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76화 (76/80)

제5장. 싸움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해태 길드원들이 우산 길드의 비매너 행위를 찾아 파파라치 활동을 벌이는 일도 일주일이 지나자 생각보다 많은 자료들이 모아졌다.

"형님, 이 많은 자료들이 전부 다 비매너 행위들인가요?"

"맞아. 나도 스승님에게 길드원들이 모아온 자료라면서 주기에 받았는데, 내용을 보니 어마어마하더군."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하실 거예요? 한 번에 몰아서 올리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요."

"나도 그 생각했어. 대략 이틀 간격으로 두 사람씩 비매너 유저라면서 홈페이지에 올릴 생각이야."

"우산 길드 사람들이라고 밝히면서 올릴 생각인가요?"

취선은 비매너 유저라면서 올릴 때 이들의 길드가 어디인지 대해 밝힐지 안 밝힐지 그게 궁금했다.

"이건 일정 숫자가 쌓이면 할 거야. 처음에는 그냥 비매너 유저를 신고한다는 식으로 해야겠지."

범려의 말대로 공식 홈페이지에는 비매너 유저를 신고한다는 식으로 글과 그에 관련된 자료를 같이 올려서 많은 사람들이 보게 만들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아니,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냐.

-허허, 저런 싸가지.

-아디가 뭐야? 아, 기억했어. 너랑은 같이 게임하면 안 되겠구나.

-상종 말아야 할 유저구나.

아니나 다를까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비매너 유저에 대해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이걸 본 그 유저는 밑에 사죄의 글을 달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이게 사과한다고 되냐!

-너 같은 인간 사과를 받으면 뭐 해. 자료를 보니까 두 눈 벌겋게 뜨고 뒤통수치는 사진도 있던데.

-너한테 직접 당한 사람이거든? 너 때문에 내가 그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심한 욕설로 인해 내용이 삭제되었습니다.

결국 그 유저의 사과는 무참히 짓밟히고, 그 밑에 몇몇 사람들은 심한 욕설로 인해 댓글의 내용이 지워지고 말았다.

"역시 사람들의 힘이란 무서워."

겨우 게시물 하나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게임에서 완벽하게 매장당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로 인해 우산 길드에서는 길드 이미지 때문에 비매너 유저를 강제로 퇴출시킬 수밖에 없었다.

"후후후, 우산 길드에서는 지금 한 명을 퇴출시켰을 뿐이지만 그게 100명이 넘는다면 손도 대지 못할 것이다."

지금 올라간 비매너 유저의 정보는 새 발의 피 수준이다. 이후에 올라갈 자료들은 이것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비매너투성이였다. 우산 길드가 거대 길드라는 점을 이용해 길드원들이 알게 모르게 비매너 행위를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제 시작이란 말이야."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우산 길드원들의 비매너 행위에 대한 파파라치 활동이 이어졌다.

"제자야, 여기 추가로 가져온 자료들이다. 확인해봐라."

"감사합니다, 스승님."

"감사는 무슨. 당연한 일이다."

워낙 우산 길드와 사이가 안 좋다 보니 이런 일은 기쁜 마음으로 해주는 궁귀였다.

"제자야, 그런데 슬슬 다른 길드와 우산 길드와의 관계를 떼어놔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죠. 하지만 거기에 관한 구체적인 대안이 많지 않아서……."

"그런 부분은 나한테 맡겨 다오. 그렇지 않아도 최강석 회장과 게임상에서 한번 만나봐야 하거든."

현재 상인 길드를 하나 운영하고 있는 최강석 회장의 닉네임은 온달이다. 더군다나 상인이라면 사람들과 교류가 잦은 편이라서 여러 인맥을 쌓아야 한다.

"그럼 스승님이 나서서 해결하실 겁니까?"

"나한테 맡겨 다오. 확실히 처리해주마."

궁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범려에게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겠다며 가버렸다.

"음, 뭐 스승님이나 최 회장님 정도의 실력자라면 이번 일은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겠군."

범려는 이간질에 관한 문제는 거의 없을 거라 판단하고 생각을 접었다.

반면, 궁귀는 최 회장, 즉 온달을 만나기 위해 고요의 아티잔 지역에 있는 반돌 도시에 워프게이트를 타고 왔다.

"어디 보자. 최 회장이 도시 한쪽 구석에 마련한 사무실이 있다고 했는데."

온달이 세운 길드 사무실은 현재 반돌 도시 내부에서 제일 큰 건물에 차려놓았기에 찾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아하하, 이게 누구야. 자네가 날 찾으러 이렇게 직접 오다니."

"어디 내가 못 올 곳을 온 것도 아닌데 호들갑 떨기는……."

"너무 반가워서 그렇다네."

"두 번 반가우면 큰일 나겠어."

"하하하!"

온달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궁귀를 안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자네가 이곳에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허허, 이런 성격 급한 친구 같으니라고."

궁귀는 온달의 성급함에 한 소리 했지만 그게 싫지는 않았다.

"다른 건 아니고 우산 길드에 대해서 알고 있나?"

"아, 알고 있지. 상당한 거대 길드 중에 하나지. 전투력만 놓고 봐서는 1위를 하고 있는 길드를 오히려 압도한다고 들었네."

"그 우산 길드와 우리가 사이가 안 좋은 건 알고 있지?"

"물론이네. 자네의 해태 길드와 우산 길드 간의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생각보다 유명하거든."

해태 길드의 존재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바로 우산 길드와 사이가 무척 안 좋다는 이유로 말이다.

"우리가 그곳과 조만간 싸움을 벌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싸움? 전쟁 말인가?"

"그렇다네, 조만간 전쟁을 해야 하거든. 그래서 우산 길드와 연결되어 있는 길드들을 이간질시켜 다 떼어놓을 생각이야."

"음, 그래서 날 찾아온 거군."

"정확히 말하면 그렇지."

"그럼 내가 해줘야 할 일은 혹시 그건가?"

"그거지."

둘은 알 수 없는 대화를 주고받더니 이내 결론에 도달했는지 서로 미소를 지었다.

"이거 한동안 심심하지는 않겠어."

"최 회장, 오히려 스릴이 넘치게 될 거야."

"스릴이라."

온달은 스릴이라는 말에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안 회장 자네가 하는 일에 동참하기로 하지.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려 주게."

"그럼 잠시 귀 좀."

궁귀는 온달의 귀에 작은 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온달의 얼굴은 너무나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후후후, 안 회장, 지금 당장 일을 시작하겠네."

"그래주면 나야 좋지."

궁귀는 온달이 자신이 원하는 결론에 도달하자 절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있고 나서 일주일 뒤, 상인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우산 길드가 『판게아 월드』의 모든 길드들을 통합하려고 한다!'

이런 웃기지도 않는 소문이 상인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 이 소문을 뒷받침해주는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바로 우산 길드가 직접적으로 공성전에 뛰어든 것이다. 그것도 천마 길드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청강의 도시에 있는 4개의 성을 모조리 공격해서 차지해버렸다.

아직도 공성전에 관해서는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던 길드가 공성전을 참여한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이건 범려가 우산 길드를 부추겨 생긴 일이 아니라 정말 때가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 생긴 일이다.

상인들은 맨 처음에는 소문을 믿지 않았지만, 공성전이 벌어지자 소문의 신뢰도가 급격하게 오르게 되었다.

"하하하, 스승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뭐 소문만 퍼트렸는데, 뭐가 대단하다는 거냐."

"아닙니다. 이제 상인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으니 다른 유저들이 알아내는 것은 이제 순식간입니다."

범려가 의도했던 것은 중소 길드와 인연을 끊는 것이지만, 이 소문이 이대로 사람들 사이에 퍼진다면 다른 거대 길드들이 경계를 하게 될 것이다.

특히 우산 길드의 위에 자리하고 있는 길드들은 우산과의 인연이 껄끄럽게 변하는 것은 자명한 일.

'후후후, 스승님이 너무 잘해주신 덕분에 의도했던 것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어. 그리고 우산 길드가 때마침 공성전을 펼쳐서 소문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고 말이야.'

이후 나중에 소문의 정체가 밝혀진다고 해도 우산 길드와 해태 길드의 관계는 변할 게 없다. 서로 미워하는 사이인데 나쁘고 말 것이 없었다.

"스승님, 이왕 이렇게 된 거 거대 길드들을 자극해야 합니다."

"거대 길드를?"

"네. 지금 우산 길드와 분명 우호적인 관계를 가진 길드와 그렇지 못한 길드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자극해서 우산 길드와의 관계를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겁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내면 전쟁을 유도하자는 거냐?"

"그렇죠. 그렇게 해야 서로 힘이 약해지고 중소 길드들은 이틈을 이용해 자신들의 세력을 크게 늘리려고 할 겁니다."

"후후후, 아비규환을 만들려고 하는구나."

『판게아 월드』에는 수많은 길드가 있지만, 그중에서 거대 길드 때문에 피해를 보는 길드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범려는 그 길드들이 치고 올라가는 그 혼란이 필요했다.

'길드들끼리 서로 물어뜯는 전쟁이 터지면, 우산 길드가 아무리 강한 길드라고 해도 굶주린 늑대의 날카로운 이빨에 상처를 입기 마련이지.'

범려가 혼자서 혼란스러워진 『판게아 월드』를 상상하는 동안 루이가 정보를 가져왔다.

"주인님."

"무슨 일이냐, 루이."

"쥐들이 수집해온 보고서입니다."

"그래?"

한동안 올라온 정보가 없어서 그런지 루이가 가져온 서류 뭉치는 생각보다 두꺼웠다.

"헉! 이런!"

범려는 루이의 보고서를 보고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젠장! 양산 길드가 우산의 또 다른 분신 길드였어!"

우산이 이렇게 또 다른 길드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범려로서는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

"이렇게 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우산의 또 다른 분신이 있다는 것으로도 거대 길드 간의 싸움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양산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상 쉽게는 안 된다."

양산 길드의 정체를 사람들이 알게 하기 위해선 범려 자신이 떠벌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 왜냐면 해태 길드가 밝히면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라서 억지로 정보를 조작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보의 신뢰도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는 어느 거대 길드를 통해서 은밀하게 흘러나오는 정보여야 한다.

"어느 길드가 적당할까?"

범려는 나름대로 신뢰성이 좋은 길드를 고르고 있었다.

"현재 있는 거대 길드에서 그나마 신뢰도가 높은 곳은 딱 한 곳뿐이군."

선택된 길드는 천마 길드다. 우산 길드와 적당할 정도로 관계가 안 좋고, 유저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꽤나 좋은 편에 속하는 길드다.

"어떻게 천마 길드와 접촉하지?"

범려는 예전 해골마를 팔 때 한 번 천마 길드 사람과 만난 적이 있지만, 그 후로 단 한 번도 없었다.

"에이, 몰라. 그냥 찾아가 봐야지."

천마 길드도 거대 길드라서 길드 마스터를 만나려면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천마 길드는 지금 거점을 잃어버린 상태다. 청강의 도시에 있는 4개의 성을 모두 다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천마 길드 거점이 어디인지 확인부터 해야겠군. 루이!"

범려는 루이를 불렀다.

"지금 창공의 페이셔에 갈 작정이다. 그곳에 도착하면 천마 길드의 거점을 언제 알 수 있지?"

"2시간이면 확인 가능합니다."

"좋아. 당장 가자."

범려는 그 자리에서 창공의 페이셔 지역으로 가버렸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려고 루이만 데리고 간 것이다.

루이는 도착과 동시에 비밀스럽게 쥐들을 불러 모아 천마 길드의 거점을 파악하도록 했다.

그렇게 루이의 정보를 잠시 기다리는 동안 범려는 재미난 소리를 듣게 되었다.

"정보는 확실하겠지?"

"물론이지. 현 활동하는 길드 중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우산 길드의 정보지."

"그 펭귄 왕자라는 녀석과 골렘 마스터에 관한 정보도 들어 있나?"

"그 두 녀석들은 워낙 행적이 없다가 새롭게 나타난 것들이라 정보가 불확실하네."

"두 녀석의 정보료는 지불 안 해도 되겠지?"

"쳇! 좋아. 그렇게 하지."

범려는 방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골렘 마스터? 루이를 통해서 얻은 정보에는 골렘 마스터에 관한 정보가 없었어. 그럼 최근 모습을 드러낸 직업이라는 거군.'

지금 우산 길드에는 숨겨진 직업이 두 사람으로 늘어났다. 이건 철저하게 해골 제작자를 쓰러트리기 위한 포석이나 다름없다.

'루이가 돌아오면 조사를 명령해야겠군.'

범려 혼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루이가 돌아왔다. 그런데 녀석은 이상한 종이 뭉치를 가지고 왔다.

"주인님, 페이셔 지역의 쥐들이 가져온 중간 보고서입니다."

루이가 건네준 것은 방금 전 골렘 마스터의 정보와 펭귄 왕자의 대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이전에 펭귄 왕자의 정보에는 그들이 사용하는 스킬과 레벨에 관한 정보가 빠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킬과 레벨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고, 골렘 마스터의 경우 제일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골렘 마스터

현재 레벨:260 추정

닉네임:독도

직업 계열:제작자 및 소환사 형태의 혼합형

전투 시 특징:현재 드러난 모습에 의하면 한 번에 골렘 20기를 소환한다. 각 골렘의 크기는 2.2m의 크기를 가진 녀석들이며 생각보다 기민한 움직임을 펼친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암살자와 동급으로 봐도 무관하다.

범려는 골렘 마스터의 내용을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암살자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은 상당히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골렘이라면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인데, 거기에 암살자 같은 기민한 움직이라니. 내 병사들이 죽을 가능성이 너무 높잖아.'

그리고 제일 신기한 것은 골렘 마스터가 어떻게 우산 길드 같은 길드에 들어가게 되었나 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 되는 실력자라면 혼자서도 길드를 조직할 만했다.

'분명 흑검이 직접 찾아가서 이 녀석을 설득시켰겠지.'

범려는 혼잣말을 하고는 펭귄 왕자의 대한 정보를 살펴봤다.

-펭귄 왕자

현재 레벨:260~270으로 추정

닉네임:망고

직업 계열:조련사 및 소환 계열의 혼합 형태

전투 시 특징:대략 500의 병력을 소환해 전투를 벌이는 방식을 펼치며, 펭귄들은 냉기 계열 마법에 면역에 가까운 내성과 함께 다양한 병과를 보유하고 있다.

'펭귄 왕자는 나와 비슷한 조건의 직업이군. 뭐, 맨 처음 펭귄 왕자라는 직업의 내용을 들었을 때 감을 잡은 내용이지만.'

이들의 직업은 다들 강력하고 그에 걸맞은 병력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후우, 역시 거대 길드라서 일에 대한 추진력과 능력 있는 유저들을 포섭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전혀 없군."

반면 해태 길드는 그런 추진력은 떨어지고 지극히 친목 성향이 강한 길드라서 다른 인물을 포섭하는 데 있어서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뭐, 스승님이 다른 사람들 포섭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손쉽게 해결되지만, 그런 건 친목 위주로 게임을 즐기고 싶은 스승님의 즐거움을 망치는 짓이지."

그 외에 루이가 가져온 정보는 천마 길드의 거점이 표시된 지도를 제외하고는 딱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별다른 정보는 없군. 그럼 정리를 한번 해볼까."

첫째, 양산 길드의 정체를 천마 길드를 통해 퍼트린다.

둘째, 우산의 또 다른 전력, 숨겨진 직업의 존재를 알려 다른 길드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셋째, 우산 길드와 타 길드들 간의 관계를 표면화시킨다.

이것이 범려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이제 천마 길드가 있는 곳으로 가볼까."

범려는 하마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혹 해골마를 타고 가면 해골 제작자나 그에 관계된 사람으로 의심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걸어서 가야 했다.

"아이고, 다리야. 여기까지 오는 데 하루 웬 종일 걸리네."

해골마를 타고 왔으면 1시간 조금 넘을 거리를 걸어서 움직이니 그 몇 배의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후우, 여기서 제일 큰 저택이 있다고 했는데 어디더라?"

하마 마을에서 제일 큰 저택을 찾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천마 길드가 우산 길드에 쫓겨서 이곳으로 몰려났다지만, 그들의 자금력으로 큰 저택 하나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군."

범려는 당당히 저택에 들어서더니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멈춰라!"

저택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이 범려의 앞을 가로막았다.

"외부 사람은 이곳에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

"여기 집주인을 만나고 싶어서 왔습니다."

"주인님은 지금 자리에 없다. 돌아가라."

경비병들은 돌아가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범려가 아니었다.

"그럼 안에서 기다릴 수는 없습니까?"

"안 된다."

"그럼 펜과 종이가 있습니까? 차후에 이 집주인이 돌아오면 볼 수 있게 말입니다."

"기다려라. 곧 가져오겠다."

문 앞을 지키던 경비병 중 한 명이 근처의 초소로 들어가더니 펜과 종이를 가져왔다.

"여기다 적어라."

"감사합니다."

범려는 천마 길드의 길드 마스터에게 전해줄 내용을 간략하게 적고는 다시 경비병에게 건네주었다.

"이걸 집주인이 오면 건네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범려는 경비병의 퉁명스러운 말투가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현재로서는 원하는 목적이 있기에 꾹 참았다.

"일단 성으로 돌아가야겠군."

범려는 스크롤을 확 찢어버리더니 그레이 캐슬로 돌아가 버렸다.

성으로 돌아오자 제마가 황급히 범려를 찾았다.

"범려야!"

"무슨 일이야?"

"다른 건 아니고, 저번에 나한테 부탁했던 비매너 조사 건수 있지?"

"응. 너한테 부탁한 일이 있기는 하지."

"그거 말고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어. 양산 길드가 말이야."

"아, 양산 길드가 우산 길드의 분신 길드라는 거?"

"뭐야, 어떻게 알았어."

제마는 자신만이 아는 비밀 정보를 범려가 이야기하자 당황한 듯이 물었지만, 범려는 당연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너만 정보를 찾아다니는 거라면 착각이야."

"쳇! 그럼 언제 양산 길드의 정체를 알았어?"

"대략 24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범려도 최근에 알아낸 정보이지만 제마도 범려 못지않게 정보 입수 능력이 대단히 좋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양산 길드의 정체가 우산 길드의 분신 길드라면 일이 심각해진다. 양산 길드는 지금 눈부시게 그 힘을 키우고 있는 길드야. 이대로 간다면 거대 길드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야."

"그것도 나름대로 방법이 다 있지."

범려는 가볍게 대꾸하고는 혼자서 생각에 잠겼다.

'이제 천마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면 되는데… 좀 초조하군.'

천마 길드 마스터로부터 연락이 빨리 오면 올수록 양산 길드의 정체가 밝혀짐과 동시에 사건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물론 우산 길드나 양산 길드에서 강력하게 부인을 할 수 있지만, 같은 거대 길드의 신용도를 놓고 봤을 때 아직까지 천마 길드의 말에 무게가 실린다.

* * *

범려가 다녀가고 얼마 있지 않아서 천마 길드의 마스터, 천마가 저택에 돌아왔다.

"나 없는 동안 누가 왔다 간 적 없나?"

"한 분이 주인님을 찾았습니다."

"그래? 그 사람이 뭐 남긴 건 없고?"

"이걸 주인님에게 건네주라고 했습니다."

저택 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은 범려가 적어준 쪽지를 잘 간직하고 있다가 그걸 천마에게 주었다.

"어디 보자."

천마는 쪽지를 아무런 표정 없이 읽어보더니 그 쪽지를 다시 경비병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걸 불에 태우게."

"예, 주인님."

경비병은 별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종이를 그대로 불에 태웠지만, 천마는 경비병에게 등을 돌리고 나자 그의 두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후후후, 해골 제작자가 직접 연락을 주다니. 이건 기회다."

천마는 그렇지 않아도 해골 제작자를 한번 만나고 싶었다. 또한 길드에 영입을 하고 싶기도 했다. 이전 공성전에서 숨겨진 직업을 가진 이들의 위력이 작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해골 제작자의 이름이 범려였군."

천마는 당장 범려에게 귓속말을 했다.

"범려 님?"

[혹시 천마 길드의 길드 마스터이신가요?]

범려는 새로이 귓속말을 보낼 사람이 천마 길드 마스터밖에 없음을 잘 알고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렇습니다. 제가 천마 길드의 마스터 천마라고 합니다."

[역시 그러시군요. 그럼 쪽지의 내용을 읽어보셨겠네요.]

"물론입니다. 상당히 놀라운 정보더군요. 좀 더 자세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데요."

천마는 어떻게 해서든 범려를 만나고 싶었다.

[저와 만나고 싶으시군요. 그럼 제가 하마 마을로 가죠.]

"이곳으로 오신다면 저야 좋지요."

범려는 간단하게 귓속말을 종료하고는 그레이 캐슬에서 해골 용을 타고 하마 마을까지 단숨에 날아갔다.

해골 용이 하마 마을 근처에 조심스럽게 날아가 범려를 내려 주고 다시 돌아갔지만, 주변에 있던 유저들은 거대한 해골 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헉! 본 드래곤!"

잠시 잠깐이지만 유저들은 그 해골 용의 정체가 신기한지 다들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유저들이 해골 용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사이, 범려는 아무도 모르게 그곳을 빠져나와 하마 마을로 들어갔다.

"길드 마스터가 빨리 돌아와서 다행이야."

범려는 길드 마스터가 빨리 연락을 받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았으면 언제 연락이 올지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골 제작자가 왜 이리 안 오지."

천마는 범려가 이곳으로 온다는 소식에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저택 입구에서 해골 제작자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때 마침 범려가 저택에 도착해 천마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는 범려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귀한 손님이 오시다니. 어서 안으로 들오시지요."

범려는 천마의 손에 이끌려 저택 안으로 들어갔지만 경비병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크윽!"

경비병의 표정은 신음 소리와 함께 파리하게 변해버렸다. 범려라는 존재가 이 저택의 주인이 문 앞에서 기다릴 만큼 중요한 인물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 난 해고다.'

취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잃는다는 것은 절망그 자체다.

"경비병 아저씨, 다음에는 조심해. 이번 한 번만 넘어갈게."

지나가는 말로 내뱉은 범려의 한마디는 그에게 저 나락 끝에서 순식간에 천국으로 오르게 하는 느낌이었다.

"감사합니다!"

경비병은 범려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그의 배려에 고마워했다.

"음? 저 경비병이 왜 범려 님에게 고개를 숙이는지?"

천마는 경비병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별거 아닙니다. 제가 저 경비병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서요."

"흐음, 그러시군요."

범려의 대답에 천마는 깊이 생각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두 사람이 커다란 저택의 집무실에 오자 먼저 입을 연 것은 천마였다.

"정말 양산 길드가 우산 길드의 분신 길드입니까?"

천마의 얼굴 표정은 상당히 차분한 감이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투로 봐서는 믿기 힘들다는 느낌이었다.

"맞습니다. 저도 이 정보를 알아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습니다."

"그럼 그 정보 루트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자료는 저에게 보여 주실 수 있나요?"

"그러지요."

범려는 우산 길드에 관한 자료를 건네주면서 확인하도록 했다. 동시에 정보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정보들도 같이 끼워놓았다.

"이, 이건!"

"마음에 드십니까?"

"이 내용이 사실입니까?"

천마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범려를 바라보았다.

"제가 거짓을 말할 이유가 있나요?"

범려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제 결정의 때를 기다렸다.

"해골 제작자님, 아니 범려 님,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천마가 봐도 이런 정보를 그냥 줄 리는 없다고 판단했기에 이렇게 물은 것이었다.

"아니. 없습니다. 굳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양산 길드 부분에 관한 내용을 공개해달라는 것입니다."

"겨우 그것뿐입니까?"

범려는 이후에 돌아올 파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양산 길드에 관한 것만 공개를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소문을 내실 때 확실하게 퍼트려 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양산 길드에 관한 정보가 어떤 식으로 와전되고 변형되어도 단 한 가지 바뀌지 않아야 할 것은 우산의 분신 길드라는 점이다.

"좋습니다. 피차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라 보고 확실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천마가 그 자리에서 약속을 했다. 어차피 그에게는 손해 볼 일이 전혀 없다.

결국 양산 길드의 정체는 천마 길드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진실성 있는 내용인 데다, 사람들은 우산 길드가 뒤로 다른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는 내용에 그들이 『판게아 월드』의 통합을 이루려는 뜻을 가지고 있음을 확고히 느꼈다.

물론 통합 부분도 100퍼센트 거짓이지만, 사람들은 그 거짓을 주변에 있던 몇 가지 진실들로 인해 사실로 믿어버렸다.

* * *

한편 우산 길드에서는 양산 길드의 정체가 밝혀져서 상황이 별로 좋지 않게 변했다.

"이런, 젠장!"

"형님, 진정하십시오. 화만 낸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강토, 내가 화를 안 내게 생겼냐! 양산 길드의 정체가 밝혀졌다!"

"형님,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대로 있으면 다른 길드들과 관계가 이상해집니다."

"제길!"

흑검은 억지로 끓어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생각에 잠겼다.

사실 다른 길드들도 2개의 분신 길드가 존재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은 길드들이나 해당되는 문제다. 우산같이 거대 길드의 경우 그 힘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동급의 길드들에게 어느 정도 라이벌 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 라이벌 관계의 길드들끼리는 어느 정도 친분도 가지고 있지만 그건 허울에 불과한 친분이고, 사실은 각 길드 간에 견제가 심하다.

우산 길드가 분신 길드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우산과 비슷한 힘을 가진 길드들이 우산 길드와의 관계를 새로이 할 것이다. 그것도 우산 길드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형님, 이왕 일이 이렇게 벌어진 거 양산 길드를 이용해서 우리의 세력을 확고히 다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양산 길드를 이용해?"

"그렇습니다. 어차피 양산 길드의 정체가 밝혀졌으니 다른 거대 길드들과의 관계가 좋게 될 리가 없습니다. 이 기회에 다른 중소 길드들과 동맹을 하는 겁니다."

강토는 우산의 힘만으로 그 거대 길드들을 막기에 어려움이 있으니, 우산 길드의 힘으로 통제가 될 만한 길드들을 끌어안자는 조언을 한 것이다.

"음, 동맹이라."

흑검의 성격상 다른 중소 길드와의 동맹은 어림도 없는 짓이다. 하지만 상황이 어려우니 그 길드들이라도 힘을 보태도록 하는 것이 해결책이라 보였다.

"좋아. 비밀스럽게 동맹을 맺어라. 그리고 아무나 하지 말고 소수라도 제대로 된 능력을 갖춘 길드를 포섭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결국 우산 길드는 동맹이라는 카드를 이용해 힘을 갖추는 방법을 선택했다.

확실히 동맹을 통해서라도 강한 힘을 갖추게 된다면 아무도 우산 길드를 넘보지 못하리라.

대신 힘이 너무 커지면 다른 이들을 공포로 휘어잡게 되지만, 그에 대한 부작용도 생길 것이다. 그건 바로 우산 길드를 아니꼽게 바라보는 길드들이다.

"흥! 겨우 우산 따위가 『판게아 월드』를 통일하려는 꿈을 꾸다니 어림없다!"

제일 먼저 반기를 든 길드는 우산의 바로 아래 순위의 길드인 아렌 길드와 천마 길드였다.

천마 길드는 최근 자신들이 관리하던 도시를 빼앗겼기 때문에 아렌 길드와 동참을 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다른 상위 길드들은 이 싸움에 동참을 하지 않았다.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 * *

"후후후,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은데."

범려의 예상대로 우산 길드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길드들이 반기를 들면서 일어났다. 이렇게 되면 우산 길드와 반우산 길드 형식의 구도가 성립될 것이다.

'지금 창공의 페이셔 지역에 상위 길드가 뭐가 있더라…….'

지금 싸움의 주축이 되는 지역은 창공의 페이셔 지역이다. 그 이유는 천마 길드와 우산 길드가 있기 때문이다.

범려는 거기서 혹 다른 거대 길드가 있는지 확인을 해보았는데, 운 좋게도 천상제 길드라는 길드 종합 랭킹 2위의 길드가 발드르 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

"하하하! 3~4위도 아닌 2위 길드가 발드르 도시에 있다니, 이거 제대로인데."

발드르는 지상에서 페이셔 지역으로 올라오는 천국의 계단에 가장 가까운 도시이다.

범려도 천국의 계단을 거쳐서 발드르로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아무 이유 없이 지내다 온 도시라서 지나쳤지만, 그곳은 창공의 페이셔 지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였다.

"크크크, 중심 도시에서 싸움이 안 일어나면 전쟁이라고 볼 수도 없지."

아니나 다를까 두 길드에서 연맹을 구성하고 힘을 갖추기 시작하자 페이셔 전 지역에서 소규모 전쟁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천(아렌, 천마 길드) 연합을 물리쳐라!"

"우산 놈들을 잡아라!"

전쟁은 여러 유저들에게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혔다.

싸움이 벌어지면 눈에 보이는 유저들은 무조건 죽는다. 스파이나 뒤통수를 치며 이득을 챙기려는 유저들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싸움은 맨 처음에는 일반 필드에서 붙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잠시, 도시나 마을 입구에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적이다!"

"놈들이다!"

싸움이 점점 확산되면서 조용히 게임을 즐기던 유저들이 하나 둘 페이셔 지역을 떠나게 되었다.

이는 페이셔 지역의 자금의 흐름에도 문제가 되고, 동시에 천상제 길드원들도 피해를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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