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적의 적은 아군?
마법사들과 흑마법사들의 전투는 날이 갈수록 치열해졌다. 특히 마법사들을 완벽하게 궁지에 몰아넣은 흑마탑주는 마법사들의 저항이 더욱 거세지자 골치가 아팠다.
"탑주님, 놈들의 저항이 너무 거세서 오늘도 성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
흑마탑주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는 흑마법사들을 향해 주먹질을 하며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데스나이트들은 얼마나 있지?"
"1,000명에서 이제 960명으로 줄었습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군."
데스나이트가 많이 살아 있다면 언데드 병사들을 지휘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소리였다.
"다음 공격 때는 확실히 저 성벽을 넘어야 한다. 만약 실패한다면 각오하고 있겠지?"
아스타우스는 자신의 오른손을 검은 불길로 휩싸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탑주님."
흑마법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다음에는 꼭 저 성벽을 넘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탑주가 있는 군막에서 쥐 한 마리가 남몰래 돌아다니고 있었다.
찍찍!
그 쥐는 발소리도 나지 않게 군막을 조심스럽게 빠져나오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하아암, 지루하군."
범려는 계속 마법사들과 흑마법사들의 전투를 보며 며칠 동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멍청한 흑마법사들이 워프 게이트를 막아버리는 바람에 마법사들이 오늘도 거칠게 저항을 하잖아? 바보들."
"주, 주인님, 흑마법사들의 진영에서 얻어온 정보입니다."
루이는 어설픈 주인님 소리를 하면서 범려에게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음, 언데드 병사들 좀 죽은 거 말고는 특별한 변화가 없군. 마법사들은 탑에서 잘 버티고 있지만 슬슬 지쳐 가는 녀석들이 나올 텐데."
아직까지는 마법사들이 잘 버티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몇몇은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마법사들은 기사들처럼 육체적 능력이 떨어지니 휴식을 취할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야."
이제는 범려가 한바탕 흑마법사들의 진영을 기습해서 마법사들의 휴식 시간을 벌어줄 작정이었다.
'마법사들이 더 오랫동안 버텨야 내가 좀 더 수월하게 퀘스트를 완료할 수가 있지.'
마법사들의 휴식은 그들을 위해서도 좋고, 범려에게도 좋았다.
"음, 마법사들에게 하루만 충분히 쉬게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범려는 어떻게 하면 혼란에 빠트릴까 생각하면서 흑마법사들이 주둔해 있는 군영을 보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음, 거리가 맞을까?"
지도에 표시된 흑마법사들 군영의 위치를 보니 아주 가까운 곳에 작은 산이 하나 있었다. 그 위에서 뭔가 장난을 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루이!"
"네… 주, 주인님."
"이곳에서 제일 가까운 마을을 찾아봐. 될 수 있으면 잡화점이 있는 곳이면 더 좋고."
범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루이를 바라보았다. 그 알 수 없는 미소에 루이는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일단 범려가 시키는 대로 잡화점이 있는 마을을 찾아서 알려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루이가 알려 준 마을에 도착한 범려는 잡화점에 들어가자마자 손가락으로 한 물건을 가리키며 그것이 몇 개나 있는지 확인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무엇을 찾으십니까?"
"이거 300개 정도 있나요?"
"손님, 아주 때를 잘 맞춰 오셨습니다. 저희 집에서 최근에 이걸 많이 구입해놓았습니다."
가게 주인은 입바른 소리를 하며 범려에게 어서 물건을 사가라고 권유했다.
"30퍼센트 할인되나요?"
"어이쿠, 물론입니다. 할인되고말고요."
범려가 워낙 물건을 많이 사가니 그 정도 할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주인은 가격을 깎아주었다.
"돈은 여기, 그리고 물건은 마을 입구에서 100미터 바깥에 모아주세요."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잡화 상점 주인은 무조건 그렇게 하겠다며 굽실거렸다.
나중에 물건이 도착하자 범려는 해골들을 몰래 불러내어 그걸 가져가게 했다.
"얘들아, 오늘 밤 적들이 있는 산 나무에 이걸 매단다. 대신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라."
해골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을 대신하고는 그날 밤 아무도 모르게 그 물건을 조심스럽게 나무에 매달았다.
"후후후, 내일 밤에는 녀석들이 피해를 좀 입겠군."
범려는 다음 날 오전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흑마법사들의 군영을 끊임없이 정찰시켰다.
다행히 루이의 보고에 의하면 흑마법사들은 자신들 옆에 있는 산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제 재미있는 장난을 할 때가 됐다. 부장들은 병사들을 집결시켜라."
"예! 장군님."
병사들이 정렬하자 범려는 하늘을 잠시 보았다.
"운도 좋구나. 오늘은 그믐날이야."
달이 뜨지 않는 그믐밤에 아르테미스의 손길 버프를 받은 해골 군대는 보병들만 흑마법사들의 군영 근처에 있는 산 뒤편으로 올랐다.
"다들 각자 위치로."
범려가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자 해골들은 은밀하게 자신들의 위치로 걸어갔다.
"좋아, 슬슬 시작해볼까? 궁수들, 사격 준비!"
척! 척!
궁수들은 저 밑에 보이는 흑마법사들의 군영을 향해 조준했다.
"발사."
작은 목소리로 신호를 내리자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수많은 화살 공격에 당한 언데드 병사들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했다.
"후후후, 아르테미스의 손길을 받은 신성한 화살이니 좀 아플 거야."
연이어 쏟아지는 화살에 계속 공격을 당하자 데스나이트들과 흑마법사들은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보고 소리쳤다.
"산이다! 적들이 산에서 기습을 하고 있다!"
언데드 병사들은 산이라는 말에 무기를 들고 뛰어 올라갔다.
"녀석들이 온다. 유인하라."
유인하라는 범려의 명령에 아래에 대기하고 있던 해골 병사가 무언가를 깨트렸다.
쨍그랑! 쨍그랑!
무슨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 소리를 들은 데스나이트가 고개를 돌렸다.
"저쪽이다!"
언데드 병사들도 그 소리를 듣고 쫓아가기 시작했다.
산으로 진입한 언데드들이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또다시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다!"
연이어 들려오는 항아리 깨지는 소리에 언데드 병사들은 어느새 산 정상 가까이로 올라왔다.
"지금이다! 다 깨트려라!"
범려의 그 말과 동시에 산 여기저기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궁수들, 불화살을 쏴라!"
산 아래에서 불화살이 날아오더니 그 불이 삽시간에 산 전체를 뒤덮었다.
"아주 홀라당 태워버려라! 하하하!"
범려가 병사들을 시켜 산에 매달아놓은 것은 불을 밝힐 때 사용하는 기름 단지로, 아주 질이 좋은 것이었다.
언데드 병사들이 산 위로 모두 다 쫓아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3천의 병력은 쫓아온 상황이었다.
"망구다이 5명과 마법사를 제외한 해골들은 먼저 도망쳐라."
우르르르!
범려는 지원군이 쫓아올 것을 대비해 미리 해골들을 대피시키고 마법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블리자드를 제외한 범위 마법 3종 세트로 간다. 순서는 홀리 어벤저, 일루전 웨이브, 앵거 오브 어스 순서다."
범려는 블리자드를 쓰다가 산불이 꺼질까 봐 그 마법은 제외시켰다.
후우웅!
콰쾅!
홀리 어벤저가 발동하면서 산 위로 한 줄기의 거대한 빛이 떨어지더니 폭발을 일으켰고, 그다음 마법들이 차례차례 발동되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해골 병사들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연거푸 다섯 번이나 이런 메시지가 떴다. 산불로 인한 피해가 언데드 병사들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되었는지, 3천의 언데드 병사들이 모래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가자! 이걸로 하루 벌었다. 하루 정도는 마법사들도 편히 쉬겠지."
범려도 자리를 벗어나자 남은 것은 흑마탑주의 분노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 중요한 병력들이 3천이나 사라졌다!"
"저, 저기 그게… 옆에 있던 산에 그런 짓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요, 용서해주십시오."
흑마법사들은 머리를 땅바닥에 박으며 아스타우스에게 용서를 구했다.
"뭐! 용서? 멀쩡한 병력 3천을 날려 먹었는데 어디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냐!"
아스타우스는 그날 밤 흑마법사들을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두들겨 팼다.
그렇게 두들겨 맞은 흑마법사들은 하루 동안 마탑을 공격하지도 못하고, 가만히 군영에서 휴식하며 시간을 보냈다.
"흐흐흐, 제대로 한 방 먹여 마법사들은 하루 동안의 시간을 벌었고, 나는 레벨이 올랐다. 이 사실을 로즈에게 알려야겠어."
범려는 로즈에게 바로 귓속말을 취했다.
[어머, 정말이야?]
"어, 정말이야. 흑마법사들에게 타격을 줘서 하루 동안은 꼼짝도 안 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 하루 정도는 편하게 있으면 돼."
[알았어. 그럼 마법사들에게 내 유창한 언변으로 하루 동안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다면서 설득할게.]
범려와의 귓속말을 종료한 로즈는 탑의 마법사들에게 오늘 하루는 신이 내린 안식일이라며 연설을 했다.
"오, 사제님! 그럼 오늘 하루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로즈의 말을 신의 말이라 여기는 마법사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날이 바뀌자 그동안 정신적, 육체적 피로에 찌들어 있던 마법사들은 단 하루의 휴식으로 완벽히 부활하게 되었다.
"언데드들이 몰려온다! 다들 준비하라!"
마법사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언데드들과 일전을 벌였다.
범려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망원경으로 전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후, 아직도 병력이 많아."
언데드 병력이 최소한 3만은 더 있어 보였다. 저기서 1만까지 떨어지게 되면 그때야 흑마법사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물러나게 될 것이다.
"슬슬 마법사들을 바깥으로 불러낼 때가 되었다."
범려는 이번 전투가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 탑 안에서 싸우는 마법사들도 안녕을 고하게 만들어야 했다.
"로즈에게 작전을 설명하고 마법사들을 설득하라고 해야겠어."
흑마법사들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로즈에게 바로 귓속말을 했다.
[알았어. 마법사들을 설득해볼게.]
"적당히 해. 너무 강요하면 네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내가 마법사들은 꽉 잡고 있으니까. 호호호.]
로즈는 정말 자신이 있는지 아주 기운이 넘쳐 나고 있었다.
"그런데 헬렌 누나는 거기서 뭐 하고 있어?"
[말도 마. 언니는 지금 언데드 군대와 싸우느라 기운이 하나도 없더라고.]
헬렌은 마법사라는 신분 때문에 탑주들이 도와달라고 했을 것이다. 게다가 헬렌 역시 마법서 하나쯤은 공짜로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참여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음, 뭐 헬렌 누나야 능력 있는 마법사니까. 아, 그리고 마법사들을 잘 설득해서 게임 시간으로 3일 뒤에 바깥에서 전투를 벌이자고 해."
[응, 알았어.]
범려는 귓속말을 종료하고 취선과 해골 부장들을 불렀다.
"다 모였냐?"
"예, 장군님."
"형님,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다른 건 아니고, 이제 우리가 신나게 싸워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정말이에요, 형님? 그럼 몸 좀 푸는 건가요? 하하하."
역시 취선은 언제나 거침없고 용맹한 맹장 스타일이다. 그와 반대로 얼굴은 미소년에 가깝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놈은 얼굴하고 성격이 전혀 따로 놀아.'
"형님, 이번 전술은 어떤 건가요?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화끈하게 정면에서 붙을 일은 없을 테고, 뒤통수치는 건가요?"
"그래, 뒤통수치는 거다."
"후후후, 역시 형님."
취선은 범려의 전술을 좋아했다. 정면을 치고 있다 뒤돌아서는 순간 적의 뒤통수를 때리는 전술을 말이다.
"이번 전술은 간단해. 마법사들이 골렘들과 같이 바깥으로 나와 흑마법사들과 전투를 벌이려고 할 거야. 우리는 그때 흑마법사들의 군영과 군대를 치러 나가는 거지."
"간단하네요."
"그렇지. 하지만 적들의 숫자가 많으니까 한시도 긴장을 놓치면 안 돼. 긴장을 놓는 순간 전멸이니까."
취선은 범려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루 동안 피로를 푸는 거야. 부장, 해골들을 땅속에 숨겨라."
"예, 장군님."
"형님, 그럼 저희는 로그아웃할까요?"
"그러지."
두 사람은 바로 로그아웃했다.
* * *
희성은 그 자리에서 바로 잠이 들었다. 게임을 하면서 너무 오랫동안 긴장을 유지하다 보니 피곤해진 것이다.
희성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정확히 10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으아아-! 잘 잤다."
늘어지게 잠을 자다 일어나서 그런지 몸도 개운하고 피로도 말끔하게 가신 것 같았다.
"오늘은 여유도 있고 하니 활터나 가야지."
희성은 오랜만에 활터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여전히 협회 사람들이 와서 습사(習射:활 연습)를 하고 있었다.
"어, 희성이 왔네?"
"안녕하세요."
"자주 좀 오지. 그런데 『판게아 월드』는 계속하고 있는 거야?"
"네, 계속하고 있어요."
"어, 그래? 그런데 어디에 있어? 아무리 찾아도 널 찾을 수가 없던데."
당연히 게임 안에서 희성을 찾을 순 없을 것이다. 지금은 과거 시대로 가버린 바람에 현재 시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제가 지금 퀘스트를 하고 있는 중이라서 찾기 힘들 거예요."
희성은 적당히 둘러대고 스승님이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스승님, 저 왔습니다."
"왔냐? 자리에 앉아라."
서진은 반갑게 희성을 맞이해주었다.
"제자야, 혹시 『판게아 월드』에서 대대적인 업데이트 소식을 들었냐?"
"네? 아니요. 못 들었는데요."
"그래? 그럼 알려 줘야겠구나. 『판게아 월드』에서 병사와 용병을 업데이트한다는구나."
"병사와 용병을요?"
희성이 병사와 용병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서진이 이어서 설명해주었다.
"그렇단다. 돈을 주고 병사와 용병을 사는 거지. 업데이트를 하려면 꽤 시간이 남았지만 사람들은 벌써부터 여기에 열광하고 있단다."
"음, 무슨 형식의 업데이트죠?"
희성은 업데이트 내용에 관심이 갔다.
서진의 설명은 이러했다.
모든 유저들이 병사와 용병을 고용할 수 있으며, 그것들을 휘하에 부리면서 생활하는 것이다. 그리고 병사와 용병의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돈과 시간이었다.
병사는 한번 고용하면 레벨이 낮긴 해도 평생 유저를 따라다니며 활동하게 된다. 단, 계속 따라다니면서 유저의 경험치를 나누어 받는다.
그리고 굉장히 충성심이 강해 자신을 고용한 주인과 평생을 함께 간다. 대신 가격이 비싸고 레벨이 낮아서 키우는 데 애로 사항이 많다.
반대로 용병은 충성심이 없다. 오로지 계약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고용 비용이 상당히 적고 레벨이 높지만, 계약을 하고 있는 동안만 데리고 있을 수 있다.
"병사와 용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자야."
"상당히 좋은데요. 하지만 저에게는 필요 없을 것 같아요. 해골들이 있는데 굳이 병사들이나 용병들을 고용할 필요는 없죠."
"너야 그렇겠지. 하지만 정보에 의하면 우산 길드에서는 이번에 업데이트되는 시스템을 이용해 길드를 크게 만들 생각인 모양이더구나."
"정말요? 우산 길드 녀석, 이런 걸로 길드를 키우려고 하다니. 아, 그런데 한 사람당 병사들이나 용병의 고용 제한이 있지 않나요?"
"한 사람당 10명이다."
"생각보다 많은데요?"
파티의 단위가 최소 5명. 거기에 병사들을 이끌고 움직인다면 50명이라는 숫자로 확 늘어난다.
"그렇지. 그래서 우리도 이번에 업데이트가 된다면 생각을 해볼까 한다."
"음, 우산 길드를 염두에 두고 진행하시는 건가요?"
"당연하지. 놈들이 우리 해태 길드를 향해 이를 갈고 있는데, 우리도 대비를 해야지."
안서진은 우산 길드와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이런 업데이트가 되면 가만히 있을 녀석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놈의 밴댕이 소갈딱지는 내가 직접 안 만나 봐도 눈에 훤히 보이는데 어쩌겠냐."
"하하하!"
희성은 스승님 때문에 유쾌하게 웃었다. 사실 우산 길드의 길드마스터가 속이 좁은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가끔 뒤에서 남 호박씨 까는 게 즐거울 때가 있다.
"어찌 되었든 그놈 길드에서 공격해올지도 모르니 준비는 해놓을 생각이다."
"네, 스승님. 그럼 저는 습사나 좀 하다가 가겠습니다."
"그래라."
희성은 사무실에서 나오더니 활과 화살을 챙겼다. 오랜만에 활을 만지는 거라서 그런지 손에 전해지는 감각이 짜릿하게 느껴졌다.
"후, 한번 당겨 볼까?"
끼이익!
활이 힘차게 당겨지면서 잠시 조준하더니 저 멀리 있는 과녁을 향해 화살이 날아갔다.
그렇게 연이어 열 번을 쏜 후에 결과를 확인했다. 딱 1개만 정중앙에서 약간 멀어지고, 나머지는 모두 완벽하게 꽂혔다.
"다행히 감각이 죽지는 않았네."
희성은 감각이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활터를 나왔다. 어서 게임에 접속해서 지금 흑마법사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 * *
집에 돌아와서 바로 게임에 접속한 범려는 루이를 불렀다.
"루이, 당장 쥐들을 불러서 지금 흑마법사들이 뭐 하고 있는지 확인해봐."
"알겠습니다, 주인님."
루이를 시켜서 흑마법사들의 군영을 확인했지만 언데드 병사들이 1천 명 정도 줄어든 것 외에는 별다른 점이 없었다.
"또 성을 공략하다가 깨졌나 보군."
확실히 마법사들이 방어를 잘해서 그런지 흑마법사들은 이제 상대적으로 지쳐 있었다.
"아직 취선이 오지 않았군."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상관은 없지만 이제 마법사들이 탑 바깥으로 나와 흑마법사들을 공격하려 할 것이다.
"형님!"
"어, 빨리 왔구나."
취선이 오자 이제 범려가 해야 할 일은 전투 외에 없었다. 나머지는 로즈와 헬렌이 마법사들과 같이 탑 바깥으로 나오는 일뿐이었다.
"루이! 마탑에 쥐들을 보내서 거기 마법사들이 성문을 열고 나오게 되면 바로 알려 줘."
"네."
루이는 범려의 말대로 이행했고, 범려는 해골 군대를 이끌고 몰래 흑마법사들의 군영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몸을 숨긴 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1시간쯤 지나자 언데드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3만이라는 언데드 병력이 전부 다 움직이자 루이가 정찰을 보냈던 쥐가 돌아왔다.
"주인님, 마법사들이 탑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좋아, 두 군대가 전투를 벌이게 되면 바로 작전을 실행에 옮긴다."
"예, 장군님."
마법사들과 흑마법사들의 군대가 서로 싸움을 시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워낙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싸운다. 군영을 불 지르러 가자."
해골 병사들을 이끌고 흑마법사들의 군영으로 온 범려는 바로 군영을 짓밟고 불 지르며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화르르!
군영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범려의 행위를 막아서지 못했다.
군영을 불태우는 연기가 하늘로 치솟자 마법사들과 그들의 골렘과 한창 싸우고 있던 흑마법사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그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큰일 났습니다, 탑주님!"
"무슨 일이냐?"
"저길 보십시오. 저희의 군영이 불타고 있습니다."
"아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던 군영이 불타는 모습을 보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곳에 있는 보급품들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닌데, 그것이 모조리 타고 있는 것이다.
"당장 가서 군영의 불을 끄고 와라!"
"지금은 마법사들과 전투 중이라 뒤로 발을 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젠장! 꼼짝없이 당하다니!"
아스타우스는 이를 갈며 눈앞에 있는 마법사들을 노려봤다.
"이놈의 마법사들이 꾸민 짓이구나. 어쩐지 탑 안에서 꼼짝도 안 하던 것들이 몸소 바깥으로 나온다 했더니, 이런 짓을 꾸미다니!"
아스타우스는 마법사들이 일을 꾸몄다고 오해했지만, 군영을 불태운 건 범려가 저지른 일이었다. 괜히 엉뚱한 마법사들만 오해를 산 것이다.
"마법사들을 쓸어버려라. 단 한 놈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분노가 극에 달한 아스타우스는 지금 이 싸움으로 모든 걸 끝낼 속셈이었다. 군영이 불타버렸으니 적들을 모조리 없애버려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마법사들을 죽여라!"
흑마법사들과 데스나이트들이 마법사들을 죽이라고 외치자 골렘들이 마법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 육중한 몸을 움직여 언데드 군대를 막았다.
"골렘을 쓰러트려라!"
흑마법사들이 눈앞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신경을 쓰고 있을 때, 범려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해골 병사들이여, 지금이다! 적들이 마법사들을 신경 쓰고 있을 때 공격하라!"
해골 병사들은 적들을 부숴버리겠다는 의지로 맹렬히 돌진했다.
"아르테미스의 손길! 상혼의 힘!"
범려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버프를 시전하며 앞으로 튀어나가자 가장 먼저 적들의 표적이 되었다.
"날 때려라, 이것들아. 그래야 격노가 발동하지!"
일부러 격노를 발동하기 위해 몸을 들이밀자 데스나이트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범려를 검으로 내리찍었다.
"크억!"
한 번에 30퍼센트의 생명력이 빠지는 공격을 받고 연이어 두 번째 공격을 맞자 바로 격노가 터졌다.
"크아아앙-!"
대기를 진동시키는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해골 병사들의 눈에 붉은빛이 떠올랐다.
"공격하라!"
맹렬한 공격을 펼치는 병사들은 제대로 대비를 못하고 있던 흑마법사들의 군대에 치명적인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병력이 범려의 군대를 막기 위해 나오기는 했지만 상대의 반응을 본 범려가 해골 마법사들마저 불렀다.
"마법을 날려라!"
해골 마법사들은 거침없이 마법을 시전했다.
처음 발현된 마법은 일루전 웨이브였다.
구름으로 빚어진 환상의 용이 지상으로 온몸을 처박을 때의 충격은 굉장했다.
"다크 실드를 펼쳐라!"
해골 마법사들의 마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흑마법사들이 다급하게 다크 실드를 펼쳤지만 그걸 보고 가만히 있을 마법사들이 아니었다.
"흑마법사들의 마법을 디스펠로 막아라!"
상대의 마법을 해제, 혹은 빈약하게 만드는 디스펠은 흑마법사들에게는 별로 반갑지 않은 마법이었다.
"헉! 실드가 벗겨……."
"블리자드!"
휘이이잉!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날카로운 얼음송곳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하자 일부 흑마법사들이 마법사들을 향해 마법을 펼쳤다.
"마나 번!"
"크억!"
마법사들에게 디스펠이 있다면 흑마법사들에게는 마나 번이라는 마법 취소와 동시에 마나를 태워 고통을 줄 수 있는 마법이 있었다.
"홀리 어벤저를 사용해라!"
마법사와 흑마법사가 서로의 마법을 견제하고 있을 때, 범려는 거리낌 없이 고대 마법과 블리자드를 써주며 언데드 군대를 부수느라 바빴다.
"우헤헤헤, 역시 뒤통수치는 것은 재미있단 말이야."
범려는 허무하게 당하고 있는 저들을 보며 볼링공으로 볼링 핀을 쓰러트리는 듯한 짜릿한 감각을 느꼈다.
"이런! 내가 직접 녀석을 상대하겠다. 너희는 데스나이트를 도와 마법사들을 처리해라!"
아스타우스가 직접 일부의 병사들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허! 적의 수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너도 바보구나."
지휘관은 나설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데, 이놈은 그런 걸 몰랐다.
"흥! 내 힘을 보여 주마. 이놈!"
"웃기고 있네."
범려는 녀석이 마법을 쓰기 전에 재빨리 활을 당겨 화살을 한 대 먹여 줬다.
"크억!"
"어디 한번 마법을 부려 보시지."
범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화살이 또 날아갔다. 근처에 있던 언데드 병사들이 범려를 잡으려고 달려들었지만 범려의 병사들도 덩달아 그걸 막기 위해 나섰다.
"어디 내 화살 맛이 어떤지 계속 맞아봐라."
"다크 실드!"
아스타우스는 재빨리 마법을 펼쳐 화살을 막기는 했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르테미스!"
범려의 뒤에서 갑자기 아르테미스가 소환되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소환 완료됐어요, 범려 님."
발리스타와 투석기를 소환한 아르테미스는 바로 사라져 버렸다.
"왠지 내 생각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 같군. 뭐, 좋아. 얘들아, 발리스타로 저기 보이는 탑주를 공격해라!"
몇몇 해골들이 재빨리 발리스타가 있는 곳으로 가더니 창을 장전하고 잠시 조준한 뒤 그대로 쏴버렸다.
6대의 발리스타가 동시에 발사됐지만 그 실드를 깨지는 못했다.
"실드가 깨질 때까지 계속해!"
"하하하, 소용없다. 내가 괜히 흑마탑의 탑주가 아니다! 썬더 브레이크!"
해골들을 향해 마법이 작렬하자 몇몇 해골들이 그 마법에 휩쓸렸지만 마법 저항이 높아서인지 그리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아니, 내 썬더 브레이크를 맞고도 멀쩡하다니!"
"미안한데 저놈들은 마법 저항이 좀 세거든."
정령의 뼈에 속성 20퍼센트 저항, 버프로 20퍼센트 저항, 순백의 오라로 10퍼센트 저항이니 엄청난 양의 마법 데미지를 감소시킨 것이다.
"후후후, 어때? 계속 마법을 써봐라."
범려의 말처럼 다음 마법을 시전하려고 캐스팅을 하는데, 아스타우스가 펼친 다크 실드에 금이 쫙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헉! 벌써!"
드워프들의 미래 기술로 만들어진 최신 발리스타였다. 과거의 마법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미래의 기술을 무시할 순 없었다.
"다시 마법을 펼치셔야 할 것 같은데. 후후후."
"다크 실드!"
금 가버린 다크 실드가 복구되면서 더욱 단단해졌지만 그것도 잠시, 발리스타의 장전 속도가 빨라지며 다크 실드를 빠른 속도로 깨려고 했다.
"하하하, 마법 캐스팅할 시간이 부족하지 않아?"
범려가 캐스팅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순간, 마법이 하나 날아왔다.
"파이어볼!"
"흩어져!"
해골들은 마법이 날아오는 궤도를 보고 그 자리를 교묘히 피하더니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어떻게 마법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피할 수 있지?"
"후후후, 내 해골들은 당신네 것들이랑 아주 많이 다르거든."
범려와 탑주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 해골 부장들은 열심히 병사들을 지휘하며 주변의 언데드 병사들을 깨부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 주변에 있던 병사들 다 어디 갔나?"
"헉! 병사들이……."
발리스타와 범려만을 신경 쓰는 동안,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사라져 있었다.
"후후후, 이제 넌 죽은 목숨이야."
범려는 아스타우스를 비웃으며 해골 병사들에게 녀석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쳐라!"
해골들이 일제히 공격을 퍼붓자 아스타우스는 우습다는 듯이 다시 다크 실드를 펼쳤다.
"젠장! 저 마법은 쿨 타임도 없나, 왜 이렇게 계속 써대는 거야?"
범려는 녀석의 생명력을 단 1도 떨어트리지 못하자 약간 짜증이 났다. 여기서 시간을 좀 더 지체하면 흑마법사들이나 데스나이트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탑주를 구하러 올 것이다.
"시간이 조금 촉박한데."
아무리 격노를 터트린 상태라고 해도 흑마탑의 탑주인 아스타우스의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후후후, 넌 날 한시라도 빨리 죽이고 싶은 모양이지만 어림없다. 내가 이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나의 부하들이 너희를 죽이기 위해 병사들을 끌고 올 것이다."
"쳇! 생각보다 머리가 좋군."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아스타우스가 여전히 다크 실드를 무한정 펼치며 시간을 벌고 있는 사이, 진짜로 흑마법사들이 데스나이트와 함께 병력을 이끌고 왔다.
"탑주님을 구하라!"
"적들을 공격하라!"
"쳇! 일단 뒤로 물러난다. 아르테미스!"
"네, 부르셨어요."
범려는 아르테미스를 불러 공성 병기를 영혼의 세계로 돌려보내고 해골 병사들을 후퇴시켰다.
병사들이 후퇴하자 추격해오려던 언데드 군대가 추격을 멈추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후후후, 마법사들이 너무 잘 싸워주고 있어서 흑마법사들이 감히 병력을 이끌고 우리를 추격해올 생각도 못한다니까.'
범려는 이런 점을 이용해 멀리 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흑마법사들을 노려봤다.
"클클클, 이대로 우리가 지켜만 보고 있어도 녀석들은 함부로 등을 보이지 못하지."
범려가 다시 공격해올까 봐 걱정이 되는지 대략 2천 정도의 언데드 병사들이 뒤로 빠져나와 범려의 군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후, 함정에 빠진 병력이 벌써 2천 정도가 되는 건가?"
손가락 하나도 까딱 못하는 군대가 생겼으니 흑마법사들에겐 골칫거리도 이런 골칫거리가 없을 것이다.
"이제 살짝만 더 괴롭혀 줄까?"
범려는 해골들에게 일러 투석기에 쓸 바위들을 모아오라고 지시했다. 물론 병력이 많이 빠져나가면 안 되니 일부만 활용했다.
"어디 눈앞에서 언데드 병사들이 작살나는 꼴을 보여 주마."
범려가 바위를 모으고 있는 동안, 헬렌과 로즈는 미친 듯이 마법을 쓰면서 전투를 즐기고 있었다.
"파이어볼!"
"힐! 힐!"
전투 전방에서의 치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순간만 정신을 다른 곳에다 팔아도 그대로 시체가 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골렘들은 언데드 병사들을 막아라! 마법사들은 골렘들을 도와 적을 무찔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