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72화 (72/80)

제2장. 돈은 위대하다

"무슨 일이냐, 제마야."

"소식 다 들었다. 성을 구했다고 하더군."

범려는 지금 제마가 관리하는 조선소에 있었다.

"후후, 벌써 소식이 거기까지 간 거냐?"

"당연하지. 내가 이래 봬도 정보가 빠르다고."

"정보가 빠른 게 아니라 헬렌 누. 나. 가 알려 준 거겠지."

"크윽!"

범려가 누나라는 말에 힘을 주면서 제마를 노려보자 그는 신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언제부터 헬렌 누나와 만나게 된 거지?"

"좀 됐다."

"아무 말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이다니, 너도 참 대단하다."

범려는 예전부터 헬렌 누나의 행동이 조금씩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헬렌 누나는 게임에 접속하면 종종 누군가와 귓속말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았고, 게임에 접속하지 않을 때는 로즈나 취선을 통해서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아. 둘이 만나게 되는 거야 어쩔 수 없지. 그것보다 제마야, 너 한동안 성에 들어와서 살아라."

"난 네가 가지고 있는 성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누나가 성이 어디 있는지는 이야기 안 한 모양이군."

"그건 묻지 않았으니까."

범려는 손가락으로 머리 위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하늘을 봐라."

"성이 무슨 하늘에 둥둥 떠다닐 만한 물건도 아니고."

"그래도 봐라."

"뭐가 있다… 고……."

제마는 범려의 말대로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 위에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는 그레이 캐슬을 볼 수 있었다.

"……."

제마가 멍하니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성을 보고 있을 때 범려는 그에게 성으로 갈 수 있는 텔레포트 스크롤을 건네주었다.

"찢어라. 성으로 가는 주문서다."

찌익!

제마는 스크롤을 거침없이 찢더니 성으로 사라져 버렸고, 범려도 스크롤을 찢고서 성으로 돌아갔다.

"범려야, 이게 성이냐, 도시냐?"

"성이야. 상당히 큰 성이지만."

제마도 그레이 캐슬에 왔지만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 이게 성인지 도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제마야, 이곳을 사람들이 와서 살기 좋게 꾸미고 싶은데 어떠냐?"

"이곳을 꾸미려면 한두 푼 드는 게 아닐 텐데."

"그러니 너를 불렀잖아."

"결국, 내 돈이 목적인 거냐?"

범려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면서 '친구 좋다는 게 뭐냐'라는 얼굴 표정을 지었다.

"좋아, 해주지."

"하하하, 역시 너라면 해줄 거라 생각했다."

"그냥 해주는 거 아니야."

"그래도 해주는 게 어디냐."

이후 제마는 드워프 도시에서 드워프들을 돈 주고 고용하더니 성 내부의 대대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기존에 있던 광장은 너무 평범해. 확 뒤집어 엎어야겠어."

특히 기존에 있던 것들의 투박했던 건물들이나 광장 같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는 뭐 이리 썰렁해. 조각상 하나라도 둬야겠어."

제마가 뭐가 필요하겠군, 그러면 다음 날 그 자리에 석상 하나가 떡하니 들어섰고 건물이 너무 밋밋해, 그러면 다음 날 벽이 아주 깔끔하고 멋지게 조각되어 보는 이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거 제마에게 맡겨서 좋기는 한데 성이 너무 바뀌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범려가 우려 섞인 걱정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성은 정말 멋지게 바뀌었다.

겉모양은 웅장하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섬세한 조각과 그림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음, 이제 좀 볼 만하군."

제마는 이제야 마음에 드는지 성의 공사를 멈추었다.

"나도 저택을 이곳으로 옮겨 버려?"

으리으리한 저택을 가지고 있지만 제마는 더 멋진 집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래, 만드는 거야."

제마는 그레이 캐슬로 이사를 하기 위해 범려와 상의를 한 후, 적당한 집을 몇 채 골라서 그걸 부수고 그 자리에 제마 자신의 저택을 짓는 공사를 했다.

"후후후, 집을 완성하면 이곳에 사는 거야."

제마는 바로 드워프 도시에 있는 저택을 팔기 위해 내놓고 이곳에서 살려고 내심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사이 궁귀는 해태 길드원들을 모두 다 찾아서 성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이제야 협회원들을 다 찾다니."

협회원들은 하도 우산 길드에 쫓기다 보니 게임을 접을까도 생각했지만, 궁귀가 직접 찾아와서는 이왕 게임을 접을 때 접더라도 우산 길드에게 한 방 먹이고 접자는 소리에 다들 그레이 캐슬에 모여들었다.

"스승님."

"그래, 제자야. 나 없는 동안 별일은 없었냐?"

"네, 별일 없었습니다. 그나저나 길드원들 설득은 다 하신 겁니까."

"그래. 모두 다 찾아서 설득했단다."

"그럼 우산 길드를 향해서 슬슬 준비해야지요."

"그래야지."

해태 길드원은 하나같이 그레이 캐슬에 집을 얻었고, 지상에서 강해지기 위한 수련을 준비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우산 길드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 것이다!"

"와아! 우산 길드와 전쟁이다!"

"그 전에 우리는 새로운 무기와 장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레벨 업밖에 없다. 가자! 사냥터로!"

"사냥하러 가자!"

그렇게 해태 길드원들이 궁귀를 따라서 지상으로 가버리자, 범려와 제마는 재료 아이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야, 그러니까 나보고 미스릴을 만들어달라는 거야?"

"많이 달라고 하지도 않을게. 해골들 숙련도 올릴 수준이면 된다."

"음, 하지만 그 많은 재료를 어디서 구해."

"철이라면 내가 구입할게. 드워프 도시에서 광산 일 좀 하면 철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으니 문제는 없는데, 미스릴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좋아. 철을 가져다주면 내가 확실하게 그 철을 미스릴로 바꿔주지."

"고맙다, 제마야."

이걸로 철과 미스릴에 대한 걱정은 없어졌다. 대신 범려와 제마가 조금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걸로 금속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됐고, 나머지 재료들은 어떻게 하지?"

"후우, 범려야, 그건 걱정 마. 드워프 도시에 가서 드워프들에게 물건을 구입하면 되니까."

"어? 그게 가능해?"

"이봐. 내가 드워프 도시에 있는 조선소 사장이야. 드워프들과의 친밀도나 인지도는 어느 누구도 나를 따라오기 힘들어."

제마는 드워프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물건을 구입해오면 된다고 했다.

"범려야, 나머지는 걱정하지 마라. 그 대신 너도 돈을 부담해라.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알았어. 내가 그 부분에 관해서는 같이 부담을 지지."

이걸로 그레이 캐슬에 있는 재료 아이템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길드원들의 레벨이 오르고, 그들 나름대로 재료를 구해올 수 있을 때까지는 버틸 수 있겠어.'

범려가 노리는 것은 이것이었다.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할 수는 없지만, 길드원들이 조금씩 물건을 가져오면 나중에는 알아서 굴러가게 되어 있다.

"나머지는 보안 문제만 조심하면 되겠군."

그레이 캐슬을 알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해태 길드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이 찾아올 확률이 높다.

"스승님에게 부탁해서 이곳에 관한 소리를 하지 못하게 해야겠다."

궁귀가 입단속을 시키면 해태 길드원들 중에서는 함부로 떠들고 다닐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차후에 다른 사람이 이곳에 영입된다고 해도 궁도협회 사람들만으로 제한하면 그만이다.

"제마야!"

그때 어디선가 제마를 힘차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따라 범려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제마를 애타게 찾는 그녀가 있었다.

"헬렌 누나?"

"누나!"

제마는 헬렌을 보자마자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더니, 어디 10년 동안 떨어져 있다가 만난 사람처럼 부둥켜안고 난리도 아니었다. 정말 눈꼴셔서 못 볼 정도였다.

"제마야, 언제 여기로 온 거야? 드워프 도시에서 못 나올 것 같다고 했잖아."

"아, 그거 범려가 와달라고 해서 오게 됐어."

"뭐야! 내가 오라고 할 때는 안 오고 친구가 오라니까 냉큼 달려와? 나보다 친구가 더 중요한 거야?"

"아니 누나, 그게 아니라."

제마는 순간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한번 삐친 헬렌의 마음을 돌려놓기란 돌아앉은 돌부처 석상만큼 힘들었다.

"크크크, 꼼짝도 못하는구나. 불쌍한 것."

"음, 헬렌 언니가 남자 하나는 확실하게 휘어잡았구나."

"헛! 로즈야, 언제 온 거야?"

"방금."

귀신같이 쥐도 새도 모르게 범려 옆에 나타난 로즈는 헬렌과 제마의 모습을 보면서 범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으음, 나도 저렇게 할 걸 그랬나."

"으잉?"

범려는 순간적으로 로즈의 말을 듣고서 당황했다.

"무슨 소리야? 저게 뭐가 좋다고. 얼른 사냥이나 하러 가자."

범려는 여기에 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로즈를 끌고 지상으로 내려가 버렸다.

* * *

"후우, 궁귀 님, 오랜만에 사냥을 하니 기분이 상쾌합니다."

"그렇지. 오랜만에 협회원들과 움직이니 정말 날아갈 것아."

궁귀는 지금 해태 길드원들과 열심히 사냥을 하는 게 즐거웠다. 더군다나 그 저주받을 우산 길드원들이 보이지 않자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궁귀 님, 그러고 보니 소문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문?"

"궁수 계열 직업 중에서 이상한 직업이 하나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상한 직업?"

"저도 소문으로밖에 듣지 못해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주무기로 검과 활을 능숙하게 다루는 직업이라고만 들었습니다."

"주무기로 검을?"

궁귀는 궁수 직업의 단점을 잘 알고 있다. 그건 근접 무기에 있다.

서브 웨폰 시스템으로 다들 검을 착용하고 있지만 거의 쓸데가 없고, 사용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공격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근접 전투 관련된 스킬은 하나도 없지.'

궁귀는 궁수들의 약점을 극복할 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 직업에 관해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나?"

"아쉽게도 소문으로만 떠돌고 있어서 정확한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궁귀는 이전에 우산 길드와 전투를 할 때 근접 전투의 위력이 무시 못 할 수준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다들 그 직업에 관해서 조사를 해보자.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

"알겠습니다, 궁귀 님."

궁귀가 협회 사람들에게 그 직업에 관해서 조사를 지시하자 곧바로 다들 정보를 모으기 위해 흩어졌다.

"나도 나름대로 조사를 시작해볼까."

궁귀는 그 자리에서 로그아웃을 하더니 캡슐에서 나왔다.

"아, 어디 누구부터 만나야 할까."

캡슐에서 나온 안서진은 명함첩을 뒤적거리더니 한 사람의 명함을 발견했다.

"아, 그래. 이 친구한테 한번 연락을 해보면 되겠군."

안서진은 핸드폰을 들더니 명함에 나온 번호를 하나씩 누르고는 바로 통화를 눌렀다.

"그동안 잘 지냈는가."

(어이쿠, 이게 누구야. 자네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나에게 전화를 다했는가.)

"다른 게 아니라 요즘 게임을 시작했거든."

(게임? 자네가 게임을 시작했다고?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군.)

"하하하, 그게 자네도 알다시피 나한테 캡슐이 100대 정도 생겼지 않은가. 그것도 공짜로."

(음, 그 캡슐을 얻고 나서 게임을 시작한 모양이지. 무슨 게임인가?)

"자네가 협찬을 해주는 게임 중에 하나지. 『판게아 월드』라고."

안서진이 『판게아 월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자 전화를 받고 있는 상대는 깜짝 놀라면서 소리쳤다.

(아니, 자네도 그걸 하나?)

"물론이지, 최강석 회장."

최강석, 알프라 그룹의 명예 회장이다. 이전에는 현 회장으로 활동을 하다가 최근 일선에서 물러나 지금은 명예 회장직을 하고 있다.

(허허, 그래. 나한테 이걸 알리고 전화를 했다면 나를 한번 보고 싶겠지?)

역시 전 알프라 그룹의 회장을 역임했던 사람이라 눈치가 귀신이었다.

"허허, 내가 무슨. 그런데 장소는 어디로 잡을까?"

(지금 이곳으로 오게. 식사나 하면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어봄세.)

"알겠네. 내가 그리로 가지."

전화를 끊더니 안서진은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최 회장을 만나기 위해 직접 몸을 움직였다.

"어서 오게. 자네를 목 빠지게 기다리느라 어깨가 뻐근하던 참이었는데 때맞추어 왔군."

"최 회장, 목 빠지게 기다린 사람치고 너무 멀쩡한 거 아닌가."

"하하하, 역시 안 회장 농담은 여전하구만."

두 사람은 아주 반갑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같이 자리했다.

"그래,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본론에 들어가지."

"누가 최 회장 아니랄까 봐 성질도 급하기는……."

안서진은 이런 성질 급한 최 회장과 꽤나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요즘 『판게아 월드』에서 떠도는 소문이 하나 있더군. 그 소문의 진실을 알고 싶어서 그렇다네."

"게임에 관련된 내용의 소문이면 개발자들과 이야기하고 싶겠군."

"역시 최 회장."

"좋아. 그들과 자리를 주선해주지. 아들 녀석한테 연락하면 일을 해결해줄 거야. 그리고 나도 그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기도 하고."

"설마 최 회장, 그 나이에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안서진은 약간 의심스러운 눈빛을 하면서 물었다.

"하하하, 자네도 하는데 나라고 안 할까!"

"그렇군. 자네 역시 『판게아 월드』를 하고 있었군."

두 사람은 결국 같은 게임을 하면서 개발자들과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최 회장, 직업이 뭔가?"

"상인이지. 지금은 작은 상인 길드 하나 만들어서 생활하고 있네."

"상인 길드? 자네가 만든 상인 길드라면 함부로 보기 힘들겠군."

"뭐, 그냥 단순하게 재미삼아 하는 거라 그리 대단하다고 볼 수는 없네."

최 회장은 젊었을 때 맨몸으로 알프라 그룹을 만든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인물이 재미삼아라고 말은 하지만 쉽게 볼 성질이 아니다.

"실은 나도 협회원들과 작은 길드를 만들었어."

"오! 자네가 만든 길드라면 절대 어설픈 길드는 안 나오지. 그래, 그 길드 이름이 뭔가."

"해태 길드라고 그냥 작은 길드일세."

안서진이 해태 길드라고 하자 최 회장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 해태 길드라면 나도 익히 들었지. 그곳에 해골 제작자가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던데 그게 사실인가?"

해골 제작자는 『판게아 월드』 안에서는 연예인과 다름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음, 요즘 해태 길드 하면 그것만 떠오르나 보지. 뭐, 어쩔 수 없지. 제자가 잘난 덕분에 길드 이름이 빛나고 있으니 말이야."

"제자? 해골 제작자가 자네 제자인가?"

"그러면 안 되나? 그것도 내가 녀석을 중학교 때부터 직접 가르친 제자지."

"하하하, 역시 자네야. 제자를 키워도 그런 인물을 키우다니."

최 회장은 크게 웃으며 안서진에게 대단한 인물을 키워냈다면서 박수를 쳤다.

"이번에 올 때 그 제자를 한번 볼 수 있을까?"

"연락은 해보지. 하지만 지금 한창 연애에 푹 빠져 있어서 올지는 나도 모르겠네."

"나이가 몇인데?"

"이제 21살."

"크으, 신나게 돌아다닐 나이구만."

최 회장은 희성의 나이를 듣고는 한창 그럴 나이라면서 말을 마쳤다.

"그럼 이번 주 안으로 약속을 잡아서 연락을 주지. 자네 제자도 데리고 오게."

"내 제자에게 관심을 너무 두는 거 아닌가? 해골 제작자라서 데리고 오라는 거라면 난 이야기도 안 꺼내겠네."

"하하하, 안서진 제자로서 데리고 오라는 거라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최 회장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안서진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안서진은 내심 자신의 제자를 노리는 최 회장이 왠지 껄끄러웠다.

'최 회장 방송국 하나 가지고 있던데, 거기에 내 제자를 등장시키고 싶은 모양이군.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안서진이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 최 회장은 속으로 능글맞게 웃었다.

'해골 제작자라니, 이거 의외의 수확이군. 그렇지 않아도 국장이 좋은 사람 하나 보내달라고 했는데 마침 잘됐어.'

두 사람은 입으로 대화를 한 건 아니지만 마음으로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개발자들과의 만남은 며칠 안에 연락이 갈 거야."

"알겠네. 기다리지."

두 사람은 이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름대로 수확이 있었다.

"제자 녀석에게 연락을 한번 해야겠군."

안서진은 집으로 돌아오자 바로 희성에게 연락을 취했다.

(여보세요.)

"제자냐."

(스승님,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없었다. 그것보다 며칠 뒤에 내가 『판게아 월드』 개발자들과 어울리는 자리가 하나 생겼다. 거기에 올 생각이 있느냐?"

안서진은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바로 본론만 간단하게 전했다.

(정확한 날짜가 언제인가요?)

"이번 주 안에 연락을 준다고 하더구나. 그래봤자 3일밖에 남지 않았군."

(그럼 가겠습니다. 3일 사이에 중요한 약속은 없으니.)

"알았다. 날짜가 정해지면 내가 다시 연락을 주마."

(감사합니다, 스승님.)

"감사할 건 없다. 내가 심심해서 너를 부르는 거니까."

안서진은 내용을 전달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녀석, 가겠다고 하는 걸 보면 조금 관심이 있는 모양이군."

희성은 안서진의 생각대로 약간의 관심이 있었다. 개발자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스승님이 어떻게 개발자들과 만날 수 있는 건지 신기하네."

"무슨 전화야?"

"아, 스승님이 『판게아 월드』 개발자들이랑 약속을 잡으려고 한대."

"진짜? 대단하신 분이네."

희성은 지금 미진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간다고는 했는데 막상 생각해보니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다."

"자기야, 그러지 말고 간단하게 밥 한 끼만 먹고 온다고 생각해."

"그럴까?"

두 회장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건 희성은 간단하게 밥이나 한 끼 먹고 조용히 빠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희성이 전화를 받은 뒤 정확히 30시간 뒤에 다시 연락이 왔다.

(제자야.)

"네, 스승님."

(날짜 잡혔다. 너 혼자 가면 약속 장소 찾아가기 힘드니까 나하고 같이 가자. 내일 저녁 5시에 집으로 오너라.)

"네, 스승님."

희성은 안서진의 말대로 5시까지 스승님의 집으로 갔다.

"시간 맞춰 왔구나. 가자."

희성이 도착하자마자 안서진은 바로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해버렸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희성은 무슨 일이 있어서 안서진이 『판게아 월드』 개발자들을 만나는 약속을 잡았는지 궁금했다.

"스승님, 어떻게 『판게아 월드』 개발자들을 만나자는 약속을 잡은 건가요?"

"별거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을 통해서 이야기 좀 나누고 싶다고 했더니 자리를 주선해주는구나."

희성은 이때 속으로 스승님의 인맥의 끝이 어디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왔다."

안서진이 멈춘 곳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고급 식당이었다. 식당 안은 규모에서나 그 안에 있는 인테리어가 어마어마했다.

식당 안에 들어서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안서진의 앞으로 오더니 말을 걸었다.

"손님, 예약을 하셨습니까."

"최강석 회장으로 예약석을 찾고 있소."

"최 회장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예약석을 찾고 계시면 이쪽으로 오시지요."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최강석 회장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안 회장, 왔는가. 자리에 앉지."

안서진은 희성과 같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최 회장은 희성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같이 온 동행이 있다면 어서 소개시켜 주지 않고 뭐 하나, 안 회장."

"역시 성질 급한 최 회장. 그럼 소개하지. 이 녀석이 내 제자라네."

"하하하, 자네가 그 유명한 안서진의 제자란 말이지."

"네. 처음 뵙겠습니다. 전희성이라고 합니다."

희성은 자신을 소개하고는 최 회장이 내민 손을 잡으면서 악수를 받았다.

안서진은 최강석 회장의 눈빛을 보더니 그의 목적이 해골 제작자인 희성을 노린다고 느꼈다.

"역시 내 제자를 꽁꽁 감춰놓는 건데 괜히 데려왔군."

"하하하, 어디 자네 제자가 금덩어리라도 되는가. 꽁꽁 감춰놓게."

"그럼, 당연하지. 나한테는 금덩어리야."

희성은 안서진의 알 수 없는 칭찬에 왠지 모르게 낯이 뜨거워졌다.

"그것보다 몇 명이나 초대했지?"

"각 개발팀의 팀장들만 불렀네. 5명 올 거야."

팀장들만 5명이면 개발팀이 5개 있다는 소리다. 그만큼 『판게아 월드』의 개발팀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긴, 그 게임 좀 제대로 만들기는 했지."

안서진도 『판게아 월드』를 하면서 그 세세함과 웅장함에 박수를 칠 정도다.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5명의 팀장들이 동시에 들어왔다.

"하하하, 이제 오는군."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각 팀장들은 최강석 회장을 보고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만큼 최 회장의 명성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어서 자리에 앉게."

팀장들은 자리에 앉으면서도 아주 조심스러웠다.

"하하하, 너무 긴장들 하지 말게나. 자네들이 긴장하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나?"

최 회장이 주변의 분위기를 확 바꿔주는 말을 하자, 팀장들도 잔뜩 얼어 있던 어깨가 조금 풀리면서 얼굴에 미소가 살짝 어렸다.

"요리를 가져왔습니다."

"어서 이곳으로 가져다 놓게나."

최 회장이 미리 주문했는지 직원이 착착 음식을 가져왔다.

"이제 음식도 왔으니 어서 먹게나."

희성은 이때 식당 직원들이 가져온 음식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것아, 이런 음식 처음 본다고 그렇게 침을 꿀꺽 삼키면 어떻게 하느냐."

안서진은 작은 소리로 음식 때문에 희성의 들뜬 마음을 진정시켰다.

"네……."

희성은 주변 상황을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자신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생각했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그냥 입을 다물면서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일 것 같군.'

『판게아 월드』 개발자들이 있고 알프라 그룹의 명예 회장인 최강석이 있다. 더군다나 스승님까지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자리였다.

"아, 그러고 보니 옆에 있는 이 사람을 소개시켜 주지 않았군. 여기는 대한궁도협회장을 맡고 있는 안서진 회장이네."

"아! 대한궁도협회라면 전에 『판게아 월드』 초기 제작 당시 활과 화살의 움직임을 모션 캡처하러 한 번 간 적이 있지요."

"그럼 몇 년 전에 협회에 찾아오셔서 부탁을 하신 분?"

안서진은 그 당시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게임사에서 왔는데 활과 화살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싶다면서 찾아온 손님이었다. 그 자리에 개발팀장이 있었던 것이다.

"이거 반갑습니다. 3년 전에 찾아오신 걸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다시 뵙게 되다니요."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그때 회장님의 궁을 다루는 솜씨는 저희들도 무척 놀랐으니까요."

당연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활솜씨를 자랑하는 안서진이다.

"그럼 옆에 계시는 분은 제자 분입니까?"

"하하하, 그렇습니다."

희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전희성이라고 합니다. 『판게아 월드』를 즐기는 유저로서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하하, 제자 분도 저희 게임을 즐겨 주시는군요. 저희야말로 반갑습니다."

희성과 악수를 한 사람은 개발 3팀장의 모중헌이었다. 캐릭터에 관련된 모든 일을 주관하는 팀장으로, 각 직업과 스킬 등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저는 모중헌이라고 합니다. 개발 3팀을 맡고 있지요. 아, 그리고 다른 팀장님들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3팀장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각 팀의 팀장들을 소개했다.

"개발 1팀은……."

여기서 다른 팀장들을 소개했지만 가장 시선이 집중되었던 사람은 3팀장과 4팀장이었다.

개발 4팀은 시나리오 관련 퀘스트를 담당하고 있다. 지금 모든 게임의 퀘스트는 4팀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머지 1팀은 몬스터 관련, 2팀은 던전과 지형 관련, 5팀은 NPC들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개발팀의 모든 사람들은 각 팀마다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에, 일을 하다 보면 이리저리 움직이며 연동되는 일을 할 때가 많았다.

"다들 대단하신 분들이군요."

"무슨 말씀을. 그냥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다 보니……."

개발팀장들은 겸손을 떨었지만 안서진의 눈에는 개발 4팀의 팀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시나리오 관련이라면 분명 소문에 떠도는 직업의 정체를 알 거야.'

안서진은 소문의 직업을 알아내기 위해, 어떤 직업이건 직업 퀘스트를 하기 때문에 절대 피할 수 없는 4팀장을 노렸다.

"그럼 여러분을 처음 만난 기념으로 직접 술을 따라드리지요."

"아니, 무슨 말씀을. 오히려 저희들이 영광입니다."

팀장들은 안서진의 술잔을 공손하게 받았다.

'아, 개발자들과 만나는 자리가 이런 자리구나.'

희성은 개발자들과의 자리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이 또래는 없었고 다들 30살 이상 먹은 얼굴들이었다.

'후우, 왠지 재미가 없군.'

희성은 개발자들을 만나서 여러 가지를 묻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분위기가 윗사람들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술을 즐기며 가벼운 이야기가 오고 가는 사이, 안서진은 개발 4팀장에게 다가가더니 살짝 게임 스토리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4팀장님이 스토리에 관해서 일을 하신다고 하셨죠?"

"저에게 그렇게 존대를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 낮추십시오."

안서진은 4팀장의 말대로 말을 낮추어 다시 물었다.

"그럼 다시 묻지. 게임 스토리에 관해서 일하고 있지?"

"제가 모든 스토리 및 퀘스트에 관여를 하고 있죠. 뭔가 궁금하신 게 있으세요?"

"아니, 다른 게 아니고 내가 게임에서 궁수라는 직업을 선택했는데, 그 궁수라는 직업에 관련된 스토리가 궁금해서 말이지."

"아, 그러시군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스토리가 궁금한데 알려 줄 수 있나?"

"물론이죠. 궁도협회장님이 궁금해 하시는데 제가 못 알려 드릴 이유가 없죠."

4팀장은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 없다면서 입을 열었다.

"궁수들의 직업의 시초는 과거에 있던 활 하나로 영웅의 자리에 올랐던 할디르라는 엘프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뒤로 영웅 할디르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의 실력을 배우려는 자들이 하나 둘 나타나면서 뛰어난 궁수들과 길드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할디르라는 엘프가 살면서 길드를 만들었나?"

"아뇨. 할디르를 존경하던 한 인간이 만들었습니다. 그 인간은 한때 검을 쥐고 살던 용병이었는데, 할디르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스스로 검을 꺾고 궁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럼 그 인간이 궁수 길드의 창시자게 되겠군."

"맞습니다. 그 뒤로는 세상이 변하면서 석궁 같은 무기가 나오고 궁수들도 거기에 맞게 직업이 갈라지기 시작했죠."

직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는 말에 안서진은 두 눈을 반짝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그럼 그 직업들은 총 몇 가지로 나눠지지?"

"지금 활을 주무기로 삼으면서 생긴 직업은 20여 종으로 갈라져, 그중 절반은 숨겨진 직업으로 등록이 되어 있고 나머지 10개의 직업은 현재 공개가 된 상태죠."

활을 다루는 직업이 20여 종이나 된다는 말에 안서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걸렸다.'

안서진은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물었다는 생각이 들자, 이제 물고기의 힘을 빼야 할 단계가 되었음을 느꼈다.

"허허허, 활을 다루는 직업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네. 『판게아 월드』는 역시 대단한 게임이야."

"하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직업들 중에서 퀘스트를 만들려면 힘들겠어. 거기에 관련된 NPC들도 하나 둘이 아닐 텐데 말이야."

"힘들다니요. 오히려 즐겁습니다."

4팀장은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대단한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천직이군."

안서진이 4팀장의 직업이 천직이라며 칭찬을 하자 그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사람의 기분을 이렇게 띄워놨으니 이후에 무슨 질문을 해도 손쉽게 답변이 나올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다른 팀장들이 게임에 관련된 보안 사안이 나올 경우 훼방을 놓을 것을 대비해 안서진은 최 회장에게 눈치를 줬다.

"어이쿠, 그러고 보니 팀장들 결혼은 하셨습니까."

"그게… 다들 솔로라서……."

팀장들은 하나같이 일에만 몰두하느라 연애조차 제대로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허허, 큰일이군. 이런 유능한 인재들이 혼자라니. 이거 내가 나서서 중매라도 서야지 안 되겠구먼."

최 회장이 나서서 중매라도 해야 한다며 팀장들의 눈과 귀를 빼앗고 있는 틈에 안서진은 4팀장의 눈과 귀를 붙잡고 있었다.

"그럼 그 많은 궁수 관련 직업들 중에서 다른 무기도 같이 다루는 직업이 있는 건가?"

"그중 궁수를 기반으로 전직하는 직업은 2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레인저이고 다른 하나는 헌터입니다."

안서진은 그 두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자 이제 본격적인 내용을 들을 차례가 되었음을 느꼈다.

"허허, 그런 뛰어난 직업이 있다니. 그 직업은 둘 다 대단한 직업이겠군."

"하하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격력은 궁수와 크게 차이 나지 않지만, 두 직업의 특성상 좀 더 다양하고 폭넓게 활동이 가능한 직업입니다."

4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판게아 월드』의 보안 사항을 조금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두 직업 중 근접에 더 비중을 두는 직업은 뭔가?"

"단연 레인저입니다. 헌터 역시 근접에 능하지만 함정이나 야수를 다루는 쪽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안서진은 이 뒤에도 두 직업의 특징적인 것을 더 들었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한 가지였다.

'레인저로 가야겠군.'

헌터보다는 레인저가 적성에 더 어울린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그 레인저가 되는 방법은 없나?"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엘프 도시에 숨어 있는 레인저들을 찾으시면 됩니다. 그럼 그 레인저가 퀘스트를 줍니다."

안서진은 그 이야기를 듣자 바로 표정이 온화해지면서 레인저가 되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필요한 것을 얻었군.'

역시 세상을 오래 살아온 어른답게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이 아주 능숙하고 대단했다.

그걸 옆에서 보고 있던 희성은 스승의 능력에 감탄을 하고 말았다.

'역시 스승님은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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