 『판게아 월드』의 랭커들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험난하고 위험한 곳이다.
동시에 고레벨 유저들에게는 최고의 사냥감들이 굴러다니는 곳이라서 경험치를 위해서라도 이곳을 찾는다.
"얘들아, 아모다 항구로 항로를 잡아라! 우산 길드 녀석들이 그곳에 있다."
해골들이 아모다 항구로 항로를 잡더니 그곳을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후후후! 기다려라, 이놈들아! 너희들을 전부 다 수장시켜 주마."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아주 사악한 표정으로 바뀐 범려는 마치 어디 영화에서 나오는 악당 같았다.
[형님!]
어디선가 꽤나 낯익은 귓속말이 들려오자 범려는 금세 사악한 표정을 지우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냐, 취선아."
[형님, 저희들 떼어놓고 혼자서 뭐 하시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범려는 해골들과 같이 배를 타고 드워프 조선소에 갔다 온 이후로 로즈 남매와 헬렌을 보지 못했다.
"뭐 하기는, 우산 길드 녀석들이 있는 곳을 찾아서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는 중이야."
[그럼 저희들도 같이 가요.]
"무슨 소리야? 배도 없는데 어딜 온다는 거야?"
[제마 형님 배를 타고 가고 있어요.]
제마의 배를 타고 온다는 소리에 범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마가 분명 배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그리 큰 배가 아니라서 속도도 얼마 나지 않고, 작은 파도에도 심하게 흔들리는 걸로 알고 있다.
"제마의 배로 여기까지 오려면 상당히 힘들 텐데."
[그건 걱정 마세요. 요즘 나온 신형 함선이라서 금방 갈 거예요.]
범려는 신형 함선이라고 해서 뭐 별다른 게 있겠냐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였다.
취선과의 귓속말을 끊고서 대략 4시간이 지났을까. 충무공호를 맹렬히 따라오는 작은 범선이 하나 보였다.
"장군님, 후방에 이상한 배 한 척이 따라붙었습니다."
"배?"
범려는 설마 하는 생각에 망원경을 꺼내 그 배를 확인했다.
"헉! 저 배 돛이 없잖아."
배에 돛이 없는 이유는 딱 하나뿐이다. 충무공호처럼 밑에서 해골마가 열심히 달리면서 스크류를 돌린다는 이야기다.
배가 작아 가능한 광경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겨우 해골마 4마리를 가지고 저렇게 되나?"
저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로즈 남매와 헬렌, 제마다. 각자 해골마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범려야!"
작은 범선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로즈가 보였다.
제마의 배가 가까이 다가오자, 해골 병사들이 줄사다리를 내려주었다.
"아니, 이곳에 왜 온 거야?"
"우산 길드 녀석들이 궁귀 아저씨의 배를 부숴버렸다면서. 그래서 네가 복수하러 갔다기에 한손 거들려고 따라왔지."
로즈는 범려와 같이 죽기를 각오하고 이곳에 내려왔고, 다른 이들도 그럴 생각으로 온 것이다.
"후! 한손 거들려고 왔다니 막지는 않겠지만, 이왕 들어온 이상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라줘야 해."
"물론이지!"
로즈는 힘차게 대답하면서 각오를 다졌고, 다른 이들도 로즈처럼 거들겠다고 나서자 범려는 기쁜 듯이 웃어주었다.
"그럼 다들 뜻이 그렇다고 하니 나도 기쁘게 받아들여야겠지."
"형님, 아모다 항구에 우산 길드 녀석들이 있나요?"
"물론이지. 하지만 녀석들의 숫자가 좀 되니까 항구 바깥으로 유인해서 잡을 생각이야. 그러니 항구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해야 돼."
"형님, 그럼 그거 제가 한번 해볼게요. 제마 형님의 배를 타고 움직여서 우산 길드 녀석들을 단번에 끌어오겠습니다."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범려는 자신 있어 하는 제마와 취선에게 기대를 걸었다. 일단 우산 길드 녀석들을 유인하기 위해는, 해태 길드에 취선과 제마가 가입을 해 길드원을 늘려서 복수하러 온 줄 착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 당장 출발할게요, 형님."
"그래. 제마도 조심하고 너도 조심해."
"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딸랑 둘만 보내야 하니 걱정이 되었지만, 저 배 밑에는 해골마가 있기 때문에 도망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작은 범선이 아모다 항구로 들어가자 범려는 작전대로 해골들이 어디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얘들아, 계획대로 한다."
* * *
"후후! 해골 제작자라고 해도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그럴 겁니다, 흑검 형님. 녀석은 그 주변에서 저희를 찾기 위해 눈이 뻘게져 있을 테니까요."
강토와 흑검은 둘 다 배 안에서 해골 제작자가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포기하면 그때 해골 제작자를 찾아 움직여 뒤통수를 때릴 계획이었다.
"그리고 해골 제작자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서 약 이 주일 정도는 이곳에서 느긋하게 쉬어야 합니다."
"알았다."
흑검이 그렇게 배 안에서 충분한 휴식과 여유를 즐기고 있는 그때, 바깥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이 겁쟁이 녀석아! 이제는 이곳에 숨어 있는 거냐!"
취선의 우렁찬 목소리에, 흑검은 화가 울컥 솟아올라 벌떡 일어났다.
"누가 겁쟁이라는 거냐!"
곧장 갑판 위로 오른 흑검은 정박하고 있는 자신들의 배 뒤의 작은 범선에서 큰 소리를 치고 있는 취선을 보았다.
"네놈은 누구인데 나보고 겁쟁이라고 소리치는 것이냐!"
"흥! 누구기는! 네놈이 벌써 치매에 걸린 거냐? 내 얼굴을 모르게!"
흑검이 취선을 모를 리 없었다. 마지막에 범려를 도와 승리로 이끈 바바리안 취선이었다.
"너, 너는 그때 그놈!"
"하하하! 이제 기억이 나냐!"
흑검이 당장 검을 뽑더니 녀석에게 외쳤다.
"거기서 기다려라! 내가 간다!"
"하하하! 올 수 있으면 와봐라!"
취선이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외쳤고, 그와 동시에 제마는 서서히 뱃머리를 돌리면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놈! 기다려라."
"아, 올 수 있으면 와보라니까."
작은 범선 위에서 취선이 열심히 온몸을 흔들며 놀려 대자, 열이 받은 흑검이 길드원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배를 출항시켜! 저놈과 한판 떠야겠다!"
길드원들이 길드마스터인 흑검의 명령대로 배를 출항시키자, 제마는 서서히 돌리던 뱃머리를 급격히 돌리더니 도망갈 폼을 잡았다.
"어딜 도망가려고 하냐!"
"도망은 무슨! 내가 도망가는 거 아냐! 배가 그냥 움직이는 거지!"
"뭐야!"
취선이 훌륭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동안 바다 속에서는 허여멀건 물체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어서 이리로 와봐. 그럼 내가 상대해줄게."
"이 자식이!"
우산 길드의 배는 덩치가 커서 선회 능력이 떨어져 아주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런 느려 터진 배로 나한테 오겠냐!"
"뭐 하냐! 배를 더 빨리 돌리지 않고!"
흥분으로 인해 흑검이 이미 이성이 마비된 상태가 되자, 강토는 지금 상황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고 그를 진정시켰다.
"흑검 형님, 진정하십시오. 저 배에 있는 사람을 보십시오. 겨우 둘입니다. 그런데 형님을 꿰어내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겨우 둘……."
흑검은 그제야 범선에 있는 사람의 수를 확인했다. 정말 2명밖에 보이지 않았고, 돛도 별로 크지도 않았다.
"이런! 너무 빨리 정신을 차렸는데."
"너희들의 정체가 뭐냐! 겨우 둘이서 우릴 상대하러 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취선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다른 건 없다. 바깥으로 나와라! 해골 제작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뭣이! 해골 제작자!"
흑검은 해골 제작자가 자신을 찾으려면 적어도 2주일은 걸릴 거라 예상했지만, 하루도 안 지나서 위치가 들통 나고 말았다.
"강토,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해골 제작자가 이곳에 오다니!"
"녀석이 어떻게 형님을 찾아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설픈 추측을 해왔던 강토는 범려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감히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좋다, 나가자. 어차피 녀석과 한바탕 전투를 벌여야 한다. 녀석이 부른다면 정정당당하게 싸우러 왔다는 것. 이 흑검이 거기에 물러설 이유는 없지!"
흑검은 길드원들에게 명령을 내려 배를 완전히 항구에서 빼냈고, 제마는 빠르게 항구에서 빠져나와 충무공호에 올라탔다.
"취선이 일을 잘해줬나 보네."
"저쪽이 제가 도발하는 거 눈치 채던데요."
"뭐, 상관없어. 녀석이 여기로 오면 이미 승부는 난 거나 다름없으니까."
범려는 그런 건 별로 상관없다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먼저 녀석들에게 작은 선물을 해야겠지. 발리스타 준비!"
끼이익! 끼이익!
3척의 배에서 동시에 발리스타를 당기더니, 범려가 손을 뻗어 발사 신호를 내리자 거침없이 발리스타에서 투창이 날아갔다.
"크악!"
"끄르륵!"
항상 원거리는 마법사의 마법이나 궁수의 화살로 공격해올 거라 여기던 우산 길드였는데, 발리스타에 의해 투창이 날아오자 몇몇 길드원들이 치명타를 받고 말았다.
"전속력으로 전진! 저들의 배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야 한다!"
발리스타를 무용지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사정거리까지 가까이 다가가는 게 우선이라고 여긴 흑검은 전속력으로 배를 전진시켰지만, 그건 배가 1척일 경우에나 해당한다.
"흩어져!"
범려가 다시 손을 뻗자 3척의 배가 동시에 흩어지면서 흑검의 배를 포위했다.
"배가 3척이나 되다니!"
"형님!"
"어차피 우리보다 배가 작다. 배의 내구력 때문이라도 저것들과 충돌하면 우리가 이겨!"
강토가 손을 휘저으면서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배를 충돌시킨다! 목표는 저 눈앞에 보이는 배다!"
흑검의 배가 빠른 속도로 전진하는 것을 확인한 범려는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배가 우측으로 방향으로 틀더니 전속력으로 도망칠 준비를 했다.
"내가 바보처럼 배가 충돌할 때까지 기다려 줄 것 같으냐!"
그 어느 누구도 가만히 앉아서 배가 충돌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런 식으로 손해 보는 건 범려가 정말 싫어하는 짓이다.
"저 배를 쫓아라!"
"마법사들! 블리자드 준비!"
해골 마법사들이 갑자기 앞으로 나오더니 마법을 준비했고, 헬렌도 같이 동참했다.
"블리자드!"
블리자드 마법이 발휘되자 평소에 봐오던 블리자드와 다른 모습의 마법이 펼쳐졌다.
"블리자드 마법이 몇 개나 중첩되어 떨어지는 거냐!"
"형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블리자드 마법은 정확히 헬렌을 포함해 동시에 다섯 번이 발휘되었다.
"뭐 하나!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5개의 블리자드 마법이 발휘되자 그 출렁거리던 바다가 눈에 띄게 얼어갔고, 이대로 간다면 분명 배는 바다에 갇히고 말 터다.
"이런! 다들 생명력이!"
바다가 얼어가는 것과 동시에 길드원들의 생명력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다들 블리자드의 부가 효과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극심한 추위로 인해 몸이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동속도, 공격 속도 25% 감소.
그렇지 않아도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이동속도 25퍼센트 감소로 인해 완전히 느려졌다.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파이어 필드!"
그때, 갑자기 우산 길드에 있던 한 마법사가 마법을 시전하자, 몸이 풀리면서 블리자드의 추위에 대항할 수 있게 만들었다.
"몸이 풀렸다!"
"시간이 없다, 어서 움직여라!"
길드원들은 줄어든 생명력은 둘째 치고 어서 이곳을 벗어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 여기고 있었고, 배 안에 타고 있던 사제들이 그들에게 힐을 시전했다.
"힐! 힐!"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신성한 빛이 번쩍번쩍하며 우산 길드 길드원들의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었다.
"예상대로 가네."
범려는 이미 저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예상하고 있었지만, 가만히 바라만 봤다.
"블리자드가 끝날 시간이군. 궁수들, 바로 쏴버려."
궁수들이 앞으로 튀어나오면서, 블리자드 마법이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화살 세례가 날아오자, 우산 길드원들은 또다시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
"방패를 들 수 있는 것들은 당장 방패를 들어라!"
모든 길드원이 전사가 아닌 이상 방패를 들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았다.
"사제들과 마법사들을 보호해라!"
전사들은 황급히 방패를 들면서 사제나 마법사들에게 달려가 화살들을 막아주었다.
"흐흐흐! 불쌍한 녀석들. 조금만 기다려라. 다 수장시켜 줄 테니까."
범려가 다시 손짓을 하자 이번에는 바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이번에 또 뭐냐!"
"흑검 형님, 소리가 밑에서 들려옵니다!"
"밑에서? 당장 가서 확인해!"
뭔가 있는 건 아닌지 강토가 배의 가장 아래로 내려가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배, 배에 구멍이 났다!"
해골들이 어느새 배의 밑바닥에 붙어서 자신들의 무기를 가지고 구멍이 뚫릴 때까지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범려는 이걸 모르게 하기 위해 블리자드로 시선을 잡아끌고 화살을 퍼부으면서 정신을 흩트려 놓았다.
"당장 배를 수리할 도구를 가져와!"
강토가 길드원들에게 크게 소리쳤지만, 배 위에서 날아드는 화살 때문에 모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마법사들! 배 아래를 공격해라!"
범려의 말에 해골 마법사들이 동시에 마법 주문을 외우고는 배 아랫부분을 강타하면서 마법을 펼치자, 밑에서 뭔가 글자가 떠오르더니 마법 공격을 무효화시켰다.
"어라? 안티 매직 실드……."
"이 배가 괜히 12억 골드인 줄 아냐! 위에서는 마법 공격이 통할지 몰라도 밑에서 마법으로 배에 구멍을 뚫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배는 가라앉는다."
배 밑에서 구멍을 내고 있는 해골들은 착실하게 배에 구멍을 내놓고, 혹시 이들이 배를 수리할까 봐 물속에서 배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형님, 빨리 배를 수리해야 합니다!"
"젠장! 일부 사람들을 아래로 데려가라!"
강토는 재빨리 사람들을 아래로 투입시켜 배에 구멍이 난 부분을 수리하도록 했다.
푸욱! 푸욱!
"으악! 내 발!"
물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해골 병사들은 유저들이 다가오자 거침없이 발을 찌르며 공격을 퍼부어 수리를 못하게 막고 있었다.
"이런 젠장!"
수리를 하려고 하면 거침없이 날카롭게 치솟는 창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길드원들은 수리를 계속했고, 강토는 창이 솟아오를 때마다 그곳에 검을 쑤셔 넣어 막았다.
"크악!"
강토가 검을 쑤셔 넣기를 반복하자 해골들이 그가 있는 곳으로 몰려가더니 수 개의 창을 동시에 찔러 넣어 발이건 팔이건 모두 꿰뚫어버렸다.
"이런 개 같은 일이……!"
창으로 온몸이 꿰이자 그의 생명력이 거의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사이에 강토의 발을 잡는 뼈다귀 손이 있었다.
"헉!"
"죽어라!"
해골 부장 하나가 배에 뚫린 구멍을 통해 배 안으로 들어오더니 검을 꺼내 강토를 향해 크게 휘둘렀다.
이미 창에 꿰여 있던 강토는 두 눈 벌겋게 뜬 상태에서 해골 부장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 이제 배가 가라앉는군. 잘 가라, 흑검. 다음에도 내 스승님을 건드리면 이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범려는 가라앉는 배를 향해 한마디 경고를 하더니 해골들과 같이 아모다 항구 근해에서 벗어났다.
"두고 보자, 해골 제작……."
저 멀리 떠나고 있는 배에서 화살이 하나 날아들더니 흑검의 미간에 툭 하고 박혔고, 이내 그의 생명력이 크게 사라져 버렸다.
"이놈!"
쉬이익! 쉬이익!
몇 개의 화살이 더 날아들어 흑검의 미간에 툭툭 박히면서 생명력을 앗아갔고, 나중에는 날아오는 화살을 막기 위해 대검을 들어 미간을 가렸지만, 다음에는 두 눈과 목젖을 향해 날아오는 바람에 변변한 저항 한 번 못해보고 그는 죽고 말았다.
"아, 오랜만에 손가락 좀 풀었네."
"그런데 저 사람들 저대로 놔둬도 되는 거야?"
로즈의 물음에도 범려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걱정 마. 여기는 지금 밝혀진 심해의 노턴 지역에서 제일 위험한 곳이야. 특히 거대 바다 생물들이 많아서 저레벨 유저들은 얼씬도 못하는 곳이지."
"크아악! 사람 살려!"
"으악-!"
범려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던 유저들은 바다 속의 몬스터들에 의해 아래로 끌려가더니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저 봐. 저런 것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야."
"그래도 우산 길드에서 다시 복수하러 오지 않을까?"
"아니, 못 와. 저 큰 배 봤지? 그게 가라앉았어. 저런 배를 구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었을 건데, 그걸 또다시 살 수는 없을 거야. 최소한 바다에서는 녀석들을 볼 일이 없을 거야. 내가 다시 대륙으로 나가면 모를까."
범려의 예견대로 우산 길드는 많은 해적질로 돈을 벌어들였지만, 길드원 전부가 탈 만한 배는 구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가라앉은 배 가격만 해도 12억 골드. 1억 골드는 배에 필요한 장비나 물품들을 구비하느라 다 써버렸다.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저들이 다시 바다로 나올 확률은 적었다.
"이제 스승님한테 가서 복수했다고 알려 줘야지."
범려는 곧장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고, 궁귀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하하하! 그놈 꼴좋구나."
"스승님, 그래도 한동안은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우산 길드는 사라진 게 아니라 당한 거 한 번 갚아줬을 뿐이라서."
"상관없다. 나도 내 힘이 부족함을 느꼈기에 이번에 협회 사람들과 잠시 동안 수련을 떠날 예정이다. 비록 게임 안에서 하는 수련이지만."
궁귀는 자신들의 레벨이 낮고 궁수들이 쓰는 흔하디흔한 아이템 하나 없어 이렇게 당했다고 느꼈다.
"이 기회에 좋은 아이템을 얻으러 다녀 봐야 하지 않겠냐."
"그럼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무슨 소리냐, 기회를 달라니?"
범려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해골 중에서 활을 만들 줄 아는 녀석이 있음을 알고 있다. 스승님이 녀석을 데리고 다니면서 재료와 아이템을 구하고, 그걸로 만들기를 반복한다면 궁장의 숙련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스승님이 만족할 만한 활을 만들 때까지 같이 다니게 할 작정이다.
"스승님, 이 제자가 궁장(弓匠)을 한 명 얻었는데, 아직 실력이 미천한 놈이라 아무도 데려다 쓰지를 않습니다. 스승님이 이놈을 써보시겠습니까?"
초라한 행색의 해골이 하나 앞으로 오자, 범려는 녀석을 소개시켜 줬다.
"어떻습니까, 스승님?"
"아주 나쁜 녀석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입은 옷을 보니 행색이 거지 중에 상거지가 따로 없구나."
"그게 좀… 전투를 전문적으로 하는 녀석이 아니라서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비록 제자가 데려온 해골 궁장(弓匠)의 행색이 초라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자가 스승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
"옷이야 내가 해서 입혀야지. 내가 부려 먹을 녀석이라면 말이지."
"스승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처음에 만드는 물건이 별로 좋지 못해도, 나중에 분명 쓸 만한 걸 만들어낼 것입니다."
"알았다."
궁장이 된 해골 녀석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이렇게 부탁하는 방법 말고는 없다.
"그리고 무두장이가 하나 있던데, 그놈은 왜 안 보이냐?"
궁귀가 무두장이 이야기를 꺼내자 범려는 조금 망설여졌다.
"그 녀석은 제가 데리고 있는 게 숙련도를 더 빨리 올리는 거라 생각해서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놈이 만든 가죽 옷은 우리한테 보내주는 거냐?"
궁귀가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범려는 스승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스승님이 부탁하시는데 물론 드려야지요. 그래도 초반에는 그리 좋은 것은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상관없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보다는 좋지 않겠냐?"
협회 사람들은 레벨 올리고, 화살 사고, 같이 길드 자금을 모으느라 개인적인 장비가 매우 열악했다.
"스승님, 그럼 지금 무두장이한테 만들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급하게 할 건 없지만……."
궁귀는 살짝 거부의 의사를 내비치려고 했지만, 막상 자신의 장비를 보니 그런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아무리 즐기는 게임이라지만, 내가 봐도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좀 그렇군.'
궁귀는 허름하기 그지없는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거부도 제대로 못했다.
범려는 당장 무두장이에게 달려가 가죽 수백 장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궁수들이 쓸 만한 가죽 옷을 만들어봐라."
해골 무두장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죽을 가지고 열심히 옷을 만들기 시작했고, 신발에서부터 바지, 윗옷, 궁수들이 쓰는 활 골무 등등 여러 가지 물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해골 궁장에게는 지금 쓰고 있는 활보다 나은 활을 하나 만들어달라며 재료와 함께 물건을 주자, 역시나 그 자리에서 바쁘게 물건을 만들었다.
100여 개 정도의 물품들을 만드느라 이들은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멋진 각궁
흔히 알고 있는 각궁보다 더 멋있어지고 화려해졌으며, 동시에 활의 성능도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공격력:150 내구력:100/100
옵션:민첩성 +20
-튼튼한 가죽 튜닉
아주 멋진 가죽 옷입니다. 자주 손질을 할 필요도 없을 만큼 제대로 된 물건이며, 폐와 심장이 있는 부분은 두껍게 제작되어서 검에 크게 상처를 입지 않는 이상 치명상을 입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방어력:400 내구력:200/200
옵션:체력 +30 민첩성 10
그 외에도 다른 물건들이 더 많이 있었지만, 튼튼한 가죽 튜닉과 거의 비슷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다. 모두가 궁수들에게 딱 맞는 옷이었다.
"하하하! 이거 상당히 좋은데? 한동안 이걸 입으면 될 것 같군."
협회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죽 옷을 입고는 만족스러워했다.
"……."
하지만 범려는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자신이 원하는 수준보다 한참 떨어지는 능력치였기 때문이다.
"제자야, 과한 욕심은 화를 불러오는 법. 너무 안달하지 말거라."
궁귀는 범려의 표정을 보더니 그 생각을 읽어냈고, 범려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죄송할 것은 없다. 해골 무두장이가 별 볼일 없다 여기지 말고 녀석에게 좀 더 물건을 만들 기회를 주거라. 그러면 나중에 네가 필요로 하는 수준의 물건을 만들어낼 것이다."
범려는 궁귀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안달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스승님, 이제 어디로 가실 겁니까?"
"육지로 갈 생각이다. 어차피 배가 부서졌으니 바다에서의 생활은 무리다."
궁귀가 육지로 간다고 말하자 그 옆에 있던 협회 사람들도 같이 육지로 가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언제 바다에서 나올 거냐?"
"해골 병사들을 더 양성한 후에 육지로 올라가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다."
범려는 노턴 지역에서 해골들을 더 키울 작정이다. 배가 3척이나 생겼으니 사냥하는 데 있어서 큰 문제가 될 거라 여기지 않았다.
"그럼 육지까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부두 관리자에게 물어보니 이곳에는 정기적으로 배가 운행한다고 하더구나. 대신 그게 한 달에 한 번밖에 안 되는데, 오늘 마침 온다고 하는구나."
궁귀는 약 1시간 후에 정기 운항하는 배를 타고 육지로 돌아갔고, 범려는 사냥을 위해 바다로 나갔다.
"이제 열심히 사냥을 해볼까?"
"형님, 같이 사냥해야죠."
"나도, 나도."
로즈 남매와 헬렌은 범려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바다에 있는 동안 범려를 도와줄 생각이다.
"나야 언제나 대환영이지."
범려는 미소를 지으며 셋을 환영했다.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던 범려는 인구수 꽉꽉 채워 대륙으로 돌아가는 일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생각해보았다.
"크윽! 흑검 형님, 죄송합니다."
"아니다, 강토야. 내가 해골 제작자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다."
"형님, 놈이 배에 구멍을 뚫어 저희를 이렇게 만들 거라 예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흑검은 이번 싸움을 통해서 해골 제작자의 실력이 보통이 아님을 깨달았다.
"형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떻게 하기는, 힘을 길러서 다시 녀석에게 복수해야지."
흑검은 해골 제작자인 범려에게 다시 도전할 의사를 비쳤고, 강토 역시 그 뜻에 따랐다.
"형님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당장 길드원들에게 알려서 힘을 길러 해골 제작자에게 복수하자고 설득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그 뒤에 더 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해골 제작자를 만나면 피하라고 해라. 녀석과 지금 싸운다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밖에 안 되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강토가 이러한 흑검의 말을 전하자, 길드원들은 해골 제작자에 대한 복수를 찬성하며, 동시에 지금은 숨을 고를 때라는 것을 인식했다.
"아우! 요즘 왜 자꾸 귀가 간지럽냐."
범려는 우산 길드원들이 요즘 자신에게 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바다에서 사냥을 하면서 해골들의 레벨 업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었다.
"후후후! 병사들이 늘어나니 참 좋구나. 속박 스킬을 한번 봐볼까?"
-속박(중급 60.98%)
해골 제작자에게는 병사들을 소유하고, 그들을 부릴 수 있게 만듭니다. 대신 제한된 숫자를 넘어서서 병사들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해골 병사 숫자 530/650
기병 120/120
마법사 20/20
부장 8/???
범려의 해골 수가 500이 넘어가자, 사냥을 할 때도 이건 사냥이 아니라 거의 어부가 그물 쳐서 물고기를 잡는 것 같았다.
"후후후! 어디 몬스터 대군이 있는 곳 없나?"
정말 해골들의 숫자가 군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불어나자 범려는 경험치 욕심이 더더욱 많이 생겨났다.
"아, 경험치가 부족해. 해골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 몬스터가 필요해."
마법사들이 마법서에 환장하는 것처럼 범려는 경험치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경험치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 눈앞에서 하늘을 날고 있는 드래곤을 보게 되었다.
"어라? 웬 드래곤이 바다 위를 날고 있네?"
하늘을 날고 있던 드래곤은 범려가 있는 곳을 한 번 쓰윽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 드래곤이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날개 달린 드래곤이 바다 속으로 뛰어들자 바다가 요동을 쳤다.
"어, 어! 이런! 다들 꽉 잡아!"
드래곤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파도가 치면서, 배가 전복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빌어먹을 드래곤."
범려는 심해의 노턴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거대한 파도 때문에 해골들 몇몇이 바다에 빠지는 일도 벌어졌다.
"크윽!"
노턴이 지나가자 마치 폭풍우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사람 정신을 쏘옥 빼놓았다.
바다에 들어간 노턴이 다시 하늘로 솟아오르며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무지개를 연출했지만, 범려 일행들은 그런 무지개보다 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빌어먹을 노턴! 하필 이곳에서 잠수할 게 뭐야."
범려는 노턴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해골들을 향해 소리쳤다.
"바다에 빠진 녀석들이 있나 없나 확인하고, 있다면 구해주도록. 당장 이 지역을 빠져나간다."
배의 흔들림이 잦아들자, 해골들이 범려의 명령을 이행했다.
"형님, 저기 보세요. 드래곤이 지나간 자리를……."
노턴이 지나간 지 30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심해 속에서 살고 있는 몬스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앙-!
수면 위로 떠오른 녀석들은 마치 노턴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발광하는 표정이었다.
"노턴이 한번 지나간 자리에 몬스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다니."
"범려야, 지금이 사냥의 기회야!"
로즈는 물 위로 떠오른 녀석들을 사냥해야 할 때라면서 소리쳤고, 범려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병사들 전투 준비!"
해골들이 자리를 잡으며 전투 준비를 했고, 이내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를 상대로 마법과 화살을 날리며 경험치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