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61화 (61/80)

제1장. 흑마법사들의 약속

우르릉.

주변의 대기가 울리면서 하늘 위에 생긴 마법진 안에서 무언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쉬이익! 쉬이익!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것은 운석으로 그 지름은 대략 2미터 정도였다. 하지만 그 운석들이 수십 개가 떨어지니 이건 하늘의 재앙 그 자체였다.

"역시 대마법사……."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가진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근데 저 나이 든 노인이 어떻게 20대 청년으로 탈바꿈된 거지?'

범려가 제일 궁금한 것은 이 부분이었다. 다른 일행들도 이와 같은 의문을 품었다.

"다크 실드를 펼쳐라!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실드를 유지하며 뒤로 물러나라!"

흑마법사들은 다급하게 실드를 펼치며 병사들을 후퇴시켰지만, 마고스가 보여 준 마법의 위력은 겨우 흑마법사들의 다크 실드 따위에 막히는 마법이 아니다.

챙그랑!

다크 실드가 유리 깨지듯이 박살나버리자 실드에 보호를 받았던 언데드 병사들은 그대로 마법 공격을 당하고 말았다.

"병사들이여! 공격하라!"

범려의 공격 명령에 병사들은 일제히 언데드 병사들을 향해 돌격했다.

"다 쓸어버리자!"

메테오 스톰에 엄청난 피해를 입은 언데드 병사들은 범려 군대의 기습적인 공격에 제대로 된 방어 한 번 못해보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흑마법사들은 언데드 병사들을 이끌고 골짜기를 빠져나왔지만 수천의 병력을 잃었고 남은 병사들은 겨우 5천에 불과했다.

"오랜만에 마법을 날렸더니 개운한데."

청년이 된 마고스는 가볍게 몸을 풀더니 느긋하게 걸어서 산 아래로 내려갔다.

"적들을 한 놈도 놓치지 마라!"

"탑으로 후퇴한다!"

마고스의 마법 단 한 방으로 전세가 역전되고, 수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놓인 언데드 군대가 꽁무니가 빠지도록 도망치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후후후, 아무리 언데드라고 해도 오랜 시간과 돈을 투자한 병사. 이런 전투에서 그런 병사들을 잃고 싶지는 않겠지."

범려는 언데드 군대를 추격하면서 상당수의 언데드를 부숴버렸다.

추격 중에 적을 제일 많이 죽인 해골 병사가 있다면 그건 해골 대마법사였다. 그는 말을 타고 이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이용해 말 위에서 캐스팅을 하면서 마법으로 적을 학살했다.

"쳇, 탑으로 들어가 버렸군."

결국 탑까지 후퇴한 흑마법사들은 농성에 들어갔고 범려는 한발 물러섰다.

"이 이상 공격은 무의미하다. 후퇴하자."

흑마법사들의 병력은 마고스의 마법 한 방에 1만에서 5천으로 줄어들고 거기서 추격을 당해 다시 2천의 병력이 사라지고 말았다.

남은 병력은 이제 3천. 범려의 해골 군대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병력이 되었다.

"그런데 저 성을 어떻게 뚫지?"

제일 큰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적을 포위하기에는 흑마법사들 때문에 너무 위험하고 그렇다고 한곳에 자리를 잡고 있자니 적의 화력이 집중된다.

"마법사들이 저 탑을 공격하면 좋은데, 마법 방어진이 설치되어 있어서 마법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없고……."

이렇게 따지면 범려에게 남은 방법은 별로 없다.

"루이! 당장 저 마탑으로 쥐들을 보내서 개구멍을 찾아라."

"네."

범려는 여기에선 몰래 안으로 침투해 기습 작전을 펼치는 방법이 제일 확실하리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루이가 쥐들을 통해 알아온 결과, 탑 주변에는 해골들이나 다른 것들이 몰래 들어갈 곳이 없어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혹 지하 수로를 찾아보라고도 했지만, 탑에서는 의외로 물을 마법으로 정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어서 지하수로가 아닌 정화조가 존재하고 있었다.

"쳇, 철옹성이 따로 없네."

범려는 개구멍을 버리고 다른 쪽으로 생각을 했다.

"음, 어떻게 한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젊어진 마고스가 찾아왔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는가?"

"헛!"

범려는 헛바람을 삼키며 놀랐다. 청년이 된 마고스의 모습을 보고 제대로 적응이 되지 않은 것이다.

"허허허, 이 모습을 보고 놀란 모양이군. 무리도 아니지. 자네는 마법을 배우는 자가 아니니 모를 거야. 마법은 그 힘이 신비하고 오묘해서 인간의 노화조차 마음대로 하고 말지."

"그럼 마음대로 모습을 늙었다 젊었다 만들 수 있는 겁니까?"

"뭐,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되지."

범려는 마고스의 인간의 자연스런 노화조차 마음대로 바꾸는 경지에 무척 신기해했다.

"그런데 지금 고민거리가 뭔가?"

"저거예요. 탑을 공격해야 하는데 워낙 견고한 철옹성이라서."

"음, 마탑을 공격할 거라면 나 역시도 힘든 부분이지. 오랜 시간을 들여서 만든 마법 방어진과 저 높은 성벽, 마지막으로 수많은 마법사들 등 어디 하나 두렵지 않은 것이 없지."

마고스도 마탑을 공격하는 것은 껄끄러웠다.

범려도 그런 위험성을 알고 있지만 퀘스트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좋은 방법 없을까요?"

"글쎄, 저 흑마법사들이 나를 잡기 위해 공격해온 적은 있어도 내가 저놈들을 공격한 적은 없어서 말이지."

마고스는 편하게 생각했다. 비록 저들과 원한은 있을망정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 원한에 대한 미련은 그리 깊지 않았다.

"그럼 저 혼자 생각하는 게 낫겠네요."

"좋은 생각이 나거든 나에게 말해주게. 내가 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도와주지."

그래도 범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비친 마고스는 조용히 한쪽 구석에 앉아서 해골 대마법사들을 불러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형님, 어떻게 하죠? 하늘로 날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땅속으로 파고들어갈 수도 없고."

"땅속?"

범려는 취선의 말에 머리에서 번쩍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하하, 그래. 바로 땅, 땅이었어."

범려는 당장 마고스에게 달려가 방금 생각난 계획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마고스는 그 계획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충분히 가능해. 어느 누구도 그런 계획을 세운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럼 대마법사들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실 수도 있습니까?"

"그런 간단한 마법을 가르치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지."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말게나."

범려는 마고스의 대답에 뛸 듯이 기뻤다. 현존하는 최고의 대마법사가 마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그렇다면 마법사들은 날 따라오게."

해골 마법사들과 대마법사들은 마고스를 따라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저놈들을 감시하는 것뿐이군. 루이!"

"네, 주인님."

범려는 루이를 부르더니 마탑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한마디 했다.

"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라. 혹 군사 작전에 관해서라면 즉각 나에게 알려라."

"네."

루이는 금방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쥐들을 모아 탑을 향해 움직였다.

"부장, 병사들을 데려와라. 이번 작전을 위한 훈련을 해야겠다."

범려는 이번 전투를 완전한 승리로 이끌기 위해 해골 병사들을 데리고 훈련을 시작했다.

"빨리빨리 움직여! 흑마법사들의 군대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더 빠르게 움직여라! 마법과 그 위험한 데스나이트들이 돌아다니는 전투다! 한 번의 실수는 그대로 목숨을 잃는다!"

해골 병사들은 범려의 지시에 즉각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했다.

특히 부장들은 해골 병사들과 범려의 지휘를 좀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존재이기에 범려의 명령에 해골 병사들이 점점 정예 병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해골 마법사, 대마법사들이 마법 디그를 익혔습니다.

-해골 마법사, 대마법사들이 마법 매직 랜드 마인을 익혔습니다.

-디그

일정 지역의 땅을 파헤치는 마법으로, 시전자의 지능과 정신력 수준에 의해 그 깊이와 넓이가 결정된다.

쿨 타임:5분, 마나 소비:500, 지속 시간:30분

-매직 랜드 마인

땅속에 마법으로 만들어진 지뢰를 잠재워두고 적군이 밟았을 경우에 폭발을 일으키며 터진다. 그 폭발 범위 안에 아군이 들어 있을 경우에도 피해를 입는다.

쿨 타임:10분, 마나 소비:800, 지속 시간:24시간

"마법을 빨리도 배웠네."

범려는 마법사들이 마법을 배우자 빙그레 웃으면서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제 실행에 옮길 일만 남았군."

마법사들이 돌아오자 범려는 가장 먼저 어디가 싸움터로 적당한지 파악했다.

"동쪽 성문이 좋겠어."

동쪽은 여러 갈래로 길이 있어서 후퇴하여 반격을 가하기에 딱 좋은 위치였다.

"여기에 매직 랜드 마인을 설치하면 되겠군. 그리고 녀석들을 바깥으로 나오게 하려면 마고스가 어디론가 가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해."

적들은 대마법사 마고스 때문에 쉽사리 다가오지 않고 탑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아마 마고스가 어디론가 가버린다면 범려의 군대가 힘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다시 기어 나올 것이다.

"영감님!"

범려는 마고스를 부르면서 달려갔다. 하지만 청년이 된 마고스는 영감님 소리를 듣더니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보게, 영감님 소리는 이제 그만 하게. 내가 젊어졌는데 영감님이라니 듣기 거북하군."

"그럼 뭐라고 불러드리면 될까요?"

"마고스 님이라고 하게."

"그럼 마고스 님,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말하게."

"저, 내일 정오에 동문을 거쳐서 이곳을 벗어나 주십시오. 그것도 늙은이로 변한 후 느긋하게 걸어가 주십시오."

지금 범려가 마고스에게 하는 부탁은 상당히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편하게 마법으로 날아가면 되는 것을 일부러 걸어서 가라는 것이다.

"무슨 이유가 있군. 그렇게 하지."

마고스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범려의 말대로 정확히 시간을 맞추어서 대낮에 마탑의 동문을 거쳐 느긋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 줬다.

"아니, 저건 누구지?"

"마고스야. 저 봐, 저 얼굴."

탑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흑마법사들은 지금 늙은이 모습을 하고 있는 마고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마고스는 탑 주변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일부러 늙은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상황을 당장 탑주님에게 보고해야 돼."

탑에서 바깥 상황을 지켜보던 흑마법사들은 다급하게 움직였다.

* * *

한편, 마탑의 주인인 아스타우스는 자신의 방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메테오 스톰, 그건 분명 마고스의 마법이야. 놈의 진영에 마고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꼼짝 없이 이 탑에 갇혀 있어야 하는데……."

아스타우스가 고민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 탑주가 있는 집무실로 황급히 달려오는 흑마법사가 있었다.

"탑주님! 마, 마고스가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마고스가 저택으로 돌아가다니."

"바, 방금 대마법사 마고스가 혼자서 동문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흑마법사가 숨을 거칠게 쉬면서 말하자 탑주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제 우리를 공격했던 해골 군대가 어디에 주둔해 있는지 확인해라."

"알겠습니다, 탑주님."

범려의 군대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라는 탑주의 명령에 흑마법사는 20분 후에 다시 탑주에게 왔다.

"동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좋아. 오늘 밤 녀석들을 공격한다."

"네, 탑주님."

흑마법사가 물러나자 아스타우스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마법사들과 싸울 때는 뒤통수를 치고 이번에는 마고스를 이용해 마법으로 우리를 괴롭혔겠다. 이젠 네놈이 당할 차례다."

* * *

이때 범려는 해골들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매직 랜드 마인을 매설해놓았다. 쿨 타임이 돌아오면 마법사들을 이용해 한 번에 설치를 했다.

"이제 녀석들이 여기에 오면 발바닥이 조금 뜨거워지겠지?"

매직 랜드 마인의 위력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녀석들의 생명력 10퍼센트를 없애줄 만큼의 위력을 보여 줄 것이라 생각했다.

"흑마법사들이 마고스가 저택으로 돌아간 것을 확인했을 테니 지금쯤 공격해와야 정상인데 안 오네."

범려는 예상대로라면 마고스가 저택에 들어간 순간 쳐들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오지 않자 다른 생각을 했다.

"저녁에 공격하겠다는 건가? 바보 같은 놈이군. 마고스가 사라졌으면 상대가 그에 대한 방비를 하기 전에 쳐들어와야지. 쯧쯧쯧."

범려는 마탑의 흑마법사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찼다.

적의 핵심 인물이 사라진 걸 확인하면 바로 달려와 적이 그걸 대처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 먼저다. 혹 오지 않더라도 적을 포위하려는 시도는 해야 한다.

"뭐, 덕분에 내가 준비할 시간이 늘어났지만."

범려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느긋하게 적들을 기다렸다.

캄캄한 밤, 마탑의 서문이 열리면서 흑마법사들이 이끄는 언데드 군대가 몰래 빠져나왔다.

찍찍!

그때, 언데드 군대가 야밤을 틈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쥐 한 마리가 황급히 몸을 움직이더니 어디론가 달려갔다.

"시간이 없다. 녀석들의 뒤를 치려면 빨리 움직여야 한다."

"예."

데스나이트들이 대답하면서 병사들을 재빨리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범려는 쥐들을 통해 이미 그 정보를 확인한 상태였다.

"후후후, 녀석들이 온다고?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 대마법사!"

범려는 대마법사 한 명을 부르더니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녀석들이 오기 27분 전에 디그를 이용해 지뢰를 설치한 지점에 땅을 가라앉혀라."

"예, 장군님."

구덩이를 파는 디그는 실질적으로 별로 좋은 마법이 아니다. 그냥 잠시 땅에 구멍을 내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명령이 떨어진 이상 마법사들은 불평불만 없이 그대로 명령을 이행했다.

쿠르르.

적이 도착하기 27분 전에 곳곳에서 땅이 꺼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정확히 매직 랜드 마인이 설치된 지점의 땅이 꺼졌다.

"장군님, 지시대로 일을 끝마쳤습니다."

"땅의 깊이와 폭은 어느 정도지?"

"깊이는 성인 남성 하나가 들어갈 정도이고 그 폭은 사람 허벅지가 겨우 들어가는 수준입니다."

"좋아. 그 정도면 녀석들이 이 안쪽으로 들어오기에 불편함이 없겠지."

범려는 모든 준비가 완료된 걸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장, 병사들을 집결시켜라. 불꽃놀이를 시작할 시간이다."

"예!"

해골 부장이 범려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 사이 저 멀리서 언데드 군대가 은밀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적들이 저기 있다. 소리를 죽여라."

언데드 군대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은 이미 루이를 통해서 정보를 시시각각 입수하고 있었다.

'빨리 좀 오지. 들키지 않으려고 천천히 오네.'

범려는 언데드 군대가 다가오는 속도가 답답했다. 곧 있으면 땅속에 숨겨 놓은 매직 랜드 마인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돌격!"

"크앙!"

언데드 군대가 갑자기 음험한 소리를 지르면서 몰려오자 범려는 미소를 지으며 병사들에게 외쳤다.

"뒤로 물러나자!"

범려의 군대는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그걸 본 흑마법사들은 더 크게 소리쳤다.

"적들이 물러난다!"

"으헉!"

말을 타고 달리던 데스나이트들이 땅바닥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에 말 다리가 빠지는 바람에 넘어지자 그 주변에 있던 언데드 병사들도 같이 넘어졌다.

"크억!"

"헉!"

언데드 병사들뿐만 아니라 흑마법사들도 발이 빠져서 잠시 동안 허우적거렸다.

"하하하, 우리가 쳐놓은 함정에 아주 잘 걸려드는구나!"

"이런!"

흑마법사들은 다급하게 몸을 추스르고 그곳을 빠져나와 재빨리 병사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그사이 범려는 속으로 초를 세고 있었다.

'10, 9, 8, 7… 2, 1, 0.'

씨익.

범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동안 땅속에 숨어 있던 매직 랜드 마인이 드디어 지상으로 올라왔다.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콰쾅! 쾅!

매직 랜드 마인이 동시에 터지면서 그 안에 있던 언데드 병사들이나 흑마법사들이 정신없이 타격을 입었다.

"크악!"

흑마법사들은 비명을 질렀고 언데드들은 비명 대신 몸의 뼈가 부서지는 충격을 받았다.

범려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화력이 나온 것이다.

"헉! 어떻게 이런 일이!"

아직 지뢰를 밟지 않은 흑마법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단숨에 대략 1천의 병사들이 피해를 입고 일부는 다리뼈가 박살나서 제대로 된 전투가 불가능한 언데드들이 있었다.

"돌격!"

범려의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해골들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맹렬한 속도로 달려드는 해골 병사들은 적군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것들은 작살이 나면서 아무런 마력도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뼛조각으로 변해버렸다.

"뭣들 하나! 반격을 해야지! 언제까지 넋 놓고 있을 테냐!"

이번 전투에 나온 아스타우스는 흑마법사들에게 외치면서 전선을 지휘하라고 명령한 후 다급하게 움직였다.

"진형을 갖춰라. 더 이상 언데드 병사들을 잃으면 우리는 끝이다!"

"일루전 웨이브를 준비하라!"

범려가 마법을 쓰라고 명령하자, 모든 해골 마법사들과 대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캐스팅했다.

잠시 후 마법사들의 캐스팅이 끝나자, 하늘에서 거대한 용 수십 마리가 튀어나오더니 언데드 군대를 향해 돌진했다.

쾅! 쾅! 쾅!

어떻게 보면 메테오 스톰보다 더 심각한 마법으로 보일 정도였다.

"크악!"

"살려 줘!"

흑마법사들은 다크 실드를 펼쳐 가며 버텼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수십 번이나 환영으로 만들어진 드래곤 폭격은 그런 의지마저도 꺾어버렸다.

"홀리 어벤저!"

범려는 지휘를 하는 도중에도 계속 마법사에게 무슨 마법을 펼쳐야 하는지 지시를 내려 주었다. 이에 마법들이 쭉쭉 터지면서 수천의 언데드 군대의 생명력을 뭉텅뭉텅 잘라내 버렸다.

"물러나라! 후퇴한다!"

"누구 마음대로!"

범려는 흑마법사들이 후퇴를 하려고 하자 병사들을 이끌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단 한 놈도 놓쳐서는 안 된다!"

범려의 명령에 해골 병사들이 후퇴하는 언데드 군대를 추격하면서 계속 죽이자, 흑마법사는 여기서 물러나면 끝이라고 생각했는지 결판을 지으려 했다.

"이익!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흑마법사들은 최소한 적 하나라도 지옥으로 끌고 가자는 심산으로 언데드 병사들을 앞으로 내몰았다.

"그런 수법은 시작할 때부터 썼어야지!"

언데드 병사들의 생명력이 그리 많지 않은 상태에서의 물귀신 전법은 별로 의미가 없다.

"블리자드!"

대마법사들이 마법을 펼치자 하늘에서 서슬 퍼런 얼음 덩어리들이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없는 생명력에 이런 마법 공격을 당하니 언데드 병사들 중에서 몇몇이 그대로 부서졌다.

"하하, 이제 시작이다!"

몇몇이 부서졌다는 것은 그 주변에 있는 것들도 이미 생명력이 거의 바닥이라는 소리다. 범려는 그걸 눈치 채고 큰 소리로 웃은 것이다.

"크윽!"

흑마법사들은 물귀신처럼 범려의 군대를 물고 늘어지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언데드 병사들의 생명력이 너무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이대로 끝인 건가……."

흑마법사들은 언데드 병사들이 범려의 군대 손에 의해서 부서지는 걸 보자 전투를 포기하고 말았다.

"흑마법사들을 생포하라!"

휘리릭!

망구다이들이 곧장 올가미를 던지면서 흑마법사들을 낚아채버렸고, 그들은 언데드 병사들이 없다 보니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그대로 잡혔다.

"크윽, 이럴 수가."

흑마법사들의 눈에는 절망이 가득 차 있었다.

"부장, 흑마법사들 얼마나 잡았지?"

"다 합쳐서 500명입니다."

범려는 포로로 생포한 흑마법사들의 숫자를 보면서 두 눈을 크게 떴다.

"뭐가 그렇게 많아. 이놈들의 탑주인가 하는 두목은 어디 있냐?"

"흑탑주는 탑으로 도망친 모양입니다."

"음, 그럼 탑을 공격해야겠군."

이미 언데드 군대는 사라졌다. 포로들은 따로 처분을 하면 되지만 탑주가 남아 있는 이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일단 포로들을 마고스에게 데려가자. 흑마법사들이 마법을 쓰지 못하게 철저히 감시하고 마법을 쓰려는 행동이 보이면 가차 없이 목을 쳐라."

"예! 장군님."

해골 부장은 해골들에게 명령을 내리더니 그 많은 흑마법사들을 철저히 감시했다.

해골들은 흑마법사들에게 그 어떤 대화도 용납하지 않았고, 혹 의심스러운 짓을 하면 가차 없이 무기를 꺼내 위협했다.

* * *

범려의 군대가 마고스의 저택으로 돌아오자 마고스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하하하, 여기로 돌아온 것을 보니 흑마법사들을 잡은 모양이군."

"이거 너무 잘 아시니까 제가 할 말이 없는데요."

"후후후, 나이가 들면 그 정도의 예지력은 가지게 되지. 물론 나한테 온 이유는 흑마법사들의 마력을 봉인해달라는 소리겠지."

"물론입니다."

범려는 즉각 대답한 후 뒤에 대기하고 있던 포로들을 앞으로 데려오라고 했다.

흑마법사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질질 끌려오더니 마고스 앞에서 모두 무릎을 꿇리고 말았다.

"허허허, 겨우 병사 2천 조금 넘는 병력을 가지고 이 무시무시한 흑마법사들을 생포하다니 무섭군, 무서워."

마고스는 자신이 아무리 대마법사라고 해도 이들을 이렇게 생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고스 님, 어서 이들의 마력을 봉인해주세요."

"알았네. 그거야 쉽지."

마고스가 손을 뻗자 500명의 흑마법사들 마력이 단숨에 봉인돼버렸다.

"다 됐네. 이제 흑마법사들은 내가 봉인을 풀어주지 않는 이상 마력을 쓸 수 없다네."

"그럼 이들을 이곳에 맡겨 놔도 문제가 없겠죠?"

범려의 말에 마고스는 흑마법사들을 보면서 곤란하다는 듯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무리 마력을 봉인했다고 하지만 이들은 너무 많지 않은가. 더군다나 이 늙은이에게 너무 과중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나?"

"노화조차 스스로 조절이 가능하신 분이 겨우 아무 힘도 못 쓰는 흑마법사들에게 당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허허, 이런……."

마고스가 낭패를 보았다는 얼굴 표정을 짓자 근처에 있던 헬렌이 그의 옆으로 왔다.

"내가 옆에 있을게."

"헬렌 누나가? 이 많은 사람을 다루려면 힘들 텐데."

"괜찮아. 취선이랑 같이 하면 되니까."

"엥? 헬렌 누나, 왜 저를 끌어들여요."

취선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헬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끌어들였다.

"그럼 나 혼자 이걸 하란 말이야!"

헬렌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취선을 노려보았다. 그 살기 가득한 눈빛을 받은 취선은 몸을 한 번 움찔거리더니 투덜투덜하며 헬렌에게 다가갔다.

"쳇, 내가 왜 이걸 해야 돼."

"야! 너 나한테 한 대 맞고 싶냐!"

"아니요……."

결국 취선은 헬렌의 살기 어린 표정에 꼬리를 말며 흑마법사들을 감시하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럼 마탑을 공격하러 가자!"

"자기야, 같이 가!"

로즈는 범려가 가버리자 얼른 뒤따라갔다.

해골 군대를 이끌고 탑 앞에 도착하자 아니나 다를까, 아스타우스가 성벽 위에서 범려를 노려보고 있었다.

"흑마탑을 부숴버리기 전에 항복해라!"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누가 이 탑을 부순단 말이냐!"

"이 범려가 탑을 박살낼 거다! 그러니 탑을 부수기 전에 항복해라!"

"흥! 해골들을 믿고 설치나 본데 어림도 없다. 그깟 해골들 내가 다 박살내주마!"

아스타우스는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면서 외쳤지만 범려는 그 말을 듣고 비웃었다.

"하하하! 꼴값을 떠는구나. 먼저 성벽을 부숴주마!"

범려는 당장 아르테미스를 부르더니 공성 병기 소환을 요청했다.

아르테미스는 공성 병기들을 모두 소환한 후 다시 영혼의 세계로 돌아가 버렸다.

"하하하, 고작 그것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거냐!"

아스타우스는 비웃었지만 범려는 그걸 무시하고, 발리스타와 투석기를 사용할 해골들을 남겨 두고는 나머지 병사들에게 저 성벽을 부술 만한 단단한 바위를 구해오라고 지시했다.

해골들은 범려의 명령대로 바위를 구해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바위들이 서너 개 정도 보이더니 5시간이 지났을 때는 그 숫자가 상당했다.

"탑주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바위를 저만큼 모았다면 이 정도 성벽은 저걸 다 쓰기도 전에 박살이 날 겁니다."

"날아오는 바위를 마법으로 박살내면 되는데 무슨 걱정이야. 투석기도 겨우 두 개밖에 없어. 긴장하지 마."

탑에 남아 있는 마법사라고 해봐야 겨우 5명. 그것도 탑주를 포함한 숫자였다.

"발사!"

후우웅! 후우웅!

육중한 바위가 투석기의 힘으로 인해 날아오자 흑마법사들은 가장 캐스팅이 빠른 마법을 시전했다.

"어둠의 화살!"

동시에 마법이 구현되면서 날아오던 2개의 바위가 성벽에 닿기도 전에 박살이 났다.

하지만 범려의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다음 바위를 날리라고 지시를 내렸다.

역시나 같은 방법으로 바위를 날렸고 흑마법사들도 같은 마법으로 막았다.

"후후후, 너희들은 나의 함정에 걸린 거야."

범려는 사악하게 웃으면서 느긋한 표정으로 녀석들이 마나를 다 쓰기를 기다렸다.

"무한의 체력을 가진 해골이 이길까, 아니면 제한된 마나를 들고 있는 흑마법사들이 이길까."

이미 답은 나와 있는 전투다. 마법사가 마나를 다 써버린다면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존재가 된다. 범려는 그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암, 졸려라. 나 좀 누워 있을 테니까 성벽 부서지면 말해라."

범려는 적을 도발하기 위해 일부러 아스타우스가 보는 앞에서 드러누웠다.

"아니, 저놈이!"

범려가 드러누운 자리는 마법사들의 마법 사정거리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바로 다른 흑마법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만으로 바위를 부숴라. 난 저놈을 꼭 내 손으로 죽여야겠다."

아스타우스는 블링크 마법을 쓰더니 순식간에 범려의 앞으로 날아왔다.

"이놈!"

"흐흐흐."

범려는 그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음침하게 웃고만 있었다.

"그래, 어디 죽고 싶어서 누워 있는데 죽여주마!"

그때였다.

쉬이익! 쉬이익!

어디선가 수많은 화살이 날아오자 아스타우스는 황급히 다크 실드를 펼치면서 그 화살들을 막았다.

"클클클, 그래, 날 죽이겠다 이거지. 그게 쉬우면 어디 한번 해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순순히 당해줄 거라 생각은 하지 않겠지?"

"뭐라고!"

범려는 아스타우스를 자극하는 발언을 했다. 지금은 혈혈단신의 몸이지만 흑마탑의 탑주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존재가 흥분은 했을망정 사리분별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웃기는구나. 날 도발해봤자 아무런 소용없다."

"난 도발한 적 없어. 자신 있으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거지."

범려가 대꾸를 하자 바로 그 뒤에서 엄청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하늘의 창!"

"헛! 다크 실드!"

해골 병사들이나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주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존재를 가만히 두면 스스로가 용납을 못한다.

"감히 장군님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다니!"

"하하하! 이봐, 탑주, 내가 말했지. 쉽지 않을 거라고."

범려는 여전히 땅바닥에 누워서 코를 후비며 저질스럽게 아스타우스를 놀렸다.

"이, 이놈이……."

아스타우스가 실드를 유지한 상태에서 마법을 부리려고 하자 해골 부장 다섯이 팍 튀어나오더니 그들이 들고 있는 창으로 힘차게 다크 실드를 찔렀다.

캉! 캉! 캉!

무식한 쇳소리가 들려오며 다들 창끝이 약간이기는 하지만 실드를 뚫고 나왔다.

"헉! 이런!"

"해골 운석 소환!"

해골 대마법사가 마법을 쓰자 아스타우스는 다급하게 뒤로 물러서면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여전히 누워서 웃고 있는 범려를 보고 있자니 속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다.

"젠장!"

"크크크."

범려가 웃으면서 손까지 흔들어주자 아스타우스는 더욱더 화를 냈지만, 그렇다고 다시 달려들지는 않았다.

'두고 보자!'

아스타우스는 이를 갈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건 큰 실수를 하는 것이었다.

다그닥다그닥.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아스타우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헉!"

휘리릭!

아스타우스를 향해 달려온 기병은 올가미를 던지더니 그대로 그를 낚아채버렸다.

올가미를 던진 기병은 망구다이였으며 아스타우스를 땅바닥에 질질 끌면서 범려의 앞으로 대령했다.

"이런, 내 원래 계획은 그냥 마나를 고갈시켜서 탑 안으로 쳐들어가는 거였는데 네놈이 내려오는 바람에 작전을 급하게 바꿔야 했잖아. 뭐, 그 덕에 상황이 빨리 진행됐지만."

"제길!"

"그렇게 억울한 표정 지을 거 없어. 원래 인생이란 다 그런 거야."

범려는 자신도 나이를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인생을 들먹거리자 왠지 이상했다.

"그건 됐고. 이제 포로가 됐는데 어떻게 해줄까?"

"흥! 너희가 날 잡았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음, 그런 행동은 별로 안 좋아, 탑주 아저씨."

범려는 섬전의 창을 꺼내더니 아스타우스를 향해 겨누었다.

"흥! 이런 장난감을 가지고 날 죽이려는 거냐?"

"누가 널 죽인대? 난 누구를 죽이지 않아. 다만 정의의 철퇴를 내릴 뿐이지. 으흐흐흐."

범려는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아스타우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얘들아, 이놈을 꽁꽁 묶어라. 탑을 접수하러 간다."

아스타우스는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인 채로 해골 병사들의 손에 의해서 잡혔다.

아스타우스가 질질 끌려가는 도중에 마법을 쓰려는 행동을 보이면 병사들이 여지없이 무기를 꺼내서 찔렀다.

"컥!"

"어어, 살살 찔러야지. 그러다 죽으면 어떻게 해."

범려는 포로로 잡힌 아스타우스를 괴롭히는 것은 별로 문제 삼지 않았지만, 그가 죽는 것은 달갑지 않기에 로즈에게 특별 관리를 부탁했다.

"힐!"

상처를 입을 때마다 아스타우스는 로즈에게 힐을 받았지만 해골 병사들은 무자비했다.

"크윽, 이놈! 차라리 날 죽여라."

"클클클, 내가 널 잡으려고 상당히 고생했거든. 그걸 생각해서라도 널 죽일 수 없어. 혀 깨물고 자살도 못하게 막을 거야."

푸욱!

아스타우스가 범려와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 해골 부장이 손에 쥐고 있는 검으로 탑주의 배를 찔렀다.

"이런, 나와 대화를 하려다가 또 허튼수작을 부리려고 했구나."

"크윽!"

해골 부장이 검을 바로 뽑지 않고 살며시 비틀자 아스타우스는 끔찍한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힐! 힐!"

곧바로 힐을 시전하는 로즈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