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구름으로 만들어진 땅
범려는 스승과 헤어진 뒤로 정확하게 1개월간 바다에서 사냥을 했고, 간혹 가다 해적들과의 전투도 벌였다.
그 결과 해골들은 엄청난 레벨 업을 했고, 해골 병사들의 숫자도 제한 인구수를 맞추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지?"
"형님, 이제 육지로 돌아가실 거지요?"
"당연하지. 바다에서 생활하다 보니 육지가 너무 그립네."
범려는 취선의 말대로 육지가 그리워서 더 이상은 바다에서 생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이 배를 항구에 팔고 가요."
"그래야지."
"자기야, 이렇게 보니 해골들 진짜 많다."
로즈는 범려를 매일같이 이름으로 부르다가 이제는 '자기야'라고 하면서 말을 했다.
"많이 늘었지. 제한이 10명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600이 넘었어."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범려는 육지를 다시 밟기는 해야 하는데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형님, 창공의 페이셔 어때요?"
창공의 페이셔는 『판게아 월드』에서 유일하게 하늘 위에 있는 대륙이다.
심해의 노턴에서만 보이는 공중 대륙 창공의 페이셔는 하늘로 올라가는 길도 몇 가지로 정해져 있다.
"난 해골들을 데리고 올라가야 해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안 되는데."
페이셔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천국의 계단이라는 하늘로 올라가는 던전을 통해 가거나, 비공정이라 불리는 하늘을 나는 비행선을 타는 방법과 각 도시에서 운영하는 게이트를 이용해 가는 방법이 있다.
"형님, 간단하게 천국의 계단을 이용하죠."
"그러지."
천국의 계단은 던전 중에서 유일하게 탑이라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던전이고, 던전 보스를 만나서 가는 길도 있고 피해서 가는 길도 있다.
"그런데 보스는 잡으실 건가요?"
"당연한 거 아니냐?"
범려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취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형님, 그 던전은 보스를 피해 가는 길이 있어요. 보스를 잡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어려운 보스 한두 번 만나봤냐."
범려는 던전에 가면 무조건 전쟁 난이도로 클리어한다. 어렵기는 하지만, 그만큼 성취도도 높고 보람도 있다.
"형님, 그 던전 보스가 『판게아 월드』에서 제일 어려운 보스 5위권 안에 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래요?"
범려는 5위라는 말에 관심이 갔다. 그동안 던전 사냥을 해봐서 알지만, 단 한 번도 쉬운 녀석이 없었고 만만한 녀석도 없었다.
"5위라, 아주 마음에 드는 숫자인데."
피하기보다는 던전의 보스와 한바탕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는 범려의 모습에 취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아서 하세요."
취선도 포기를 하고는 범려가 나서는 일에 토를 달지 않았다.
"저기가 천국의 계단인가?"
배를 타고 가던 중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기둥을 보면서 범려가 입을 열자, 모두들 그 탑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저 탑이 천국의 계단이죠. 여기서는 약간 작아 보이는데, 가까이 가면 무척 큰 탑이에요."
"해골들 600명이 들어갈 공간도 있지?"
"네. 입구 자체도 엄청 커서 그런 문제는 없어요."
취선은 안심하라며 말했지만, 범려는 상당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입구가 좁으면 진격할 때 제일 어렵다. 마음대로 진형도 펼칠 수 없고, 후퇴가 불가능한 곳이 바로 저런 탑이다.
가까이 갈수록 탑이 하늘에 떠 있는 공중 대륙 페이셔 지역을 향해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탑이 아래로 내려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형님, 이게 천국의 계단이에요."
"멀리서 볼 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인데. 그런데 저기 탑 가운데 있는 구름은 뭐냐?"
천국의 계단 한가운데에 있는 검은 구름은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저 구름은 천국의 계단에 있는 보스가 만들어내는 구름이에요."
던전 안에 있는 보스가 필드 바깥에까지 저런 힘을 뻗치는 것을 본 적이 없던 범려였다.
"정말 신기한 녀석이 보스로 자리 잡고 있군."
범려는 저 보스가 위험하다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었다.
"일단 탑으로 들어가자."
"배는 탑 아래에 있는 항구에서 정박을 하시든지, 처분을 하세요."
"정박은 무슨. 무조건 처분이야. 바다는 이제 질렸어."
범려는 배를 팔기 전에 배에 부착되어 있는 발리스타는 다 떼어서 아르테미스에게 말해 영혼의 세계로 보내버렸고, 천국의 계단 아래에 있는 항구에서 배를 팔아버렸다.
배를 팔자 1척당 3억 골드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나왔다.
'허허! 공짜로 9억을 벌었네.'
드워프들이 만든 배라서 굉장히 높은 가격을 받았고, 관리를 잘한 것도 크게 한몫을 했다.
"형님, 배 파셨어요?"
"어, 팔았어."
"손해 많이 보셨죠? 배를 팔 때 아무리 잘 받아봐야 20퍼센트 정도 받는다고 하던데."
20퍼센트라는 말에 범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배 1척당 받은 돈이 3억. 그럼 원래 배 가격이 15억이라는 소리다.
"갑자기 현기증이……."
즉, 드워프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는 제마는 가만히 앉아서 하루에도 수십억을 벌어들이는 괴물이라는 것이다.
'제마 녀석… 이렇게 돈을 잘 벌면서 돈 있는 티를 안 내다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친구 녀석이 잘나가도 너무 잘나가니까 배가 아팠다.
범려는 다음에 녀석을 만나면 모든 술값을 그놈에게 내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제마한테 삥도 좀 뜯어야지. 클클클.'
사악한 범려는 친구한테 돈을 뜯어내려고 모종의 계획을 세우며 천국의 계단 입구에 도착했다.
"이 정도면 해골들 600이 들어가도 모자람이 없겠군."
"형님, 들어가죠."
해골 병사들과 같이 던전으로 들어가자, 여느 던전과 다름없이 범려나 다른 이들이 늘 보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난이도가 전쟁 모드로 설정됩니다.
-던전의 외형이 변경됩니다.
-몬스터들의 배치와 생명력이 크게 상승합니다.
"크윽! 전쟁 난이도에서 그놈이 얼마나 강해졌을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취선은 탑의 중심부에 있는 보스가 일반에서보다 훨씬 강해져 있을 거라 여기고는 될 수 있으면 녀석이 있는 방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취선아,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은 거냐?"
"형님, 꼭 보스를 잡으셔야 합니까?"
취선이 다른 보스는 몰라도 이 녀석만은 정말 피하고 싶어 하는 걸 보니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범려가 보스를 피할 것 같냐고 물어본다면, 절대 아니다. 그는 죽어도 보스와 싸우다 죽을 인간이다.
"저기 첫 번째 몬스터가 보이는구나."
범려의 눈에 들어온 녀석들은 열다섯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들로, 몬스터 종류는 듀라한이었다.
"……."
데스나이트 다음가는 굉장한 몬스터로, 상당한 노련함을 가지고 있어야 잡는다는 듀라한이 열다섯이나 있으니 범려는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여기 천국의 계단 아니야? 그런데 저런 언데드 몬스터들이 득실대다니."
강력한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는 뭐니 뭐니 해도 버프를 풀로 하는 게 최고다.
"다들 버프해!"
일행들이 버프를 시전하자 동시에 서너 개의 버프가 생성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아르테미스의 손길은 그중 최고의 버프였다.
"언데드를 상대할 때는 신성력이 깃든 무기가 최고지."
더군다나 범려는 병사들보다 앞에 있으면서 먼저 공격을 당하려고 대기하고 있었고, 로즈가 그 뒤에서 힐을 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빠른 진행을 위해서는 격노가 필수지."
범려는 유니콘 활을 들어 시위를 당기더니 먼저 듀라한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에 몬스터들이 범려를 향해 달려오자, 그는 가볍게 창을 휘두르면서
'올 테면 와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압!"
듀라한들과의 전투가 시작되자 해골들은 미친 듯이 덤벼들었고, 순식간에 600 대 15라는 말도 안 되는 숫자가 격돌하고 말았다.
"크윽! 허억!"
범려는 일부러 몇 대 맞아 생명력을 딱 40퍼센트까지 떨어트리자, 해골들의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격노 상태가 활성화됩니다.
이걸로 버프를 포함해 해골들의 능력치가 80퍼센트 상승했고, 다른 수치까지 포함한다면 90퍼센트에 가까운 능력치가 업이 된 상태다.
"크아-!"
능력치가 크게 오르자, 해골들은 듀라한의 공격을 한 대 맞는다고 해도 별다른 이상이 없을 정도로 상승된 힘을 보여 주었다.
"으라차차!"
"파이어볼!"
"회색의 빛!"
아무리 듀라한이 강하다고 하지만, 해골 병사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인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자 싱겁게 느껴졌다.
"취선아, 듀라한이 별로 안 세다."
"여기 몬스터는 가는 길목에 세워서 유저들이 일부러 몬스터를 잡게 만들어놨기에 필드에서 만나는 녀석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거예요."
전쟁 난이도로 변경되면서 강해지기는 했지만, 거기서 거기라는 소리였다.
"좋다. 그렇다면 다섯 무리씩 끌어와도 되겠지?"
"그 정도면 충분할 거예요."
범려가 각 부장들에게 병력을 지휘해 듀라한들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면서 몬스터 무리를 처리해나갔다.
"각 부장들은 부대를 다섯으로 나누어 움직여라. 물론 나를 포함해서 부대를 나누어라."
부장들이 명령대로 병사를 데리고 갔지만, 유일하게 데리고 가지 못하는 병력이 있었으니 그들은 해골 마법사들이었다.
"너희들은 5명씩 한 조가 되어서 부장들을 따라가라."
혹 광역 마법을 써야 할지 몰라서 마법사들을 붙여 주었다. 총 네 군데에 마법사들이 붙었고, 범려가 맡고 있는 곳은 마법사라고는 헬렌 혼자뿐이었다.
"뭐야? 마법사들 있어서 좀 편하게 싸우나 했는데, 다들 흩어져 버리네."
해골 마법사들 덕분에 상당히 편한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다들 흩어져 버리니 이제 헬렌 혼자서 고생을 해야 했다.
"파이어볼!"
"쓸어버려!"
해골 부대가 다섯으로 나뉘어 활동을 하자 정말 빠른 속도로 던전이 정리되었고, 듀라한들도 생각보다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해골 병사들의 손에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형님, 벌써 30층이에요."
"몇 층이나 올라가야 하는데?"
"200층 남았어요."
"컥!"
이제 30층 올라왔는데 200층을 더 올라가야 한다는 소리에 범려는 헛바람을 들이쉬며 뒷골을 붙잡았다.
"어머, 범려야!"
범려가 휘청거리자, 로즈가 옆에서 그의 몸을 지탱해주었다.
"뭐가 이리도 높아?"
"그래서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이에요. 보스를 안 잡는 이유 중 하나가 층이 너무 많다는 것도 있어요."
아무리 층을 빨리 정리해가면서 전진한다고 해도 남은 층이 200층. 그중에 보스가 있는 층이 있을 테니 하나를 뺀다고 하더라도 199층이 남았다는 소리다.
'199층이나 200층이나. 서둘러야겠다.'
범려는 해골들에게 소리치며 속도를 높였다.
"얘들아! 두 무리씩 상대해라!"
해골 부대가 100명씩 나뉜 상태에서 한 무리를 추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범려도 그리 부담이 가는 숫자가 아니었다.
범려의 판단은 아주 정확해서, 층을 클리어하고 올라가는 속도가 전보다 조금 빨라졌다.
"형님, 이대로 가면 1시간 조금 넘어서 보스가 있는 곳에 도달하겠는데요."
"역시 부장이 생긴 뒤로 일이 편해지고 있어."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이렇게 전투를 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지금 몇 층이지?"
"60층요."
아직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60층까지 올라왔고, 지금도 전투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해골들이나 범려나 쉼 없이 몰아치며 몬스터 무리들을 쓸어가고 있기 때문에, 지치는 것은 범려를 제외한 다른 세 사람이었다.
"조, 조금만 쉬었다 가자. 나 힘들어."
"쉬더라도 보스가 있는 곳까지 가서 쉬어야지, 여기서 꾸물댈 시간 없어. 보스를 안 잡는다 해도 아직도 올라가야 할 층이 많이 남았어."
사람들이 지치든지 말든지 범려는 그들을 질질 끌고 다녔고, 결국 1시간이 조금 안 되어 보스가 있는 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좀 쉬자."
보스가 있는 층으로 무리하게 끌고 와서 그런지 사람들은 범려의 쉬자는 말에 바닥에 주저앉더니 몸을 가누지 못했다.
"으윽! 형님, 좀 천천히 가요."
"맞아, 범려야. 여자 몸으로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왔으면 된 거지. 그 이상 토 달면 다음에 나랑 같이 게임하기 싫은 걸로 알겠어."
"……."
때마침 뭔가 이야기를 더 하려던 이들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개인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로즈를 제외한 둘은 범려를 따라다니면 뭔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휴식 시간은 30분. 그사이에 보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범려는 이 보스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형님, 여기는 천뢰의 엘코이라는 드래곤이 보스예요. 덩치는 수호룡들의 반 정도로 알고 있어요."
"보스가 드래곤이야?"
범려는 이곳의 보스가 드래곤이라는 소리에 귀를 후벼 파면서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는지 재차 확인을 했다.
"정말 드래곤이야?"
"네, 형님."
"큰일이군. 드래곤이면 브레스도 쏠 것이고, 하다못해 마법도 부릴 것이고."
흔히들 알고 있는 드래곤들의 공격 패턴에 대해 생각해보니 제일 큰 문제는 마법이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브레스를 쏜다고 해도, 머리 부분에서 싸우는 사람은 어느 게임이 되었건 딱 한 명이다.
나머지는 드래곤의 옆구리에 들러붙어서 두들기는 존재들뿐이다.
범려는 취선과 부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일단 기본적인 방어력은 해골 부장이나 취선이나 차이가 없다. 차이는 누가 더 능동적으로 녀석의 머리를 잡고 있느냐다.
"취선아, 너 저놈이랑 싸워봤지?"
"딱 한 번인데요. 그것도 오래 싸우지도 못했어요. 20초 만에 브레스 맞고 죽었으니까."
"브레스 속성이 뭔지 아냐?"
"바람 속성요."
이름부터가 천뢰의 엘코이라고 했으니 속성 자체는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물어본 것인데 아주 정확한 답을 얻어냈다.
"너 바람 속성 저항력 얼마나 돼?"
"버프가 없으면 10퍼센트인데요."
"됐다. 넌 오늘부터 후방이다."
속성 저항력을 따진다면 버프가 없어도 20퍼센트의 속성 저항력을 가진 해골 부장이 좀 더 나은 편이다.
"어쩔 수 없이 해골 부장을 앞으로 내세워야겠군. 그런데 누굴 앞으로 내밀지?"
몇 명 안 되는 해골 부장들 중에서 누구를 내보내야 조금이라도 보스를 잡을 확률이 높은지 알고 싶었다.
"그래. 일단 레벨이 가장 높고 부장 경력이 제일 오래된 네가 앞에 서라."
"알겠습니다."
"아르테미스!"
아르테미스를 부른 범려는 당장 투석기와 발리스타를 영혼의 세계에서 꺼내달라고 부탁했다.
"후후후."
그리고는 18기의 발리스타와 2기의 투석기를 보면서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거면 웬만한 유저들이나 몬스터 군대들은 나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것들이다."
범려는 발리스타와 함께 투석기를 같이 다룰 해골들을 뽑더니 헬렌을 불렀다.
"너 설마 나보고 또 얼음 덩어리를 만들라는 것은 아니겠지?"
"어,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나 안 해."
"알았어. 그럼 다음부터 나 없이 게임할 수 있다는 거지?"
"헛! 그, 그건 아니고."
아무리 헬렌이라도 범려의 힘 앞에서는 결국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범려는 헬렌 없이 게임을 할 수 있어도 헬렌은 범려의 도움 없이 이만큼 레벨 업 하기는 힘들다.
"누나, 나 도와줄 거지?"
"알았어……."
헬렌은 별수 없이 열심히 투석기에 써먹을 얼음 덩어리를 만들었고, 발리스타는 배치를 적절하게 해서 발사한다면 지원사격으로 충분한 최고의 물건이 될 것이다.
"헬렌 누나가 얼음 덩어리를 100개 만들 때까지 휴식 시간을 지속한다."
헬렌 덕분에 휴식 시간이 늘어나자 로즈 남매는 정말 마음 푹 놓고 쉬었고, 헬렌은 혼자서 범려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지만 그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얼음 덩어리 100개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로즈 남매는 최소한 1시간 30분을 쉬었고, 그사이에 범려는 작전을 짰다.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해골 부장 하나가 용 대가리를 한쪽으로 몰고 갈 거야. 그사이에 다른 해골들이 옆에 달라붙을 거고, 궁수나 마법사들의 원거리 공격은 머리를 제외한 부분에서 범위를 상당히 넓게 잡아둬. 그래야 생존 확률이 높으니까."
범려는 그 외에도 다른 세세한 부분까지 작전을 지시했다. 만약 해골 부장이 죽을 경우 취선이 바로 뛰어들어 대타를 확실히 할 수 있어야 했다.
"취선, 만약에 해골 부장이 죽는다면 네가 탱커를 담당해라."
취선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차피 해골 부장이 죽으면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이 된다.
"이제 가자."
범려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해골들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가장 앞장서서 싸워야 하는 해골 부장은 생명력 포션 몇 개를 받아들고는 필승의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살아남아라. 비록 널 앞에 내세우지만, 난 절대 너를 죽이려고 앞으로 내민 것이 아니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범려는 반드시 저 드래곤을 잡아서 아이템을 먹겠다는 의지를 품었지만, 취선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다들 위치로!"
해골들이 범려가 지정한 위치에 서서 준비를 했고, 로즈는 가장 앞에서 싸울 해골 부장에게 힐을 줄 준비를 했다.
"공격-!"
600명의 해골들이 천뢰의 엘코이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경험치에 목말라 갈증을 심하게 느끼는 모습이었다.
쉽게 비유하자면 물마시고 싶어 죽겠다는 사람에게 저 위에 우물이 있으니 달려가 떠먹으라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으아앗!"
가장 먼저 공격을 펼친 해골 부장은 엘코이의 시선을 붙잡더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모두 사용해서 스킬을 퍼부어댔다.
창을 들었을 경우에는 나선이나 회오리 찌르기 같은 창 기술을 선보였고, 도끼를 들면 나무 부수기 등의 돌격병의 전문 기술을 쓰기도 했다.
"방패 치기!"
빠악!
거의 모든 스킬을 2초 간격으로 쏟아내자 엘코이의 시선이 해골 부장에게 고정되었고, 그걸로 녀석의 생명력 1퍼센트를 깎아냈다.
"해골 부장아 눈물나게 싸우는구나.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이 뼈다귀 녀석이!」
엘코이는 겨우 언데드에게 공격을 당한 게 화가 나는지 전기 브레스를 쏘려고 입을 벌렸고, 금세 브레스가 날아들었다.
"크압!"
전기 브레스를 방패를 들어 막기는 했지만 데미지가 흡수될 리 만무했다.
해골 부장의 생명력이 0을 향해 달리고 있는 와중에 드래곤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크악!」
브레스를 뿜어내는 도중 범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와 드래곤의 턱 밑을 환영섬 스킬로 공격해 위로 쳐올려 버렸고, 그로 인해 브레스는 위를 향해 뿜어졌다.
"로즈, 힐!"
"힐!"
신성력 가득한 힐을 한 번 시전하자 해골 부장의 생명력이 가득 차오르면서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런 뼈다귀들아-!」
엘코이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치며 겁을 줬지만, 해골 부장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예상외였다.
"도마뱀 자식, 시끄럽다!"
역으로 소리를 치는 것은 해골 부장이었고, 엘코이는 일순간 충격을 받았다.
「이, 이놈! 폭풍의 위대한 힘을 맛보아라!」
탑의 천장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면서 불길한 기운이 물씬 풍겨 오자, 범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썬더스톰이다!"
쫘자자작! 쫘자작!
번개가 무참히 작렬하면서 해골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지만, 마법 저항으로 인해 데미지를 20퍼센트 줄여서 받고 정령의 뼈의 효과로 또 20퍼센트의 감소 효과를 받는 해골들이다.
"실드!"
마법사들은 다행스럽게 실드 마법을 펼쳐 데미지를 상당히 흡수했고, 범려와 다른 사람들은 헬렌의 도움으로 그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으헉! 겁나게 강한 마법이군."
썬더스톰을 직접 경험하니 엄청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너만 전체 마법 쓰냐! 우리도 쓴다! 해골 마법사들아, 블리자드다!"
범려의 명령에 해골 마법사들이 동시에 블리자드를 구현하니, 보스가 있는 층 전체에 눈보라가 몰아치고 날카로운 얼음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블리자드!"
헬렌 누나도 때마침 전체 마법을 날리며 해골들과 보조를 맞춰주었다.
"발리스타 투석기! 드래곤을 향해 쏴라!"
뒤에서 대기만 하고 있던 것들이 범려의 명령이 떨어지자 순식간에 공격을 펼치며, 드래곤의 단단하고 질긴 피부를 두들겨 댔다.
「네 이놈들! 너희들을 짓이겨 주마!」
"망구다이-!"
망구다이들이 범려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녀석의 발에 올가미를 던져서 높이 올라가지 못하게 붙잡자, 보병들이 올가미를 타고 위로 거침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크아앙!」
해골들은 엘코이가 날아오르지 못하도록 날갯죽지를 공격해댔고, 용의 피부 중에서 가장 약하다고 평가되는 날개의 피막을 쫙 하고 찢어버렸다.
쿵!
요란한 소리가 들리면서 드래곤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망구다이들은 다시 올가미를 던져 녀석이 꼼짝 못하게 만들려고 했다.
"꼬리! 꼬리를 공격해서 걸레로 만들어!"
용의 꼬리는 생각보다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으므로 범려는 녀석의 꼬리를 너덜너덜하게 만들라고 했다. 그러자 해골 400명이 달려들더니 정말 꼬리만 집중적으로 공격해서 완벽한 걸레 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범려야, 나 마나 포션!"
"여기!"
범려는 마나가 떨어져 가는 로즈에게 포션을 던져 주었고, 그걸 잽싸게 받아 순식간에 들이켜 마나를 채우는 로즈였다.
"취선! 놈의 목 비늘을 벗겨라. 내가 환영섬을 찌르겠다."
"예! 형님."
취선이 천공의 도끼로 무참히 녀석의 목을 후려쳤는데, 그 공격이 제대로 치명타가 터졌는지 취선은 눈앞에 뜨는 데미지에 깜짝 놀랐다.
"6천?"
보스의 생명력이야 너무 많아서 6천 정도는 길 가다 침 한 번 뱉는 수준이다. 그보다 문제는 드래곤의 시선이 바로 취선을 향해 있다는 것이다.
"젠장!"
취선은 어쩔 수 없이 용 대가리 앞에 섰고, 부장과 함께 2명의 해골이 용의 시선을 이리저리 끌었다.
「크아앙!」
다시 드래곤이 입을 크게 벌리면서 브레스를 쏘려고 하자, 취선은 갑자기 옆으로 빠져 데굴데굴 구르더니 녀석의 아가리를 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범려 형님, 저도 브레스 막는 방법 알았습니다."
취선이 갑자기 달리기 시작하더니 풀 스윙으로 엘코이의 턱을 천공의 도끼로 후려쳐 올렸다.
퍽!
범려보다 배는 파워가 센 취선이 올려쳤으니 브레스는 해골 부장에게 닿지도 못하고 바로 천장으로 솟구쳤다. 그 덕분에 직격당한 녀석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하하! 잘했다, 취선!"
두 번이나 브레스가 막히자 엘코이의 눈에서 푸른빛이 폭사되더니 다시 한 번 썬더스톰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다.
"내가 이건 안 쓸려고 했는데."
범려는 해골마를 꺼내고는 창을 집어넣고 활을 들더니 녀석의 눈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크아악!」
-눈을 공격당했습니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3초간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취선 다시 목을 공격해!"
"으라차차-!"
취선은 이때다 싶어 무식한 도끼로 녀석의 목을 두들겼고, 그 단단하고 질기다던 용의 비늘도 조금 벗겨지고 말았다.
"됐다! 비켜라!"
목 부분에 벗겨진 비늘은 겨우 10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됐는데, 범려는 거침없이 창을 꺼내더니 그곳에 스킬을 시전했다.
"환영섬!"
엘코이의 목에 섬전의 창이 깊숙이 꽂히더니 용의 피가 솟구쳐 나왔다.
「이, 이놈…….」
방금 공격으로 인해 엘코이의 생명력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아직도 짱짱하게 남은 생명력은 줄어든 생명력보다 엄청 많았다.
퍽!
"젠장!"
엘코이 녀석이 범려를 앞발을 휘둘러 날려 버리려고 했지만, 이걸 예상이라도 한 듯 범려는 재빨리 창을 들어 녀석의 공격을 방어했다.
"후! 섬전의 창으로 녀석의 공격을 막지 못했으면 죽었을 거야."
지금 범려의 생명력은 방금 전의 공격을 막아 생명력이 10퍼센트 더 떨어져 30퍼센트만 남게 되었다.
"다시 한 번 간다."
범려는 또다시 녀석의 눈을 공격해 3초간 혼란을 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녀석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똑같은 수법에 또 당할 거라 생각지 마라. 실드!」
엘코이가 마법을 쓰면서 자신을 보호했지만, 이런 마법쯤은 수백 번 쓸 거라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별로 감흥도 없었다.
"그래도 막상 실드 마법을 펼치니 짜증이 나기는 하네."
드래곤이라 그런지 실드를 펼치는 것도 순간이다. 하지만 드래곤의 실드라고 해서 오래 버틸 것 같지만, 여기는 게임이다. 일정 이상의 수치의 피해를 주면 사라진다.
"3초 만에 깨지는 실드군. 드래곤치고는 상당히 허접한 실드야."
「뭣이! 다시 실드!」
엘코이가 실드를 다시 펼치자 범려는 때는 이때다 싶어 활을 잡아당겼다.
"흐흐흐! 어서 벗겨져라."
「아니!」
해골들이 실드를 깨는 시간은 3초. 다시 실드를 펼치기 위해서는 1초가 안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범려는 그 틈을 노리고 활을 당겼고, 정확히 3초가 되기 0.4초 전에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쉬이익!
「크아아악!」
-눈을 공격당했습니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3초간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제대로 공격이 먹혀들 때마다 엘코이는 무방비 상태가 되었고, 해골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성난 파도처럼 달려들어 녀석의 몸을 찌르고 파헤치기 시작했다.
"형님, 드디어 저놈의 생명력이 50퍼센트도 안 남았습니다."
"아직 방심하기는 일러! 저놈이 무슨 마법을 쓸지 몰라. 철저하게 대비해야 해!"
전투 도중에 방심하면 해골들이 쓸려 나가는 것은 한순간이라서 범려는 절대로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녀석의 심장이 어디 있을까?"
범려는 용의 심장을 찔러서 단숨에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크아앙-!」
천뢰의 엘코이가 숨을 들이쉬면서 브레스를 쓰려고 찰나, 가슴에서 번쩍이는 무언가가 눈에 보였다.
"저거다!"
"으랏차차!"
드래곤이 브레스를 쓰려고 할 때마다 취선은 온 힘을 다해 천공의 도끼로 녀석의 턱을 때려 브레스를 공중으로 쏘게 만들었다.
"용의 심장을 찾았다!"
범려는 드래곤의 배 밑으로 들어가더니 브레스를 쓰기 전에 보았던 푸른빛을 향해 창을 찔러 넣었다.
「크윽!」
신음을 흘리면서 아래를 내려다본 엘코이는 자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는 범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간, 깔아뭉개주마!」
"누가 쉽게 당해준대!"
범려가 몸을 낮추는 드래곤의 심장을 향해 날카로운 창끝을 겨누자, 엘코이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앞발로 범려를 때려 버렸다.
"힐!"
짧은 순간이었지만 로즈의 힐이 들어오면서 범려의 생명력은 100퍼센트가 되었다가 다시 40퍼센트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나이스 힐링!"
아주 좋은 타이밍의 힐링이었기 때문에 범려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로즈를 칭찬했고, 로즈는 여전히 힐을 하느라 바쁘게 마법을 영창하고 있었다.
"그렇게 외칠 시간 있으면 빨리 녀석을 잡아. 마나 부족해!"
"여기!"
범려는 다시 마나 포션을 로즈에게 던지면서 조금만 더 버티라는 눈빛으로 신호를 주었다.
"나 괜히 사제 했어!"
로즈는 이렇게 힘든 사제를 할 바에는 차라리 다른 직업을 선택할 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왔지만, 지금 순간은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취선! 놈의 심장은 왼쪽 갈비뼈에 있다. 도끼로 찍어라!"
「이놈! 폭풍이여!」
엘코이는 다시 한 번 썬더스톰을 불러들여서 다른 녀석들에게 동시에 타격을 줄려고 했지만, 취선의 행동은 너무나 빨랐다.
"태풍 몰아치기!"
퍽! 퍽! 퍽!
연속적으로 날아드는 도끼 때문에 엘코이의 심장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며 마나의 흐름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컥!」
"계속 두들겨!"
범려는 자리에서 금방 일어나더니 취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섬전의 창을 찔러 넣었다.
"회색의 빛!"
창끝에서 번쩍이는 섬광이 휘몰아치면서 엘코이의 가슴에 붙어 있는 비늘이 모조리 날아가, 그의 가슴을 지켜 줄 방패가 사라지고 말았다.
"환영섬!"
수십 개의 창의 환영이 뿌려지더니 무참히 엘코이의 왼쪽 가슴을 갈가리 찢어버렸고, 용의 심장이 눈에 들어왔다.
"타앗!"
「크윽!」
단말마와 같은 비명 소리가 들여오면서 섬전의 창이 용의 심장을 관통했고, 그 많던 엘코이의 생명력은 한순간에 사라지며 바닥에 차갑게 드러누웠다.
"으하하! 드디어 용을 잡았다! 나도 드래곤 슬레이어다!"
"형님, 저희가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다니 너무 기쁩니다."
범려는 조심스럽게 아이템을 확인하기 위해 엘코이의 시체 위로 손을 뻗었다.
-용의 뼈를 획득하셨습니다.
-용의 비늘을 획득하셨습니다.
"헉! 뼈!"
범려에게는 아주 의미심장한 뼈를 얻자, 그의 머리에 무언가 강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6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