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레인저(Ranger)
그날이 있고 나서 다음 날, 해태 길드 전원이 그레이 캐슬에 모여 궁귀를 기다리게 되었다.
"역시 회장님이야. 소문으로만 흘러 다니는 직업의 내용을 알아내시다니."
"그러게 말이야. 회장님은 정말 대단해."
길드원들이 다들 감탄을 하는 사이 궁귀가 게임에 접속했다.
"회장님!"
"회장님!"
길드원들은 하나같이 크게 외치면서 궁귀의 등장을 환영했다.
"자세한 내용은 부회장을 통해 들었을 것이다. 긴말은 하지 않겠다. 새로운 직업을 구하러 가자!"
"가자-!"
궁귀의 그 짧은 말에 협회원들은 광분을 하면서 엘프 도시로 향했다.
"스승님, 혹시 제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불러주세요."
"그러지."
대답과 동시에 안서진은 곧바로 협회원들을 따라갔다.
범려는 스승이 레인저라는 직업으로 전직하기 위해 가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직업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모르지만, 퀘스트를 하는 데 있어서 그냥 손쉽게 퀘스트를 주진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죽도록 고생만 하는 퀘스트를 줄 터. 그건 『판게아 월드』의 전통이나 다름없었다.
'레인저는 어떤 직업일까?"
범려는 혼자서 레인저라는 직업을 생각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때 이야기를 들어봐서는 근접 전투에도 능한 직업이라고 했는데.'
사실 4팀장이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그는 레인저로 전직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뿐이지 그 직업의 특징은 3팀장이 알고 있었다.
아쉽게도 그때 3팀장은 최 회장의 술 상대를 하느라 다른 곳에 눈 돌릴 틈이 없었다.
'지금의 스승님에게는 전직을 하는 게 중요하겠지 그 직업의 특성은 나중 문제야.'
지금의 궁귀는 궁수의 한계점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서 레인저같이 근접전도 원활하게 펼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직업을 원하고 있었다.
한편, 해태 길드원들은 엘프 도시 바깥을 수색하면서 레인저들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레인저들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 여기도 아니군."
궁귀는 엘프 도시 주변의 숲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의 수색 방법은 동물 발자국을 근거로 주변을 훑듯이 찾고 있었다.
"이건 동물, 이건 몬스터, 이건 사람. 음, 이것은 엘프인데 발자국이 깊이 파인 걸 보니 무게가 좀 나가는군."
궁귀가 발견한 발자국은 무게가 나가 보였지만 왠지 이상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신중하게 살펴보았다.
"몸무게가 무거운 게 아니라 뭔가를 들고 있을 때 나타나는 깊이 차이야."
궁귀는 엘프의 발자국이 검과 활, 그 외의 무기들을 가지고 있어서 발자국이 깊게 파인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 명이 아니군."
더군다나 같은 발자국이 몇 개 더 있었다.
"서너 명 정도군."
궁귀는 땅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서 엘프들을 추적했다.
그렇게 추적하기를 3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몇 명의 엘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발견된 엘프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엘프들이었지만, 그들의 몸을 보니 다른 엘프들보다 체격이 좋았다.
"엘프들도 운동을 하는 건가? 다들 몸이 좋은데."
궁귀는 조심스럽게 엘프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으응?"
엘프들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그들 중에 한 명이 다가오더니 무미건조한 말투로 궁귀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온 거지?"
"허허, 말투가 이렇게 딱딱해서야."
"말투가 딱딱한 것은 별로 의미 없다, 인간."
엘프는 궁귀가 무슨 목적으로 이곳을 찾아왔는지 그게 궁금하지 다른 건 필요가 없었다.
"이 주변에 레인저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을 찾던 도중에 그대들을 발견하게 됐다네."
궁귀가 레인저를 찾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하자, 엘프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더니 다시 궁귀에게 시선을 옮겼다.
"레인저들을 찾아왔다고?"
"그렇다네. 레인저들을 찾다가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지."
궁귀는 이곳에 있는 엘프들이 조금 특이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이들이 레인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 그들을 찾아서 무엇을 하려는 거지?"
"허허허, 엘프들은 인간들이 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군."
엘프들이 호기심을 일으키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손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뭐 좋아. 알려 달라고 하니 알려 주지. 레인저가 되려고 그들을 찾는 중이다."
궁귀가 레인저가 되려고 한다는 소리에 엘프들의 표정은 묘하게 변해버렸다.
"정말 레인저가 되기 위해 레인저들을 찾는 건가?"
"물론이지. 내가 거짓말할 이유는 없으니까."
궁귀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들이 레인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싹 지우고 엘프들을 다시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천천히 보니 이들은 단순한 엘프들이 아니야.'
이후에도 엘프들과 대화를 좀 더 나누어본 결과 궁귀는 이들이 레인저라는 확신이 들었다.
"인간, 마지막으로 묻겠다. 진정 레인저가 되고 싶은가?"
"당연하지."
궁귀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자 엘프들도 결심이 섰는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레인저들이다. 레인저가 되고 싶다면 잘 찾아왔다."
"허허허, 고맙군."
궁귀는 바로 길드원들에게 이 소식을 귓속말로 알렸고, 해태 길드원들은 궁귀가 지정해준 장소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인저가 되는 조건은 까다롭다. 우리들은 당신이 레인저를 하기 위해 적합한 사람인지 판단하고 싶다."
"시험을 원하는 건가? 그렇다면 응해주지."
궁귀는 엘프들이 내주는 시험을 웃으면서 받겠다고 했다.
-특수 작전
자연의 도로시 지역 끝자락에 존재하는 아주 위험한 장소가 하나 있습니다. 그곳은 아무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안개 숲입니다.
그곳의 정체를 파악하십시오.
난이도:B
완료 조건:안개 숲의 정체를 파악하라.
보상:레인저
궁귀는 퀘스트를 받자 살짝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인상을 찡그렸다.
"난이도 B라니. 보통 어려운 퀘스트가 아니군."
단순한 직업 퀘스트라고는 전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만큼 레인저라는 직업이 특별하다는 의미인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솔직히 궁귀는 이 퀘스트가 혼자서 깰만한 것이 아니라 여기고 범려에게 연락을 취해 자연의 도로시로 불러들였다.
"스승님, 그게 정말입니까? 직업 퀘스트 난이도가 B라는 거."
"그렇다, 제자야. 나도 사실 퀘스트를 받아서 기분이 좋은데 난이도를 보니 퀘스트를 할 맛이 뚝 떨어지는구나."
"그 퀘스트 장소가 어디입니까?"
"안개의 숲이라고 하는구나."
휘이익!
범려는 궁귀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해골 용들이 범려의 근처로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스승님, 타시죠."
"제자야, 이거 안전하냐?"
"당연히 안전하죠."
궁귀는 범려가 안전하다는 말에 해골 용 위에 올라탔지만 해골 용이 움직일 때마다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가자, 안개 숲으로."
해골 용들은 날개를 펄럭거리며 하늘 위로 날아오르더니, 일정 고도 이상이 되자 쏜살같이 창공을 가로질렀다.
"저곳이 안개 숲이군."
해골 용들은 20분도 안 돼서 목표 지점인 안개 숲에 도착을 했다.
"스승님, 그런데 다른 길드원들은 어디 있습니까?"
"지금쯤이면 퀘스트를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럼 다 같이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안개 숲에 길드원들이 올 거야. 그때 같이 가면 된다."
궁귀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퀘스트를 받은 길드원들이 하나 둘 안개 숲 입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 왔는가?"
"네, 궁귀 님. 모두 다 모였습니다."
"그럼 숲으로 들어가자!"
이후 많은 이들이 숲으로 들어가자 안개 숲은 여타 다른 곳들과 다르게 음침하고, 으슥한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영혼의 천사, 주변을 수색하라."
"예, 장군님."
범려는 해골 병사들과 같이 안개 숲에 진입을 했지만, 주변의 안개가 너무나 지독해서 영혼의 천사를 통해 주변 수색 임무를 맡겼다.
"병사들은 여기서 대기한다."
범려는 영혼의 천사가 돌아올 때까지 숲 입구에서 대기하도록했다.
"아무래도 이곳은 군대가 움직이기에 불편한 점이 너무 많군."
다른 곳과 다르게 이곳은 모두가 함께 움직이기에는 안개가 크나큰 걸림돌이 되었다.
"스승님, 이곳에서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겠습니다."
"나도 그 생각했다."
궁귀는 곧장 길드원들에게 앞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될 때까지 조심하도록 지시했다.
"장군님."
"그래. 앞의 상황은 어떠냐?"
"심각합니다. 땅바닥은 여기저기 갈라져 작은 구덩이가 수없이 있고, 그 구덩이 안에는 팔뚝만 한 구더기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범려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해골 마법사들과 대마법사들을 불렀다.
"마법을 한 방에 쏟아 붇는다. 알겠지."
"예, 장군님."
범려는 앞에 있는 것들을 단 한 차례의 범위 마법으로 쓸어버릴 계획이었다.
"해골 용들도 동참해라."
"예, 장군님."
해골 용들은 지상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홀리 브레스를 한 방 날릴 태세를 취했다.
"홀리 어벤저 마법으로 간다."
범려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든 해골 마법사들과 대마법사들이 앞으로 나오면서 마법을 시전했다. 그와 동시에 해골 용들의 홀리 브레스가 지상을 향해 떨어지자, 하늘에서는 수십 줄기의 빛기둥이 떨어지며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영혼의 천사, 확인해라."
"예!"
영혼의 천사들이 안개 속으로 날아 들어가더니 3분도 안 되어서 나왔다.
"깨끗합니다."
"그럼 진입한다."
해골 군대가 앞장서자 그 뒤로 길드원들이 따라갔다.
"다들 바닥에 있는 구덩이를 조심해라!"
구더기들을 마법으로 한순간에 쓸어버렸다고 하지만 그 구덩이 속에서 언제 구더기들이 다시 등장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루이."
"예, 주인님."
"이 주변의 지도를 만들어라. 몬스터의 분포 지역도 같이 만들면 좋겠구나."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범려는 영혼의 천사들만 가지고는 지금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 것 같아서 루이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쥐들은 영혼의 천사들보다 정찰 속도는 느리지만 완벽에 가까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
아니나 다를까 대략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루이가 명령을 내린 쥐들이 모여들었다. 루이는 곧바로 그 정보를 종이에 적고 지도를 그리면서 파악을 해나갔다.
"주인님, 안개 숲의 지도입니다."
범려는 루이가 건네준 지도를 받았다. 루이가 만들어준 지도는 너무나 상세해서 하늘에서도 파악이 안 되는 안개 숲의 정체가 여실히 드러났다.
"안개 숲이 이렇게 생긴 곳이군."
지도의 그림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안개로 인해서 그 단순함이 사라지고 음침함이 서려 있게 된 것이다.
"어라? 구더기가 있는 곳은 의외로 작구나."
안개 숲의 크기에 비례해서 방금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곳은 작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곳을 제외하고는 다른 몬스터들이 분포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 포그 워리어는 뭐지?"
-포그 워리어
레벨:247
무리의 숫자:10
특징:안개가 있는 곳에서만 활동함.
범려는 포그 워리어의 레벨과 특징만 간단하게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숲 전체적으로 분포가 되어 있는 녀석치고는 특별한 게 없는 건가?"
범려는 안개 숲에서 아직까지는 포그 워리어를 본 적이 없었다.
"포그 워리어는 어떻게 생긴 녀석일까? 특별한 게 없는 걸 보면 상당히 단순한 녀석일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 포그 워리어의 정체를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화르르! 화르르!
범려의 옆에 서 있던 영혼의 천사들이 갑자기 범려의 등 뒤로 달려가더니, 신성한 불꽃을 마구 토해내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무슨 일이야!"
"장군님, 뒤로 피하십시오!"
영혼의 천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범려는 위기를 감지하고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해골 병사들이 서둘러 범려의 근처로 달려와 주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챙챙! 캉캉!
갑자기 여기저기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해골 병사들이 자연스럽게 진형을 짜면서 허공에 대고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런, 제길.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야 지휘를 할 거 아냐."
"장군님! 포그 워리어입니다."
"포그 워리어라니? 몬스터가 나타난 거잖아. 그런데 왜 안 보여? 설마!"
범려는 순간 머릿속으로 무언가 스쳐 지나가자 눈빛이 스산하게 바뀌었다.
"포그 워리어. 말 그대로 안개로 이루어진 몬스터구나!"
범려가 황급히 손을 흔들며 해골들을 지휘해나가자, 그 많은 해골들이 순식간에 원진을 형성하면서 방어에 돌입했다.
"제자야, 무슨 일이냐!"
"스승님,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몬스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무슨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거냐."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병사들이 반응하는 것을 보면 이곳에 몬스터가 있습니다. 저기 보이는 영혼의 천사도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몬스터라니!"
"몸 자체가 안개처럼 흐릿하게 생겨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궁귀는 범려의 말을 듣고는 영혼의 천사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영혼의 천사들은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듯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음! 저건?"
궁귀는 영혼의 천사의 전투 장면을 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범려를 불렀다.
"제자야, 저기를 봐라. 안개 속에서 빛나는 저것을!"
"아니!"
범려는 궁귀가 가리키는 쪽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한 쌍의 붉은 눈동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승님, 길드원들에게 저 붉은 눈동자가 보이는 곳을 공격하라고 알려 주세요."
"알았다."
궁귀가 바로 길드원들에게 붉은 눈동자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공격 명령을 내리자, 곧 수많은 화살들이 그 한점을 향해 집중 공격했다.
"붉은 눈동자를 찾아라!"
범려가 해골들에게 붉은 눈동자를 찾으라고 하자, 병사들은 두리번거리며 붉은 눈동자가 있는 곳을 살폈다.
"저쪽이다!"
"쏴라!"
해태 길드원 역시 붉은 눈동자가 보이면 여지없이 활을 당기면서 공격을 펼쳤다.
"숲 안쪽으로 들어간다!"
범려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자연스럽게 진을 형성한 채 숲의 안쪽으로 전진했다.
숲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포그 워리어들은 계속 나타났고, 한번 싸울 때마다 열 무리는 기본으로 달려들었다.
"스승님, 이 퀘스트 완료 조건이 뭐죠?"
"안개 숲의 정체를 밝히는 거지."
"정체라……."
범려는 숲 안쪽으로 이동을 하면서도 궁귀의 퀘스트를 어떻게 해야 깰 수 있는지 고민했다.
'숲의 정체라면 혹시 이것일까?'
루이를 통해서 만든 지도에는 안개 숲 중심부에 그리 크지 않은 연못이 하나 있었다.
'이 연못에 뭔가 있는 건가?'
범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골 병사들에게 연못이 있는 곳으로 전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해골 병사들은 범려의 명령대로 숲 중심부에 있는 연못으로 길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대로 한다면 어디를 가든 이 안개 속을 하염없이 헤매야 하지만, 루이가 만든 지도와 영혼의 천사의 안내 덕분에 안개 속에서도 거침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잠시 후, 연못에 도착하자 궁귀가 제일 먼저 연못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혹시나 이 숲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연못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이곳은 아니야."
"으음."
범려는 다시 지도를 펼치며 안개 숲의 이곳저곳을 확인해봤다.
'연못이 아니라면 어디일까? 괜히 난이도 B급이 아닐 것이다. 단순히 안개 때문에 B급으로 분류될 일은 없고, 그렇다면 뭘까.'
비록 퀘스트는 궁귀가 받았지만 범려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이 퀘스트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 줬다.
'지도에는 연못, 폐허, 마지막으로 공동묘지가 있어.'
범려는 연못을 제외한 남은 2개의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을 가는 중에도 포그 워리어들은 끊임없이 공격을 하면서 시간을 잡아끌었다.
"지독한 것들."
포그 워리어가 생성되는 시간이 무척 짧은지 한 발자국 내딛기가 무섭게 몬스터 무리가 해골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영혼의 천사! 폐허가 있는 쪽으로 길을 뚫어라!"
"예! 장군님."
영혼의 천사들은 폐허가 있는 방향으로 모여들더니, 그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향해 거침없이 신성한 불꽃을 터트리며 길을 뚫어갔다.
신성한 불꽃이 아이템 효과로 인해 연이어 터지자, 그 앞을 가로막던 포그 워리어들은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저쪽으로 이동한다!"
해골 군대가 조심스럽게 이동을 하자 해태 길드원들도 그 뒤에 따라붙어서 움직였다.
"여기가 폐허인가?"
폐허에는 여기저기 건물의 잔해들과 옛 흔적들이 있었지만, 범려에게는 딱히 뭐가 이곳에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먼저 이곳의 몬스터를 정리하고 봐야겠지?'
"전투 준비!"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일제히 전투태세를 갖추며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공격!"
병사들이 일제히 폐허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을 향해 공격을 펼치자 몬스터들 역시 우르르 달려들었다.
"마법사!"
"앵거 오브 어스!"
콰쾅!
범려의 외침에 해골 마법사들과 대마법사들은 한곳으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향해 마법을 펼쳐 일거에 쓸어버렸다.
"이제 깨끗해졌군."
범려는 몬스터가 사라지자 편안한 표정을 지었고, 해태 길드원들은 재빨리 폐허로 달려가더니 주변을 수색하면서 퀘스트 완료를 할 만한 것들을 찾아다녔다.
"이게 뭐지?"
길드원 중 한 명이 뭔가 중요한 물건을 하나 찾은 것 같더니 그걸 궁귀에게 가져왔다.
"이게 뭔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생긴 것뿐만 아니라 단순히 폐허에 있는 것치고 조금 이상해서 가져왔습니다."
길드원이 가져온 것은 철로 만들어진 작은 조각상이었다.
"이런 곳에 철로 된 조각상이 있는 것이 굳이 이상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혹시 모르니 일단 가지고 있어라."
폐허에서 발견된 물건들은 길드원들이 모두 다 챙겨 두었다. 그중 하나라도 퀘스트 완료에 도움 되는 물건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폐허에서는 잡다한 물건이나 얻고 그 이상 도움 되는 것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제 하나 남았다."
범려는 마지막 하나 남은 장소인 묘지를 향해서 움직였다. 묘지는 폐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니!"
공동묘지에 오자 제일 신기한 광경이 하나 발견되었다.
"무덤에서 안개가……."
알게 모르게 무덤에서 미약하지만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안개 숲의 정체를 발견하셨습니다.
안개 숲의 안개가 상당히 음침하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정체가 무덤에서 올라오는 수증기였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거야!"
갑자기 궁귀가 소리치면서 미소를 짓자 범려가 그에게 다가갔다.
"스승님, 무슨 일인데 소리를 치시는 겁니까?"
"퀘스트를 완료했다."
"네? 이곳의 퀘스트 난이도를 생각하면 지금 완료될 시점이 아닌 것 같은데."
B급 난이도가 이렇게 손쉽게 해결될 리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퀘스트를 완료한 것이다.
범려는 차분하게 왜 이 퀘스트의 난이도가 B급인지 판단해보았다.
'이 숲은 안개가 있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몬스터들이 있지. 그리고 마을이나 도시에서 파는 지도에는 안개 숲의 상세 지도가 없다.'
차근차근 안개 숲의 상황을 따져 보니 나름 B급 판정을 받을 만한 난이도의 퀘스트였다.
여기서 범려가 데리고 있는 해골 병사들과 루이가 만들어준 지도가 큰 위력을 발휘하면서 난이도가 대폭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
"음, 그런 건가."
혼자서 나름 결론을 내린 범려는 퀘스트가 완료된 해태 길드원들을 데리고 숲 바깥으로 나왔다.
"제자야, 레인저가 된 후에 보자꾸나."
"그럼 엘프 도시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엘프 도시에서는 범려의 해골 군대가 무장을 한 상태로 진입을 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
"오랜만에 엘프들의 도시에 가는군."
범려는 병사들과 함께 해골 용을 타고서 엘프 도시로 날아갔다.
"범려 님!"
범려가 엘프 도시에 도착하자, 엘프들이 그에게 달려들더니 도시를 구한 영웅이 돌아왔다면서 환영했다.
"범려 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아, 예……."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범려는 이런 환대에 익숙하지 못하다.
"영웅이 돌아오시다니, 어디 계신가!"
범려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엘프 장로가 나이 든 몸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장로님, 그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허허허, 무슨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범려 님 덕분에 세상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범려가 엘프들에게 정령의 힘을 다시 돌려준 이후 이 주변은 평화로지고, 엘프들은 이 평화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야 한다며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범려 님, 이곳에는 얼마나 머무를 작정이십니까."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잠시 쉬어가신다면 저희 집에서 머물다 가시지요. 병사들은 저희 집 뒷마당에 주둔시키면 문제없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엘프 장로의 배려 덕분에 해골 병사들이 머물러야 할 곳도 생겼다.
엘프 장로의 집은 그냥 집이 아니라 저택이었다. 엘프가 웬 저택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 저택은 순수하게 자라나는 나무가 변형되어 만들어진 아주 독특한 곳이었다.
"집이……."
"허허허, 이 늙은이의 집이랍니다. 들어오시지요."
저택 안에는 장로의 가족들이 함께 살고 있었고, 장로의 가족들은 손자들을 포함 30명 정도나 되었다.
"우와! 범려 님이다!"
특히 장로의 손자들은 범려가 집에 들어오자 환호성을 지르며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진짜 범려 님이에요?"
"어, 그래. 내가 범려다."
"그런데 해골 병사들은 어디 있어요?"
아이들은 범려를 보고 좋아했지만, 동시에 그의 해골 병사들을 더더욱 보고 싶어 했다.
"뒷마당에 있단다. 가자."
"어? 뒷마당에요?"
엘프 아이들은 지금 뒷마당에 아무것도 없는 걸로 아는데 어디에 병사들이 있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범려가 아이들과 저택의 뒷마당으로 왔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아이들이 실망한 표정으로 투덜거리고 있을 때 하늘에서 3마리의 해골 용의 포효가 들려왔다.
캬아악-!
"왔군."
범려는 해골 용의 포효를 듣고서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얘들아! 하늘을 봐봐!"
아이들은 드디어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해골 용을 보게 되었다.
"요, 용이다!"
거대한 해골 용 3마리가 장로의 저택 뒷마당에 내려앉았지만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그만큼 저택의 뒷마당이 넓다는 증거였다.
이어 해골 병사들이 용의 갈비뼈 안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와 열을 맞추어 정렬했다.
"우와! 해골 병사들이다."
아이들은 해골 병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이리저리 훑어보거나 조심스럽게 몸을 만져 보기도 했다.
해골 병사들은 아이들이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아는지 가만히 있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너희들은 여기서 대기해라."
"예, 장군님."
범려는 궁귀가 올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러 있을 생각이다. 그리고 이 저택 주변엔 유저들이 오지 못하기에 범려는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었다.
범려처럼 엘프들의 영웅이 되지 않는 이상 누가 장로의 저택에서 머물 수 있겠는가.
"아, 그럼 오랜만에 도시에 왔으니 한번 둘러볼까."
범려는 모처럼 도시를 구경할 목적으로 해골마도 타지 않고 오로지 발품을 팔아서 엘프 도시를 돌아다녔다.
엘프 도시는 크게 변한 것이 없지만 알게 모르게 작은 변화가 있었다.
그건 유저들이 이곳에서 집을 구해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냥 도시를 사냥 거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 엘프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건 게임이니까 가능한 부분이었다.
"이곳에도 집을 짓고 살 수 있구나."
범려는 나의 집 시스템으로 인해 자신만의 집을 가질 수 있다고 하지만 엘프들이 사는 도시에서도 가능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 외에도 엘프 도시에는 정령사 직업을 선택한 이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곳곳에 유저들이 정령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확실히 정령들이 이곳에는 넘쳐나는구나."
정령사들이 나온 지 시간이 상당히 지났기 때문에 많은 유저들이 정령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중 도만이라는 유저는 『판게아 월드』 최초로 최상급 정령을 소환하고 다녔다.
"정령도 봤으니 다른 곳을 보러 가볼까."
범려가 느긋하게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을 때 갑자기 귓속말이 날아왔다.
[제자야, 어디냐!]
"스승님, 벌써 퀘스트를 완료하고 오셨나 보네요."
[그래. 퀘스트를 완료하고 다들 레인저가 되었단다.]
궁귀는 레인저가 되었다면서 아주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축하드립니다. 스승님."
[하하하, 이제 레인저가 된 기념으로 길드원들과 같이 사냥을 갈 생각이다. 너도 같이 갈 테냐?]
"네, 같이 가죠. 그런데 사냥터 장소를 정하셨나요?"
[우리 레벨에 갈 곳이라고는 딱 정해져 있는데 뭘 고민하겠느냐.]
다들 레벨이 비슷비슷하다 보니 사냥터를 선정하는 것도 거기서 거기였다.
"그럼 레이스들을 잡으시게요?"
[그거 말고 다른 거 잡을 몬스터들이 있나?]
궁귀 정도 레벨에 파티를 이루었다면 레이스 같은 몬스터를 잡아야 했다.
"레이스 레벨이 250이 되는데 힘들지 않을까요?"
[걱정 없다. 제자랑 같이 가는데 뭐가 힘들겠냐.]
궁귀는 범려와 같이 사냥을 하기에 크게 어려움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레이스가 나타나는 곳으로 먼저 가 있겠습니다."
범려는 귓속말을 종료하고는 엘프 장로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얘들아, 사냥을 하러 가자."
사냥가자는 말에 해골 병사들은 순식간에 해골 용의 갈비뼈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동 준비를 완료했다.
"자, 그럼 레이스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레이스들은 레벨 250 정도 되는 언데드 몬스터로 유령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물리 공격에 강하고 마법 공격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봤자 무기에 성 속성을 걸면 물리 공격이라도 똑같지, 뭐."
범려는 아르테미스의 손길 버프 덕분에 레이스 같은 언데드 몬스터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 가볼까."
해골 용들이 커다란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오르자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레이스가 몰려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범려가 목표 지점을 알려 주자 해골 용들은 곧바로 그곳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해골 용 덕분에 목표 지점에 먼저 도착한 범려는 해태 길드원들을 기다렸다.
"확실히 하늘을 날아 이동하니 시간이 엄청 단축되네."
해골 용은 범려의 전용 비행기라고 봐도 된다. 그것도 홀리 브레스라는 폭격 무기를 가진 유닛이다.
"스승님은 어제 오시는 거지?"
"제자야!"
궁귀는 생각보다 빨리 길드원들을 이끌고 범려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제자야, 시작하자."
"네, 스승님."
범려는 레인저가 되어 돌아온 길드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