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은 인과율...
표면을 따라 한참을 전진하여 모함의 안으로 진입한 수송선 헤르메스는 열려있는 게이트를 통하여 모함의 내부를 저속으로 진입하였다. 수송선이 지나가는 통로는 선체의 길이가 2km에 이르는 헤르메스가 가뿐하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넓이였다. 전체적으로 각진 원통형이었는데 표면에는 벌집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어 그 안에는 수많은 함들이 표면과 90도 각도로 애벌레처럼 정박해 있었으며 정박한 함보다 작은 운반체들이 사방으로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계속 통로의 앞으로 전진한 헤르메스는 정박할 위치에 도착했는지 곧 속도를 서서히 줄이고 함의 앞부분에서 역 분사를 하여 다른 함들과 같이 90도 각도로 세워져 벌집형태의 공간으로 서서히 진입하였다.
"쿵"
수송선은 나지막한 소음을 내며 드디어 모함에 정박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려주었다. 그러자 정박한 헤르메스를 목표로 수많은 액체줄기가 솟아 나와 헤르메스 표면을 강타했다. 강타한 액체는 보통의 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표면에 접촉하는 즉시 딱딱한 금속으로 변하여 함을 주변에 완전하게 고정시켰다. 물론 100척 전부가 모함의 안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고 단 한 척, 루미나들이 탄 수송선만 모함의 안으로 진입하였고 나머지 함들은 모함의 외부에 있는 정박시설을 이용하여 물자이동을 시작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저의 함에 잘 오셨습니다. 저는 이 모함의 상부 직속의 호위대 소속인 에프로슈네라고 합니다"
출입구를 열자마자 문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루미나와 키네라의 정면에는 1명의 아름다운 얼굴에 긴 머리를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은 여성이 경례자세를 취하고 서있었다. 그에 답하여 방금 전까지 치열하게 싸운 사람답지 않게 차분한 목소리로 경례자세를 취하며 루미나가 답하였다. 결국 싸움의 결과 루미나와 키네라는 지정된 시간을 초과하여 관제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반갑습니다. 전 이번에 이 104군단 침묵하는 지옥에 배속된 중위 라마 리 루미나입니다.(이름에서 라마는 아돈족의 한 일파이며 '누'는 성인 '리'는 지구식으로 청소년에 해당한다)
"반갑습니다. 소위 라마 리 키네라 라고 합니다."
"예?? 침묵하는 지옥이라니요??"
에프로슈네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둘은 의문을 표하였다.
"저희가 받아본 자료에는 분명히 침묵하는 지옥이란 단어로 적혀있었는데.....자료가 잘못된 것입니까?"
이 부대가 사령부에서 가르쳐 준 그 부대라는 것은 100% 확실하였다. 좌표를 보아도 그랬고, 아군 식별코드가 먹혀 들어간 것도 그랬으며 사령부에서 보내준 허가증이 접수된 것을 보면 정확히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부대 명이 틀리다니....
"이런 이런... 또 코드네임이 바뀐 모양이군요."
어이없다는 듯 에프로슈네가 말하자 루미나 말하였다.
"코드 네임이라니요?? 그럼 이 군단의 이름이 침묵하는 지옥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글쎄요...음..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요"
"무슨 뜻이지요??"
키네라의 물음에 에프로슈네가 말하였다 "어차피 이름이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이가 정하는 대로 정해지는 것이니까요."
"그럼"
"예.. 저의 부대를 지구에서는 과거에는 악마의 파티라는 말로 불리었는데. 이번에는 침묵하는 악마로 불리네요"
친절히 설명해 주고 있지만 은근히 화난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상당히 군사령부를 싫어하시는 것 같군요?"
"상당히 예리하시네요.... 예! 싫어해요. 여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지요....이런! 처음 만남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요. 죄송합니다."
"아뇨 저의 말로 이상한 질문을 하여 죄송합니다." 에프로슈네의 정중한 사과에 루미나는 웃음으로 마무리지었다.
"자. 마스터께서 기다리시더군요. 자 이쪽으로"
에프로슈네는 둘을 안쪽으로 이동했다.
"이것은?"
키네라가 가리키는 것은 얄팍한 정사각형 판이었다.
"이건 자기 부상 판으로 이 함의 교통수단이지요. 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서 그렇지 구형이지만 성능이 뛰어나 교체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죠. 지상이 아니면 초대형 함만이 장착하는 장비이니 두 분께서는 아마 모르실 수 있겠군요. 자 얼른 타세요"
에프로슈네의 설명과 함께 재촉하는 말에 둘은 불안한 기색으로 앞의 판 하나에 한 명씩 올라섰다. 키네라와 루미나는 그 판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판은 실험단계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 소비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서 패기 처분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눈앞에 그 것이 나타나자 당황한 모습을 에프로슈네가 착각한 것이었다. 에프로슈네가 서 있는 판이 천천히 상승하는 모습을 본 둘은 곧 자신들의 판도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지면에서 10cm정도 상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 외로 출력의 불안정으로 출렁이는 현상은 전혀 없었다. 이것은 이 함의 에너지 사정이 상상외로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나, 아니면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세 명의 판이 모두 상승하자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지만 함이 정박한 곳을 벗어나자 점점 속도가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지나가는 통로는 팔각형으로 밑의 지면은 넓은 반면 천장은 매우 좁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약10분이 지났을까? 루미나는 통로가 외길로 한없이 이어지자 점점 지루해 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에프로슈네 님의 군복은 처음 보는 디자인이네요?"
지루함을 벗어나지 못한 루미나가 에프로슈네의 군복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군복에 대한 질문이 들리자 에프로슈네는 자리에서 고개를 돌려 루미나를 쳐다보았다. 루미나의 질문에 말없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던 키네라도 눈을 반짝이면 대답을 기다렸다. 에프로슈네의 군복은 루미나나 키네라의 검정 색의 약간 부푼 상의에 짝 달라붙은 하의의 군복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에프로슈네의 군복은 안쪽에는 금속질감의 손과 발을 포함한 전신을 감싸는 딱 달라붙는 검은색 옷에 검붉은 색의 두꺼운 천으로 된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코트를 입고있었다. 코트 앞, 즉 가슴 부분은 어깨 넓이로 목에서부터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금속질감의 굉장히 두꺼운 검은색의 천으로 가려지고 있었으며 허리위치에는 20cm이상의 두꺼운 허리띠를 하고 있었다. 지구의 군복은 모두 통일되어 있었기 때문에 처음 보는 군복에 호기심이 동한 둘이었다.
"예? 아! 이 옷은 이곳에서의 정식 군복이지요. 저희는 지구사령부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군수물자를 만들어 쓰고 있지요. 그렇다고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군복처럼 외부 자극에 대한 방어력을 지금 두 분께서 입고 계시는 정식 지구군의 군복보다 50%이상 상승시켰지요. 두 분께서도 오늘 중으로 지급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잡담을 하는 사이, 누구나 지루함을 느끼는 통로의 끝이 어느덧 보이기 시작하였다.
"와!!"
"굉장하군요?"
둘의 감탄이 나오자 에프로슈네의 입가에는 자랑스런 미소가 나왔다. 자기가 속한 집단의 칭찬이 결코 싫을 수는 없었다. 방금 전 까지 두꺼운 벽으로 둘러 쌓여있는 통로에 비교해서 앞의 통로는 20m간격으로 뒤쪽의 통로와 같은 형태인 팔각형의, 두께 약 20cm의 구조물이 있을 뿐 나머지 천장과 바닥을 포함한 모든 부분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었다. 둘을 배려해주려는 에프로슈네의 덕분에 속도가 줄어든 자기 부상 판에서 뛰어내려 창에 바짝 붙어서 눈앞의 장면을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때요? 우리의 자랑거리가?"
에프로슈네의 말을 들으며 둘이 정신 없이 눈앞의 광경에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눈앞의 초 거대한 중앙에 3개의 구조물이 있는 것만을 뺀다면 생물이 풍부한 유인행성의 어느 한 지역에 와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자연이었다. 하늘에는 입체영상이겠지만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으며 시선의 저 멀리 눈 덮인 산도 보였다. 대지를 가르는 커다란 강도 보였으며 울창한 숲도 보여지고 있었다.
"굉장해요! 군함에 이런 시설이 있다니..거의 거대 민간인 콜로니와 비슷한 크기인데요? 저기 끝의 거리까지 얼마나 되죠?"
루미나가 감탄 어린 탄성에 에프로슈네의 미소도 더욱 짙어졌다. ...아마 칭찬에 약한 성격이라는 것이, 곁에서 에프로슈네의 모습을 본 키네라의 생각이었다.
"장기간 우주에 머무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나 밀폐된 공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상부에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 만들어 놓은 주거시설이죠. 여기는 둥근 원 형태로 지름이 약50km정도 되지요. 저기 보이는 중앙의 3개의 구조물이 일종의 도시지요. 이 함에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곳에 거주하지요."
"헤에...지금 잠시 둘러보면 안될까요"
"저곳은 아마 두 분께서도 살아갈 장소이니 지금 급하게 구경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보다 앞으로 가야할 거리가 많이 남았으니 슬슬 출발하지요?"
에프로슈네의 재촉에 둘은 아쉬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려 서둘러 판에 올라섰다. 그 모습을 본 에프로슈네는 판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휴~~이번에도 간신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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