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제작자-79화 (79/80)

제8장. 리벤지(Revenge)

-안녕하세요. 『판게아 월드』입니다. 요즘 『판게아 월드』 상황이 너무 급변하여 새로운 업데이트를 시행합니다.

바로 전투 구역입니다. 이는 필드에서 다수 대 다수의 전투를 벌이도록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전투 구역을 입장하기 위해서는 각 필드에 정해진 입구를 통해 전투를 벌이시면 됩니다.

워낙 다급하게 업데이트를 했지만 수많은 유저들이 이것을 환호했다. 전쟁과 무관하게 게임을 즐기고 싶은 유저에게는 아주 좋은 업데이트였다.

"『판게아 월드』 측에서도 고생하네."

아마 『판게아 월드』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짐작하고, 창공의 페이셔 지역 전체가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을 때부터 혹시 모를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슬슬, 우산 길드가 기회를 노릴 때가 됐는데."

범려는 아천 연합이 뿔뿔이 흩어지자 그들에게 우산 길드가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전에 치명적인 일이 벌어질 것이다."

우산이 힘을 길러 연합에 있던 길드들에게 복수하려 할 때 『판게아 월드』 게시판에 최고의 이슈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지금까지 올라왔던 비매너 유저들은 하나같이 우산 길드 사람이었다.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고 우산 길드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우산 길드가 이런 쓰레기 길드였어?

-정말 양의 탈을 쓰고 별별 짓을 다했군.

-지독한 놈들.

이런 소문이 『판게아 월드』 전체를 뒤덮자 우산과 잠시 인연이 있었던 길드나 사람들은 바로 등을 돌리기 바빴다.

"후후후, 이제 우산 길드원들은 아무리 자기가 떳떳해도 쓰레기 취급을 받겠어."

정말 범려의 생각대로 아무리 착실하게 게임을 하던 사람이라도 길드 이미지가 쓰레기가 되었기에 같은 취급을 받았다.

"전 길드에서 탈퇴하겠습니다."

결국 정말 깨끗하게 살던 유저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돌아서면서 우산 길드를 욕했다.

"씨발, 내가 이딴 길드를 위해 지금까지 목숨 바쳤단 말인가."

정말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 없었다.

여기서 제일 답답한 사람은 흑검과 강토였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지, 강토야."

"모르겠습니다, 형님. 이제 길드가 어떻게 될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심각해졌다.

"나 쫓기는 몸인데 길드에 좀 받아주쇼."

『판게아 월드』를 하면서 현상 수배에 걸리거나, 혹은 NPC들과 사이가 안 좋은 유저들이 속속 몰려오는 것이다.

"……."

아무리 흑검이라도 이런 걸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길드가 무너진다.

"쫓기는 몸이라… 그럼 우리가 숨겨 주는 대가로 넌 뭘 줄 거냐!"

흑검은 당당하게 자신들이 몸을 숨겨 주는 대가를 요구했다.

"……."

도망자가 길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겠는가. 그냥 자신의 몸이나 혹사시키는 것을 하는 게 전부이다.

"아무래도 없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노예 계약을 쓰겠나?"

흑검은 여기서 확실히 녀석에게 노예 계약을 들먹였다.

『판게아 월드』에서는 노예 계약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잘 모른다. 알고 있다고 해도 쓰지 않는 시스템이다.

이 계약서를 쓰면 철저하게 노예처럼 부려진다. 게임에서 제일 중요한 자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각박한 삶이 힘들어 게임에서는 자유를 원하는데 이걸 무참히 박살내는 시스템이다.

"……."

아무리 도망자라고 하지만 노예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바로 뒤돌아섰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다시 돌아와야 했다.

"노예로 일하죠.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처음에 반말을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살아남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조건? 웃기는 소리군. 노예에게 조건 따위는 없다. 계약을 맺는다면 무조건 평생이다."

흑검은 도망자를 받기 싫어서 일부러 평생이라고 말했다.

"크윽."

도망자는 차라리 이대로 떠돌아다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리를 떠났다.

"형님, 정말 이대로 가면 길드가 와해될지도 모릅니다."

"나도 알아. 그렇다고 사건이 이렇게 커진 거 그들을 다 내쫓는다고 해도 뭐가 달라지겠어? 차라리 길드를 해산하고 말지."

흑검은 줄어든 길드원들의 수를 보면서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한심하다, 한심해."

흑검은 별수 없이 길드원들이 줄어드는 관계로 양산 길드를 없애버리고 하나의 길드로 통합하려고 했다. 하지만 양산 길드에서 내부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양산 길드가 반쪽이 나버린 것이다. 우산 길드 이미지가 나빠지자 우산을 버리고 따로 살림을 차리자는 사람들끼리 모아서 다른 이름으로 길드를 만든 것이다.

"남은 사람들은 그나마 우산 길드에 대한 애정이 남은 사람들이군."

결국 양산 길드의 해체로 우산 길드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

이때 범려는 모든 소식을 듣고 우산 길드를 향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양산 길드가 결국 해체하여 남은 것은 우산 길드 하나뿐이군."

범려는 사태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길드 이미지가 한번 망가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선전포고부터 해야겠지."

범려는 궁귀에게 귓속말을 넣더니 이제 안심하고 우산 길드를 향해 선전포고를 올려도 된다고 말했다.

[후후후, 드디어 선전포고구나.]

궁귀는 선전포고라는 말에 입가에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스승님, 선전포고하러 가실 때 저랑 같이 가요."

[그래. 같이 가서 녀석들에게 선전포고를 하자.]

궁귀는 범려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는 지금 우산 길드가 있는 길드 아지트 앞에서 보자고 약속을 했다.

"여기가 우산 길드의 아지트군."

"부자는 망해도 3대가 먹고살 방법이 있다고 하더니 거짓말이 아니네요."

"당연하지. 그만큼 모아놓은 돈이 얼마인데. 이것들도 다르지 않지."

우산 길드가 아무리 저물어가는 길드라고 하지만 아지트는 거대한 저택이 아니라 요새에 가까울 정도로 웅장했다.

"누구냐!"

길드 아지트라서 그런지 입구에는 NPC 경비병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난 해태 길드의 마스터인데 안에 있는 우산 길드 마스터를 만나고 싶군."

"마스터를 무슨 일로 만나려는 것이냐?"

경비병은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물었다.

"선전포고 때문에 왔다고 전해라."

궁귀의 선전포고라는 말에 경비병들은 각자 무기를 뽑아들면서 경계 태세를 취했다.

궁귀는 경비병들이 무기를 뽑아드는 모습을 봤음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담담하게 그들을 마주 보았다.

"누구 마음대로 마스터를 만나려는지 모르나 그렇게는 안 된다."

경비병은 절대 마스터가 있는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려고 검을 겨누었지만 그건 뒤에 나타난 영혼의 천사들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영혼의 천사들아, 죽이지는 말고 제압만 해라."

"예, 장군님."

범려의 명령에 따라 영혼의 천사들은 경비병들을 순식간에 제압하고는 경비병 중 한 명의 무기를 빼앗고 길드 마스터에게 연락하라면서 돌려보냈다.

무기를 빼앗긴 경비병은 부리나케 아지트 안으로 들어가더니 흑검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뭐? 선전포고?"

흑검은 경비병의 말을 듣고 당장 길드원 몇 명과 같이 아지트의 입구로 걸어 나왔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군, 흑검."

"아니! 넌 해골 제작자!"

예전부터 시작된 악연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것이다.

"그래, 내가 해골 제작자다."

"흑검, 내 제자의 얼굴만 보는데 스승의 얼굴도 봐야지."

"스승?"

궁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흑검은 의문이 들었지만 그 대답은 범려가 해주었다.

"그렇다. 이분은 현실에서 나의 스승님이시지."

"……."

흑검은 범려와 궁귀가 사제지간이라는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들었다.

"선전포고를 하려고 사제지간끼리 같이 나를 찾아오다니."

"당연하지. 우산 길드에서 우리를 어떻게 했는지는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지 않나."

"흥! 겨우 그것가지고 그러다니."

"그래, 그렇겠지. 나와 일대일로 붙어서 깨진 것 때문에 그 분풀이를 하려고 해태 길드를 공격했잖아."

"뭐야!"

맞는 말이다. 흑검은 범려에게 일대일 승부를 벌여서 진 이후 그 복수로 해태 길드를 공격했다.

"그럼 지금 한판 벌여 볼까."

범려는 섬전의 창으로 흑검을 가리키면서 지금이라도 네놈쯤은 가볍게 이길 수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 그 선전포고 받아주지. 후회하지 마라!"

"하하하, 해태 길드가 예전 같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길드원들이 그깟 레인저로 전직했다고 기고만장한 모양이군."

"레인저가 어떤 직업인지도 모르는 녀석이 떠들기는. 이미 선전포고가 받아졌으니 지금부터 2시간 후에는 전쟁이다."

범려는 자신의 할 말만 하고는 궁귀와 같이 스크롤을 찢더니 그레이 캐슬로 돌아가 버렸다.

"스승님, 지금 길드원들을 모두 불러들이십시오. 그레이 캐슬을 녀석들의 아지트 위로 옮기겠습니다."

"알았다."

궁귀가 곧장 길드원들에게 선전포고 소식을 알리자 해태 길드원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당장 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모든 길드원들이 성으로 돌아오겠다면서 대답을 하고는 사냥을 하건 뭘 하건 바로 궁귀 앞에 모여들었다.

"이제 녀석들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몰래 키워놓았던 병사들을 써먹을 때가 되었다."

"드디어!"

길드원들은 레인저로 전직하고 나서 다들 비밀리에 병사들을 고용해서 그들을 키우고 있었다. 매달 봉급을 줘야 하기에 돈이 지속적으로 나갔지만 이들을 부려 먹는 수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병사들에게는 전시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 두었지?"

"물론입니다, 궁귀 님. 전쟁이 터지면 최고 작전권자의 명령이 최우선이라고 했습니다."

"잘했다."

궁귀는 이번 전쟁에서도 범려를 최고 작전권자로 생각하고 있다. 이전에는 비록 패했지만 그건 범려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 *

그레이 캐슬이 우산 길드의 아지트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전쟁이 나려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저것들을 어떻게 하지……."

범려는 머리를 굴리다가 해태 길드원들의 몸 상태가 어떤지 궁금했다.

"그리고 길드원들이 데리고 다니는 병사들도 컨디션이 좋아야 하는데… 그럼 공격을 대략 하루나 이틀 뒤에 시작하는 게 제일 이상적이겠군."

그레이 캐슬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 아니기에 우산 길드가 이곳을 발견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혹 발견을 했다 하더라도 하늘에 떠 있는 성을 공격한다는 것은 비공정을 만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스승님을 만나러 가자."

범려는 궁귀를 만나러 성안에 있는 광장으로 달려갔다. 광장에는 길드원들이 집결해 있는 상태였고 연무장에는 길드원들이 고용한 일반 병사들과 해골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 제자야, 어서 오너라. 그렇지 않아도 너에게 할 말이 있었다."

"무슨 말인데요?"

"이번에도 모든 작전권은 너에게 임명할 생각이다."

"네?"

범려는 이번 전투의 작전권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급한 상황도 아니고 길드원들도 병사들을 데리고 전투를 벌여야 할 상황이 닥치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길드원들은……."

"그건 걱정하지 마라. 모두들 네가 전투를 지휘하기 바란다."

범려는 눈앞에 있는 이들을 보면서 결연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보잘것없는 저를 믿어주셔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군대의 명령 체계는 항상 일원화되어야 한다. 거기에 적임자가 너 말고 누가 또 있냐."

길드원들은 범려를 굳게 믿었다.

"그럼 이번 전투 일정을 발표하겠습니다."

범려는 지금까지 생각해놓은 전투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첫 전투가 벌어지는 시점이 선전포고가 발효되고 난 직후가 아니라 이틀 뒤라는 것이다.

"왜 이틀 뒤가 되지? 우산 길드 녀석들에게 시간을 주면 안 되잖아."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녀석들은 지금 용병들을 고용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제 정보에 따르면 정확히 이틀 뒤에 재계약의 시점이 옵니다."

범려의 생각은 이렇다. 우산 길드에서 지금은 용병을 쓰면 그 기간에 따라 엄청난 돈을 쓰게 되니 일단 있는 자금을 최대한 소모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하하하, 속전속결이 아닌 장기전으로 이끌어갈 생각이구나."

궁귀는 범려의 계략에 대해 칭찬을 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산 길드의 인지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그런 돈을 쓰는 것은 큰 부담입니다. 그리고 이틀 뒤 전투는 전면전이 아닌 소극적인 국지 전투만 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우산 길드는 거대 길드! 언젠가 그 나쁜 이미지를 버리고 새롭게 탄생할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하지?"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우산 길드는 지금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만약 인지도를 다시 회복한다고 해도 지금으로서는 예전처럼 힘을 발휘하는 일은 어림도 없습니다."

모두가 범려의 말을 듣고 동의를 했다. 지금의 우산 길드는 누가 봐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만약 회복의 기미가 보인다면 내가 그냥 놔둘 줄 알아.'

범려의 성격상 절대로 그들을 놔둘 리 없다. 철저하게 짓뭉개버려서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게 없애버릴 것이다.

"그럼 현실 시간으로 이틀을 쉬세요."

범려는 이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떴고 길드원들은 전쟁을 위해서 각자 휴식을 취하려고 로그아웃을 했다.

"나도 로그아웃해볼까."

모두가 떠난 것을 확인한 뒤에야 범려는 로그아웃을 했다.

정확히 이틀 뒤 길드원들은 다시 접속을 했다. 다들 충분한 휴식을 취해서 그런지 온몸에서 기운이 넘치는 것 같았다.

"아, 개운하다."

범려는 기지개를 켜면서 게임에 접속했다.

"자기야."

로즈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범려 옆으로 알게 모르게 다가왔고 취선은 묵직한 도끼를 쥐면서 적당히 어깨를 풀어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헬렌과 제마는 한창 연애를 하는 중이라서 그런지 둘만의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킥킥대고 있었다.

"그럼 슬슬 지도를 살펴볼까나."

긴급 업데이트를 통해서 길드원들은 전투 구역이라는 곳에서 전투를 벌이지만 그곳은 일반 필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냥 일반 유저들과 전투를 원하는 유저들을 구분하기 위한 시스템에 불과하다.

"기본적인 지형은 똑같고 다른 것은 누가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거겠지."

전투 구역은 『판게아 월드』 대륙의 복사판이라서 아무나 들어온다.

간혹 의외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어디 긴급 업데이트 아니랄까 봐 업데이트에 허점이 있었다.

"스승님, 이동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해골 용을 이용하자. 아무래도 그게 편한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해골 용의 덩치를 생각하면 여기 있는 길드원들과 병사들을 동시에 태우고 갈 수 있었다.

'이럴 때는 해골 용이 3마리라는 것이 참 좋군.'

해태 길드원들은 해골 병사들처럼 몸을 압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해골 용의 갈비뼈 안에 앉혀 태울 수는 있다.

"두 번 왕복하면 병사들과 길드원들을 모두 태울 수 있겠지."

범려는 해골 용을 이용해 길드원들과 일반 병사들을 전투 구역으로 호송했고 범려는 해골 병사들과 같이 움직였다.

전투 구역에 들어섰지만 이곳에는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각 지역을 담당하는 수호룡들도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는 확실히 다르군."

전투 구역은 분명 『판게아 월드』 대륙을 그대로 복사해놓은 지역이다. 그런데 있어야 할 것들이 없다 보니 적막한 분위기가 흘렀다.

"영혼의 천사, 우산 길드 녀석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라."

"예, 장군님."

영혼의 천사들은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우산 길드원들을 찾으러 떠나버렸다.

"해골 용들은 하늘 위에서 대기해라. 내가 신호를 보내면 내려와서 공격을 하고."

"알겠습니다."

일단 하늘을 날 수 있는 존재들은 무조건 날아올라 그 모습을 눈에 띄지 않게 했다.

"다들 몸을 숨기세요. 적들에게 위치가 파악되지 않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마시구요."

해태 길드원들은 엄폐 스킬을 이용해 주변 환경에 녹아들었고 해골 병사들은 땅속으로 숨어버렸다.

남은 거라고는 일반 병사들인데 이들은 어떻게 숨을 수 있는 재주가 없었다.

"병사들은 이런 점이 불편하군."

해골 병사들과 활용도 면에서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일반 병사들은 어쩔 수 없군. 다들 근처에 자리를 잡고 대기!"

대기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각자 그룹을 이루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형님, 이번 전투는 여기서 벌어지나요?"

"나도 잘 몰라. 여기서 벌어질 수도 있지만 일단 우산 길드 녀석들을 찾아서 움직이는 게 우선이야."

"알겠습니다, 형님."

"취선아, 넌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 좀 해줘."

"네!"

취선은 범려의 지시에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해골마를 타고 주변의 지형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다.

"제마야."

"무슨 일이야?"

범려는 제마를 불렀다.

"다른 건 아니고 혹시 좋은 포션은 챙겨 왔냐?"

"물론! 전쟁에서 포션은 필수 소모품이지. 그리고 길드원들에게 넉넉하게 나눠줬으니 그리 걱정하지 마라. 마지막으로 이거 받아라."

제마는 범려에게 포션을 내밀었다.

"생명력 회복 포션하고 마나 포션, 그리고 기타 등등 포션 많다."

"그 기타 등등의 의미는 뭐냐? 좀 불길하다."

"내가 이상한 거 너한테 주겠냐!"

"하긴."

"혹시 모르지. 전쟁이 아니라면 실험용으로 이걸 마셔 줄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범려는 제마의 말을 듣는 순간 포션을 받으려는 손을 멈췄다.

"장난이야."

"그 말을 들으니 의심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데?"

"내가 전쟁이 터진 상황에서 포션 가지고 장난질은 안 친다."

제마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듣자 그제야 범려는 포션을 받아 챙겼다.

"병사들에게도 포션을 줬냐?"

"물론 줬다. 아마 전투 시작 전에 포션을 마시라고 명령하면 반은 약물중독으로 쓰러질 만큼 많이 줬지."

그만큼 여러 종류의 포션을 줬다는 말이다.

"역시 너밖에 없다."

"그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확실히 이런 전쟁이 터지면 뒤에서 팍팍 지원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든든하게 만든다.

"그리고 해골들에게도 회복 포션 중심으로 나눠줬으니 전투가 벌어지면 꽤나 오래 버틸 거야."

범려가 걱정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해골 병사들이 여기서 죽으면 그대로 끝이라는 것이었다. 상위 등급으로 올라갈수록 병사들이 죽을 확률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한번 죽으면 피눈물을 흘려야 한다.

"오, 나의 진정한 친구!"

해골들까지 포션을 나눠줬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쩝, 진정한 친구라 여기면 나중에 정령석이나 많이 만들어서 줘."

"그건 걱정 마시게. 내가 이 전쟁이 끝나고 확실하게 만들어주마."

범려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약속을 했다.

"후후후, 그렇지 않아도 정령 폭탄을 있는 대로 다 가져왔는데."

제마가 사악한 표정을 짓자 범려는 가슴 한곳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가뜩이나 범려가 준 정령석의 숫자는 적지 않았다.

적어도 1천 개가 넘는 폭탄을 들고 왔다는 소리다.

'어쩌면 해골 마법사들의 활약이 줄어들 것 같기도 한데.'

범려의 마법사들이 그럴 일은 전혀 없겠지만 그만큼 제마가 각오를 하고 왔다는 말이다.

"좋아. 활약을 기대하지."

"후후후, 그래. 기대해주라. 연금술사의 끝을 보여 줄 테니."

제마는 말을 마치고는 이상한 웃음을 흘리면서 헬렌이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형님! 조사 마치고 왔습니다. 저 앞에는 넓게 평지가 펼쳐져 있고 남으로는 산맥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취선은 조사를 하고 온 지형을 상세히 설명했고 범려는 그걸 들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럼 전투가 가능한 곳은 저쪽 평지 한 곳뿐이군."

물론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는 가정하에 생각한 것이지만 여기서 전투가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범려는 대기 상태에 있던 병사들을 모아서 몇 명씩 조를 짜 주변 순찰을 지시했다.

병사들은 최고 작전권자인 범려의 말을 거스르지 않고 충실하게 명령을 이행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

우산 길드를 찾으러 떠난 영혼의 천사들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왔다.

"장군님, 우산 길드의 행방을 알아냈습니다."

"그래, 놈들은 어디 있냐?"

"정 북쪽 방향으로 4시간을 날아가면 됩니다."

"뭐? 하늘을 날아서 4시간?"

영혼의 천사가 4시간이라고 말할 정도면 굉장히 멀다. 녀석이 최고로 날아가는 속도가 딱 음속의 두 배다. 한마디로 너무 멀리 있다.

"후우, 아무래도 대륙 끝자락에서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군."

이렇게 되자 범려는 해골 용을 이용해 병력을 이동시켰다. 정말 해골 용이 아니었으면 이동을 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범려의 군대는 영혼의 천사가 날아가서 움직이는 거리로 1시간 정도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부터 천천히 이동하며 지형을 탐색해야겠군."

아직 우산 길드 쪽에서는 해태 길드의 위치를 모르는 상황이다.

"적이 나의 위치를 모른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이점이지."

더군다나 범려에게는 최고의 이동 수단이자 공격 수단인 해골 용이 존재하고 있다.

"루이."

"네, 주인님."

"여기서부터 우산 길드가 있는 곳과 주변 지역을 확실히 조사해서 지도로 만들어 와라."

"알겠습니다."

루이는 곧장 쥐들을 불러서 범려에게 받은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지도가 만들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5시간이 넘지 않았다. 특별하게 몬스터를 표시하거나 해야 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지도는 단순했다.

"음, 지금 우산 길드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숲 속이군. 아직 다른 이들이 발견하지 않아서 숲 속에서 몸을 숨기겠다는 건가?"

숲의 장점은 주변이 나무로 둘러싸여 있기에 은신에 편했다. 하지만 반대로 그 나무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적이 근거지를 발견하고 기습을 해오면 방어가 어렵다.

"아, 양날의 검을 가진 숲에 숨다니… 뭐, 나에게는 이득이지."

아무리 우산 길드의 흑검이라도 숲에 대한 약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흑검이 자리를 이동하기 전에 공격을 한번 해볼까."

범려는 흑검이 다른 곳에 진지를 세우기 전에 가볍게 기습을 해볼 생각으로 궁귀를 찾았다.

"스승님."

"무슨 일이냐, 제자야."

"우산 길드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길드원들만 데리고 기습을 해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후후후,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거렸는데 당연히 가야지. 그곳이 어디냐?"

"장소는 이 지도에 표시를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동은 해골 용들이 숲 입구까지 태워줄 겁니다."

"알았다."

궁귀는 범려가 건네준 지도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길드원들을 소집했다.

"다들 모여라."

길드원들은 궁귀의 부름에 전원이 움직였다.

"궁귀 님, 전투를 하는 겁니까?"

"물론이지."

"언제 싸우러 가는 겁니까?"

"지금 당장 해골 용을 타고 작전 지역으로 이동한다."

"네! 알겠습니다!"

해태 길드원들은 전원 해골 용을 타고 우산 길드가 자리 잡고 있는 숲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궁귀 님, 해골 용을 데리고 왔으면 브레스로 한번 질러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후후후, 제자 녀석은 생각보다 치밀한 녀석이란다. 성급하게 자신이 갖고 있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지 않지."

궁귀는 범려의 생각을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지독한 복수를 위해 해골 용을 쓰지 않고 시작은 길드원들만을 이용해 가벼운 기습만 하고 차근차근 짓눌러갈 것이다.

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복수 방법인가.

"우산 길드가 있는 진영으로 간다. 각자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궁귀 님."

"그럼 우산 길드 진영 앞에서 보자."

길드원들은 이내 숲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버렸다.

한편 우산 길드 진영에서는 길드원들을 이용해 주변 정찰을 시작했다.

"무슨 놈에 업데이트가 이래!"

아무것도 없이 『판게아 월드』 땅덩어리를 그대로 복사해서 그런지 너무나 넓었다.

"후우, 일단 해태 길드를 찾는 게 급선무입니다."

"알고 있다, 강토."

흑검은 해태 길드를 찾아야 했고 하루라도 빨리 군대를 다른 곳으로 옮겨 자리를 잡아야 했다.

"우리가 로빈 후드도 아니고 이런 곳에 자리 잡는 것은 위험하지."

흑검도 숲의 장점과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디 있는 거냐? 해골 제작자!"

전투 구역에서는 어디서 적들이 기습해올지 몰랐다.

여기는 우산 길드와 해태 길드만 있는 것이 아닌, 여러 길드가 알게 모르게 숨을 죽이며 자신들의 숙적을 찾아다니고 있는 곳이다.

"그래도 업데이트를 이따위로 하다니, 짜증나는군."

흑검이 전투 구역 업데이트에 대해서 짜증을 내고 있을 때 해태 길드원들은 이미 우산 길드 진영 가까이에 도착해 있었다.

레인저로 전직한 이들은 이동을 멈출 때마다 엄폐 스킬을 이용해 몸을 숨겼고 주변을 면밀히 살피면서 은밀하게 움직였다.

'스릴 넘치는군.'

해태 길드원들은 잠입 액션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귓속말을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들 도착했나?"

[물론입니다. 지금 기습할까요?]

"아니. 조금만 더 주변을 살펴라. 그리고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궁귀는 완벽을 기하기 위해 길드원들에게 주변을 잘 살피라고 명령해놓고 지도를 펼쳐 들었다.

'제자 녀석이 건네준 지도대로 나와 있군. 여기 있는 대로만 한다면 기습은 정확히 5분간의 순간적인 공격만 가능하겠어.'

우산 길드의 진영은 상당히 조직적으로 잘 짜여 있어서 기습을 하더라도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궁귀 님, 지금 우산 길드의 병력이 좀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숫자가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우리를 찾으러 지역 곳곳에 정찰을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군. 다들 준비해라! 정확히 3분 뒤에 기습을 펼친다."

[알겠습니다.]

길드원들은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그 3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다.

끼이익!

활시위가 조심스럽게 당겨지면서 진영을 지키고 있던 적의 병사들을 향해 겨누어졌다.

'셋, 둘, 하나! 시작!'

정확히 3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기습 공격이 시작되었다.

"크윽!"

경비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온몸에 화살이 꽂히자 저항 한번 못해보고 죽었다.

"공격!"

레인저들은 화살을 쏘면서 적진 안으로 계속 들어갔고 우산 길드원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경보를 울렸다.

"적의 기습이다!"

"해태 길드다!"

우산 길드원들은 해태 길드원들의 기습을 막기 위해 우르르 달려왔다.

"다들 방패를 들고 전진하라!"

돌격 명령에 방패를 들 수 있는 모든 직업들은 방패를 들고 무작정 달려들었다.

"우리가 예전 같은 줄 아나!"

적이 방패로 돌진해오자 해태 길드원들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으면서 외쳤다.

"우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 주자!"

레인저들의 검은 아주 현란하게 움직이면서 적들과 싸웠다.

"크윽!"

예전에 해태 길드와 싸워봤던 우산 길드원들은 이들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눈치를 챘다.

"녀석들이 레인저로 전직했다는 것이 사실이구나!"

우산 길드에서는 레인저의 힌트를 알아내고 추진 중이었지만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바람에 그 이상 알아내지 못했다.

"녀석들을 포위하라!"

우산 길드원들은 기습을 해온 숫자가 적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포위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궁귀가 외쳤다.

"놈들이 포위를 하려고 한다!"

외침을 들은 길드원들은 검을 들고 있다가 무기를 활로 다시 바꾸면서 포위하려는 녀석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크윽!"

"헉!"

"후퇴!"

궁귀는 길드원들을 재빨리 후퇴시키면서 숲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엄폐!"

숲으로 도망친 길드원들은 순식간에 스킬을 발동하면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헉! 적들이 은신했다!"

은신이라는 말에 길드원들은 잔뜩 긴장했지만 곳곳에서 은신 스킬을 흩트려 버리는 마법들이나 각종 스킬들이 터졌다.

마법사의 경우 디텍트 마법을 썼고 기타 직업들은 그와 비슷한 스킬들을 썼다.

하지만 레인저는 그런 마법이나 스킬에 모습이 들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엄폐 스킬에는 몸을 숨겨야 하는 엄폐물이 있어야 하고 움직이거나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없다! 어디 갔지?"

우산 길드원들은 사라진 해태 길드원들을 찾았지만 아무리 해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걸까."

"아무도 없다니… 분명 이곳으로 숨어 들어간 것을 봤는데."

다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봐놓고도 지금 상황을 믿지 못했다.

반대로 해태 길드원들은 지금 상황을 두 눈 부릅뜨고 즐기고 있었다. 비록 공격을 하거나 움직일 수는 없지만 미소 지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우산 길드원들은 다들 1시간 이 넘도록 수색을 펼치며 해태 길드원들을 찾아다녔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자 수색을 그만 하고 철수를 했다.

"이제 갔군."

궁귀는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궁귀 님, 성공입니다."

"당연한 거다. 우리가 몇 번이나 실험을 했으니까. 그리고 다들 이번 기습에 실패했다고 기죽지 마라. 기회는 아직도 많다."

궁귀는 다음 기회를 노리자며 길드원들을 독려했다.

"알겠습니다, 궁귀 님."

"지금은 몸을 숨기고 밤이 되기를 기다려라. 다들 쉬고 있는 시간에 기습을 할 것이다."

궁귀는 2차 기습을 생각하면서 들키지 않도록 몸을 숨기라고 지시했다.

해태 길드원들은 다들 가장 숨기 좋은 장소로 하나 둘씩 흩어졌고 엄폐 스킬을 사용한 상태로 길드원끼리 귓속말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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