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65화 (65/80)

제5장. 생지옥(生地獄)

역시나 범려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남이 없이 퀘스트창이 하나 떴다.

-쟁취하라!

세상의 끝에는 귀중한 보물이 하나 있다. 이 보물을 얻기 위해 수많은 존재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이들을 처리하고 그 보물을 차지하라.

난이도:S

완료 조건:세상 끝에서 싸우는 녀석들을 모두 물리쳐라.

보상:???

"어라, 보상이 물음표?"

"범려 님, 제 말 듣고 계세요?"

"아, 듣고 있어요."

"세상 끝에서 잠들어 있던 보물이 깨어났어요. 그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존재들이 서로 싸우고 있어요. 범려 님, 이들을 막아주세요."

아르테미스는 지금 전쟁을 막아달라고 했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전부 다 박살내고 상황을 종료시키라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역시, 범려 님. 제 부탁을 들어주실 줄 알았어요."

아르테미스가 너무나 기쁜 나머지 범려의 볼에 키스를 하자 그걸 보고 있던 로즈가 질투의 시선으로 범려를 바라보았다.

"흥!"

범려는 감전될 것 같은 로즈의 시선에 멋쩍은 웃음을 보이면서 아르테미스에게 떨어졌다.

"하하, 아르테미스 님, 그럼 그곳에 갈 때 동료들을 데리고 가도 되나요?"

"물론이죠. 대신 한 명만 가능해요."

"한명이요?"

범려는 취선과 헬렌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는데 한 명만 가능하다는 소리에 로즈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있었던 일 때문에 로즈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로즈야, 같이 가자."

"내가 왜!"

"알잖아."

"쳇!"

투덜투덜하는 로즈의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어제는 나밖에 없다는 둥 아무리 예쁘고 아름다운 NPC라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이건 나도 불가항력적인 사건이었잖아."

"그래도!"

"두 분 다 준비되셨나요?"

아르테미스는 둘의 사이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었다.

"네!"

범려의 힘찬 대답에 아르테미스는 해골 병사들과 함께 그들을 세상의 끝으로 보내버렸다.

우르릉, 쾅!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치고 일부 바위들은 공중에 둥둥 떠 있으면서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여기가 세상 끝인가?"

"뭔가 심상치 않은데."

범려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판게아 월드』의 모습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이상한 곳이었다.

"여기서 뭘 하라는 거지?"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슨 보물이 있을까 했지만 보물보다 먼저 보이는 것이 있었다.

크아앙-!

저 멀리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존재가 눈에 보였다.

"뭐지?"

워낙 먼지구름이 짙어서 정확히 뭐가 오는지는 몰랐지만 저 속도로 달려온다면 범려의 해골 군대와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진형을 펼쳐라!"

범려는 만약을 위해 진형을 펼쳐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먼지구름이 가까이 오면서 그 정체가 확연하게 드러나자 옆에 있던 로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사이클롭스?"

정확히는 핏빛 눈의 사이클롭스였다. 더군다나 덩치도 거대한 녀석들이라서 숫자가 적은 상태여도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녀석들이다.

대략 눈으로 파악된 숫자는 얼추 1,000마리 정도로 엄청났다.

"망구다이! 녀석들을 떼어내라!"

망구다이들은 해골마를 타고 달려가더니 올가미 던지기로 녀석들을 있는 대로 낚아채버렸다.

낚아챈 사이클롭스들의 숫자는 대략 100마리. 나머지 900마리는 그대로 돌진을 해오고 있었다.

"충돌에 대비하라!"

돌격병들이 방패를 내밀자 그 뒤에서 대기하던 근위병이 돌격병들과 함께 방패에 몸을 기대어 버티기 자세로 들어갔다.

쾅!

사이클롭스들의 맹렬한 돌진에도 해골 병사들이 뒤로 밀리지 않고 버텨 내자 좌우에서 대기하고 있던 개마 기병들이 달려들었다.

"공격!"

범려의 공격 신호에 맞춰 마법사들과 궁수들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크르르아앙!

쾅! 쿵! 쿵!

사이클롭스의 맨주먹은 해골 병사들이 구축해놓은 진형을 부숴버릴 정도로 무서운 공격을 펼쳤다. 그럴 때마다 돌격병과 근위병만 녀석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홀리 어벤저!"

갑자기 하늘에서 수십 개의 빛기둥이 떨어지더니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사이클롭스의 무식한 생명력은 엄청난 마법 공격을 당했어도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저놈들 생명력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거야!"

범려는 대마법사들이 생긴 이후 이런 일이 없던지라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마법을 있는 대로 퍼부어!"

범려의 명령에 해골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마나가 0이 될 때까지 무서운 속도로 마법을 퍼붓기 시작했다.

해골 병사들도 마법사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총동원했다.

크아앙!

사이클롭스들의 하나밖에 없는 눈에서 갑자기 붉은 광선을 토해내자 그 붉은 광선에 맞은 해골 병사들의 생명력이 20퍼센트 사라지고 말았다.

"뭐야!"

"생명의 샘-!"

로즈가 해골들을 살리기 위해 캐스팅이 짧은 힐을 걸어주자 다들 조금씩이나마 생명력을 회복하고 해골 병사들은 생명의 샘물을 마셨다.

"이럴 때 로즈 혼자서 모든 걸 부담해야 하다니. 다른 사제들이라도 있었으면……."

범려는 사제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이곳에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은 범려를 제외한 단 한 명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되면 격노밖에 없다."

해골들의 생존 문제가 걸려 있는 이상 범려는 지체 없이 사이클롭스들이 있는 곳으로 뛰쳐나갔다.

"환영섬!"

후우웅!

범려가 한 사이클롭스를 붙잡고 환영섬을 펼치자마자 녀석은 다른 생각을 하지도 않고 범려에게 무작정 주먹을 휘둘렀다.

"커억!"

단 한 방이었다. 단 한 방에 범려는 해골마와 함께 몇 미터를 날아가 버렸다.

"크아아-!"

해골들은 괴성을 지르면서 격노에 빠졌고 단숨에 생명력을 70퍼센트나 잃어버린 범려는 정신이 아찔했다.

"후, 무서운 한 방이었어."

격노에 빠진 해골들이 매섭게 공격을 퍼붓자 그때서야 범려가 지휘를 하는 데 조금 편해졌다.

번쩍번쩍!

해골들이 격노에 빠진 사이 사이클롭스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하자 범려는 큰 소리로 외쳤다.

"궁수들은 눈을 공격해라! 녀석들이 눈에서 광선을 쏘기 전에 막아라!"

모든 해골 궁수들이 갑자기 공격을 멈추더니 정조준 사격을 하면서 사이클롭스들의 눈을 노리기 시작했다.

쉬이익! 쉬이익!

수많은 화살들이 모든 사이클롭스들의 눈을 맞힌 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사이클롭스들이 갑자기 눈에 꽂힌 화살에 고통스러워했다.

반대로 눈을 공격당하지 않은 사이클롭스들은 그 핏빛 눈에서 붉은 광선이 뿜어져 나왔고 거기에 명중된 해골들은 여지없이 생명력을 20퍼센트 잃어버렸다.

해골 병사들과 사이클롭스들 간에 팽팽한 접전을 펼치다가 사이클롭스 하나가 생명력이 다했는지 땅바닥에 쿵 소리를 내면서 드러누웠다.

"놈이 넘어졌다!"

한 녀석이 넘어졌다는 것은 다른 녀석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증거!

"멈추지 말고 공격하라!"

범려는 여세를 몰아 공격을 펼쳤다.

크억!

또 한 마리가 쓰러지자 이후에는 사이클롭스들이 연달아 땅바닥에 드러누우며 차디찬 시체로 바뀌어버렸다.

"물리쳤다!"

해골 병사들은 힘겹게 사이클롭스들을 물리친 후 한쪽 구석에서 망구다이 손에 붙잡혀 있는 사이클롭스들이 눈에 들어오자 크게 소리쳤다.

"저놈들도 잡자!"

해골 병사들은 거대한 파도가 밀려가듯이 남은 사이클롭스들을 향해 덮쳐들었다.

결과는 설명하지 않아도 해골들의 승리!

"후아, 힘들다."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첫 전투였다.

"첫 전투가 이 정도라면 다른 녀석들도 기본이 이 정도라고 예상해야 하나?"

범려는 세상의 끝 지역에서의 첫 전투를 하고는 이 뒤에 나올 녀석들이 얼마나 무서운 것들인지 상상만 해도 온몸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어서 용의 뼈를 조립해야겠어."

용의 심장도 생겼겠다, 범려는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나도 도와줄게."

옆에 있던 로즈도 돕겠다면서 나섰다.

"좋아. 일단 뼈를 위치에 맞게 진열해줘."

범려는 인벤토리에서 용의 뼈를 꺼냈다. 집어넣고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뼈를 꺼내서 막상 진열을 해놓으니 마치 거대한 용의 화석을 보는 것 같았다.

"우와, 이 많은 게 어떻게 인벤토리에 들어갔데."

"다 해골 제작자의 특권이지."

해골 제작자에게 있어서 뼈는 재료 아이템 크기와 무게에 상관하지 않고 물건을 인벤토리에 보관할 수 있다.

"음, 일단 용의 심장을 하나 꺼내서 뼈 위에 올려놓고……."

사람 머리 크기만 한 용의 심장이 용의 뼈 위에 올라가자 빛을 발하면서 뼈들을 자극했다.

"오! 이번에는 뭔가 다른데."

범려는 얼른 실과 바늘을 꺼내 뼈를 조립했다. 확실히 이전과 달리 뼈를 연결하는 게 가능했고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크크크, 드디어 나도 본 드래곤을 가질 수 있는 건가?"

범려가 용의 뼈를 완벽하게 조립한 후 이제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생명력을 불어넣을 차례군. 영혼 소환!"

범려는 손에 영혼의 구슬이 들어오자 음침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것을 조립한 용의 뼈 위에 올려놓았다.

우우우웅!

영혼의 구슬과 용의 뼈, 마지막으로 용의 심장이 공명을 일으키면서 3개가 하나로 합쳐지려는 분위기를 풍겼다.

"좋아, 좋아. 이제 만들어진다!"

범려가 그렇게 좋아하고 있을 때 전혀 다른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조건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영혼의 구슬이 소멸합니다.

-조립된 용의 뼈가 흐트러집니다. 용의 심장도 떨어져 나옵니다.

"안 돼-!"

지금까지 고생한 것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뼈와 심장은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사라진 것은 영혼의 구슬뿐이었다.

"크윽! 조건이 성립되지 않다니! 이런 게 어디 있어-!"

범려는 좌절하고 말았다. 기껏 노력해서 용의 뼈와 심장을 만들었는데 조건이 맞지 않다니.

"도대체 뭐가 필요한 거냐. 뼈가 있고 그걸 사용해줄 심장이 있는데!"

"범려야, 진정해."

로즈가 옆에서 범려를 위로해주었다.

"후우, 천천히 생각해보자."

범려는 심호흡을 하고는 로댕의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턱을 괴고 깊은 상념에 잠겼다.

'뼈가 있고 심장이 있어. 둘 다 훌륭한 재료들이지. 그런데 뭐가 부족하지? 영혼의 구슬로 영혼을 불어넣었으면 일어나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범려는 해골 병사를 일으켜 세울 때와 다를 바 없이 생각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마법사나 대마법사, 부장의 전직 조건은 일반 병사들과는 전혀 달랐지…….'

마법사는 뼈에 마법의 각인을 새겨 넣고 100레벨이 되면 자동 전직이었고, 부장과 대마법사는 그 밑에 있는 하위 병사들의 뼈와 영혼을 융합해서 탄생한 해골이다.

'그렇다면 독특한 방식인가?'

아무리 독특한 방식이라도 해골 병사를 만드는 2가지 조건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바로 영혼과 뼈이다.

'뼈는 용의 뼈이고 영혼은 그냥 영혼?'

가만히 상황을 놓고 보니 뼈는 용의 뼈인데 영혼은 일반적인 영혼을 쓰고 있었다.

부장이나 대마법사같이 다른 영혼들이 하나로 융합, 더 강한 영혼이 완성되어 만들어진 결정체이다.

"그렇다면 영혼이 달라야 해! 용의 뼈를 썼으니 용의 영혼이 필요한 거야!"

범려는 드디어 해결책을 찾았다. 하지만 다시 좌절했다. 용의 영혼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용의 영혼을 어디서 구하지? 아르테미스에게 물어볼까?"

"무슨 소리야? 용의 영혼이라니."

"아, 저번에 구했던 용의 뼈로 본 드래곤을 한번 만들어보려고. 그런데 잘 되지 않았거든."

범려는 곧바로 아르테미스를 불러들였다.

"아르테미스!"

"무슨 일이시죠?"

"아르테미스 님, 용의 영혼이 필요합니다."

범려는 다짜고짜 용의 영혼을 찾았지만, 아르테미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안 됩니다. 그건 아무리 범려 님이라도 들어드릴 수 없는 부탁입니다. 스스로 그 영혼을 얻는 방법을 얻는다면 모를까, 제 의지로는 드릴 수 없습니다."

아르테미스가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내가 줄 수는 없지만 네가 그 방법을 찾아낸다면 그 영혼들을 마음대로 써도 상관없다, 라는 소리다.

"음,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돌아갈게요. 범려 님, 수고하세요."

범려는 아르테미스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좋아. 용의 영혼아, 기다려라. 내가 널 반드시 얻어주마. 그 전에 먼저 퀘스트다."

범려는 퀘스트를 해결한다면 최소한 힌트라도 나올 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퀘스트의 보상이 물음표였다. 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소리다.

"어차피 직업 퀘스트로 뭔가 하나 나오겠지."

간단하게 생각하고는 병력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루이."

"예."

"주변을 정찰해서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부터 확인해라."

"네, 주인님."

루이는 이곳에 사는 쥐들을 불러 모았다. 모여든 쥐들은 아주 험상궂게 생긴 녀석들로, 온몸에 상처가 나 있는 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이 얼마나 험악한 곳인지 쥐들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주인님, 5시간 후에 이곳의 모든 정보가 들어올 것입니다."

"기다리지."

범려는 병사들을 땅속에 들어가게 하고 로즈와 둘이서 몸을 숨겼다.

"자기야, 언제까지 숨어 있을 거야?"

"쥐들이 정보를 얻어올 때까지 있어야지. 조금 전에 싸운 사이클롭스 같은 존재들이 널려 있을 수가 있잖아."

"그 녀석들과 싸우는 것은 사양이야. 너무 힘들었어."

로즈는 핏빛 눈 사이클롭스와 전투를 벌인 게 아주 머리에 각인이 될 정도로 힘들었던 모양이다.

광선 한 방에 여러 해골 병사들의 생명력이 뭉텅뭉텅 사라져 버리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보를 확인하라고 한 거야. 그런 위험한 녀석들보다 조금이라도 편한 녀석들을 상대해야겠지."

하지만 5시간 뒤 루이가 가져온 정보는 범려의 인상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젠장! 뭐 이렇게 하나같이 평범한 녀석들이 없는 거냐."

이곳에 존재하는 몬스터치고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고 독특함이 묻어나는 녀석들만 잔뜩 있었다.

"오크는 기본이고, 악마하고 천사들까지 있어?"

"천사, 악마?"

로즈는 천사와 악마라는 소리에 상당한 호기심이 생겼는지 범려가 보고 있는 종이에 시선을 옮겼다.

"어머, 정령들도 있네."

정령들까지 있다면 일단 있을 것은 다 있다는 소리다. 문제는 무얼 얻으려고 이렇게 몰려들었느냐다.

"이 보물이 뭔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보물임은 확실하네."

"우리가 이거 차지해버릴까?"

로즈가 모두가 탐내는 보물을 차지하자는 말을 하자 범려는 그 말에 귀가 솔깃했다.

"차지할 수 있다면 한번 그래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범려도 가능하다면 그 보물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건 유저가 획득할 수 있는 확률이 매우 적다.

"그럼 계획을 짜자. 이 보물 쟁탈전에 참여한 군대들이 대략 40여 군단이네."

40여 군단이면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건 옛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다를 바가 없다.

"자기야, 이것들을 언제 다 없애버리지?"

"아니, 왜?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자기들끼리 치고받을 텐데."

"자기야, 그럼 하나가 남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

"아니. 최대한 많은 것들을 살려야 해. 대신 가능한 한 병력들을 약화시켜야겠지."

범려는 아주 사악한 계획이 떠올랐는지 미소를 지으면서 루이를 불렀다. 그리고는 작은 소리로 루이에게 속닥였다.

"주인님, 알겠습니다."

"전투를 벌이고 있는 지역을 바로 알려 줘야 한다."

루이는 범려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곧바로 쥐들을 불러 모았다.

"자기야, 루이한테 무슨 명령을 내린 거야?"

"곧 있으면 알게 될 거야."

범려는 해골들을 불러 바로 이동 준비를 했다. 그러자 다들 해골마 갈비뼈 안으로 들어가더니 대기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 상처투성이의 쥐가 달려오더니 루이에게 찍찍거리면서 보고가 올라왔다.

"주인님, 여기서 해골마를 타고 30분 정도 거리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곳으로 가자. 안내해!"

"예!"

해골 군대는 쥐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전투 지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들은 라이칸스로프들과 뱀파이어들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싸움 구경을 하게 생겼군."

범려는 두 종족 간의 싸움에서 누가 이기든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누가 더 많은 병력을 잃는지 그게 유일한 관심거리였다.

"박쥐 새끼들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반갑구나."

"흥! 어디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나 했더니 지나가는 강아지 새끼들이군."

"뭐야!"

둘 다 서로를 헐뜯으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왜 안 싸워. 나 같으면 확 쓸어버릴 텐데."

범려는 저들이 싸우는 모습을 얼른 보고 싶은데 전혀 그러지 못하니 답답했다.

하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전투를 치르기 전에 사기를 고취시키는 행동이었다.

"크르릉! 라이칸스로프들이여! 저 박쥐들을 죽여라!"

"누구 마음대로!"

두 종족의 전투가 시작되자 범려는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누가 빨리 죽는지 관찰했다.

"크르릉! 나의 이빨에 한번 물려 봐라!"

"흥! 어디서 추접한 이빨을 들이대는 거냐!"

서로 피가 튀고 상처를 입으며 치열한 혈전이 되자 범려는 망원경으로 보면서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구경을 했다.

"이건 이종격투기 경기보다 더 재미있잖아."

"저게 뭐가 재미있는지 난 하나도 모르겠던데."

로즈는 이런 혈전에 별로 관심이 없는지 시큰둥했다.

"죽어라! 박쥐새끼!"

"으아악!"

슬슬 전투가 뱀파이어들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범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가 되었다."

해골 병사들은 범려의 명령에 해골마 갈비뼈 안에서 기어 나오더니 진형을 이루었다.

양측의 그 많던 병력들은 차츰차츰 줄어들더니 뱀파이어들은 800명 정도, 라이칸스로프들은 200마리 미만으로 떨어지자 범려는 미소를 지었다.

"뱀파이어들을 공격해라!"

"돌격!"

범려의 명령에 해골 부장들은 병력을 이끌고 돌격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명령대로 뱀파이어들을 뒤에서 공격했다.

"크억! 누구!"

등 뒤에서 공격당한 뱀파이어들은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마법사들은 앵거 오브 어스를 시전하라!"

"앵거 오브 어스!"

우르르 쾅!

땅이 요동을 치면서 뱀파이어들이 서 있던 지역에 지진과 함께 날카로운 바위가 솟구쳤다.

"크르릉!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마도 뱀파이어들에게 원한이 있는 군대 같습니다."

범려가 뱀파이어 군대를 공격하자 라이칸스로프들은 자신들을 도와주는 군대인 줄 알고 희망을 품고 뱀파이어들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펼쳤다.

"뱀파이어들을 다 죽여라!"

"죽여라!"

해골 병사들이 닥치는 대로 쓸어버리자 뱀파이어들의 숫자가 순식간에 100 단위로 줄어들고 말았다.

"얘들아, 물러나자!"

범려가 갑자기 후퇴 명령을 내리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뱀파이어들은 때는 지금이라면서 크게 외쳤다.

"후퇴하라! 여기서 벗어난다!"

뱀파이어들이 물러나자 라이칸스로프들은 당장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싸움에서 돌아오자 로즈는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무척 궁금했다.

"자기야, 왜 저들을 마지막까지 몰아세우지 않고 가만 놔둔 거야? 라이칸스로프나 뱀파이어들을 동시에 쓸어버릴 수 있는데."

"굳이 그들을 쓸어버리면 안 돼. 이곳에서는 아군이 필요해. 그것도 방패가 되어줄 아군이 말이야."

"아군이 필요하다고?"

"엉. 40여 개 종족이 전부 다 적이잖아. 아무리 따로따로 놀고 있는 상태라지만 여기서 아군을 만든다면 훨씬 쉬워지잖아. 그래서 뱀파이어들을 살려 둔 거야. 그들을 살려 둬야 라이칸스로프들이 뱀파이어들을 쫓고 우리를 안 쫓아오지."

범려의 말대로 한다면 벌써 40여 종족 중에서 벌써 한 종족이 아군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럼 아군을 조금이라도 만들어서 우리를 돕게 만들려고 그러는 거야?"

"돕는다기보다는 우리에게 신경을 끊게 만드는 거지. 라이칸스로프들의 적은 뱀파이어. 그들이 살아 있는 한 우리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을 테니 말이야."

저 많은 적들 중에서 아군을 가려내는 것. 이것이 바로 범려의 계획이었다. 그는 혹 아군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군대에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들을 추려 내고 있었다.

"루이, 다음 장소는 발견됐냐?"

"다음은 여기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입니다."

"어서 가자."

범려는 아군을 하나라도 더 늘려서 방해물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갔고 이런 방법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것이 통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취익! 우리는 오크!"

"용맹한 오크!"

오크 군대는 생각보다 엄청난 숫자를 자랑했다. 4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범려의 군대에 비해서 굉장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오크 군대는 자기들끼리 보물을 차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오크 말고도 다른 존재들도 홀로 서는 종족들이 있었다. 그건 천계의 천사들과 마계의 악마들, 마지막으로 정령들이었다.

"음, 예상외야. 오크들이 정령이나 다른 것들을 물리치고 보물을 차지하려고 들다니……."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시작부터 오크들처럼 움직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오크들을 다른 녀석들과 싸우게 만들어야겠어."

범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존재들이었다. 천사와 악마들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싸우게 되어 있으니 문제가 없다.

"오크들과 정령들을 싸움 붙여 봐?"

오크들이 정령들에게 대처할 방법이 없다면 그대로 무너지겠지만 그 반대라면 당하는 것은 오히려 정령들이 될 것이다.

"뭐, 양쪽 다 망해버리면 좋겠는데 말이야."

범려는 보물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 채 그것을 탐냈다.

"루이, 오크들이 뭐 하는지 알아봐라."

"네."

루이는 오크들의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다시 쥐들을 불러 모아 첩자를 침투시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쥐들이 곧 돌아오자마자 루이에게 무어라 찍찍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더니, 루이는 종이에다가 쥐들에게 들은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오크 군대

병력:48,540

병과 종류:주술사, 방패병, 대검병, 궁수, 창병

지휘관:아만타쉬

그 외 사항:아만타쉬는 상당히 독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기에 그 휘하에 있는 측근들이 상당히 고생을 함.

추신:아만타쉬는 정령을 이유 없이 싫어함.

"나쁘지 않은 정보군."

범려는 루이가 적은 내용을 보더니 굳이 어렵게 정령들과 오크들 사이를 이간질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정령들이 근처에 있다면 오크들이 분명 달려가서 그들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거 잘하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싸우다가 무너지겠는데."

범려는 이 외에 천사 혹은 악마들에게 계략을 써서 이들을 가지고 다른 종족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천사들은 내 모습을 보고 저주받을 네크로맨서라고 할 것이고, 악마는 반대로 시체들을 가지고 장난친다며 천박하게 여길 테지?"

모습이라도 변신시키는 아이템이 있다면 다른 종족으로 변신해 각 군대 지휘관에게 가서 세치 혀로 그들을 속이겠지만 범려에게 그런 아이템은 없었다.

"어떻게 한다."

"에휴, 만날 혼자서 그렇게

'어떻게 한다.'

갑자기

'아! 그래!'

그러고 난 한마디도 안 끼워주고. 나 정말 애인 맞아?"

로즈는 무슨 일이 있으면 같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고 싶었는데 범려가 언제나 혼자서 해결하기 때문에 약간은 투정을 부렸다.

"아, 미안. 네 종족을 싸우게 하려고 생각 중이야."

"무슨 종족을?"

"오크, 정령, 천사, 악마들이지."

로즈는 그 네 종족을 듣자 약간 인상을 찡그렸다. 하나같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천사들을 꼬셔 보는 건 어때?"

로즈가 천사들과 이야기를 해보라는 말에 잠시 고민이 되었다. 분명 범려가 도움을 청하면 그들이 도와줄 가능성이 있다.

"음, 하지만 어떻게 대화를 하지? 난 해골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천사들 앞에 모습을 보일 수 없어."

"그거야 당연하지. 나 같아도 음침한 해골들보다 신을 믿고 따르는 사제라는 직업을 가진 내가 나서는 게 좋겠지. 안 그래?"

맞는 말이다. 범려가 네크로맨서로 오해받아 공격당할망정 사제인 로즈가 공격당할 일은 없다.

"그럼 로즈가 나서서 천사들과 이야기해볼 거야?"

"응, 그러려고."

"좀 미안해지는데."

"우리끼리 미안한 게 어디 있어. 그냥 하면 하는 거지."

로즈가 이렇게 나오자 범려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냥 고마울 뿐이었다.

"알았어. 그럼 천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부탁해줘. 길 안내는 루이가 해줄 거야."

"알았어. 나한테 모든 걸 맡겨 봐. 내가 멋지게 해결할 테니까."

로즈는 루이를 따라서 천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버렸고 범려는 로즈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 * *

"여기가 천사들이 있는 곳인가."

루이가 안내한 곳은 성스러운 빛을 잔뜩 머금은 순백의 건물로, 그 위로는 몇 명의 천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누구냐!"

"어머나!"

언제 모습을 드러냈는지 모르게 순백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커다란 양손 검을 들고서 로즈를 향해 위협했다.

"전, 사제 로즈라고 합니다. 우연치 않게 이곳에 왔다가 여기에 천사님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뵙고자 청하러 왔습니다."

천연덕스런 모습을 보여 주는 로즈의 모습에 천사들은 무기를 거두고 손을 내밀었다.

"어서 오십시오. 신을 믿는 자들이라면 누구라도 환영입니다."

사제라는 말에 방금 전 위협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로즈를 환영했다.

"감사합니다."

로즈는 천사의 안내를 받아 천사들이 있는 군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척박한 땅에 그대같이 연약한 사제가 오다니 참으로 대단하군."

"아닙니다."

로즈는 지금 천사들의 지휘관인 대천사 제루엘을 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우리는 그대를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려보낼 여유가 없다네."

"괜찮습니다. 저 역시 이곳에 그런 부탁을 하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제가 여기에 있도록 해주세요."

"하지만 이곳은 위험한 곳이네. 그대같이 연약한 사제가 있을 곳이 못 되네."

로즈는 제루엘이 자꾸 연약한 사제라며 떠들자 신경질이 확 솟구쳤다.

사제는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는데 처음으로 자신을 거부하는 존재가 눈앞에 있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참아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은 척박한 땅. 신을 섬기는 사제로서 어찌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 있겠습니까. 제발 저를 내치지 말아주세요."

로즈의 말에는 여기서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음."

제루엘은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담긴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알았네. 그렇게 하도록 하게. 대신 여기서 사고를 당하더라도 내 책임은 아니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서 로즈는 천사들이 있는 군영에 머물게 되었다. 이제 다음 계획은 어떻게 해서든 천사들이 오크들에게 간섭을 해서 정령들과 싸우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 어떻게 한다.'

* * *

로즈가 한참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범려는 다크 엘프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다.

"젠장! 이것들 왜 난데없이 기습을 펼치고 지랄이야!"

범려는 갑자기 나타난 이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해골 병사들은 긴급하게 진형을 갖추는 도중에 공격을 받아 일부는 생명력이 절반 가까이 떨어지는 경험을 겪게 되었다.

"원진(圓陣)을 펼쳐라!"

범려는 어떻게 해서든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병사들에게 원진을 펼치게 만들었다.

일단 진형이 완성되자 다크 엘프들은 해골 군대를 포위하면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젠장! 마법이다!"

해골들은 범려가 외치는 소리에 다급하게 흩어지면서 마법을 피했다.

"이봐! 다크 엘프들! 무슨 이유 때문에 내 군대를 건드는 거냐!"

"흥! 그걸 말이라고 묻나! 네크로맨서!"

그 지긋지긋한 네크로맨서 소리에 범려는 짜증이 날 지경이다.

아무리 다크 엘프라도 이들 역시 엘프. 죽은 자의 안식을 방해하는 네크로맨서들을 좋아할 리 없다.

"젠장! 다크 엘프들을 다 쓸어버려라!"

범려가 화가 났는지 명령을 내리자 해골들은 무차별적인 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해골 마법사, 대마법사는 범위 마법을 뿌려라!"

명령이 떨어지자 그들은 곧장 마법을 시전했다.

번쩍! 쾅!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떨어지는 마법에 다크 엘프들은 심각한 충격을 받았고 일부는 생명력이 간당간당할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개마 기병! 돌진!"

육중한 갑옷을 입고 있는 개마 기병들이 앞으로 튀어 나오더니 그대로 들이받았고 해골 저격병과 연노병들이 쏟아내는 화살에 의해 다크 엘프들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크윽! 이렇게 강력할 수가."

다크 엘프들은 자신의 동족들이 절반이나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는 사실에 믿을 수가 없었다.

"네크로맨서 따위에게 당하다니."

"난! 네크로맨서가 아니다. 해골 제작자 범려다!"

범려는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지만 다크 엘프들은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뭐, 믿든 안 믿든 상관은 없다. 어차피 날 건드리는 녀석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테니. 얘들아! 나머지 처리하자."

"예! 장군님."

해골 병사들은 남은 다크 엘프 군대를 쓸어버리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때 몇몇 해골들의 몸에서 황금빛 기운이 슬쩍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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