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강습(强襲)
키아악!
하늘에서 거대한 용의 포효가 들려왔지만 어떤 사람도 그 포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아, 수호룡들이 돌아다니나 보네."
하지만 하늘에선 수호룡들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앙상한 뼈로 이루어진 해골 용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모습뿐이었다.
"수호룡들의 울음소리하고 비슷해서 아무도 모르는구나."
범려는 지금 해골 용들과 같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적당한 사냥터를 찾고 있었다.
"어디 몬스터 몰려 있는 곳 없나?"
해골 용을 얻은 뒤로 범려는 유저들에게 그 모습을 들킨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해골 용의 숫자는 셋. 운 좋게도 용의 심장 3개 모두 다 해골 용이 되었다.
"하암, 졸리네."
점심을 먹고 접속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식곤증이 몰려왔지만, 잠깐 잠을 자려고 하면 해골 용들은 홀리 브레스를 내뿜으면서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우우웅! 쾅!
한번 브레스를 뿜어낼 때마다 몬스터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지만 완전히 죽이진 않는다. 그건 몬스터들의 레벨이 오를수록 마법 저항이 상승되기 때문이다.
"쩝, 브레스가 몬스터들의 마법 저항 때문에 약해지다니. 적어도 마법 저항은 무시할 정도는 돼야 브레스라고 하지."
범려는 브레스라면 마법 저항 따위는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마법 저항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게 드래곤의 브레스이다.
"그래도 용의 심장 3개와 딱 떨어지게 제한에 걸려서 얼마나 다행인지."
어차피 해골 용을 더 만들어내라고 해도 용의 심장이 한계가 있기때문에 만들 수 없다.
"강습!"
범려가 강습이라고 외치자 해골 용이 지상을 향해 빠른 속도로 떨어지더니, 그의 갈비뼈 안에 있던 해골 병사들을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뜨렸다.
"아싸!"
범려도 해골 용이 지상에 가까워지는 순간 병사들과 같이 뛰어내리며 눈앞에 있는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후후, 브레스에 맞아서 생명력이 얼마 없군! 병사들 돌격!"
병사들이 거침없이 생명력 바닥인 몬스터들을 향해 돌진했고, 녀석들은 이미 바닥인 상태에서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약간의 돈과 쓸데없는 잡동사니만 뱉고 죽었다.
"쳇! 다음 장소로 가자!"
해골 용이 천천히 지상에 내려오자 병사들은 다시 그 커다란 갈비뼈 안으로 들어갔다.
용은 그 너덜너덜한 날개를 펄럭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몬스터가 우글거리던 장소는 아주 깨끗하게 변해버린 뒤였다.
"그러고 보니 용 세 마리가 홀리 브레스 한 번씩 쏘면 던전 보스도 한 방에 죽겠는데 말이야."
범려는 아직 해골 용을 데리고 던전에 들어간 적이 없다. 3마리가 브레스를 뿜어대면 입구에서부터 던전을 박살내며 전진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덩치 큰 해골 용들이 던전에 들어간다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던전 내부에서 해골 용이 움직일 만한 공간을 가진 던전은 거의 없을 거야."
어떤 의미로는 최강의 물건이지만 적당한 제약이 존재할 거라 보고 있다.
"그래도 하늘을 날아다니면 남들보다 빨리 몬스터를 잡을 수 있지."
예고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홀리 브레스. 거기에 뒤이어 몰아치는 해골 병사들은 아주 전형적인 강습 작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후, 우산 길드 녀석들에게 기습적으로 공격해서 확 쓸어버려야 하는데 녀석들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확인도 안 되고."
범려는 우산 길드와 전투를 하기 위해 이런 강습을 통한 사냥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 오늘은 여기까지. 성으로 돌아간다."
범려가 돌아간다고 하자 해골 용들은 방향을 그레이 캐슬이 있는 곳으로 꺾으면서 빠른 속도로 날아가 버렸다.
"강습 훈련을 제대로 펼칠 만한 곳 없나. 단순한 사냥은 긴장감이 없단 말이야."
범려는 병사들과 함께 움직이고는 있지만 이 훈련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어디 적당한 던전 같은 곳 없나?"
던전의 몬스터들이라면 강습 훈련을 제대로 시험하기에 딱 좋은 상대이다. 문제는 해골 용의 활동이 가능한 던전이라야 한다.
"던전을 찾는 거야?"
"응."
"그러고 보니 새롭게 공개된 던전이 하나 있던데, 사람들이 거기를 공략하기 위해서 몰려가는가 봐."
로즈는 새롭게 공개된 던전이라면서 범려에게 알려 주었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라면 범려가 그리 좋아할 만한 장소가 아니다.
"후우! 나와는 인연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거기가 어딘데?"
범려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로즈에게 던전의 위치를 물었다.
"음, 창공의 페이셔에 있는 상아탑 꼭대기라고 들었어."
상아탑은 창공의 페이셔 위에 세워진 탑으로 그 아래에 있는 천국의 계단과는 다른 곳이다.
"탑 꼭대기라……."
범려는 탑 꼭대기라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한번 가볼까?"
"거기에 갈 거면 나도 데려가."
범려가 그곳에 가고 싶어 하자 로즈는 이때다 싶은지 바로 같이 가자며 졸랐다.
"그래. 어차피 그 근처에서 구경만 하는 건데 뭐 달라질 건 없지."
범려는 병사들과 함께 공중 대륙, 창공의 페이셔 지역으로 날아갔다.
"여기가 상아탑 꼭대기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 떠 있는 대륙 위에 그보다 더 높이 솟은 하나의 탑이 눈에 들어왔다.
"우와, 높다. 그렇지 않아도 하늘에 떠 있는 창공의 페이셔인데 그 위에 또 탑이 있네."
"저 위를 봐!"
로즈는 손가락으로 탑 꼭대기 부분을 가리켰다.
"음? 저게 뭐야?"
탑 꼭대기 부분에는 아주 커다랗고 널찍한 공간의 문이 하나 보였다.
"저기가 던전의 입구야."
"진짜? 굉장히 큰데."
해골 용의 크기가 생각보다 큰 편인데 던전 입구는 그걸 무시할 만큼 무척 컸다.
"용들아! 전속력으로 저 안으로 들어간다!"
"예! 장군님."
쐐액!
해골 용들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력으로 달려가더니, 총알이 과녁에 명중하는 것처럼 날아가 던전 안으로 진입해버렸다.
"엇! 방금 뭐였지? 상당히 거대한 무언가가……?"
"뭐가 들어갔어? 난 아무것도 못 봤는데."
유저들은 워낙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해골 용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꼭대기 아래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파티를 구해 던전에 진입했다.
"어? 우리 방금 던전에 진입한 거 맞아?"
범려는 주변 환경이 크게 변화된 것을 느끼지 못하고 변함없는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여기 던전 맞아?"
-하늘빛 던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난이도가 전쟁 모드로 설정됩니다.
-던전의 외형이 변경됩니다.
-몬스터들의 생명력이 크게 상승합니다.
"던전 맞네."
범려는 던전에 들어왔다는 메시지와 난이도가 전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곳이 던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어디에 몬스터가 있는 거지?"
"저 아래를 봐봐."
범려가 몬스터를 찾고 있을 때 로즈가 아래에 있는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이렇게 되어 있는 던전이군."
던전 안에는 하늘에 떠 있는 땅이 여러 개가 있는데, 각 땅은 아주 좁은 외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곳이라면 충분하겠는데?"
범려가 생각했던 강습 훈련을 하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었다. 더군다나 해골 용이 하늘을 배회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럼 시작해볼까."
범려가 해골 용들에게 필드에서 써먹었던 방법대로 강습 작전을 펼친다고 하자, 용들은 알았다는 듯이 하늘에서 목표 지점으로 브레스를 쏠 준비를 했다.
곧 해골 용의 입이 크게 벌어졌고, 그 안으로 엄청난 마나가 소용돌이치면서 한 줄기의 빛이 저 아래에 있는 녀석들을 향해 발사되었다.
콰쾅!
목표 지점에 있던 몬스터들이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해골 병사들이 땅에 내려왔다.
"공격!"
2천이 넘는 병사들이 들이닥치자, 혼란에 빠져 있던 몬스터들은 곧장 방어에 들어갔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신성한 불꽃!"
"일루전 웨이브!"
해골 병사들은 필드에서 해왔던 방법대로 던전의 몬스터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확실히 던전 몬스터들은 생명력이 높아."
더군다나 눈앞에 있는 녀석들은 오우거다. 몬스터들 중에서도 생명력이 높은 편에 속하는 녀석들이다.
"놈들이 온다! 방패를 들어라!"
"쿠어!"
쾅! 쾅! 쾅!
무식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녀석들이라도 해골들의 굳건한 방어는 아주 튼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기병들 전진! 궁수들은 공격을 멈추지 마라!"
"앵거 오브 어스!"
적절하게 터진 마법은 오우거들에게 타격을 주면서, 본격적으로 해골들을 공격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신성한 불꽃!"
많은 병사들이 활약을 하는 중에도 제일 눈에 띄는 것은 당연 영혼의 천사들이었다.
그들이 앞에 서서 직접 공격을 펼침과 동시에 방어를 하며 적들을 압도해버리니, 아무리 상대가 레벨이 높다 하더라도 거침없이 검을 휘두르며 전진을 할 수 있었다.
"마법사들의 마법이 파괴적이라면 영혼의 천사들의 검은 화려하군."
이건 범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드디어 오우거들을 다 쓸어버렸다."
범려는 오우거들을 전부 다 해치운 후 하늘을 날고 있는 해골 용들을 불러들였다.
"다음 장소로 가자."
그렇게 던전을 몇 번 휩쓸고 나자 남은 것은 보스. 그런데 이 보스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아누비스를 닮은 녀석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집트 신화였군."
이곳의 보스는 흑마법을 주력으로 공격하는 마법형 보스로, 단순하게 주먹질하는 근접형 보스보다는 까다로운 편이다.
"병사들 준비!"
척! 척!
해골 병사들은 공격대형을 갖추면서 아누비스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홀리 브레스!"
범려가 해골 용들에게 지시를 내리자, 하늘에 떠 있던 3마리의 용들이 커다란 입을 벌리며 엄청난 마나의 힘을 모으더니 그대로 아누비스를 향해 용의 숨결을 토해냈다.
"저승에 온 것을 환영한다!"
아누비스는 브레스를 직격으로 맞고도 별다른 타격이 없는지 거침없이 해골들을 향해 걸어왔다.
"역시 보스 생명력이 10퍼센트도 안 빠졌어."
다른 몬스터들이었다면 빈사 상태 가까이 됐겠지만, 보스라는 이유로 엄청난 생명력과 마법 저항력 덕분에 해골 용의 홀리 브레스의 데미지를 크게 격감시켜 버렸다.
"영혼의 천사, 앞으로 나와라!"
기다란 양손 검을 쥐고 나타난 5명의 천사들은 아누비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저승의 문이여, 열려라!"
-차원의 문이 열립니다.
아누비스는 갑자기 차원의 문을 열더니 그 안에서 자신의 병사들을 소환했다.
"헉! 이런!"
범려는 차원의 문 안에서 병사들이 튀어 나오자 다급하게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영혼의 천사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방어를 굳건히 해라!"
차원의 문 안에서 튀어 나온 녀석들은 온몸에 붕대를 두르고 아누비스와 같은 머리를 지닌 '저승의 파수꾼'이라는 병사들이었다.
"붕대 두른 아누비스들이군."
"아가나 파나!"
"뭐라고 하는 거야?"
파수꾼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하자 이어 그 뒤에 있던 아누비스가 외쳤다.
"지옥으로 데려가라!"
"차나!"
'차나'라는 말에 파수꾼들은 범려의 해골 군대를 향해 돌격해 들어왔다.
"아르테미스의 손길!"
범려가 버프를 시전하자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아르테미스가 버프를 걸어주었고, 뒤이어 로즈가 버프를 시전했다.
"공격!"
해골 군대와 파수꾼들이 뒤엉켜 싸우자 전투는 이내 난장판이 되어갔다.
"해골 용, 지상으로 내려와라!"
범려는 곧장 해골 용들을 지상으로 불러들여 전투에 참가시켰다.
해골 용들은 지상으로 조심스럽게 내려오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파수꾼들을 공격했다.
"역시 해골 용은 무기가 없어도 잘 싸우는군."
파수꾼들은 생각보다 생명력이 약해서 병사들의 손에 의해 금방 나가떨어졌다.
"이제 보스를 잡자!"
"저승의 문이여, 열려라!"
"또!"
범려는 다시 나타난 파수꾼들을 보면서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해골 용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해골 용들은 보스를 잡아라!"
"크앙!"
해골 용들은 거침없이 날아오르며 아누비스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더니, 그대로 녀석의 몸을 물고 할퀴는 짓을 자행했다.
"머리 쓴다 이거지!"
범려는 아누비스가 해골 병사들의 힘을 빼서 반격의 기회를 엿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해골 용, 놈들의 공격력을 떨어트려라!"
"크아앙!"
-절망의 포효를 내지릅니다. 적들의 모든 능력치가 3분간 30% 하락합니다.
보스를 포함한 파수꾼들의 능력치가 하락되자 아누비스는 큰 소리를 지르며 해골 용의 마법을 정화시켰다.
"지워져라!"
-아누비스의 정화 마법에 의해 절망의 포효가 사라집니다.
"쳇!"
이후에도 다른 저주나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마법을 걸어서 보스를 약화시키려 했지만, 그때마다 정화 마법을 부리며 안 좋은 마법을 다 지워버렸다.
"제길, 뭘 어떻게 하지를 못하게 하네."
범려는 상태 이상 마법 같은 걸 포기하고 그냥 정상적인 방법으로 공략을 해나갔다.
해골 병사들이 평범한 전투를 하면서 저승의 파수꾼들을 다 죽여가고 있을 때 범려가 갑자기 외쳤다.
"다 죽이지 말고 몇 놈은 남겨 놔!"
해골들은 범려의 명령대로 다섯 정도의 파수꾼들을 남겨 두었다.
"망구다이, 뒤로 끌고 가!"
망구다이 다섯은 올가미 던지기로 녀석들을 묶더니 그대로 뒤로 빼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녀석들을 일부 살려 놓았는데 역시나……."
범려는 지옥의 파수꾼들을 다 잡으면 또 소환을 할까 봐 일부를 살려 두었는데, 과연 그의 예상대로 아누비스는 이 다섯의 파수꾼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더 이상 소환을 하지 않았다.
"걸렸다."
범려는 이것이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이용해 약간의 실험을 한 것이다.
"나머지 병사들은 보스를 공격하라!"
2천이 넘는 병사들이 개미 떼처럼 아누비스에게 달라붙어 공격하자 전기톱으로 거목을 베듯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하하하!"
범려는 크게 웃으면서 아누비스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서 아이템을 토해내고 죽어라!"
아누비스는 딱 한 개의 아이템을 뱉어내고 숨이 끊어졌다.
-숭고한 구원자
종류:반지
옵션:체력 +40, 지능 +120, 정신력 +130
모든 치료 주문의 효과가 10% 증가합니다. 모든 마법에 들어가는 마나 소비가 6% 감소합니다.
"……."
"어머, 반지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반지를 찾고 있었는데."
로즈는 냉큼 아이템을 집더니 그대로 손가락에 끼었다.
"축하해."
범려는 축하한다며 좋아했지만 사실 자신도 아이템을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호호호, 고마워."
비록 자신의 것이 아닌 로즈가 원하는 아이템이 나왔지만, 범려에게는 해골들의 강습 훈련이 제대로 각인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걸로 만족해야 했다.
"이제 나가자."
"응!"
쐐액!
범려는 병사들과 함께 해골 용을 타고 바람처럼 던전을 빠져나가버렸다.
바깥에서 던전을 찾아온 유저들은 던전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해골 용을 보지 못하고, 무언가 번개처럼 빠르게 지나간 것만을 느낄 수 있었다.
"뭐지? 방금 뭐가 지나간 것 같은데."
"나도 뭔가 봤는데 휙 하고 지나가서 자세히 못 봤어."
"대단한 물건이 지나간 건 아니겠지?"
유저들은 별로 대단치 않은 것이 지나간 거라 판단하고는 바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해골 용을 타고 성으로 돌아온 범려는 스승, 궁귀에게 중요한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제자야!]
"아! 스승님."
[제자야,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지금 이곳에서 공성전이 벌어지는데, 거기에 우산 길드 사람들이 용병으로 참가를 했다는구나.]
"정말요?"
범려는 궁귀의 말을 듣고 놀랐다. 그가 알기로 우산 길드는 공성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무슨 일을 벌이려고 길드원들이 공성전에 용병으로 참가를 하는 거지?"
범려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사실 우산 길드는 지금 천마 길드가 자리 잡고 있는 창공의 페이셔 지역의 도시를 차지하기 위해 길드원들을 공성전에 참가시키고 있었다.
"스승님, 지금 거기가 어디인가요?"
[여기는 칠흑의 데보라 지역에 있는 가란 도시다.]
"알겠습니다."
범려는 귓속말을 끊고는 당장 공성전에 참가할 준비를 했다.
"말을 할 수 있는 해골들은 다 모여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해골 부장과 대마법사, 그리고 영혼의 천사들이 범려 앞에 나타났고, 이어 우산 길드 사람들이 참여하는 공성전에 대해 토론을 했다.
* * *
"이곳이 가란 도시인가?"
범려는 현재 가란 도시에 영혼의 천사들과 같이 도착했다. 바로 공성전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여기군."
범려는 운 좋게도 지금 공성전 준비를 위한 용병 모집이 한창일 때 오게 되었다.
우선 범려는 공성전에 참가하기 전에, 용병을 모집하는 사람들에게 우산 길드원들이 어느 쪽에서 싸우는지 물어보았다.
"저, 우산 길드 사람들은 어디에서 싸우고 있나요?"
"우산 길드라면 공성 쪽에서 활동하고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범려는 가볍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바로 수성 쪽 길드에 가서 용병 신청을 했다.
"용병으로 공성전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여기 닉네임을 적어주세요. 그리고 접수를 하시면 바로 남쪽 성으로 가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범려는 신청서에 바로 자신의 닉네임을 적었다. 그때 접수원이 범려의 뒤에 있는 천사들을 보고 직업을 물어보았다.
"혹시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네? 직업이요?"
범려는 여기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순수하게 해골 제작자라고 하기도 그렇고, 말을 안 하자니 뒤에 있는 천사들의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소환사예요."
"소환사요? 소환사들이 데리고 다니는 녀석들 중에 이런 녀석들은 없는 걸로 아는데."
"제가 숨겨진 조각을 하나 발견해서 천사들을 소환하게 됐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설명하기 복잡합니다."
"아, 숨겨진 직업 비슷한 건가 보군요."
"뭐,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범려는 접수원에게 얼렁뚱땅 둘러대면서 상황을 모면하고는 바로 남쪽에 있는 성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저거 봐. 천사야."
"어! 진짜다. 그런데 날개가 반투명한 천사네."
다들 천사의 존재를 알기 때문에 범려가 데리고 다니는 영혼의 천사가 조금 독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직업이 뭔가요?"
사람들이 저마다 범려가 데리고 다니는 영혼의 천사의 모습에 직업을 물어보았고, 범려는 그때마다 소환사라고 이야기하고서 부연 설명을 달았다.
"제가 숨겨진 조각을 하나 발견해서 천사들을 소환하게 됐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사람들은 범려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럼 공성이 벌어지면 천사들의 활약을 볼 수 있는 건가요?"
"글쎄요. 저도 이 녀석들을 얻은 지 얼마 안 돼서 확실한 장담을 할 수 없겠네요."
범려는 적당히 얼버무렸지만 사람들은 천사들의 능력에 대해 상당한 호기심을 내비쳤다.
'이런, 괜히 천사들을 데려온 건가?'
그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자 앞으로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니야. 천사들이 시선을 좀 끌었다고 해서 나를 해골 제작자와 연관시키지는 않을 거야.'
천사와 해골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연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천사 말고 다른 소환수들은 어디 있나요? 소환사들은 다양한 소환수들을 데리고 있던데."
어떤 유저는 천사 말고 다른 소환수를 볼 수 없나 하는 눈치였지만, 범려가 다른 소환수를 가지고 있을 리 없다. 그래도 변명 정도는 할 수 있다.
"아, 천사들을 소환하면 다른 녀석들은 소환이 안 돼요. 아마 게임 밸런스 문제 때문에 그럴 거예요."
"아쉽군요."
"아쉬워도 어쩔 수 없어서……."
이후에도 범려에게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별로 중요하진 않았다.
"다들 준비하세요. 곧 전투가 시작될 겁니다."
공성전을 준비하는 유저의 목소리가 들리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수성을 하는 길드 사람의 안내를 받고서 각자의 위치를 지정받았다.
"원거리 계열 직업들은 이쪽으로 오시고 근거리 직접들은 반대편으로 가세요. 마지막으로 소환사 같은 특수 계열은 성벽 위로 올라가세요."
범려는 곧장 성벽 위로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이번 공성전은 상당히 빨리 끝날 것 같군."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공성전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보였다.
-공성전을 시작하겠습니다.
-해골 병사들은 공성전에서 목숨을 잃어도 공성전이 끝난 후 다시 부활을 하게 됩니다.
해골 제작자에게만 해당되는 메시지가 따로 뜨자 범려는 미소를 지으며 활을 꺼내들었다.
"오늘은 활을 써야지."
범려는 오늘 섬전의 창을 쓰지 않을 작정이다. 흑검이나 우산 길드 사람들은 해골 제작자가 창을 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정체가 들통 날 염려가 있다.
"영혼의 천사들은 오늘 행동을 하는 데 조심해라. 자칫하면 너희들의 능력이 너무 알려져서 곤란해질 수 있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영혼의 천사들은 범려의 말대로 행동했다.
"성을 점령하라!"
"와아-!"
공성에 참가했던 우산 길드 사람들의 숫자는 100명. 그것도 공격 측에서 용병으로 활동했다.
"쳇! 생각보다 많네."
범려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성에 참가한 것을 확인했다.
"더군다나 우산 길드 사람들은 병사들까지 데리고 왔단 말이야."
용병 & 병사 업데이트가 된 이후에 공성전은 완전히 판도가 바뀌었다. 병사 혹은 용병들을 고용해서 공성전에 참여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저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공성전 병력 단위가 천 단위로 바뀌어버렸다. 한마디로 사람들끼리 몇백 명이 공성전을 하던 시대는 먼 옛이야기가 되었다.
"아주 시커멓게 몰려오는구나."
사람들은 몰려오는 병사들을 보고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을 했다.
"적들이 온다! 궁수들과 마법사들은 공격하라!"
성벽 위에 있던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공격을 펼치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투석기를 가져와라!"
"투석기?"
범려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만한 소리가 들려오자, 그 소리가 난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갔다.
"헉! 진짜 투석기다."
정말 투석기의 모습이 보였다. 이것도 범려가 예전에 공성전에서 투석기를 사용한 것을 본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아내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직접 제작하여 공성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요즘 공성전은 별게 다 있구나."
공성 무기 관련해서는 100퍼센트 범려가 과거에 저질러놓은 일을 보고 다른 유저들이
'나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심어놓은 게 원인이 되었다.
"이후에 뭐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될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다리를 걸어라!"
예전에 공성전은 약간 게임 같은 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실제와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천사들, 사다리를 밀어버려라."
"예! 장군님."
영혼의 천사들은 이내 성벽 위에 걸쳐지는 사다리를 툭 밀어 치워버렸다. 하지만 유저들은 멈추지 않고 사다리를 다시 걸고 오르기를 반복했다.
"충차! 충차를 가져와라!"
쿠쿵!
"밀어라! 성문이 있는 곳으로 충차를 밀어라!"
이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린 공성전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성문이 열리겠군."
범려는 공성전이 너무 빨리 끝나게 될 것 같아 걱정을 했지만, 수성을 하고 있는 길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충차가 온다! 기름 단지를 준비해라! 충차를 불태운다!"
기름 단지까지 동원하면서 충차를 태울 심산인지, 유저들은 불에 잘 타는 기름을 가져와서는 충차가 성문에 가까이 오자 막 던지기 시작했다.
"기름이다!"
"불화살을 쏴라! 충차를 불태운다!"
쉬이익! 화르르!
성문 아래까지 왔던 충차는 기름 단지를 몇 번 뒤집어쓰더니 불화살 한 방에 불타기 시작했다.
"안 돼!"
성문 주변이 불에 휩싸이면서 성문 공략이 어려워졌다.
"하아, 이거 내가 뭘 하기도 전에 치열하게 싸우는구나."
범려는 자신이 나서기도 전에 치열하게 싸우는 양쪽의 군대를 보면서 대단함을 느꼈다.
"후우, 공성전도 슬슬 마무리 단계에 접어 들어가야겠군."
그는 혼자서 중얼거리듯이 떠들어대더니 하늘을 한번 바라보았다.
"왔군."
범려는 미소를 지었다.
후우웅! 후우웅!
문득 범려가 바라본 하늘에서 번쩍이는 빛이 하나 보이더니 그대로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콰쾅!
"크악! 무슨 일이야!"
"투석기가!"
공격을 하는 쪽 진영에 떨어진 빛은 유저들의 생명력을 깎아먹었다.
"쳇! 유저들에게는 홀리 브레스가 약하게 먹히는군."
방금 하늘에서 떨어진 빛은 바로 해골 용이 쓰는 홀리 브레스였다. 하지만 그 피해는 범위 마법을 한 번 맞은 정도 수준에 그쳤다.
쉬이익!
빛줄기가 하나 떨어지고 난 뒤에 해골 용은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스치듯이 지나쳤다.
"헉! 본 드래곤!"
사람들은 하나같이 해골 용을 보고 놀랐는지 기겁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해골 용은 그들을 그냥 지나쳤다. 진짜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헉! 해골들이다!"
해골 용들이 지상을 스치고 지나갈 때 병사들을 떨어트리고 다시 날아오른 것이다. 그 바람에 지상은 이내 난장판이 되었다.
"어떻게 된 거지? 해골들이 어떻게 공성전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거지."
유저들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해골들은 정해진 수순대로 유저들을 공격하고 마법을 뿌리고 있었다.
"이런, 제길!"
"막아라! 해골들을 막아!"
해골 병사들의 활약에 수성을 하는 쪽 사람들은 멍하니 싸우는 장면을 지켜볼 뿐이었다.
"크크크, 제대로 먹히는데."
아무도 범려가 해골 제작자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성문을 열어라! 우리도 나가서 싸운다!"
해골 병사들의 강습 작전에 공성 측이 크게 흔들리자, 성안에 있던 병력들이 바깥으로 나오면서 상황은 더욱더 격화되었다.
"영혼의 천사들아, 가거라. 병사들과 같이 적들을 쓸어라."
"예!"
범려는 성벽 위에서 해골들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와! 이겼다!"
공성전은 수성 측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예기치 못한 해골 병사들의 등장으로 단숨에 끝이 나버린 것이다.
이후 해골 병사들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해골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순식간에 쓸어가 버렸다.
"그런데 누가 해골들을 불러들인 거지?"
수성 측 길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길드원들 중에서 해당되는 사람은 없었다.
"용병들 중에 한 명인가?"
용병들을 고용했던 길드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해골들과 연관이 되는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후, 모르겠군."
수성을 하던 길드원들 역시 마땅히 생각나는 인물이 없었다.
그사이 범려는 공성전에서 용병으로 활동했던 수고비를 받고는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강습은 성공적이야, 우산 길드원들이 이걸 봤다고 하지만 별로 문제 될 것은 없지."
범려의 생각대로 우산 길드원들은 해골 용의 존재와 해골 병사들의 갑작스런 등장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 공성전에 해골 제작자가 있을 수 있지?"
"그러게 말이야. 나도 놀랐어. 해골 제작자가 공성에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얼른 이 사실을 길드 마스터에게 보고해야겠어."
우산 길드원들은 그날로 흑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정말인가? 해골 제작자가 공성전에 나타난 것이."
"그렇습니다."
길드원들은 공성전에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해 올렸다. 그러자 흑검의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당장 간부들에게 비상소집령을 내려라!"
"예!"
그렇게 흑검의 명령으로 우산 길드에 있는 전 간부들에게 소집령이 떨어졌다.
"마스터,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해골 제작자가 돌아왔다. 그것도 이상한 용과 함께 말이다."
"용이라니요!"
간부들은 하나같이 용이라는 단어에 의문을 던졌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있는 녀석한테 들어라."
흑검은 그 당시 공성에 참여한 길드원을 불러서 공성전 상황을 설명하도록 했다.
"그러니까 그 공성전이……."
길드원은 공성전에서 있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했고, 간부들은 그 이야기를 듣자 하나같이 얼굴빛이 바뀌었다.
"마스터, 아무래도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려고 너희들을 비상소집한 거야."
우산 길드 간부들은 그날 해골 제작자에 대항할 만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