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만들 수 없어?
용의 뼈를 얻은 범려는 머리에서 울리는 강렬한 충격에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어지러움을 느꼈다.
"뼈, 뼈, 용의 뼈."
범려가 혼자서 용의 뼈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되씹고 있을 때 취선이 크게 소리쳤다.
"이야! 비늘이다! 비늘이야!"
용의 비늘은 판금 갑옷보다 높은 방어력에 무게는 그 절반도 안 된다는 최고의 재료 아이템이었다.
"형님, 용의 비늘이에요. 판금보다 방어력 좋다는 용의 비늘 말이에요."
취선은 이런 아이템이 나와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헬렌이나 로즈는 뼈에 관심이 있었다.
"언니, 저 뼈로 지팡이를 만들면 예쁠까요?"
"예쁜 건 둘째 치더라도 지팡이 성능을 최고일 거야."
워낙 용이라는 존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 게 하나 없는 놈이라서 다들 탐을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용 한 번 더 잡을래?"
범려가 갑자기 여기의 보스를 잡지 않겠냐고 말하자, 다들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혀, 형님, 그건 좀… 잡을 때 그렇게 고생했는데."
"그러니까 잡아야지. 다들 용의 뼈나 비늘을 원하는 것 같은데 더 잡아서 얻어야지. 그리고 뼈야 로즈와 헬렌 누나만 사용할 뿐이고, 비늘은 취선 너하고 나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잖아."
범려는 차근차근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용을 더 잡도록 유도했고, 다들 천뢰의 엘코이를 한 번 잡았으니 두 번 못 잡겠냐는 식의 생각도 있었다.
"또 잡죠, 형님."
"그래, 범려야."
"좋아! 일단 여기서 벗어난 뒤에 다시 탑에 진입하자."
다들 범려의 뜻에 따르기로 하고, 우선 던전을 벗어나 다시 재진입을 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돌격!"
"돌격!"
여기저기서 해골 부장들이 돌격 명령을 내리며 지휘하자 죽어나가는 것은 몬스터들이었고, 어느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천국의 계단을 쓸어버렸다.
"후, 천국의 계단 전 층을 5시간 만에 다 돌다니 기적이야."
"그거야 노력하면 되는 거지."
범려는 약간 거만하게 대답하면서 자신의 인벤토리에 있는 비늘과 뼈를 세 사람 앞으로 내밀었다.
"이번에는 나눠주지만, 다음에는 나도 내 몫을 챙겨야 하니 이해주길 바란다."
"당연하죠! 형님 아니었으면 어떻게 천뢰의 엘코이를 잡아요."
"이해해주니 고맙군."
이후 범려 일행은 천국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용을 잡기 시작했고, 잡을 때마다 해골 병사들이나 다른 이들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천뢰의 엘코이를 잡아냈다.
"후아, 이거 장난이 아닌데요."
"아무리 빨리 온다고 해도 보스가 있는 곳까지 최소한 2시간이 걸려."
"범려 형님, 2시간 그것도 굉장히 짧은 거예요. 여기서 제일 빨리 달려간 파티가 3시간 40분이나 걸렸어요."
범려에게는 2시간이 무척이나 긴 시간이지만, 이 탑을 한 번이라도 와본 사람들은 2시간이면 기겁을 할 정도로 짧은 시간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난 그 사람들이 아니야. 나한테는 길어서 안 돼. 조금이라도 단축시켜야 돼."
범려는 던전 클리어 시간을 어떻게 해서든 단축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해골 부장들을 불러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시간을 줄일 수 있는지 계속 토의를 해댔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자."
"여기에 이걸 같이 하면 어떻겠습니까?"
"한번 해보지."
해골들과 범려만의 대화가 오가면서 여러 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이후 천국의 계단을 1시간 코스로 만들어버리는 작전이 흘러나왔다.
"고지가 눈에 보인다."
"돌격!"
거의 천국의 계단을 공략하는 데 한 번도 멈춰서 전투를 한 적이 없을 만큼 계속 달리면서 전투를 해 보스 방까지 1시간 안에 도달을 할 수 있었다.
"우헤헤! 형님, 천뢰의 엘코이의 방입니다."
취선은 음침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지만, 범려는 신중한 표정으로 용의 뼈를 가지고 본 드래곤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생각해보았다.
"일단, 용의 뼈를 얻는 게 우선이다."
엘코이의 사냥 방식은 맨 처음 잡았을 때 거의 확정이 된 상태라서, 전투를 벌일 때 적절한 조절만 한다면 완벽한 공략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용을 잡자!"
범려가 힘차게 외치자 해골들과 동료들은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거나 혹은 화살과 마법을 쓰면서 드래곤을 공격했다.
엘코이를 잡는 데 소모된 시간은 대략 20분이 걸렸고, 이번에 나온 아이템은 이전과 다름없이 용의 비늘과 뼈였다.
"후후후."
-용의 비늘
아주 멋진 빛깔을 가진 물건입니다. 이걸로 망토나 방어구를 만든다면 아주 환상적인 물건이 나올 것입니다.
-용의 뼈
스스로 마나의 힘을 머금고 있는 뼈는 그 어떤 금속보다 단단하고 마나의 힘을 가진 물건들 중에서 단연 최고의 물건입니다.
이미 뼈와 비늘은 범려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가져갈 만큼 가져갔기 때문에 모든 건 그의 차지였다.
용의 뼈라고 해서 어느 한 부분이 아닌 용의 뼈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벌써 본 드래곤 3마리만큼의 뼈를 얻은 후다.
'그래. 이제 얻을 건 다 얻었으니 이걸 가지고 한번 몰래 조립해봐야겠다.'
원래는 용의 비늘로 해골 무두장이가 가죽 방어구를 만들려고 했지만 숙련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손을 대지 못했고,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다들 수고했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범려가 해산을 외치자 모두 로그아웃을 했다.
"후후후, 그럼 실과 바늘을 가지고 한번 만들어볼까."
범려는 운명의 실과 인연의 바늘을 꺼내어 조심스럽게 용의 뼈의 관절 부분을 연결했다.
"잘돼야 할 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실과 바늘로 엮으려고 했지만 뼈에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조건이 맞지 않아 제작이 불가능합니다.
제작 조건이 불충분하다는 메시지를 보자, 범려는 뼈를 한 번 보고 실과 바늘을 한 번 번갈아 봤다.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거야.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잖아."
범려는 이제껏 이런 적이 없었기에 재차 시도를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전과 같은 메시지만 계속 보게 되었다.
"후, 조건이 맞지 않는다고 했으니 다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건데, 뭐가 있지?"
범려는 혼자서 고민을 해봤지만 아무런 힌트도, 그 어떤 조건이 있는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음, 이런 건 아르테미스에게 물어봐야겠다. 아르테미스!"
범려가 큰 소리로 아르테미스를 부르자 그녀가 찬란한 빛을 뿌리며 등장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나요?"
"이거요."
범려는 한쪽 구석에서 뒹굴고 있는 굵고 묵직한 용의 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혹시 저 용의 뼈를 조립하시겠다는 건가요?"
아르테미스가 범려와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략적으로 짐작이 가는 것이다.
"맞아요. 정확하게는 저 뼈를 맞추려고 하는데 조건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그걸 물어보기 위해 부른 거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대답해드릴 수가 없어요. 하지만 조만간 저것에 관해서 힌트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으실 거예요."
아르테미스는 대답을 마치며 밝은 미소를 지었지만, 범려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그래도 최소한 시작의 징조라도 알려 주실 수 없나요?"
아르테미스는 말없이 범려에게 윙크를 한 번 날려 주었다. 그러자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의 눈동자 색깔이 푸른색에서 미미하게 녹색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범려는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전 힌트를 줬어요. 이제 가볼게요."
"네? 무슨 힌트를 줬다는 거예요?"
아르테미스는 곧장 영혼의 세계로 돌아가 버렸다.
범려는 윙크에 무슨 힌트가 있을까 했지만 그 안에는 미래를 예견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용의 뼈는 얻었고, 뭔가 답을 얻기 전까지 보류다."
범려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문제라 생각하고는 병사들을 이끌고 창공의 페이셔 지역으로 들어가 버렸다.
"본 드래곤을 만들 뼈는 벌써 3개나 얻었으니 문제가 안 되고 비늘은 나중에 해골 무두장이가 숙련이 되면 바로 맡겨 봐야지."
편하게 생각을 하고 사냥을 하려는데, 『판게아 월드』에서 유저들에게 알리는 전체 메시지가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유저 여러분. 『판게아 월드』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서 준비한 페트 시스템이 1시간 뒤에 패치가 시작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
많은 유저들은 페트 업데이트를 환영했지만, 유독 범려만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페트라고 해봤자, 그냥 졸졸 따라다니는 애완동물일 뿐이잖아."
많은 게임에서 페트는 졸졸 따라다니는 녀석에 불과하고, 혹 능력치가 있다 하더라도 전투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범려는 적당한 곳에서 해골들에게 땅속으로 숨으라고 지시해놓고는 로그아웃을 해버렸고, 다음 날 다시 접속했다.
* * *
"으아, 드디어 업데이트가 끝났다."
페트 업데이트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여서 진행이 되었는데, 거의 15시간이 지나서야 완전한 업데이트가 되었다.
범려가 접속을 한 시간은 생각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페트를 구했거나 혹은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역시 페트를 구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구나."
범려는 페트를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이미 해골 병사들을 어마어마하게 이끌고 다니기에 굳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호랑이 새끼 팝니다!"
"독수리 새끼 팔아요!"
여기저기서 작은 호랑이 혹은 이제 갓 태어난 독수리 등의 멋진 페트들을 팔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엽기적인 페트를 파는 경우도 눈에 들어왔다.
"이거 페트 맞아?"
범려는 한 유저가 슬라임을 끌고 다니면서, 그걸 페트라고 자랑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자. 사람들이 너무 많다."
수많은 사람들로 혼란스러워진 범려는 자리를 피해 멀찍이 떨어져 버렸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온 범려는 잠시 하늘을 보면서 해골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와라."
그의 말에 엄청난 수의 병사들이 동시에 일어서자 그 하얀 물결이 장관을 이루었다.
범려는 곧 해골마 위에 올라타고는 지시했다.
"발드르 도시로 가자."
발드르 도시는 창공의 페이셔 지역에서 유일하게 지상으로 연결된 포탈을 여는 곳이기도 하며, 가장 많은 유저들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우르르!
해골 병사들이 해골마의 갈비뼈 안으로 들어가도 일단 기병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아무리 줄어들어도 해골 부장을 포함해서 130이 다 된다.
기병들이 말을 달리는 소리는 저 멀리 있는 사람이라도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말발굽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저기 해골 제작자가 간다!"
"어? 진짜다!"
"와, 기병들 멋지다!"
유저들은 해골 기병들의 숫자가 늘어난 줄도 모르고 그저 시원스럽게 달리는 그들을 보고 감탄사만을 흘리고 있었다.
"지겹다, 사람들 몰려오는 거."
범려의 입장에서는 해골들 말발굽 소리만 들려오면 몰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반쯤은 포기 상태가 되었다.
창공의 페이셔 지역은 하늘에 있다 보니 구름이 주변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며 지나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길을 가다 그 구름 위로 뛰어들면 '서유기'에서 나오는 손오공의 근두운을 타는 것처럼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잠시, 나중에 가서는 짐짝 취급을 받을 뿐이다.
"달려라! 저기 해골 제작자가 있다!"
두두두두!
범려가 바다에서 활동하는 사이 육지에서는 말이 업데이트되어 수많은 유저들이 자신의 종마를 타고 쫓아오기도 했지만, 해골 기병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상태여서 그들이 유저들을 저지해주곤 했다.
"여기가 발드르 도시구나."
수많은 유저들이 도시에서 상점을 열거나 파티를 구하는 등의 활동을 하면서 활발한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너희들은 일단 숨어라. 나 혼자 도시 안으로 들어가겠다."
"예!"
부장들은 힘찬 대답과 함께 해골 병사들을 통제하더니 다들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럼 도시에 가서 구경 좀 해볼까."
범려가 도시 안으로 진입하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페트였다.
"엄마, 엄마."
"아빠, 아빠."
간단한 언어를 구사하는 페트들이 어찌나 귀엽고 깜찍한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들 그들의 매력에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다들 페트를 돌보느라 여념이 없네."
범려는 사람들이 페트를 돌보는 것을 보고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지 금방 자리를 떠났다.
"페트가 생겨나서 정말 거리가 더 복잡해지는 것 같네."
"흑흑흑."
범려가 사람들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대략 6세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한쪽 골목에서 구슬피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울고 있는 거니?"
"흑흑흑, 제 인형이 망가졌어요."
소녀가 들고 있는 것은 깜찍하게 만들어진 쥐 인형이었다.
"음, 어디 이 오빠에게 줘볼래?"
범려가 소녀의 인형을 받아들고 살펴보자 쥐 인형은 상당히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이 인형을 내가 고쳐 줄게. 잠깐 기다려 볼래?"
범려는 곧 운명의 실과 인연의 바늘을 꺼내더니 능숙하게 인형의 옷이 터지거나 솜이 삐져나오는 부분을 수선해주었다.
"자, 여기 있다."
운명의 실은 아주 특수한 실이라서 수선을 해도 그 흔적이 남지 않고, 원래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오빠, 고마워요."
소녀는 쥐 인형을 수선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범려의 품에 뛰어들었다.
"……."
범려는 소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면서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빠, 미안한데 내 부탁 하나 더 들어줄 수 있어요?"
"부탁?"
범려는 지금 이 소녀가 하려는 부탁이 퀘스트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래 제가 가지고 있는 인형은 엄마 쥐 인형이에요. 집에는 아기 쥐 인형이 있는데 아직 아빠 쥐 인형이 없어요. 아빠 쥐 인형을 찾아주세요."
-아빠 쥐 인형을 찾아라!
소녀의 간절한 부탁을 받아 아빠 쥐를 찾는 임무를 받게 되었다.
발드르 도시에서 지하 수로에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보아라. 그럼 그 밑으로 쥐들이 있을 것이다. 그 쥐들 중 아빠 쥐 인형을 가진 쥐가 있을 것이다.
난이도:C
완료 조건:아빠 쥐 인형을 찾아라.
보상:무언가 들어 있을 것 같은 작은 상자
범려는 퀘스트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뭔가 있어 보일 법한 내용도 아니고, 보상도 너무 눈에 빤히 보이는 것들이었다.
'퀘스트를 한번 포기해볼까?'
조심스럽게 퀘스트를 포기하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소녀가 입을 열었다.
"오빠, 꼭 아빠 쥐를 찾아주실 거죠?"
눈물이 떨어질 듯 애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퀘스트를 포기하려던 범려의 행동이 멈칫했다.
"으응. 무, 물론 찾아줘야지."
여자들의 최고 무기인 눈물을 이용하자 범려는 퀘스트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고마워요, 오빠!"
소녀는 다시 한 번 범려의 품속으로 뛰어들더니 꽉 끌어안았다.
"에휴, 내 팔자야."
가벼운 한숨을 쉬면서 범려는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수로는 다행히 도시 바깥에 위치한 하수구를 통해서 들어갔다 나오는 길이 존재하고 있었다.
"입구가 좁네."
사실 지하 수로로 보이는 이곳은 던전이 아니라 그냥 지하 필드였다. 범려는 그것을 확인하고 모든 해골들이 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힘들 거라고 판단했다.
"소수 정예로 움직여야겠군."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해골 부장 5명과 해골 마법사 5명의 정예만을 선발하는 것이었다.
"수로가 좁아서 해골마는 사용이 안 되니 주의하도록."
해골 부장은 자신의 해골마를 각자의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어버렸다.
범려는 부장들을 앞세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만들었다.
"저 앞에 쥐들이 보이는군."
지하 수로에 살고 있는 쥐는 웬만한 사람의 몸통만큼 컸고, 눈빛이 붉게 빛나는 것을 보니 상당히 포악한 성격의 쥐로 보였다.
"돌연변이 쥐였군."
쥐들의 머리 위엔 돌연변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이름이 지어져 있었다.
"한번 놀아볼까."
범려는 활을 힘차게 당기더니 쥐 한 마리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쉬이익! 퍽!
쥐의 미간에 시원스럽게 화살이 꽂히는 소리와 함께, 쥐가 갑자기 광분을 하더니 범려를 향해 달려왔다.
"하나, 둘, 셋, 넷……."
무리 시스템으로 인해 하나로 묶인 쥐들의 숫자는 15마리. 생각보다 많은 수였지만 범려는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쓸어버려!"
아무리 지하 수로가 좁고 모든 해골들이 다 들어올 수는 없다지만, 10명 정도 되는 파티 사람들을 위해서 어느 정도는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하압!"
범려는 미친 듯이 기술을 펼치는 해골 부장들을 보면서 지휘관 등급으로 분류되는 그들의 실력에 감탄밖에 안 나왔다.
꽝! 푸욱! 쉬이익!
그들은 다양한 무기를 아주 적절하게 사용하며 15마리의 쥐를 별일 아닌 것처럼 처리하고 있었고, 해골 마법사들은 마법으로 처치하고 있었다.
"회색의 빛!"
범려도 한몫 거들면서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나가자 쥐들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후후, 빨리 잡는군. 이 정도면 더 빨리 잡도록 해야겠지. 아르테미스의 손길!"
-모든 무기에 성 속성이 부여됩니다.
-모든 형태의 능력치, 공격력와 방어력이 40% 상승합니다.
-모든 마법 저항이 20% 상승합니다.
버프를 한번 걸자 순식간에 능력치가 상승하였고, 범려는 창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자, 이놈의 쥐들아! 날 물어뜯어봐라!"
범려가 섬전의 창을 꺼내들고 위협을 하자 쥐들은 거침없이 모여들었고, 그는 격노 상태가 될 때까지 두들겨 맞으며 쥐들과 전투를 벌였다.
-격노 상태가 활성화됩니다.
"크아아악-!"
해골들이 격분을 하면서 소리치자, 능력치가 버프를 포함해서 80퍼센트나 상승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이제 광속으로 달리는 거다."
격노에 버프까지 받았으니 해골들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괴물이 되었고, 쥐들을 사냥하는 속도가 2배는 빨라졌다.
"후후후, 이런 속도로 사냥을 한다면 얼마 안 가서 아빠 쥐 인형을 찾겠구나."
범려의 말처럼 쉽게 진행이 되면 좋겠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그렇게 되던가.
"쥐! 쥐가 안 보여!"
범려는 지하 수로를 돌아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몬스터 혹은 돌연변이 쥐 같은 것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지만,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쥐를 잡으면 나온다고 하더니 어떻게 된 거야."
혹시 퀘스트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고 확인도 해보았지만 내용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여기 있는 몬스터란 몬스터는 모조리 잡아 죽였는데 없는 걸 보면 다른 녀석이 인형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
범려는 곧바로 다른 녀석을 찾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녀석들을 찾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이 안에 던전이 있는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지하 수로를 뒤져 봤지만 딱히 이상한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 머리 아프네."
다른 길이라도 발견하면 뭔가 재미있을 듯한데 그런 낌새조차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다시 한 번 수색하자. 퀘스트에는 분명 이곳이라고 했으니 뭔가 있겠지."
범려는 이때부터 지하 수로에 있는 돌 하나까지 면밀히 탐색하기 시작했다.
"너희들도 조사를 해봐. 나 혼자 하기에는 너무 벅차단 말이야."
해골 부장들과 해골 마법사들이 같이 수색을 시작하자 속도가 빨라졌고, 수색을 하다 쥐들을 만나면 여지없이 쓸어버리는 센스를 발휘해주었다.
"이곳에 깔린 벽돌 하나가 분명 다를 거야. 그 하나를 찾아야 돼."
범려의 예상은 아주 정확했다. 지하 수로에 있는 벽돌 중에서 딱 하나만 미묘하게 색이 다른 벽돌이 보였다.
"후후후, 색이 교묘하게 다른 벽돌을 가지고 퀘스트를 어렵게 만들려고 하다니 너무 단순하게 놀면 안 되지."
이어 범려가 조심스럽게 그 벽돌을 뽑아 올리자 그 벽돌 뒤에 손잡이가 하나 잡혔다.
"비밀 장치?"
범려가 조심스럽게 그 장치를 건들자 그 옆에 벽이 갈라지면서 또 다른 통로가 하나 나왔다.
-지하 수로 2층을 발견하셨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일정량의 경험치가 들어왔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범려는 해골들과 같이 안으로 진입한 후, 1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웅장한 지하 수로에 감탄을 내뱉었다.
"이야, 이거면 부장들하고 해골 병사 100명 정도는 와도 될 수준이군."
2층 곳곳에서 거대한 지하의 물줄기가 흐르는 것을 보고 이곳이 과연 하수도를 관리하는 곳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물도 상당히 깨끗해 보이는데."
밑바닥이 투명하게 비추어지는 걸 보면 이건 상수도, 즉 사람들이 먹는 물이라는 증거다.
"음, 하긴 1층에 있을 때는 더러운 물이 그냥 바깥으로만 나가고 있었지."
2층은 정확하게 바깥에서 들어온 물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 같지만, 바깥으로 나가는 물은 아니었다.
"언밸런스하게 설계를 해놨군."
범려는 지하의 수로를 거꾸로 설계해놓은 거라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럼 쥐를 찾아서 사냥을 해볼까."
지하 수로 2층 역시 1층과 다름없이 쥐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1층과 다르게 오염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런지,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흰 털을 가지고 있는 쥐들이 눈에 들어왔다.
"숫자는 동일, 또 레벨도 차이 안 나고."
범려는 1층에 있는 녀석들과 비교를 하더니 바로 활을 당겼다.
"특별한 기술이 없다면 다를 바 없는 녀석들……."
쉬이이익!
화살이 거침없이 날아가 꽂히자, 어김없이 쥐들이 눈에서 붉은빛을 발하며 범려를 향해 달려왔다.
"색깔하고 레벨 2 정도 차이 나는 것 말고는 똑같군."
범려가 손짓을 하자 해골 부장들은 다들 방패를 들면서 방어진을 구축했다.
"온다!"
부장들은 겨우 5명밖에 안 되는 소수지만, 해골 돌격병 20명의 힘을 발휘할 정도로 잘 막아내어 단 한 마리의 쥐도 자신의 뒤로 넘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확실히 등급이 달라."
소수로 운영했을 때도 빛을 발하는 해골 부장들이었고, 그 뒤에 있는 해골 마법사들도 연신 마법 공격을 펼치면서도 전혀 불안한 기색이 없었다.
쾅! 쾅!
해골 부장들은 방패로 버티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쥐들을 한번 쳐내면서 녀석들을 뒤로 날려 버리고 있었다.
"방패 한 방에 쥐 두 마리씩."
푸욱!
방패를 든 상태에서 창을 한번 내지르면 그 뒤에 있던 녀석까지 한꺼번에 꿰어버리는 괴력을 발휘하였고, 검을 들면 교묘하게 급소만 노렸다.
"회색의 빛!"
범려는 부장들이 손쉽게 사냥을 해주자, 광역 기술을 써 쥐들의 생명력을 확 빼버림과 동시에 쓸어버렸다.
"이대로 쥐들을 잡자!"
많은 해골 병사들을 데려오기도 귀찮고, 소수 정예들만 활동하는 것도 한번쯤 즐겨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창 쥐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법서가 하나 툭 떨어졌다.
"어라? 웬 마법서?"
-파이어볼
사람 머리만 한 불덩어리를 던져 일정 구역을 화염으로 뒤덮게 만드는 화염 계열의 마법이다.
쿨 타임:20초, 캐스팅:2초, 마나 소비:110
많은 이들이 자주 이용하면서도 손쉽게 구하는 마법서였다. 하지만 범려에게는 전혀 다르게 비추어졌다.
"어이쿠, 이런 귀한 것이 나오다니."
지금 범려가 소유하고 있는 해골 마법사들은 20명. 이들은 마법서 하나만 줘도 각자 지식을 공유하며, 상황에 맞추어 스킬을 변화시켜 사용하기도 한다.
"제발, 한 명당 파이어볼 하나씩 배워라."
범려가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블리자드처럼 5명이 뭉쳐서 하나가 아닌 각자 개인이 배웠으면 하는 것이다.
"자, 받아라. 그리고 배워라."
해골 마법사들은 마법서를 받아들자마자 그 자리에서 책을 펼쳤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의사소통을 하더니, 딱 5분이 지나자 메시지가 하나 떴다.
-해골 마법사들이 파이어볼을 배웠습니다.
-파이어볼은 해골 마법사 1명만 있어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현재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해골 마법사들도 파이어볼을 자동적으로 습득하게 됩니다.
"아싸!"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마법을 배우자 범려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쥐들과 싸울 때 녀석들을 한곳으로 뭉치게 만들어서 파이어볼을 날려라."
해골 부장들은 범려의 명령대로 쥐들을 한곳에 모이게 만들었고, 그 모인 쥐들을 향해 해골 마법사들이 거침없이 마법을 날렸다.
5개의 불덩어리가 날아들자 쥐들의 생명력이 팍팍 깎이더니, 그대로 불에 그슬린 쥐들의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클클클, 역시 파이어볼."
마법의 활용에 비례해서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는 몇 안 되는 마법이었다.
"이 방식 그대로 여기를 쓸어낸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그렇지 않아도 빠른 사냥 속도를 자랑하는데 거기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인 마법이 들어갔으니, 그 속도는 가히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는 속도로 바뀌고 있었다.
"우하하하!"
사냥 속도가 오르면 제일 좋은 것은 범려의 경험치였다. 해골들에게 분배되는 것 때문에 레벨이 극악 수준으로 오르는데 그 경험치의 수치가 변화를 보이는 것이다.
"더! 더! 더! 잡아라!"
이미 범려의 머릿속에는 사냥을 해서 레벨 업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 퀘스트는 잠시 사라져 있었다.
범려가 완전히 미쳐 가고 있을 때 그 머리를 차갑게 식혀 주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
다른 쥐들보다 월등히 크고, 그 주변엔 어마어마한 숫자의 쥐들이 모여 있었다.
"쥐의 왕 넥콘."
쥐의 왕은 다른 쥐들과 다르게 털도 황금색으로 되어 있어서 무척 탐이 날 정도였다.
"보스?"
범려는 정말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으로 지하 수로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녀석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보스라면 이 숫자들로 놈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골 부장과 해골 마법사들로만 상대하기에는 쥐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다행히 보스가 있는 방이 넓어서 모든 해골들이 들어가도 부족함이 없겠어."
분명 보스 방은 넓지만 진형을 펼치기에는 약간 좁았다. 그렇다고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부장들, 병사들을 이곳으로 데려올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저희들이 가서 병사들을 이끌고 오겠습니다."
"좋아. 그럼 나는 이곳에서 기다리지."
해골 부장들은 곧바로 병사들을 데리러 갔다.
혼자 남은 범려는 잠시 왕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녀석의 머리에 있는 왕관에 유독 신경이 쓰였다.
"왕관 하난 폼 나는군."
은근슬쩍 저 왕관이 탐나는 범려였다.
"그것보다 저놈이 끌고 다니는 쥐들 눈빛이 장난이 아닌데."
더군다나 예전 던전에서 홉고블린 왕을 잡을 때, 녀석이 들고 있던 홀로 소환을 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던 적이 있다.
"저놈도 소환을 할지 모르니 조심해야 돼."
한 번 경험해본 것을 두 번 이상 겪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병사들이 필요하다.
약 30분이 지날 무렵, 해골 부장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쥐의 왕 넥콘의 방 입구에 모두 모여 있었다.
"장군님, 모두 집결했습니다."
"좋아. 부장들은 각 해골 병사들을 이끌어라, 마법사는 내가 직접 관리하겠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해골 부장들은 병사들을 데리고 왕의 방 입구에서 대기했다.
"혹시나 해서 당부하는 말인데, 저기 보이는 보스가 쥐들을 소환한다면 내가 직접 지휘하는 부대를 제외한 다른 녀석들은 모두 다 소환된 쥐를 처리하는 데 집중해라."
"예, 장군님!"
해골 부장들의 힘찬 대답을 듣고 범려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후후후, 좋아. 진형은 각 부대별로 유지를 하고, 내가 손짓을 하면 부장들은 거기에 맞추어 진퇴를 거듭해라."
"예, 장군님!"
잠시 후 범려의 군대가 보스가 있는 방에 진입을 하자, 넥콘이 그의 존재를 눈치 채고 달려들었다.
"병사들은 넓게 퍼지고, 마법사들은 블리자드를 시전해라!"
순식간에 넥콘이 있는 방은 급격하게 온도가 떨어지면서 천장에 검은 구름이 깔리더니, 날카롭고 차가운 얼음 덩어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방패를 들어라!"
돌격병들이 방패를 들면서 자세를 취하자, 그 앞으로 쥐들이 덤벼들었다.
"창을 질러라!"
"기병들은 쥐들의 뒤를 공격하라!"
"화살을 쏴라!"
600이나 되는 숫자가 사람의 손가락 움직이듯이 차례차례 움직이더니 보스를 제외한 다른 쥐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해골 마법사들은 블리자드가 끝나자 한꺼번에 파이어볼 마법을 쏟아냈다.
"으하하하! 20발의 파이어볼 맛이 어떠냐. 좀 화끈하지!"
부하 쥐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며 쥐의 왕 주변엔 몇 마리의 쥐들만 있을 뿐, 다른 녀석들은 파도처럼 쓸려 나갔다.
"이제 좀 해볼 만하군."
범려는 드디어 보스를 공격할 때가 됐음을 느끼고는 손을 들어 신호를 날리려 했다. 그런데 순간 넥콘이 외쳤다.
"나의 부하들이여!"
"소환인가?"
범려는 이미 짐작을 했기에 군대를 몇 걸음 뒤로 물러나게 했고, 넥콘 주변으론 순식간에 전과 동일한 숫자의 쥐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나가면 힘든데."
소환된 쥐들의 숫자를 보고 이다음에도 똑같은 숫자로 소환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궁수와 마법사들은 왕을 집중 공격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