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54화 (54/80)

제4장. 과거의 마법사들

"으헉!"

레오폴트는 말이 주저앉자 그대로 말과 함께 뒹굴었다. 이에 범려는 때를 놓치지 않고 해골마를 타고 곧바로 놈의 몸 위로 뛰어들었다.

"으아악!"

밑에 깔린 녀석을 창으로 찌르고 말발굽으로 밟아주자 생명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녀석이 갑자기 해골마의 다리를 붙잡았다.

"내가 이렇게 당할 줄 아느냐!"

"헉!"

범려는 녀석이 해골마를 넘어트릴 생각으로 다리를 붙잡은 걸 알아채고는 황급히 말에서 뛰어내려 놈의 허벅지에 창을 찔러 넣었다.

"크악!"

허벅지를 찌른 범려는 창을 비틀어 녀석에게 고통을 주었고, 거침없이 창을 뽑고는 다시 찌르려 했지만 레오폴트가 그 무식한 도끼로 창을 막더니 느릿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크크크, 날 이렇게 몰아세운 녀석이 얼마 만인가."

레오폴트는 음산한 웃음을 흘리면서 몸에서 검은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거 뭔가 안 좋은데."

"클클클."

"형님!"

"가만히 있어. 나 혼자 처리한다."

레오폴트의 몸이 꿈틀꿈틀하면서 두 눈은 붉은색으로 변하고 이마에서는 흉측한 뿔이 2개가 솟아오르며 본색을 드러냈다.

"쳇, 일정 생명력이 떨어지면 악마로 변하는 보스인가."

"감히 나의 본모습을 드러내게 만들다니. 죽어라!"

악마의 왼손에서 불꽃이 일며 그대로 범려에게 날아들었다.

"이런!"

범려가 몸을 숙여 잽싸게 그 불덩어리를 피하고는 자세를 잡자 뒤에 있던 해골 부장이 소리쳤다.

"장군님!"

"나 혼자 해결할 테니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

"후후후, 혼자서 나를 상대하려 하다니 후회할 거다."

"누가 후회를 한다는 거야? 그리고 너 등에 날개가 없다. 완전한 악마가 아니라 인간이 악마가 되는 과정 같은데."

"웃기는 소리 마라. 난 악마 레오폴트다!"

범려의 눈에는 악마의 피를 마셔서 스스로 악마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네가 진짜 악마라면 내 무기를 맞고 상당한 타격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아르테미스의 손길!"

-모든 무기에 성 속성이 부여됩니다.

-모든 형태의 능력치, 공격력와 방어력이 40% 상승합니다.

-모든 마법 저항이 20% 상승합니다.

범려가 버프를 시전하자 섬전의 창에 속성이 부여되면서 은은한 신성력이 발현되었다.

"헛!"

"아, 그러고 보니 불완전한 악마라도 신성력에는 약하지. 내가 실수를 했군."

범려는 아차 싶다는 표정을 했지만 입가에는 잔혹한 미소가 그려졌다.

"받아라!"

"크헉!"

레오폴트는 순식간에 창이 날아오는 것을 피하지 못하고 가슴을 찔리자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창이 워낙 날카로워서 말이야. 좀 아플 거야."

우드득!

가볍게 창이 비틀리자 악마 레오폴트는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런, 겨우 이 정도로 쓰러지면 내가 섭섭하지. 안 그래?"

"크억!"

다시 한 번 창이 비틀리자 레오폴트의 생명력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클클클, 왠지 내가 더 악마 같네."

스스로도 조금 잔혹한 면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창을 그냥 뽑을까도 했지만 비틀어 뽑아주는 고통을 선사했다.

치이익!

창이 뽑혀 나오자 피가 나올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시커먼 연기가 나며 화상 자국을 남기고 말았다.

"악마에게 성 속성이 치명적이라고 들었지만 연기가 날 정도로 독한 건가?"

"으, 이거나 먹어라."

놈의 왼손에서 다시 불덩어리가 뿜어져 나오자 범려는 창을 내밀어 맞대응했다.

"회색의 빛!"

2개의 힘이 동시에 터지면서 상대방에게 서로 상당한 충격을 주었지만 범려는 버프와 각종 아이템의 효과로 인해 마법적인 타격을 줄일 수 있었다.

"후, 버프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크억, 상처가……."

범려가 레오폴트의 가슴에 남긴 상처가 벌어지면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내가 다시 그 상처를 구워주지."

범려가 거침없이 창을 뻗어 피가 흐르는 가슴을 또 꿰뚫어주자 레오폴트의 가슴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치이익!

"끄르륵!"

"이제 아이템 좀 뱉고 죽어라."

아픈 곳만 계속 찌르는 범려가 잔혹하기는 했지만 생명력 빵빵한 보스를 죽이려면 이런 방법 말고는 없었다.

점점 레오폴트의 생명력이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일 정도가 되자 범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지만 방심하지는 않았다.

"어서 날 죽여라. 너무 고통스럽다……."

"생명력이 0이 돼야 네가 죽잖아. 아직 30퍼센트나 남았다, 이것아."

범려가 남은 생명력 30퍼센트를 어떻게 깎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레오폴트가 자신의 목을 내밀면서 말했다.

"내 목을 치면 된다."

"웃기는 소리 하네. 게임에서 목을 친다고 한 방에 죽어? 어림도 없는 소리."

목을 치면 생명력이 크게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건 치명타로서의 능력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크윽, 진짜다. 내 목을 치면 난 죽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작하시지."

범려는 레오폴트의 가슴을 이리저리 헤집으면서 생명력을 쭉쭉 깎아내고 있었기에 조금만 더 하면 녀석이 죽을 상황이다.

"제발, 부탁이다. 너무 고통스럽다."

"부장, 소원대로 목을 잘라줘라!"

해골 부장은 허리춤에 찬 검을 뽑더니 거침없이 내리쳤다. 하지만 생명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 말고는 없었다.

"장난해! 안 죽잖아!"

범려는 신경질이 나서 녀석의 가슴을 더욱더 헤집으며 고통을 주었고, 죽을 때까지 계속 그 상태를 유지했다.

"드디어 해방이구나."

레오폴트는 범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는 것 하나만으로 얼굴에 미소를 띠며 죽었다.

"에잇! 짜증나. 아이템 뭐 나왔는지 확인해야지."

범려는 녀석이 무슨 아이템을 떨어트렸는지 확인을 했다.

-콜 라이트닝

하늘에서 벼락을 떨어트리게 하는 마법이다. 일인 대상으로 쓰는 마법으로는 상당한 피해를 준다.

쿨 타임:20초, 캐스팅:2초, 마나 소비:150

-공멸의 지팡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마나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마법사 실렛이 만든 지팡이이다.

공격력:10 내구력:200/200

옵션:지능 +100, 정신력 +94, 체력 +40

옵션:공멸의 지팡이 착용 시 마나의 축복 스킬이 사용 가능합니다.

-마나의 축복

1시간 동안 마나 회복이 500%, 마법 공격력 및 치유에 관한 효과가 10% 상승합니다.

쿨 타임:5시간, 마나 소비:없음

범려는 두 아이템을 보는 순간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아이템이라고 단정 지었다.

'아쉽군. 해골 마법사들에게 마법서를 주고 싶은데. 헬렌 누나나 줄까? 그리고 지팡이를 보니 이건 사제하고 마법사들이 같이 써도 될 만한 아이템인데.'

일단 파티원들에게 나온 아이템이 무엇인지 보여 주자 취선은 별 반응이 없었고 반대로 두 여자들은 아이템을 보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어떻게 할까?"

"그게……."

둘은 아이템을 보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헬렌의 경우 둘 다 가지고 싶은지, 아니면 지팡이만을 노리는 건지 알 수가 없는 표정이었지만 로즈는 확실히 지팡이만을 노렸다.

"음……."

다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취선이 조용히 앞으로 나와 모두의 얼굴을 지켜보고는 입을 열었다.

"전부 다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것이 어떨까요? 범려 형님은 마법서가 탐날 것이고, 헬렌 누나는 갈피를 못 잡을 정도고, 로즈 누나는 지팡이겠지?"

"가위바위보?"

다들 취선의 제안에 솔깃해하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그 방법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라 판단했다.

"좋아. 그렇게 하자."

"진 사람이 깨끗이 물러나는 거다."

세 사람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두 눈에 불꽃을 튀기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가위."

"바위."

"보!"

세 사람이 동시에 손을 내민 후 상대방이 뭘 냈는지 파악하면서 눈을 돌리자 한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까아악-!"

그 절망 섞인 비명을 지른 사람은 로즈였다. 다른 두 사람의 얼굴에는 승리의 미소가 지어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로즈야, 미안."

범려는 속으로는 은근히 기분이 좋았지만 로즈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아, 아니야."

로즈는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갖지 못해 아쉬웠지만 깔끔하게 졌으니 더 이상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자, 범려야, 마법서 가져가."

헬렌은 범려를 생각해서 마법서를 건네주었고 그녀는 공멸의 지팡이를 가졌다.

"마법사들, 이리 와라."

범려는 마법서를 받자마자 바로 해골 마법사들에게 넘겨 버렸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그들이 마법을 익혔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해골 마법사들이 콜 라이트닝을 익혔습니다.

-해골 마법사 1명이 있을 경우 콜 라이트닝 사용이 가능합니다.

콜 라이트닝 마법도 혼자 사용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나오자 범려는 알게 모르게 웃음 지었다.

'이걸로 20명이 동시에 한 명을 향해 마법을 날리면 그대로 죽겠구나.'

작정하고 마법을 쓴다면 어디 누구를 못 죽이겠는가!

"형님, 던전을 정리하고 저것들이 아이템을 떨어트렸는지 안 떨어트렸는지 확인을 안 해봤는데, 한번 해볼까요?"

"아, 그렇군."

범려는 바로 해골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보스를 제외한 다른 녀석들의 시체를 뒤져서 뭔가 나오면 무조건 가져오게 했다.

"헉! 로즈 누나! 이리 와봐!"

취선은 다급한 목소리로 로즈를 불렀다. 범려는 자신을 부른 목소리는 아니지만 취선이 다급하게 사람을 찾는 경우가 별로 없다 보니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가봤다.

"누나, 이것 봐. 신성 마법서야."

"어머, 정말이네."

-생명의 샘

일정한 마나를 소비해 그 지역에 작은 생명의 샘을 소환합니다. 소환된 샘은 5분간 유지되며 그 샘물을 마시면 400의 생명력을 즉시 회복합니다.

한 번 샘물을 마시고 다시 마시기 위해서는 10초라는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쿨 타임:15분, 마나 소비:500

"누나, 어서 배워."

"응!"

로즈는 밝게 웃으면서 스킬을 배우더니 그 자리에서 스킬을 바로 시전했다.

"생명의 샘!"

로즈가 시전하자마자 눈앞에 작은 샘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샘물이 뿜어져 나왔다.

"한번 마셔 볼까."

범려가 샘물을 마셔 보았지만 단순한 물맛만 느껴질 뿐이었다.

-생명력이 가득하기 때문에 더 이상 회복되지 않습니다.

메시지가 하나 뜨기는 했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걸 하나 설치하면 그 주변으로 유저들이나 해골들이 사용을 한다는 것이다.

"음, 아주 좋은 스킬이야."

전술적으로 상당한 효과가 기대되는 것이었다.

"아! 기분 좋다!"

로즈는 새로운 마법서를 얻어 우울한 기분이 봄 햇살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자, 아이템도 얻었으니 이제 이곳을 벗어나 볼까?"

범려는 일행들을 이끌고 던전을 나왔다.

바깥으로 나오자 입구에서 밝은 녹색 빛을 뿌리는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음?"

그 밝은 빛은 주변을 감싸더니 이내 번쩍하고 사라져 버렸다.

범려와 해골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알지도 못하는 공간 속을 떠돌고 있었다.

"이곳이 도대체 어디야."

"범려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형님! 저 좀 살려 주세요."

로즈나 헬렌은 지금 이곳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취선은 혼자서 허공을 떠돌아다니며 허우적댔다.

"안녕하세요, 범려 님."

"아르테미스 님,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범려가 이상한 공간 안에 갇혀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아르테미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모든 시간의 시작이자 그 끝인 곳입니다."

"네?"

범려는 아르테미스의 말을 듣고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이런 곳에 괜히 끌고 올 아르테미스가 아니었다.

"저희를 이곳에 왜 데려오신 겁니까?"

"현재에서는 배울 수 없는 힘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이곳으로 부득이하게 데려오게 된 겁니다."

"현재에서는 배울 수 없는 힘?"

범려는 배울 수 없는 힘이라는 말에 잠깐 의문을 가졌다.

"무슨 힘인데 배울 수 없는 힘이라고 하는 건가요?"

"그건 고대의 마법입니다."

고대의 마법이라는 소리에 범려의 고개는 자연스럽게 해골 마법사들에게 향했다.

'마법사들은 마법서만 있으면 마법을 배우는데 무슨 고대의 마법이란 말이지? 설마 지금의 『판게아 월드』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마법을 말하나?'

어디까지나 범려의 추측에 불과하다. 그래도 흔히 고대의 마법이면 뭔가 굉장한 것을 기대한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요, 해골 마법사에 관련된 일인가요?"

"네."

아르테미스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

워낙 솔직한 아르테미스라 범려는 순간적으로 멍해져 버렸다.

"그럼 과거로 가서 고대의 힘을 꼭 찾으세요."

-과거의 존재

이곳에는 현재에 전해지지 않는 과거의 힘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을 찾아야 합니다.

난이도:B

완료 조건:잃어버린 고대의 힘을 찾아라.

보상:잃어버린 마법들

"으아악!"

범려와 해골들, 그리고 일행들이 동시에 과거의 시대로 날아가 버렸다.

번쩍!

일행들이 과거의 시대에 도착하자 주변의 환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과거의 시간으로 온 건가."

범려가 과거로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을 때, 로즈 남매나 헬렌은 이곳이 어디인지 몰라 잠시 혼란스러워했다.

"여기가 어디야. 방금 전까지 이상한 공간에 갇혀 있었는데."

특히 취선은 도끼를 손에 쥐고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음, 이번 퀘스트는 모두 다 같이 해도 된다는 건가?"

범려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게 너무나 좋았다. 언제나 해골들과 같이 조화를 맞추고 전투를 해왔기 때문이다.

"형님, 이곳이 어디죠? 그리고 이전에 아르테미스와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 갔던데."

"그게 나도 워낙 갑작스럽게 퀘스트를 받아서 어리둥절하다."

범려는 반강제로 끌려가다시피 해서 퀘스트를 받았다. 그 바람에 이렇게 헬렌, 로즈 남매와 같이 과거로 오게 된 것이고 말이다.

"그 퀘스트가 뭔데요."

취선은 퀘스트 내용이 궁금한지 범려에게 물었다.

"내 직업 관련 퀘스트 같아.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럼 퀘스트 공유 한번 해주세요."

범려는 취선의 말대로 퀘스트 공유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퀘스트 조건이 맞지 않아 퀘스트 공유가 불가능합니다.

"쳇, 형님이 받은 퀘스트 한 젓가락 걸치고 싶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네."

취선은 퀘스트 공유가 안 되자 살짝 투정을 부렸다.

"자기야, 전에 영혼의 세계에 갔을 때처럼 되는 거 아니야?"

로즈는 전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범려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마디 해주는 걸 잊지 않았다.

"아니. 전혀 그럴 일이 없어. 지금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니까."

"진짜야?"

로즈는 득달같이 달려오더니 범려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호호호."

게임할 때마다 범려와 같이 하는 로즈지만 뭐가 그리도 좋은지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중증이야."

"너무 심각해."

헬렌과 취선은 로즈의 상태가 범려에게 빠져도 너무나 많이 빠져 있음을 파악하고 말았다.

"자기야, 그런데 어디로 가야 돼?"

"퀘스트 내용대로 한다면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힘'이고, 아르테미스가 한 말을 보면 마법을 찾으라고 했어."

"현재에는 사용되지 않는 잃어버린 마법을 찾으라는 거네요."

"결론만 말하면 그렇게 되지."

잃어버린 마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에 헬렌은 귀가 번쩍 뜨였다.

"잃어버린 마법을 찾는다고?"

"헬렌 누나, 마법을 찾는다고 해도 마법서를 얻는다는 보장은 없어요. 너무 기대는 마세요."

취선은 헬렌이 의미 없는 기대를 하자 곧바로 잠재워주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헬렌은 순순히 물러났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마법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

"형님,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거죠?"

"그게 나도 잘 몰라. 이곳은 나도 처음이라서."

범려는 자신도 생소한 곳이라 어디로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루이."

"무슨 일이지? 하인."

"해골들한테 던지기 전에 하인 소리 빼라."

"네, 주인님."

루이가 범려의 살벌한 기운을 느끼고는 고개를 숙였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여기서 네가 할 일은 다른 쥐들을 불러서 이곳이 어디인지 확인하는 거야. 알았지."

루이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범려의 어깨에서 내려와 쥐들을 불렀다.

"찍찍!"

이번에 모여든 쥐들은 전보다 2배는 되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루이가 쥐들에게 뭐라고 찍찍거리며 말을 할 때마다 평소에 보여 주는 겁 많은 모습은 온데간데없다는 것이다.

"루이, 언제 결과를 알 수 있지?"

"30분."

범려는 루이의 대답을 듣고는 바로 해골 부장들과 일행들을 불렀다.

"다들 이곳에서 몬스터 사냥을 제외하고는 될 수 있으면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퀘스트에 연관이 있을 수 있으니까."

"네, 형님."

"알았어."

"물론입니다, 장군님."

범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모두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쥐들은 정확히 30분 후에 루이에게 조사해온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루이, 종이에다 그림을 그려 줄 수 있겠어?"

"당연하지. 이 몸의 그림 실력은 미켈란젤로보다 뛰어나다고."

루이는 거만한 표정으로 능숙하게 그림을 그려 나갔다. 하지만 범려는 루이의 그림 실력을 믿지 않았다. 쥐새끼가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 봐야 쥐새끼다.

"……."

루이는 범려의 생각과는 달리 지도를 그리는 데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다 됐다! 하인, 확인해봐."

"야, 부장, 지도 이리 가져오고 루이를 병사들한테 던져."

"예, 장군님."

"히익! 살려 줘! 내가 잘못했어!"

부장은 지도를 범려에게 건네준 후, 곧바로 루이를 해골들한테 170킬로미터의 속도를 자랑하는 강속구로 던져 버렸다.

"자~ 알~ 모~ 옷~ 해~ 어~ 요~"

루이가 잘못했다면서 강력하게 외쳤지만 범려는 용서해줄 생각이 없었다.

"반성해라."

범려는 그 말만 남기고 지도로 시선을 옮겼다. 루이가 그린 지도는 정확했지만 그 범위가 좁았다.

"이거 딱 말 타고 10분 가면 끝나는 지도잖아. 부장! 루이 이리로 데려와."

해골 부장이 곧 정신이 해롱해롱한 루이를 데리고 오자 범려는 그를 집어 들고는 거칠게 흔들었다.

"일어나."

"커억! 죽는 줄 알았다."

"생각보다 지도의 범위가 좁잖아. 5분 간격으로 쥐들을 불러서 탐색하게 해."

"아, 알겠습니다, 주인님."

루이는 범려의 명령대로 5분 간격으로 쥐들을 불러들여 지도를 탐색하게 만들었다.

범려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조금씩이나마 계속 전진을 해나갔다.

"이 지형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과거의 지형이라고 현재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어딘가 모르게 차이가 눈에 보이는 것이다.

범려는 자신이 들고 있는 여러 지도와 비교를 하다가 지도를 떨어트렸다.

"이런, 여기는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이야."

"응? 형님,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여기가 무슨. 눈보라도 없고 날씨도 이렇게나 따뜻한데."

취선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현재의 이야기.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야. 이 지도를 봐. 분명히 아멜리아 지역이야."

범려는 지도를 내밀면서 아멜리아 지도와 비교를 시켜 주었다. 그러자 다들 그 지도를 보고는 경악했다.

"자기야, 어떻게 된 거야? 정말 똑같잖아."

"어떻게 되기는. 답은 하나야. 이곳엔 아멜리아가 없다는 거지."

냉혈의 아멜리아 지역에 드래곤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곳은 정말 따뜻했다.

"이곳에 아멜리아가 없다면 다른 곳에도 드래곤들이 없다는 소리인데."

범려는 90퍼센트 확률로 다른 지역에 드래곤이 없다고 판단했다.

"형님, 그럼 이곳에 사는 몬스터도 현재와 많이 다르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몬스터가 없을 수도 있어."

각각의 드래곤들은 각 지역에 맞게 특색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강한 개성이 사라졌다는 것은 다 똑같은 몬스터만 나온다는 소리다.

"형님, 여기가 아멜리아 지역이라면 전 지도가 없어도 여기서 길을 잃을 걱정은 없어요."

"그런 문제보다, 여기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시가 그 자리에 없다면 어떻게 할 거야?"

"도시……."

드래곤이 없는 시대로 왔으니 정말 옛날 시대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네가 나선다고 해도 뭐가 다를지 감이 잡혀?"

"네, 형님."

범려도 길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루이를 시켜 재확인을 했다.

"어디 보자. 이곳에 작은 마을이 있네."

루이가 지속적으로 만드는 지도와 비교를 하면서 대략적 위치를 추적하던 범려는 인상을 찡그렸다.

"과거의 얼음 도시."

미래의 얼음 도시가 지금은 초라하고 작은 마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마을 이름은 '찬바람 마을'이군."

이 이름 역시 미래에는 얼음 도시로 바뀌게 된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이곳에 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어야겠어."

범려는 해골 부대를 마을 바깥에 세워두었다. 이런 곳에서 다른 유저들을 만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이 범려를 보고 소리쳤다.

"네크로맨서다!"

"엥?"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소리였다. 사람들은 마을 바깥에 주둔해 있는 해골 병사들을 보고 겁을 집어먹었다.

"아니, 저기 전 네크로맨서가 아니에요!"

범려는 자신이 네크로맨서가 아니라면서 항변했지만 아무도 믿어주는 이는 없었다.

"네크로맨서 주제에 이곳에 나타나다니 간덩이가 부었구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딱 보기에도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쭈그렁 노인이 나타나서는 범려에게 호통을 쳤다.

"음?"

범려는 그 쭈그렁 노인의 얼굴보다는 그가 들고 있는 지팡이와 입고 있는 옷에 눈길이 쏠렸다.

'마법사인가?'

"하늘의 지옥이여, 타오르는 불덩이여, 내 명하노니 저자의 머리에 그 지옥을 맛보게 하리라!"

범려는 노인이 외친 주문을 듣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모두 다 피해!"

아니나 다를까 범려의 머리 위에서 지름 1미터 정도 되는 운석이 떨어져 내렸다.

콰쾅!

방금 시전한 마법은 메테오다. 그것도 운석의 크기가 작은 것이다.

"후, 아슬아슬했네."

"흥! 죽어라! 네크로맨서!"

노인은 범려를 향해 다시 한 번 마법을 시전했다. 운석은 어디 추적 장치라도 달려 있는지 하늘에서 연달아 떨어졌다.

"헉헉, 이 노인네가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마법부터 날리네."

범려는 활을 꺼내더니 시위에 화살을 재고 노인을 향해 조준했다.

'혹시 모르니 죽이는 것보다 부상만 입혀서 마법을 못 쓰게 해야겠군.'

쉬이익!

화살이 시위를 떠나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노인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하고 말았다.

"크윽!"

나이 든 몸으로 마법을 썼는데 범려가 쏜 화살에 어깨가 뚫리자 그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우, 겨우 마법이 멈췄네."

범려는 위험한 순간이 지나가자 그 쭈그렁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영감님, 저는 네크로맨서가 아니거든요. 그러니 괜한 오해는 하지 말아주시죠."

"흥! 웃기는 소리 마라. 저 해골들이 너를 네크로맨서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디서 발뺌을 하는 것이냐."

노인은 전혀 믿으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범려는 그래도 노인을 설득하고 싶은지 로즈를 불러서 그의 상처를 치료하도록 했다.

"오, 이 신성한 힘은 사제님이시군요."

사제는 정말 NPC들에게 인기가 최고다. 아픈 사람 힐 한 번만 해줘도 존경의 눈길을 팍팍 받는다.

"사제님, 저를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 아니에요."

"사제님, 물러나십시오. 저 네크로맨서를 물리치고 사제님을 신전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영감님! 제 말은 귓등으로 들으셨나요. 전 네크로맨서가 아니라고요!"

범려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면서 열변을 토했지만 앞뒤가 꽉 막힌 노인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범려는 네크로맨서가 아니에요, 할아버지."

로즈가 직접 나서서 막자 노인은 깜짝 놀라 범려에게 소리쳤다.

"이 사악한 네크로맨서 놈이! 감히 신성한 사제님을 타락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말이 안 통해도 이렇게 안 통하나."

범려는 스스로 가슴을 두드리며 이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영감님, 좋습니다. 제가 네크로맨서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면 되는 겁니까?"

"하하하, 웃기는 소리. 어디서 그런 거짓을 늘어놓는 것이냐. 절대 그럴 일 없다."

"야, 부장, 이리로 와라!"

범려가 소리치자 해골 부장은 득달같이 달려와 범려의 옆에 섰다.

"로즈, 이 녀석한테 힐 걸어봐."

"알았어."

"잘 보시죠, 영감님."

로즈는 해골 부장에게 거침없이 힐을 시전했다.

해골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신성한 빛 가루를 보면서 쭈그렁 마법사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해골에다 신성한 빛을 내리도록 놔두다니. 웃기는 녀석이구나."

하지만 쭈그렁 마법사의 웃는 얼굴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악으로 바뀌었다.

"어, 어떻게!"

로즈가 힐을 열 번이 넘게 하는데도 해골이 그 빛을 보면서 웃고만 있을 뿐 별다른 타격이 없는 것이다.

"네크로맨서 이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영감님, 제가 무슨 짓을 합니까. 계속 옆에 서 있었는데."

쭈그렁 마법사는 해골의 머리에 떨어지는 신성한 빛에 손을 가져다 대보았다.

'이 따스한 빛. 분명 신성한 힘이 담긴 빛인데.'

쭈그렁 마법사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허망하다는 듯이 웃었다.

"허허, 이런 일이 있을 수가."

"네크로맨서의 해골들은 신성한 빛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범려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켜 쭈그렁 마법사의 생각을 뒤집어버렸다.

"네놈의 정체가 뭐냐."

"해골 제작자 범려라고 합니다. 영감님은요?"

"난 아티잔의 탑에 소속되어 있는 마법사 프로믹스라고 한다."

자신을 프로믹스라고 소개한 노인은 아티잔의 탑에서 서열이 중간 정도 되는 마법사이다.

범려는 탑에 소속되어 있다는 말을 듣자 그 탑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다.

"영감님, 그 탑이 정확히 뭐 하는 곳입니까?"

"아니, 아티잔의 탑도 모른단 말이냐."

"네. 모르니까 이렇게 물어보는 거 아닙니까."

프로믹스는 세상에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 알려 주지. 그곳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들이 있는 4개의 탑 중에 하나지."

범려는 마법사들이 있는 탑이라는 소리에 잃어버린 마법들을 찾는 좋은 단서가 될 거라 여겼다. 그리고 프로믹스가 쓰는 작은 메테오를 보고 그 마법이 탐나기도 했다.

"음, 아주 대단한 곳이군요."

"당연하지. 나 역시 그 위대한 마법사들 중에 하나니까."

프로믹스는 스스로가 위대한 마법사들 중에 하나라면서 자랑을 했다.

범려는 속으로 자신의 화살 하나도 제대로 막지 못해서 쩔쩔매는 그런 한심한 마법사가 어디가 대단한지 궁금했다.

"그런 위대한 마법사들이 있는 탑에는 얼마나 많은 마법사들이 있는 건가요?"

"마법사들이야 많지. 어림잡아 천여 명의 마법사들이 그곳에서 마법을 연구하고 있지."

"정말 대단하네요. 혹시 저 같은 사람도 그곳에 가서 구경을 할 수 있을까요?"

범려는 살며시 그 탑을 구경할 수 있냐며 쭈그렁 마법사를 떠보았다.

"안 되네. 그곳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위대한 마법사 프로믹스 님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있나요?"

범려가 프로믹스를 위대한 마법사라고 추켜세우자 프로믹스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웃음이 떠올랐다.

"어험! 그, 그렇지. 난 위대한 마법사 프로믹스지."

"그렇죠. 위대한 마법사 프로믹스 님이시죠. 그러니 하찮은 저희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쯤이야 물 한잔 마시는 일처럼 쉬운 일이죠."

"하하하, 그렇지. 나에게는 그런 일 따위야 물 한잔 마시는 수준밖에 안 되지."

범려의 사탕발림에 점점 녹아가는 프로믹스였고 거기에 로즈가 가세를 했다.

"어머, 그럼 저희들 전부 다 그곳으로 가도 되겠네요."

"그렇지. 모두 다 데려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해골도 데리고 가도 돼!"

"어머, 너무 좋아라."

범려와 로즈가 약간의 아부를 떨었을 뿐인데 프로믹스는 그 아부에 홀라당 넘어가 버리고, 특히 로즈의 황홀한 미소는 늙은 마법사에게도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어서 날 따라와! 내가 안내를 해주지!"

프로믹스가 앞장서서 이들을 데리고 나가자 마을 사람들은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된 거야?"

"글쎄, 프로믹스 마법사님이 데리고 가신 것 같은데."

다들 집 안에 있었지만 바깥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범려가 네크로맨서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 프로믹스가 아부에 약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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