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길드 해체
"스승님은 지금 어떻게 하고 계실까?"
범려는 길드원들과 같이 우산 길드 진영으로 간 궁귀를 생각하고 있었다.
레인저로 전직을 해서 여러 방면으로 전투에 유리한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정면으로 우산 길드와 전투를 벌이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
"후우, 스승님이 잘 알아서 하시겠지만 이상하게 걱정되네."
범려는 기습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위험한 공격인지 알고 있다. 성공을 한다면 적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지만 실패를 하면 그대로 전멸인 것이 기습이다.
"스승님은 언제 오시려나. 지금쯤 기습 공격을 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범려는 궁귀의 귓속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해골 용이 길드원들을 태우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봐서는 아무래도 오늘 안으로 돌아오는 건 무리군."
범려는 현재 시간을 봐서 궁귀가 단 한 번의 기습으로 성이 차지 않음을 느꼈다. 더군다나 궁귀는 우산 길드에 당한 것이 있어서 녀석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괴롭히고 또 괴롭히려고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스승님도 은근히 독한 면이 있어."
범려도 궁귀 못지않을 만큼 독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것도 궁귀에게 배운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범려가 궁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판게아 월드』에는 땅거미가 내리깔리면서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다들 휴식을 잘 취했나?"
[물론입니다, 궁귀 님. 너무 지루해서 온몸이 근질거릴 지경입니다.]
"후후후, 좋다. 2차 기습을 준비해라. 이번에는 전보다 더 확실하게 타격을 주고 빠져나간다. 알겠지?"
[알겠습니다.]
궁귀는 길드원들에게 확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는 무기를 점검하면서 기습의 기회를 노렸다.
"지금이다. 전원 공격!"
어디선가 들려오는 공격 명령에 해태 길드원들은 순식간에 동시 공격을 펼쳤다.
야심한 밤을 틈타 기습한 것이라 우산 길드원들의 대응 능력이 낮보다 훨씬 떨어졌고 몇몇 사람들은 로그아웃 상태였다.
"몰아붙여라!"
궁귀가 늦은 밤 우산 길드를 공격하겠다는 계획은 정말 성공적이었다.
"막아라!"
우산 길드 진영에는 용병들도 존재했지만 그들은 자신들과 계약한 자 이외의 명령은 잘 들으려 하지 않았기에 명령 체계의 혼란이 찾아왔다.
"용병들을 죽여라!"
해태 길드원들은 용병들의 명령 체계가 일원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용해 우산 길드원들보다는 용병들을 죽이기 바빴다.
지금 용병들은 말 그대로 애물단지였다. 죽으면 다른 용병들을 고용하기 위해 돈을 줘야 하고, 그렇다고 살려 놓자니 명령 체계에 혼선을 줄 뿐이었다.
"이 빌어먹을 용병들아, 뒤로 물러나!"
우산 길드는 악조건 속에서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었다. 일단 어찌어찌해서 용병들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충분히 적에게 피해는 줬다. 후퇴한다."
궁귀는 우산 길드에 입힌 피해가 만족스러운지 그대로 길드원들을 데리고 꽁무니를 빼버렸다.
"추격하라!"
우산 길드원들은 해태 길드원들을 추격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으나 그들이 자리 잡은 곳은 숲 속이다. 레인저같이 특수한 직업이 활동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지역이다.
해태 길드원들은 숲 속으로 몸을 숨기면서 한편으론 미소를 지었다.
우산 길드원들이 다시 한 번 해태 길드원들을 추적하고 있을 때 범려는 해골 용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너희들의 그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녀석들을 짓이겨 버릴 날이 머지않았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주인님."
해골 용들은 범려의 그 말에 작은 기대감이 생기는지 그 거대한 두 눈에서 강렬한 빛을 번쩍였다.
"좋아. 너희들을 선두에 앞세워 녀석들에게 공포를 안겨 주지."
범려는 해골 용들이 적들에게 안겨 줄 공포를 생각하자 온몸이 짜릿해질 만큼의 쾌감이 엄습했다.
[제자야!]
범려가 한창 해골 용을 만지고 있는데 궁귀의 귓속말이 들려왔다.
"스승님, 작전은 끝나신 겁니까?"
[물론이다. 지금 숲 입구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우산 길드의 추적을 따돌리느라 시간이 좀 걸리기 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 해골 용을 그쪽으로 보내겠습니다."
범려는 해골 용들에게 길드원들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후웅! 후웅!
해골 용들은 명령이 떨어지자 커다란 날개를 펄럭거리면서 숲의 입구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2시간이 지나자 해골 용들은 길드원들을 데리고 무사히 돌아왔다.
"하하하! 제자야, 기뻐해라. 우산 길드에서 고용한 용병들을 때려잡고 왔다."
"정말입니까!"
범려는 궁귀가 말한 내용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물론이지! 완전히 몰살시키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우산 길드의 용병들이 사라졌다면 그들은 병력 운용에 상당한 차질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녀석들은 다시 용병들을 고용하게 되겠지만 돈의 타격이 심각할 것입니다."
돈은 곧 전쟁의 지속 능력을 의미한다. 그것이 줄어든다는 것은 이 전쟁이 시작부터 해태 길드의 뜻대로 움직이게 된다는 소리다.
"제자야, 용병들을 고용할 때 다시 한 번 기습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마 진영 자체를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입니다."
"겨우 한 번 공격당했다고 진영을 통째로 이동해?"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숲이고 흑검은 한 길드의 수장입니다. 최소한 숲의 장단점 정도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흐음, 그렇다면 다음에도 숲에서 공격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겠군."
"다시는 숲 속에 자리를 잡지 않을 것입니다."
범려의 예상대로 우산 길드는 두 번째 기습 공격을 받고 나서는 진영을 아예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다.
"역시 진영의 위치가 바뀌었다."
범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루이에게 우산 길드 진영의 위치를 알아내라고 보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진영의 위치가 바뀌었다.
"후우, 이제는 공격하기가 좀 귀찮아졌군."
우산 길드의 진영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입구는 두 곳이나 있었다. 한쪽은 탁 트인 대지가 한눈에 보이는 장소이고 다른 하나는 면적이 좁고 주변에 산을 통해서 들어가야 하는 입구였다.
"뭐야, 결국 입구는 한 곳뿐인가."
범려는 한 곳밖에 남지 않은 입구를 어떻게 뚫고 들어갈지 고민했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음, 가만 생각해보니 산에 올라가서 마법 몇 번만 퍼부으면 꼼짝없이 죽는 지형이군."
문제는 그 산에 우산의 병사들이 얼마나 많이 자리를 잡고 있고 얼마나 성벽처럼 잘 지키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정말 유리한 지역을 점하는 것이 이번 전투의 관건이군."
이번에는 전과 달리 일방적인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 철저히 지키고 빼앗는 싸움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 좋은 자리를 마다할 인간도 아니지."
한번 싸움이 시작되면 고지 탈환, 혹은 고지 사수를 하려고 미친 듯이 싸워야 할 것이다.
"스승님, 이번에는 해골 병사들과 같이 움직여야겠습니다."
"그럼 드디어 해골 병사들이 모두 움직이겠군."
궁귀는 해골 병사들이 움직인다는 소리에 상당히 들떠 있었다.
"아마 일반 병사들은 데리고 가지 못할 것입니다."
"왜지?"
"여기 보이는 산에 강습을 한 후 해골 마법사들과 대마법사들을 이용해 아래에 있는 우산 길드 진영에 마법을 퍼부을 겁니다."
"호오, 엄청난 공격이 되겠구나."
궁귀는 해골 마법사들이 정확히 어떤 마법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나, 그들의 숫자를 보면 평범한 마법이라도 엄청나게 떨어질 거라 여겼다.
"단숨에 녀석들이 공격을 당하겠지요."
범려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질 마법을 상상했다.
'후후후, 기대하라고.'
범려는 다음 날 일반 병사들을 놔두고 해골 병사들과 함께 해골 용을 타고 날아올랐다.
"저쪽이군."
범려의 예상대로 우산 길드원들은 주변 산등성이에 길드원들과 용병들을 배치해 지키도록 해놓았다.
"후후, 어리석은 짓을 하는구나."
우산 길드가 배치한 병력의 구성은 적이 아래에 있을 경우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범려가 구상한 경우에는 이런 방법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녀석들의 속성을 암흑으로 바꾸고 홀리 브레스를 날려 줘라."
"예, 장군님."
해골 용은 저 아래에 있는 녀석들에게 속성을 강제로 암흑으로 바꾸는 마법을 걸었다.
-○○ 님의 속성이 5분간 강제적으로 암흑으로 바뀌게 됩니다.
"헉! 뭐야!"
아래에 있던 유저들이나 용병들은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했지만 그 속성이 바뀌는 것은 곧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후우웅!
해골 용들이 커다란 입을 벌리면서 홀리 브레스를 지상으로 떨어트리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면서 그 자리에 있던 유저들이 그 타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커억!"
속성이 암흑으로 바뀐 유저나 용병들은 성 속성인 홀리 브레스를 맞아서 무식한 데미지를 입었다.
특히 생명력이 적은 직업들 같은 경우는 브레스를 맞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강습!"
쉬이익!
해골 용들은 범려의 '강습'이라는 말에 아래로 추락하듯이 떨어지더니 산 위에다가 해골 병사들을 우수수 떨어트렸다.
"공격!"
갑작스러운 해골 병사들의 출현으로 우산 길드원들은 깜짝 놀랐다.
"해골 마법사와 대마법사는 적 진영을 향해 마법을 모조리 퍼부어라."
범려의 명령에 그들은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더니 범위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했다.
"홀리 어벤저!"
수많은 빛의 기둥이 우산 길드 진영에 번쩍하고 떨어졌다.
"다음 마법!"
범려는 우산 길드 진영을 초토화시키려고 작정했는지 바로 다음 마법을 외쳤다.
"앵거 오브 어스!"
"당장 도망쳐라!"
우산 길드원들은 한꺼번에 떨어진 마법에 당하고는 재빨리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들보다 마법이 조금 더 빨리 발동했다.
"으악!"
"살려 줘!"
대다수의 우산 길드원들이 해골 마법사와 대마법사가 쏟아내는 무식한 마법에 의해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크윽!"
대부분 사람들이 죽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각종 포션을 먹으면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다.
"이런, 젠장."
바로 흑검이었다. 그는 마법이 떨어지자 바로 포션을 마시면서 조금이라도 버텨 보고자 했고 그 덕분에 생명력을 조금 남기고 살아남은 것이다.
"드디어 해골 제작자가 나타난 건가!"
이 와중에도 잠시 다른 곳에 있다가 화를 면한 2명의 유저가 있었다.
"『판게아 월드』에 알려진 것보다 해골 제작자의 힘이 더 대단하군."
그 두 유저는 바로 펭귄 왕자와 골렘 마스터였다.
"하하하, 그래봤자 나의 펭귄들에게는 안 되지!"
"누가 할 소리! 나의 골렘들이라면 저따위 뼈다귀들은 한주먹이면 충분해!"
산 아래에서 큰 소리로 외치며 범려를 도발했지만 그런 것에 걸려들 만큼 범려는 어수룩하지 않다.
"해골 용들아, 산 위에 있는 길드원들을 정리해라."
범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으나 높은 하늘을 날고 있는 해골 용들에게는 똑똑히 들렸다.
"크아앙-!"
해골 용들은 바로 산으로 날아가더니 그 위에서 얼쩡거리던 유저들을 향해 무시무시한 발톱을 휘둘렀다.
해골 용은 레벨이 260이 넘고 자체적으로 공격력과 힘이 엄청나서 무기나 갑옷을 입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그런 용들이 그 거대한 발톱으로 후려칠 때마다 유저들은 용이 때려서 입은 데미지보다 한 번 맞을 때마다 땅바닥을 나뒹굴어야 하는 충격을 입었다.
막상 겉보기에는 엄청난 데미지를 줄 것 같지만 그건 겉모습만 그리 보일 뿐이다.
"크아앙!"
-절망의 포효를 들으셨습니다. 3분간 모든 능력치가 30% 하락합니다.
말 그대로 절망적인 포효였다. 능력치 30퍼센트 하락은 상당히 치명적이다.
"그럼 산 위에 있는 녀석들은 해골 용에게 맡기고 이제 저 아래 있는 녀석들을 상대해볼까."
범려는 여유롭게 병사들을 데리고 산 아래로 내려왔다.
2천이 넘는 병력이 내려오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릴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좀 하는데."
독도와 망고는 해골 병사의 숫자가 저렇게 많을 줄 몰랐다.
'이거 뭐야! 난 겨우 골렘 20기가 전부인데 100배의 병력 차이잖아.'
'내 펭귄들이 녀석의 해골 병사들같이 많았으면 이 『판게아 월드』를 지배했을 건데.'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범려가 입을 열었다.
"이쪽이 골렘 마스터 독도일 테고, 저쪽은 펭귄 왕자 망고인가?"
"어떻게……."
둘 다 자신의 이름과 직업을 어떻게 알았냐는 얼굴 표정을 지었다.
"간단해! 나에게도 정보 수집 능력이 있거든."
"흠."
다른 길드에서도 우산 길드에 숨겨진 직업을 가진 유저가 둘이나 있고 그들의 직업을 알았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 사용하는 그들의 닉네임은 모르고 있다. 그런데 범려는 그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어서 의아한 것이었다.
"어떻게 길드의 중요 정보가 새어나간 거지?"
흑검은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범려 앞에 나와서 외쳤다.
"그게 궁금하면 직접 알아봐. 내가 정보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말이야."
범려는 직접 알아보라며 약간 애매모호하게 말을 했고 흑검은 그 말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누구지? 누가 정보를 흘린 거지?'
흑검은 독도와 망고의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관리를 했다.
심지어는 길드원들에게도 이들의 이름 대신 직업으로 부르라고 했고 길드에서도 핵심 간부들 말고는 이름을 모른다.
그 핵심 간부들은 길드가 망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흑검에게서 등 돌릴 인간들이 아니다.
'설마 저들이 직접 이름을 알려 줬나? 아니야. 이름을 알려 주면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것은 저들이지 내가 아니야. 그럼 누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흑검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지금 범려의 한쪽 어깨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루이가 한 짓이라고 누가 알 것인가.
"이봐, 두 사람, 나와 한판 붙을 건가?"
범려는 독도와 망고를 보면서 물었다.
"못할 것도 없지!"
"그 유명한 해골 제작자와 신나게 싸우다 죽는 거라면 영광이지!"
이 둘은 어차피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상 한바탕 싸우다 죽기를 원했다.
"좋아. 그렇다면 같이 놀아주지. 그래도 내 병사들의 숫자가 많은 관계로 이대로 덤빈다면 좀 그렇겠지!"
꿀꺽!
독도와 망고는 범려의 말에 침을 꼴깍 삼켰다. 정말 저 많은 숫자의 병사들을 상대하려 한다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해골 병사들을 선발해서 보여 주지. 그들과 싸워봐라."
선발이라는 말에 두 사람은 표정이 약간 풀어졌다. 그들은 해골들에게도 등급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만약 등급이 있다는 것을 알면 표정이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부장, 전부 다 나와 봐. 영혼의 천사도."
범려의 명령에 해골 부장들과 영혼의 천사들이 앞으로 나왔다.
"골렘 마스터 쪽으로 부장들 20명 가고 나머지는 펭귄 왕자 쪽을 상대해라."
"음!"
독도 쪽은 일단 서로의 머릿수가 똑같기 때문에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은 들 수 없지만 망고 쪽은 달랐다.
해골 부장 10명에 영혼의 천사 5명. 펭귄들의 숫자는 500이나 되는데 너무나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나를 무시하는 거냐!"
"난 너를 절대 무시하지 않았어. 걱정 마. 저들은 병사 500명을 상대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들이니까."
"웃기는 소리! 겨우 15명으로 뭘 하겠다는 거냐!"
"그건 네가 직접 당해보면 알아."
솔직히 망고 쪽이 제대로 된 전술을 쓰지 않는다면 영혼의 천사 5명이면 충분하다.
천사들이 쏟아내는 신성한 불꽃의 위력은 기가 막힐 정도다. 오죽했으면 그레이 캐슬을 얻기 전 악마들과 싸울 때 그들만으로 당당히 악마의 목을 베어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소름 끼치는 놈들인데 넌 더하겠지.'
범려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영혼의 천사는 병사들 중에서 'Top of Top'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녀석들이다.
"그럼 시작!"
범려가 시작을 외치자 병사들은 즉각 반응을 했다.
"헛! 이런!"
독도는 갑작스러운 시작 소리에 다급히 지휘봉을 꺼내서 골렘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망고는 일단 눈앞에 보이는 녀석들을 처치하고 나서 범려에게 따질 생각이었다.
캉! 캉! 캉!
두 곳에서 불꽃 튀기는 전투가 벌어지자 범려는 두 전투를 번갈아가면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흑검은 기회를 봐서 범려에게 일격을 가하려고 했지만 해골 대마법사들이 그의 옆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다가오면 죽인다는 압박감을 주었다.
'크윽.'
흑검은 속으로 신음을 삼켜야 했으며 전투를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앗!"
먼저 독도가 싸우는 곳에서는 해골 부장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활, 검, 창 이 3가지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헉, 이런 괴물."
독도가 봐도 해골 부장은 정말 괴물이었다. 상황에 맞추어 무기가 변경되는 모습부터 말이 안 나올 정도의 기마무예까지 탄성이 절로 나왔다.
"후우."
엄청난 무용을 뽐내던 해골 부장들은 골렘들과 싸우면서 조금씩 그들의 행동반경을 줄여 나가고 있었다.
"제길!"
같은 동급의 숫자이건만 밀리는 것은 골렘들이었다.
"이쪽은 거의 다 끝났군. 그럼 반대쪽은 어떨까?"
화르르! 화르르! 화르르!
펭귄들이 싸우고 있는 곳에서는 연방 터지는 신성한 불꽃에 망고는 기가 질려 있었다.
한번 불길에 휩싸일 때마다 깎여 나가는 생명력이 엄청났다. 그게 연달아 터지니 펭귄 사제들이 50명이나 된다 해도 힐 마법으로 따라가질 못했다.
"역시 고질적인 문제점을 고치지 않았군."
범려가 이전에 봤던 둘의 문제점은 여전히 고쳐져 있지 않았기에 전투가 쉬웠다.
"계속할 텐가?"
"……."
독도와 망고는 더 이상 여기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그들의 펭귄이나 골렘들은 구할 수 있지만 반대로 저항한다면 철저하게 망가질 것이다.
"말이 없군. 셋 셀 동안 말하지 않으면 골렘이고 펭귄이고 모조리 박살난다."
범려는 바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그만!"
골렘 마스터인 독도가 그만을 외치면서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골렘들을 압박하던 해골 부장들은 뒤로 물러서면서 골렘들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독도가 항복을 하자 망고도 항복을 해버렸다. 이에 똥 씹은 표정을 짓는 것은 흑검이었다.
"둘이 항복을 했는데 길드 마스터인 흑검 너는 어떻게 할 거냐."
"크윽!"
흑검은 범려에게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해보고 허무하게 무너진 게 너무나 억울했다.
"크아앙-!"
더군다나 산 위에 있던 길드원들이나 용병들은 철저하게 해골 용의 손에 유린되어 죽어가고 있었다.
"이래도 계속할 마음이 생기나?"
이렇게 당하면 재기의 발판도 마련하기 힘들다. 게다가 길드 이미지는 바닥까지 가라앉은 상태. 더 이상 두고 볼 것도 없다.
"항복이다."
"좋은 말이야. 그럼 항복을 받아냈으니 패배한 길드는 어떻게 할지 잘 알고 있겠군."
"뭐, 뭘 어떻게 한다는 거냐?"
"당연히 길드 해체지. 내가 그걸 바라고 전쟁을 하는 건데 말이야. 그리고 길드 인지도도 바닥으로 추락해서 이상한 도망자나 살인자들만 길드에 가입하겠다고 온다며?"
범려의 말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진실이다. 흑검은 이 진실을 정말 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부가 불가능하다.
"길드를 해체하고 조용히 지내라. 더 이상 해태 길드를 건들지 말고 말이야. 혹 어느 길드에 가입해서 그 길드를 이용해 다시 복수를 꿈꿀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랬다가는 다시 나를 보게 될 거다."
범려의 압도적인 힘에 흑검은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후 흑검은 길드를 해체하고 말았다.
우산 길드의 해체 소식이 사람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보인 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의외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매너 유저를 강퇴시키면 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이다. 즉, 흑검이 길드를 그나마 잘 꾸려 왔다는 소리가 되기도 한다.
정확히는 강토가 길드 살림을 잘 이끌었고 흑검은 그냥 뒷짐 지고 놀고먹었다.
"어찌 되었건 길드는 해체되었지. 하하하!"
마지막으로 해태 길드는 이번 싸움으로 중소 길드 중에서 단연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우산의 인지도가 떨어졌다고 하나 그 거대 길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흐흐, 뭐 이 정도 수준이면 만족하지."
범려한테는 지금 상황이 딱 좋았다. 다들 길드에 관한 내용은 있지만 해골 제작자인 자신의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만약 해골 제작자라는 이름이 끼어 있다면 사람들은 그걸 거짓이라거나 혹은 진실로 믿고, 다시금 해골 제작자의 이름이 이슈화되어 범려를 괴롭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우, 이제 우산 길드도 사라졌고 남은 건 길드가 잘 관리하는 것 말고는 없네."
우산 길드에 대한 복수가 끝나자 정말 할 일이 없어졌다. 길드는 궁귀가 알아서 이끌어갈 테고 게임 머니야 아직도 넉넉히 있으니 금전적인 문제도 해결이다.
"이걸로 이제 편안하게 게임한다-!"
에필로그 아르테미스의 정체
"뭘 하지……."
범려는 순간 고민에 휩싸였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잠시 뒤를 돌아보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났지만 그것도 잠시, 아르테미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범려 님."
"아르테미스 님, 이렇게 갑자기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이긴요. 이제 해골 제작자로서 사명을 하나 드리려고 왔지요."
"무슨 사명인데……."
범려는 말끝을 흐리면서 아르테미스의 눈치를 살폈다.
"간단해요. 마계와 중간계 사이의 결계에 금이 갔어요. 그래서 정확히 2시간 후에 악마들이 중간계로 쏟아질 거예요."
"네?"
범려는 아르테미스의 말을 듣고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악마들이라면 세상 끝에서 봤던 악마들인가요?"
"네, 맞아요. 세상 끝에서 봤던 악마들이에요. 대신 악마들의 힘이 조금 더 강할 뿐이에요."
"크윽!"
악마들의 힘이 조금 더 강하다는 것은 최소 레벨이 5 이상 높은 악마들이 온다는 것이다.
"후우, 그럼 이곳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둘 중 하나죠. 그들을 막아서 지금의 시대를 유지시키거나, 아니면 악마들을 막지 못해 암흑시대를 맞이하는 거죠."
암흑시대. 생각만 해도 무서운 단어가 아닐 수 없다.
"그 일을 저 혼자 해야 하는 것은 아니죠?"
"물론이죠. 지금쯤 그녀들이 각 지역에서 악마들의 존재를 알리고 다닐 거예요."
아르테미스가 말한 그녀들은 수호룡들이었다.
"그럼 다른 유저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겠네요. 그렇다면 굳이 제가 나서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잘 싸우겠네요."
"모르시는 말씀. 세상에 몸을 숨기고 힘을 감추고 있던 이들은 다른 이들과 차별된 임무가 부여돼야죠."
"……."
범려는 차별된 임무라고 하니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설마 나 혼자서 한 구역을 맡으라는 소리는 안 하겠지.'
혼자서 뭔가를 하기에는 정말 문제가 많다. 더군다나 힐러가 없이는 위험 부담이 좀 있기 때문에 걱정이었다.
"범려 님은 악마들이 살고 있는 마계로 가셔야겠는데요."
"컥!"
방어전을 펼치라는 것도 아니고 공격을 해서 적에게 타격을 입히라는 소리에 머리가 멍해졌다.
"저… 혹시 같이 갈 사람이 있는데 그들과 함께 움직여도 될까요?"
범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에 하나 혼자 가라고 하면 미친 짓이기 때문이다.
"범려 님 포함 5명 정도 데리고 가는 것은 상관없어요."
"그, 그렇군요."
범려는 해태 길드원들과 같이 이번 일을 계획하고 싶었지만, 아르테미스가 4명으로 제한을 두었기에 소용없는 일이다.
그리고 『판게아 월드』 전체에 퀘스트가 부여되었다.
-세상의 균열
마계와 중간계를 갈라놓았던 차원의 균열에 금이 가버렸다. 마계의 악마들이 이 틈을 이용해 중간계로 밀려오고 있다. 이들을 막아라!
난이도:SS
완료 조건:차원의 틈을 이용해 들어온 악마들을 모두 물리쳐라.
보상:악마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동시에 유저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줬는지에 따른 공적치를 차등 보상.
이 퀘스트의 내용대로라면 힐러는 얼마나 힐을 많이 했는지, 상인은 얼마나 많은 물건을 주며 도움을 줬는지, 전사나 마법사 같은 이들은 얼마나 악마들을 때려잡았는지에 따른 공적치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흐음, 나쁘지 않군."
범려는 해골들과 함께라면 이런 공적치쯤은 금방 모은다.
"그것보다 마계로 어떻게 들어가지?"
"그거라면 걱정 마세요. 준비가 다 되면 제가 마계로 보내드릴 테니까요."
"그럼 잠깐만요."
범려는 로즈와 헬렌, 취선, 마지막으로 제마를 불렀다.
다들 범려의 부름에 모이기는 했지만 얼굴 표정들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다들 표정이 왜 그러냐."
"네놈이 우산 길드랑 싸울 때 혼자 다 해먹어서 그런다."
"크윽!"
사실 우산 길드가 좀 더 버티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해골 병사들이 투입되었다고 한 방에 무너져 버렸다.
덕분에 정령 폭탄을 모두 다 가져왔던 제마는 손가락만 빨아야 했고, 취선은 그 묵직한 양손 도끼를 반질반질하게 손질하면서 기다리기만 했다.
"미안, 미안.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새로운 이벤트가 열렸잖아. 악마들 중간계 침공."
"칫! 그래봤자 뭐 도움 되는 게 있어야지. 너랑 같이 가면 공적치를 얼마나 먹겠냐."
다들 공적치를 원했는지 눈치만 보고 한 사람도 떠나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알았어. 내가 너희들을 적극적으로 써줄게. 그럼 됐지?"
"당연히 그래야지."
다들 범려의 대답에 만족스러웠는지 그제야 아르테미스의 앞에 같이 왔다.
"아르테미스 님, 병사들도 함께 이동해도 되죠?"
"물론입니다. 각자 소환수나 그와 관련된 개인 물건도 소환됩니다. 대신 저택에 보관되어 있는 물건은 같이 이동이 안 되니 주의하세요."
다들 필요한 물건을 놔두고 온 것은 없어서 이대로 마계로 이동을 했다.
번쩍!
다행히 아르테미스가 도움을 줘 마계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다들 치를 떨었다.
"이거 황무지만 보여. 여기 전부가 이런 곳인가?"
다들 땅이 황폐한 모습에 마계는 정말 살기 힘든 곳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크르릉!
갑자기 주변에서 맹수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벌써부터 터줏대감들이 찾아왔네."
"마계에 온 손님에게 접대하는 법을 아주 잘 아는데요, 범려 형님."
"그러게 말이야."
눈앞에 보이는 맹수들의 생김새는 그야말로 멋지다고 표현할 수 있었다.
머리는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꼬리는 전갈의 독침 같은 형태로 달려 있었고, 등에는 어깻죽지부터 뻗어 나온 괴상한 날개 한 쌍이 있었다.
"만티코어."
녀석의 이름은 만티코어였다.
"이 녀석, 처음 보는 놈인데요."
취선은 만티코어 무리를 보면서 묵직한 도끼를 한 손으로 꽉 쥐었다.
"숫자는 대략 500마리. 무식하게 많군."
한눈으로 보아도 만티코어들은 엄청난 수의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해골 병사들의 숫자가 다양하고 많지 않았다면 이런 숫자의 몬스터와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범려는 음침한 웃음을 흘리면서 병사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사냥을 시작하자!"
사냥이라는 말에 모든 해골들이 만티코어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하하!"
어디선가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많은 만티코어들 중에서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녀석이 외쳤다.
"놈들을 쓸어버려라! 마계를 침입한 놈에게는 오로지 죽음뿐이다!"
"네놈이 이곳을 지휘하는 놈이구나!"
범려는 적의 지휘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대번에 녀석을 향해 시위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죽어라!"
화살은 빠른 속도로 저 멀리 날아가더니 그대로 만티코어의 미간에 꽂혔다.
"크억!"
"저놈이다! 저놈을 향해 화살을 쏴라!"
범려가 명령을 내리자 궁수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정된 만티코어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수백의 궁수들이 동시에 활을 당겨 공격을 펼치자 녀석은 그 많은 수의 화살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바로 뒤로 주춤하며 물러났다.
"크윽! 이런."
그 만티코어는 뒤로 몸을 옮기면서 자신의 부하들을 앞세웠다.
"이런, 꽁무니를 빼다니. 뭐, 상관없지. 어차피 다 죽일 거니까."
범려는 몬스터를 잡으면서 이곳을 정리해나갔고, 특히 해골 용은 그 위력의 빛을 발했다.
하늘을 낮게 떠 있으면서 그 무지막지한 발톱으로 만티코어의 몸을 갈가리 찢고 있는 것이다.
-공적치 10을 얻으셨습니다.
-공적치 9를 얻으셨습니다.
몬스터들이 죽어나가면서 범려의 일행들은 공적치를 얻었고, 그중 로즈는 힐을 일정량 할 때마다 무시 못 할 정도로 공적치가 쌓이고 있었다.
"좀 짜네."
하지만 그들은 이 정도 공적치가 들어오는 것을 상당히 적다고 느꼈다.
"어차피 마계에 침입을 했으니 다른 녀석들을 잡으면서 공적치를 더 올리면 되겠지."
아주 간단하게 생각을 하고 계속 전진해나갔다.
이틈에도 악마들은 계속 나왔고, 인간들의 침입을 용서하지 않겠다며 덤벼들었지만 범려의 군대 앞에서는 추풍낙엽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계에선 낮에는 황혼에 물든 해가 떠오르고 밤에는 붉은빛을 띠는 죽음의 달이 떠오르는 것만 제외한다면 평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이곳에서 얼마나 있었지?"
"범려 형님, 여기서 일주일은 더 보낸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돌아다녔고 그동안 악마를 죽인 숫자만 해도 수천이 넘는다.
다들 공적치는 차고 넘칠 정도로 모았다.
"젠장, 이놈의 퀘스트 언제 끝나는 거야."
게임에 접속하면 악마들을 잡는 걸로 시작해서 악마를 죽이는 걸로 끝난다.
"일주일째 대가리에 뿔 달린 녀석들만 봐서 그런지 놈들의 뿔만 봐도 토 나오려고 해."
헬렌은 하도 똑같은 악마들만 봐서 이제는 지겨워했다.
"그러고 보니 악마들 중에서 보스급 녀석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이게 뭐야."
그 많은 악마들을 잡기는 했지만 단 한 번도 보스급 녀석들을 만난 적은 없었다.
"으음, 이거 설마 보스급 녀석들을 잡아야 퀘스트가 끝나는 거 아니야?"
"하지만 퀘스트 내용에 그런 부분은 없는데요."
"그렇긴 하지만 왠지 찜찜하단 말이야."
"그렇죠, 형님. 퀘스트를 일주일 동안 진행 안 한 것도 아니고 계속하고 있었는데 그 끝이 안 보이면 조금 의심을 해봐야 할지도."
다들 퀘스트에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 동안 차원의 균열이 있는 곳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궁귀 님! 드디어-!"
"그래! 우리가 적 지휘관을 잡았다!"
바로 해태 길드원들이 힘을 뭉쳐서 방어전을 펼치다가 우연치 않게 차원의 균열을 이용해 나온 악마들의 지휘관을 잡은 것이다.
'해태 길드가 지휘관을 잡았다!'
이 사실은 그 자리에서 삽시간에 『판게아 월드』 전역으로 퍼졌다.
모두 다 쓰러져 가는 우산 길드를 물리쳤다고 아는 데다 악마들의 중간 보스급에 해당하는 지휘관을 처음으로 잡음으로써 길드 이미지가 껑충 뛰게 되었다.
"어서 사진 찍어라. 증거 자료를 남겨야지."
궁귀가 길드원들과 함께 증거 자료를 남기고 있는 사이 범려 일행들은 때마침 악마들의 중간 집결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저곳이 집결지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요. 악마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잖아요."
"대가리에 뿔난 것들은 왜 저리도 많은 거야."
다들 집결지에 모인 악마들의 숫자를 보고는 치를 떨었다. 지금까지 악마들을 잡아왔지만 저렇게 많은 수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형님, 저기를 공격할까요?"
취선의 물음에 범려는 집결지를 보고는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아니! 이제부터 모든 집결지로 보이는 곳은 그냥 지나친다. 이대로 마왕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엥? 마왕!"
다들 마왕이라는 소리에 범려를 향해 되물었지만 그는 이미 결정을 했는지 그 뜻이 확고했다.
"마왕이 몇 렙이고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는데."
"그래봤자 몬스터."
범려는 일행들에게 게임의 만고불변의 진리를 일깨워줬다.
"하하하! 맞아. 아무리 마왕이라도 그래봤자 몬스터!"
NPC가 아닌 이상 다 똑같은 몬스터에 불과하다. 그리고 사냥의 대상이라는 거다.
"그럼 당장 가요! 마왕을 잡으러!"
취선이 당당하게 말하자 다 같이 웃으면서 범려를 바라보았다.
"그럼 다들 해골 용에 올라타라! 단숨에 찾아가겠다."
병사들과 일행들은 해골 용 위에 올라타더니 바로 마왕이 머물고 있는 성을 찾아 움직였다.
"다들 마왕의 성을 찾는다. 해골 용은 각자 세 방향으로, 영혼의 천사들은 해골 용이 탐색하지 않는 범위로 움직인다!"
그렇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존재들이 수색을 시작했다.
마계에서 마왕이 살고 있는 성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어려울 수가 없었다. 너무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저게 마왕의 성인가? 정말 크다!"
굳이 땅덩이로 그 넓이를 비교하자면 대한민국의 서울 정도의 크기를 자랑했다. 그러니 마왕의 성을 발견 못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저곳을 공격해야 하나요?"
"……."
저 안에 있는 악마들의 숫자가 아무리 적어도 지금 있는 유저들의 숫자보다는 많아 보였다.
"형님, 주변에 있는 것들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싸울까요?"
"아마도……."
범려는 병사들과 함께 마왕성에서 상당한 거리를 두고 병사들을 주둔시켰다.
"으음, 악마들을 조금씩 불러와야 하나."
일명 조금씩 갉아먹기 방식으로 악마들을 소탕할 생각도 해봤지만 이들이 이루는 무리의 숫자가 수백 단위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여기서는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
범려는 혼자 나가봐서 적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 하려고 나섰다.
"장군님, 혼자 가시는 것은 위험합니다."
영혼의 천사들이 이 앞은 위험하다면서 막았지만, 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려면 이런 방법 말고는 없었다.
"이것만큼 좋은 방법이 어디 있다고 그래! 비켜 봐. 저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이 필요해."
"그렇다면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영혼의 천사 중 한 명이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면서 나오자 범려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나야 죽고 나면 부활할 수 있다 치지만 너희들은 다르잖아."
"그런 문제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영혼의 천사들이 한목소리를 내어 대답하니 범려는 고민에 휩싸였다.
'이걸 한 번만 믿어, 말어?'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특히 영혼의 천사들은 최상위의 전직 과정을 마친 녀석들이기에 한번 죽으면 돌이킬 수 없다.
"후우, 좋아. 한번 믿어보지. 갔다 와라."
"장군님, 감사합니다."
영혼의 천사는 대답과 함께 반투명한 황금빛 날개를 펄럭이더니 성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에구, 모르겠다. 저 녀석, 뭔가 답이 있으니까 저렇게 갔겠지."
범려는 마왕의 성을 바라보면서 영혼의 천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잡아라-!"
"이런."
영혼의 천사는 3분도 안 돼서 돌아왔지만 뒤에 수많은 악마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왔다.
"전투 준비!"
범려는 다급하게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몰려오는 악마들을 바라보았다.
"많이도 끌고 왔네."
적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갔던 영혼의 천사가 군대에 합류하자 다시는 이런 방식을 쓰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공격!"
마법과 화살이 폭풍처럼 몰아치며 악마들을 향해 쏟아졌다.
"실드!"
악마들은 가볍게 실드 마법을 펼치며 공격을 막았지만, 해골 마법사나 대마법사의 위력이 상당하기 때문에 연이어서 실드를 펼치며 아슬아슬하게 막았다.
"쳇, 녀석들 좀 하는군."
다른 악마들은 실드 마법을 쓰지도 않고 덤벼들었는데 마왕성에 있는 녀석들은 달랐다.
"마왕성에 온 침입자를 죽여라!"
악마들은 병사들을 향해 마법과 무식한 무기를 휘두르며 공격을 펼쳤다.
"해골 용!"
하늘에 있던 해골 용들이 홀리 브레스를 쏘면서 지상을 향해 급강하했다.
쾅!
아무리 뼈로 이루어진 해골 용이지만 하늘에서 내려올 때의 그 급강하의 파워는 어마어마했다.
"이제 좀 해먹겠다."
해골 용이 전투에 참전하면서 전투가 그나마 수월해졌다.
"영혼의 천사가 악마들을 얼마나 끌고 온 거지?"
"1,500입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몰려온 숫자입니다."
"그럼 무리를 이루는 수가 1,500이라는 소리잖아."
악마들을 상대로 1,500은 좀 많다.
"버프!"
범려는 다급한 마음에 일행들에게 버프를 지시했고 각종 버프가 동시에 터지면서 해골 병사들의 능력이 뻥튀기가 되었다.
"격노까지 합친다."
범려는 격노를 터트리기 위해서 뛰어가더니 눈에 보이는 악마 녀석의 가슴 한복판에 섬전의 창을 깊숙이 찔렀다.
"크억! 감히 인간 놈이!"
"그래, 난 인간이야. 어서 날 공격해봐."
악마는 범려가 공격하라는 말에 거침없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고 범려는 생명을 확 뺏겨 버렸다.
-격노 상태가 활성화됩니다.
"크아앙-!"
병사들이 갑자기 분노에 찬 포효를 터트리더니 그들의 두 눈에서 살기 가득한 붉은빛을 뿜어댔다.
"뭐, 뭐지."
범려를 공격한 악마는 해골 병사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바뀌는 것을 확인했다.
"후후후, 뭐긴 뭐냐. 날 공격해줘서 그런 거지."
범려는 사악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 악마에게서 떨어졌다.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더 이상 그곳에서 피해를 입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카악! 퉤! 악마들을 다 쓸어버려!"
범려가 피 섞인 침을 뱉으면서 외치자 병사들은 거침없이 악마들을 향해 분노의 일격을 가했다.
"후후후, 격노가 터진 이상 너희들이 이길 확률은 제로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범려의 외침에 병사들과 일행들은 사기를 얻었는지 악마들을 유린하듯 도살해버렸다.
그 결과 그 많던 악마들은 정확히 10분 만에 몰살을 당했다.
"영혼의 천사, 녀석들을 더 끌고 와라. 하루 종일 악마들을 잡는다!"
"알겠습니다."
범려의 명령에 영혼의 천사는 마왕성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고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악마들을 끌고 왔다.
"잡아라!"
전투 방식도 전과 다름없이 같은 방법을 쓰며 일행들은 계속해서 악마들을 사냥해나갔다.
이런 사냥을 계속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6시간이 흘러가버렸다.
"이게 몇 번째 녀석이지?"
"대략 28번째 될 거야. 힐!"
로즈는 범려의 물음에 대답을 하면서도 열심히 해골들을 향해 치유 마법을 시전했다.
"대략 4만 2천이나 되는 숫자의 악마들을 잡았다는 이야기군."
실로 엄청난 수의 악마들을 잡았다. 하지만 저 마왕성 안에는 지금 잡은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악마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방어전을 펼치고 있던 바깥의 유저들이 공격을 위해 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범려와 해골 병사들만 가지고는 이 이상 더 많은 악마들을 잡는 데 무리가 있었다.
"이대로 숫자를 유지하면서 잡는 방법이 제일 안전하군."
범려의 말대로 지금처럼 사냥을 계속하려면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제일이다.
"좀 지루하겠군."
범려는 연이은 악마 사냥에 지루함을 느끼고 하품을 했다.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어!"
그 와중에 취선은 눈앞에 보이는 악마들을 잡고는 있었지만 너무 많은 숫자를 잡아서 그런지 악마들의 공격 패턴이 점점 머리에 각인이 되고 있었다.
"크윽! 한 대도 안 맞고 악마를 혼자 잡다니……."
취선은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 녀석들의 패턴을 줄줄 꿰고 있을 정도로 많은 숫자의 악마를 잡고 만 것이다.
"하긴, 악마들이 너무 많아서 그 패턴을 보고 외울 정도가 되기는 했지."
이건 해골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많은 녀석들을 상대하다 보니 악마들이 공격을 시도하면 거기에 맞게 반격을 하거나, 아니면 공격을 먼저 봉쇄해버렸다.
"아, 내가 할 일이 없다."
해골 병사들이 잘 싸워주면 줄수록 로즈 역시 할 일이 줄어들었다.
"우하하! 정령 폭탄-!"
남들은 점점 한가해지고 있을 때 단 한 사람, 제마는 미친 듯이 정령 폭탄을 던지거나 각종 상태 이상 물약을 던지면서 소모전을 펼치고 있었다.
"다 죽어!"
범려는 제마가 악마들을 잡는 데 너무 흥분한 것 같아서 행동을 자제시켰다.
"제마야, 그만 해. 물약 아껴 써야 나중에 마왕을 만나서 또 쓰지."
"아!"
제마는 범려의 말을 듣고 그제야 행동을 멈추고 남아 있는 포션을 바로 확인했다.
"아, 다행이야. 그래도 포션이 5만 개는 남아 있군."
5만 개라는 소리에 범려는 잠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5만 개라니! 무슨 포션이 그렇게 많아."
"이 정도는 기본으로 가지고 다니는 양이야. 이번 전투에는 좀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10만 개를 가져왔지.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쓰기는 했지만."
"그럼 포션의 종류별로 다 합쳐서 5만 개지?"
"무슨 소리! 상태 이상 포션 종류만 5만 개야. 정령 폭탄은 대략 2천 개 있고, 다른 회복 포션은 4만 개 정도 있어."
"그걸 어떻게 다 들고 다녀?"
"그건 내 직업상 비밀이야."
제마는 범려에게 비밀이라면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마왕은 언제 나오는 거야?"
"지금 악마들을 계속 잡고는 있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아. 아무래도 다른 유저들이 이곳으로 오게 되면 다시 공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 중이야."
범려는 다른 유저들을 기다릴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유저들은 여전히 방어전을 하기 바쁘다.
"범려야, 아무래도 지원군은 포기해라. 우리가 대륙으로 가는 악마들의 군대를 급습에서 타격을 주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쫓아오겠냐."
"하긴, 그것도 그렇군."
범려는 중간 집결지에서 봤던 악마 군대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답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 집결지는 요새로 되어 있어서 공성전을 할 수도 없었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 죽는 것은 해골 병사들이 되기 때문이다.
"후우, 그래도 마왕을 잡겠다고 이곳에 왔는데 이건 뭐……."
어떻게 보면 요새를 공략하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돌아가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이왕 손을 댔으니 끝을 봐야겠지."
범려가 이 상태를 유지하며 마왕성 안에 있는 악마들을 바깥으로 불러내 사냥을 계속하자, 어느 순간 마왕성의 악마들이 절반이나 사라져 버렸다.
그사이 병사들과 일행들은 두세 단계 레벨 업을 했다.
"후후후, 그 지겨운 것들을 잡으면서 경험치는 쏠쏠히 들어왔네."
범려에게 있어서 레벨 업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이제 마왕 주변에 있는 녀석들을 슬슬 정리해볼까."
해골 군대를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가 마왕 주변의 모든 악마들을 차근차근 없애버리면서 혹 마왕이 악마들을 소환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좋아. 이 정도면 대충 정리가 되었군."
"으흐흐흐… 형님, 드디어 마왕을 잡는 겁니까?"
"으흐흐… 그렇지. 마왕을 잡는 거지."
"으흐흐흐… 아주 좋은 아이템을 내놓겠지요."
"아마도."
취선과 범려는 마왕을 벌써 잡은 것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아이템을 노리고 있었다.
"마왕을 잡은 것도 아닌데 벌써 아이템을 탐내!"
옆에 있던 로즈는 범려와 취선을 나무랐다.
"……."
로즈의 말을 잘 듣는 취선은 벌써부터 반성 모드로 들어갔고 범려는 자신의 여친이 하는 말이라서 귀담아들었다.
"그래, 내가 너무 아이템에 눈이 멀었나 봐."
로즈의 말에 정신을 차린 범려는 루이를 불렀다.
"루이, 저 안에 들어가서 마왕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겠어?"
"일반 몬스터라면 몰라도 보스 몬스터에 관해서는 알아낼 수 없습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언제나 모든 정보를 구해오던 루이가 보스 몬스터라는 이유로 정보를 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그 주변에 있는 녀석들의 정보라도 파악 가능해?"
"그거라면 가능합니다."
루이는 자신이 가능한 일을 받자 바로 마계에 살던 쥐들을 불러서 그들의 정보를 알아오도록 명령했다.
범려의 군대가 마왕이 살고 있는 성안에 있어서 정보를 얻어오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음, 좋아. 주변에 녀석들은 확실한 대응 방법이 생기는군."
가장 중요한 보스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그래도 보스 혼자만 상대한다면 범려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해결 가능한 부분이었다.
"그럼 마왕을 잡으러 가보실까."
범려는 당당하게 마왕이 살고 있는 궁전으로 들어갔다.
궁전 안에는 근위병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숫자가 적어서 해골 병사들이 순식간에 쓱싹해버렸다.
"이거 꼭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국으로 쳐들어가는 것 같네."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몬스터를 처치하는 데 있어서 그런 감정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마왕!"
제일 큰 내전에 들어가자 어디 축구 경기장 5개를 합쳐 놓은 것 같은 거대한 홀이 보였다. 그 한가운데에는 마왕이 홀로 자리하고 있었다.
"근데 체구가 좀 작다."
마왕이라고 하면 상당히 거대한 체구이거나 혹은 그 기세가 엄청나야 하는데 그는 몸집이 왠지 가냘프고 왜소했다.
"어험! 마왕! 널 잡으러 내가 왔다."
범려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용사 같은 대사를 마왕을 향해 외쳤다.
"으하하하! 감히 나에게 도전을 하러 온 자가 있다니!"
마왕은 작은 체구에서 생각보다 아주 음침한 목소리가 흘러나와서 언밸런스하게 느껴졌다.
"그럼 한번 해보실까. 얘들아!"
범려가 해골 병사들을 부르며 진형을 짜려고 하는 순간 마왕은 집게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쯧쯧쯧, 이런 건 일대일 승부로 해야지."
-일대일 결투존이 형성됩니다.
"헉! 이런!"
범려를 제외한 모든 병사들과 파티원들은 순식간에 마왕의 힘으로 인해 저 뒤로 밀려나버렸다.
"이제 좀 해볼 만하겠네."
"이 정도인가."
범려는 마왕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겉보기에 왜소한 체구를 가진 것과 달리 마왕의 힘은 엄청났다.
"나와 싸우러 온 용사가 왜 이리 가만히 있는 거지?"
"후우, 아무래도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군."
범려는 그 자리에서 해골마를 꺼내 올라탔다.
"음? 죽은 자의 기운과 신성한 기운이 동시에 느껴지다니. 저 해골들도 그렇고 저 말도 그렇고 말이야."
마왕은 범려의 힘이 조금 신비하게 느껴졌다.
"무엇에도 치중되지 않는 이 오묘함… 너의 뒤에 누가 있는 거지?"
마왕은 범려에게 물었다.
"내 뒤?"
범려는 마왕의 말을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 내 직업을 준 존재에 대해 말하는 모양이군."
"뭐가 어떻게 되었든 너의 뒤를 봐주는 존재는 뭐냐!"
"아르테미스."
범려가 아무 거리낌 없이 아르테미스라고 입을 열자 마왕의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그 영혼의 천사가 너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거군."
"잘 알고 있네."
아르테미스의 존재는 어디를 가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NPC이기에 모두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유저들 사이에서는 부활의 존재이자, 마을 사람들이나 일반 NPC들에게는 영혼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이다.
'뭐가 어찌 되었건 아르테미스는 어디에서나 다 통하네.'
"무슨 이유로 내 뒤에 있는 존재를 묻는 거지?"
"간단하지. 내가 바로 복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수?"
"그렇다. 아르테미스 말고도 인간계에 내가 복수해야 할 대상들이 널리고 널렸다!"
마왕이라고 하는 존재는 어디를 가나, 어느 게임을 하나 만날 저렇게 대범하지 못하고 복수에 휩싸여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일대일 영역을 만들었으면 이제 대결을 해야지. 안 그래?"
"잠시 내가 원래 해야 할 일을 잊고 있었군."
마왕은 자신이 앉아 있던 커다란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라? 저 마왕 왠지 여자 같아 보이는데?'
마왕의 위치는 범려가 서 있는 곳에서 멀리 있었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눈에 힘을 주고 보니 여자로 보이는 것이다.
'설마 마왕이 여자일 가능성은 없겠지.'
범려 스스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며 위안을 하고 있던 사이 마왕은 자신의 전투마를 소환하더니 그 위로 올라갔다.
'으음.'
말 위에 올라간 마왕을 보니 설마 하던 부분이 서서히 확신으로 바뀌었다.
'젠장! 진짜 여자잖아!'
범려는 마왕이 여자라는 사실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몬스터지만 게임에서 여자가 몬스터로 나오는 일은 드물다.
"아, 이런."
범려가 한편에서 낭패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저 뒤로 밀려났던 로즈가 마왕을 보고 경악했다.
"저 얼굴!"
로즈는 마왕의 얼굴을 보고 제일 답답해했다. 그건 바로 로즈와 똑같이 생긴 얼굴의 마왕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누나 얼굴?"
"어머나, 로즈 네 얼굴이잖아."
또 하나의 로즈가 마왕이라는 몬스터가 되어 저렇게 버티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쳇, 저걸 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닌데."
범려도 솔직히 로즈의 얼굴을 한 마왕이라서 전의를 상실해버렸다.
그렇다고 마왕의 손에 죽어줄 수도 없었다.
"크윽! 이걸 어떻게 하지."
범려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하하! 죽어라!"
마왕은 전투마를 타고 범려에게 달려들었다.
챙! 챙! 챙!
"이런, 제길."
범려는 로즈의 얼굴을 달고 있어서 마왕을 공격하는 데에 소극적이었다.
"범려야! 신경 쓰지 말고 공격해!"
로즈는 범려의 공격이 소극적인 이유가 기분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짢았다. 하지만 그래도 남친인 범려가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기에 범려에게 큰 소리로 당당하게 공격하라고 외친 것이다.
범려는 그 말을 듣고 용기가 났는지 섬전의 창을 휘두르며 마왕을 공격했다.
"하하하! 그런 공격이 나에게 먹힐 것 같으냐!"
"하앗! 환영섬!"
범려가 기술을 펼쳤고 마왕은 갑작스러운 기술에 공격을 당하자 그 음침했던 목소리에서 아주 가냘픈 여성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꺄악!"
"어머나, 내 목소랑 똑같네."
정말 감탄한 사람은 로즈였다. 어떻게 그 음침한 목소리가 확 바뀌는 것인지.
"이런, 사람 난감하게 하네."
범려는 마왕이 이런 존재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 몸에 상처를 내다니… 너 죽었어!"
목소리 성향이 갑자기 바뀌어버린 마왕을 보자 범려는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로즈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미안하다!"
범려는 거침없이 창을 휘두르면서 마왕과 싸웠고 마왕은 간간이 쏟아내는 마법과 검술로 범려를 압박해나갔다.
"크윽! 해골마 아니었으면 진작 죽었을 거다."
범려는 해골마를 타고 요리조리 피하면서 정말 기동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또 하나 다행인 것은 이 마왕은 범려를 괴롭힐 생각만 있는지 단숨에 죽이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그가 도망 다니는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이거 뭐야? 사람 놀리는 거야!"
한참을 도망 다닌 범려는 마왕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판단이 섰고, 이내 밑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이런, 내 오늘 여기서 죽더라도 너 잡고 죽는다!"
범려는 해골마를 몰면서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으아-!"
마왕은 범려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는지 순간 당황하면서 몸이 잠시 경직되었다.
"어머! 범려 님!"
범려는 몸을 날려서 마왕과 함께 말에서 떨어졌다.
"어머, 범려 님? 이 목소리는……."
범려는 순간적으로 어디선가 많이 듣던 목소리임을 파악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목소리는……."
"흡!"
마왕은 황급하게 입을 가리면서 살짝 몸을 주춤거렸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목소리! 설마……."
범려의 눈빛이 빛나더니 그 마왕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물러나거라."
위엄 있는 목소리를 내면서 방금 전 목소리를 감추었지만 범려는 이미 모든 걸 알았다는 듯 웃었다.
"아르테미스!"
"네, 안녕하세요. 범려 님… 앗!"
마왕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르테미스였다. 어쩐지 폼 나고 위엄 있는 모습의 마왕이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가냘프고 부드러운 인상의 마왕이라서 처음에는 상당히 당황을 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범려는 눈앞에 보이는 마왕, 아니 아르테미스를 향해 당당히 따졌다.
"호호호, 그게… 저 위에서 아직 마왕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제가 대신 대역을……."
"대역?"
범려의 일행들은 대역이라는 말에 다들 머리가 멍해졌다.
"그런데 저 위에서 마왕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
"아, 그거요. 말 그대로 신들이 마왕을 아직 만들지 못했어요."
범려는 아르테미스의 말을 듣고 놀랐다. 신들은 분명 『판게아 월드』의 개발자들을 뜻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일에 쫓겨서 마왕을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에 멍해졌다.
"왜! 아르테미스 님이 무슨 일로 대역을 하는 거죠?"
"아, 그거 부탁을 받아서 하는데요……."
개발자들에게 부탁을 받을 정도면 아르테미스의 위치가 개발자들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사실 범려 님에게만 말하는 건데요……."
아르테미스가 범려의 귀에다 무언가 속삭이자 제일 답답한 것은 저 너머에 있는 로즈였다.
"저년 뭐야! 왜 남의 남자 귀에다 속삭이는 거야!"
로즈는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범려가 다른 여자와 놀아나는 꼴을 보지 못한다.
"저년 잡히기만 해봐라! 머리카락을 전부 다 뽑아버릴 테다."
"누, 누나, 진정해."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내 남자를 꼬드기는 년이 눈앞에 있는데!"
범려를 만나면서 내면에 잠들었던 로즈의 성격이 고개를 다시 들면서 분노가 폭발을 한 것이다.
"헉!"
범려는 아르테미스의 말을 듣고는 머리가 멍해졌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물론이에요. 이걸 아는 이는 이 세상에 열 명이 채 넘지 않아요. 거기에는 범려 님이 포함되어 있고요."
"그, 그렇군요."
범려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그런데 마왕이 완성될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이미 들켰으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겠네요."
아르테미스는 해골 병사들과 범려 일행들을 주변으로 밀어냈던 힘을 거두어들였다.
거대한 장벽이 사라지자 제일 먼저 달려가는 것은 로즈였다.
"감히!"
로즈가 씩씩거리며 뛰어가고 있는 사이에 마왕의 모습이 『판게아 월드』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영향력 강한 NPC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아르테미스!"
"10골드 천사!"
"안녕하세요, 여러분."
다들 마왕을 공격하기 위해 달려오다가 그 모습을 보고 다리에 힘이 빠지더니 그대로 우뚝 서버렸다.
"이게 어떻게……."
"그 사정은 비밀이에요. 그리고 마왕은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인데 범려 님 때문에 벌써 쳐들어오셔서 여러분들은 이벤트에서 제외시킬게요. 죄송해요."
딱!
아르테미스가 손가락을 딱 튕겼고, 해골 병사들과 범려 일행들이 전원 마계에서 사라져 『판게아 월드』 대륙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분들 능력이 너무 좋아서 참 문제예요. 언제나 예상을 깨고 제 부탁을 너무나 빨리 해결해버리시다니."
아르테미스는 고개를 흔들면서 범려와 그 일행들의 능력에 대단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벤트에 제외됐지만 그동안 쌓아온 공적치가 있으니 그에 걸맞게 보상을 해드릴게요."
아르테미스가 일행들에게 공적치에 맞는 직업별 보상을 하고는 모습을 감추고 말았지만 범려는 아르테미스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후우, 머리 아프군.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범려는 방금 전 아르테미스가 했던 말을 상기시키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사실은 말이에요. 전 그냥 NPC가 아니랍니다. 사람들은 절 프로그램으로 착각하지만 전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지금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랍니다.'
'그걸 어떻게 믿죠?'
'그거요? 간단해요. 게임에서 로그아웃하신 뒤 제 이름을 불러보세요.'
범려는 아르테미스가 했던 말이 자꾸 걸려서 진짜로 로그아웃을 했다.
"아르테미스!"
"네, 안녕하세요. 희성 님!"
"헉!"
현실 세계에 나타난 천사 아르테미스. 희성은 그걸 보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 진짜였다니……."
"물론이죠. 천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답니다."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아르테미스의 모습은 게임에서 봤던 모습과 정말 똑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게임에서 활동하는 거죠?"
"아, 간단해요. 『판게아 월드』 게임은 저 위에 신이 만든 게임이거든요. 인간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죠. 그리고 거기서 모인 돈은 불우 이웃을 위해 쓰고 직원들 월급도 주죠. 마지막으로 개발팀 사람들은 진짜 사람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2010년에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들이 가상현실을 만들기에는 아직 모자람이 있어요."
희성에게는 정말 충격이었고 세상에 천사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우, 늦었네요. 그럼 나중에 게임에서 봬요. 부활시켜 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겠네요."
아르테미스는 게임에서 해왔던 것처럼 똑같이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아하하하! 진짜였어! 세상에는 정말 천사가 있었던 거야!"
희성은 너무나 황당해서 크게 웃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한들 어느 누구도 믿어줄 거라 생각지 않았다.
심지어 가장 가깝고 사랑스러운 여인 미진에게도 말이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