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78화 (78/80)

제7장. 선전포고

우르르.

"저기 오는군."

범려는 저 멀리서 달려오는 우산 길드의 군대를 보면서 살짝 미소 지었다.

"슬슬 때가 되었군."

범려가 한쪽 구석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때 천상제 길드원들은 우산 길드를 맞이하기 위해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산 놈들이 온다! 병사들이여, 앞으로!"

천상제 길드원들은 이곳에서 끝장을 볼 각오를 하고 우산 길드를 맞이했다.

"돌격!"

양쪽의 군대가 충돌을 하면서 전면전이 펼쳐지자, 범려는 해골 마법사들과 대마법사들을 데리고 우산 길드 군대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어디 마법을 날릴 만한 적당한 장소가 없을까."

장소를 은밀하게 탐색하더니 아주 딱 좋은 자리를 하나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마법사들을 데리고 갔다.

"얘들아, 우산 길드 녀석들을 향해 쇼를 한번 보여 주자."

"알겠습니다, 장군님. 그럼 마법은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블리자드로 해라. 그리고 마법은 한꺼번에 쏟아 붓는 것이 아닌 한 번에 하나씩이다."

즉, 지속적으로 마법을 발휘하라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몸을 숨기고 있던 해골 마법사들과 대마법사들은 우산 길드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심스럽게 블리자드 마법을 시전했다.

휘이잉!

갑작스럽게 우산 길드원들 머리 위에 찬바람이 불더니, 얼마 가지 않아 날카로운 얼음덩어리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헛! 마법이다!"

"겨우 블리자드 하나 정도밖에 안 돼!"

그렇다. 아무리 범위 마법이라고 하더라도 겨우 하나 가지고는 고레벨 유저들에게는 타격이 가해지지 않는다. 적어도 몇 개가 한꺼번에 떨어져야 생명력이 확 깎인다.

"후후후, 역시 가볍게 생각하는군."

우산 길드에서는 이런 범위 마법을 당하고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블리자드 마법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뭐야, 블리자드 마법이 왜 이리 길어!"

우산 길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마법이 사라져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계속 이어지자 의아해했다.

"공격하라! 녀석들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

천상제 길드는 지금 우산 길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마법이 블리자드인지 썬더스톰인지 상관없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돕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전투에서 기회가 생긴 것이다.

"돌격! 물러서지 마라!"

"젠장! 뒤로 물러서며 공격을 막아라!"

어찌 되었건 은밀하고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블리자드에 의해 우산 길드원들의 생명력은 계속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이런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이가 하나 있었다.

"시원하군."

바로 펭귄 왕자 망고였다. 그가 살던 지역은 냉혈의 아멜리아로, 하루 종일 극심한 추위에 시달려야 하는 지역이다.

"아, 얼마나 상쾌한 공기인가!"

더군다나 펭귄 왕자나 펭귄 병사들은 수 계열 마법에 대한 내성이 엄청나다. 이따위 얼음 조각으로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는다.

끼룩끼룩.

펭귄 병사들은 자신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드는지 맹렬한 공격을 펼쳤다.

"하하하!"

펭귄 왕자는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다.

"후후, 펭귄 왕자 네놈이 블리자드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을 거라는 것은 미리 생각했다."

범려는 펭귄 왕자와 그의 병사들을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전부 다 블리자드에 피해를 입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펭귄 패거리들이 살아남는다고 해서 전세가 크게 변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장군님, 블리자드를 쓸 수 있는 마법사가 몇 안 남았습니다."

"상관없어. 지금도 충분히 이득을 봤으니까."

우산 길드는 천상제 길드의 맹렬한 공격에 후퇴도 제대로 못하고 계속해서 떨어지는 블리자드 마법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지금 상태로 블리자드 마법을 그만 쓴다고 해도 우산 길드원들은 생명력이 꽤나 많이 손상당했다.

여기서 우산 길드원들이 포션을 마셔서 생명력을 회복했다고 하지만, 이건 시작부터 물약을 남들보다 더 많이 소비해서 전투 지속 능력을 떨어트리는 행동이다.

어떻게 봐도 우산 길드로서는 안 좋다.

"대마법사들은 운석 소환에 들어가라. 그거 한 번 뿌리고 그레이 캐슬로 가는 타운 포탈을 열어라."

"알겠습니다."

해골 대마법사들은 즉각 캐스팅을 시전하더니 이내 작은 운석들을 소환했다.

"가자!"

범려는 운석이 소환된 것만 보고 바로 타운 포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쾅! 쾅!

"뭐야, 무슨 불덩이가 떨어진 거냐?"

흑검은 갑작스럽게 떨어진 해골 운석 소환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마법 중에는 이런 마법이 없는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구나! 우산 녀석들을 쓸어버려라!"

옥제는 하늘에서 떨어진 마법이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적이 당황하고 있다는 것에만 주목해야 했다.

"돌격!"

우산 길드가 잠시 혼란스런 상황으로 치닫고 있을 때 천상제 길드는 거침없이 치고 들어왔다.

"이런, 젠장! 내가 블리자드 마법에 속지만 않았어도……."

흑검이 맨 처음 떨어지는 블리자드 마법을 무시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다.

"크윽! 강토야, 길드원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려라."

"전군은 후퇴하라!"

흑검의 명령을 받은 강토는 길드원들에게 알렸고 병력을 이대로 뒤로 물려야 했다.

"도망간다! 추격하라!"

범려가 간단하게 마법 몇 번 사용해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전세는 바로 역전되었다.

"으하하하! 우산 길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옥제는 물러나는 우산 길드를 보면서 호탕하게 웃었고 길드원들은 그날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어떻게 보면 천상제 길드는 큰 위기를 넘긴 거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범려로서는 우산이 패했으니 천상제 길드를 없애버릴 차례가 왔다.

"우산 길드 일은 대충 됐고 이제 쓸데없는 말들을 치울 시간이다."

범려는 아천 연합에게 정보를 주면서 한 번 더 충동질을 할 생각이다.

그 충돌질을 당하면 아천 길드는 다시 한 번 천상제 길드를 공격할 테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강한 길드라도 길드의 존속을 위해서라면 패배 선언을 하고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럼 적당한 정보를 하나 골라볼까."

범려는 아천 연합에 줄 천상제 길드의 정보를 고르고 있었다. 모든 정보는 루이가 얻어온 것이기에 단 하나의 거짓이 있다거나, 혹은 정보의 오류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이게 좋겠군. 천상제 길드원들의 직업과 상세 레벨이면 적당하겠어."

범려는 이 정보를 아천 연합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건네주었다.

정보를 받은 아천 연합은 너무나 기뻐했고 동시에 차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성심성의껏 돕겠다고 약속했다.

'으음, 약속이 살짝 찔리는데.'

사실 연합을 이용해 먹는 것은 범려인데 오히려 사람 얼굴에 금칠을 하면서 좋아해주니 약간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

'후우, 어쩔 수 없지. 적당한 관계는 유지해줘야 하니깐.'

범려는 이들과의 관계를 이 정도로 일단락 짓고는 우산의 동향에 대해서 파악을 했다.

우산 길드는 현재 당혹스러운 패배 때문에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특히 우산 길드를 믿고 따라온 중소 길드들은 우산에 대해서 서서히 불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산 길드를 돕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어."

"왜? 우산 길드는 거대 길드잖아."

"아니야. 거대 길드면 이전에 벌어진 전투에서 이겨야지 왜 지냐고. 그것도 다 죽어가는 천상제 길드한테 말이야."

"하긴, 아천 연합과 싸울 때도 그리 잘 싸우는 편은 아니었으니."

현 우산 길드에는 숨겨진 직업을 가진 두 녀석과 우산 길드 정예 길드원들을 제외하면 그리 잘 싸우는 이들이 없었다.

"그럼 기회를 틈 타 여기서 빠질까?"

"그럴까?"

우산 길드가 모르는 사이에 중소 길드들끼리 이 전쟁에서 발을 빼려고 했다.

이런 사실은 아주 은밀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기에 우산 길드인 흑검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우산 길드가 이러는 동안 천상제 길드도 점점 지쳐 가고 있었다. 큰 싸움이 연이어 두 번이나 터지고 바깥 생활이 있는 유저들로서는 힘이 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슬슬 빠지기 시작했다.

"저기… 오늘 어머니 생신이시라서요."

"전, 남자친구하고 약속이……."

"오늘 병원에 가야 해서 말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들 빠져나가자 천상제 길드의 인맥을 통해서 들어온 외부 인사들은 더 심하게 흔들렸다.

옥제는 강하게 밀어붙이며 이들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어라? 천상제 길드가 알아서 무너지는군."

범려는 루이를 통해서 방금 입수한 정보를 보고 의외의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게임 폐인이나 게임으로 돈 벌어먹고 사는 인간들이 아닌 바에야 전쟁을 하루 종일 지켜볼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당연했다.

"으음, 이 사실을 아천 연합에 알리면 딱 좋겠어."

그렇지 않아도 천상제 길드를 언제 공격해야 하는지 그 길일을 택하고 있었는데 시점이 아주 좋은 때가 온 것이다.

범려가 바로 연합에 있는 천마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천마는 아렌에게 사실을 알렸고, 또 각 길드의 간부들과 수장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 소식으로 연합은 랭킹 2위 길드를 때려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연합에서는 길드원들이 모이는 대로 천상제 길드가 있는 곳으로 또다시 전면전을 펼치러 갔다.

하지만 이것은 범려의 함정이다.

아천 연합은 분명 거대 길드지만 이렇듯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는 범려의 말만 듣고 어려운 길로 가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연합의 자금은 말라가고 사람들은 지치게 될 것이다.

"이런, 이런. 성급하게 병력을 모아서 또 진출하다니… 사람들의 얼굴에 희망은 있을망정 그 희망 속에 들어 있는 절망은 모르는군."

천상제 길드를 공격하는 일은 하루가 지난 다음에 해도 괜찮은데 너무 성급하게 병력을 모으는 아천 연합이었다.

"돌격!"

"적이 쳐들어왔다!"

천상제 길드의 상황이 아무리 열악해도 지금 빠져나간 인원수는 그리 많지 않았고 접속 종료를 하려던 유저들은 그것을 중단하고 바로 전투에 투입했다. 그리고 종료한 지 3분 이내의 유저들도 다시 돌아오면서 힘들지만 고된 전투를 시작했다.

아천 연합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무턱대고 병력을 들이받았다.

"이 싸움은 아천 연합의 승리가 되겠고 천상제 길드는 발을 뺄 수밖에 없겠지."

아니나 다를까 이번 전투는 연합의 승리로 끝나고, 연이어 큰 전투를 세 번이나 치른 천상제 길드는 길드의 존속을 위해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이 항복 선언은 『판게아 월드』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천 연합에 투입된 길드들은 다들 상위권에는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룬 전쟁의 승리는 길드 랭킹 1위를 목표로 움직이려던 길드들을 자극하게 되었다.

"아천 연합이 이겼으니 나머지는 우산 길드인데, 저것들 지금 상태가 어떤지 확인 좀 해야겠군."

범려는 루이를 시켜서 우산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도록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루이는 범려가 원하는 모든 정보를 가져왔다.

"으음, 중소 길드들이 등을 돌리려고 하는군. 우산 길드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말이야."

아마 이 사실이 흑검의 귀에 들어갈 때쯤 되면 아천 연합을 공격하는 시기와 맞물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범려가 이걸 그냥 보고 있을 리 없다.

"아천 연합도 슬슬 갈아 치울 때가 됐어."

범려는 연합의 힘이 너무 커지면 불편해지니 스승님께 귓속말을 집어넣었다.

"스승님."

[그래, 제자야. 무슨 일이냐?]

"스승님, 아무래도 우산 길드에게 몇 가지 정보를 은밀하게 흘려야겠습니다."

[정보를 흘려? 이것도 네 계획에 포함된 거냐?]

"약간의 수정이 있지만 크게 변한 것은 아닙니다."

[알았다. 그 내용을 알려다오. 최 회장한테 가서 우산으로 정보를 흘려달라고 부탁을 하면 되니까.]

"예, 스승님. 그러니까……."

범려는 궁귀에게 아천 연합의 정보를 몇 가지 말해주었다. 궁귀는 곧 무슨 내용인지 알겠다는 투로 대답을 하고는 귓속말을 종료했다.

"이제 정보가 우산 길드로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군."

궁귀의 인맥이라면 정보의 은밀함을 위해 몇 단계 거쳐서 추적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정보를 흘릴 것이다.

"그사이 아천 연합이 힘을 얼마나 회복할지 궁금하군."

여기서 아천 연합은 우산과 처절하고 끈질기게 싸워야 한다. 그리고 힘겹게 이기고 난 뒤에 서로 간의 이익을 챙기는 과정에서 연합이 붕괴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다시 혼자 살아남은 우산이 모든 걸 지배하는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단일 길드가 아닌 이상 붕괴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그리고 우산이 아무리 세력을 확장한다고 해도 초반에 무리하면 길드의 근간이 흔들리니 쉽사리 확장은 꿈도 꾸지 못한다.

"결국 힘이 약해진 우산은 힘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을 거야. 그때 내가 나서야겠지."

정확히 범려가 나선다기보다는 해태 길드를 이끌고 또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후우, 그러고 보니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몇 개 안 남았군."

이제 범려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랜만에 사냥이나 가볼까."

범려는 각 길드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루이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는 걸로 시간을 보낸 터라 한동안 사냥에 소홀한 면을 보였다.

"병사들이랑 던전이나 한번 가봐야겠군."

아이템 사냥을 위한 것이 아닌 단순 레벨 업을 위한 사냥이어서 사냥터 선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랜만에 해골 용들도 입장이 가능할 만한 던전을 찾았고, 유저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 중에서 하나를 골라 그곳으로 사냥을 하러 떠났다.

범려가 찾아간 던전은 운 좋게도 유저들이 전혀 없었다. 왜 없냐고 묻는다면 전쟁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창공의 페이셔는 천상제 길드가 항복하기 전까지 삼파전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유저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아마 이 전쟁이 끝난 다음에 유저들이 돌아올 것이다. 그 전까지는 어림도 없다.

"크크크, 전쟁이 나한테는 오히려 이득이군."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걸 상당히 귀찮게 생각하는 범려로서는 이만큼 좋은 기회가 없었다.

"오늘 하루는 여기서 끝장을 봐야지."

범려는 그렇게 던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 *

"강토, 그 말이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흑검 형님. 아천 연합에서 지금 긴급하게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우리는 아직인데 녀석들 너무 서두르는군."

"연합이 서두르면 저희도 서둘러야 할 겁니다. 일단 수적인 면에서 연합이 저희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지금 흑검과 강토의 대화는 아천 연합이 우산 길드를 치기 위해 긴급하게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범려가 의도적으로 우산 길드에 흘려보내도록 조작한 정보였다.

"녀석들이 전열을 재정비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기습을 해야겠군."

"하지만 흑검 형님, 저희 길드원들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황입니다."

"상관없어. 준비된 녀석들만 데리고 가서 기습을 펼친다. 어차피 다른 녀석들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흑검은 지금 준비된 병력만을 데리고 연합을 공격할 생각이다.

"전투 준비가 완료된 녀석들만 골라내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뒤늦게라도 준비를 한 녀석들은 후방에서 다른 녀석들 준비를 도와주도록 할 것."

"네, 흑검 형님."

강토는 흑검의 명령대로 빨리 준비를 마친 병력들만 기습을 위해 따로 뽑았다.

"좋아. 이 숫자 정도면 충분히 기습을 펼칠 수 있겠군."

대략 이동 준비를 끝마치고 모인 이들의 숫자는 200명. 기습을 펼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가자!"

흑검은 아천 연합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으로 달려가더니 야심한 밤을 틈타 공격을 펼쳤다.

"적이다!"

"기습이다."

흑검의 기습 공격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아천 연합은 우산 길드의 기습 공격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하고 방심하다가 당하고 말았다.

"이런, 한 방 먹었다."

연합의 수장들은 하나같이 우산에게 한 방 먹었다면서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이것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당장 준비를 끝마치고 쳐들어가야 합니다."

각 길드의 수장과 간부들이 곧바로 공격하자고 하자 천마와 아렌은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요! 우산 길드 따위는 깨끗하게 쓸어버려야지요!"

천마는 중소 길드 수장들과 간부들을 향해 목청을 높여 대답했다.

각 길드의 수장들은 천마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하루라도 전투를 빨리 끝내기 위해 전쟁 준비를 서둘렀다.

그렇게 서두른 결과 단 3일 만에 모든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다 끝났군."

아렌은 각 길드로부터 날아온 보고에 의해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각 길드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내일 새벽 3시까지 우산 길드의 거점 앞으로 모일 것.]

언제 출발을 하건 상관없이 도착 지점과 시간이 명시되자 미리 출발을 하거나 뒤늦게 출발하는 유저들이 나왔다.

그래도 아천 연합의 길드원들은 전원 약속을 어기지 않고 정확히 새벽 3시에 집결을 했다.

이른 새벽 시간에 사람들이 모였지만 하나같이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다들 모였지?"

"물론입니다."

"그럼 한바탕 저질러보자."

아천 연합은 당당하게 우산 길드의 거점 앞으로 모여 있었기 때문에 우산 길드 쪽에서도 상당히 긴장을 한 상태였다.

"흑검 형님, 아무래도 저번에 기습을 할 때 어설프게 건드린 것 같습니다."

"네 말대로 그런 모양이군."

흑검은 아천 연합에게 겁을 주면서 좀 더 시간을 끌어볼 요량이었지만 상대방을 보아 하니 오히려 성질만 돋우고 만 셈이었다.

"답이 없군."

지금 상황에선 뭔가 특별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정면 승부다."

흑검은 결론을 정면 승부 말고는 없다고 판단하고는 무기를 빼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저기에 우리의 적들이 있다! 적들을 물리치러 가자!"

"와아! 적을 물리치자!"

우산 길드 쪽에서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지자 아천 연합에서도 맞대응을 했다.

"우리는 천상제 길드도 무너트렸다. 겨우 우산 따위에게 기죽지 않는다!"

"기죽지 않는다!"

양쪽에서 울리는 함성 소리는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컸다.

"돌격하라!"

함성을 지른 후에 각 길드 수장들은 거침없이 돌격 명령을 내렸고 수많은 유저들이 격돌하며 달려들었다.

전투는 시작부터 거대한 파도가 양쪽에서 밀려와 부딪치는 것처럼 맹렬했다.

범려는 아쉽게도 이 전투 장면을 구경하지 못했다. 이때 열심히 던전에서 사냥을 하며 병사들의 레벨 업을 위해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덤벼라, 이것들아! 광전사의 뜨거운 맛을 보여 주마!"

흑검은 신나게 대검을 휘두르면서 전장을 휩쓸고 다녔고, 동시에 펭귄 왕자 망고와 골렘 마스터 독도는 전장의 좌우 양쪽 날개 부분에서 활동하면서 전투를 이끌고 있었다.

"나의 펭귄들이여! 모조리 쓸어버려!"

"끼룩! 왕자님의 명령이다! 돌격!"

펭귄들은 생긴 것 답지 않게 몸놀림이 민첩했으며 무기를 다루는 솜씨가 대단했다.

"후후후, 냉혈의 축복!"

-펭귄들의 모든 능력치가 30분간 15% 상승합니다.

망고가 펭귄들 전용의 버프를 걸어주자, 펭귄들의 초롱초롱한 눈에서 갑자기 시퍼런 안광이 쏟아졌다.

"끼룩! 힘이 넘친다!"

"끼룩! 왕자님을 위하여!"

펭귄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거침없이 공격을 퍼붓자 오히려 놀란 것은 아천 연합의 유저들이었다.

"아니, 무슨 펭귄이……."

"끼룩, 우리의 목숨은 왕자님의 것! 왕자님에게 충성을!"

"끼룩! 충성을-!"

펭귄들은 거의 광신도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 덤벼들었다. 정말 무섭기 그지없는 녀석들이다.

"우하하! 나의 펭귄들이여! 돌격하라! 멈추지 마라!"

망고는 자신의 부하들의 생사는 전혀 관심이 없는지 오로지 돌격 명령만 계속하고 있었다.

"끼룩! 힐! 힐!"

그들이 이렇게 돌진을 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펭귄 사제 때문이다.

"우하하! 나에게 펭귄 사제가 있는 이상 난 무적이다!"

펭귄들의 숫자가 총 500인데 여기서 사제가 50명이나 된다. 범려와 비교해서 너무나 차이가 날 정도로 대단한 숫자인 것이다.

하지만 펭귄 사제가 오로지 펭귄들에게만 힐을 시전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하하!"

망고는 전투를 벌이는 내내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큰 소리로 미친 듯이 웃어댔다.

"정말 소름 끼치는 웃음이군."

주변에 있던 우산 길드원이나 양산 길드원들은 망고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전투는 몇몇 특정 직업의 활약으로 인해서 아천 연합이 수세에 몰리자 아렌과 천마는 직접 병력을 이끌고 그 숨겨진 직업들을 상대하기 위해 나섰다.

"네놈이 펭귄 왕자군."

"하하하, 그렇다. 내가 펭귄 왕자다. 너희들도 내 펭귄들 손에 죽고 싶은 모양이지?"

"웃기는 소리! 내가 너를 죽여주겠다."

"그럼 어디 해봐! 나의 펭귄들을 뚫고 말이야."

"하하하, 누가 펭귄들과 싸운다고 했나? 너랑 싸워야지. 얘들아!"

뒤에서 유저들이 우르르 튀어나오더니 펭귄들을 상대하면서 달려들었고 아렌과 천마는 합공을 펼치려 펭귄 왕자 망고의 곁으로 뛰어들었다.

"이런!"

망고는 설마 이들이 펭귄들을 따로 떼어놓고 둘이서 직접 공격해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해 당황하면서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에잇!"

챙! 챙! 챙!

망고가 검을 다루는 실력은 펭귄들이 하는 것만큼 뛰어나지 않았다. 아니, 검을 다루지 못한다고 보는 게 옳았다.

"펭귄들이여! 날 구해다오!"

"끼룩! 왕자님을 보호해라!"

망고의 부름에 펭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이런, 젠장! 펭귄들의 반응이 이렇게 빠를 줄이야."

펭귄 병사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목숨을 등한시하며 망고를 향해 뛰어들었다.

"끼룩! 왕자님을 지켜라."

"끼룩! 왕자님을 보호하라."

펭귄들은 모두 왕자를 지켜야 한다면서 소리쳤고 눈에서는 시퍼런 안광을 흘리고 있었다.

"칫! 이럴 때 우리 쪽에 숨겨진 직업을 가진 유저가 없다는 게 아쉽군."

천마나 아렌은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없는 사람을 당장 만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펭귄들을 저렇게 이용해 먹는군.'

아천 연합과 우산 길드가 한창 싸우고 있는 도중에 던전 사냥을 끝마치고 범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던 숨겨진 직업인 펭귄 왕자를 보고 있었다.

"별로 마음에 드는 방식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아."

펭귄 왕자가 펭귄 병사들을 다루는 모습은 범려와 정말 비교되는 모습이지만 이건 각 직업들의 형태에서 비롯된 스타일의 차이이다.

"하지만 저거 좀 위험해, 계속 지켜봐야겠어."

범려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펭귄 왕자만을 보며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직업의 고유 스킬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병사들을 다루는 방식이 무식해. 레벨은 꽤나 되는 걸로 아는데."

범려가 펭귄 왕자를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해골 병사들은 철저하게 각 병사들마다 정해진 직업에 따라 행동을 하지만 펭귄 병사들은 그런 구분이 모호했다.

"어떻게 하면 병사를 저렇게 키울 수 있는지 궁금하네."

범려는 펭귄 왕자와 싸운다면 승리를 장담하는 정도가 아니라 저 귀여운 펭귄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별거 아니야. 특별한 마법을 쓰지 않는 이상 별 볼일 없어."

아니나 다를까 펭귄 병사들에게 가장 피해를 많이 줄 수 있는 마법사 계열이나 해골 부장처럼 중간급 지휘관이 전혀 없었다.

"그럼 저놈 혼자서 지휘를 한단 말인데. 뭐, 하는 짓거리를 봐서는 별거 없군."

그냥 돌격만 외쳐 대는 녀석에게 대응하는 방법이야 범려의 머릿속에 수도 없이 많다.

"다음은 골렘 마스터인가."

아무리 봐도 별다른 위협이 될 것 같지 않은 펭귄 왕자를 뒤로하고 범려는 반대편에 있는 골렘 마스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니!"

범려는 골렘 마스터를 보고 깜짝 놀란 게 하나 있었다.

"저게 골렘이야, 아니면 사람이야?"

분명 돌과 암석으로 만들어진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골렘이 맞다. 그런데 모습이 사람을 조각해놓은 것같이 정교하고 섬세했다.

"후우, 골렘들을 지휘하는 데 지휘봉을 쓰네."

골렘들이 그 지휘봉의 움직임에 맞춰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듯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놈은 좀 재미있군."

범려는 개인적으로 골렘 마스터에 더 관심이 갔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적으로서의 관심이었다.

"후후, 저 골렘들과 내 해골 부장들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

범려는 그게 궁금했다. 해골 부장들은 3개의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무기의 달인이며 범려의 보조를 맞춰주는 존재다. 더군다나 전장에서도 선두로 활약하기에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녀석들이다.

"뭐, 때가 되면 느긋하게 해볼 수 있겠지. 그것보다 저 녀석 혼자서 저 짓을 하다가 눈먼 화살 같은 게 날아오면 어쩌지?"

지휘를 하는 모습이 그리 불안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음, 한번 실험해볼까."

범려는 활을 꺼내더니 화살을 재고는 힘차게 당겼다.

"후우."

쉬이익!

거리가 꽤 되어 보이는데 범려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거침없이 화살을 쏘았다.

"크윽!"

한순간 골렘 마스터인 독도의 오른팔에 화살이 한 대 꽂혔다.

"누가 화살을……."

독도는 화살을 맞았더라도 지휘를 멈출 수가 없기에 계속 팔을 움직이며 지휘를 했다. 하지만 팔이 약간 시큰거리는지 골렘들의 움직임이 조금 느려진 것 같았다.

"역시 저 지휘봉, 단순한 지휘봉이 아니군."

범려는 단번에 골렘 마스터의 문제점을 파악했다.

"전쟁터에서 가만히 있는 인간은 날 죽여 달라는 것과 같지."

해골 병사들을 지휘하는 범려는 언제나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본 적이 없다. 아주 먼 후방에서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주변을 돌면서 끊임없이 병력을 움직였다.

"이걸로 대략 녀석들의 문제점을 알았다. 뭐, 나중에 저들이 이 문제점을 고칠지는 모르지만."

저 두 사람이 스스로의 약점을 알고 나중에 고친다면 범려가 생각했던 방법은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간다면 범려는 여지없이 그들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리라.

"후우, 돌아가야겠군. 이건 더 이상 누가 이기든 지든 관계없이 양쪽 다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의 피해를 입겠군."

아니나 다를까 우산 길드 쪽과 아천 연합 쪽에서 벌써부터 죽은 유저들이 태반이었다.

"어느 쪽이 이기든 난 우산 길드를 해체시키는 게 목적이니… 뭐, 상관없지."

범려는 지금 상황에서 누가 이기든 우산 길드는 다시 일어나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많은 공을 들여서 비매너 유저들을 찾아내고 이상한 헛소문과 다른 길드들을 부추겨서 전쟁을 일으키게 만든 것이다.

우산 길드를 일어서지 못하게 말이다.

챙! 챙! 챙!

범려가 자리를 뜨자 전투는 더 치열해졌다. 유저들의 숫자가 줄어들면 들수록 전투는 더욱더 긴박감을 띠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끝이다!"

"흩어지지 마라!"

다들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온몸 곳곳에 그 맹렬한 전투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이제 사람들도 얼마 안 남았군."

각 진영의 유저들의 숫자는 잘해봐야 100을 넘지 않았다.

"돌격!"

"와아-!"

결국 이 싸움의 승자는 아천 길드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도 너무 많은 피해를 보았기에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었다.

"후우, 생각보다 피해를 많이 봤군."

"하하하, 그래도 이겼어!"

아천 연합의 승리는 『판게아 월드』에 파란을 일으켰고 대륙 전체에 전쟁의 바람을 불게 만들었다.

"힘을 모으면 아무리 강한 길드라도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도 1위를 향해 가는 거야!"

이렇게 되자 각 지역의 길드들은 자신들이 터를 잡고 있는 곳에서 일인자가 되기 위해 전쟁을 터트렸다.

"……."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쟁을 일으킨 길드들을 욕했지만, 길드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인원수가 모이면 자연스럽게 힘이 생기니 욕은 해도 막상 덤벼들지는 못했다.

"이런, 생각보다 전쟁이 심각한데."

그나마 제일 조용한 곳은 창공의 페이셔 지역이었다. 아천 연합이 이곳을 평정해버렸기에 그들의 힘이 어마어마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연합이라서 개개인의 힘이 그리 강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쪽 지역을 원합니다."

"우리도 이 도시를 원합니다."

연합의 특성상 적이 있을 때는 똘똘 뭉치지만 그 적이 사라지면 서로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이기적으로 변하게 된다. 더군다나 다들 전쟁의 목적이 창공의 페이셔 지역의 한 부분을 먹어서 막대한 세력을 얻고자 원했다.

"나와 같은 지역을 원하다니. 한번 해보자, 이거요!"

"누가 할 소리! 여기는 내가 이곳에 올 때부터 점찍어놓은 곳이야!"

각자의 이익이 걸린 문제라 다들 민감하게 반응을 했다.

"우리는 절대로 다른 곳은 원치 않는다. 반드시 이곳이어야 한다."

"흥! 그렇다면 협상 결렬이군!"

그동안 우산과 천상제 길드를 물리치면서 쌓아온 사람들인데 눈에 걸린 이익이 문제라 바로 갈라서는 것을 서슴없이 했다.

"이런……."

아렌 길드나 천마 길드는 원래 자신들의 땅인 곳을 돌려받으면 그만이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길드들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이를 들이대는 것이다.

아렌과 천마가 중소 길드들을 중재해보려고 했으나 이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원하는 이익에만 목숨을 걸 뿐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니 연합 결성은 자연스럽게 해체가 되었고, 급기야 페이셔 지역은 중소 길드들의 전쟁터로 변하게 되었다.

"어디를 가나 전쟁이 터지는군."

주변에서 너무나 많은 싸움이 벌어지자 『판게아 월드』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긴급 대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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