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들이 보고를 끝마치자 루이는 종이를 꺼내더니 그 내용을 정리했다. 그러자 대략 20장 정도의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주인님, 지금까지 있었던 일의 중간보고입니다."
"어디 보자."
범려는 그 보고서를 한 장씩 넘기면서 내용을 읽어가다가 흑검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보고 미간이 살짝 모아졌다.
"펭귄 왕자? 이거 숨겨진 직업을 찾아다니느라 나에게 신경을 안 쓰고 있었어. 이 직업들은 분명 나와 대등하게 싸우기 위한 것들이겠고."
범려는 흑검이 지금 무슨 일을 꾸미는지 대략적으로 감이 잡혔다.
"그래. 흑검 네 나름대로 계획을 꾸미고 있나 본데, 이를 어쩌지? 지금 보고서를 통해서 네놈의 정보는 모조리 입수되고 있는데."
범려는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띠며 루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루이! 여기에 나와 있는 숨겨진 직업들을 조사해라. 그리고 차후에 흑검이 숨겨진 직업을 가진 유저들을 찾으면 같이 조사해라."
"예, 주인님."
루이는 다시 쥐들에게 명령을 내려 정보를 수집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쥐들이라고 해도 바다를 건너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 외의 정보는 확실하게 넘겨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해골 용이 있기 때문에 바다 건너에 있는 칠흑의 데보라 지역과 공중 대륙 창공의 페이셔 지역에 직접 가서 쥐들이 정보를 얻어 올 수 있다.
"대륙 전역에 쥐들을 풀어서 계속 정보를 모으도록."
이후 범려는 우산 길드를 철저하게 파헤치기 위해 대륙 전역에 뿌려 놓은 쥐들을 가지고 무서운 속도로 정보를 입수해나갔다.
* * *
"흑검 형님, 양산 길드 마스터가 보내온 보고서입니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찾아가려고 했는데 보고서를 보내왔군."
"아무래도 해태 길드의 흔적을 추적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모양입니다."
"하긴, 녀석들이 꽁무니를 빼고 이리저리 흩어지는 바람에 그 흔적 찾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지."
흑검은 아직도 해태 길드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내 보고서를 쥐고 있던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떻게 된 일이야! 놈들이 전원 레인저로 전직하다니!"
"흑검 형님, 무슨 말입니까? 전원 레인저로 전직이라니."
"이 보고서를 봐라. 해태 길드원 전원이 레인저로 전직을 했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녀석들이 다시 뭉쳤다는 거다."
"어떻게 그런 일이!"
황급하게 강토가 보고서 내용을 읽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 아무래도 여기서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습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가면 녀석들이 힘을 키워서 반격의 기회를 노릴 것이다. 이전 해골 제작자가 공성전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소리가 되지."
흑검은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길드원들에게 경계를 하라고 일러둬라."
"알겠습니다, 형님."
강토는 귓속말로 비상 경계령을 내린 후, 해태 길드가 언제 기습적으로 공격해올지 모르니 다들 조심하라고 일러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우산 길드원들은 혼자 다니기보다 5명 이상씩 뭉쳐 다녔고, 혹 혼자 다녀야 하는 상황이면 만약을 위해 그 비싼 스크롤을 하나씩 가지고 다녔다.
* * *
하지만 그때 해태 길드원들은 은밀하게 사냥을 나섰다. 그 어떤 유저가 되었건 그들의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엄폐를 하면서 몸을 숨겼고, 혹 그 유저들 중에서 추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레이 캐슬로 가는 스크롤을 찢어버렸다.
"궁귀 님, 언제까지 우산 길드의 눈을 피해야 하는 겁니까."
"조금만 참아라. 곧 복수의 시간이 다가온다."
해태 길드원들은 다들 260레벨을 바라보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복수를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녀석들의 눈을 피해 살아왔습니다. 참기 힘듭니다."
"그래도 참아라. 제자 녀석이 조만간 올 것이다. 그때가 녀석들에게 복수를 할 때다."
궁귀는 길드원들을 다독거리며 그들의 분노를 가슴 깊은 곳에 가두게 만들었다. 그 분노가 가슴속에 담겨 있는 동안 해태 길드원들의 우산 길드를 향한 분노가 점점 커질 것이다.
'제자 녀석아, 나도 참기 힘들다. 빨리 녀석들을 혼내줄 때를 알려 다오.'
궁귀는 자신도 참기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지나온 세월이 그를 인내하게 만들었다.
* * *
그사이 범려는 우산 길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녀석들이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면 나도 적당한 대응책이 필요한데. 제마하고 취선을 불러야겠군."
범려는 귓속말로 급하게 둘을 불러들였다. 두 사람이 범려에게 오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형님!"
"범려야, 무슨 일이 생긴 거냐?"
"아니. 둘을 부른 것은 우산 길드 때문이야."
"드디어 그놈들을 혼내줄 계획이 생긴 거냐?"
"계획은 없어. 하지만 이제 만들어질 거야."
범려는 둘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형님, 그 미소 너무 사악해 보이는데요."
취선은 범려의 미소가 너무 사악해 보였고 제마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그것보다 너희들 『판게아 월드』 하면서 쌓아놓은 인맥들 있지?"
"당연한 거 아니냐. 이래 봬도 연금술사들 중에서 내가 인맥 하나만은 최고라고 자부한다."
"형님, 제가 예전에 냉혈의 아멜리아에서 죽돌이로 지냈지만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꼽으라면 손가락 발가락을 다 동원해도 모자랄걸요."
"역시."
범려는 둘의 인맥이 보통이 아닐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들은 의외로 넓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좋아. 그럼 내 계획을 설명하지."
범려는 우선 지금의 우산 길드를 고립시킬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한 대외 활동과 인맥을 동원한 소문을 조장할 필요가 있었다.
"형님, 지금 우산 길드를 고립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아니. 고립시켜야 해. 우산 길드는 거대 길드야. 그들의 인맥을 무시하지도 못하고, 동시에 전쟁이 벌어지고 나서 장기전으로 갔을 때 불리한 것은 우리야."
우산 길드는 인원이 많은 만큼 너무나 손쉽게 자금과 인맥을 동원할 수 있다.
"그럼 그 힘을 꺾자는 건가요?"
"당연하지. 우산 길드를 『판게아 월드』에서 고립시켜야 한다. 그리고 활동 범위도 대륙 전역으로 퍼져 있어 그걸 한곳으로 압축시킬 필요가 있다."
"음."
제마와 취선은 침울한 신음 소리를 내면서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뭘 해야 그들을 고립시킬 수 있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우산 길드의 인지도를 떨어트려야 해."
"인지도?"
"우산 길드의 인지도를 떨어트려 사람들이 그들 길드로 모여드는 것을 막는다."
"인지도는 어떻게 떨어트리지?"
"간단해. 비매너 행위를 포착하는 거지. 우산 길드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길드원들이 알게 모르게 비매너 행위를 할 거야."
대외적 이미지가 떨어지면 인맥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우산 길드를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인지도가 떨어지고 나면 그다음에는 우산과 연관이 있는 작은 길드들과 이간질을 시켜 우산 길드와 등을 돌리게 하는 거지."
"이간질이요? 작은 길드에서 이간질하면 먹힐까요?"
"그건 우산과 인연이 별로 없는 길드 중심으로 하면 돼."
범려의 말에 취선과 제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했다.
"좋아. 당장 조사를 시작해도 되겠지? 범려야."
"그렇게 해. 지금 당장은 비매너 행위를 포착해서 모아놔."
"알았다."
제마는 당장이라도 계획을 실행하려는지 바로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귓속말을 넣기 시작했다.
"형님, 저도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그래라, 취선아."
취선 역시 제마를 따라서 작업에 착수했다.
'이대로 비매너 행위만 계속 쏟아내면 인지도는 알아서 떨어지겠지.'
범려는 우산 길드가 절대로 한 번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일단 인지도를 비롯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야금야금 갉아 먹을 생각이었다.
'후후후, 우산 길드의 미래가 눈에 보이는구나.'
취선과 제마가 그들의 인맥을 총동원해 우산 길드의 비매너 행위를 추적하고 있는 동안 범려는 궁귀에게 찾아갔다.
"스승님."
"무슨 일이냐, 제자야."
"우산 길드를 무너트릴 계획을 세워왔습니다."
씨익!
궁귀는 범려의 말을 듣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만큼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이었던 것이다.
"그래, 방법은?"
"일단 우산 길드의 인지도를 떨어트리기 위해 비매너 행위를 하면 그걸 포착할 생각입니다."
"후후후, 아주 마음에 드는 방법이구나."
궁귀는 우산 길드에 대한 원한이 많기 때문에 범려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그럼 길드원들이 해야 할 일은 뭐냐?"
"간단합니다. 지금부터 우산 길드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하는 비매너 행위에 대해 기록하시면 됩니다."
"간단하구나. 혹시 그 뒤에 해야 할 일이 이간질이냐?"
궁귀는 범려의 스승답게 그다음 행동이 무엇인지 대충 감을 잡은 것이다.
"역시 스승님이세요. 도저히 숨길 수가 없습니다."
"후후후, 그놈들한테 당한 게 좀 있다 보니 내 성질대로 한다면 당장에……."
궁귀는 순간 울컥했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후우, 내가 잠시 흥분을 했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거면 충분한 거냐?"
"네, 스승님."
궁귀는 길드원이 있는 곳으로 가더니 범려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러자 길드원들 중 몇 명은 아주 마음에 드는 일이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도 사진 찍으러 돌아다녀 볼까."
범려는 해골 제작자라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영혼의 천사들만 대동한 채로 우산 길드원들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 걸리기만 해봐라."
범려가 『판게아 월드』를 돌아다니면서 우산 길드원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역시 거대 길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길드원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 * *
"어디 만만한 몬스터 없나?"
겉보기에는 궁수로 보이는 유저가 파티도 안 하고 혼자서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사냥을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근처에는 이미 몬스터가 지천에 널려 있는데 그것들은 손도 대지 않았다.
"사람들이 슬슬 올 시간이 되었는데 안 보이네."
그 유저는 다른 사람들이 오기만 기다리며 살짝 투덜거렸지만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그러자 이내 멀리서 사람들이 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 왔네. 그럼 슬슬 준비를 해보실까."
궁수로 보이는 유저가 조심스럽게 근처에 있는 나무 뒤로 숨은 뒤 고개만 살짝 내밀고는 유저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한쪽 구석에 궁수로 보이는 유저가 몸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몬스터 사냥을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했군."
유저는 이때를 기다렸는지 조심스럽게 화살을 재더니 아무도 모르게 하늘을 향해 화살 날릴 준비를 했다.
'바람 적당하고, 각도 좋아.'
쉬이익!
하늘로 날아간 화살은 정확하게 사냥을 시작한 유저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더니, 생명력이 거의 바닥인 몬스터의 머리 위로 툭 꽂히면서 화살 한 방에 죽고 말았다.
'후후후, 스틸 성공이다.'
"이거 뭐야? 갑자기 웬 화살이야."
"……."
유저들은 몬스터의 머리에 꽂힌 화살을 보면서 다들 놀라고 말았다.
"스틸?"
"누가 스틸을 한 거야?"
스틸은 정말 절묘하게 성공을 하고, 그 스틸의 주인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후후후, 아무리 찾아봐라, 뭐가 보이나.'
스틸을 한 인간은 은밀하게 자리에서 벗어나더니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후후후, 경험치 줘서 고맙다."
그때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 쌍의 눈이 있었다.
"이렇게 하는군. 생각보다 방법이 치밀한데."
범려는 우산 길드의 스틸 장면을 찍기는 했지만, 정작 이 장면이 도움일 될지는 감이 서지 않았다.
"아냐. 일단 자료를 모아놓고 보자."
범려가 우산 길드원의 비매너 행위를 포착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사냥을 하던 유저들이 그 비매너 유저를 못 찾았다는 것이다.
"유저들이 저놈을 어떻게 해서든지 발견하게 하는 게 우선이겠어. 아니면 이걸 종합해서 영상으로 하나 만들든지 해야지."
범려는 이 비매너를 일으키는 녀석을 조심스럽게 쫓기 시작했고, 그 뒤로 영혼의 천사들이 은밀하게 따라갔다.
그 궁수로 보이는 유저는 한 유저의 몬스터를 스틸하면 행적이 들통 날 걸 우려해서, 여러 유저들을 대상으로 일정한 시간 간격을 이용해 몬스터를 스틸하고 있었다.
"저놈 완전히 악질이잖아."
비록 스틸을 해서 아이템은 안 먹는다 쳐도, 저 유저가 하는 짓은 정말 제대로 된 비매너 행위였다.
"저런 놈은 우산 길드원이라서가 아니라, 비 오는 날 먼지나게 흠씬 두들겨 패야 하는 놈이었어."
범려는 누군가를 뒷조사하는 게 살짝 찜찜했었는데, 지금 이런 놈을 보니 완전히 나쁜 놈이라서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놈을 사회악으로 판단했다.
계속해서 스틸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동영상 기록을 남기자 상당한 분량이 나왔다.
"이놈은 더 이상 찍어봐야 의미가 없겠어."
범려는 한 녀석만 파헤쳐 봐야 별로 좋을 게 없으니 다른 녀석들의 비매너 장면을 찾으러 가버렸다.
범려가 사라진 뒤에 계속 스틸을 하던 우산 길드의 궁수는 잠시 후 같은 길드원들이 찾아오자 파티를 맺고 제대로 된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범려가 이때 왔으면 비매너 행위를 찍지도 못하고, 오히려 스토커같이 따라붙어서 해골 제작자라는 정체가 발각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하늘이 돕고 있다 싶을 정도로 운이 좋았던 것이다.
"이제 어디로 가야 우산 길드 녀석들이 있을까?"
범려는 다른 목표물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방금 전 찍은 녀석 말고는 우산 길드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다들 던전에 들어가서 사냥하나."
던전에서는 같은 팀원끼리 사냥하는지라 비매너가 일어나기에는 조건이 너무나 투명했고, 또 범려가 던전까지 쫓아가면서 찍을 조건이 되지 않았다.
"다른 길드원들은 얼마나 모아놨는지 확인해봐야지."
범려는 가장 먼저 취선에게 연락을 취했다.
"취선아."
[형님,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겠냐. 얼마나 자료를 수집했는지 물어보려고 한 거지."
[흐흐흐, 그런 거라면 걱정 마세요. 벌써 세 녀석이 저의 레이더망에 걸렸습니다.]
"뭐? 3명씩이나?"
범려는 깜짝 놀랐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3명이나 되는 녀석들이 취선의 손아귀에 걸린 것이다.
"너도 참 대단한 녀석이군. 난 하루 종일 찾아다녔어도 한 놈밖에 안 걸렸는데."
[후후후, 형님 분발하세요.]
취선은 3명의 행적을 잡았다는 이유로 은근히 거만해져 있었지만, 금방 귓속말을 종료해야 했다.
[앗, 형님, 저 귓속말 끊을게요. 또 다른 녀석이 걸렸습니다.]
"그래. 수고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