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55화 (55/80)

제5장. 거대한 존재

"이곳이 아티잔의 탑이다."

범려는 아티잔의 탑이라고 해서 드래곤 아티잔의 조각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고, 그냥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거대한 탑만이 있을 뿐이었다.

"정말 엄청나군요."

"우하하하! 그렇지. 이곳은 대마법사 아티잔 님이 만든 탑이지."

"대마법사 아티잔?"

범려는 이 탑의 주인이 아티잔이라는 말에 점점 의심의 눈초리로 탑을 바라보았다.

"이 탑의 탑주님을 볼 수 있을까요?"

"탑, 탑주님을?"

"왜요? 조금 힘든 일인가요?"

"무, 무슨 소리를. 나 위대한 마법사 프로믹스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프로믹스가 당당히 외치자 범려는 탑 안으로 들아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 몰라 해골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숨어 있으라고 했다.

'또다시 네크로맨서로 오해받는 것은 사양이니까.'

범려 일행이 프로믹스를 따라서 탑 안으로 들어오자 입구를 지키던 마법사들이 마법 지팡이로 위협을 했다.

"누구냐!"

"아, 내 손님들이야."

프로믹스가 입구를 지키던 마법사에게 자신의 손님들이라면서 탑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탑 안이 이렇게 생겼구나."

탑 안에 들어온 일행들은 수십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방의 미로를 볼 수 있었다.

"이리로 와라. 이곳은 길이 복잡해서 이곳에 사는 마법사들도 길을 종종 잃어버리니 잘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프로믹스의 길 안내를 받으며 어느새 탑 한가운데에까지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마법으로 작동하는 엘리베이터를 볼 수 있었다.

"마법으로 작동하는 엘리베이터."

"정말 엘리베이터야."

그 형태가 약간 다르지만 분명 엘리베이터였다.

"이걸 타고 탑주님이 계시는 곳으로 안내해주지."

일행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탑주가 있는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다. 너무 빠른 속도로 올라가서 귀가 다 멍멍할 지경이었다.

"다 왔다. 잠시만 기다려라."

"그러죠."

탑주를 만나기 위해 일행들은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프로믹스가 돌아오기까지 대략 1시간 정도가 걸렸지만 이미 그 정도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후우, 진땀 뺐네."

"이제 들어가도 됩니까?"

"그래. 이제 들어가도 되네. 탑주님의 허락이 떨어졌네."

다시 프로믹스를 따라서 탑주가 있는 방으로 들어서자 그 안에는 늙수그레한 마법사가 아니라 아주 젊고 예쁜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탑주님,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이만 물러가봐."

탑주의 말에 프로믹스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조용히 방을 나섰다.

범려는 탑주의 얼굴을 보고는 너무나 깜짝 놀랐다. 지금 탑주의 얼굴이 드래곤 아티잔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과 완전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래, 날 보고자 한 이유가 뭐지?"

"고요의 아티잔?"

"……."

정곡을 찔렸는지 탑주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넌 누구지?"

아티잔의 녹색 눈동자가 갑자기 용의 눈동자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범려는 느긋한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군요, 고요의 아티잔 님."

"오랜만이라니, 무슨 소리냐? 난 널 본 적이 없는데. 그리고 왜 너 혼자만 용의 축복을 받은 거지? 그것도 나의 축복을 말이야."

역시 진짜 고요의 아티잔이었다. 자신이 내린 축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 미리 설명을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전 미래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이 축복은 미래의 당신이 저에게 준 축복입니다."

아티잔은 범려의 말을 듣자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축복을 해주기 위해서는 볼에다 하건 입에다 하건 키스를 해야 한다.

"미, 미래의 내가 정말 그랬단 말이냐."

"물론입니다."

아티잔은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더니 크게 심호흡을 했다.

범려는 지금 그녀의 행동을 보면서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래의 아티잔은 상당히 무뚝뚝한데 지금의 아티잔은 너무나 청순하고 소녀 같은 느낌이었다.

'과거 시대의 아티잔은 아직 나이 어린 드래곤인 건가?'

결국 범려에겐 이제 갓 성년이 된 드래곤으로 판단이 되고 말았다.

"아티잔 님,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냐."

"여기에 오는 도중에 이곳 말고도 3개의 탑이 있다고 들었는데, 다른 탑들도 드래곤들이 탑주로 있는 겁니까?"

"그렇다."

아티잔은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순진무구한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인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싫다면?"

"그럼 밑에 가서 여기 탑주가 드래곤이라고 소문내겠습니다."

범려는 아티잔에게 명백히 협박을 했다.

탑주가 드래곤이라는 게 소문이 나면 사람들은 경악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체가 탄로 난 드래곤은 더 이상 인간들과 어울려 살 수가 없게 된다.

"크윽!"

"어서 알려 주시죠."

"서쪽에는 순백의 크라운, 이곳 남쪽에는 내가 있고, 동쪽에는 창공의 페이셔, 북쪽에는 자연의 도로시가 있다."

범려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머지 탑주들의 약점을 쥐게 되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이곳에 쓸 만한 마법서가 있습니까?"

"저쪽에 널려 있다. 적당히 골라가라."

"헬렌 누나, 이쪽으로 좀 와봐."

"엉."

범려는 헬렌을 부르더니 마법서가 가득 쌓여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누나, 잘 들어. 여기에 있는 마법서들 중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사용되지 않는 마법서 딱 2개만 골라."

"알았어."

헬렌은 직업이 마법사이다 보니 미래에 사용되고 있는 마법은 다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중에서 책 두 권을 집어 들었다.

-고대 마법서:플레어 윈드

거센 불길이 바람처럼 몰아쳐 광범위하게 적들을 쓸어버리는 마법이다.

쿨 타임:1시간, 캐스팅:5초, 마나 소비:900

-고대 마법서:앵거 오브 어스

말 그대로 대지의 분노다. 광범위하게 땅이 요동치며 지각이 일어나고, 그 사이로 날카로운 바위들이 솟아오르며 적들에게 피해를 준다.

쿨 타임:1시간, 캐스팅:4초, 마나 소비:940

헬렌이 2개의 마법서를 가져오자 범려는 마법서를 받고는 아티잔에게 걸어갔다.

"이 두 권을 주십시오."

"그렇게 해라."

-고대 마법서:플레어 윈드를 획득하셨습니다.

-고대 마법서:앵거 오브 어스를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잃어버린 마법을 획득하셨습니다.

-고대 마법서 홀리 어벤저를 획득하셨습니다.

-고대 마법서 일루전 웨이브를 획득하셨습니다.

-고대 마법서:홀리 어벤저

거대한 빛이 하늘에서 내리게 되며 광범위하게 적을 공격합니다. 그 빛을 쏘이는 상대는 성 속성 피해를 입으며 일정 확률로 시력을 잃어 눈이 보이지 않는 암흑 상태가 됩니다.

쿨 타임:1시간, 캐스팅:5초, 마나 소비:800

-고대 마법서:일루전 웨이브

환상으로 만들어진 무지갯빛 드래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 드래곤은 맹렬히 돌진하여 적과 함께 광범위하게 빛의 폭발을 일으키며, 공격과 동시에 소멸합니다.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범려는 잃어버린 마법이라고 해서 과연 좋은 마법이 올까 반신반의했지만, 방금 아티잔에게 받은 마법이 2개, 거기에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마법이 2개였는데 전부 다 범위 마법이다.

'이걸 어떻게 하지.'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마법서는 인벤토리로 들어가 헬렌이나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범려는 지금 상황에서 시치미를 뚝 떼느냐, 아니면 퀘스트 완료를 알리고 마법을 양보하느냐 고민했다.

"누나, 그 마법서 중에 마음에 드는 거 있어?"

"어, 이거. 플레어 윈드."

"가져가."

범려는 잠시 욕심을 부려 볼까도 했지만 헬렌이나 다른 이들이 자신을 도와준 걸 생각하면 마법서 한 권은 그냥 줘도 아깝지 않았다.

"정말? 너무 고마워."

"아니야."

헬렌은 범려의 속도 모른 채 너무 좋아했고 그걸 본 로즈나 취선이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형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자기야, 너무 멋지다."

"크윽."

로즈 남매에게 이런 소리를 듣자 범려는 왠지 양심에 찔렸다.

"아, 아니야. 헬렌 누나가 잘돼야 나도 잘되는 거지."

범려가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어물쩍 넘겼는데 아티잔이 그의 정체를 물었다.

"이봐, 너, 이름이 뭐지?"

"범려라고 합니다."

과거의 아티잔은 범려의 이름을 작게 되뇌며 기억해두려 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범려가 아티잔의 방을 나오자 방문 바깥에서 프로믹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나오는가?"

"영감님,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그럼, 내가 여기서 기다리지 않으면 누가 자네들을 안내해주겠나."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범려가 프로믹스에게 사과를 하자 옆에 있던 사람들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허허, 이만 탑을 내려가지. 여기서 외부인은 볼일이 끝나면 나가야 해서 말이지."

프로믹스는 일행들을 탑 바깥으로 안내해주었다. 범겨 일행은 왠지 후다닥 볼일만 보고 나온 기분이어서 사람들과 이야기할 틈이 없었다.

"그럼 잘 가게. 다음에 또 보지."

프로믹스가 서둘러 보내는 모습에 범려는 약간 이상했지만, 자신들이 갑작스럽게 탑으로 들이닥치게 했으니 황급히 돌려보내는 것도 이해가 됐다.

범려는 해골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돌아와 그들을 일으켰다. 수많은 해골들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마법사들은 전부 다 이쪽으로 와라."

해골 마법사들은 범려의 뒤를 따라 어딘가로 가더니 그가 건네주는 3권의 고대 마법서를 받았다.

"이걸 익혀라. 알겠지?"

해골 마법사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마법사들끼리 따로 모여서 마법서를 보며 서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이제 마법사들이 알아서 하겠지."

범려는 그렇게 마법서 3권을 주고는 뒤돌아섰다.

"으헉! 아르테미스 님."

범려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르테미스로 인해 잠시 깜짝 놀랐다.

"범려 님, 안녕하세요. 제가 부탁한 걸 역시 쉽게 하시네요."

"뭐, 그렇지요."

범려는 놀란 가슴을 얼른 추스르고는 작게 웃었고, 아르테미스는 해골 마법사들을 한 번 보더니 다시 범려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제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처리해주셔야겠네요."

"응? 벌어지는 일이라니요?"

"4개의 탑을 관장하고 있던 탑주들은 이제 탑을 떠나게 되죠. 탑주들이 사라지면 흑마법사들이 전쟁을 일으킬 거예요."

"아니, 왜 탑주들이 사라지는 건가요. 그리고 전쟁이라니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탑주들, 아니 드래곤들이 이제 수호룡으로 자리를 잡을 때가 왔기에 인간들 일에서 물러날 때가 됐거든요. 범려 님은 이제 미래가 크게 바뀌지 않게 흑마법사들을 막아주셔야 해요."

아르테미스의 진짜 목적은 여기에 있었다. 그렇기에 범려에게 퀘스트로 고대 마법서를 주는 것이었다.

흑마법사들과 싸워서 지금의 세상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것도 모든 수호룡이 활동하기 전까지 말이다.

"쩝."

-마법사들의 전쟁

4대 탑주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로 인해 어둠의 힘을 다루는 흑마법사들이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야욕을 드러냅니다.

또한 마법사들은 해골 제작자의 해골들을 네크로맨서의 병사들로 오인하게 됩니다. 과거의 인연이 있던 이들도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해골 제작자를 적으로 상대하게 됩니다.

(이 퀘스트는 현재 시간을 기준으로 정확히 15일 후에 전쟁이 발발합니다.)

난이도:A

완료 조건:흑마법사들을 저 멀리 쫓아버려라.

보상:대마법사 등장

범려는 퀘스트를 보고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언제고 자신이 마음먹을 때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이 편한데 이건 그게 아니었다.

그래도 퀘스트 보상을 보니 조금 인상이 풀어졌다.

"퀘스트 보상이 대마법사? 새로운 해골 직업인가. 그리고 아르테미스 님, 흑마법사들이 어디서 나타나는지 아시나요?"

"음, 여기서 바다 건너에 있는 대륙 칠흑의 데보라 지역에서 나오죠."

지금 아르테미스가 언급한 지역은 범려가 살고 있는 시대의 기준으로 말한 것이었다. 그래야 이해가 조금이라도 빠르기 때문이다.

"바다? 그럼 배를 타고 넘어오나요? 아니면 마법으로 포탈을 타고 오나요?"

"그건 비밀."

아르테미스가 집게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면서 비밀이라고 하자 범려는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어휴,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들과 같이 퀘스트를 진행해도 되죠?"

범려는 한쪽에 보이는 로즈 남매와 헬렌을 가리켰다.

"물론입니다."

아르테미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범려는 바로 일행들과 해골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내 말 잘 들어. 정확히 15일 후에 엄청난 전쟁이 터질 거야. 그 전쟁에 대한 준비를 해줘."

"형님, 전쟁이라니요? 갑자기 무슨 전쟁인데요?"

"자세한 사항은 몰라. 아르테미스가 말하기를, 마법사들이 벌이는 전쟁이라고 했으니 아마도 마법사들이 만들어놓은 골렘이나 뭐 이런 것들이 무식하게 튀어나오겠지."

범려는 마법사들이 뭘 할지는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들에게 이건 확실하게 일러두었다.

"이후에 마법사들을 만나면 무조건 피해라. 내가 받은 퀘스트가 실패할 확률이 있다. 미안하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취선이나 다른 사람들은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곳이 게임이라는 특성상 퀘스트 때문에 이리저리 성향이 바뀌거나 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해해줘서 고맙다."

"자기야, 퀘스트가 15일 후에 발생한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 어서 사냥하러 가야지."

"그래! 사냥하러 가자."

과거 시대의 몬스터들은 큰 변화가 없는 오크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크라고 해서 전혀 약하지 않았고 오히려 강했다.

"오크들이 또 온다. 준비해!"

"빌어먹을 것들, 또 오냐."

범려 일행은 지독하게 많은 오크들을 보면서 정말 질리게 사냥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범려가 해골 병사를 추가로 만들 시간이 촉박해서 제대로 된 대응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취선, 앞장서라!"

"또 병사를 만드시게요?"

"그럼, 당연하지. 해골 부장 하나 만들어서 해골 병사들 제한 숫자가 많이 늘어났거든."

범려는 신나게 전투를 하고 있는 도중에 해골 병사들을 전직시키거나 하는 일을 진행했다. 그때마다 해골 부장들과 취선이 나서서 지휘를 했다.

"해골 병사 완성. 이제 전투를 해야지."

범려는 병사를 하나 완성하면 그 병사를 옆에다 두고 있다가 레벨이 전직할 수준까지 오르면 그때그때 바꿔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형님, 격노 한 번 안 될까요? 이거 힘들어요."

취선은 해골들이 격노를 터트릴 때마다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좋아. 어차피 사냥을 빨리하려면 한 번은 터트려야 하니까."

범려는 몬스터들에게 달려가더니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

"크아앙-!"

해골들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해골 마법사들이 고대 마법서를 익혔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해골 마법사들이 홀리 어벤저, 일루전 웨이브, 앵거 오브 어스를 습득했습니다.

-각각의 마법은 해골 마법사 5명이 동시에 발휘해야 사용 가능하며 쿨 타임을 같이 공유합니다. 마나 소비는 나누어 소비합니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배웠군."

범려가 마법사들을 바라보자 그들의 눈에서 녹색 빛이 흘러나오며 지금 당장이라도 마법을 쓰고 싶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앵거 오브 어스를 시전해라!"

새로운 마법을 배웠기 때문에 범려는 마법의 위력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쿠르르릉.

곧바로 해골 마법사들이 마법을 시전하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갈라지고 흔들리며 그 갈라진 틈새로 날카로운 바위가 치솟았다.

"우와, 주변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버리네."

지형만 바뀌었다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날카로운 바위가 쩍 하고 갈라지면서 폭발을 일으켰다.

펑! 펑! 펑!

"하하하, 단순한 지진만 일어나는 게 아니군."

화려한 이펙트, 그리고 그에 걸맞은 공격력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범려야, 나도 플레어 윈드 위력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해보고 싶어."

"알았어, 누나."

범려는 헬렌의 요구에 따라 망구다이를 시켜서 몬스터들을 동시에 끌고 오도록 명령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망구다이들이 오크 무리를 이끌고 왔다.

"오크들이 몰려온다!"

해골 병사들과 오크들이 충돌하자 헬렌은 주저 없이 마법을 시전했다.

"플레어 윈드!"

곧 오크들의 머리 위에 작은 불덩이가 생기더니 그 주변으로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왔고, 그 바람을 타고 불줄기들이 회전하면서 그 크기가 급격하게 불어났다.

화르륵!

불줄기는 마치 화염으로 만들어진 토네이도같이 오크들을 그대로 쓸어버렸다.

"역시 고대 마법이야. 오크들의 피가 쭉쭉 깎여 나가고 있어."

헬렌은 플레어 윈드의 위력에 반해버렸다. 이제 쿨 타임이 돌아오면 다른 마법보다 이걸 먼저 쓸 것이다.

"누나, 다른 마법도 써줘야지."

"그렇지. 뜨거운 거 써줬으니 머리도 식힐 겸 차가운 마법을 써야겠지."

헬렌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블리자드 마법을 시전하려고 하자 범려가 해골 마법사들에게 손짓을 해 같이 블리자드를 시전시켰다.

"블리자드!"

모든 걸 재로 만들어버릴 듯한 화염의 열기가 순식간에 식어버리고, 남극의 펭귄조차 춥다고 몸을 오들오들 떨 듯한 추위와 날카로운 얼음들이 날아 들어왔다.

엄청난 위력의 마법들 덕분에 오크들의 생명력이 크게 떨어졌고, 범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병사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돌격!"

"태풍 몰아치기!"

"생명의 샘! 힐!"

오크 무리들을 한차례 쓸어버리자 범려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마법사의 마나 관리를 위해서였다.

"루이, 쥐들을 계속 보내고 있냐?"

"물론이다. 방금 전에도 쥐들을 보내서 지형을 확인하라고 했다."

"칠흑의 데보라에 연락 가능한 쥐들은 없는 거냐?"

"없다. 아무리 쥐들이 은밀하게 움직인다고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육지에 있을 때의 이야기. 그 드넓은 바다를 어떻게 헤엄쳐 가겠나."

루이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쥐들이 아무리 은밀히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그 드넓은 바다를 건널 수 있는 확률은 없었다.

"녀석들의 목적지야 마법사들이 있는 탑이겠지만, 문제는 어디로 먼저 가느냐 하는 건데."

범려는 혼자서 머리를 굴려 봤지만 어딜 먼저 가야 할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퀘스트로 인해 마법사들이 범려를 네크로맨서로 인식하기 때문에 마법사들과 같이 공동전선을 펼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젠장,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것들이 어디로 올 줄 알고 대비를 하느냔 말이야."

범려는 씩씩거리며 흥분을 했다. 그러자 로즈가 다가와 그를 진정시켰다.

"자기야, 진정해."

로즈가 범려를 토닥여 주자 흥분했던 마음은 상당 부분 가라앉고 좀 더 냉정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음, 흑마법사들이 싸움을 걸어올 때는 분명 마법으로 한순간에 날아올 텐데…….'

범려는 마법사들이 사용 가능한 전술을 여러 측면으로 생각해봤다.

'아무리 흑마법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탑 안으로 기습 작전을 펼치기는 힘들 거야. 탑에는 나름대로 마법적 안전장치가 되어 있어. 결국 전투를 벌인다면 그 근처에 대규모 워프를 한다는 소리인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범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루이를 바라보았다.

"루이."

"무엄하다. 어디서 이 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냐!"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네."

범려가 윽박지르자 루이는 고개를 숙이며 고분고분해졌다.

"너, 쥐들을 어느 한 지역에 며칠이고 거기에서 살게 만들 수 있어?"

"물론이지! 난 아마레스토 곤페치 드 로베르트 루이 14세니까!"

"된단 말이지."

범려의 귀에는 루이의 풀 네임이 들리지도 않았고 그냥 자기 할 말만 했다.

"그럼 당장 쥐들을 끌어 모아봐. 네가 부릴 수 있는 그 한계치까지."

"하하하, 잘 봐라, 하인. 내 진정한 힘을 보여 주지."

루이가 찍찍거리면서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 있던 쥐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맨 처음에는 그 숫자가 30마리에서 갑자기 90마리로, 거기서 다시 수천 마리로 확산되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쥐들의 숫자를 보면서 범려는 또 한 번 루이의 능력에 놀랐다.

"이게 내가 불러 모을 수 있는 쥐들의 숫자다."

"몇 마리나 되냐?"

"5만이다!"

숫자상으로 5만이라면 그리 적은 숫자가 아니다. 더군다나 쥐들이다. 시커멓게 들판을 메우고 있는 쥐들의 모습에 기겁을 할 정도다.

"루이, 내 말 잘 들어. 지금부터 1킬로미터 간격으로 쥐들을 배치시켜라. 그리고 그 마지막 종점은 4대 마탑이다. 나머지는 내가 말 안 해도 알겠지?"

"알았다."

루이는 범려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곧장 탑이 있는 4개의 방향으로 쥐들을 1킬로미터 간격으로 배치시켜 두었다.

혹시 몬스터가 쥐들을 건드릴지 모르니 땅속에 쥐 굴을 파서 안정적으로 몸을 피신할 공간도 같이 만들라고 명령했다.

"이제 녀석들이 어디에 먼저 나타날지는 쥐들을 통해 확인이 될 것이다."

범려가 지금 한 일은 조선 시대에 사용되었던 파발이라는 제도다. 일정 거리마다 역참을 두어 말을 타고 긴급하게 문서를 전달하는 방식을 쥐를 이용해 설치한 것이다.

"루이, 넌 여기서 쥐들의 정보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무엄하다! 이 몸은 집 지키는 개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줄까?"

범려가 서슬 퍼런 창을 겨누자 루이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입을 열었다.

"아이고,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그냥 이곳에 있어야겠다."

"그럼 부탁한다."

범려는 창을 거두고 유유히 사라졌다.

* * *

범려와 해골들이 열심히 사냥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지가 벌서 10일이 넘어가고 있을 때, 흑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검은 마탑에서는 그들만의 음흉한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병사들은 얼마만큼 모았나?"

"으흐흐, 3만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5만이라는 언데드 군단이 탄생할 것입니다."

"5만이라. 괜찮은 숫자군. 거기에 데스나이트들은 얼마나 있는 거지?"

"데스나이트는 600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성능이 아주 뛰어난 것들이 아니라서 조금 걱정입니다."

"그것들의 실력은 상관없다. 언데드 병사들을 통제만 할 수 있으면 된다."

흑마법사들은 언데드 병사들을 통제할 데스나이트들을 필요로 했다. 마법사라는 게 마법에 관해서는 대단한 실력을 보이는 반면 군사학적 지식은 별로 없다.

"추가로 데스나이트를 더 제작할 계획입니다."

"좋아. 계획에 차질 없도록 해라. 그리고 4대 마탑의 탑주들이 전부 다 사라진 것은 사실이겠지?"

"물론입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4대 탑주들이 사라진 건 확실합니다."

"하늘이 날 돕는구나. 그 탑주들이 없으면 나머지 마법사들은 쓰레기들이나 마찬가지."

흑마탑의 탑주는 다른 마탑의 탑주들과 달리 순수한 인간이었다.

"후후후."

흑마탑의 주인인 아스타우스는 며칠 후면 벌어질 마법사들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 장담했다. 져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범려가 미래에서 날아와 지금 이곳에 있다는 사실만은 모르고 있었다.

* * *

"각 궁수부대는 2열로 줄을 맞추어 교차사격을 하라! 보병들은 방진을 만들어 궁수들을 보호하라!"

해골 병사들은 철저하게 범려의 지휘대로 움직이면서 화살을 쏘았다.

"부장, 기병들을 이끌고 몬스터들의 좌측을 때려라."

"예! 장군님."

범려의 명령이 떨어지자, 해골 부장 몇 명이 기병들을 모조리 이끌고 한창 사냥 중인 오크 무리의 좌측을 박살내버렸다.

"진형이 무너진다!"

진형이라는 것은 구축하고 있다면 살아 있는 칼날이 되지만 무너지면 그대로 죽음이다.

"취익! 오크 살려!"

"취익! 도망… 컥!"

녀석들은 해골 병사들의 손에 무참히 학살당한 후, 고스란히 경험치로 환산이 되었다.

-해골 병사들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범려가 잠도 줄여 가면서 미친 듯이 사냥을 한 결과 레벨이 크게 올랐다. 동시에 날짜가 지난 만큼 병사들의 숫자도 증가되었다.

"흐흐흐, 이제 며칠 안 남았다. 조금만 더!"

아직 흑마법사들이 쳐들어오기까지는 며칠 여유가 있었지만 범려는 반쯤 광기에 물들어 헐떡이며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해골 제작의 쿨 타임이 돌아왔구나. 으흐흐."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뼈를 맞추고 짧은 순간에 뚝딱 병사를 만들어내는 모습에 음침한 기운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 * *

기다리고 기다리던 퀘스트가 발동하게 되는 시간이 다가왔다. 범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준비했다. 이제 뚜껑을 열어봐야 할 때다.

"형님! 드디어 때가 됐습니다."

"그래. 흑마법사들이 올 때가 되었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이 왔다는 소식은 아직 전해지지 않았다. 물론 쥐들이 대기를 하고 있으니 연락이 곧 도착하겠지만 그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억겁의 세월처럼 느껴졌다.

찍찍! 찍찍!

범려는 문득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쥐가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확인했다.

"동쪽!"

지도상에서 칠흑의 데보라 지역과 가장 가까운 곳은 동쪽의 마탑이다. 그곳을 먼저 공격해오는 것이다.

루이는 도착한 쥐의 보고를 듣고는 범려에게 이야기해줬다.

"흑마법사들이 도착한 것 같다. 그곳에 도착한 병력은 언데드라는데. 숫자는 5만이군."

"뭐! 5만!"

5만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범려의 머릿속에 있던 모든 작전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젠장, 이건 뭐 이 숫자 가지고 어떻게 해볼 수준이 아니잖아."

범려의 병사들은 그동안 숫자를 꾸준히 늘려 와서 820이라는 숫자를 만들었지만 비교조차 불가한 군대였다.

"이렇게 되면 진짜 기습 작전밖에는 없는 건가."

범려가 지금까지 많은 싸움을 해봤지만 대부분은 상대의 숫자가 적은 상태에서였고, 간혹 적들의 숫자가 많은 경우라고 해도 2배 이상 차이가 난 적은 없었다.

"형님, 어떻게 하실 건가요. 흑마법사들이 이끌고 온 병사들이 5만이라는데."

"제길, 그 병력들을 어떻게 상대하라는 건지 모르겠군."

흑마법사들이 만든 언데드 병사들은 눈으로 보이는 병력의 구조에 있어선 크게 차이가 없다.

데스나이트의 지휘는 흑마법사들이 광역 마법을 사용할 것이고 사령관은 흑마탑의 탑주가 할 것이다.

"여기서 제일 핵심은 4대 마탑의 병력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건데."

뭔가 기발한 계략이 필요했다.

범려는 그 와중에 퀘스트 내용을 한 번 더 보았다.

"마법사들도 나를 적으로 보고 흑마법사들도 나를 적으로 본단 말이야. 이대로 가면 각개격파당하는 건 시간문제지. 그걸 안 당하려면… 그래! 바로 그거야!"

범려는 기막힌 전략이 떠올랐는지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해골마 위에 올라탔다.

"다들! 남쪽 마탑으로 간다!"

"네? 갑자기 왜요."

"잔말 말고 따라와!"

다들 얼떨결에 그를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그래도 범려가 하는 일이니 무언가 방법이 있어서 저런 행동을 할 것이라고 여겼다.

"전속력으로 달려라! 한시가 급하다!"

우르르르!

수많은 말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는데 천둥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드넓은 벌판을 달렸다.

남쪽 마탑에 도착하기까지는 4시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 병력을 한곳에 뭉치게 해볼까."

범려는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크게 소리쳤다.

"으하하하! 나 흑마법사 범려가 너희들을 찾아왔다!"

얼마나 소리를 크게 질렀는지 범려는 머리가 다 핑 돌았다.

잠시 후 범려의 외침에 탑 안에 있던 마법사들 일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흑마법사가 이곳에는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기는. 너희들에게 도전을 하러 왔다!"

도전이라는 이야기에 그들은 얼굴빛이 바뀌면서 범려를 노려보았다.

"감히! 더러운 흑마법사가 도전이라니. 네놈이 간덩이가 부었구나!"

"하하하, 우리 흑마법사들은 너희 마법사들을 모조리 죽이기 위해 5만의 언데드 군대를 이끌고 이곳으로 왔다!"

남쪽 마탑의 마법사들은 언데드 병력 5만이라는 소리에 얼굴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차피 너희들은 우리 흑마법사들의 손에 모두 다 죽을 것이다! 우리는 항복 따위는 받아주지 않는다! 오로지 너희들의 피를 원할 뿐이다!"

"……."

"우리는 너희들에게 마지막 발악할 기회를 주러 온 것이다! 북쪽에 있는 도로시의 탑으로 와라. 그곳에서 모든 걸 결판 짓자!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도망가거나 항복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우리는 마법사들을 단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일 것이다!"

범려의 우렁찬 연설에 아티잔의 탑에 있는 마법사들 중에서 상당히 직위가 높은 마법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좋다! 너희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감히 흑마법사들 따위가 우리를 몰살시키겠다니.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 북쪽 도로시 탑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마법사들은 탑주가 없어도 그 기백이 용감한 맹장 못지않은 위용을 보여 주었다.

'후후후, 그래. 북으로 가거라. 그래야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범려는 그대로 아티잔의 탑을 거쳐서 서쪽에 있는 크라운의 탑에 찾아갔다. 그곳에서도 범려는 같은 소리를 했으며, 이에 분노한 크라운의 탑 마법사들은 당장 짐을 꾸리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하하하, 이제 북쪽에 갈 필요는 없지. 남은 건 동쪽의 마법사들을 대피시키는 것인데."

동쪽 창공의 페이셔 탑 마법사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오직 언데드 병사들을 크게 흔들어서 도망갈 틈을 만들어야 했다.

여기서 제일 큰 문제는 창공의 페이셔 탑 마법사들이 후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퇴를 하는 데 마법사들을 설득하기 쉬운 이들은 신을 믿는 사제들과 그와 같은 마법사지."

범려가 뒤에 있는 헬렌과 로즈를 보면서 미소를 짓자 그녀들은 순간 온몸에 오한이 스며들었다.

'으윽, 저 사악한 미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